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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가 나타난것은 서울이 해방되여 5~6일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그날 은영은 서울시 중구 본정의 초입에 있는 《시공관》(극장)옆의 큰길가공지에서 수많은 청년들과 주민들을 모아놓고 《김일성장군의 노래》보급에 열중하고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직 은영은 그처럼 많은 학생을, 그처럼 열렬한 청중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 사람들이 목청을 돋구어 노래를 따라불렀다. 초롱초롱한 눈들이 은영이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한구절한구절 따라부르며 눈물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우에
력력히 비쳐주는 거룩한 자욱
그것은 가두의 대합창이였다. 기쁨에 겨워 울고웃으며 부르는 노래, 감격의 열풍이 거리를 휩쓸고있었다.
거리를 달리는 군용차들에서도 인민군병사들이 목소리를 합쳤다. 땅크들이 달리고 모터찌클에 올라앉은 병사들이 손저어주었다. 그들을 환영하기 위해 떨쳐나선 시민들도 꽃다발을 흔들며 이 노래를 불렀다.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장군
어느덧 은영은 대합창을 부르는 군중의 한 일원일뿐이였다. 그저 박자를 쳐주기만 하면 되였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게 되였다. 6월의 해빛은 그처럼 밝고 눈부시였고 사람들의 얼굴 역시 기쁨에 넘쳐있었다. 온 서울시내가 이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한순간 은영은 빼곡이 들어찬 군중속을 비집고 나오는 수미를 보았다. 멀리서 손짓하며 무어라고 하는데 알아들을수 없었다. 이윽고 맨 앞줄에까지 나왔으나 수미는 사방을 둘러보고 얌전해졌다. 여기서 노래를 중지시킬수는 없다는것을 깨달은것 같았다. 수많은 군중을 쥐고 흔드는 은영을 놀란듯 바라보고있을뿐이였다. 그러나 군중을 쥐고 흔드는것은 결코 은영이가 아니라 노래라는것을 그 녀자는 알지 못하고있었다.… 아니면 그저 은영이 그렇게 생각했을뿐인지… 그 녀자가 나타날 때마다 께름직한 그리고 불길한 일들이 생기군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수선했지만 은영은 노래보급을 계속하였다. 속으로는 은근히 수미가 돌아가기를 바랐지만 그 녀자는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생각으로 군중의 맨앞줄에 손을 맞잡고 서있었다.
노래보급은 끝날줄 몰랐다. 마침 인민군대렬이 질서정연하게, 열병식을 하듯이 발을 구르며 힘차게 행진해오지 않았더라면 어두울 때까지 계속되였을것이다. 중대별로 두부모처럼 대형을 지어오는 보병대대였다. 그들이 우렁차게, 그것도 4성부대렬합창을 하며 행진해오는것을 보자 모든 사람들이 대도로에로 머리를 돌렸고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움직여가기 시작했다. 인민군보병대렬이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대렬합창으로 부르며 거리를 행진해가고있었던것이다.
노래를 부르던 군중이, 지어 은영이까지 그 우렁찬 합창에 목을 빼들며 끌려가고있었다. 그처럼 장중하고 기백있는 합창을 언제 들어본적이 있었던가!
노래의 의미가 새삼스럽게 가슴을 울려주었다. 이 노래야말로 정연하게, 격조높이, 희망을 안고 벅차게 대합창으로 불러야 할 태양의 송가라는것을 그 인민군보병전사들은 깨우쳐주고있었다.
만주벌 눈바람아 이야기하라
밀림의 긴긴 밤아 이야기하라
만고의 빨찌산이 누구인가를
절세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대렬지휘관인 인민군소좌가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표시했다. 총을 어깨에 멘 전사들은 더더욱 힘차게,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연도에 밀려나온 사람들께 미소어린 눈빛을 던지군 하였다.
바로 그들이 만고의 빨찌산, 절세의 애국자 김장군님군대의 전사들이였다.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장군
거리의 창문들이 하나둘 열리고 나중엔 모든 창문마다에 뽀마도를 바른 머리들이 내밀리였다. 사실 인민군대의 서울해방이후 지금까지 이곳 본정의 고급주택들에서는 언제 한번 창문이 열려본적이 없었으나 《부르죠아거리》로 불리우던 이 호화거리를 뒤흔든 인민군보병대렬의 힘찬 합창이 그들을 놀라게 하고 호기심 가득 머리를 내밀어 창밖을 내다보게 하였다. 그처럼 랑만적이고 잘 째인 합창을 들어본 일이 없었던것이다. 사람들의 코와 귀를 버인다고 악선전되여온 《빨갱이》들이 그렇듯 씩씩하고 조화로운 4성부대렬합창을 멋들어지게, 우렁차게 부르리라고는 아마 상상조차 못했을것이다. 그리고 그들, 병사들과 지휘관들은 또 얼마나 끌끌하고 잘 생겼는가!… 하나같이 미소짓고있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였다.
