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노래는 어떻게 끝나는가

1

그것은 현순이가 12살나던 해의 어느 한 여름밤이였다. 지금처럼 곤히 잠들고있는데 사람들이 벅적 떠들어댔다. 오학성과 강상일, 고종우아저씨들이 울고있는 할머니에게 뭐라고 말하면서 유한외삼촌과 현순이까지 두들겨 깨웠다.

날도 밝기전이였다. 뒤늦게야 현순은 지난밤 어머니가 중태에 빠져 병원에 실려갔다는것을 알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건설장의 기초구뎅이에 빠져 실신해있는것을 기중기운전공처녀가 몰탈바가지를 막 쏟아부으려던 찰나 우연히 발견했다는것이다. 마침 날파람있는 제대군인총각이 곁에 있어서 어머니를 끌어내여 가까운 병원으로 업고갔다고 한다.

다들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 마침 수술실에서 담가에 실려나오는 어머니를 보았다. 목과 어깨에, 특히 한쪽다리에 붕대를 칭칭 돌려감은 어머니가 기신없이 누워있는것을 보자 현순은 기절할번 하였다. 수술실에서 뒤따라나온 의사가 욱 밀려드는 사람들을 바삐 가로막았다.

《아, 이러지 마십시오. 아무 일없으니 안심하십시오. 정말입니다. 기초구뎅이의 철골에 다리가 찔리워 피를 많이 흘렸는데 수술을 하고 수혈도 했으니 인차 의식을 차릴겁니다. 제발 떠들지 마시오!》

현순은 피가 내배고있는 붕대를 어루쓸며 어머니를 따라갔다. 겁에 질려 울지도 못하면서 《엄마, 엄마!》하고 목메여 부르기만 했다. 극장에서 온 아저씨들이 머리엔 상처가 없는가, 성대는 보존되는가 하는것부터 묻고있는것도 알지 못했다. 붕대를 물들인 새빨간 피가 어린 현순이의 가슴을 칼로 우벼내는듯 하였다. 사랑하는 딸이 손잡고있는것도 모르고 잠든듯 누워있는 어머니가 불쌍하여 견딜수 없었다.

줄곧 현순은 어머니의 침대에 붙어있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몸서리치지 않을수 없다. 하마트면 땅땅 굳어지는 기초콩크리트속에 영원히 묻혀버릴번 했던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지… 별안간 현순이 맞잡고있는 그 손에서 전류와도 같은것이 파동쳐왔다.

《엄마!》 현순이 겁에 질린 소리로 부르짖었다. 《엄마, 왜 그래. 응? 엄마!-》

사람들이 일시에 몸을 떨었다. 무서운 예감에 소스라치며 침대머리맡에 모여들었다. 그 순간 어머니가 눈을 떴다. 놀란듯 현순이를, 모여든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가느다란 입김처럼 속삭이였다.

《현순아-》

《엄마!-》

불시로 목구멍을 가득 메우며 솟구치는 눈물에 현순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의 가슴우에 쓰러지며 처음으로 왕왕 소리쳐 울었다.

지금도 울고있다. 잠자리에 누워 그때 일을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있다.

누군가 어머니를 해치려 했다는것을 그때에야 알게 되였다. 밤중에 달려들어 전지불로 비쳐보고 강한 일격을 가한 사나이를 어머니는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누구의 작간인가는 명백히 짐작하고있었다. 강상일이나 고종우아저씨들도 꼭 같은 생각이였던것 같다. 그들은 의사, 간호원들의 성난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사흘후 오학성부총장이 무슨 서류를 안고 어머니를 찾아왔다.

《은영동무, 여기 동무가 신고한 사람에 대하여 해당 부문에서 회신이 왔소. 내가 읽을게 들어보시오.》

그것은 현순이 알지 못하는 라윤천이라는 사람에 대한 평정이였는데 지금까지 현순은 그 내용을 거의나 말짱 기억하고있다.

