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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의 대규모인천상륙작전이 벌어진 9월 중순이였다. 련사흘째 그속에서는 포성이 진동하고 무수한 비행기들이 하늘을 덮었다. 암갈색의 포연이 서울상공을 뒤덮고 태양도 꺼멓게 그슬리고있었다. 하늘을 메우며 밀려든 적기들이 서울과 인천을 잇는 도로들을 맹폭격하고 소낙비처럼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너무도 급작스럽게 벌어진 사태앞에서 사람들은 당황하여 어찌할바를 몰랐다. 락동강전선에서 대구, 부산을 목표로 최후의 공격전을 벌리고있는 인민군대의 혁혁한 승리에 대해서만 들어오던 그들이였다. 방금 군산에서 돌아온 전선지구경비사령부협주단은 격전이 붙은 인천지구에 소편대를 파견하여 전투원들을 고무하기로 결심하였다. 하여 박진단장은 말하였다.
《인천지구에 나갈 소편대를 조직하겠습니다. 자원성의 원칙입니다. 내가 소편대를 책임지고 나가겠습니다. 자 그럼… 소편대에 나갈 동무들은 나서시오.》
그것은 마치 죽으러 나갈 동무들을 부르는것과 다름이 없었다. 모든 대원들이 일순 귀가 먼것처럼 입을 벌리고있었다. 은영이 역시 별안간 얼음물을 끼얹은듯 몸을 움츠리지 않을수 없었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제일 먼저 이렇게 나서며 앞으로 쑥 나선것은 강상일이였다. 부민관에서 있은 수류탄사건으로 《강투사》로 불리우기 시작한 테놀가수, 맑고 챙챙한 목소리처럼 날파람있고 견결한 사람이였다. 은영은 한순간 무수한 바늘침이 얼굴을 찔러대는듯 했다. 아버지와 림호, 일한이의 눈빛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히는것이였다. 그들앞에서 순간이나마 주저한것이 부끄럽고 죄스러워 엷은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까지 하였다.
《저도!…》
은영은 이 말밖에 할수 없었다. 앞으로 걸어나가며 비로소 가슴속에 꽉 들어차있던 숨을 활 내뿜었다. 뒤따라 여러사람이 손을 들고 나서는것도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목소리만으로 그들이 누구인지 짐작했을뿐이였다. 그들속엔 고종우도 끼여있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바리톤가수답게 부드럽고 웅근 목소리였다. 고종우, 훤칠한 키에 모든것이 큼직큼직하게 그리고 조화롭게 자리잡은 미남자였다. 온화하고 점잖은 사람, 아니 보다 중요한것은 그가 언제 보나 깨끗하고 성실한 그것이였다.
얼마후엔 인원을 제한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성악을 기본으로 선동적인 화술배우 몇사람 그리고 콘드라바스를 비롯한 큰 악기들은 억지로 떼여놓고 악사들은 소편성으로 구성했다.
편대가 구성되자 사람들은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공포와 불안을 숨기지 못하던 그들이였으나 정작 화선으로 나가는 대렬이 짜지자 거기에 선발된것이 못내 자랑스러웠던것이다.
맨 먼저 자동차에 오른 기악조의 트롬본수 주인걸이 밑에서 콘드라바스를 잡고 부러워 바라보는 자기 동료에게 소리쳤다.
《여, 켄바스! 자넨 집에 가서 혼자 속썩이는 녀편네 궁둥이나 쓸어주게. 이 트롬본이 임자몫까지 다 불어줄테니까.》
《우쭐렁거리지 말라구.》 켄바스라고 악기명으로 불리운 사람이 투덜거리는 말이였다. 《그까짓 돼지멱따는 소리나 내는 악기를 가지구.》
《뭐 돼지멱따는 소리? 하아- 이 사람아, 이게 바로 <하느님의 목소리>라는걸 몰라?!》
그때 은영은 남들에게 뒤질세라 화물자동차에 기여오르고있었다. 주인걸이 떠들어대는 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이 트롬본은 말이야. 장중하구 위엄있구… 그래서 옛날 유럽에서는 <하느님의 목소리>와 같다구 해서 교회음악 아니문 절대 못쓰게 했던거야.》
그가 자기의 악기를 자랑하는 이 말을 한두번만 하지 않은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특히 기악조의 사람들이 웃으며 그 뒤를 달았다.
