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두 처녀

1

은영이 처음 수미를 알게 된것은 60여년전의 일이다. 그때 13살나던 은영은 전국녀중생들의 성악콩클에 참가하기 위하여 서울로 올라갔었다. 이제 겨우 시골보통학교에 다니고있는 은영이를 누구도 추천하지 않았고 불러주지 않았지만 리채옥이라는 음악교원이 기어이 데려가겠다고 우겼던것이였다. 사실 보통학교에 다니는 13살난 소녀를 전국녀중생들의 성악콩클에 끌고간다는것은 무리였다. 아닐세라 서울에서는 쌍태머리를 땋고 자주색저고리에 까만 목세루치마를 입고있는 죄꼬만 계집애를 야멸찬 웃음속에 맞아주었다. 당시 중학생이라면 한창나이처녀들이였다. 서울리화녀중, 함흥영생녀중, 원산루씨녀중과 부산, 목포, 광주 등에서 뽑혀온 처녀들, 도자기에 그려진 선녀들처럼 말가니 다듬어지고 뽀얗게 분칠한 신식처녀들이 시골티가 력연한 은영이를 보고 혀를 차며 종알거렸다.

《저 애도 콩클에 왔다는거니?》

《응, 우리와 겨룬다나 봐.》

《어마나, 저런 코흘리개가 말야?》

《무대에 나서면 울고말거야. 잉?!》

《그럼 울보경연이 되게?》

《울보경연? 에구마! 그것참 멋있다야 얘.》

그러나 그 녀학생들도 은영이를 데리고 온 리채옥선생의 한마디 말에는 움츠러들지 않을수 없었다.

《학생들, 입만 뾰족했으면 새소리도 내겠군요!》

한때 일본에서 무사시노음악학원을 나왔고 피아니스트로 연주생활도 한바있는 리채옥이였다. 새까만 옷차림에 동그란 백테안경을 끼고있는 그 녀자의 모습은 마음을 하늘에 얹고 사는 수녀같은데가 있었다. 리채옥은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먼저 그네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어놓고 은영이를 손잡아 이끌었다. 콩클은 리화녀전의 음악회랑에서 시작되고있었다.

얼마후 은영은 무대옆의 현수막뒤에 몸을 숨기고 차례대로 무대에 나서는 멋쟁이녀학생들을 훔쳐보고있었다. 새까만 쎄라복을 입고 구두를 신은 처녀들이 도랑화장을 진하게 하고 조명등이 눈을 때리는 무대로 나가군 했다. 류행가나 조선민요 또는 일본노래를 부르는 녀학생들도 간혹 있었지만 태반은 《그리운 산골짝》, 《안니로리》, 《로렐라이》와 같은 세계명곡을 준비했었다.

자기의 음색과 창법, 음역에는 관계없이 세계명곡을 불러야만 1류가수로서의 전망을 론하는것이 당시의 류행이였던것이다.

나비넥타이를 맨 남자소개자가 나서서 어느 학교의 녀중생 아무개가 무슨 노래를 부르겠다고 소개하군 했다. 그러면 미리 준비된 피아노반주가 울리고 숨을 할딱거리는 처녀가 구두발소리도 조자맞게 무대로 나선다. 여기서는 박수도 꽃다발도 없다. 심사석에 앉아있는 여러 극장의 성악전문가들, 지휘자들, 리화녀전의 음악교원들이 나직이 수군거릴뿐이였다. 그리하여 소개자가 다시 나설 때까지 무대에는 물속같은 정적이 깃들군 했다.

은영은 거의나 숨을 쉬는것 같지 않았다. 속이 떨리고 현수막을 잡고있는 손마저 경련이 이는듯 했다. 지어 그는 자기를 소개하는 목소리도 가려듣지 못하고있었다.

