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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7월 국립예술극장의 절대다수는 중국방문공연을 떠나고 은영은 베를린에서 진행되는 제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할 준비를 다그치고있었다.
축전이 끝나면 동유럽의 인민민주주의나라들을 돌며 공연을 해야 한다. 그 나라들에서 싸우는 동방조선의 청년들을 보고싶고 조선의 노래를 듣고싶다고 벌써 축전참가자들을 초청했던것이다. 하여 인민군협주단과 여러 극장 및 예술단체들에서 뽑힌 청년배우들이 그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백호산과 피아니스트 박미화도 있었다. 국립예술극장에서는 은영을 비롯하여 명가수들인 류선정, 조련, 황선희, 고종우 등이 뽑혀있었다.
제일 나어린 가수로서는 강순녀, 한정애가 있었다. 리면상, 김옥성, 안기영과 같은 작곡가들이 밤을 새워가며 새 곡목을 토론하고 편곡을 했다.
은영은 밤이 깊도록 련습을 하군 했다. 특히 외국노래들을 정확히 발음하는데 품을 많이 들였다. 동유럽의 여러 나라 곡들을 빠른 시일내에 준비해야만 하였던것이다. 한때 서울에서 가극 《리고레또》, 《동백꽃아가씨》, 《파우스트》와 쇼팡의 《리별의 곡》녀주인공역을 맡아하면서 경험을 쌓았지만 그것은 주로 도이췰란드어로 불리운 노래들이였다. 지금은 쏘련과 뽈스까, 마쟈르, 체스꼬, 로므니아, 벌가리아의 곡들까지 준비해야 한다.
곡목중에서 가극의 아리아는 여전히 고종우가 은영의 상대역으로 정해져있었다. 운명은 그들을 끝까지 한무대에서 상대역이 되여 노래하도록 묶어세운것만 같았다.
밤이였다. 7월의 밤, 은영은 대동강기슭을 거닐며 새로 익힌 노래를 낮게 불러보고있었다. 멀지 않은 숲속에서는 합창 《법성포배노래》와 조기천의 《백두산》에 새로 곡을 붙인 교성곡 《압록강》을 련습하고있었다. 적기들의 폭격을 피하여 갱도속에서 하는것이 안전하였지만 울림이 너무 심하여 날이 어둡기 바쁘게 모란봉이나 대동강기슭으로 밀려나오군 하였다. 비록 매끼 보리밥 한덩이를 씹으면서도 그들은 지칠줄을 몰랐다.
은영은 청류벽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가 부지중 애절하게 울리는 바이올린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둠에 싸인 숲속에서 백호산이 독주곡 《비둘기》를 연주하고있는것이였다. 사랑과 평화의 상징인 정다운 비둘기, 전쟁의 불구름을 뚫고 맑고 푸른 하늘가로 나래를 편 그 새의 눈물어린 속삭임인가. 살랑거리던 나무잎새들도 그윽한 감동속에 젖어들었다. 대동강물결도 소리없이 기슭을 쓰다듬고있었다. 별빛내린 물결우로 은은하게 파문지어가는 절절한 속삭임소리, 은영은 이윽토록 걸음을 떼지 못했다.
예술가들마다 자기의 독특한 주법이 있고 창법이 있다. 그것을 위하여 피나는 훈련을 거듭한다. 피아니스트들은 순간에 건반을 때리는 타치의 박력이 손가락으로 못을 때려박을 정도로 되였을 때,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온몸의 힘과 열정이 활에 집중되고 악기통을 울리게 될 때, 성악가수들은 배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소리통이 굴뚝처럼 섰을 때 비로소 자기의 주법을, 자기의 창법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듯 아글타글하기에 얼마전 어느 한 인민군부대를 찾아 공연할 때 백호산은 못에 찔린 한손가락을 못쓰게 되자 세손가락만으로 연주하면서도 5청을 받았다.
완성의 경지, 시인 조기천이 말하던 완성의 경지란 과연 어떤것인가?… 그날 조기천은 말했다.
《완성이란 없습니다. 계속 고민하고 채찍질하면서 완성의 경지로 올라야지요.》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을가. 화선에서 전사들과 담화하고있을가 아니면 병사들을 고무하는 시를 읊고있을가?…
문득 은영은 자기가 때없이 그 시인을 생각하고있음을 깨달았다. 그러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것 같은 느낌이였다. 놀랍게도 오늘밤 역시 시인을 생각하고있다. 매일같이 생각해온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나도 가수이고 그 역시 가수이다. 한편은 시어로, 다른 편은 선률로 노래하는 가수일뿐이다. 하기에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는것이다.