《그러던걸 베토벤이 처음 썼지.》
《옳아, 교향곡 5번 <운명>에 그 <하느님의 목소리>가 꼭 필요해서… 그렇지?》
그러자 주인걸이 걸걸하게 웃으며 으시대였다.
《알긴 아누만. 난 바로 이런 장중하고 위엄있는 소리로 미국놈들을 벌벌 떨게 한다는거야. 어때?!…》
유쾌한 웃음속에 은영은 생각했다. 그럼 나는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전선으로, 격전장으로 나가고있는걸가?… 물론 그것은 사랑의 목소리이다. 애끓는 사랑의 목소리… 뜨겁게 사랑하기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의 목소리…
그런즉 내겐 하느님의 목소리가 필요없어!… 이렇게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순간 은영은 자기쪽으로 머리를 돌리고있는 수미를 발견했다. 웃음짓는 은영이를 스쳐보며 그는 말했다.
《내게도 할몫이 있어. 난 겁쟁이도 아니니까!》
그것은 자기와 등을 돌려대고있는 고종우와 은영이 두사람이 들으라고 한 말이 분명했다. 어느새 올랐는가. 저 수미는?… 편대를 짤 때에는 그가 없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먼저 차에 오른것이 분명했다.
은영은 별안간 그를 끌어안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새 사람들이 달라졌다.
수미 역시 몰라보게 달라지고있다. 그리고 그가 말한것처럼 수미는 결코 겁쟁이가 아니다. 반대로 마음만 먹으면 칼부림이라도 서슴지 않을 녀자라는것을 은영은 잘 알고있는것이다.
은영은 수미의 팔목을 꼭 잡았다.
《같이 가자요. 언제든지 같이…》
수미는 말없이 자기의 눈앞을 담벽처럼 막고있는 고종우의 넓은 잔등만 지그시 쏘아보고있었다.
화물자동차로 인천까지는 한시간 남짓이 걸린다. 도중에 차가 멎었다. 적기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날아들고있었다. 운전사가 《빨리 내리뛰시오!》하고 소리쳤다. 적재함우에 올라탔던 사람들이 정신없이 내리뛰였다. 가까운 홈타기로, 폭탄구뎅이며 잡관목숲으로 달려가는데 적기들이 기총탄의 몰사격으로 도로를 누비기 시작했다. 이어 주먹같은 폭탄이 줄지어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홈타기에 구겨박혔던 은영이가 눈을 떠보았을 때 그들이 타고 온 자동차는 이미 적탄을 맞고 형체도 없이 날려가버렸었다. 폭음소리도 멀어졌다. 적기들이 서울시상공으로 날아가고있는것이였다. 이윽고 도로우에는 쪼각쪼각 널려진 자동차잔해들이 여기저기서 불타고있을뿐이였다.
인원점검을 해보니 천만다행으로 다친 사람이 없었다. 한사람, 기악조의 바이올린수만이 시꺼먼 주먹으로 눈물을 씻고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박살난 바이올린통이 들려있었다.
《이제 난 어쩌믄 좋소. 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 악기는 곧 생활과 투쟁의 무기였던것이다. 누군가 그의 잔등을 툭툭 치는것으로 위안하고있었다.
박진단장이 도로에 나가 소로길에서 나온 인민군대자동차를 멈춰세웠다. 인천지구로 위문공연을 간다는 말에 맨 앞차에서 내린 인민군보병중대장이 어마지두 놀란 소리를 질렀다.
