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사랑에 대한 연구

1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난지 1년이 지났다. 전선은 기본적으로 고착되고 적아쌍방은 대치상태에 들어갔다. 치렬한 공방전, 부단한 소모전과 더불어 쌍방간에 력량상우세를 보장하기 위한 장기적인 힘의 대결이 시작되는것이였다. 조선반도의 남북삼천리를 아래로, 우로 휩쓸던 전쟁의 거센 파도가 38°선을 경계로 밀썰물처럼 끊임없이 서로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나라의 총력을 집중한 힘겨루기였다.

매일같이 적기들의 폭격은 계속되였다. 지어 적들은 나물을 캐는 소녀나 한마리의 송아지도 목표삼아 내리꼰지며 기총탄을 우박처럼 퍼붓군 했다. 바다에서도 밤과 낮을 가림없이 함포탄을 퍼부어댔다. 그러나 온통 페허로 된 거리와 마을에서도 인민은 살아있었고 굴함없이 싸우고있었다. 매일같이 사람들은 삽과 곡괭이를 둘러메고 마사진 공장으로, 철도복구장으로 달려나갔고 늙은이, 어린이 할것없이 탄약과 식량을 이고지고 싸우는 고지로 줄지어갔다. 풀과 나무잎으로 위장을 한 농촌녀성들은 보잡이를 잡고 걸싸게 밭을 갈며 소궁둥짝에 채찍을 휘둘러댔다. 예술인들도 군용렬차나 혹은 자동차로, 아니면 수백리씩 걸으며 불타는 고지와 복구현장으로 달려나갔다. 그들의 어깨우에도 위장그물이 쳐있고 풀줄기가 꽂혀있었다.

 

은영이가 속한 전선위문공연편대는 철원, 세포, 이천지구를 돌아 고성과 통천에까지 나갔다. 인민군부대들과 중국인민지원군부대들에서 다음 로정까지 자동차를 내주군 했는데 자동차행군이 얼마나 고되고 지긋지긋해났던지 걸어서 다니자고 제기할 지경이였다. 유명한 첼로연주가 리영준의 표현을 빌면 《하루종일 얻어맞은 기분》이였다. 적기들의 폭격과 함포사격으로 온통 파헤쳐진 길을 몇시간씩 들추고나면 뼈마디들이 무너져내리고 어깨며 팔다리가 우적거렸다.

그날도 그들은 자동차를 타고 갔다. 새벽이였다. 불도 켜지 않은 두대의 군용차가 해안가로 뻗은 길을 달리고있었다. 편대를 소환하는 명령이 내려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편대에 속한 많은 가수, 기악연주가들이 중국방문예술단으로 떠나야 했다. 한편 베를린에서 진행되는 제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도 이름난 독연가들이 명단에 올라있다고 한다. 중앙에서는 그들을 《무조건 즉시 돌아올것!》이라고 명령하였다. 전시이니만큼 모든것이 명령으로만 통하는 때였다. 따라서 《무조건 즉시》 평양으로 가대려면 이제 고성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고성에 이를 때까지는 별수없이 한시간이상 넌덜머리나는 자동차에서 들추지 않으면 안된다.

여름이 한창이였지만 바다가의 새벽은 시서늘하였다. 지동치는듯 한 폭음과 파편의 울부짖음소리에 습관되여있던 그들이여서 이 새벽의 맑은 공기며 숨죽인 고요가 믿어지지 않았다. 하여 모두가 기슭을 적시는 바다의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은영이 역시 멀리 아득히 싯허연 물갈기를 일으키며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언젠가 림호가 말하던 거세찬 파도와 그 우를 나는 갈매기를 생각하니 눈굽이 젖어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바다는 변함없이 숨쉬며 설레이고있건만 림호는 없다. 그가 이제 은영의 마음속에서까지 자취를 감춘다면?… 아니, 이 무슨 온당치 않은 생각이람! 절대로 그럴수 없다. 그는 영원히 마음속에, 심장속에 살아있을것이다!…

차츰 날이 밝기 시작했다. 산속으로 뻗은 길로 들어서기 전에 적함의 목표로 되지 말아야 했다. 차가 앙앙거리며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벌써 수평선 한끝에 바위처럼 드러나는 적함들이 바라보였다. 가슴조이는 분과 초들이 흘렀다. 밝아오는 아침을 무서워하기는 처음인것 같다.