은영은 아까부터 수미가 뒤따르며 소리쳐부르는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수미가 그를 붙들고 잡아끌어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어찌된거지? 이름난 독창가수가 군대합창에 끌려가다니…》 수미는 무작정 인도로쪽으로 은영을 잡아끌었다. 《당장 은영씨를 데려오라는 분부예요.》
은영은 영문을 알수 없어 수미의 얄궂게 웃는 모양을 지켜보기만 했다.
《어서 가요. 가면서 말해줄게.》
갑자기 수미는 깔깔 웃어대였다. 연도에 나와섰던 사람들이 마뜩지 않게 돌아볼 지경으로 소리높이 웃어대고는 난데없이 자기가 어제 한 인민군군관을 친했다고 뇌까리는것이였다.
《오락회를 하면서 춤을 추는데 말예요. 얼마나 멋쟁이겠어. 왈쯔, 타프춤 못하는게 없어요. 나를 보더니 같이 추자고 하겠지. 그래 같이 췄지 뭐. 그랬더니 서울아씨들도 발을 잘 맞춘다나. 호호… 글쎄 인민군군관이 아주 의젓하더군요. 맘에 들더라니까. 별이 두갠가 세갠가… 그까짓건 세여보지도 않았어요. 참 미남이였어.》
은영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래 그 말을 하려구 날 찾았어요?》
《뭐? 그럼 내가 아직 말 안했단 말예요?》 수미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무슨 협주단인가 조직하는데 은영씨를 찾구있다는걸.》
《협주단?》
《그래, 북에서 나온 사람이 은영씨부터 찾겠지. 리근우위원장, 한기봉선생, 고종우씨와 조련, 강상일씨… 벌써 다 모였어요.》
《그럼 수미씨도?》
은영이 놀라와하자 수미는 두눈을 가늘게 치떴다.
《왜, 난 뭐 협주단에 들면 안된다는거예요?》
《아, 아니…》
《은영씨가 날 보증해줘요. 지금까지 날 돌려세우느라고 애쓴 은영씨가 말이지, 응?!》
은영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그게 진심이예요?》
《진심아니믄!… 정말이야. 이제야 때가 온게 아닐가. 내가 바라고 바라던 그런 때가 말예요.》
야지러진데가 있는 수미였지만 결코 교활하지는 않다는것을 은영은 알고있었다. 그리고 우익에 가붙어있던 그 녀자가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섰던것도 사실이다.
《좋아요.》 하고 은영은 다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거기에 고종우씨도 와있다고 했지요?》
그러자 수미의 얼굴에 어떤 이상한 표정이 언듯거렸다. 새초롬하게 쪼프린 그 녀자의 두눈에서 얄궂은 경멸의 빛이 파르르 떨었다.
《그 량반이야 은영씨가 하자는대로만 하겠는데 뭐.》
그러나 그때 은영은 수미의 그 말을 스쳐버리고말았다. 협주단을 조직한다는 소식이 너무도 큰 충격을 주었기때문이였다. 그들은 붐비는 사람들속을 헤집고 달음질쳤다.
수미가 북에서 나온 사람이라 한것은 백영준이였다. 그가 부민관에서 전선지구경비사령부협주단에 들 배우들과 담화하고있었다. 키가 훤칠하고 진중한 사람이였는데 수미는 30을 넘기지 않았을 그 사람을 가리키며 《미남자이지?》하고 속삭이는것이였다. 그 녀자에게는 북에서 나온 사람들모두가 미남자로만 보이는듯 싶었다.
극장객석에는 은영이가 잘 아는 많은 배우들이 앉아있었다. 주석단처럼 탁자와 걸상이 놓인 복수앞쪽에서 무엇인가 말하고있던 백영준이 뒤늦게 들어선 은영이를 눈여겨보며 옆에 앉은 사람(박진)에게 묻는듯 한 눈빛을 던졌다. 연극배우이며 연출가인 박진이 소문난 오페라가수 김은영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러자 은영이와 나란히 서있던 수미가 재빨리 덧붙였다.
《오페라가수일뿐더러 유명한 콘서트가수이기도 하지요. 우리 가요계의 스타로 공인되여 있잖아요?》
은영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오늘은 어찌된 일인가. 가극가수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여 유명한 가요가수라고 못박는 수미의 말에 은영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박진은 조금 면구스러워 했고 백영준은 의미있게 머리를 끄덕이였다.
