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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이 두번째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공연하게 된것은 이듬해 봄이였다.

1951년 4월 30일 당중앙위원회 회의실에서 있은 5. 1절기념경축공연에서 은영은 《고향의 어머니》에 이어 쏘련노래 《젊은 병사의 노래》를 독창으로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은영은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을 향해 정중히 허리굽혀 인사를 올렸다. 이어 관람석에서 터져나온 요란한 박수갈채에 머리를 들지 못하고있었다. 우리 장군님께서 맘에 들어하실가, 장군님께 마음다진대로 기쁨을 드렸을가? 하는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눈부신 조명등의 불빛으로 자세히 볼수는 없었지만 첫곡이 끝나자 제일 선참으로 장군님께서 박수를 쳐주시던것만은 똑똑히 가려보았었다. 그런데 두번째 노래는?… 그것은 쏘련병사를 노래한것이였다. 전세계로동계급의 명절을 경축하는 공연이여서 외국손님들도 많이 참석하였으므로 그 쏘련곡도 선택되였던것이다.

잠시후 머리를 쳐든 은영은 눈앞에 나와 선 한 인민군군관을 보았다. 손에 꽃다발을 들고 전보대같이 막고 서있다.

《받으십시오.》 그 군관이 말했다. 《이 꽃다발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몸소 배우동무에게 보내신것입니다.》

《?…》

은영은 물속에서 들려오는듯 웅글게 울린 그 목소리의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한듯 두눈만 깜박거리고있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그에게, 바로 김은영에게 친히 꽃다발을 보내주신것이다. 한순간 박수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오직 조명등에 비쳐진 그 꽃다발만이 현란한 금빛으로 확대되여 안겨들고있었다.

《자, 어서!》

군관이 독촉했다. 그제서야 은영은 그것을 받아안으며 다시금 허리굽혀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천둥같은 박수소리가 다시 장내를 뒤흔들었다.

그 시각 수령님께서는 허정숙에게 저 김은영동무는 확실히 특기있는 가수라고, 저 가수는 새까만 눈에 정기가 돌고 동작도 몸에 익숙되여있다고 치하하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장내를 가리키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보시오. 저 쏘련사람들이 은영동무에게 완전히 매혹되였습니다. 은영동무가 부른 <젊은 병사의 노래>는 노비꼬브가 작곡한 노래인데 2차대전때 쏘련병사들이 전선으로 나가면서 자기 안해에게 꼭 승리하고 돌아오리라 약속한것을 잊지 않고 전투마다에서 용감하게 싸우면서 락관적으로 부른 노래입니다.

그것을 은영동무가 특색있는 소리색갈과 률동적인 동작까지 배합하여 잘 형상하였기때문에 저 사람들이 감동되여 소리치고있는것입니다.

확실히 은영동무는 노래형상을 잘합니다. 그래서 내가 받았던 꽃다발을 부관을 시켜 가져다주게 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만족한 미소를 그리시며 떠들썩한 장내의 환호에 맞추어 다시 박수를 쳐주시였다.

비록 이러한 사연은 후에 안 일이지만 그 시각 은영은 눈물을 머금고 마음속으로 인사를 드리고있었다.

《고맙습니다. 장군님을 모신것만도 분에 넘치는 일인데 친히 꽃다발까지 안겨주시니 무어라고 인사올릴지 모르겠습니다.》

이윽고 다시 머리를 들었을 때 은영은 수령님께서 손을 들어 답례해주시는것을 보았다. 그러자 별안간 모든것이 눈부신 빛살에 가리워졌다. 령롱한 불빛만이 눈앞에서 펀뜩이고있었다. 수령님의 모습도 그 눈부신 빛에 가리워졌다.

아니, 눈부신 그 광망이 곧 수령님의 모습이였다!…

공연이 있은 다음날에야 수령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가까이에서 뵈올수 있었다. 수령님께서 친히 경축연회석상에까지 은영이와 주요배우들을 불러주셨던것이다.

《아, 김은영동무도 왔구만.》 수령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자, 은영동무, 내옆에 와앉으시오.》

은영은 어떻게 자리에 앉았는지 알지 못했다. 당과 국가, 군대의 간부들이 일시에 눈길을 모으고있었다. 송구함과 벅찬 감격에 눈도 바로 들지 못하였다.

