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때 현순이는 7살이였다. 전후복구건설이 한창이여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폭탄구뎅이를 메우고 재더미를 헤치며 벽돌을 파내는가 하면 측량기를 메고 뛰여다녔다. 현순은 어머니를 따라 자동차들이 부릉거리는 건설장을 에돌아 모란봉으로, 또 거기에서 한창 공사가 벌어지는 건물(모란봉극장)을 돌아 어떤 굴간으로 들어갔다. 그곳이 바로 전쟁 전기간 갖가지 행사와 공연이 벌어진 모란봉지하극장이였다는것을 후에야 알았다.

어둑스레한 계단을 끝없이 내려가던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동굴벽은 물기가 흘러내려 질벅거렸고 걸음마다 발자국소리가 메아리처럼 웅글게 쿵쿵 울렸다. 한사람이 어린 현순을 업어주었다.

《여기가 바로 네 어머니 궁전이다.》하고 그 사람이 말했다. 《이제 룡궁보다 더 희한한 궁전이 나타난다!》

궁전이요, 룡궁이요 하는 말들은 알수 없었지만 계단을 다 내려가니 드넓은 극장이 눈앞에 열려졌다. 꼭같은 모양의 나무걸상들이 빼곡 들어차있고 무대에는 갖가지 색갈의 전등불이 현란했다. 무대에 서있던 사람들이 현순을 반겨맞았다.

국립예술극장의 소개지였던 대동군 소룡리에서 먼저 나와있던 중앙대의 사람들, 현순이와 안면이 있는 배우들은 볼을 두드려주거나 익살을 부려 악수를 청했고 전후에야 신의주에서 나온 배우들은 김은영에게 이처럼 큰 딸이 있다는데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김동무에게 이렇게 큰 딸이 있었소?》

《얘가 몇살이예요? 꽤나 여무지게 생겼군요!》

《배우가 될거야. 눈알이 반짝반짝하는걸 보지?!》

《은영동무, 우리 아들과 혼사를 정합시다. 예?》

어머니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누군가 혀를 차며 《어이구, 난 김동무가 아직 처년줄 알구 오늘중으로 청혼하려 했더니만!》하고 너스레를 떨 때에도 눈웃음으로 대답할뿐이였다.

어린 현순의 눈으로 보기에도 어머니는 눈에 띄게 단아하고 예뻤다. 하얀 살결은 티 한점 없는 조약돌같이 말쑥하였고 검푸른 빛으로 내다보는 두눈에서는 그윽한 미소가 불을 켜고있었다. 현순은 이날까지 할머니와만 살다보니 어머니를 자주 만나보지 못하였다. 이것도 후에 안 일이지만 베를린축전과 동유럽나라들에 대한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로 전선위문공연에 나갔고 이듬해에는 또 쏘련과 몽골에 갔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함께 살자고 어머니는 말하였다. 남들처럼 국립예술극장자리의 골조만 남은 페허에 움막을 짓고 극장에 다니자는것이였다. 그리하여 현순은 대동군의 초가집에서 나와 처음 극장에 발을 들여놓게 된것이였다.

그날 현순은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도 처음 들었다. 극장안을 꽉 채운 수많은 사람들이 손바닥이 터질 지경으로 박수를 치고 《재청이요!- 재청!-》하고 우뢰같은 함성을 터칠 때에는 너무도 벅차 가슴이 활랑거렸다. 그러면 어머니는 다시 무대에 나와 노래를 불렀다. 그처럼 맑고 아릿다운 용모에 그리도 고운 목소리로 정답게, 챙챙하게 노래를 부를 때 현순은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에 대한 자랑으로 가슴이 뻐근해져서 《우리 어머니야!》하고 소리치고싶은것을 억제할수 없었다.

공연이 끝난 다음 무대우에서는 8쌍의 결혼식이 있게 된다고 했다. 그 말에 어린 현순이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구경온 사람들은 다 빠졌는데 무슨 결혼식을 무대우에서 한다는걸가?… 그가 묻는 말에 사람들은 웃어댔다.

《너 잔치하는거 봤니?… 이제 잘 봐두어라. 이담 네 결혼식두 무대우에서 하자꾸나.》

현순은 그런 롱질에 질색이였다. 마침 자기를 유심히 지켜보고있는 고종우에게 달려가 어머니가 왜 보이지 않는가고 물었다.