그때 바다쪽에서 섬광이 번뜩이였다. 시뻘건 불줄기가 새벽하늘을 가르며 날아왔다. 거센 폭발의 굉음이 터진것은 다음순간의 일이였다. 또다시 함포사격이 시작되는것이다. 고요는 박살났다. 전쟁은 한시도 그들을 잊지 않고있었다. 해안포구분대가 있는 산중턱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어덴가 멀리 바다가마을에도 포탄이 날아갔다. 신작로가 뒤집히고 바위들이 부서졌다. 급정거를 하던 자동차가 다시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인제는 운전사에게 운명을 맡기는수밖에 없다. 직탄을 맞으면 모든것이 끝장난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서로 부둥켜안고 한덩어리가 되였다. 죽더라도 함께 죽는다면 그렇게까지 무섭진 않다는것이 인간의 보편적심리가 아닌지?… 도래굽이에서 눈부신 섬광이 번쩍이며 눈앞이 새까매질 때까지 그렇게 앉아서 갔다. 또다시 벼락치는 굉음과 섬광!…

한순간 모두가 폭풍에 날려버렸다. 은영이도 그렇게 휘뿌려졌다. 무엇이, 어떤 힘이 어떻게 허궁 들어 내팽가쳤는지 알수 없었다. 어둠속을 날다가 모래불에 구겨박히던 그때 머리속에 피끗 이렇게 죽는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던 기억뿐이였다.

눈을 떴을 때는 한낮이였다. 은영은 어느 반토굴집에 누워있었다. 반나마 동굴속에 자리잡고있는 집이였으나 굴앞의 문창호지로는 밝은 해빛이 비쳐들고있었다. 안경을 낀 군관이 나어린 흰옷입은 처녀와 같이 그의 침대머리맡에 앉아있는것이 보였다. 밝은 빛에 눈이 부시여 잘 알리지 않았으나 무엇때문인지 군관의 모습이 무던히도 낯익어보였다.

《정신을 차렸군요.》

하얀 위생복을 입은 처녀가 기쁨어린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은영은 어벙벙해졌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것인가. 이 처녀는 간호원이 분명한데 그러면 병원에 실려왔는가?…

《어떻습니까. 아픈덴 없습니까?》

군관이 묻는 말이였다. 군의같지는 않았다. 위생복이 아닌 불에 그슬린 군복에 소좌의 견장을 달고 소리없이 웃고있다. 간호원처녀도 그와 같이 눈시울을 떨며 웃고있었다.

《타박상을 받았더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소좌의 말이였다. 그 순간 은영은 두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떴다. 손으로 밝은 빛을 가리며 살펴보니 틀림없는 그 사람이였다. 은영은 급기야 벌떡 몸을 일으키며 부르짖었다.

《선생님이?!…》

《예, 접니다. 조기천입니다!》

《어마나! 여기서 이렇게 만날줄은!…》 은영은 기쁨을 감출수 없어 두손을 가슴에 모두어쥐고 불같이 속삭이였다. 《정말 오래간만이군요, 선생님, 그새 어데서 어떻게 지내셨어요?…》

《예, 줄곧 전선에 나와있었지요. 종군작가로 말입니다. 그건 그렇구 몸은 좀 어떻습니까?》

《몸?… 제가 어떻게 됐습니까?》

시인과 처녀간호원이 서로 마주보며 소리내여 웃었다. 한바탕 웃고나서 시인이 눈을 끔쩍해보이자 처녀간호원이 생긋 웃으며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제서야 은영은 자기의 몸을 살펴보았다. 머리에 감은 붕대만 아니라면 모든것이 성하였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는 분명 군대병원에 누워있는것이다. 그 리유를 조기천이 설명해주었다.

