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렬차는 광활한 씨비리대지를 꿰지르며 기세높이 달리고있었다. 차창너머에는 하이얀 옷을 팽팽히 조여입은 봇나무들이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고요한 명상에 잠긴듯 서있었다.

은영은 번거로운 상념속에 묻혀 레루이음짬을 타고 넘는 단조로운 차바퀴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진 수림의 바다를 점도록 내다보기도 했다.

 

재빛 안개속엔 먼 수림이 잠들고

하늘 가린 밀림속을 달리는 개울물소리 들릴락말락

잎새우에 잠들은 바람 숨을 쉬는듯 마는듯

 

사랑하는 자기의 조국을, 광활한 씨비리대지를 노래한 뿌슈낀의 시였다. 한때 우리의 시인 조기천도 여기서 꿈을 키우며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어느 한시 조국의 산천과 인민을 잊지 않았다.

 

고개뒤에 또 고개-

몇몇이나 있으련고?

넘어넘어 또 넘어도

기다린듯 다가만 서라!

 

만약 조기천이라면 최고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그 골안의 싱그러운 소나무숲향기를 어떻게 노래할가?… 이렇게 은영의 생각은 또 잊을수 없는 그밤에로 이어져가고있었다. 그 잊을수 없는 밤으로부터 꿈같이 흘러온 날과 달들…

그 나날 어버이수령님께서도 한 녀가수에 불과한 은영이를 잊지 않고계시였다고 한다. 허정숙문화선전상의 말에 의하면 얼마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최고사령부작전대앞에서 몸소 축전참가자명단을 보시며 은영이에 대하여 은정깊은 말씀을 하시였다는것이다.

《축전참가자명단에 김은영동무도 있구만. 좋은 일이요. 얼마전에 남조선에서 들어온 동무를 축전명단에 넣은것은 아주 잘한 일입니다. 그 동문 애국적인 가정에서 나서자랐고 고생도 많이 했었지.… 우리 당을 따라 북에 들어와서도 늘 전선에 나가 살며 화선입당까지 했고… 이제 은영동무가 베를린축전에 가면 인기가 대단할것입니다. 특색있는 소리색갈로 노래를 부르는데다가 률동도 좋고 우리 인민의 사상감정을 맑고 명랑하게 표현하는 가수가 아닙니까. 싸우는 조선의 모습을, 미제와 싸워이기는 우리 인민의 모습을 잘 보여줄수 있을것입니다. 기대가 큽니다.》

그러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김은영동무가 처음 국제무대에 나가는만큼 잘 돌봐주라고 재삼 강조하시였다고 한다.

수령님의 기대에 꼭 보답해야만 했다. 역두에 나왔던 조기천도 이렇게 말하였다.

《은영동무, 어련하겠소만 무대에 나설 때마다 먼저 우리의 영명하신 장군님을 그려보시오. 장군님께서 은영동무의 노래를 듣고계신다는것을 잊지 마시오. 그러면 아마 온 세상이 동무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게 될겁니다. 내가 부탁하고싶은건 이것뿐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 꼭 명심하겠습니다.》

그들은 서로 손을 맞잡았다.

《자, 그럼》 시인이 웃으며 말했다. 《태양의 가수답게 싸우는 조선의 기상을 떨치고 돌아오시오.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선생님, 부디 안녕!…》

이것이 전부였다. 심중에 간직된 하많은 당부와 약속은 서로 마주보는 정겨운 웃음속에 숨어있었다. 은영은 또 다른 사람들의 떠들썩한 인사말속에 묻혀버렸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도 시인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았다. 시인이 마지막으로 전투영웅들과 굳은 악수를 나누며 주고 받는 말도 귀로 듣는것 같았다.