《이제 온다.》 고종우가 말했다. 《저기서 정애아지미하구 무슨 얘길 하구있어.》

무엇때문인지 그의 얼굴은 침통했다. 시꺼먼 눈섭이 아래로 처지고 이마우를 엇비슴이 파고 지나간 주름살이 꿈틀거렸다.

《가지 말아, 얘.》

그가 잡아끌었지만 현순은 한사코 어둑스레한 환등막뒤쪽으로 다가갔다. 한순간 걸음을 멈추고 눈귀를 가늘게 쪼프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쪽에서 억눌린 울음소리가 들려왔던것이다.

《언니, 제발 날 용서해줘요. 언니에게 죄되는것만 같아서… 여태 말하지 못했어요.》

흐느껴 울고있는 한정애의 목소리였다.

《난 알구있었어.》

어머니의 목소리도 웬일인지 갈린듯 했다.

《알고있었어요?》

《그래, 주인걸동무와 사랑한다는걸, 사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눈이 벌써 다 말해주는 법이지.》

《언니! 그러면서도 모르는척 하고있었군요. 그러자니, 그러자니 내가 막 미웠지요?… 언니, 언닌 나에게 친어머니와 다름없는데 제발 솔직히 말해주세요. 언니도 아직 홀로 살고있으니… 얼마나 가슴이 쓰렸겠어요. 게다가 내가 차한동무를 배반했다구… 욕많이 했겠지요. 예?》

《아니,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난 그렇게 생각지 않았어. 사실 우리 차한일 기다린다는건… 북과 남이 갈라져있고 죽었다고 알려져있는 차한일 한정없이 기다리다니, 그럴순 없어. 다만 난… 정애가 차한이를 언제든 잊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뿐이야. 잊지 않는다는게 뭐겠니. 나도 오늘까지 한시도 잊지 않고사는 사람이 있다만 그건 그들의 뜻을 버리지 않는게 아닐가? 그들의 뜻대로, 그들처럼 사는것이 바로 그들을 잊지 않는것이라고 난 생각해왔어.》

《언니, 언닌 정말!…》

《사실 트롬본수인 주인걸동무도 얼마나 좋은 사람이니. 익살군이구 정열가인데다가 마음씨도 곱구… 난 정애가 그와 행복하길 바랄뿐이야.》

《언니!…》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있는것 같았다. 나어린 현순이여서 그들이 무엇때문에 울며불며하는지 다는 알수 없었지만 웬일인지 마음이 쓸쓸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특히 한정애가 《언니도 아직 홀로 살고있는데…》라고 한 말이 가슴에 옹이처럼 박혀있었다.

그때 누구인가 무대에 다 모이라고 소리쳤다. 어머니와 한정애도 환등막뒤에서 나왔다. 어머니는 우두커니 서있는 현순이를 발견하고 잠시 주춤했으나 곧 웃음을 띄우며 물었다.

《넌 왜 울상이 됐니?》

《아니야.》

《아니라는건?》

《난 울지 않아.》

그때 무엇때문에 어머니한테 골을 냈던지?… 처음으로 불쌍하게 여겨졌기때문인지, 아니면 또…

전체 배우들이 무대에 나와 섰다. 어머니를 따라 현순이도 그들속에 끼워 괜히 벙글거리는 남자들과 수집음을 머금고 눈길을 깔고있는 녀자들을 마뜩지않게 둘러보았다.

《동무들.》 누군가 앞에 나서서 헛기침소리를 내더니 청을 높여 말했다.

《오늘 우리는 전쟁의 포화속에서 그리고 전후복구건설의 전투장에서 정을 나누고 언약을 맺은 8쌍의 청춘남녀들의 결혼식을 가지게 됩니다. 전쟁때에는 생각도 못했고 전후에 와서도 오늘까지 움막집조차 마련할수 없어 미루어오던 혼사를 한꺼번에 치르게 됩니다. 지금 많은 동무들에겐 부모친척도 없고 례장이나 결혼선물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동지들의 뜨거운 사랑이 있고 우리의 무대가 있지 않습니까!… 이 무대에서 동지들의 축복속에 식을 합시다. 그럼 먼저 8쌍의 신랑신부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름을 부르는 차례로 신랑신부들이 나가 섰다. 떠들썩한 웃음속에 서로 짝을 맞추어 나가설 때마다 축하의 꽃다발이 안겨지군 했다. 그들중엔 한정애와 트롬본수 주인걸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속에 어머니만은 없었다. 아직 결혼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는 알수 없었지만 현순은 그것이 불만스러웠다. 바로 이 무대에서 남들보다 더 많은 꽃다발을 받던 어머니가 지금은 한정애와 주인걸에게 아까 자기가 받았던 꽃다발을 안겨주며 무어라고 속삭이는것을 커다란 슬픔속에 바라보고있었다.