《그놈의 함포탄이 신통히도 쏘프라노가수들만 때렸더군요. 은영동무와 류선정, 한정애, 이렇게 세사람을 말입니다. 아마 쏘프라노가수들의 노래가 그놈들에겐 제일 귀아프게 들린가부지요?》

시인이 소리내여 웃어대고 은영이도 상긋 웃음을 떠올렸다. 다음순간 웃음을 가무리며 다급히 물었다.

《그럼 류선정, 한정애는?… 그 동무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벌써 퇴원해나갔습니다. 은영동무처럼 모래불에 구겨박힌걸 파내여 실어왔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밖에 나가 아-아, 오-오 하면서 성대가 제대로 보존되여있는가 그것부터 알아보더군요.》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이렇게 시인을 만난것은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은영은 타박상을 입은 머리를 쓸어보고나서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우린 당장 평양으로 가야 하는데 기차를 놓치면…》

《아, 좀 더 누워있어도 됩니다.》 조기천의 말이였다. 《기차는 밤이 되여야 출발합니다.》

《그럼 그새 우린 뭘 해야 합니까?…》

《꿈을 꾸십시오.》

《예?!…》

《꿈이 있는 한 인생은 즐거운 법입니다.》

《?…》

웬일인지 시인의 그 말이 가슴을 뜨끔하게 깨물었다. 그렇게 말하던 또 한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던것이다. 은영이에게 꿈을 꾸는듯 한 눈을 가지고있다고, 언제든 꿈을 잃지 말라고 말하던 사람, 그 역시 마음속에 시를 안고있던 사람이 아니였던가!…

림호를 생각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기가 웃고있는것조차 죄스럽게 느껴졌다. 은영은 그저 웃고있는것이 아니라 명성높은 한 시인에게 웃음을 날린것인지도 모른다. 별안간 가슴을 파고드는 어수선한 느낌에 눈보라를 삼킨듯 오한이 났다.

그때 간호원을 따라 편대동무들이 왁 밀려들어왔다. 제일먼저 한정애가 은영의 목을 끌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언니!… 정말… 다행이예요.》

사람들이 울고있는 한정애를 떼여내며 저저마끔 기쁨과 흥분에 겨워 떠들어댔다.

《콘데숀은 일없어요?》

《시험해봤어요?》

《아 아니, 믿을수 없소. 소릴 내보시오.》

《그래요, 들어봐야 해요!》

아마도 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류선정이나 한정애도 아-아, 오-오 했을것이다. 은영이 마지못해 《저기 바다로…》하고 한두소절을 넘기자 녀동무들이 일시에 그의 목을 끌어안고 웃고 떠들었다. 그 이채로운 모습을 지켜보며 간호원처녀는 연신 손등으로 눈굽을 문지르고있었다.

잠시 조용해져서야 고종우가 말했다.

《조기천선생이 은영동무를 여기 병원에 실어왔소. 류선정동무와 저 한정애까지.》

그의 말에 의하면 조기천이 모터찌클을 타고 오다가 포탄벼락을 들쓴 자동차와 사람들을 발견하고 의식을 잃은 세사람을 먼저 가까운 련대군의소에 실어왔다고 한다. 그는 해안포중대에서 전선신문사로 가던 길이였었다.

은영은 조기천에게로 눈길을 옮겼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조기천은 버릇처럼 안경을 벗어 입김을 불며 닦기 시작했다. 감사의 인사말에 거북해하는것 같았다.