《공연을 간다구요? 아니 지금 제 정신이 있습니까. 당장 돌아가시오. 지금 거기가 어떤지 알기나 하시오?》
박진단장도 어성을 높였다.
《난 전선지구경비사령부협주단 단장이요. 지금 사복을 하고있지만 중대장동무보다 상급이란 말이요. 군사칭호는 중좌, 알겠소?》
그러자 보병중대장은 재빨리 거수경례를 붙였다.
《중좌동지, 제가 그만…》
《아, 아!》 박진은 면구스러워 하며 손을 내저었다. 《우리 동무들을 좀 태워주.- 군대예술단체인데 싸움터를 피하겠소?》
《글쎄 태워드리긴 하겠지만.》하고 중대장은 적재함우에 꽃같은 녀자들을 훔쳐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사지판에 저런 사람들을 어떻게…》
모두 석대의 자동차가 부평에 들려 총포탄을 싣고 간다고 했다. 그들은 저마끔 차에 올라 부평으로 갔다. 인천이 가까왔으므로 무시무시한 폭음이 사람들의 가슴을 옥죄였다. 유쾌한 웃음속에 출발한 그들이였지만 전쟁은 역시 전쟁이여서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매캐한 초연이 바람에 실려오고 요란한 폭발과 화재의 불기둥이 가까이 바라보였다. 하늘은 온통 타래치는 화염과 재개비로 뒤덮여있었다.
소편대는 부평에서 군인들을 도와 총포탄상자들을 실어주었다. 알고보니 부평은 일제가 패망한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동굴과 창고, 수백채의 건물을 짓고 보급기지로 만든 곳이였다. 《아마 써비스 코맨드(륙군보급사령부)》라는 영어의 머리글자를 따서 《아스콤》이라고 부르는데 미군이 버리고 간 총포탄 약 2천여톤이 그대로 저장되여있어 인천지구의 많은 방어부대들이 여기서 탄약을 실어간다고 보병중대장이 말해주었다.
그는 사실 지혜롭고 쾌활한 사람이였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박격포신같이 미끈하고 단단했다. 나리꽃같은 배우들때문에 머리털이 세겠다고 투덜거리며 한시도 안정을 몰랐다.
그의 걱정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한시간후 인천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꺼멓게 질려 부들부들 몸을 떨지 않을수 없었다. 화염의 폭풍이 먼저 그들을 덮치고 번쩍거리는 섬광과 자지러진 총포탄소리에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날이 어둡기 시작하면서 무수한 예광탄의 불꼬리가 비수같이 서리차게 머리우를 썰었고 땅크발동기소리와 돌격의 웨침소리가 간단없이 터지군 하였다. 누가, 어데서, 어떻게 싸우고있는지 알수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차츰 조용해지기 시작하였다. 적어도 소편대가 도착한 그 구역만은 총포성이 멎고 땅을 물어뜯던 땅크의 무한궤도소리도 멎었다. 격렬한 싸움의 울부짖음소리는 멀리 바다에 면한 곳에서만 계속되고있었다.
《저긴 108련대가 방어하는 구역인데…》 보병중대장이 어둠속을 살피며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니 놈들이… 그래, 아직 안벽을 넘진 못했어.》
그는 얼어붙은것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소편대성원들을 돌아보며 큰소리로 웃어대였다.
《무서워 마십시오. 한개중대쯤 되는 적들이 우리쪽으로 달려들다가 도망쳤습니다. 이제 또 공격해오긴 하겠지만 놈들도 얼마간 숨을 돌려야 할테니 노래부를 시간은 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수만명의 적들이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되였다고 한다. 상륙작전의 첫 단계로 인천항의 외항과 내항에 수백척의 상륙정, 보급함들을 들이밀어야겠으나 물목을 막고있던 월미도의 해안포중대가 사흘동안이나 상륙을 저지시켰으므로 이제야 겨우 내항으로 접근했는데 부두에 쌓은 안벽을 넘지 못해 발광을 한다는것이였다.