드디여 렬차의 기적소리가 울렸다. 호각소리가 울리고 축전에 가는 대표들, 체육인, 예술인들이 서둘러 차에 올랐다. 그때 은영은 시인이 붐비는 사람들을 헤집고 이쪽으로 다가오는것을 보았다. 그러나 거센 증기발이 곧 시인을 휘감아버렸다. 차바퀴가 구을러가고 기적소리가 또 장쾌하게 울렸다. 증기발이 사라졌을 때 은영은 속도를 내고있는 기차를 따라서는 조기천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시인이 무어라고 소리쳤으나 알아들을수 없었다. 구름처럼 날리는 증기발과 차륜의 덜커덩소리, 배웅나온 사람들이 일시에 웨치는 목소리…

기차가 속도를 높였다. 시인은 우뚝 멎어섰으나 마지막으로 한번 더 손을 저으며 무어라고 목청껏 웨치고있었다. 은영은 시인의 모습이 아득히 멀어질 때까지 승강대에서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렬차가 멎은 역마다에서 쏘련사람들이 열광적으로 환영해주었다. 꽃보라가 뿌려지고 꽃다발이 가슴마다에 안겨지였다. 취주악대의 환영곡과 축하의 노래에 귀가 멍멍하였다.

 

만민의 후손들인 우리는 평화를 목적해

앞으로 나간다 빛나는 승리를 향하여

전세계 각국에서 높은 산 바다넘어

모여온 청년 높이 든 손길 대결로 뭉쳐라

 

축전대표들은 거의다 전투영웅, 모범전투원들이였으므로 그들은 매번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였다. 목마에 태우고 공중에 들어올릴 때마다 앞가슴에 주런이 단 훈장과 메달들이 해빛에 번쩍이였다.

 

친선가는 우렁차다 청년들 청년들 청년들

이 노래는 못 막으리 정녕코 없애지 못하리

온 세상은 우리와 함께 노래하나니

이 노래는 못 막으리 정녕코 없애지 못하리

 

모스크바에서 3일간 체류하였다. 쏘련공청이 주최한 각종 행사들- 상봉모임과 축하공연, 연회가 그칠줄 몰랐다. 그 모든 행사를 쓰딸린이 직접 지시하여 조직하였다고 한다.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미제와 싸워 승리하는 조선, 영웅의 나라 청년들을 진심으로 경사롭게 맞고 환송하였다.

그러나 축전참가자들이 목마에 오르고 흩날리는 꽃보라에 싸여 베를린으로 달리고있을 때 조국의 수도 평양은 불바다로 화하고있었다.

그날 홍명희부수상은 전쟁 전기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정부일지에 이렇게 썼다.

 

1951년 7월 30일

미국놈들 평양대폭격

오전 11시부터 밤이 깊을 때까지(새벽 4시) 그칠새없이 폭탄을 퍼붓고 로케트탄을 란사, 종일 시내는 불과 연기속에 잠겼다. 남일총참모장이 장군님께 보고드린데 의하면 적기 200여대가 와서 소이탄, 나팜탄, 시한탄 900개를 투하했다고 한다.

많은 사상자들이 났다. 초보적으로 사망 200명, 부상 570명, 행방불명 60명이 집계되였다.

날이 밝을녘에 시인 조기천이 사망했다는 보고가 또 들어왔다.…

 

그 시각 은영은 모스크바를 떠나 베를린으로 가는 렬차에서 악보를 들여다보고있었다. 한쪽에서는 류선정, 조련, 한정애 등 녀가수들이 백호산의 거짓말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떠들고있었다. 백호산은 팔로군출신으로서 광활한 중국의 대지를 메주밟듯 하고다닌 사람이다. 바이올린을 무기삼아 각지를 편답하며 기이한 인연도 많았고 별의별 일들도 많이 겪었다. 그 모든 사연을 글로 써내면 한달구지도 넘을것이라고 그는 장담했다. 그런데 아슬아슬한 모험담도 그는 꾸며낸 이야기처럼 우스개소리로 능청스럽게 펴놓군 하여 어디까지가 진담이고 어디까지가 꾸며낸 이야기인지 그 누구도 분간하기 어려워했다.