축하의 인사말들이 잇달았다. 기악조가 환영곡을 연주하고 요란한 박수가 계속되였다. 신랑신부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자기 자리로 돌아온 어머니가 현순이의 손을 꼭 잡았다.

《현순아, 어때, 다들 곱지?》

《?…》

현순은 머리를 젖히고 어머니를 말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머니는 즐거운듯 웃고있었지만 입에서는 흐느낌소리같은것이 새여나오군 하였다. 분명 어머니는 괴로와 하고있었다. 알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어머니의 마음을 비틀어짜고있었다. 조명등빛에 번뜩인것은 또 무엇이였던가?…

술잔이 돌아갈 때엔 남들처럼 단숨에 잔을 비우기까지 하였다. 그리고는 소리내여 웃었다.

《춤을 추자요!》

이렇게 먼저 소리친것도 어머니였다. 현순이는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가 춤을 추는것을 보았다.

흥겨운 반주에 맞추어 노들강변의 춤가락으로부터 다쁘춤으로까지 넘어갔다. 사람들이 환성을 지르며 야단이였다. 무용수들도 혀를 빼물었다.

현순은 한정애가 남몰래 쥐여준 닭알도 먹을념을 못했다. 장난꾸러기 주인걸아저씨가 술잔을 입에 물렸을 때에도 정신없이 한모금 들이켰다가 왁-하고 내불었다. 강굴머리를 길게 기른 한 멋쟁이가 현순이의 얼굴에 술내를 확 풍기며 고아댄것은 바로 그때였다.

《얘, 넌 아버지가 없지? 내가 아버지가 되여줄가… 엄마한테 말해봐. 나랑같이 살자구 말야.》

《?…》

현순은 그 사람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사실 현순은 어릴 때부터 그저 온순한 애가 아니였다. 감때사나운 아버지의 걸쭉한 피가 그의 몸에서도 맹렬히 뛰고있어 독이 오르면 무섭게 변모되군 했다. 더우기 아버지가 없다고 하는 소리는 그에게 가장 참을수 없는 모욕이였다.

《자, 어서 대답해 봐, 잉?》

강굴머리가 손으로 현순의 턱을 쳐들었다.

《싫어요!》

현순은 그 사람을 뿌리치고 멀찍이 물러났다. 그러자 그는 으하하… 하고 웃어대며 또 야질거렸다.

《왜 싫다는거야. 아버지가 되여주겠다는데!》

더는 참을수 없었던 현순은 그 사나이의 면상에 손에 들고있던 닭알을 쥐여뿌렸다. 눈두덩이에서 닭알이 박산나며 그의 얼굴을 누렇게 매닥질했다. 뜻밖의 봉변을 당한 강굴머리가 눈을 흡뜨며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왁자하니 떠들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굳어졌다.

어머니가 달려온것은 그 순간이였다. 미끄러지듯 달려와서는 급기야 무릎을 꿇고 딸앞에 주저앉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현순의 머리를 쓸어보더니 두팔을 벌려 와락 끌어안았다.

《내가 잘못했다. 현순아…》 눈물의 속삭임이였다. 어머니는 소리없이 흐느끼고있었다. 《너를 버려두구 혼자서 좋아했구나. 내 다신 안그럴게. 응?…》

비록 현순이는 어머니가 좋아서 춤추며 돌아간것이 아니라는것을 알고있었지만 그때엔 모든것이 얄밉고 증이 났다. 하여 자기를 안고있는 어머니마저 사정없이 뿌리쳤다.

