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들은 다음날 밤에야 서울시에 이르렀다. 자동차로 달리면 한시간남짓이 걸릴수 있는 거리를 옹근 하루 낮과 밤을 걸었던것이다. 그들이 걷고있는 사이에 피의 력사는 멀리 앞질러 씌여지고있었다. 어느새 적들은 부평을 지나 서울서남쪽의 영등포와 김포비행장에로 총공격을 감행하고있었다. 김포비행장의 동북쪽 향주와 영등포의 정면 안양천에서 그리고 금무봉에서 치렬한 격전이 벌어지고있었다. 그러나 이제 적들은 하나의 작은 릉선, 시내물 하나도 수백수천에 달하는 주검을 내지 않고서는 넘지 못하게 된다. 그것을 알리 없는 적들은 수많은 땅크와 대포들을 대도로에 들이밀었고 역시 정황을 알지 못하고있는 소편대는 도로를 피하여 격전이 붙고있는 언덕을 목표로 갔는가 하면 논두렁에 머리를 박고 적들의 공격서렬을 피하기도 했다.
다행히 사복을 입은 일행이여서 적아간의 집중사격을 면하고 서울시내로 뚫고 들어갈수 있었다. 은영이에게 잊을수 없는 추억을 남긴 룡산역에까지 나와 기다리고있던 백영준이 일행을 반겨맞았다. 그는 너무도 기뻐 남녀를 가림없이 매 사람을 얼싸안기까지 하였다.
《살아있구만, 다들 살아왔어! 상일동무, 철호동무, 이건 기악조의 제1비올라!… 은영동무도!… 다행이요, 정말 다행이요!》
그새 협주단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전선지구경비사령부에서 그렇게 명령했다는것이다. 백영준은 대기시키고있던 자동차를 가리키며 어서 타라고 독촉했다. 평소에는 그리도 침착하고 조용하던 그였지만 기쁨에 겨워 눅거리 고음가수처럼 뒤집힌 소리를 내지르기까지 했다.
《뭘 꾸물거리는거요. 빨리 타라는데!》
은영은 마른 풀대처럼 노그라진 수미를 자동차에 끌어올렸다. 역시 고종우가 그것을 보지 않으려 우정 외면하고있다는것을 은영은 감촉하였다. 오히려 백영준과 재미나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있었다. 뒤늦게야 차에 오를 때에도 우정 반대쪽 적재함문짝에 매달리는것이였다. 그러는 그의 행동에 은영은 가시처럼 뾰족한 적의가 목구멍을 찌르는것을 느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데 왼심을 쓸 겨를이 없었다.
서울시에서는 도처에 바리케드를 쌓고 로동자부대들이 결사전을 준비하고있었다. 룡산역을 떠나 륙군병원건물앞도로로 서울역까지, 거기에서 또 반도호텔앞의 을지로를 따라 경마장까지 달렸다. 그때에야 수미가 정신이 든듯 머리를 들며 가늘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거예요. 우린?》
《안전한 곳으로 가요.》 은영이 말해주었다. 《걱정말아요. 이제 다 잘될거예요.》
《안전한 곳?》 수미가 소리쳤다. 《그런데가 어데 있어. 죄다 마사지구 죽어가는데!》
증이 나지 않을수 없었다. 어제밤까지만 해도 춤을 추며 생글거리던 수미가 지금은 또 판다른 녀자가 되여버린것이였다.
은영은 그를 눌러놓았다.
《잠자코 있어요!》
그러나 수미는 언제나 불안정하고 충동적인 녀자였다. 무분별한 도취와 절망의 사이를 쉴새없이 방황하는 녀자, 충동이 갈앉으면 또 쓰라린 공허에 몸부림치는 녀자였다.
《어데까지 왔어요?》
수미의 물음에 경마장을 지나 청량리역쪽으로 가는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수미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럼 어떻게 해. 아이는?》
《아이라니?》
은영은 수미가 늘 횡설수설하였으므로 또 그런것이 시작된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은영이!》 수미가 그의 팔을 꽉 틀어잡으며 불같이 속삭이였다. 《한심하기란! 은영인 지금 어데로 가는거예요. 제 애기는 팽가치구?!》
《?!…》
뜻밖이였다.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수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비로소 리해되였다. 제 애기!… 어찌하여 은영은 사랑하는 딸의 생사를 먼저 생각하지 못했던가?!…
《저길 봐요!》 수미가 계속했다. 《미국비행기들이 폭격하는걸! 은영이 애기도 저속에 있겠지?》
두번째의 강타는 무거운 몽둥이로 호되게 후려치는듯 했다. 바로 저 불길속에 은영의 어린 딸, 젖먹이가 있다. 어머니와 동생들모두가 저 불도가니속에 남아있다. 쇠꼬치로 찔러대는 모진 아픔에 신음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도 수미는 야살을 그만두지 않는다.
《어쩌문 은영씨가 그럴수 있어요? 제 피덩이를 버리구 가다니… 그래 은영인 그런 모진 녀자였어요? 몰인정한, 얼음장같은?!…》
은영은 그만 《아!-》하는 신음소리를 지르며 두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제발 그만 그쳤으면 좋으련만 수미는 그의 손을 잡아떼며 다시 귀전에 랭혹하게 속삭이였다.