그것이 자기를 변명하는 거짓된 웨침이라는것을 잘 알면서도 은영은 이렇게 어거지로 자신을 납득시키고있었다.
그때 고종우가 은영을 부르며 달려왔다. 숨이 차서 헐썩이며 기쁨에 넘쳐 그는 부르짖었다.
《은영동무, 조기천선생이 왔구만!》
《예?!》
《전선에서 방금 돌아오는 길이라오. 아 그새 얼마나 달라졌는지!… 빨리 가보시오. 지금 동물 찾고있소.》
《저를요, 선생님이?》
목이 콱 메였다. 한생 이 시각을 기다려온것만 같았다. 기꺼운 흥분에 온몸을 떨며 두손을 가슴앞섶에 모두어쥐였다. 순간 바이올린소리가 더 크게, 격정에 넘쳐 절절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물결우에 고요히 내려앉던 별들이 흐트러졌다. 은영은 몸을 홱 돌리며 숲속으로 뻗은 오솔길, 백호산의 바이올린이 벅찬 선률로 불러주고 있는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뒤에서 고종우가 소리쳤다.
《아, 은영동무, 이쪽이요, 반대쪽!…》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반대쪽?… 갑자기 정신이 드는것 같다. 그는 반대쪽으로 가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온통 어둠뿐이다. 걸음을 옮기려 하나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모든것이 넘실거리는 물결에 떠실려 가버린듯 했다. 대동강의 물결은 어제도 오늘도 소리없이 유유히 흐르고 또 흐른다. 밤에도 낮에도 흐르고 흘러 바다로 간다. 사랑의 바다. 은영이 언제든 항로를 바꾸지 않으리라고 마음 다졌던 그 바다로 간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데로 가고있는것인가?!…
별안간 은영은 후려맞은것처럼 그 자리에 무너져버렸다. 무릎을 꿇고 돌바위를 그러안으며 소리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가슴이 미여지고 혀끝이 달달 말려들었다.
《왜 그러시오, 은영동무?》 고종우가 다가와 급히 묻는다. 《몸이 말째서 그러시오. 예?》
정직하고 대바른 고종우, 웅글고 부드러운 소리를 가진 바리톤가수답게 속궁냥도 깊고 인정도 많은 그였다. 그러나 그는 아직 독신이다. 전쟁때문인지 모르나 아직 예술만을 위해 사는 사람처럼 곁눈 한번 팔지 않는다. 이런 사람한테는 그 무엇도 숨길 리유가 없을것이다. 하물며 은영이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인데야!…
《은영동무.》 고종우가 그의 어깨에 손을 대려다가 주춤거리며 침울하게 말하였다. 《무슨 일인지 말해보시오. 혹시…》
《잠간만!…》 은영은 급히 눈굽을 찍고 몸을 일으켰다. 희뿌예진 눈으로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목이 잠긴듯 중얼거렸다. 《난… 갈수 없어요. 고종우동무, 가서 적당히… 말해주세요.》
《뭐요?》
《부탁이예요. 동무야 왜 그러는지 아실테지요. 그래요, 이제 내가 한걸음 더 나가면… 아니, 그럴수 없어요. 절대 그럴수… 없어요.》
《그럴수 없다니, 도대체 무슨 소릴 하자는거요?》
은영은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쓰리던 가슴에 갑자기 설음이 꽉 들어차는것을 느꼈다.
《난… 그래선 안된다는걸… 알고있었어요. 고종우동무도 잘 아는것처럼 난 이미… 그래요. 우리 현순이 아버질 위해서도 그렇구 또… 그처럼 훌륭한분한테… 그처럼 결곡한분한테 제가 조금이라도 기대를 품게 한다면, 그분의 마음을 순간이나마 흔들어놓는다면 저는 뭐가 되겠어요. 예? 말해보세요!》
고종우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음- 알만 하오. 무슨 말을 하자는건지, 그렇지만…》
《아니 됐어요. 말하지 마세요, 제발!》
《아니요, 난 동무가 이럴줄은 몰랐소. 정말 은영동무답지 않게… 어쩌믄 그럴수 있소?》
《그럼 어찌해야 하나요, 예?!》
은영은 손등으로 눈굽을 씻으며 갑자기 낯빛이 해쓱해진 고종우를 놀라서 바라보았다.
《동문》하고 고종우는 씨근거렸다. 《동문 지금 먼저 간 그 사람을 모욕하구있소. 모욕하구있단 말이요!》
그는 소리치고있었다. 주먹을 꽉 부르쥐고 무섭게 노려보는것이 막 후려갈길 태세였다. 그처럼 분개하여 소리치는 그를 여태 본적이 없었다.