《싫어, 다 보기 싫어!》

《현순아, 너 왜 그러니 응?…》

《나한테두 아버지가 있어!》하고 현순은 급기야 째지는듯 한 소리로 부르짖었다. 《할머니가 말했어. 아버지를 찾아갈테야!》

현순은 몸을 홱 돌려 달아났다. 무대바닥에 주저앉아 울고있는 어머니조차 돌아보지 않았다. 어데로 가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그만 어두운 벽에 부딪쳤다. 무쇠방망이에 머리를 되게 얻어맞은것 같았다. 모진 아픔과 더불어 사무친 한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버지에 대하여 여적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고 지금까지 자기를 업신여기던 사람들모두가 증오스러웠다.

《현순아!-》

어머니가 부르짖고 몇사람이 달려왔다. 맘씨고운 고종우아저씨와 강굴머리 그리고 또 누군가가 뒤를 쫓아와 현순을 일으켰다.

《얘, 현순아. 우리가 잘못했다.》

현순은 발버둥쳤다.

《싫어, 싫어! 아버지한테 갈테야!》

고종우가 억센 힘으로 부둥켜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저씨도 울고있는것 같았다. 옆에 서있는 강굴머리에게 황소울음소리처럼 을러메고있었다.

《동문 언제 가야 그 버릇을 고치겠소! 그 실없는 소리때문에 이 어린것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나말이요. 그걸 이제 무슨 수로 어떻게 다 씻어줄수 있겠소. 응?… 이 애뿐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에 남긴 상처는 또 어떻게 하구?…》

《내가 잘못했수다. 그저 노느라구 한 노릇이…》

그때에야 비로소 현순은 흐느껴울기 시작했다. 자기를 대신하여 강굴머리를 홍달구는 고종우아저씨가 고마왔고 목놓아우는 어머니의 울음소리에 견딜수 없어 울었다. 그리고 아직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가 그리워 울었다.

그날밤 현순은 어머니와 같이 극장객석에서 군대모포 한장을 덮고 잤다. 그렇게 자는 사람들이 많았다. 결혼식을 한 8쌍의 남녀를 위해 합숙방들을 내준것이였다.

다음날 아침 8쌍의 남녀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또 떠들썩 했다. 어제밤 어떻게 잤는가고, 안고 잤는가, 안겨 잤는가 하고 지꿎게 따져묻고 녀자들은 부끄러워 달아나고 남자들은 게면쩍어 킁킁 코를 울리고 모두가 일시에 한바탕 웃어대고는 자동차에 올랐다. 미리 짜놓은 편대별로 중요단위 복구건설장들을 찾아 공연을 간다고 했다.

모두가 현순이도 데리고 가자고 우겼다. 지난밤 결혼식을 한 8쌍의 남녀들이 더 극성이였다. 아버지를 잃은 현순이에게 동정이 가고 괴악스러운 그 성미도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였다. 그리하여 현순은 자동차를 타고 황철까지, 거기서 기차를 타고 또 여러 탄전과 광산, 기관구를 돌며 보름이라는 나날을 무대감독의 조수로 보냈다.

그때부터 현순이는 음악에 눈뜨고 률동을 몸에 익혔다. 무대에서는 조감독이였고 생활에서는 편대에 하나밖에 없는 어린애였던 현순이를 저저마끔 끌고다니며 누구는 청음을, 누구는 화술을, 또 누구는 률동을 배워주었다.

그는 총명하고 청음이 밝았다. 7살까지는 절대음감을 가진다고 한다. 많은 고전음악가들이 7살전에 악기를 연주하고 작곡을 하였다며 기악연주가들은 이제 현순이도 빠가니니나 리스트 못지 않은 바이올린 혹은 피아노연주가 또는 유능한 작곡가로 될것이라고 예언했다.

지금도 현순이는 그때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쓰디쓴 미소를 떠올리군 한다.

원하기만 했더라면 피아니스트로 될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것이 달리되였다. 그는 비록 한생 음악을 사랑해왔고 청음과 시창은 물론 피아노연주에서 그 누구에게도 짝지지 않았지만 차츰 무용에 더 애착을 느꼈다. 그것은 현순이 음악무용대학에 입학할무렵 마침내 무대에서 버림받은 어머니의 암울한 처지가 음악에로의 길을 한사코 거부하게 하였던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먼후날에 가서야 알게 될 일이다.