은영은 악보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백호산의 이야기에 자연히 귀를 기울이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러자 주덕총사령이》하고 백호산은 눈을 잔뜩 쪼프리며 말하였다. 《그 녀자한테 물었단 말이요. <내 목소린 중음이요, 저음이요? 난 남성고음(테놀)과 남성중음(바리톤), 남성저음(바스)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잘 모르겠거든.> 하니까 그 장난꾸러기 녀동무가 뭐랬는지 아오? <총사령동지, 남성고음은 상급이 자기 부하에게 전화로 욕질할 때 내는 소리와 같고 남성저음은 욕을 먹는 부하가 상부에 발라맞출 때 내는 겸손한 소리와 같습니다.>라고 말했지. 그러자 주덕총사령이 <아, 이젠 알만해. 그러니 난 남성고음이구만. 밤낮 전화통에 대고 욕질만 하구 있으니말야.> 하- 이러는게 아니겠소!…》

웃음이 터졌다. 은영이도 웃지 않을수 없었다. 바로 그때 고종우가 차칸으로 들어왔다. 급히 덤벼치며 좌석마다 눈으로 훑고있었다. 비로소 은영이를 발견하자 헉-하고 숨길이 막힌듯 그 자리에 멎어섰다. 은영은 웃음을 지으며 그도 가까이 와서 재미나는 이야기를 들으라고 했다. 그러나 고종우는 귀가 멘 사람같았다. 언제보나 단정하고 깨끗하던 그였으나 지금은 후려맞은 사람처럼 얼뜬해보였다.

《왜 그러세요?》 은영이 물었다. 《어데 갔더랬어요?》

《저기서…》 고종우가 허둥거리며 말했다. 《이제 방금… 놀라운 소식을 들었는데…》

그가 입귀를 비틀며 숨이 찬듯 힘들게 말을 더듬는것을 보고 백호산이 웃으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요. 기차에 불이라도 났소?》

《웃지 마시오. 제발!…》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고통에 모대기는 그의 퍼리끄레해진 얼굴에는 이슬처럼 땀방울이 가득 돋아있었다. 그는 휘청거리며 다가와 은영이를 잡아끌었다.

《갑시다. 지금 저기서 보도를 듣고있는데…》

은영은 그한테 끌려가면서 벌써 가슴이 활랑거리는것을 느꼈다. 무엇인가 뜻하지 않던 일이 벌어진것이라고 생각되였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여짜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백호산과 다른 녀가수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다음 차칸에 들어서자 두번째인가 세번째 좌석에서 라지오를 듣고있던 사람들, 부단장 백영준과 지휘자 김기영이 동시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쳐다보는데 침통한 표정이였다. 특히 백영준은 길쑴한 얼굴이 꺼멓게 질려있었다. 은영은 묻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고 묻고싶었으나 무서운 대답이 나올가봐 숨소리조차 저어하였다.

백호산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부단장동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백영준은 고종우에게 눈길을 주었다. 가서 말해주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이였다. 고종우가 눈귀를 떨며 외면하는것을 보자 그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이어 아무도 보지 않으며 갈린 음성으로 누구에게라 없이 말했다.

《어제 미국놈들이 평양을 대폭격했는데… 그통에 조기천선생이 그만… 잘못됐다고 하오.》

《예?…》

누가 이렇게 부르짖었던지?… 은영은 물론 그를 따라온 사람들모두가 놀라서 굳어졌다. 백영준이 목단추를 벗기며 신음하였다. 시인이며 극작가이기도 한 백영준이여서 온 나라 인민이 사랑하던 시인 조기천의 희생을 두고 더더욱 통분함을 이기지 못해 하는것이였다.

《그게…》하고 은영은 겨우내 목소리를 짜냈다. 《정말이세요? 잘못 듣지 않았습니까. 예?!》

《…》

대답을 못하는 백영준을 대신하여 김기영이 소란스럽게 한숨을 내뿜었다.