…라윤천동무는 강원도 고산군의 빈농출신으로서 소년시절부터 품팔이군으로 일하였다. 그후 부두에서 짐군으로 일했고 원산부두로동자들의 총파업에 앞장서 참가했으며 6년간의 감옥생활경력도 가지고있다. 혁명적원칙성이 강하고 전개력이 있는 좋은 일군으로 알려져있다. 한고향사람들과 감옥시절의 동료들이 그를 보증하였다. 신원확인문건에는 보증자들의 이름과 현 직장직위는 물론 지장들이 있음.…

이런 내용의 서류를 읽고나서 오학성은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신원확인문건들은 나도 보았소. 은영동무, 사람을 헛갈린것 같소. 손끝이 잘리고 모지라졌다든가 담배재를 터는 습관이 어떻다든가 하는것만으로는 누굴 확인할수 없지 않소. 부탁하는데 너무 외곬으로만 생각하지 마오. 타격을 받은 후과로 신경과민이 되여 그럴수도 있다고 보지만 자칫하다가는 엄중한 후과가 초래된단 말이요. 이 신원확인내용을 동무가 퇴원한후에 알려줄수도 있었지만 속을 태우며 기다릴것 같아서 제창 찾아왔소. 그리 알고 병치료나 잘하시오.》

그때 어머니는 경련이 이는듯 두볼을 실룩이고있었다. 타는듯 한 눈빛으로 이윽토록 부총장을 마주보더니 아예 눈을 감고 말았다.

《무서운 일이구나!…》

눈을 감고 모지름을 쓰며 한 말이였다.

오학성이란 사람이 또 뭐라고 길게 말했으나 아무 대답없이 돌아누워버렸다.

그때 어머니는 라윤천이라는자의 뒤에 힘있는 비호자들이 있다는것을 통감하고 치미는 분노와 고통에 모지름쓰고있었을것이다.

돌아갈 때가 되여 부총장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어머니도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러나 잘 가라는 인사말이 아니라 마음속 아픔과 련민이 슴배여나오는 목소리로 이렇게 절절하게 말했다.

《오동지, 부탁하는데 제발 눈을 뜨세요. 그러지 않다간 구렁텅이에 빠져 헤여나지 못합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오학성의 구붓한 눈섭이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누굴 위협하는거요?》

어머니는 잠시 눈길을 떨구었다가 결연히 그를 마주보았다. 아련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그처럼 변모되는것을 현순은 그때 처음 보았다.

《그럼 말하지요. 생각하는대로 다!…》 어머니의 눈길은 여전히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고있었다. 《우린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인데 뭘 숨박곡질을 하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 동문 눈이 멀어있어요. 왜 그렇게 됐는지 아세요?

사람들을 믿지 않기때문이죠. 그러니 가까운 동무도 하나 없구… 물론 동문 언제나 자기가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아니예요. 동무야말로 모든 일에 해가 되는 사람이예요. 그래요. 해를 주고있어요. 언제 보나 사람들을 홍달구고 불안하게 하고 가슴을 허비고… 가만계셔요. 마저 들어주세요.

동무한텐 인정이 없어요. 사랑이 없어요. 사실이 아닌가요? 누구도 사랑하지 않지요. 오직 출세만을 생각하면서…》

오학성은 비칠거렸다. 가늘고 하얀 손가락으로 꽃병이 놓인 원탁모서리를 박박 긁어대였다. 창백해진 두볼과 귀방울이 떨고 원탁우의 꽃병도 부르르 떨었다.

《동무가》하고 마침내 그는 악문 이새로 내뱉았다. 《환자만 아니라면… 가만두지 않았을거요.》

《알아두세요.》 어머니는 오히려 더 침착해진듯 했다. 《환자는 내가 아니라 바로 동무예요. 사람들을 괴롭히기 좋아하는 학대병환자!…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세요. 눈을 뜨세요!》

오학성은, 어린 현순의 눈으로 보기에도 지팡막대기같이 꼿꼿하고 메마른 그 사람은 눈의 흰자위를 번뜩일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끝내는 숨결도 가쁘게 헐떡이더니 급기야 반쯤 열려진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어머니가 그를 다시 만난것은 그로부터 6년세월이 흘러간 뒤 순회공연을 다니던 어느 산간역에서였다고 한다. 라윤천(한경세)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와 결탁한자들이 오라를 지고 끌려간 다음 그 역시 어느 산간역의 선로반원으로 내려갔던것이다.