자기가 아직 김일성장군님께 인사의 말씀도 미처 올리지 못했다는것을 그는 감감 잊고있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수령님 제일 가까이에 자기가 앉아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불빛은 그리도 밝고 따스했고 연회상의 유리그릇들에서 반사되는 빛발 역시 그리도 현란하여 눈이 먼것만 같았다.

수령님께서 환히 웃으시였다.

《자, 편히 앉으시오. 마음을 푹 놓고… 어제 동무가 노래를 잘 불렀기때문에 내가 부관을 시켜 꽃다발을 보내주었습니다. 또 지금은 이렇게 연회에 오게 했고… 제 집처럼 생각하고 많이 드시오.》

수령님께서는 그의 앞으로 음식그릇도 당겨놓으시고 손수 갖가지 음식을 집어주기도 하시였다.

《그새 전선위문공연을 다녔다지. 고생이 많았겠소. 남반부에서 들어온 동무가 전쟁승리를 위해 한몫 하고있으니… 얼마나 좋소. 그래 배우생활이 마음에 드오?》

《예, 장군님.》하고 은영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처음으로 말씀드렸다. 《정말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아 앉소. 앉아서 얘기합시다. 참, 이 갓김치를 맛보시오. 온실에서 키운것인데도 참 별맛이요.》 수령님께서 갓김치가 담긴 그릇을 또 옮겨주시였다. 《어제 동무가 <고향의 어머니>를 부를 때 말이요. 정말 감동되였소. 그때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어머니 생각을 하였소.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나신 우리 어머니를…》

수령님께서는 수저를 드신채 어머님에 대한 추억에 못이겨 조용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 어머닌 내가 갓김치를 좋아한다고 늘 터밭에 심고 가꾸시였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구만. 어느해인가 항일무장투쟁을 갓 시작했을 때였는데 어머님께서 몹시 앓으신다는 기별을 받고 집에 들린 일이 있었소. 그때 어머님께선 병환이 심했는데도 내가 오면 주려고 갓김치를 담그어놓고 기다리신게 아니겠소. 그날 어머님께서는 부녀회원들과 같이 갓김치물에 만 국수를 우리 동무들에게 대접했는데 정말 진수성찬 부럽지 않았소. 저저마끔 두그릇, 세그릇 곱배기를 해대는데 하-그러다나니 그만 어머니와 부녀회원들은 맨 국수물만 잡숫게 되지 않았겠소!…》

수령님께서 호탕하게 웃으시자 귀를 기울이고있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벙글써 하고 웃었다. 은영이만이 저가락을 입에 물고 수령님의 모습에 정신을 팔고있었다.

《그렇지만.》하고 수령님께서는 정색하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김치국물만 마시면서도 어머닌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앓으시던것 같지 않게 노상 웃고계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소. 정말 평생을 두고 잊을수 없는 날이였지. 은영동무, 바로 동무가 어제 그처럼 절절한 심정으로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고향의 어머니>란 노래에 담아 불러서 나도 가슴이 저릿해지더라니까. 그날의 어머니를 추억하면서 말이요.》

수령님께서는 다시 은영에게 음식을 권하시였다.

《왜 구경만 하겠소? 어서 들라니까!》

수령님께서 막 저가락으로 집어주시는데 부관이 가까이 다가와 귀속말로 무엇인가 말씀드렸다. 좌중의 사람들모두가 긴장한 낯빛으로 수령님의 표정에 눈길을 모으고있었다. 전쟁은 경축연회장에까지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부관의 보고에 머리를 끄덕이며 웃고계시였다.

《음- 그럴 때가 됐지.》 수령님께서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하시는 말씀이였다. 《우린 바쁠게 없소. 정전담판이면 담판, 전쟁이면 전쟁!… 그렇지만 아직은 공식적인 제의가 없으니 여론따위엔 귀기울일 필요가 없소. 남일총참모장에게 그렇게 말해주시오.》

로 그때에야 은영은 자기가 너무 외람되게 앉아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여기는 경축연회장이다. 그러므로 지김일성장군님께 인사를 올리고싶어하는 사람들은 많고도 많을것이다. 외국손님들도 적지 않다. 그들모두가 나때문에, 은영이란 한 녀배우때문에 전세계로동계급의 국제적명절에 즈음하여, 전쟁의 최후승리를 위하여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 축하의 인사를 올릴 기회를 찾지 못하고있는것이 아닐가?!…

아닐세라 여러 사람들이 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있는것이 보였다. 은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군님, 그럼 전…》

《아니, 왜 그렇게 빨리?…》

수령님께서는 가까이 다가오는 외국대사들을 스쳐보시였다.