《여러 심사원선생들!》소개자가 신파극에서처럼 이상한 목소리로 웨치고있었다. 《이번에는 옛적부터 북관의 6진중에서 요새지로 알려진 회령에서 온 김은영양이 나오겠습니다. 당년 13살의 은영양은 보통학교 재학중으로서 물론 녀중생은 아닙니다. 우리 성악콩클에서는 아직 전례가 없는 일이라 놀라실분들도 없지 않겠지만 어찌 알겠습니까. 우리 예술계를 풍미할 인기가수의 출연을 보시게 될런지… 물론 햇비둘기 재를 못 넘는다지만 머리쉼도 하실겸 적당히 들어주십시오. 준비해온 곡목은 <오, 나의 태양>.》

심사석에서 웃음소리가 울렸다. 소개자의 재담같은 말솜씨에 웃었는지 아니면 13살 소녀가 《오, 나의 태양》을 부른다는것이 너무 어처구니 없어서 그랬는지… 은영은 얼어붙은것처럼 한자리에 굳어져있었다.

누군가 은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 차례가 왔다.》 리채옥선생이였다. 《겁먹지 말고 그저 고향의 강물우에 떠오르던 태양만을 생각해라. 알겠지?》

채옥선생에게 떠밀려 무대에로 나서자 먼저 휘황한 조명등불빛이 애어린 소녀의 눈을 때렸다. 두다리가 휘청거리고 눈과 귀가 먼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않고 들리지 않았다. 채옥선생이 자기의 손을 꼭 잡고있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을런지도 모른다.

채옥선생자신이 피아노반주를 맡아주었다.

드디여 귀에 익은 피아노음악이 가슴을 쳤다. 두만강의 푸른 물결이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검푸른 물결우에 일렁이는 시뻘건 불길, 태양이 솟으며 드넓은 강물을 불태우고있었다. 밀려오고 밀려가며 꿈틀거리는 불길, 그속에서 나래치며 껙껙 울부짖는 물새들, 알수 없는 기쁨에 겨워 울부짖는 그 물새들을 쫓아 모래터에 작은 발자국을 찍으며 달려가는 소녀, 그것은 바로 은영이 자기였다.

 

오 밝은 태양 너 참 아름답다

폭풍이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오고

하늘에 밝은 해는 비친다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은영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늙은이들은 장죽을 탁탁 두드리며 기가 찬듯 혀를 차군 했다.

《저 죄꼬만게 어떻게 저리 고운 소릴 내우?》

《게다가 또 얼마나 챙챙하오. 하늘을 찌르겠다니까!》

《아마 저 애 몸뚱이에 쇠로 만든 소리통이 있나부지요?》

《에미 배속에서 나올 때도 온 동네를 다 깨웠겠수다. 그렇지요, 은영이 에미?》

그러면 어머니는 골살을 찌프리며 투덜거리군 했다.

《에구, 저 망할놈의 계집애. 장구 깨진 무당년처럼 소리만 질러대니 저게 이제 뭐가 될고?》

그래도 아버지만은 속궁냥이 따로 있은것 같다. 리채옥선생의 말을 귀담아듣고 가산을 팔아서라도 은영이를 공부시키려 애썼던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이 무대에까지 나서게 되였다. 두만강류역 회령의 작은 물새가 구름너머로 날개를 펼치며 해솟는 지평선을 향해 목청껏 소리를 뽑고있는것이다.

 

나의 몸엔 사랑의 별

오 나의 태양 비친다

오 나의 나의 태양 찬란하게 비친다

 

드디여 노래는 끝났다. 은영은 인사할념도 못하고 그린듯 서있었다. 자기의 작은 가슴을 물결치듯 울리던 피아노소리의 잔향만을 귀담아 듣고있었다. 자기가 불빛이 휘황한 경연무대에 나와섰다는것도 까맣게 잊고있었다. 납덩이같이 무거운 정적에 징-고막이 울렸다. 왜 이리도 조용할가?… 모든것이 어둠속에 묻혀버린듯 했다. 불이 꺼졌는가, 아니 금빛으로 일렁이던 물결이 사라져버리고 기슭을 치던 물소리마저 잦아버린것일가… 정말 어인 일인가. 모든것이 죽어있었다. 피아노앞에 앉은 리채옥선생도 숨이 멎어버린듯 했다.