《동무들에겐 아직 알려주지 말가 하다가… 아무래도 마음을 굳게 먹는게 낫다고 보았소.》

은영은 비칠거렸다. 백호산과 류선정이 제때에 붙들어주었다. 그 다음 무슨 일이 있었던지… 믿고싶지 않았다. 그처럼 불같던 시인이 잘못되였다는것을 어떻게 믿을수 있으랴!…

백영준이 침통한 어조로 이번 축전에서 조기천의 작품들인 《압록강》과 《조선은 싸운다》, 《문경고개》 등을 더 잘 형상하여 시인의 피타는 웨침을 온 세상에 전하자고 말하고있었다. 그러니 그것은 사실이였다. 믿지 않을래야 않을수 없는 사실… 은영은 언제, 어떻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는지 알지 못했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 어떤 우악스러운 손이 그의 가슴을 사정없이 찢어발기고있었다. 타는듯 한 아픔에 숨이 막히고 눈이 쓰려 아무것도 바로 볼수 없었다. 승강구의 창유리에 머리를 부딪치며 비칠거렸다. 어찌하여 그런일이 벌어졌는가. 어찌하여 매번 은영이와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 미국놈들의 총포탄에 맞아 희생되는것인가?… 어제는 아버지와 림호, 동생들인 일한이와 차한이가, 오늘은 또 불같은 심장을 지닌 시인 조기천이 곁을 떠나갔다. 그만을 남겨두고 모두 가버렸다. 쓰라린 아픔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은영은 오늘도 또 홀로 남았다. 파도를 헤가르는 갈매기라고 믿고있던 자신이 하나의 작은 새처럼 느껴졌다. 새로 준비한 곡목중에 들어있는 《작은 새》의 노래에서처럼…

 

내 그대를 사랑하는 붉은 마음

변함없이 영원하다고

내 정성을 다해 기다린다고

작은 새야 전하여다오

 

은영은 《내 정성을 다해 기다린다고》라는 노래구절을 다시 속으로 뇌이였다. 그러자 역두에서 손저어주던 조기천의 모습이 또 눈앞에 삼삼하였다. 그때 은영이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긴 말은 무엇이였던가?…

마지막까지 그저 웃으며 헤여진 리별의 역두. 마침내 그를 휘감던 증기발, 그가 기차를 따라서며 소리친것은 무슨 말이였을가. 내 정성을 다해 기다린다고 웨친것은 아니였을가. 그런데 나는 왜 그 말을 듣지 못했던가?… 찢어진 목구멍에서는 신음소리만이 새여나왔다. 더는 지탱할수 없어 그만 창문에서 미끄러져내렸다.

누군가 그를 안아 일으켰다.

《은영동무, 이러지 마시오.》 백영준이였다. 《동무야 여태껏 많은 고통과 슬픔을 이겨오지 않았소. 힘을 내시오. 슬픔을 이겨냅시다. 당장 축전이 시작되겠는데…》

그의 뒤에는 고종우와 백호산, 류선정과 조련, 한정애도 서있었다. 그들모두가 은영이 슬픔에 못이겨 성대를 상하게 될가봐 근심하는것 같았다. 당장 축전에서 독창을 해야 할 은영이였다.

백영준이 계속하였다.

《동무도 알겠지만 조기천선생은 우리 장군님께서 제일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시인이였소. 난 언젠가 최고사령부작전대앞에 조기천시집이 놓여있는것을 보았소. 전선을 지휘하시느라 그처럼 바쁘신 장군님께서 늘 조기천선생의 시를 읽고계셨단 말이요. 그처럼 선생을 사랑하시던 우리 장군님께서 지금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는지 생각해보시오. 사실말이지 우리 장군님께선 이 전쟁통에 얼마나 많은 아픔과 슬픔을 겪으셨겠소. 제일 사랑하시던 많은 전사들을 잃고 나라가 페허로 되고 인민이 고통을 겪고… 그래서 잠못 이루시는 밤이 얼마나 많겠는지 생각해보시오. 그걸 생각하면… 어떻게 우리가 자기의 슬픔에만 매울수 있겠나 말이요. 조기천선생이 역에서 마지막으로 은영동무에게 당부한 말도 그게 아니였겠소? 언제나 장군님을 생각하라고 하던 그 말!… 은영동무, 슬픔을 이겨냅시다. 꼭 이겨내야 합니다.》

은영은 목이 메여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불현듯 목구멍을 가득 메우며 치밀어오른 뜨거운 눈물에 숨이 꺽 막혔다.