《은영인 지금 제 정신이예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어요?… 이제라도 방도는 있어요. 알겠어요? 자, 늦지 않게 뛰여내려요. 빨리!… 가서 현순이를 살려내야지. 응?… 제가 낳은 딸자식을 내깔리다니. 아유, 끔찍해! 은영이가 미친년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요!》
귀가 먹먹했다. 눈앞에서 번쩍인것은 번개였던가, 폭발의 섬광이였던가!…
화염이 휩쓸고 돌가루며 흙먼지가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덜컥 차가 멎어섰다. 사람들이 일시에 앞으로 확 쏠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수미만은 은영이를 붙든채 놓아주지 않았다. 집게처럼 꽉 잡고 일으켜주기까지 하였다.
《마침 잘됐어. 빨리 내려요. 뭘 꾸물거리구 있어, 응?!… 젖먹이애기를 팽가치구 간다면 일생 저주를 받을거야. 알겠어요? 천벌을 받는단 말예요. 자, 빨리 내리뛰여요!》
멎어선 자동차가 다시 부릉거렸다. 재채기하듯 괴롭게 탕탕거리며 용을 썼다. 그때 은영은 자기의 몸이 적재함너머로 기우뚱 쏠리는것을 느꼈다. 누가 차밑으로 밀어댔는지 아니면 혼란되여있던 그자신이 몸을 던지려 했는지 알수 없었다.
앞쪽에서 강상일이 《은영동무!》하고 소리쳤다. 《왜 그러우. 밥숟갈 놓을려구 그래?》
그 순간 은영은 이를 덜덜 떨며 머리를 돌렸다. 그것은 강상일이 아니라 아버지의 모습으로 보였다. 사납게 이지러진 아버지의 성난 얼굴…
《어데로 간다구? 그따위 모지락스럽게 구는 년의 말을 들어?》
아버지의 그 얼굴우에 포개지는것은 누구인가?… 침울하고 슬픔에 잠긴듯 지켜보는 림호의 얼굴이다. 그런데 그는 아무말도 없다. 퍼릿해진 얼굴에 떠오른것은 고통에 모대기는 자취뿐… 왜 아무말도 없는거예요. 예? 그앤 당신의 딸이 아닌가요?!…
드디여 고장난것 같던 자동차가 움찍거렸다. 덜컹! 무엇인가 타고 넘더니 점차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은영은 몸의 균형을 잃고 허공을 그러잡았다. 가만, 잠간만! 그럼 난 어떻게 하는가. 어찌해야 하는가?… 쓰러지는 은영을 수미가 붙안았다.
《이 순간을 놓치면 다예요. 영영 죄를 씻지 못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빨리 뛰여내려요. 내가 도와줄게. 제 자식을 버리는 녀자는 천벌을 면치 못해요!》
뻑뻑한 목의 경련으로 하여 숨도 제대로 쉴수 없었다. 그것은 어린 딸애때문만이 아니였다. 자식을 가진 어머니로서 그 어린것의 생사를 걱정하지 않을수 없는 은영이였다. 그러나 지금 은영은 려행을 떠난것이 아니다. 다시는 자식의 생사를 걱정하지 않게 될 그날을 위해 싸우러 가는것이다. 어릴적부터 갈망해온 태양의 빛을 따라가고있다. 그 빛을 떠나선 은영이도 은영이의 노래도 없기에 주저없이 달려가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길에서 떨어지라고 꼬드기고있다. 수미가 열을 내며 충동질하고있다. 별안간 수미의 머리태를 거머쥐고 땅바닥에 마구 태질하고싶은 강렬한 충동을 억제할수가 없었다.
마침 뒤쪽에 웅크리고있던 고종우가 결연히 앞사람의 어깨를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은영동무, 정신차리시오!》
그것은 은영이가 가슴을 허비는 수미의 어깨를 꽉 거머잡으려던 때였다. 그 순간 차가 깨여져나간 콩크리트바닥을 넘으며 세게 들추었다. 은영은 수미의 한손만을 겨우 붙잡을수 있었다. 세차게 흔들어대였다.
《상관하지 말아요. 내 일에 다신… 상관하지 말란 말예요!》
《아니, 이거 미치지 않았어요?》 수미가 소리쳤다. 《저를 위해주는 사람더러 뭐 어쨌다구?》
《난 내가 어데로 가야 하는지 알고있어요. 그러니 다시 나를 건드렸다간 알겠지?》
《옳소!》
고종우의 거쉰 목소리였다.
수미의 낯빛이 표표해졌다.
《오, 알만해. 왜 그러는지 다 알만해!》
그 녀자가 무엇을 알만하다고 하는것인지 알수 없으나 파랗게 타오른 두눈의 살기와 바르르 떨리는 입술로 미루어 악에 받친 부르짖음이라는것만은 명백하였다.
《될대루 되라지. 다신 상관하지 않겠어!》
비로소 두 녀자에게로 머리를 돌린 사람들이 왁작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은영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린 젖먹이가 불속에서 발버둥치며 울어대는 정상만이 눈앞에 바투 다가들뿐이였다. 하여 은영은 어쩔수없이 무너져내리며 《현순아!-》하고 숨이 멎는듯 부르짖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모진 아픔에 가슴이 찢기는것만 같았다.
밤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아니 화재의 화광과 초연이 무겁게 드리우고있었다. 서울이 불속에 잠기고있는것이였다. 앙칼진 비행기의 폭음만이 하늘을 제멋대로 마구 썰며 지옥의 교향악을 계속하고있었다.
얼마후 자동차는 서울시내를 멀리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