《난 시간이 바빠서…》마침내 그가 하는 말이였다. 《미안합니다만 동무들이 떠나는걸 바래주지 못할것 같습니다.》

순간 은영은 지난해 겨울 만포에서 있은 일을 상기했다. 즐거웠던 그 오솔길, 동요시절로 되돌아간듯 싶던 숲속의 눈길, 그때엔 시인이 은영이를 자청하여 바래주었었다. 마치 그에 대한 보답이라도 생각해낸듯 은영은 불쑥 이렇게 말하였다.

《대신 제가 선생님을 바래드리죠.》

조기천이 안경을 끼였다.

《어데까지 말입니까?》

《문앞까지만!… 그럼 되겠습니까?》

《좋습니다. 허락합니다.》

방안의 사람들이 모두 유쾌하게 웃었다. 그들은 조기천을 장령처럼 앞세우고 비좁은 반토굴집을 나섰다. 알고보니 련대군의소가 자리잡고있는 곳은 기묘한 협곡이였다. 높지 않은 야산들이 병풍처럼 사방을 막고있는데 골어귀까지 울창한 수림으로 덮여있고 그 사이로 작은 시내물이 노래에서처럼 돌돌 흐르고있었다. 멀리에서 쿵-쿠궁! 울려오는 포성만 아니라면 동화의 세계에 들어선것이라고 느껴질것이다.

그들은 내물이 흐르는 길아닌 길을 따라 내려갔다. 골어귀까지는 100메터쯤 되였는데 그곳에서 련대군의소 병동까지는 무수한 바위투성이여서 걸어서 드나들어야 했다. 그리하여 시인은 골어귀의 초소막에 모터찌클을 맡겨두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어떻게 실신해있는 세 녀배우를 업고 들어왔는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한동안 아무말없이 걸었다. 별안간 은영은 이상한 예감에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뒤따르지 않는다는것을, 속이 엉큼한 사람들이 제때에 발걸음을 늦추어 떨어졌다는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조기천은 웃고 말았지만 은영은 다시금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말벌에 쏘인것처럼 때끔거리는 아픔과 차디찬 오한에 금시 입귀에서 아물거리던 미소가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대신 심장이 쿵쿵 울렸다. 께름직하고 아릿한 불안이 걷잡을길없이 엄습해오는것을 느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다 들었습니다.》마침내 시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정말 기뻤습니다. 어머니와 동생들 그리고 어린 딸애는 잘 있겠지요?》

《예, 예…》

은영은 아무 까닭없이 비틀거렸다. 치마자락에 발을 걸채인것 같기도 하고 돌멩이를 걷어찬것 같기도 했다. 구깃구깃해진 마음속에 수치와 절망의 뾰족한 가시가 들어박히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였다. 결곡하고 감때사납던 한 사람에게, 또 소탈하고 열정적인 이 시인에게 죄가 된다는것을 왜 미처 생각지 못했던가!…

《나는 이번에》하고 시인이 또 말했다. 《실로 많은것을 체험했습니다. 우리의 힘, 우리의 승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있는지 절감했다고 할가… 은영동무도 놈들이 정전담판을 정식 제의해왔다는 소식을 들었을테지요? 얼마나 많은 눈물과 아픔, 피와 땀을 바쳐 앞당겨온 오늘이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그 벅찬 느낌을 시에 담아봤는데…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예.》은영은 불같이 속삭이였다. 《정말 들어보고싶었어요. 선생님이 직접 읊는 시를요!》

《좋습니다.》

시인은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발끝을 내려다보며 나직이 숨결을 내뿜더니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이윽고 입을 열며 화염같은 시구절을 내뿜기 시작하였다.

 

세계의 정직한 사람들이여!

지도를 펼치라

싸우는 조선을 찾으라

그대들의 뜨거운 마음이 달려오는 이 땅에서

도시와 마을은 찾지 말라

남북삼천리에 재더미만 남았다

태양도 검은 연기속에서

피같이 타고있는 조선!