기적소리가 울렸다. 기차는 여전히 유럽의 대지를 흔들며 줄기차게 내달리고있었다. 또다시 울리는 기적소리, 피흘리며 싸워 승리하는 조선의 노래를 싣고 달리는 기차의 목갈린 웨침이였다.

그때부터 은영은 종일 아무말없이 생각에만 잠겨있었다. 그러나 일단 무대에 나설 때면 전혀 다른 은영으로 되였다. 밝고 청순한 웃음을 떠올린 녀가수가 만장의 환호를 받으며 노래를 시작하는것이였다. 열혈시인의 부탁대로 마음속깊이 장군님께 말씀올리며 노래하였다. 장군님께서 환히 웃으시는 모습만을 그려보았다. 유럽사람들이 미친듯 박수를 치고 재청을 웨치고 기념수표를 요구하며 뻐스와 호텔문앞에 구름처럼 둘러쌀 때에도 장군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그려보고있었다.

 

승리한 초소에 봄이 돌아와

꾀꼴새 정다웁게 노래를 한다

봄바람은 고지에도 불어불어

내 맘같이 피여난 붉은 진달래

피로 지킨 나의 고지 불멸의 자랑

꾀꼴새야 전해달라 나의 고향에

꾀꼴새야 전해달라 나의 고향에

 

축전에서는 합창 《법성포배노래》와 교성곡 《압록강》, 백호산의 바이올린독주, 김은영의 독창, 녀성중창, 류선정과 조련의 콩클 등 많은 종목들이 1등을 하고 상을 받았다. 이어 3개월간의 유럽순회공연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중국에도 들렸다. 주은래총리가 직접 연회에 참가하여 제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성과와 중국공연성과를 축하해주었다. 은영이에게 축배잔을 부어주며 조선의 노래가 그렇듯 아름답고 조선의 녀가수가 중국노래도 그처럼 잘 부르는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자기의 흥분어린 심정을 토로하였다.

드디여 조국땅에 들어섰다.

조국은 여전히 전화의 불길속에 휩싸여있었다. 신의주에서 평양까지 달리는 기차에서 네차례나 적기들의 습격을 받았다. 밤에도 적기들은 연통에서 쓸어나오는 불연기를 목표로 내리꼰지군 하였다. 기관사와 기관조사들이 젖은 가마니를 연통에 덮군 하였다. 불꽃이 날리지 않게 하려는것이였다. 자동차들은 전조등도 켜지 않고 도로를 달렸다. 이르는 곳마다에서 사람들이 철길을 복구하고 군수물자를 실어나르고있었다. 바로 그들이야말로 시인 조기천이 격조높이 노래한 서정시 《조선은 싸운다》의 주인공들이라고 은영은 눈물을 머금고 생각하였다.

 

《치기영- 어기영- 치기영》

복구대는 일한다

시한탄을 끌어내친다

그러면 어둠속에서 호각소리 울리고

서리어린 화물차는 박는듯이 멎고

젊은 운전사의 목소리는

《길이 어떻소?》

그러면 어둠속에서 반기는

《길이 좋아요!》

처녀의 맑은 목소리를 뒤이어

다시 호각소리 출발을 울리는

천리길 그 많은 굽이굽이에서

밤마다 밤마다 죽음을 이기는

조선의 싸우는 후방!

 

바로 그 전선길에 오늘도 시인은 서있는것이 아닐가? 조국에 돌아온 은영이를 반겨맞으며 뜨겁게 속삭이고있는것만 같다.