누빈 솜옷을 입고 괭이를 메고 가던 사람이 어머니의 소편대일행과 마주치자 별안간 얼어붙고말았다. 어깨우에 메고있던 괭이가 떨어져내린것은 다음순간의 일이였다. 누구도 그가 전날의 엄격하던 부총장이라는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은영동무!》하고 목쉰 소리로 부르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앞을 지나쳐버렸으리라고 한다. 어머니가 먼저 걸음을 멈추고 그를 여겨보았다. 어마지두 놀라며 《아니, 이게 누구세요?》하고 부르짖었다. 그처럼 그는 몰라보게 변해있었다. 전날 사람들과 인생을 지휘하고자 하던 사람이 코물이 흐르는 수염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어벙벙해서 마주보고있었던것이다.

그날 어머니일행은 그를 끌고 역전식당에 들어가 길지 않은 시간을 보냈는데 술잔을 기울이고있는 오학성의 눈에서는 후회의 눈물이 찔끔거리고 비틀린 입에서는 줄곧 가슴아픈 추억과 분개의 넉두리가 도랑물처럼 쏟아져나왔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를 회상할 때마다 재능이 없는 예술가, 예술가 아닌 예술가의 허울을 쓴 사람들이 가끔 예술계에 발을 들여놓고 재능있는 사람들을 질시하고 짓밟으며 권력을 배경으로 출세의 길만을 모색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는데 대하여 쓸쓸하게 말하군 했다.

《오학성이란 그 사람도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던거야. 아니, 너무도 자기를 몰랐다고 할가.… 차라리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았더라면 어떠했을지… 바다에선, 배사람들속에선 그런 막대기같은 초당분자들이 견뎌배기지 못할테니까.》

이렇게 어머니는 언제든 바다를 희망과 동경의 대상으로 여겼다. 한생토록 어머니는 바다를 사랑하였다. 바로 현순이 자기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 바다에 대한 동경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하여 어머니는 넓고넓은 바다, 지칠줄 모르며 설레이는 바다의 거센 풍랑과 그 장려한 음악을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소편대가 오호쯔크해에까지 이르는 먼바다어로선단에 찾아갈 때에는 그 누구보다도 선참으로 나서군 했었다.

어머니가 수도의 극장무대를 내려 전국각지의 공장과 농어촌, 탄광과 광산, 림산마을들을 순회하는 소편대에 돌려진것은 라윤천의 정체가 적발되기 이전에 있은 일이였다. 국립교향악단의 독창가수로서 고종우와 새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오명운, 손기원 그리고 이름난 바이올린연주가 백호산 등이 편대를 무어 아직 텔레비죤도 도입되지 않았고 예술선전대활동도 시작되기 이전의 전국각지를 돌고 또 돌았다. 봄철에 공연을 떠나면 겨울이 되여서야 돌아오는 일이 뜨문하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인차 자기의 무대로 돌아갔지만 어머니만은 여전히 순회공연편대를 지켰다. 끊임없이 기차로, 자동차로, 어선을 타고 조국의 동서와 남북을 가로지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리하여 현순은 어릴 때부터 대학을 나올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있는 밤이 거의나 없었다. 마침내 라윤천의 정체가 밝혀졌지만 이미 어머니는 자기의 화려한 전성기를 벗어나고있었다. 그리고 이전에 다친 다리의 상처가 자주 도져 더는 나비같은 모습으로 무대에 나서기도 어려웠다.