《음- 그럼 따로 시간을 내서 얘길 나눕시다. 내 이제 부르겠소.》

수령님께서는 금시 문을 열고 들어서는 부관을 가까이 부르시였다.

《연회에 참가한 김은영동무랑 예술인들을 오늘밤은 최고사령부에서 쉬게 하시오.》

 

×

 

최고사령부… 밤이였다.

어느 먼곳에서 탐조등의 광망이 밤하늘을 소리없이 가로세로 토막치며 휘딱거렸다. 그러나 이 밤따라 아직 적기들은 나타나지 않고있다. 밝은 달빛이 골안의 집들이며 이끼덮인 바위들, 새순이 돋고있는 나무가지들을 선명하게 비쳐주었다. 실개울소리가 은밀한 속삭임처럼 아늑한 봄날의 정서를 끝없이 주절거렸다.

허정숙이 은영이를 안내하였다. 회색코트를 어깨에 걸치신 수령님께서는 민족보위상 최용건과 함께 최고사령부작전실에서 멀지 않은 산기슭에 서계시였다. 무엇인가 전쟁과 관련된 문제를 말씀하시던중인듯 싶었다. 은영이 목메인 소리로 인사를 드리자 그이께서 환히 미소를 그리시였다.

《아, 김은영동무가 왔구만!》

은영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고나서 수령님께서는 뒤쪽의 최용건을 돌아보시였다.

《이 동무가 남반부에서 들어온 유명한 독창가수입니다.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때 처음 이 동무의 노래를 들었는데 그때 <어뢰정의 노래>와 쏘련노래 <바다의 노래>를 아주 멋있게 불렀습니다. 최용건동무, 생각나지 않습니까?》

최용건이 《예, 생각이 납니다. 장군님.》하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밝게 웃으시였다. 마침 통나무를 다듬어만든 걸상들이 바위들사이에 놓여있었다.

경위중대군인들이 만들어놓은 휴식장 같았다. 수령님께서는 거기로 은영이를 이끄시였다.

《언제부터 동무를 만나보려 했지만 시간을 낼수 없었는데 오늘에야 이렇게 마주 앉게 되였구만. 자 편히 앉으시오. 아직 밤이면 날이 찬데 목수건도 감구… 가수들이야 목을 보호하는게 기본이지.》

은영은 수령님과 최용건의 사이에 앉고 허정숙은 맞은편 걸상의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멀찍이 샘물이 흘러내리는 곳에서는 은영이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던 그 부관이 발걸음소리를 죽이며 오락가락하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먼저 은영의 나이며 고향, 어떤 학교를 나왔고 노래는 언제부터 불렀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리하여 은영은 고향 회령에서 13살때 전국녀중생들의 성악콩클에 참가하던 일부터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만단사연이 나라의 운명을 걸머지고계시는 인민의 수령, 최고사령관동지께 과연 필요한것이였을가?… 은영은 알수 없었다. 아니 불필요한, 전혀 무의미한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주의깊게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귀기울여 들어주시였다. 은영이 13살나이에 성악콩클에서 1등을 하던 대목에서는 혀를 차며 놀라움을 표시하셨는가 하면 김제식선생의 도움으로 리화녀대를 수료한것을 아시고는 의미있게 머리를 끄덕이기도 하시였다.

은영은 계속하여 서울에서 교향악단의 독창가수로 좌우익예술단체들에서 주최한 가극 《카르멘》, 《파우스트》, 《리고레또》와 《춘향전》, 쇼팡의 《리별의 곡》주인공역을 수행하고 독창가수로도 많이 출연했지만 그후 아버지와 동생, 미처 성례도 치르지 못한 남편이 적들에게 체포되여 무참히 학살된 후부터는 전적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무대에 나서 노래를 부른데 대하여, 그리하여 전쟁이 일어나 서울이 해방되자 곧 전선지구경비사령부협주단에 들어가 활동한 사연까지 죄다 말씀드렸다.