《음, 동무가 바로 김은영이였구만. 어서 자리잡고 앉으시오.》
백영준은 그들이 앉기를 기다려 하던 말을 계속했다.
《하던 얘길 계속합시다. 이제부터 인민군협주단은 전선위문공연을 기본으로 하고 여기서 조직될 전선지구경비사령부협주단은 전선부대들과 동시에 후방에서의 공연을 위주로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 중임을 맡게 됩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니 전쟁이 끝난 후에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고도 많습니다.
우리의 경애하는 최고사령관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한편의 시와 노래가 천만사람의 심장을 움직이는 위력한 무기로 된다고 가르쳐주시였습니다. 그러므로 동무들은 싸우는 전선과 후방을 고무하고 불러일으키는 사상정신적무기로서의 영예로운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동무들?… 협주단에 드는것은 군대에 입대하는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히 자원성의 원칙에서 조직합니다. 이걸 잊지 마시오. 누구도 강요하진 않습니다.》
객석에 앉아있던 예술인들이 일시에 소리쳤다.
《입대하겠습니다.》
《협주단에 들겠습니다.》
《누가 반대할 사람이 있을라구요.》
《그래요, 나도 받아주세요!》
한 남자배우가 일어서며 소리쳐 물었다.
《군복도 내줍니까?》
《상부에 제기해보겠습니다.》
그러자 일시에 질문의 소나기가 퍼부어졌다.
《별도 달아줍니까?》
《인민군대복장과 꼭 같습니까?》
《관현악은 3관편성을 합니까? 요란하게 꾸리겠지요?》
《나이는 상관없습니까? 난 마흔고개를 넘었는데요.》
《가정부인들은요, 예? 가정부인도 들수 있겠죠?》
백영준이 미처 대답할새 없이 저들끼리 떠들어댔다. 모두가 잔치집에 온 손님들 모양으로 왁작하니 떠들고 웃어대고 론쟁을 했다. 백영준이 손을 들어 장내를 진정시키고나서 청을 돋구어 말했다.
《동무들, 우선 대렬을 짜야 합니다. 협주단은 명실공히 군대예술단체이니 만큼 정연한 조직과 규률을 전제로 합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선 희망자들을 선발하고 기악과 성악, 화술배우들을 구분하여 조를 구성합시다.
물론 지휘성원들도 임명하고… 단장, 부단장들과 작곡가, 지휘자, 연출가 그리고 각 부문별로 조장, 파트장들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장은 중대장으로 불리울거구 파트장은 소대장 또는 분대장이 될겝니다. 당장 이 일부터 시작합시다.》
수미가 은영에게 말했다.
《멋있을것 같애. 어때요. 은영씬?》
은영은 혼자소리같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가 바라던 일이… 끝내 시작됐군요.》
《그래?》하고 나서 수미는 별안간 깔깔 웃어대였다. 《겨우 협주단배우가 꿈이였다구?… 아니, 내가 은영씨라면 좀 더 큰걸 바랐겠는데… 예술계의 녀왕자리쯤!》
은영이 의아쩍어하며 쳐다보자 수미는 입을 비쭉거렸다.
《은영씨야말로 눈부신 성공의 길로만 걸어가리라고 봤기때문이지 뭐. 그것때문에 미워도 했구. 알고보니 괜히 미워했드랬지. 사랑에서도 그렇구 예술에서두… 제발 야지랑스러운 표정은 걷어치워요. 놀라는척 하면서… 한마디만 말해주겠어. 잘 들어봐요. 녀자들은 말이지 간혹 미친것처럼 놀아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 녀잔 미쳤어 하고 말하게 될 때 비로소 제길을 가고있다는걸 알아야 해요.》
《?…》
수미는 잠시도 안정을 모르는 녀자이다. 은영이도 인제는 수미가 어떻게 돌변하든 놀라지 않는다. 어느새 수미는 은영이를 떠나 장내를 휘둘러 보고있었다. 재빨리 그 누군가를 찾고있는 눈길이였다. 아마도 고종우를 찾고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의 관계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데가 많았다. 아직 가정을 이루지 않았고 접촉도 드물어졌다. 나날이 고종우는 수미에게서 멀어져갔는데 그럴수록 수미는 끈질기게도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어찌된 일일가. 갑자기 수미가 친절을 표하고 거드름을 부리는 까닭은 무엇때문일가?…
은영은 머리를 흔들었다. 더 이상 보잘나위 없는 일들에 관심하고싶지 않았다. 마침 백영준이 그를 손짓하고있었다. 은영이 다가가자 그는 아버지와 동생들 그리고 림호에 대해서 이것저것 확인해보고나서 이렇게 넌지시 물었다.