바로 그때 은영이또래의 한 처녀애가 무대에로 타박타박 걸어나왔다. 몸에 꼭 맞게 지은 봄외투를 입고 손에는 꽃다발을 들었는데 웃고있는 그 두눈이 파랗게 보였다.

《축하해.》

나비같은 그 처녀애가 은영이에게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그러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심사석에서 박수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졌다. 무대밑의 사람들도 그제야 숨을 쉬기 시작한것 같았다.

《자 인젠 나가자.》 처녀애가 말했다. 《넌 참 노래를 잘 불렀어. 심사원선생들이 깜짝 놀랐지 뭐야. 정말 기막혀!》

리채옥선생이 달려와 은영이를 꼭 껴안은것은 그 순간이였다. 이번에도 은영이는 채옥선생의 손에 이끌려 무대에서 나갔다. 꽃다발을 준 처녀애도 그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내 이름은 수미야. 박수미. 지금 국도극장의 막간가수야. 나두 노랠 부르지만 너보단 썩 못해. 넌 정말 드문애야.》

수미는 은영이와 나이도 같았다. 천성적으로 목소리가 곱고 나이에 비해 빼여난 매력을 가지고있어 막간가수로 뽑혔던것이다. 당시 많은 극장들에서는 영사기값이 너무 비싸서 한대만으로 영화를 돌리고있었으므로 필림을 바꿔 끼우는 시간마다 관중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막간가수를 두어 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러한 막간가수출신으로 지금 한창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리란영이라는 가수가 있다는것도 은영은 그때 비로소 알게 되였다.

《리철사장선생이.》 하고 수미는 말하였다. 《나에게 이 꽃다발을 주라고 하겠지. 너한테 홀딱 반했지 뭐야. 그 선생이… 참, 그 선생은 <오케> 레코드사를 내왔는데 이제 널 쓰겠다구 할거야. 레코드에 노래를 취입하는 가수로 키우려고 말이지. 어때, 좋지?… 넌 정말 운이 좋아. 곱게 생긴데다가 노래까지 명창이니… 세상에 날릴거야.》

그때 수미는 벌써 세상물정이 환한 처녀애였다.

《네가 부럽구나. 그래두 질투하진 않아. 정말이야. 은영이와 수미, 우린 벌써 친했지?… 우리 딱친구가 되자. 응? 난 정말 네가 맘에 들어.》

그때 심사석에 내려갔던 리채옥선생이 돌아와 무작정 은영이를 꽉 껴안아주었다. 정신없이 은영의 어깨를 더듬는 그 녀자의 두눈엔 초물같이 진한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성공했다는 의미였다. 벽촌의 소녀가 자기의 노래로 심사원들을 감동시켰던것이다.

얼마후 수미가 말하던 리철사장이란 사람이 찾아오고 또 다른 흥행사들이 꼬리를 물었다. 콩클에서 1등을 한 은영이를 취재하겠다고 찾아오는 기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무엇때문인지 리채옥은 그들의 청을 다 뿌리치고 은영이를 고향으로 끌고 돌아갔다. 기차에 오를 때 그들을 바래준것은 수미와 흥행사 리철사장뿐이였다.

《우리 또 만나자. 응?》 수미가 울먹이며 하는 말이였다. 《넌 정말 정이 드는 애야. 난 너랑 같이 있구파.》

《이제 또 만나게 돼.》 리채옥선생이 말했다. 《은영인 먼저 공부를 해야 하니까. 그담 꼭 무대에 나설거야.》

은영이도 머리를 끄덕이였다.

《잊지 않겠어. 수미, 다시 만나자. 꼭!》

그날 기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도 수미는 한자리에 서서 손을 저어주고있었다. 그리하여 은영의 마음속에는 그날의 수미의 모습이 아릿한 기억으로 오래도록 새겨져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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