《음-》 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였다. 《그런 가슴아픈 사연도 있었구만.》

《…》

은영은 아프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수령님께 가슴아픈 사연을 말씀드린것을 후회하지 않을수 없었다. 전선의 중하를 한몸에 안고 계신 수령님께 자기가 근심을 끼쳐드린것이 죄스럽게만 느껴졌다. 하여 눈시울을 떨며 머리를 수그렸다.

《그래 둘째 동생소식은 모르오?》 수령님께서 물으시였다. 《차한이라고 했던가?》

《예, 장군님. 차한입니다. 전쟁때 우연히 지리산빨찌산출신 한 사람을 만나 들었는데 그 앤 지리산빨찌산에 들어가 싸우다가 희생됐다고 합니다.》

어쩌는수없이 또 가슴아픈 사연을 말씀드리지 않을수 없었다. 은영은 될수록 화제를 딴데로 돌리고싶었으나 수령님께서는 계속 물으시였다.

《그럼 어머니와 다른 동생들… 또 어린 딸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직 모르고있겠구만?》

《예.》

가느다란 대답. 수령님께서는 머리를 기웃하시였다. 무엇인가 말씀하시려다가 눈길을 옮기시는것이였다.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였다. 민족보위상 최용건과 문화선전상 허정숙이 나무라는 눈빛으로 은영을 지켜보고있었다. 특히 최용건의 눈빛은 사뭇 준엄하였다. 과묵하고 묵직한 그의 성미로써는 장군님을 아프게 해드린 은영을 용서치 않을상싶었다. 하여 은영은 머리를 숙인채 저도 모르게 목에 감고있던 수건 한끝을 자근자근 이발로 짓씹고있었다.

이윽토록 무거운 생각에 잠겨계시던 수령님께서 부관을 부르시였다.

《아직 소식이 없소?》

《예, 장군님. 아직…》 부관이 힘들게 말씀드렸다. 《이제 소식이 오면 즉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음- 오늘중으로 전선을 넘어선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늦어질줄은 몰랐구만.》

수령님께서는 시계를 보시였다. 팔을 들어 달빛에 비쳐보시는데 무척 어두운 안색이시였다.

달이 구름속을 하염없이 헤염쳐갔다. 그리도 밝게 비치던 달빛이 어느덧 골안의 숲과 샘터에 가끔 창백한 빛을 뿌리고는 곧 아슴푸레해지군 하였다. 나무잎의 설레임소리도 어느덧 목갈린 신음소리처럼 느껴졌다. 은영은 추위를 타는듯 몸을 떨었다. 내가 무슨 망녕된짓을 했단 말인가. 전쟁의 운명을 걸머지신 장군님께 어쩌면 그런 하찮은 일까지 말씀드릴수 있었던가?… 그때 자그마한 복슬개 한마리가 꼬리를 한들거리며 달려왔다. 달려와서는 앙증스럽게 수령님의 무릎아래를 감돌며 애무를 바라는듯 두발로 허비기 시작했다. 은영이 복슬개를 안으려 했다. 그러나 그놈은 발딱 뛰쳐달아났다가 또 수령님께 매달리는것이였다. 재색의 목덜미에 눈같이 하얀 점들이 찍힌 강아지였다. 수령님께서 그것을 안아 한동안 쓰다듬다가 은영이에게 넘겨주시였다. 그러자 그놈은 가르릉거리며 은영을 쳐다보았지만 다시 달아나지는 않았다. 드디여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후퇴때엔 또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소. 그렇지?…》

《…》

《일없소. 얘길 마저 들읍시다.》

은영은 머리를 들었다. 불현듯 만포까지의 멀고먼 행군로정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특히 순천에서 적 락하산부대와 맞다들렸을 때의 일들… 하지만 이런것까지야 어찌 말씀드릴수 있으랴!… 그가 주저하는것을 보신 수령님께서 다시 일없다고 오늘은 동무를 위해 우정 시간을 내지 않았는가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은영은 또 어렵던 그 나날들에 대하여, 박수미가 서울로 돌아가자고 꼬드기던 나머지 저혼자 달아나던 일에 이르기까지 죄다 말씀드렸다.