어머니는 자기의 동료들은 물론 어제날의 제자들에게 명예칭호를 수여하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도 순회공연길에서 듣는 때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현순은 한정애가 인민배우칭호를 수여받던 그날에 있은 일을 잊을수 없다. 그무렵 나이 50을 퍼그나 넘긴 어머니는 마침내 무대를 내려 성악강사로 돌아앉았다. 가수로서의 쟁쟁한 시절은 추억으로만 남고 귀밑머리 희슥해진지도 오랬다. 건강도 좋지 못했다.

그날 현순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한정애에게 인민배우칭호가 수여된 소식을 알게 되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현순의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자연히 어머니의 한생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이 소식을 어떻게 대할가 하는 생각에 걸음이 떠지고있었다. 아마도 어머니는 자기의 제자가 인민배우칭호를 수여받은데 대하여 기뻐하는 동시에 자신의 처지를 두고 괴로와할것이다. 그것은 틀림없다.

불쌍한 어머니, 어머니는 영광의 절정에서 갑자기 소리없이 사라져버렸다.

일생 애틋한 사랑도 모르고 오로지 예술만을 추구해왔지만 그 모든 피나는 노력도 허사로 되고말았다. 남은것은 무엇인가? 이 딸자식을 제외한다면 진정 무엇이 남았단 말인가?… 불쌍한 어머니, 련민의 정 없이는 차마 마주볼수 없는 어머니였다. 하기에 현순은 한정애의 소식을 어머니가 몰랐으면 하고 바랐다. 다시는 어머니의 가슴이 아픔에 찢기지 않기를 바랐다.

현순은 집으로 걸어서 갔다. 걷고걸으며 불행한 어머니를 두고 가슴을 졸이였다.

별안간 눈앞에서 멎은 뻐스를 보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 뻐스에서 춤추듯 뛰여내리는 한정애의 모습에 명치끝이 쿡 쑤시는것을 느꼈다. 왜 여기서 내리는걸가. 혹시 우리 집으로, 어머니를 찾아서 오는것이 아닐가?…

한정애도 현순이를 알아보았다. 반갑게 달려오며 손을 내젓는것이였다.

《현순이! 마침 만났구만. 어머니 집에 계실테지?》

《예.》 현순은 떠듬거렸다. 《아마… 있을거예요. 아니, 모르겠어요. 요즘일이 바빠서…》

한정애는, 자기의 기쁨에 취한 녀가수는 깔깔 웃었다.

《모란봉예술단에 전활 걸었댔어. 오늘은 토요일이여서 제시간에 퇴근했다고 하더구만.》

《예, 그래요?》

하는수없이 현순은 그가 팔을 끼고 잡아끄는대로 움직이지 않을수 없었다.

숨쉬기가 편치 않았다. 그를 축하해주어야 한다는것도 잊고있었다.

《오늘말이지. 현순이 어머니를 만나보지 않으면 안될 그런 일이 있었어. 어머니를 만나 인사를 해야 할 일이.》

《예- 알고있어요.》

《현순이도 알고있어?》

《그럼요. 축하해요.》

《고마워. 정말 고마워.》

한정애는 여전히 현순이를 끼고 예술인아빠트로 꺾어들었다. 걸음도 빨랐다.

세찬 격동에 쿵쿵 뛰는 심장의 박동도 격렬했다. 그것이 현순이를 더더욱 참을수 없게 했다. 어느덧 현관앞에까지 이르렀다.

《저…》 현순이 먼저 걸음을 멈추었다. 《미안하지만 오늘 어머니는 몹시 건강이 나쁘신데…》

《어머니가? 김선생이 앓는다고?…》

《아니, 그런게 아니라…》 현순은 입술을 깨물고나서 힘겹게 말을 이었다.

《부탁해요. 선생님, 제발 우리 어머닐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불쌍한 우리 어머니를 생각해서… 제발 오늘만이라도 그냥 돌아가주셔요.》

《?!…》

비로소 한정애는 현순이의 괴로와하는 표정에서 모든것을 다 읽은듯 했다.

머리를 세게 흔들고 한발자국 물러서기까지 했다.