《이들을 사랑하시오. 이들을 사랑하고 이들을 위해 노래하시오. 그러면 온 나라 인민이 동무를 사랑하게 되고 나아가서 수령의 총애도 받게 됩니다. 잊지 마시오. 바치는 사랑이 뜨거우면 더 큰 사랑이 오는 법입니다.》

날이 샐무렵 기차는 어느 산간역에 들어서고있었다. 기적소리가 무엇인가 소리쳐 묻는듯 련속 거세게 울부짖더니 드디여 기차는 거센 증기발을 내뿜으며 멎어섰다.

호각소리가 째지는듯 울렸다. 누군가 기관사를 부르며 잠간이면 된다고 소리치고있었다. 앞에서 복구대가 바삐 뛰여다니는것이 보였다. 도처에서 수십개의 불방망이들이 마지막 어둠을 밀어내며 불똥을 뚝뚝 떨구고있었다. 여기서도 간밤에 적기들의 폭격으로 끊어진 철길 한구간을 복구하느라고 드바쁜것이였다. 또다시 산촌의 새벽공기를 찢는 호각소리, 목고를 메고 달리는 녀인들, 레루이음짬에 못을 박는 늙은이, 철길앞쪽에서는 빨간 수기를 든 처녀가 기관사에게 조금씩 전진하라고 신호를 보내고있었다. 그들 한사람 한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있던 은영은 한순간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눈뿌리가 아득해졌다. 어떻게 승강구까지 나가고 거기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기관차에서 바닥으로 뛰여내렸는지 은영은 알지 못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있는 한사람의 모습만을 타는듯 한 눈길로 정신없이 쫓을뿐… 멀지않은 둔덕우에서 시인 조기천이 홰불을 들고있는 처녀와 함께 커다란 종이말이를 펴들고있는것이였다. 한순간 그도 정신없이 달려오는 은영이를 보고 놀라는듯 했다.

《선생님!-》

목메인 웨침이였으나 입안에서만 뱅뱅 감돌았다. 은영은 허우적거리며 시인이 서있는 둔덕우로 헐금씨금 달려갔다.

《살아계셨군요. 선생님!-》

그것은 군복차림이 아니라 처음 만포에서 만났을 때와 같이 사복을 입고있는 시인의 모습이였다. 새까만 모직외투대신에 엷은 쥐색코트를 입고있을뿐 안경을 추슬러올리며 바라보던 그가 입을 쩍 벌리며 무어라고 소리쳤다. 뭐라고 하는가. 그저 너무 놀랍고 반가와서 소리쳐 부르는걸가?…

《은영동무!-》

그것은 차에서 동무들이 소리쳐 부르는 소리였다.

《은영동무, 어델 가오?》

《돌아서시오. 은영동무!-》

《정신있소. 은영동무?》

《어서 돌아오세요. 기차가 떠나요!》

기차야 떠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랴! 이렇게 살아계신 시인을 만나지 않았는가!… 그런즉 시인은 폭사한것이 아니라 중상을 입고 어느 병원에 실려가 오래동안 치료를 받은것이 분명했다. 전쟁판에서야 무슨 일인들 없겠는가. 그리고 사망통지서까지 냈던 사람들, 영영 죽은줄로만 알고있던 사람들을 이렇게 다시 만난 일도 또 얼마나 많은가!…

시인도 마주왔다. 정신없이 허덕이며 금시 쓰러질것 같은 은영이를 부축하려는듯 손에 든 종이말이를 한껏 내젓기까지 했다. 그의 뒤를 따라 홰불을 든 처녀도 다가왔다.

《선생님!-》

그러자 마주오던 사람이 멎어서며 잠시 머리를 기웃거렸다. 이어 다급히 숨찬 소리로 물었다.

《혹시 내 제자가 아니요?… 동무 공대건축학부를 다녔지?》

순간 은영은 발밑의 땅이 심하게 흔들리는것을 느끼며 비칠거렸다.

별안간 목이 꺽 메이고 눈앞이 뿌예졌다. 두눈을 흐리던 땅방울들이 얼어붙으며 미간을 저미는듯 하였다.