먼저 어머니가 소환되였다. 평양에서 김은영을 급히 올려보내라는 련락이왔다. 어머니를 태우려 차가 온다고 한다. 현순은 그 차를 타고 자기도 가고싶었으나 사람들이 막았다.

《우리도 래일모레면 평양으로 돌아가게 돼. 그때 우리랑 같이 가자. 어머닌 행사공연때문에 먼저 불렀을거야.》

사람들이 나어린 《조감독》현순이를 한사코 붙들었다. 그러나 이틀후 평양으로 돌아가던 로상에서 뜻하지 않던 사고가 났다. 평양을 가까이 했을 때 자동차운전사가 졸다가 그만 차를 굴렸던것이다.

한밤중이였다. 가로수를 들이받은 차가 개굴창에 뒤집히고 적재함우에서 졸고있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고스란히 논판에 쏟아졌다. 갓 써레질을 한 논판에 구겨박힌 사람들이 신음하며 엉기엉기 기여나오는데 고종우가 부르짖었다.

《현순이가 어데 갔어, 응?! 현순이가 없소!-》

현순은 운전칸에 타고있었다. 운전사는 조향륜을 잡은채로 앞창유리에 이마를 쪼아 깨뜨렸는데 문짝이 열려지고 현순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현순은 자기가 언제 어떻게 뒤집히는 차에서 뿌리워나갔는지 알지 못했다. 무엇인가 어깨죽지를 세게 때리던것과 허궁 뿌려지며 옷을 찢고 옆구리가 째지는것 같던 지독한 아픔만이 기억에 남았다.

잠시 의식이 몽롱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이윽고 사람들이 벅작 떠들어대는 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지척에서, 발밑에서 현순을 찾고 부르는 웨침소리였다. 그러나 그는 대답할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목줄띠를 꽉 조여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그는 교수대에 매달린것처럼 발이 허궁 들려있는것을 알았다. 자동차가 들이받아 거의나 쓸어뜨린 가로수가지에 옷이 걸렸던것이다.

《여기 있어요!-》 마침내 그를 발견한 녀배우가 소리쳤다. 《여기, 여기 오세요!-》

현순은 땅에서 제 키보다도 높지 않은 나무가지에 매달려있었다. 누군가 달려와 그를 잡아내렸다.

《현순아, 일없니, 응? 살아있어?!》

고종우가 부르짖고있었다. 옷을 헤쳐보고 찢어진 옆구리에 손을 대더니 뜨끈한 피에 와뜰 놀라는것이 알렸다.

《아니, 이런!…》

사람들이 피에 젖은 그의 손을 보고 몸서리쳤다.

《뭘해요. 빨리 병원으로 가야죠!》

《차를 부르오!》

《이 밤중에 차가 어데 있어, 제-길! 내게 업혀주오!》

결국 현순을 업은것은 고종우였다. 내의를 찢어 대충 상처를 싸매고는 둘쳐 업고 뛰였다. 몇사람이 따라나섰다. 그때에야 비로소 현순은 옆구리에서 살을 우적우적 써는것 같은 아픔에 신음소리를 터쳤다.

《일없어, 조금만 참으면 돼.》 고종우가 헐떡거리며 말했다. 《상처가 심하지 않으니 다-다행이야.》

고종우의 잔등은 어느새 화락하니 젖어들었다. 얼마나 달렸는지… 마침 지나가는 차를 붙들었다. 건설용세멘트를 가득 퍼실은 차여서 운전칸엔 고종우와 현순이만이 오를수 있었다.

《걱정말구 돌아가오.》 고종우가 뒤따라온 사람들에게 말했다. 《병원에 가서 처치받고 인차 뒤따라 가겠소.》

얼마후 그들은 중화군병원에 들어갔다. 고종우가 어찌나 급한 소리를 쳤던지 직일의사와 간호원, 간병원들까지 눈을 비비며 달려나왔다.

찢어진 옆구리를 소독하고 꿰매는데 1시간나마 걸렸다. 그동안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를 삼키고있는 현순이를 보고 의사선생은 놀라움을 금치 못해 하였다.

《지독한 애로군요. 딸애가 참 용합니다.》

고종우를 아버지로 알고 하는 의사의 말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버지를 닮았지요.》

의사는 자기자신을 과찬하는것 같은 그 말에 눈을 쪼프리며 고종우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때 현순은 모진 아픔과 마취약, 극도의 피로에 지쳐 솔곳이 잠들고있었다.