《내가 잘못 생각했는가?》마침내 그는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난 김선생이… 제자들이 잘되면 제일로 기뻐하는것만 보았더랬는데… 그래서 더더욱 존경해왔기에 아무 생각없이 달려왔는데…》

《아니, 우리 어머니도 녀성이예요. 눈물도 있고 마음도 여린 녀성이란 말이예요. 이 딸이 그걸 모르겠어요? 물론 한선생을 만나면 기뻐서 부둥켜안고…무슨 축하의 말도 하시겠죠.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러는 어머니마음이 얼마나 괴롭겠는지 생각해보셨어요? 아무런 명예칭호도 없이 인제는 무대에서까지 밀려난 어머니의 마음이 어떻겠는지 생각해보셨는가 말이예요. 어머니의 마음속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딸로서,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눈물을 너무도 잘 아는 나로서는 이렇게 부탁하는수밖에 없어요. 한선생님, 돌아가주세요. 어머니가 스스로 소식을 듣고 축하를 해줄 때까지 그때까지만 참아주세요. 예? 그렇게 하죠?!》

《알겠어.》한정애가 이상해진 목소리로 속삭이였다. 《그렇게 하지. 알겠어.》

현순은 그가 돌아가는것을 보지 않았다. 발자국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한자리에 얼어붙은듯 서있었다. 현관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머리를 기웃거리는것도,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것도 알지 못했다. 옆집의 쌍까풀눈을 가진 소녀가 엄마손에 끌려가며 《어디 아프나요?》하고 물었을 때에야 펀뜻 눈길을 들며 가까스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가 급히 나왔다.

《난 또 정애가 오나 했구나.》

《?!…》

현순의 놀라는 표정에 어머니는 소리없이 웃었다.

《넌 소식을 못들었니? 정애가 인민배우칭호를 받았구나. 정말 기특하지. 이악쟁이 그 애가 인젠 큰사람이 되였거든!》

현순은 까딱하지 않고 어머니를 지켜보고있었다.

《너 왜 그러니?》

《어머니.》 현순은 젖어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기쁘세요?》

《그건 무슨 소리냐?…》

《어머니, 난 그를 돌려보냈어요. 이자 방금 저아래에서…》

《뭐?…》

《그럴수밖에 없었어요. 난 그가… 어머니를 더 아프게 할가봐 할수없이… 말해줬어요. 제발 돌아가달라구요.》

《어쩌문, 네가 어쩌문?!…》

어머니는 비틀거렸다. 가슴을 움켜쥐며 벽쪽으로 돌아서는데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한손을 내젓고있었다.

《어머니!》

현순이가 붙들자 어머니는 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그 눈빛이 싸늘했다. 마치 전혀 낯모를 녀자를 바라보듯이 보고있었다. 차고 공허한 그 눈빛에 현순은 가슴이 조여드는것을 느꼈다.

《엄마, 왜 그래요. 예? 내가 어쨌다구… 엄마를 생각해서 그랬는데…》

《뭐 엄마를 생각해서?》

어머니의 손이 번쩍했다. 분노에 질려 철썩! 딸의 뺨을 후려쳤다. 순간 현순은 난생처음 겪는 일에 고드름처럼 얼어붙고말았다.

《엄마?!…》

《넌 이 에미를 모욕하구있다.》어머니의 목소리는 이전처럼 맑고 부드럽지 않았다. 아니 싸늘하였다. 《넌 나를 모욕하구있어. 네가 이렇게까지 유치하구 졸렬한줄 미처 몰랐구나. 늘 이 에미를 불쌍한 녀자라고 생각하는줄은 짐작했다만 그렇게까지 가엾게 보는줄은 몰랐어. 버림받은 녀자처럼 보는줄은!…》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아니다. 이 에민 불쌍한 녀자가 아니야. 버림받은 녀자가 아니란 말이야. 너는 잘못 생각하구있어.》

비로소 현순은 자기를 되찾았다. 인제는 말할 때가 온것 같았다. 몸부림쳐 울며 소리쳐 말하고싶었다.