《그 사람, 림호라는 그 사람을 나는 물론 잘 모르오. 그렇지만 그가 희생되면서 노래를 부르는것을 보고 난 속으로 울었소. 저기 바다로 가자! 하고 노래하는걸 보면서 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알게 됐단 말이요. 나같은건 발치에도 못가는 그런 사람, 그래서 은영동무가 그를 사랑한것이 너무도 응당하다고 생각했던거요. 그래서 그를 존경하구 오늘까지 잊지 못해하는데… 그렇듯 훌륭한 사람을 다른 사람도 아닌 은영동무가 모욕하다니!… 그런 말하기 부끄럽지 않소?… 그 사람의 진정도 모른다면 정말 동문 시시한 녀자요!》
《예?!…》
고종우는 팔을 홱 내젓고 다시 계속하였다.
《그가 바란게 무엇이겠소. 어째서 죽음을 앞두고 저기 바다로 가자! 하고 노래를 불렀겠는지 생각해봤소? 그 사람이나 동무의 아버지, 동생들이 바란게 무엇이겠는지 생각해봤나 말이요. 사실말이지 림호라는 그 사람은 남아요. 심장이 크고 뜨거운 남아!… 그가 지금 이 일을 안다면… 자기를 턱대고 온 나라가 사랑하는 시인 한분을 욕되게 하는줄 안다면 절대로 용서치 않을것이요, 절대!…》
은영은 아무말도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고있었다. 전쟁판에서 화염을 삼켰을 때처럼 목이 타들어 견딜수 없었다. 가까스로 숨을 돌리며 속삭이였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거예요, 예?!》
《내가 알게 뭐요!》
고종우는 그대로 가버리려 했으나 문득 무엇인가 한마디 더 못박으려고 생각한듯 하였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나서 가까스로 어성을 낮추는것이 알렸다.
《아마 조기천선생은 장군님께서 아끼고 사랑하시는 은영동무가 더없이 대견하구 자랑스러워 남달리 관심하고싶었을지도 모르오. 은영동무도 말했듯이 그도 시로 노래하는 가수가 아니요. 그래서 더 돕고싶구 진정 위해주고싶었는지… 그런데 동문 뭐요. 부탁하는데 제발 그분까지 욕되게 하진 마시오!》
《?!…》
부지중 은영은 몸을 떨었다. 놀라움도 컸거니와 감사의 념에 그를 다시 보지 않을수 없었다. 이렇듯 사심없고 진실한 사람을 한때 오해했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진정 속이 좁은것은 은영이 자기였다. 고종우가 말했듯이 시시한 녀자였다. 조기천선생까지 욕되게 한다는 말이 무딘 칼날처럼 가슴을 우벼대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가시오.》 고종우가 지친듯 말했다. 《그리구 내가 소리친건 량해하시오.》
은영은 그가 언제 어둠속으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밤의 어둠속을 파헤치며 절절한 바이올린의 선률이 다시 계속되였다. 창공높이 날고있는 비둘기의 노래, 진정 생활이 있는 곳에는 노래가 있고 노래가 있는 곳에는 사랑이 있는것이다.
조기천이 마주왔다. 여전히 소좌견장을 달고있는 군복차림이다. 그에게서는 전쟁터의 화약가스냄새가 진하게 풍기고있었다. 군복은 허름해진것 같았으나 시인은 보다 젊어지고 싱싱해보였다.
《은영동무,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그는 진정 반가와하며 어줍게 웃었다.
《축전에 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인차 떠난다지요?》
《예, 사흘후엔 떠난다고 합니다.》 웬일인지 말이 잘되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 그새 계속 전선에 계셨습니까?》
《싸웠지요, 전호속에서 시도 읊고 전투소보도 쓰구… 아, 또 있습니다. 은영동무에게 줄 선물도 마련했지요.》
《예?!》
《눈을 감으시오. 꼭!…》
시인은 언제보나 소탈하고 꾸밈이 없었다. 점잔을 빼지도 않았고 우정 유식한 말을 골라쓰지도 않았다.
은영은 눈을 감고 기다렸다. 시인이 그의 손을 잡았다. 어쩌자는걸가?… 뜨거운 숨결도 가까와왔다. 정말 어쩌자는걸가?… 가슴이 후둑거렸다. 호흡이 절박해지고 손끝까지 저려드는것을 견디기 어려웠다.