이튿날 아침에야 현순은 고종우의 등에 업혀 병원문을 나섰다. 맑게 개인 날씨였다. 논벌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였다. 달구지가 덜컹거리며 지나가더니 멎어섰다.

《애가 상했수?》 채찍을 든 늙은이가 물었다. 《어디까지 가는지 애를 여기 태우구려.》

《아니, 고맙습니다만 이제 차가 옵니다.》

고종우의 대답이였다. 정말 차가 오게 되여있는지는 알수 없으나 고종우는 현순이를 내려놓고싶지 않은것 같았다. 무던하고 선량한 아저씨, 현순은 그가 누구보다도 자기를 사랑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아저씨.》하고 현순이 물었다. 《아저씬 집이 없나요?》

《집?… 난 합숙에서 산다.》

《혼자서요?》

《응.》

《왜 혼자 사나요?》

일순 아저씨는 할 말을 찾지 못해 바재이는것 같았다.

《전쟁때문에… 미국놈들때문에 다 갈라졌다.》

《그럼 아저씬 고아나요?》

《음, 그쯤된다. 그런데 고아란건 애들을 두고 하는 말이구… 어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지.》

《그럼 뭐라구 하나요?》

《홀아비라구 하지. 혼자 사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혼자 사는 아버지!… 현순은 그가 가엾게 여겨졌다. 자기에게는 아버지가 없고 아저씨에게는 아이들이 없다. 같이 사는 어머니도 없다.

《아저씬 불쌍하구만요.》 현순이 말했다. 《그래두 울진 마세요. 울면 남들이 숫봐요.》

《그-래?!》

《예, 그래서 난 동네애들이 아버지없는 애라구 하면 막 때려줬어요. 사내애들두 나한텐 꼼짝 못해요.》

《저런! 대단한데… 하지만 쌈질하면 안돼.》

《때려줘야 해요!》

《그러면 안된다는데.》

《아저씬 쌈할줄 모르는가부지요?》

《쌈하는건 좋지 않아!》

《때려줘야 해요. 할머니가 그러는데 우리 아버지도 남한테 지지 않았대요. 아주 용감한 사람이라구 했어요.》

《그럼! 용감하구 훌륭한 사람이였지. 그렇지만 자기 동무들과 싸운 일은 없었어. 미국놈들과 반동놈들과 싸웠지.》

《아저씨도 우리 아버질 아시나요?》

《안다. 알아도 잘 알지. 현순이 아버진 정말 대단한 사람이였다. 미국놈들한테 잡혔어두…》

별안간 그는 말끝을 흐렸다. 소란스럽게 한숨을 내뿜고나서 잠시 현순이의 동정을 살피는듯 했다.

《그래서요?》

《음- 그런데 너 정말 모르니? 아버지가 어떻게 됐는지?》

《몰라요.》 현순은 나직이 속삭이였다. 《할머닌 후담에 말해주겠다구 했어요. 내가 다 큰담에… 그래두 난 알구파. 아저씨, 말해주세요. 예? 미국놈들한테 왜 잡혔나요?》

《응- 그건…》

아저씨가 어깨를 흠칫거렸다. 세찬 전률이 파도쳐오는것을 느꼈다. 잠시 멎어섰던 아저씨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하릅송아지 한마리가 그들의 뒤를 자꾸만 따라왔다. 길 저쪽에서 풀을 뜯고있던 누렁소가 《음메!-》하고 소리쳐 불러서야 꼬리를 저으며 떨어졌다. 하늘에서는 따스한 볕이 내려쪼이고 바람은 먼지 오른 가로수들을 가볍게 어루쓸었다. 좋은 날씨였다. 아저씨의 잔등은 넓고 든든했고 학교로 가는 애들이 부르는 노래소리는 맑고도 쟁쟁했다. 그러나 아저씨의 이야기는 어린 현순을 차츰 흥분에 떨게 했다. 입술을 꼭 옥물고 아저씨의 어깨를, 검은색 줄무늬양복천을 손톱으로 박박 긁기 시작했다.