《그럼 어머니의 눈물은 뭐나요. 이 딸이 어머니가 남몰래 울고있는것도 모르는줄 아세요? 그걸 볼 때마다 이 딸의 마음이 얼마나 쓰린지 아세요? 그럼 말해보세요, 어머니. 말이 난김에 속시원히 말해주어요. 어머닌 자기 처지때문에 괴로와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밤마다 소리없이 울고있지 않았나요? 왜 그걸 숨기려 하세요. 친딸에게까지 숨겨야 할 리유가 뭐나 말예요. 예?!…》

어머니는 천천히 허리를 꺾었다. 그렇듯 쇠약해진 어머니를 현순은 지금까지 본 일이 없었다. 장판바닥에 쪼그리고 앉더니 어머니는 손으로 눈굽을 문질렀다.

《왜 눈물이 없겠니. 있다. 눈물도 있구 아픔도 있구… 그렇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때문만은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것처럼 그렇게 가련하구 불쌍한 에미가 아니야. 너도 그걸 알 때가 있다. 다만… 너한테 하고싶은 말은 이 에미에게도 긍지가 있구 자랑이 있다는거다. 난 지난 과거를 불행한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행복이 더 많았어. 너의 눈에는 이 에미가 한평생 사랑도 모르고 살아온 불쌍하기 그지없는 녀자로 보이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걸 알 때가 온다. 더 큰 사랑을 나는 알고있다. 이 세상 제일 큰 사랑을!…》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그저 단순한 말이 아니라 눈물로 속삭인 노래와도 같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있은 일을 상기할 때마다 현순은 가슴이 저려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것은 그저 아픔만이 아니였다. 그날 어머니는 처음으로 현순이를 딸로서만 아니라 한 녀성으로 대하고 같은 녀성으로서 마음속 진정을 터놓았던것이다. 어머니의 그 말속엔 많은 의미가 들어있었고 아직도 현순이 다 알지 못하는 사연이 들어있었다.…

이렇게 현순은 눈을 감고, 눈물을 머금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나 따르릉거리는 자명종소리가 그를 눈뜨게 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는데 습관된 남편 로한식이 소리치고있다.

《이건 뭐요. 7시가 지났는데!》

현순은 재빨리 눈굽을 닦고 웃어보였다.

《오늘이야 일요일 안예요.》

《일요일이 뭐요. 난 오늘 인민대학습당에 나가 초청강의에 출연해야 한단 말이요.》

《일없어요, 박사선생님. 인민대학습당은 9시가 되여야 문을 연답니다.》

《그래도 미리 강의준비를 해놔야 할게 아니요!》

《준비하세요. 그러느라면 아침식사가 다 되니까요.》

그때 맞은편 방문이 열리며 아들 혁철이 볼부은 소리를 내질렀다.

《난 오늘 학부별 롱구경기에 나가야 해요!》

《그래서?》

《야- 어머니, 그래서라니요?… 뭘 좀 특별히 싸가지구 나가야 할게 아니예요!》

이번에도 현순은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니 혁철이가 롱구에서 지구 이기구 하는게 어머니한테 달렸구나!》

남편도 덩달아 소리쳤다.

《나도 롱질할새가 없소! 정말 바쁘단 말이요!》

《아이참!》

하는수없이 따스한 이불속에서 기지개도 켤새가 없이 기여나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이하랴. 사실 직장일과 가정일에 부대끼는 녀성들은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맘편히 바쁘게 돌아치지 않고 잠자리에서 궁싯거리며 늦잡는것이 하나의 락이기도 하건만 이 집 식구들은 그런것도 알아주려 하지 않는다.

서둘러야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사실 제일 바쁜 사람은 어머니였다. 일요일이건만 평양화력발전련합기업소 로동자들을 위한 로병예술선전대공연이 계획되여있었던것이다. 서둘러 차비하는 어머니를 보고 현순이가 물어서야 그는 말했다.

