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대동군 룡산면 소룡리.

정오였다. 국립예술극장의 소개지로 정해진 크지 않은 이 부락으로 두대의 야전승용차가 먼지를 뽀얗게 일구며 달려오고있었다. 위장을 한 그 차들이 동구밖에서 너무도 속도높이 달려오는통에 농립을 쓴 늙은이가 겁을 먹고 채찍을 휘둘러 사전에 달구지를 길섶에 비켜세웠다. 멍에를 메고있던 누렁소는 무슨 변이 났나 해서 휘휘 꼬리를 저으며 질풍같이 달려오는 차들을 머룩머룩한 눈으로 바라보고있었다.

은영이도 그쪽을 보고있었다. 국립예술극장의 중앙대(30명으로 구성된 행사공연대, 기타 극장성원들은 아직 신의주에 남아있었다.) 여러 동료들도 은영이를 따라 마중나와있었다. 먼지기둥이 물을 대기 시작한 논벌을 휩쓸며 구름처럼 밀려왔다.

드디여 차들이 멎자 앞차에서 뛰여내린 인민군군관이 차꽁무니를 따라 밀려온 먼지타래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차문을 열어주었다. 네댓살난 처녀애를 업은 어머니가 먼저 내렸다. 그다음 유한이가 먼저 굴듯이 뛰여오고 미영이도 은영이를 보자 와!- 하고 울며 달려들었다. 은영의 딸을 업은 어머니도 허둥거리며 달려왔다.

《은영아!-》

《언니야!》

《누나!-》

누가 누구를 먼저 얼싸안았는지 알지 못했다. 온 가족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속에 정신없이 울부짖었다. 그새 동생들은 몰라보게 컸지만 뼈만 앙상한 몰골이였다.

《유한아, 네가 정말 유한이냐?…》

《누나, 누나가 보구싶었어.》

어머니는 어린애를 업고 한쪽에 밀려나고 말았다. 한참 매달리고 부둥켜안던 동생들이 뒤늦게야 정신을 차린듯 일시에 머리를 돌려보았다. 어머니가 업고있는 어린것을 생각한것이였다.

《누나, 현순이야.》

유한이가 먼저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어린 딸을 내려놔주었다.

《현순아, 어머니다. 네 엄마야.》

은영은 허우적거리며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허리가 부러지고 무르팍이 꺾이운듯 휘청거리며 금시 앞으로 쓰러질듯 했다.

《현순아!-》

눈물의 속삭임, 팔을 벌리고 딸을 안으려 했다. 그러자 머루알같은 어린것의 두눈이 겁먹은듯 휘둥그래지는것을 보았다. 어린것이 뒤걸음쳤다. 코를 찡기고 입귀를 떨며 휘딱 돌아서더니 《엄마》하면서 할머니품에 와락 안기는것이였다.

별안간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그래도 여전히 두팔을 벌리고있다.

《현순아, 내 딸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에 쓸어든 눈물이 거품처럼 끓었다. 《너 왜 그러니. 엄마야, 나를 모르겠니?》

그러나 어린것은 머리를 흔들며 자꾸만 할머니에게 파고들뿐이였다. 할머니의 치마자락을 잡아 비틀며 돌아보지도 않았다. 은영은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말았다. 뜨거운 피가 머리속에 가득 들어찼다. 얻어맞은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별안간 흐느껴울기 시작했다. 누구를 탓하랴. 전쟁전부터 거의 나어린 자식을 돌보지 못한 은영이였다. 광주지역에 선전활동을 나가있던 그때부터 전쟁이 일어난 이후 언제 한번 딸애를 껴안고 잠든적도 없는 은영이였다. 하여 은영은 쓰라린 아픔에 못이겨 울었다. 림호를 그리며 울었고 사랑하는 딸애의 처량한 모습에 가슴아파 울었다.

어머니도 치마자락으로 눈굽을 훔치고있었다. 동생들이 클쩍거리고 모여섰던 동료들도 머리를 외로 돌리며 입을 싸쥐였다.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울고있는 모습이 어린것을 놀래운것 같았다.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뜨아한 표정으로 살피더니 할머니에게서 떨어져나왔다. 무엇이 그 애로 하여금 어머니를 알아보게 했는지는 누구도 알수 없었으나 겁먹은듯 천천히 걸음을 옮겨오고있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고있는 은영의 앞에 이르자 말끄러미 지켜보았다. 얼룩이 진 얼굴에서 잠시 새까만 두눈이 깜박도 안하고 보더니 그 애는 갑자기 입을 비쭉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잉- 하고 울음을 터뜨리자 때국물이 오른 얼굴이 볼성모양이 되였다. 은영이 앞으로, 바로 어머니앞으로 한발작 더 내짚고는 《엄마!》하고 불러보는데 그 목소리도 눈물속에 잠겨들었다.