사실 인천시는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웅봉산(매봉이라고도 한다.)비탈을 따라서 층층으로 거리가 이루어져있다. 항구는 륙지와 월미도간의 방파제, 월미도와 소월미도사이의 방파제 그리고 륙지로부터 사도를 거쳐 서남쪽으로 뻗은 남쪽 방파제가 있는데 그 안쪽을 내항, 바깥쪽을 외항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은영은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림호가 아지트를 가지고있던 여기 인천으로 자주 오면서도 그런것엔 거의나 무관심했었다. 이제야 비로소 보병중대장을 통하여 그 모든것에 주의를 돌리는것은 무슨 까닭일가?… 안벽은 해안의 방조제였다. 지금 협주단은 거기서 멀리 떨어진 동인천역가까이 있는것 같았다.
《자, 그럼.》 하고 보병중대장이 말했다. 《여기서 몇곡 불러주고 돌아가십시오. 보시다싶이 싸움이 붙으면 몽땅 귀먹재가 되고 맙니다. 괜히 아까운 희생만 내지 말고 제때에 돌아가는게 좋습니다. 마침 놈들도 입을 다물고있겠다 한바탕 울려봅시다!》
그러는 사이에 전체 중대가 그들을 둘러싸고 모여앉았다. 깨여진 벽돌장들이 너저분했지만 2층이나 3층쯤 되였을 건물의 벽체가 앞을 막고있어 공연장소로는 안성맞춤이였다. 두런두런하는 말소리와 웃음소리들이 커가는 가운데 담배불들도 경쟁적으로 껌벅거렸다.
재빨리 조음을 했다. 박진단장이 직접 소개의 인사말을 하고 가수들이 나와 주런이 서자 누군가 미리 가까이 끌어다 놓은 자동차의 전조등을 켰다. 순간《야-》 하는 탄성이 터졌다. 보병중대장이 《나리꽃》같다고 한 녀배우들의 모습에 순진한 병사들이 입을 딱 벌리는것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 요란한 박수가 터져나왔다. 아직 노래도 시작하기 전이였지만 전사들은 격렬한 싸움터에까지 찾아온 배우들에게 열광적인 박수로 자기들의 기쁨과 감격을 표시하는것이였다.
먼저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합창으로 시작하였다. 소합창이였지만 어둠속을 파헤치는 그 울림은 예상외로 크고 장중하였다. 린접구분대들에서도 병사들이 달려왔다. 보병들은 물론 해병들과 포병, 자동차병, 땅크병들의 모습도 보였다. 많은 병사들이 적들의 있을수 있는 집중사격도 개의치 않고 무너진 건물의 벽체에까지 기여올랐다.
요란한 박수갈채속에 종목들이 바뀌였다. 《승리의 5월》, 《녀성의 노래》, 《밭갈이노래》, 《진군 또 진군》… 곡목이 끝날 때마다 《재청!-》《재청!-》 하는 요란한 웨침소리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치렬한 싸움이 계속되던 전장이 숨을 죽이고 그들의 노래를 듣고있었다. 적들도 귀를 기울이고있는듯 했다.
인제는 멀리서 울리던 격렬한 총성마저 그쳤다. 오랜 세월이 흐른뒤 은영은 일본군사평론가 고지마 노보루의 《조선전쟁》이라는 두툼한 책을 통하여 바로 그날 소편대가 공연을 한 곳이 미제5해병련대의 공격전방이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은영이 다섯번째 재청곡으로 《봄노래》를 부를 때였다. 전체 중대(아니, 그때엔 대대나 련대급이상의 군인들이 모여와 있었다.)가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부르는 가운데 수미가 보병중대장을 끌어내여 같이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수미는 그런 생각까지 했는지?… 알고보니 보병중대장은 전문훈련을 받은 배우 못지 않게 률동이 좋은 춤의 명수였다. 노래 3절을 잇기전의 짧은 음악간주때 수미가 은영의 옆을 지나며 유쾌하게 소리쳤다.