《보십시오.》
마침내 시인이 하는 말이였다. 가만히 눈을 떠보니 손바닥에 작은 탄알 하나가 놓여있었다. 반질반질 닦은것 같은 탄알, 흔히 보는 아주 작고도 보잘나위없는, 어찌보면 깜찍하기까지 한 탄알, 흔히 죽음의 선물로 일러진 이것을 부디 선물로 고른것은 무슨 까닭이란 말인가?… 그 리유를 시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것이 나를 죽이려 했습니다. 면바로 이 심장을 꿰뚫고 나가려고 했던겁니다. 그런데 내 군복안주머니에 있던 수첩이 막아주었습니다. 언젠가 은영동무가 준 그 피묻은 수첩말입니다. 그러니 그 인민군보병중대장과 은영동무의 사랑이 나를 지켜주었다고 할가요.》
《예?!》
시인은 품속에서 그 수첩을 꺼내였다. 총탄이 뚫다가 맥이 진하여 박혀버린 자욱이 생생한 수첩, 어마나! 이런 끔찍한 일도 있다니!… 은영은 소스라치며 수첩을 쥔 손을 떨었다.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한마디도 떠오르지 않았다. 얼마후에야 수첩을 꼭 껴안으며 속삭이였다.
《선생님, 어쩌다가 그런 일을?… 제발 조심하셔요.》
조기천은 빙긋이 웃었다.
《일없습니다. 진실한 사랑이 지켜주는 한 나는 죽지 않습니다.》
《아니 아네요. 그러다가…》
《일없습니다.》 그는 정색하며 말하였다. 《이 수첩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하군 했습니다. 그 보병중대장과 은영동무를… 정말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지닌 사람들인가! 하고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속에서 내가 살고있고 시를 쓰고있다고 생각할 때 나는 행복했습니다. 새삼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한때 나는 자신을 불행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늘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걸 이겨내려 무던히도 애썼지만 어쩔수 없더군요.》
그의 입가에 떠오르는 경멸의 미소를 바라보며 은영은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설핀 해빛이 시인의 안경알에서 번뜩이였다.
《이런 말을 하려고 한건 아닌데…》
시인의 그 말에 은영은 재빨리 입술을 추기며 속삭이였다.
《어서 계속하세요. 전 듣고싶어요.》
《사실은》하고 그는 갑자기 서름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한 녀자가 조국을 버리고 로씨야로 돌아갔던겁니다. 무엇때문인지 나도 다는 알수 없지만 어릴적부터 몸에 익힌 빠다와 뽈까춤이 그리웠던것 같습니다. 조국에서의 생활에 익숙하지 못하고 투정질이 많아지더니 나한테 조르다 못해 훌 가버린거지요. 그때 나는…》
쓰라린 추억이 그로 하여금 목구멍에 걸린것을 꿀꺽 삼키게 했다. 은영은 숨길을 딱 멈추었다. 열화같은 열정을 지닌 시인이 그런 아픔을 가지고있는줄은 몰랐었다. 그에게도 아픔이 있고 설음이 있으리라는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때 난…》시인이 계속했다. 《불행했습니다. 아니, 불행하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이런 말을 하기가 쑥스럽고 창피스럽지만 그때엔 진정 따뜻한 인정이, 사심없는 사랑이 무척 그리웠습니다. 못견디게 그리웠다고 할지… 정말이지 애달픈, 가슴저린 그런 그리움, 사무치게 그리운 사랑의 정이였습니다.》
다음순간 그는 쓰디쓴 미소를 그리며 머리를 젓고나서 이렇게 계속하였다.
《그러나 서사시 <백두산>이 나에게 보다 큰 사랑을, 한 녀성의 사랑엔 비할바없이 엄청나게 큰 사랑을 안겨주고있다는것을 나날이 깨닫게 되였습니다.
결국 나는 한 녀성의 사랑은 잃었지만 수령의 총애와 인민의 사랑을 받게 되였던거지요. 진정 백두산처럼 크고 장려한 사랑을 말입니다.》
그들은 언제부터 걸음을 멈추고 서로 마주 서있게 되였는지 알지 못하고있었다. 은영은 격동되여있었다. 수령의 총애와 인민의 사랑!… 가슴이 뻐근해졌다. 충격이 너무 커서 머리끝까지 아파날 지경이였다. 한 예술가로서 누릴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 바로 그것이 아닐가?… 아버지가 말한 만사람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였다. 림호가 바란것도 바로 그처럼 큰 사랑을 받는 은영이였다.
그런데 은영은 사사로운 감정의 바오라기에 목이 매여있었다. 정말이지 시시한 녀자였다.
멀리서 합창으로 부르는 교성곡 《압록강》의 선률이 대해같은 폭과 깊이를 가지고 울려오고있었다.