《발전소로동자들은 일요일도 없이 전투를 벌리는구나. 그래서 우리도 나가 고무해주기로 했다.》

남편은 혀를 찼지만 현순이는 어머니를 도와 차비해주고 궤도정류소까지 모셔가기로 했다. 인제는 어머니가 지팽이 없이는 제대로 걷기 힘들어하기때문이였다.

 

그들은 팔을 끼고 다정히 걸었다. 태양이 솟아올라 따스한 볕으로 고층건물들이 들어찬 거리를 비치고있었다.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가지들마다 밤색의 싹들이 봉긋봉긋 부풀었고 꽃밭들에는 비닐을 씌운 꽃들이 이슬에 젖어있었다. 경사스러운 태양절 4월 15일에 활짝 피여날 꽃나무들이였다.

얼마간 말없이 걷다가 문득 생각난듯이 현순이 말했다.

《어머니, 이번 4월의 봄축전에 고진아란 녀자도 온다는 말이 있어요.》

《뭐?…》어머니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하니?》

《아직 확실한건 아니예요. 제가 좀 더 알아보겠어요.》

《그래?… 오면 얼마나 반가울가!》

《?!…》

현순은 다시 어머니의 팔을 끼며 걸음을 옮겼다. 정말 그렇게 반가울가. 어머닌 무엇때문에 그처럼 고진아란 녀성의 일로 마음쓰는것일가?… 그것을 알고싶었다. 박수미라는 녀자는 어머니를 무섭게 증오하고 저주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난 그 애가》하고 어머니가 말하였다. 《제 어머니 박수미처럼 될가봐 그게 걱정이구나. 불쌍한 수미처럼.》

《어머니, 박수미란 녀자야 일생 어머니를 괴롭혀오지 않았어요. 그런 녀자인데도 불쌍하다니…》

《아니, 불쌍해. 예술이 몸에 배여있는 녀자인데… 불행하겐 됐어. 한때 자기가 택한 길에서 탈선되지만 않았어두 참!…》

그리하여 그들은 또다시 수미를 화제에 올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은영이 수미에 대한 소식을 들은것은 1970년대초의 어느날이였다. 순회공연도중 영화촬영을 위해 백무고원에 나와있던 박진을 만났다. 은영은 성악계에서, 박진은 영화계에서 활동하고있었으므로 그들은 자주 만날 기회가 얼마 없었다.

반가운 상봉끝에 문득 생각난듯이 박진은 말하였다.

《참 내가 듣건대 은영동무랑 고종우동무가 박수미라는 녀자때문에 의심을 받았다는데 사실이요?》

그에게서 수미의 이름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므로 은영은 잠시 대답을 못하고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내 수미에 대해 쓴 글을 보았소.》박진이 하는 말이였다.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더구만.》

《수미에 대한 글을요?》

《아, 그건 남조선출판물에 난거요. 남조선의 현실을 취급하는 영화를 만들면서 두루 훑어보댔는데 아 글쎄 <녀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수미의 운명을 취급한 글이 나있는게 아니겠소.》

《그래서요, 그래 수미가 어떻게 됐어요?》

《수미가 흥행단을 따라다니던 시절부터 나있더구만. 막간가수로부터 이후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리철사장의 <오케>레코드사에서 있었던 련애담이며 해방후 김해송이나 리란영과 같이 우익예술단체에 속했다가 좌익으로 탈바꿈한 얘기랑 또 북행길에서 도망치던 일도 자세히 썼더라니까!… 고종우동무나 은영동무, 강상일의 이름도 나오구. 하- 글쎄 내 이름도 몇군데 있더구만. 이 박진이 백영준동무와 같이 박수미를 강제로 끌어가려구 했다나. 서울대학교 교수라는 그 필자가 아주 그럴듯하게 꾸몄더라니까!》