비로소 은영은 얼굴을 싸쥐고있던 손을 내렸다. 고사리같이 가늘고 어린 자기의 딸을 놀란듯 쳐다보았다. 그러자 어린것이 또 침이 흐르는 입을 벌리고 잉- 잉 울어대는것이였다.

《엄마-》

다시금 핑- 쏟아지는 눈물에 은영은 눈앞이 뿌예졌다.

《현순아!-》

급기야 은영은 두팔을 벌려 어린것을 와락 껴안았다. 정신없이 허덕이며 어지러운 그 애의 얼굴에 볼을 비벼대였다. 하여 어린것의 두볼에, 목덜미에 그리고 오래동안 빨래를 해보지 못한 람루한 옷깃에 뜨거운 눈물이 방울지어 떨어져내렸다. 어린 현순이도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목을 끌어안고 엉엉 울고있었다.

《엄마-》

《현순아, 내 딸아!…》

다시 찾은 사랑, 아니 달리는 될수 없는 혈육의 사랑, 하염없이 눈물이 샘솟았다. 인제는 보는 사람들모두가 소리를 죽여가며 울고있었다. 동생들이 또 달려들고 어머니마저 한덩어리가 되여 울었다. 그들모두를 껴안고 은영은 머리를 쳐들었다. 맑고 푸른 하늘을 향하여 마음속으로 목메여 부르짖었다.

《장군님, 저는 웁니다. 그저 울기만 합니다. 이 고마운 심정을 어떻게 다 말씀드릴수 있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랑, 이 은정을 어떻게 다 갚을수 있겠는지… 정녕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울고만 있습니다. 고마우신 우리 장군님, 어릴적부터 늘 목메여 찾고 부르던 나의 아버지, <나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

부락에서 사람들이 쓸어나오고있었다. 더벅머리 애들이 먼저 소리치며 달려왔다. 개들이 뒤따르며 왕왕 짖어대고 나무우에 앉아있던 새무리가 좌르르 자갈처럼 쏟아져내리더니 급기야 회오리치듯 하늘가로 날아올랐다.

그때 누군가 은영을 잡아끌었다. 길바닥에서 울지만 말고 어머니와 동생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자는것이였다. 그제서야 한극장 동료들이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게 되였다.

은영은 딸애를 안고 동생들과 앞서 걷고있었다.

뒤쪽에서 사람들이 어머니와 이런저런 소식을 주고받는 말가운데 수미의 이름이 불리워서야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뭐라구요, 어머니?》 은영이 물었다. 《수미를 만나봤어요?》

《그래, 그 앤 지금…》 뿌옇게 먼지오른 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기며 어머니가 말했다. 《골병든 환자꼴이더구나. 글쎄 어떤 놈팽이한테 시집을 갔다는데 밤낮 매를 맞고 팅팅 부어다니질 않겠니. 우리가 부산으로 내려가기전 일이니 그담은 어찌됐는지…》

《시집을 갔다구요? 누구한테 말입니까?》

이렇게 물은것은 고종우였다. 은영에게는 어쩐지 그의 목소리같이 들리지 않았다.

《무슨 영화감독이라던지…》 어머니의 대답이였다. 《난 그저 떠도는 소릴 들었을뿐이라우.》

은영은 고종우의 얼굴을 마주볼수 없었다. 수미의 이름이 불리울 때부터 별안간 명치끝이 얼얼해지는것 같았다. 사랑과 행복을 찾을수도 있었던 그 녀자를 끝까지 붙잡지 못한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누가 그를 붙들어둘수 있었으랴. 고종우가 말했듯이 갈데로 간것이라면!… 다행히 화제는 그 이상 더 번져지지 않았다. 서울에 남은 예술인들에 대하여 저저마끔 묻고있었지만 어머니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일행은 마을초입에 있는 초가집으로 들어섰다. 은영이의 가족을 차에 태우고 온 인민군군관이 리당위원장과 같이 부락에서 내준 그집 토방우에 서서 일행을 기다리고있었다. 부엌문부터 활짝 열어젖히며 인민군군관은 개선장군처럼 웃고있었다.

《자- 이 집입니다. 어머니!》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