《왜 그러오, 응?!…》 그 사람이 다우쳐물었다. 《많이 본것 같은데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아서…》

《아!-》

그것은 비명이였던가, 신음소리였던가?…

불똥을 뚝뚝 떨구던 홰불도 밝아오는 새벽빛에 스러져갔다. 영문을 몰라 어정쩡해진 그 사람이 또 무어라 물었으나 은영은 기신없이 뒤걸음쳐 갔다. 아니다, 전혀 낯모를 사람이다. 시인과 같이 다부진 몸에 안경을 끼고있을뿐…

그가 은영을 부축하려고 다가왔다.

《혹시 리창숙이라고 하지 않는지. 교실 제일 뒤끝에 앉군 하던?…》

《?!…》

여전히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무엇인가 골똘히 기억을 파헤치는 이 진지하면서도 덩둘해보이는 사람에게 대답할 말이 하나도 없었다. 옳다고 할수도 없고 아니라고 하여 그마저 실망케 할수도 없었다.

은영은 그만 입으로 주먹을 가져갔다. 금시 오열이 터져나올것 같아 그 주먹을 정신없이 깨물었다. 벅차게 뛰던 심장이 설분과 모진 아픔에 갈가리 찢기는듯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쓰라린 아픔뒤끝에 시꺼먼 공허가 덮치듯 밀려들어 온몸을 소리없이 휘감는것을 의식했다.

때마침 뒤따라온 사람들, 한정애며 조련 그리고 또 누군가가 금시 휘청거리며 쓰러질것 같은 그를 붙안았다. 거센 기적소리가 대기를 찢으며 울려퍼졌다.

그러자 목터지게 웨치는 소리와 호각소리가 뒤따랐다. 호각을 물고있던 복구대처녀가 기관차를 따라가며 소리치는것이였다.

《기차를 세우세요. 세우라는데!》

《무슨 일이요. 왜 그래?》

《모르겠어요. 누가 차에서 떨어졌어요!》

《뭐-요?》

레루를 찢는듯 제동을 거는 소리가 아츠럽게 울리고 후더운 증기발이 구름처럼 밀려와 그들을 휘감고 태질을 했다. 어느덧 복구대원들까지 달려와 사람들에게 부축되여가는 은영이를 지켜보고있었다.

시인으로 잘못 본 그 사람이 따라와 기차에 오르는 은영이를 도우며 젖어든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런줄도 모르구… 배우동무, 언제든 믿고 기다리시오. 이제 꼭 좋은 소식이 있을겝니다. 꼭!》

호각소리, 이윽고 차바퀴는 다시 굴러가고 사람들은 마치 자기의 살붙이라도 떠나보내는듯 기차를 따라섰다. 고마운 사람들이였다. 준엄한 전쟁은 만사람에게서 헤아릴수 없이 많은 피와 눈물을 짜냈어도 그들의 마음은 더 넓어지고 후더워졌다. 은영은 손바닥으로 눈굽을 훔치며 자기에게 손저어주는 그 안경낀 사람을 향해 마음속으로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또다시 목메여 웨치는 기관차의 기적소리, 하늘가를 물들이기 시작한 새벽빛도 흐릿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살아있다

불속에서도 연기속에서도

인민은 살며 싸운다

조선은 싸운다

 

시인 조기천이 웨치고있었다. 격양된 심정으로 거센 기적소리를 맞받아 한팔을 내뻗치며 부르짖고있었다.

 

천리길 그 많은 굽이굽이에서

밤마다 밤마다 죽음을 이기는

조선의 싸우는 후방!

 

원방신호기가 저 멀리서 쏜살같이 마주오더니 또 어느새 뒤쪽으로 멀어져갔다. 레루이음짬을 타고 넘는 차바퀴소리가 소란스러웠다. 이름모를 간이역을 그대로 통과한 기차는 또 폭탄구뎅이들이 숭숭한 들과 야산기슭을 따라 거침없이 달려갔다. 가슴저린 슬픔과 고통은 헤아릴수 없이 많았어도 생활은 여전히 궤도를 따라 앞으로 앞으로 내닫고있는것이였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