《현순아.》 아저씨가 물었다. 《너 울구있는게 아니니?》

《아니요.》 현순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난, 난… 울지 않아요.》

《용타. 현순아, 울어선 안돼.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써야지. 이제부터 공부랑 하자. 학교에 들어갈 때까진 내가 배워주마. 응? 그렇게 하지?》

《…》

현순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아저씨가 말해준 아버지에 대해서만 생각하였다. 그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부른 《저기 바다로 가자》라는 노래의 의미도 생각해보았다. 비록 그 의미를 다 알순 없으나 그 노래를 현순이도 일생 사랑할것만 같았다.

《우리 아버지도 배우였나요?》 마침내 현순이 물었다. 《아저씨처럼 노래를 불렀어요?》

《아니다. 현순이 아버진 혁명가였다.》

《혁명가?》

《그래,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위해서 싸웠지.》

《그런데 왜 노랠 불렀나요?》

《언제?》

《아저씨가 말해주지 않았나요. 사형장에서…》

《오!-》 아저씨는 이상해진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너의 아버진 노래를 무척 사랑했단다. 좋은 세상을 위해 싸운분이니 좋은 래일을 노래하는… 참, 뭐라구 설명할가.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은 꿈이 많은 사람이지. 현순이랑 아무 근심걱정없이 잘살게 될 래일을 꿈꾸었다구 할가… 그래서 남보다 더 용감하게 싸운거지.》

《나두 꿈을 꾸군 했어요.》

《그래! 꿈을 꿔야지. 이제 현순이 크면 배우가 되겠지?》

《아니요. 아버지처럼 꿈을 꾸는 사람이 되겠어요.》

《그래, 그래! 그래야 하구 말구.》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용드레로 논판에 물을 퍼넘기는 사람이 수건으로 땀흐르는 얼굴을 닦으며 그들에게로 눈길을 돌리고있었다. 바로 그때 멀리서 풍을 친 승용차 한대가 먼지발을 일구며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열려진 차창에서 누군가 머리를 내밀고 소리치고있었다.

아저씨가 멎어섰다.

《어머니다. 어머니가 오는구나!》

이렇게 말하는 아저씨의 목소리는 웬일인지 떨리고있는것 같았다. 그 리유를 현순은 차가 급정거를 하고 문짝이 열리며 어머니가 황황히 뛰여내렸을 때에야 알았다. 구름처럼 휘감는 먼지발속에서 고종우가 현순이를 업은채 컹컹 기침을 깇고나서 어줍게 말했다.

《은영동무, 내가 그만 현순일 잘 돌보지 못해서… 이렇게 됐군요. 정말 미안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현순이에게 팔을 내뻗치며 비틀거렸다.

《현순아!-》

아저씨가 현순이를 내려놓았으나 그는 어머니의 팔에 안기지 않았다. 무엇때문인지 어머니의 목멘 웨침도 반갑지 않았다. 그는 아저씨의 팔소매를 쥐여당기며 눈살을 찌프렸다.

《아저씬 좋은 사람이야.》

느닷없이 내뱉은 그 말에 어머니와 아저씨 두사람이 동시에 놀라서 마주 보았다.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하는 의미같았다.

《아저씬 미안하지 않아.》하고 현순은 두번째로 동에 닿지 않는 말을 내뱉았다. 《나때문에 혼이 났는데 뭐.》

비로소 어머니는 현순이가 무엇때문에 볼이 부었는지 알아차린 모양이였다.

고종우에게 눈길을 옮기며 어머니는 말했다.

《얘길 다 들었어요. 종우동무, 고마워요.》

《…》

아저씨는 아무 말도 못하고 두눈만 슴벅거리고있었다. 히멀끔하던 아저씨의 잘 생긴 얼굴이 별안간 누렇게 뜨고 시들어버린듯 했다. 그것은 수면부족과 극도의 피로로 지칠대로 지쳐버린 사람의 김빠진 모습이였다. 어머니를 외면하며 그는 또 한동안 괴롭게 기침을 깇었다.

그때 현순은 컹컹거리는 그의 기침소리며 찡그린 얼굴이 경련적으로 푸들거리는것을 보고 숨을 죽였다. 갑자기 아저씨가 울것만 같은 생각에 더럭 겁이 나던 일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불쌍한 아저씨!… 그처럼 맘씨곱고 잘 생긴 아저씨가 무척 외롭고 불쌍하다는 생각에 현순은 부지중 입귀를 비틀며 아저씨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