폭격에 참새들마저 없어진 조선!

 

속이 후두둑 뛰고 짜릿한 전률에 심장이 흠칫거렸다. 어느덧 시의 화염을 삼킨듯 목구멍이 쓰려났다. 전선길에서, 마을과 전야에서 은영이 본 페허의 잔해들이 눈앞에 삼삼하였다. 태양도 피같이 타고있는 조선!… 쓰라린 아픔과 분노의 불길이 그대로 시로 새겨지는듯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살아있다

불속에서도 연기속에서도

인민은 살며 싸운다

조선은 싸운다

 

은영은 잠자코 있었다. 시에서 받은 충격이 하도 커서만이 아니였다. 적막이 골안을 꽉 채우고있었다. 울퉁불퉁 돌과 바위들이 널린 길아닌 길, 그밑을 감돌아흐르는 내물소리도 없다. 새들만이 열심히 날아예고있다. 폭격에 참새들마저 없어진 조선! 하고 시인은 격앙되여 읊었으나 여기서는 뭇새들이 자유로이 삶을 야단스럽게 떠들고있다. 이렇듯 평온한 골안도 있다는것을, 온 나라의 숲에서 이제 새들이 마음껏 노래할 날이 꼭 오리라는것을 극성스럽게 지저귀는것만 같다.

《무슨 생각을 합니까?》시인이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닙니까? 아니면…》

《아, 아네요.》

은영은 입을 벌리고 싱그러운 숲의 향취를 한껏 들여마셨다. 그리고는 얼굴을 붉히며 나직이 말했다.

《시를 들으면서… 생각했어요. 나는 가수인데 왜 아직 자기의 목소리를 찾지 못했을가 하고 말이죠.》

《은영동무는 특이한 자기 목소릴 가지고있습니다. 그게 무언지 아직 모르고있는가요?》

《말씀해주셔요. 선생님.》

시인은 대답을 서둘지 않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은영이를 곁눈질해보고는 웅근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 보나 은영동문 사랑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있습니다.》

《예?》

《사실 난 동무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걸 생각했습니다. 전선에 나와서도 늘 귀전에 쟁쟁 울리던 그 노래, 바로 그것은 깨끗하고 진실하고 사심없는 사랑의 노래라고 말입니다. 동무의 노래를 듣느라면 마치 사랑의 고백을 듣는것처럼 느껴지는게 아니겠습니까!… 인간을 사랑하고 생활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심중의 열정에 넘친 고백을 말이지요. 흔히 사랑의 고백이라고 하면 속삭임소리로 생각될수도 있는데 동무는 그것을 그저 목소리로만 아니라 온몸의 넋을 다 쏟아붓는, 다시 말하여 벅찬 호흡으로 노래한다고 할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청중이 그것을 느낀다는것은 가수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 아닐가요?…》

별안간 은영은 숨이 막히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사랑! 물론 사랑을 떠난 예술가는 없다. 예술가이자 곧 생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랑하도록 심장에 호소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가수에게 있어서 자기의 노래에 사랑이 울리고있다는 평가야말로 얼마나 과분한 치하인것인가!…

사랑, 조기천은 자기의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었다.

 

사랑은 높은 젖가슴도

별같은 눈매도 아니다

사랑은 그 뿌리를

참된 인생의 봄에 두었다

 

하다면 은영은 그 인생의 봄에 뿌리를 둔 사랑을 노래하고있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닌가!…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 사람들의 마음속에 참된 인생의 봄을 호소하는 가수!…

불현듯 조용히 울고싶은 심정이였다. 행복을 느낄새도 없이 어느새 쓰디쓴 회오에 마음이 젖어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지금 은영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애달픈것인지 열정의 시인 조기천은 짐작조차 못하고있을것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어쨌든 무엇인가 잘못되였다. 더 이상 끌어서는 안될 이성의 불협화음, 이성의 엇박자… 은영은 입술을 깨물며 두손을 맞잡고 비틀고있었다.