《멋쟁이파트너지?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녔대!》
수미의 두눈에서 불꽃같이 타오르는 미소를 띄여본 은영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보병중대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가느다란 수미의 허리를 껴안고 왈쯔풍의 음악에 맞추는 억센 사나이의 모습이 연송 눈앞에서 언듯거렸다. 어느새 많은 군인들이 춤판에 뛰여들었다. 은영은 노래를 반복하여 부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곳을 피흘리는 전장이라고 누가 믿을수 있으랴!… 자동차의 전조등불빛이 껌벅거리며 은영이와 악사들, 춤추는 군인들과 녀배우들을 언듯언듯 비쳐주었다. 재미나는 자동차운전사였다. 마치 극장에서 조명등을 비쳐대듯 손으로 불빛을 막았다, 떼였다 하는것이였다.
노래가 끝나자 보병중대장이 은영이가 섰던 자리에 나섰다. 이제 그가 격동적인 연설을, 아니면 전투적인 구호를 웨칠것처럼 생각되였다. 한손을 권총집에 얹고 다른 손은 아직도 화염이 충천하고있는 밤하늘로 높이 쳐들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연설이 아니였다.
절망이 잦아든 이 거리에
별천지의 화원인양 화해에
불꽃이 나붓기고
재생의 열망을 휘끗어올리며
화광이 춤추는데
시를 읊고있는것이였다. 쾌남아 보병중대장이 조기천의 시를 읊고있다.
밤바다같이 웅실거리는 군중
높이 올라서 칼짚고 웨치는 김대장
《동포들이여!
저 불길을 보느냐?
조선은 죽지 않았다!
조선의 정신은 살았다!
조선의 심장도 살았다!
불을 지르라-
원쑤의 머리에 불을 지르라!》
만세소리 집도 거리도 떨치고
화염을 따라 오르고올라
이 나라의 컴컴한 야공을
뒤흔든다 뒤울린다!
그것은 그저 시인것이 아니라 심장이 분출하는 피의 열정이였다. 은영은 많은 인민군병사들이 자기들의 수첩에 조기천의 시를 써가지고 다닌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오락회나 모임때마다 그의 시를 읊었다. 그것은 그저 단순한 글줄이 아니라 노래처럼 불리우는 시였다.
그러면 저 시를 쓴 시인은 어떤 사람일가. 열정의 시인 조기천은?!… 은영은 보병중대장이 돌따서자 그에게 나가 두손을 꼭 잡고 흔들었다.
《잘했어요. 정말 훌륭했어요!》
은영은 자기가 녀가수로서 전투원들을 고무하러 왔지만 그 중대장에게서 더 큰 고무를 얻었다고 생각하였다.
《고맙습니다.》 보병중대장의 말이였다. 《그런데 진짜 인사를 받아야 할분은 시인 조기천선생이지요.》
그가 말끝을 맺기 전에 수미가 달려와 중대장의 두볼에 거침없이 입을 맞추었다.
《야, 중대장동지, 정말 기막혀!》
수미는 중대장이 면구스러워 하는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것이 또 만장의 요란한 박수를 불러일으켰다.
공연이 끝나자 전체 군인들이 앞으로 쓸어나와 감사의 인사말을 퍼부었다.
《고맙습니다. 큰 힘을 얻었습니다.》
《배우동무들에게 경례를 드립니다!》
《다시 만납시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인젠 자리를 뜨십시오. 잘 가십시오!》
《승리의 날 다시 만납시다!》
쿠궁! 포성이 울렸다. 가까운 곳에서 폭발의 섬광이 눈을 때렸다. 불기둥이 치솟고 재개비가 흩날리였다. 마지막으로 보병중대장이 그들의 잔등을 떠밀며 인사말을 했다.