《저 수미라는 녀동무하군 안지 오랬습니까?》
《예.》
《은영동무와 제일 가깝다지요?》
은영이 아무말없이 말끄러미 지켜보기만 하자 백영준은 소리없이 빙긋이 웃었다.
《그를 협주단에 받아들이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누구세요? 그리구 뭣때문이나요?》
《그러니 동문 찬성이군요?》
《예.》
《그럼 됐습니다. 은영동무가 그렇게 나오니 반갑습니다. 누구든 진정으로 조국과 인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한다면 좋은 일이지 나쁠거야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은영동무?》
그가 불러주는 동무라는 말이 무척 친근하게 들렸다. 은영은 머리를 끄덕이며 나직이 말했다.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좋습니다. 같이 손잡고 잘해봅시다.》
그에게서 물러나자 수미가 쫓아왔다.
《그와 무슨 말을 했지? 혹시 나에 대해서 캐묻지 않았어요?》
수미야말로 수은주와 같이 예민한 감각을 가진 녀자였다.
《아니.》 은영은 대수롭지 않게 잘랐다. 《나이랑, 고향이랑 그리구 학력이랑… 별치 않은것들을 묻더군요.》
《왜 별치 않은거겠어요?》 수미의 얼굴이 밝아졌다. 《두고봐요. 이제 은영씬 여기서도 쟁쟁하게 날릴거야. 말하자면 빅타불이 켜진다는거예요.》
빅타불이란 국제적인 콩클에서 1등을 할 때 켜지는 빨간 불을 말한다. 은영은 소리없이 웃고 말았다.
이날부터 전선지구경비사령부협주단은 신속히, 정연하게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군복은 입지 않았다. 최고사령부의 지시라고 했다. 군사적편제를 가진 협주단이고 군사적임무를 수행하는 예술단체였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해방지역에서 사복을 입고 활동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본것 같았다. 그러나 모든것이 군대식이였고 내용상 그들은 군대예술인이였다. 백영준은 고문격으로 정치사업을 위주로 맡아하였고 단장으로는 박진이 임명되였다. 은영은 수미가 표현한대로 20여명으로 이루어진 녀성성악조의 조장, 다시말하여 중대장이 되였다.
×
서울에서는 많은 의용군부대들이 조직되여 전선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그무렵 전선지구경비사령부협주단은 그들을 위한 공연을 조직하였다. 공연이 진행되는 부민관은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의용군병사들은 물론 그 가족들, 기자들, 협주단의 첫 공연에 커다란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물밀듯이 쓸어들었다.
공연은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합창으로 시작되였다.
다음은 여적 부미관에서 불리운적이 없는 곡목들이 올랐다. 은영은 독창으로 《구국투쟁가》와 《봄노래》를 불렀다. 폭풍같은 박수갈채와 재청을 요구하는 웨침소리가 장내를 진동하였다. 그런데 은영이 막 재청을 받기 위해 다시 무대로 나섰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장내에서 째지는듯 한 휘파람소리와 함께 무엇인가 날아왔다. 시꺼먼 돌멩이같았다. 은영의 발치에 떨어지며 데그르 굴러가는데 현수막곁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강상일이 고양이처럼 날래게 몸을 날려 그것을 잡는것과 동시에 무대옆의 창문으로 뿌려던졌다. 요란한 폭음이 울린것은 다음순간의 일이였다. 창유리는 물론 창턱과 벽이 부서지며 암갈색의 불길과 먼지타래를 몰아왔다. 수류탄이 창유리를 깨고 나가며 터졌던것이다. 장내에서 비명소리가 터지고 모든 관중이 일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왁작하니 떠들기 시작했다.
은영은 한자리에 못박힌듯 서있었다. 해쓱해진 얼굴로 장내를 바라보고있을뿐이였다. 누가 무엇때문에 수류탄을 뿌렸는지 리해할수 없었다. 그것도 자기 은영이를 향해 죽음의 푹음을 터뜨리려 한것이였다. 그것이 수류탄이라는것을 깨달은것은 폭발이 일어난 다음이였다. 미처 놀랄새도 없었다.
강상일이 제때에 그것을 뿌려던지지 않았더라면 은영은 형체도 없이 산산쪼각이 났을것이다. 누가 나를 죽이려 했는가. 노래부르는 녀자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 리유를 무대에 나선 백영준고문이 말해주었다.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조용하십시오!》
그가 손을 쳐들며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그처럼 침착하고 태연한 모습이 사람들로 하여금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게 하였다.
