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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4월의 해빛은 고도 2만메터상공을 날고있는 비행기의 기창에도 아낌없이 흘러들고있었다. 기창옆에 앉아있는 고진아의 얼굴은 그 해빛을 받아 더더욱 밝고 산뜻해졌다. 그 녀자는 《로동신문》을 펴들고있었다. 바로 지난해 베이징에서 만났던 공훈예술가 림현순이 편지와 함께 보내준 신문이였다.

인제는 거의나 뜬금으로 외울수 있을 정도로 읽고 또 읽은것이지만 한시도 거기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다.

신문을 보내면서 림현순은 이렇게 썼다.

 

《고진아앞.

나는 당신에게 먼저 우리 어머니(김은영)와 가족모두의 따뜻한 인사를 전해드립니다. 당신이 알고싶어하는 부모들의 과거사는 여기에 동봉해보내는 <로동신문>에 다 씌여있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오세요. 조국은 언제든 당신을 반겨 맞이할것입니다.

상봉의 날을 기다리면서…

                                             림현순》

 

고진아는 북조선의 《로동신문》이 당보이며 가장 공정하고 절대적으로 신뢰할수 있는 기사들만 심는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것은 요란스러운 광고나살인, 절도, 강간따위의 범죄, 온갖 사고와 자연재해, 개별적정치평론가들의 편견에 찬 론평이나 가지가지의 잡스러운 흥미본위적인 세태풍속과 일화들이 끼울 자리가 없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신문이였다. 바로 거기에 로가수 김은영이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속에 살아온 자랑스러운 한생에 대한 이야기가 옹근 한면에 걸쳐 실려있는것이다.

그것은 《심장으로 부르는 그리움의 송가》라는 제목으로 된 기사였다.

…얼마전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속에 80고령의 녀가수가 독창회를 준비하고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살고있는 집을 찾았다.

대동강반의 고층살림집구역에 들어서니 고음가수의 절절한 노래소리가 우리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맑은 음색, 창공으로 나래치는 새처럼 거세차고 거침없이 울려퍼지는 풍부한 성량, 섬세하면서도 열정이 끓고있는 형상세계…

한편의 노래에도 력사와 시대가 비낀다. 우리 인민에게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겼던 왕년의 가극배우 김은영은 비록 머리엔 은발을 얹고있지만 밝고 산뜻한 미소를 담고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렇게 시작된 기사는 《태양의 품을 찾아서》와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의 소제목들로 나뉘여있었다. 고진아는 그 글줄들을 눈으로 삼킬듯이 읽고 또 읽었다.

은영의 한생이 집약되여있는 기사, 거기엔 고진아의 어머니 박수미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있었다. 일시적후퇴시기 김은영과 고종우를 설유하던 끝에 남으로, 서울로 도주하던 이야기, 그리하여 갈라진 두 녀배우의 운명… 그에 대하여 신문의 기사는 이렇게 쓰고있었다.

한번 택한 길에서 물러나면 인생의 락오자가 되기마련이다. 오직 굴함없이 곧바로 변함없이 걸어갈 때에만 비로소 참된 인생의 절정에 오를수 있는것이다.…

 

그렇다. 그 운명의 갈림길에서 고진아의 어머니는 파멸의 길로 굴러내렸고 변함없이 빛을 따라간 김은영은 빛나는 생의 절정에까지 오르게 되였다. 실로 판이한 두 인생이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뭐라고 했던가. 그처럼 진실한 벗들을 배신하고도 얼마나 모질게 헐뜯었던가!… 말년에는 아편주사까지 맞지 않으면 안되였던 어머니, 아편과 탕녀적인 생활로 몸을 망치고 정신마저 비뚤어진 어머니가 자살을 결심한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때 어머니가 미국에 살고있던 딸 진아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는 이런 말들로 끝을 맺고있었다.

《나는 그네들을 일생 저주해왔다. 그네들이 나에게서 모든것을 다 빼앗아갔구나. 이제 나한테 남은게 뭐니. 버림받은 운명… 너마저도 이 에미를 미워하고있지. 저주하고있다는걸 난 안다.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고백하는데 이 에민 평생 고독하구 불행했다. 하느님이 날 버렸어. 예술과 사랑이 날 배신했던거야. 내가 버린건 아니야. 난 미칠지경으로 그걸 바랐지만 그것들은 걸음마다 날 차던지구 말았어. 너마저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으니 난 외롭게 생을 마칠수밖에 없구나. 부탁하는데 내 죽은 다음이라도 북에 간 그네들을 좀 알아봐주렴. 고종우를 찾아서 아버지라고 불러보아라. 무던하구 착한 그 사람이 무어라구 하겠는지… 아직 너한테 누가 진짜 아버지인지 정확히 대주지 못한 이 에미를 용서해다오. 나는 간다. 나를 버린 하느님한테로 엎드려 기면서라도 가련다. 그럴수밖에 없는 이 에미를… 용서해다오. 진아야, 나를 버린 사람들도 이제 와선 다 나를 용서해주기를 바라며 빌고 또 빈다. 눈물로 속죄하는 이 마음을… 내 딸아, 너만이라도 알아주렴, 너만이라도!…》

그 마지막문구가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 비로소 알게 되였다. 《나를 버린 사람들도 이제 와선 다 나를 용서해주기를》빈다고 한것은 어머니가 그들을 배신했었다는 고백이였다. 신문에 난 기사가 그것을 증명해주고있는것이다.

안내원이 들어와 비행기가 조국의 상공에 들어섰다고, 이제 30분후이면 조국의 수도 평양에 내리게 된다고 말했다.

《조국!…》

진아는 불시로 뜨거운 속삭임에 목이 메이는것을 느꼈다. 반세기가 넘어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조국, 50살이 넘어서야 찾게 되는 내 나라, 내 땅이였다.

기창아래는 흰구름들이 한폭의 대형그림처럼 널려져있었다. 산봉우리같이 우중충하게 솟아오른것도 있고 밭고랑처럼 길게 뻗어간것들도 있다. 기암절벽이 있는가 하면 깊은 골처럼 패운것도 있다. 그 구름장들사이로 해빛을 받아 파랗게 펼쳐진 산천이 아득히 내려다보였다. 하늘엔 하얀 구름의 산천이 펼쳐져있고 땅우엔 파란 전야와 수림, 강과 호수들이 수려하게 자태를 드러내고있었다.

고진아는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어 땅우에 움직이는 모든것들이 시야에 들어올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기창밖을 내려다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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