《왜 제 말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조기천이 서운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안색이 좋지 않군요.》

《아, 아니! 그런게 아니라》은영은 다시금 허우적거렸다. 《그저 고마워서… 언제든 그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마침 초소막이 눈앞에 있었다. 따발총을 멘 녀성군인이 조기천을 향해 돌아서며 맵시나게 거수경례를 했다.

《선생님, 모터찌클을 다 닦아놓았습니다.》

《그건 왜?》

조기천이 의아해하자 녀성군인은 두볼의 보조개를 깊이 파며 귀인상스럽게 웃었다.

《조기천선생님이 타시는 모터찌클이 아닙니까!》

《그렇다?!》하고 시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수고했소, 고맙소. 처녀동무!》

초소막앞에 정히 닦아놓은 모터찌클이 있었다. 조기천은 그것을 잡고 앞으로 얼마간 밀고 나갔다. 여기서 도로는 지척이다. 풍을 친 자동차들이 질주해가고있었다.

《문밖까지 바래주겠다고 했지요?》 조기천이 이상하게 웃으며 하는 말이였다. 《자 다 왔습니다.》

웬일인지 그는 무슨 말인가 더 하려다 망설이고있는듯 했다. 모터찌클을 멈춰세우고 잠시 부스대였다. 웃주머니에서 무엇인가 찾다가 찾지 못하고 대신 안경을 벗어 깐깐히 닦기 시작했다. 착잡한 생각에 잠길 때마다 닦군 하는 안경… 은영은 두려워났다. 시인이 무엇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잃고있는지 알수 없어 저도 모르게 숨결이 가빠졌다. 인제는 시인이 닦고있는 안경에 모든것이 달려있는상 싶었다. 무던히도 오래 닦고있는것에는 진정 참을수 없을 지경이였다.

시인은 마침내 큰 숨을 내뿜었다. 안경을 다시 귀에 걸고나서야 입을 열었는데 웬일인지 눈길은 뒤쪽의 초소막에서 웃으며 지켜보고있는 녀병사에게로 가있었다.

《이제 평양에 돌아가면, 아니 내가 이제 돌아가면…》 말이 잘 되지 않는듯 그는 억지로 웃음을 떠올리며 힘들게 이었다. 《여기 화선에서 쓴 시들을 또 읊어드리겠습니다. 은영동문 새로 준비한 노래를 부르고…》

《정말 그랬으면…》

《됐습니다. 그렇게 약속했습니다.》그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럼 부디 잘 가십시오.》

《안녕히…》

시인이 모터찌클의 발동을 걸었다. 우당탕탕!… 참고 참아오던 격정이 배기가스로 뿜어나오는듯… 시인이 올라타는것과 동시에 모터찌클이 후닥닥 앞으로 튕기듯 달려나갔다.

《또 만납시다!》

시인의 웨침소리, 은영은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불시에 눈굽이 쿡 쑤시고 마음이 저릿저릿해졌다. 아니, 선생님, 우린 다시 만나지 않는것이 더 좋지 않을가요? 그래야만, 그래야만 한다는걸 오늘 깨달았으니… 정말이지 난 어찌하면 좋습니까?… 아, 선생님! 이 못난 저를 용서하십시오. 이렇게밖엔 할수 없는 저를… 그리고 부디 몸조심하세요. 부디, 부디… 행복하시기를!…

눈물이 앞을 가리고있었다. 아픔때문이거나 아쉬움때문만이 아니였다. 무엇인가 이름할수 없는 애수가 목구멍으로 치밀어오르고 뜨끔한 자책이 마음을 허비기때문이였다.

모터찌클은 먼 산굽이쪽으로 사라져갔다. 얼마후엔 구름처럼 날리는 먼지발을 남기고 산너머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은영은 오래도록 한자리에 못박힌채 움직이지 못하고있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