이 나라 북변의 장강
이천리 압록강 푸른 물에
저녁해 비꼈는데 황혼을 담아싣고
떼목이 내린다 떼목이 내린다
떼목이 내린다
뉘의 눈물겨운 이야기
떼목우에 깃들었느냐
뉘의 한많은 평생 모닥불에 타서
한줄기 연기로 없어지느냐
…
작곡가 김옥성이 곡을 붙인 교성곡, 두사람은 저도 모르게 그 선률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항일의 애국전통이 거센 흐름을 이루어 굽이치는 압록강의 노래, 그 노래의 끝은 어디일가. 은영은 눈앞의 대동강을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이 세상 모든 강들은 바다로 간다. 압록강과 더불어 지금 저 용용한 대동강의 물결도 바다로 간다. 한없이 크고 장려한 바다!- 그러나 모든 물줄기가 다 바다에 이르는것은 아니다. 땅속에 잦아들고 웅뎅이에 고여 썩기도 하고… 하다면 사랑의 노래는 어데서 끝나는걸가. 저 교성곡의 울림처럼 그 폭과 깊이를 다 헤아릴수 없는 그 노래의 끝은?…
그들은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데로 무엇때문에 가고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조기천이 시계를 보았다. 은영이에게 너무 시간을 빼앗지 않았는가고, 인젠 가봐야 하지 않는가고 물었다. 은영은 머리를 저었다.
《아, 아녜요. 선생님! 일없습니다.》
《고맙습니다.》 조기천은 낮게, 감동에 겨워 말했다. 《은영동문 나에게 그리고 온 나라 인민에게 사랑의 노래를 불러주고있습니다. 만사람이 노래를 안고살며 싸우도록 도와주고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든 은영동무를 만날 때마다…》
《?!…》
걸음을 멈추었다. 교성곡도 바이올린소리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은영은 숨구멍이 막힌듯 입을 벌리고 눈을 감고있었다. 뜨거운 피의 흐름이 가슴속으로 쓸어드는것을 느꼈다. 무얼 말하려는것일가, 왜 말을 멈추었을가? 웬일인지 그가 이제 할 말이 숨막히게 기다려졌다.
바로 그때 누군가 은영이를 부르며 뒤쫓아왔다. 나무가지사이로 언듯거리는 흰옷자락이 먼저 눈에 띄였다. 한정애였다. 처녀는 두사람을 보자 못박힌듯 멎어서며 주춤거렸다.
《정애, 왜 그래요?》 은영이 물었다.
《저… 안됐습니다, 선생님.》 정애는 안면있는 조기천에게 눈인사를 하고나서 잰말씨로 계속했다. 《언니, 부총장선생이 지금 막 야단을 하고있어요.》
《야단을, 그건 왜?》
《글쎄 합창이 끝나면 관현악과 맞추어야 하는데 어델 쏘다니는가구 하면서 빨리 찾아오라구 해서…》
부총장은 오학성이다. 그새 음악지휘를 영영 버리고 사람들을 지휘하면서 더더욱 엄격해지고 까다로와졌다. 그는 생활의 리듬까지도 박절기처럼 한초한초 재여가는것 같았다.
《알겠어요.》
은영의 맥풀린 대답이였다.
한정애가 어둠속으로 사라지자 조기천이 말했다.
《내가 그만 제일 바쁠 때 찾아와서… 정말 안됐습니다.》
《아-니, 일없습니다. 선생님, 우리야 늘 그런걸요. 바쁘지 않을 때가 있나요.》
그렇다. 바쁘지 않을 때란 없다. 안삼불이 기다리고 관중이 기다린다. 보이지 않는 박절기가 재깍거리며 엄정한 시간준수를 요구하고있다.
잠시 그들은 덤덤히 마주 보기만 했다. 끊어진 감정의 연줄을 이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마침내 시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해두는데 축전에 가면 싸우는 조선의 노래를 온 세상에 힘껏 울려주십시오. 내 마음까지 합쳐서!》
《예, 알겠어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인은 손을 내밀었고 은영은 그 손끝을 가까스로 잡았다.
《그럼 안녕히!》
《잘 가십시오.》
《축전에 갈 땐 꼭 역에 나가 바래주겠습니다.》
《고마워요. 선생님!》
시인은 몸을 돌려 떠나갔다.
은영은 눈을 꼭 감고있었다. 무엇때문인지는 알수 없으나 가슴이 답답하여 견딜수 없었다. 점도록 한자리에 서있었다. 교성곡 《압록강》의 장려한 선률이 다시금 물결치듯 가슴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