《여러분.》 그는 높지 않게, 그러나 저력있게 말하기 시작했다.
《방금 보신것처럼 원쑤들은 간악합니다. 우리의 자랑높은 녀가수에게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녀가수가 공화국을 위하여 노래를 부르기때문입니다. 그를 죽이거나 공포에 떨게 함으로써 우리 예술인들은 물론 여기 모인 여러분모두가 공화국을 따르지 못하게 하려는것입니다. 그러나 어림도 없습니다. 놈들이 제아무리 발악을 해도 우리의 노래는 멈추지 못합니다. 우리의 노래는 계속됩니다!》
전체 관중이 우렁찬 박수로써 그의 연설에 공감을 표시했다. 때를 맞추어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었다. 물결치는듯 한 현악기들의 선률이 폭발로 어수선해졌던 장내에 부드럽게, 아늑하게 흘러들었다. 《산으로 바다로 가자》의 전주음악이였다. 은영은 모두숨을 내뿜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바이올린, 비올라 등의 현악기들이 부드러운 물결처럼 흘러들고 그윽한 그 선률의 파도우에 은빛물보라처럼 아롱이는 플류트의 구울음소리가 뽀얗게 흩날렸다. 하여 은영은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노래, 림호와 함께 일생을 언약하며 부르려 했던 그 노래를 또 시작하였다.
저기 바다로 가자 저기 바다로 가자 저기 바다로 가자
흰 물새 훨훨 파도우에 넘나들고
아득한 수평선엔 흰 돛이 아름다운
저기 저 바다로 우리 가자
눈물이 반짝이는 은영의 두눈은 아득히 두만강의 거센 흐름이 밀려가는 먼바다를 바라보고있었다. 희망찬 새 생활을 약속하는 바다, 그 바다를 가슴에 안고 살게 된 기쁨과 행복이 그의 얼굴에 피여난 귀여운 미소로 일렁이였고 가슴속에서 솟구친 감격이 안개낀듯 부드러운 그 목소리에서 그리고 창공높이 날으다가도 별안간 넘실거리는 물결우에 소리없이 내려앉는 감정의 울림속에서 녹아흐르고있었다.
산에 가면 산새 들에 가면 들새
가는 곳마다 아 이쁜 우리 하늘일세
은영은 노래를 순수 목소리의 기교로써가 아니라 가슴속의 속삭임과 정열의 분출로 터치고있었다. 아버지와 림호를, 사랑하는 동생을 희망찬 바다로 부르며 눈물짓고 웃음지었다. 하여 노래가 끝나자 우뢰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수천에 달하는 사람들이 일시에 《재청!-》하고 부르짖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목청껏 웨쳐대는 사람들도 많았다. 해방의 기쁨을 맞아 눈물로 환호하던 서울시민들이, 전선으로 달려갈 의용군전사들이 목소리합쳐 은영을 부르고있었다.
몇곡이나 더 불렀는지 모른다. 거듭거듭 인사하고 막뒤로 들어섰을 때에야 두손으로 강상일의 목을 끌어안았다. 은영이 그럴줄은 짐작도 못하고있던 강상일이 깜짝 놀란 소리를 질렀다.
《아, 중대장동무. 이건 뭐요. 예? 도대체…》
《고마와요. 강동무, 거기만 아니였다면 정말… 어쩔번 했어요. 정말 고마와요!》
《강동무가 아니라 강투사라구 해야지.》 이렇게 말한것은 자청하여 무대감독을 맡고있는 한기봉연출가였다. 그가 은영이를 제때에 잡아떼였다. 《아 그럴새 없소. 강투사차례요.》
그는 강상일을 조명등이 휘황한 무대에로 떠밀었다.
이때부터 협주단은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위문활동을 벌리기 시작했다. 화물자동차로, 기차로, 도보로 전선과 후방을 돌며 멀리 전라북도의 중요항구 군산의 해안방어부대까지 나갈 때도 있었다. 때로는 바다가 모래불에서 모기와 싸우며 야숙을 하고 몇끼씩 굶기도 했다. 은영은 밤에 잠자리에 들 때에야 어머니에게 맡긴 어린 딸을 생각하군 하였다. 그러면 마음이 구깃구깃해지면서 이상한 아픔에 목구멍이 꽉 메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렇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늘어갔다. 전선이 멀어져가고 행군길도 늘어만 갔다. 그리고… 무서운 일이지만 그리도 가까이 보이던 승리의 날도 자꾸만 멀어져가고있었다. 아직은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있을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