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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겹으로 온다고 한다.…
그날 은영은 좌익계의 음악가동맹이 들어있는 서라벌인쇄소의 2층 사무실에서 로천음악회를 열기 위한 사업토의에 참가하고있었다. 위원장 리근우와 부위원장 오학성을 비롯한 작곡가, 배우들 여럿이 앉아있었다.
로천음악회장소로는 파고다공원을 택하기로 했다. 그것은 김해송을 비롯한 우익계의 예술인들이 기광이 나서 《미국해방자》들에 대하여 선전하고있는것과 관련하여 판을 크게 벌리자는것이였다. 최근 우익계의 예인들은 시내 곳곳에 다음과 같은 색정적인 음악회광고까지 내다붙이고있었다.
《KPK악단의 새 공연소식!
리란영, 남인수를 비롯한 명가수들 미국식스윙뮤직(브루스풍의 음악)을 바탕으로 한 <천리춘색>이라는 쇼(구경거리)를 국도극장에서 엽니다.
자극적인 음악과 더불어 고혹적인 육체미를 자랑하는 무희들도 나와서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을 즐겁게 쓰다듬어줄 <천리춘색>!
공연날자 ○○○○
시간 ○○○○
어서 오세요. 많이많이 참석해주셔요.》
이들의 퇴페적인 음악회에 대응하여 대중을 투쟁에로 부르며 고무하는 대규모의 음악회가 절박한 요구로 나서고있었다.
인기가수들의 선발과 종목들을 먼저 토론하였다. 탄불을 때는 난로를 가운데 놓고 눈을 쓰리게 하는 담배내에 취하며 론쟁도 했다. 출연배우들로는 김은영을 비롯하여 이미 여러 가극들과 콘첼트무대에서 인기를 모으고있던 고종우, 강상일, 조련, 김천애 등을 선발하였다.
소개자문제를 남기고는 모든것이 합의되였다. 사실 음악회의 소개자는 특별한 몫을 가지고있다. 특히 정치선전을 목적으로 하는 공연에서는 매 종목들에서 가수와 관중의 호흡을 맞추어야 하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운이 남도록 공연의 분위기를 끌고나가야 한다. 결국 음악회의 소개자는 아름다운 목소리는 물론 예민한 감수성, 관객모두를 틀어잡는 미모와 률동, 림기응변의 언변도 소유해야 하는것이다.
《자, 의견을 들어봅시다.》 리근우가 말했다.
《소개할 사람이야 많지요.》 강상일의 말이였다. 《누구를 고르는가 하는게 문제지.》
은영은 잠시 생각한 끝에 결심하고 머리를 들었다.
《제 생각엔…》 이렇게 말하며 오학성에게 눈길을 던졌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박수미가 좋을것 같은데요. 관중이 그 녀를 좋아하죠.》
놀란것은 오학성만이 아니였다. 고종우와 강상일을 비롯하여 몇사람이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먼저 오학성이 몸을 움쭉거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안되오. 절대 안되오!》
이미 예견하고있던바여서 은영은 고종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린 그 녀도 돌려세워야 하지 않을가요? 한사람이라도 우리 편에 돌려세우면 좋지요 뭐. 어떠세요, 고종우씨?》
고종우는 눈길을 떨구며 웅글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와 반대로 생각합니다.》
모두가 그와 수미와의 관계를 알고있었으므로 의아해했다. 반대의사를 표하려 한것 같던 강상일조차 눈을 슴벅거리며 그를 쳐다보고있었다.
은영은 고종우가 수미로 하여 심한 불편을 느끼고있다는것을 직감하였다.
《수미씬》하고 은영은 조용히 말했다. 《사실 맘이 고운 녀자예요. 여기 계신분들이 다 잘 아시는바이지만 난 그 녀가 왜정때 모욕받구 버림받으면서 좀 이지러졌다고 봤어요. 하지만… 도와주지 못했어요. 언젠가 어떤 훌륭한분이… 우익에 가붙는 예인들중에도 좋은 사람들이 있다며 그들을 잘 도와줘야 한다고 했어요. 지금 와서 난… 그렇게 못한게 정말 후회됩니다. 그런데 수미씬 … 아직 어느편도 아니죠. 한때 왜놈들이라면 이를 북북 갈던 그 녀가 미국놈들에 대해선 호감을 가지고 <신사>들이라고 춰올리고있지만… 어쩌겠어요. 이제 차차 생각이 달라지겠죠.》
《그 말이 옳소.》 리근우가 말하였다. 《김해송이나 리란영이도 왜놈들을 죽어라 미워했더랬지. 헌데 지금은 눈이 멀어있거든. 우리가 제때에 바로잡아줘야 하는건데…》
좌익계의 음악가동맹 위원장이고 관록있는 음악가의 한사람인 그의 말에 모두가 찬동의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오학성의 얼굴이 퍼르딩딩해졌다.
《인젠 박수미까지 끌어들인다? 인젠 미국놈들의 침방울이 떨어진 그 녀의 어지러운 치마폭에까지 매달려야 한다는거요?》
격한 성미인 강상일이 벌떡 일어섰다.
《부위원장은 우릴 모욕하고있소!》
《뭐요?》
《우리가 로천음악회를 여는 목적이 뭐겠소. 한사람이라도 더 각성시켜 나라와 민족의 분렬을 막는 투쟁에 나서게 하자는게 아닙니까. 그런데 부위원장은 무턱대고…》
《난 조직의 순결성을 지키자는거야!》
오학성이 그의 말을 가로채며 소리쳤다. 가늘게 좁혀진 그의 두눈이 사납게 펀뜩이였다.