《수미, 박수미란 말이지…》 수령님께서 조용히, 깊은 생각에 잠겨 뇌이시였다. 《누구나 신념과 량심이 없으면 그렇게 되는 법이요. 우리가 산에서 왜놈들과 싸울 때에도 보니 평상시에 변덕이 심하고 동지들과 한 약속을 쉽게 어기는 사람은 영낙없이 어려울 때 변절의 길로 떨어지더구만. 박수미란 녀자도 모름지기 변덕쟁이거나 의리를 모르는 사람일거요. 어떻소. 그렇지 않소?》

《예, 장군님. 원래 변덕이 심했습니다.》

《보시오. 한번 먹은 마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면 딴 길을 걷기 마련이지. 이건 생활의 법칙이요. 그래서 신념과 량심이 중요한거요. 은영동무, 생각해보오. 사람이 왜 사는가?… 사랑을 위해서 산다고도 할수 있소. 그런데 동지들의 사랑, 부모처자간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도 잃으면 뭐가 되겠는가?… 사랑이란 곧 의리에 기초하고있는데 그마저 줴버리고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말이요. 치욕밖엔 차례질게 없지. 치욕밖엔!…》

수령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밤하늘가 멀리로 눈길을 주시였다. 은영이도 따라 일어섰다. 수령님께서 그를 돌아보시였다.

순간 그이의 안광에서 무엇인가 번득이는듯 했다.

《은영동무도 그새 곡절이 많았구만. 시련도 많이 겪었구… 그래서 당을 따르는 마음도 그만큼 굳세여진게 아니겠소. 정말 좋은 일이요. 아니, 장한 일이지. 동무가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길은 그야말로 하나의 소설감이요. 소설감!…》

은영은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있었다. 무어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알수 없었다. 평범한 녀가수의 이야기를 세세히, 주의깊게 들으시고 소설감이라고까지 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말씀에 눈굽이 저릿저릿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은영동무.》 수령님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의 아버지나 동생들 그리고 남편되는 사람이 오늘 이렇게 당의 예술인으로 된 동무를 본다면 얼마나 기쁘겠소.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였는데 아깝게도 너무 일찌기 잃었구만. 그렇지만 나라를 위해 잘 싸운 애국적가정이 은영동무와 같이 결백하고 량심적인 예술인을 키운게 아니겠소. 다시 말하지만 신념은 절로 생겨나는게 아니요. 량심의 토양이 있어야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는 법이지. 그러니 은영동무, 언제든 애국의 길을 걸으며 인민을 위해 노래를 부르시오. 그래서 인민의 사랑을 받는 가수가 되시오.》

《장군님!》 은영은 두손을 가슴에 모두어쥐고있었다. 《장군님말씀을 언제든 명심하겠습니다. 꼭 인민의 사랑받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믿소, 꼭 그러리라고 난 믿소!》

비로소 수령님께서 밝게 웃으시였다. 구름속을 헤여나온 달이 다시금 은은한 빛으로 사위를 밝혔다. 잠풍한 골안의 밤은 깊어가고 어느덧 나무잎새들은 물기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전쟁을 상기케 하는것은 하나도 없는듯했다. 그러나 전쟁은 잠시도 걸음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드디여 전쟁의 발동기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적기들이 하늘을 썰며 날아들고있었다.

먼저 최용건이 다가왔다. 허정숙은 머리를 들어 탐조등이 엇가로 번득이는 밤하늘을 불안스럽게 살피고있었다. 샘터에서 오락가락하던 부관도 황급히 달려왔다. 그러자 수령님께서 그에게 물으시였다.

《소식이 왔소?》

《…》

수령님의 신변이 념려되여 달려왔던 부관은 아무 대답도 올리지 못하고 마치 못으로 박아놓은듯 그 자리에 멎어서있었다.

《빨리 소식이 있나 알아보시오.》

무엇인가 중대한 소식을 기다리고계시는것이 틀림없었다. 아마도 전선에서 큰 사변이 있는것 같았다. 은영의 생각이였다.

적기들은 머리우를 날아 지나가고있었다. 탐조등의 불빛이 적기들을 포착하자 멀리서 고사포들이 꽈당거렸다. 뒤미처 폭탄의 폭발소리가 울리고 불길이 솟구쳐올랐다. 벌거우리한 화광이 하늘가 한끝을 물들이며 퍼져갔다.