《내가 하고싶었던 말을 우리 동무들이 다했으니 난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배우동무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우리 중대위신이 뭐가 되겠습니까. 빨리 돌아가십시오. 작별의 인사말은 않겠습니다.》
그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드디여 죽음의 교향악이 시작되였다. 지동치는듯 한 폭음에 발밑의 땅이 움씰거렸다. 무수한 불꽃들이 란무하고 파편이 머리우에서 앙칼진 휘파람소리를 질렀다. 화염과 초연에 눈을 뜰수 없었다. 그러나 소편대는 연주를 계속했다.
기악조는 물론 가수들도 교대로 싸우는 전사들을 고무하여 노래를 불렀다.
전장에서 지동치는듯 한 폭음을 누를 소리는 없을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의 목소리는 결코 미약하지 않았다. 특히 녀가수들의 노래소리는 격렬한 총포성을 빛살처럼 뚫고나가군 했다.
보아라 피에 젖은 남조선땅을
우리 부모형제가 목숨걸고 싸우는 땅
일어나라 조국의 아들딸들아
조국의 운명이 우리 힘에 달렸다
보병중대장이 달려왔다. 극도로 흥분한 그여서 안면근육이 푸들푸들 떨리는것이 알렸다.
《동무들, 돌아가시오. 이러단 다 죽소. 모두 내 명령을 들으시오!》
그는 남자건 녀자건 사정없이 떠박지르며 돌려세웠다. 목터지게 웨치고 쥐여박기까지 하며 건물벽체뒤에서 몰아내였다. 박진단장도 어쩌지 못하고 빨리 철수하라고 소리치지 않으면 안되였다. 무시로 번뜩이는 섬광과 뒤따르는 어둠속에서 그들은 허둥거렸다. 그리하여 소편대는 오던 길로 되돌아간다는것이 그만 적땅크들이 돌진하는 전장으로 나아갔다. 기관총의 련발사격이 무너진 건물잔해를 소고치듯 맹렬히 두들겼다.
그때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눈앞에서 적땅크의 무한궤도가 흙먼지를 말아올리며 높이 쳐들리였던것이다. 너무도 돌발적인 일이여서 사람들은 몸서리치며 굳어져버렸다.
그 순간이였다. 한 전사가 달려나와 맨 앞의 박진을 떠박지르며 반땅크수류탄을 뿌렸다. 폭발의 굉음!… 적땅크의 무한궤도사슬이 맥없이 풀리고 그 전사도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를 대신하여 누군가 뒤쪽에서 《동무들, 이쪽으로!》하고 소리쳤다. 모두 소리나는 그쪽으로 뛰여갔다. 이미 그들이 지나온곳에 커다란 웅뎅이가 생긴것을 소스라치며 살펴보았다. 끄물끄물 연기를 피워올리는 그 웅뎅이를 뛰여넘는 사람이 있었다. 중대장이였다.
《날 따라!-》
이어 그는 어둠속을 향해 또 힘껏 소리쳤다.
《경기사수, 이쪽을 엄호하라!-》
아무것도 가려보지 못하며 그만을 따라갔다. 언제 담장을 길게 둘러친 건물뒤쪽을 빠졌는지도 알지 못했다.
《인젠 됐소. 저 앞으로 빠지…》
중대장은 다음말을 잇지 못했다. 허리춤에서 반보병수류탄을 뽑아 힘껏 뿌렸다. 수류탄이 폭발할 때에야 은영은 골목길로 뛰여들던 적들이 담장을 허비며 나딩구는것을 보았다. 두번째로 수류탄을 뽑아 어깨우에 들던 중대장이 별안간 《윽-》하면서 허리를 꺾고 쓰러졌다. 한손으로 가슴앞섶을 움켜쥐는데 그의 옆에는 방금 빼들었던 수류탄이 떨어져있었다.
《오지 마시오. 수류탄, 수류탄이!…》
그가 단말마의 힘을 짜내며 부르짖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배우들은 황황히 그에게 몰켜들었다.
《중대장동무, 뭐라구요?》
《왜 그러세요. 예?》
순간의 일이였다. 그는 용을 쓰며 팔을 뻗쳐 수류탄을 그러잡더니 그우에 몸을 덮었다.