그후 수미는 적들의 리용물이 되여 전쟁시기 북으로 들어간 동료배우들을 목표로 대북방송에 열을 올렸었다. 그것은 이미 은영이도 알고있고 그때문에 적지 않은 피해도 입었던것이다. 격한 성격인 강상일도 가슴아픈 곡절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런데 문제는 박수미가 그처럼 앙앙불락했어도 평생 바라던 사랑과 예술의 성공은 차례지지 않았다는 그것이였다. 북행길에서 남으로 도주한 후 영화감독 조용수와 결혼했으나 곧 그의 버림을 받았다. 후에는 남편 조용수의 조카인 젊은 영화배우 리민우와 치정관계를 계속하며 세태영화들에도 많이 출연했지만 탕녀적인 생활과 아편중독으로 몸을 망치게 되자 1968년 어느날 비관끝에 스스로 독약을 먹고 자살했던것이다.

다음날 신문에는 《왕년의 다재다능한 인기배우 박수미(52)씨가 서울시 중구 회현동2가 26자택에서 오랜 신병끝에 신경쇠약으로 사망.》라고 발표했으나 책의 필자는 이웃사람들과의 담화를 통해 그녀의 머리맡에 양재물이 담긴 병과 아편주사암풀이 딩굴고있었던것으로 미루어 자살로 확인할수 있었노라고 썼다.

그 몇해전엔 《목포의 눈물》로 일약 인기가수로 등장하여 파란많은 예술계를 풍미하던 리란영이 꼭같은 방법으로 자살하였다. 리란영의 전철을 밟은 박수미,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것은 무엇이였을가. 눈물의 회한이였을가, 아니면 진정한 사랑과 희망의 길을 버리고 도주한 자신에 대한 비탄과 저주였을가?…

은영은 가늘게 한숨을 내그으며 말하였다.

《그가 뭣때문에 있지도 않은 일은 가지고 악담을 퍼부었는지 알게 되는것 같군요. 그는 자기처럼 우리도 비참해졌으면 하고 바랐던거예요. 무서운 시기심과 절망에 빠진 녀자의 마지막몸부림이였죠.》

박진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두 제도, 두 인생!… 얼마나 대조적이요!》

박진은 그 이상 더 말을 잇지 않았다.

현순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궤도전차정류소엔 일요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만경대유희장으로 가는 학생들까지 줄을 지어 서있었다.

《어머니.》 현순이 나직이 물었다. 《이제 고진아란 녀자가 오면 어머닌 어떻게 하시겠어요?》

《어떻게 하다니?》 어머니는 놀라와했다. 《친딸처럼 맞아주지.》

《그렇지만 그 녀자가 저 고종우아저씨의…》

현순이는 그 녀자가 고종우의 친딸이라는 증거는 없지 않는가고 말하려 했었다. 그러나 어쩐지 거북스러워 입을 다물고말았다. 마침 어머니가 현순이 못다한 말뜻을 알아차린듯 조용히 미소를 그렸다.

《그게 무슨 상관이겠니. 우리 장군님께서 북과 남, 온 나라 인민을 한품에 안아주시는데!… 생각해보렴. 사사로운 감정을 끼워서야 어떻게 가슴을 헤쳐놓구 큰일을 론하겠니. 우리 장군님께선 한때 민족앞에 죄를 지은 사람들까지 늦게나마 나라와 겨레를 위한 길에 돌아선다면 허물없이 안아주시는데 그 크나큰 뜻을 잊지 말아야지.》

《참!》현순은 경탄이 어린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언제 보나 어머닌 꼭 천사같애요.》

《원, 무슨 소릴…》

《정말이야. 엄마!》

《넌 언제 보나 애기같구나!》

모녀는 사람들이 쳐다보는것도 꺼리지 않고 소리높이 웃어대였다. 때마침 앞에 와 멎어선 궤도전차의 문짝들이 활짝 열렸다. 사람들이 쏟아져내리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또 련이어 오르기 시작했다. 현순이는 한순간 결심하고 어머니와 같이 전차에 올랐다. 오늘은 어머니와 전투현장까지 함께 가려는것이였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