《평천쪽인것 같습니다.》

최용건이 묵직하게, 마치 돌멩이를 깨무는듯 사무친 증오를 짓씹으며 말씀드렸다.

《죽일놈들, 정전담판을 제의해오면서도 저 지랄이니… 아무래도 전선에서 한번 더 묵사발을 만들어놔야 할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아무 말씀없이 화광이 비낀 하늘가를 바라보고 계시였다. 폭발의 굉음에 발밑의 땅이 부르르 떨렸다. 고사포들이 더욱더 맹렬하게 울부짖었다. 고요한 봄밤, 평온하던 5. 1절의 밤이 순시에 산산이 부서지고 깨여져나갔다. 하늘중천에서 조는듯 마는듯 사물거리며 지상을 내려다보고있던 뭇별들도 빛을 잃었다. 달빛도 화광에 벌거우리해졌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수령님께서는 근엄하신 안색으로 수도의 하늘가에서 눈을 떼지 않고계시였다. 그리하여 은영은 가슴을 조이며 생각하였다. 과연 얼마나 아픔이 많으실가, 얼마나?!… 그리고 언제면, 진정 언제면 우리 장군님께서 마음속 아픔과 시름을 다 잊으실 그날이 오게 될것인가?…

그때였다. 부관이 발걸음소리도 요란히 달려왔다. 숨가삐 달려오더니 기쁨에 찬 목소리로 보고드렸다.

《장군님! 소식이 왔습니다.》

수령님께서 급히 마주 가시였다.

《그래? 어떻게 됐소. 모두 무사하다오?》

《예, 장군님, 모두 무사히 전선을 넘었답니다.》

《음- 드디여 도착했구만.》 수령님께서 환히 웃으시며 은영이를 돌아보시였다. 《잘됐소. 정말 다행이요!》

영은 수령님께서 그처럼 기뻐하시는 모습에 아무 까닭도 모르며 눈시울을 떨고있었다. 그 까닭을 굳이 알아선 무엇하랴. 아프신 그이의 마음을 덜어드리는 소식임에야!…

부관이 무엇인가 더 말씀드리고있었다. 그옆에 서있던 최용건은 머리를 끄덕이였고 허정숙은 가볍게 탄성을 지르고있었다.

이윽고 수령님께서 은영을 부르시였다.

《은영동무, 어서 이리 오시오. 기쁜 소식이요!》 그이께서는 은영이 머밋거리며 다가서자 풀어진 목수건을 손수 다정히 바로 감아주시였다. 《동무의 어머니와 어린 딸 그리고 동생들모두를 데려왔소. 방금 전선을 넘어 차가 달리고있소. 평양으로 말이요!》

《예?!…》

별안간 입술이 타드는듯 했다. 눈앞이 뿌예지며 앞을 가려볼수 없었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여서 꿈은 꾸는듯 싶었다.

《내가 오래전에 사람을 보냈는데.》하고 수령님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제야 데려왔구만. 그새 놈들은 동무가 인민군대에 입대했다고 해서 온 가족을 몰살시키려 한것 같소. 그래서 부산에까지 가서 헤매였다는데 고생이 많았을거요. 그렇지만 인젠 됐소. 어머니가 동무의 딸까지 업고 무사히 도착했다니 정말 다행이요.》

비로소 은영은 그이께서 무엇때문에 자주 시계를 보시며 초조히 기다리셨는지 알게 되였다. 관자노리의 피줄들이 꿈틀거렸다.

《장군님!-》

목메인 흐느낌소리뿐… 심장이 사뭇 떨렸다. 무어라고 감사의 인사를 올릴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목구멍 가득히 북받쳐오른것은 기쁨과 행복의 눈물만이였던가!…

새날이 멀지 않았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한 녀가수의 행복을 위해 바치신 이밤도 희여져가고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새벽의 미광이 먼 동녘하늘에 선명해지기 시작할것이다. 이윽고 지평선 한끝에서는 누리를 밝히는 태양이 불끈 솟아오를것이고…

은영은 그 작열하는 태양을 보고있었다. 만물에 생을 주는 영원한 태양을 우러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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