폭발!… 모든 사람이 아연실색하여 말뚝처럼 박혀버렸다. 은영은 그만 눈을 감고 전류에라도 감전된것처럼 와뜰 몸을 떨었다. 만신창이 된 시체가 그들의 눈앞에 있었다. 쾌남아 보병중대장, 춤과 시로 사람들을 격동케 하던 그 중대장이 죽은것이다. 소편대의 전체 성원들이 억이 막혀 부르르 몸을 떨고있을뿐이였다.
잠시후 수미가 나서며 그의 잔등을 건드리다가 그만 기겁하여 뒤로 나자빠졌다. 그의 손바닥은 온통 피로 젖어있었다. 너울거리는 불빛이 그 처참한 정경을 얼추 비쳐주었다. 그러자 수미는 피에 젖은 손을 높이 쳐들고 부르짖었다.
《우린 왜 왔을가. 예? 우리가, 우리가 이렇게 만들었지 뭐예요!》
누구 한사람 입을 열지 못했다. 그의 난데없는 울부짖음에 은영은 다시금 몸서리쳤다. 그 말은 옳다. 그렇지만 옳은것 같으면서도 다 옳은건 아니다. 오히려 그건 중대장을 모욕하는 말이다. 그가 우리때문에 죽은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것이다. 그가 아니라 우리가 몰살되였더라면 그를 탓해야 하겠는가? 이제 내가 여기서 눈먼 총알에 맞아 죽는다면 그것도 그 누구의 탓이란 말인가?…
은영은 수미를 밀치고 중대장의 가슴에 손을 밀어넣었다. 뜨끈한 그리고 끈적끈적한 느낌에 몸서리쳤으나 그래도 한가닥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고싶었다. 그러나 이미 심장은 멎어있었다. 은영은 피에 젖은 수첩만을 그의 품속에서 꺼낼수 있었다. 흐느끼듯 숨을 톺으며 그것을 들여다 보았으나 아무것도 가려볼수 없었다.
경기를 틀어쥔 병사가 달려온것은 그 순간의 일이였다. 저 앞쪽에서 언듯거리는 그림자들을 향하여 《개새끼들아!-》하고 울부짖으며 몰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 되여있었다.
마침내 그가 열어준 길로 일행은 빠져나갔다. 마지막까지 엄호해주는 그의 경기관총소리를 들으며, 쓰러진 중대장을 두고 온 그 페허쪽을 자꾸만 돌아보며 달려갔다. 수미는 아직도 헉-헉 토막숨을 내뿜으며 몸의 균형을 잃고 비칠거리군 하였다. 은영이 그를 부축해주었다.
《정신차려요, 수미!》
《아니야, 그게 아니야.》 수미가 헐썩거리며 중얼거렸다. 《그게 아니란걸 알았어. 난!…》
《무슨 소릴 하는거예요?》
《알았어. 이제는 다 알았어!》
그때 수미의 머리에 얼마나 무서운 생각이 고패치고있었는지 은영은 알수 없었다. 강상일이 도와주어 둘이서 수미를 질질 끌다싶이 하였다. 마지막까지 고종우는 눈에 띄지 않았다. 박진단장과 같이 맨 앞에서 철뚝을 넘어서기까지 수미가 있는 뒤쪽은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수미의 약혼자 고종우,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혹시 점잖고 단정한 언행으로 자기를 감싼 위선자는 아닐가?…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잠간, 은영은 앞서가는 사람들을 따르기 위해 숨이 턱에 닿도록 뛰여야 했다. 그래도 끝까지 보병중대장의 품에서 꺼낸 수첩만은 손에 꼭 쥐고있었다. 다음날 검붉은 피가 말라붙고있는 그 수첩에서 은영은 강상준이라는 그의 이름과 더불어 그가 사랑한 조기천의 서사시 《백두산》이 첫장부터 마감까지 빼곡이 씌여져있는것을 눈물속에 번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