《그래 당신들은 우리 음악가동맹을 어데로 끌고가자는건가? 어중이떠중이들까지 다 모아들여서 무슨 장마당같은걸 만들자는건가 말이요. 안돼! 거지자루 크다구 자루대루 다 채워줄가?》
《뭐 거지자루? 그래 우리 동맹이 거지자루란 말이요?》
금시 발톱을 세운 고양이마냥 달려드는 두사람을 리근우가 막아섰다.
《좀 진정들 하시오. 이게 뭐요, 예?》
《아니, 난 참을수 없소.》 오학성이 열띤 소리로 부르짖었다.《참을수 없단 말이요. 밤낮 쑤왈거리는 이 놀음, 귀가 아프오. 차라리 이따위 놀음판에 끼우지 않는게 낫겠소!》
그는 눈의 흰자위를 번뜩이며 좌중을 흘겨보더니 결연히 문을 차고 나가버렸다. 찬바람이 휙 쓸어들며 사람들을 오싹하게 했다. 그가 다시는 여기에 나타나지 않으리라는것이 분명했다. 예견했던것처럼 그는 그길로 종적을 감추고말았다. 은영이가 그를 다시 만난것은 그로부터 2년세월이 지나간 뒤의 일이였다.
무거운 침묵이 한동안 계속되였다. 그것을 깨야 했지만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은영은 고종우의 침통해진 표정을 살펴보며 가늘게 한숨을 내그었다.
《고종우씨, 말해보셔요. 이자 부위원장이 말한것처럼 수미씨가 정녕 나쁜 녀자일가요?》
모든 사람이 고종우에게 눈길을 던졌다. 그러자 그는 입술을 찡기며 외면하였다. 그의 표정으로 미루어 여전히 수미를 거부하는 립장이 분명하였다. 그들사이에 무슨 일이 있은것일가?… 아마도 변함없이 점잖고 례절바르며 고정한 고종우는 지금 수미의 결박에서 헤여나지 못하여 모지름쓰고있는것 같다. 여기엔 은영의 탓도 얼마간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바로 그것때문에 일생 마음의 가책을 받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리근우위원장이 소란스럽게 한숨을 내뿜고나서 말했다.
《수미씬 타고난 명배우요. 그런데 너무 이질적이거든. 은영씨도 말했지만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우리가 도와줍시다.》
여전히 고종우는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다시 침묵… 은영이가 여겨보니 강상일은 부위원장의 일로 하여 아직도 피가 나게 입술만 깨물뿐이였다. 좌중의 분위기를 돌려세우려는듯 리근우가 은영의 건강에 대하여 이것저것 묻고나서 계속했다.
《우리가 잘 돕지 못해 미안하오. 너무 무리하지 마시오. 은영씨 아버지랑 동생에 대해서 우리도 계속 알아보는중인데… 이제 행처가 밝혀지겠지. 재판이 벌어지면 도와나설 사람들이 많소. 그러니 은영씨,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고맙습니다.》
바로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수미와 한정애가 들어섰다. 어쩌면!… 방금 그 녀때문에 격렬한 언쟁이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일제히 놀란 눈빛을 그 녀자에게로 돌렸다.
그런데 수미의 모습이 이상하였다. 무엇인가 애써 찾고있던 검푸른 두눈이 정처없이 희번뜩이였다. 오연하고 매초롬하던 얼굴이 퍼렇게 이끼가 낀듯 하였다. 수미는 대번에 사람들을 쭉 둘러보고나서 은영이의 앞으로 바투 다가섰다.
은영은 오싹 소름이 끼치는것을 느꼈다. 무슨 일인가. 오늘도 또 무슨 언터구를 가지고 야료를 부리려는것인가?… 숨이 차서 헐썩이는 수미의 치찢어진 두눈을 쳐다보며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뒤걸음쳤다. 어깨에 걸치고있던 외투가 미끄러져내렸다. 다음순간 어느새 수미가 와락 달려들며 은영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은영은 몸서리쳤다. 고통스러운 모대김에 이지러진 그 녀자의 괴이한 행동에 기겁하지 않을수 없었다. 방안의 모든 사람들도 흠칠하였다. 고종우가 뛰쳐일어나 거의나 기절할것 같은 은영이를 도우려 했다.
《은영씨!》 수미의 칼칼해진 목소리였다. 《난 무서워. 저기서 지금… 무서운 일이 벌어졌어요!》
《?…》
이번엔 은영이가 금시 넘어질것 같은 수미를 와락 붙안았다.
《왜 그래요. 예?… 무슨 일이 있었어요?》
《지금 저기서…》 수미가 신음하였다. 《아버지를, 은영씨 아버지를…》
《뭐?》
두다리가 휘청거렸다. 아버지가 어찌됐단 말인가. 아버지가 어데 계시기에?… 누군가 좀 자세히 말하라고 소리친것 같다. 그러자 수미는 뒤쪽에서 울고있는 한정애에게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자기를 대신하여 말해주라는 의미 같았다.
누군가 정애를 붙잡고 세게 흔들어댔다.
《어서 말해요. 무슨 일인지?》
한정애의 눈물에 젖은 두눈이 은영이를 더듬더니 무너지듯 휘청거리며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저기서 지금 사형수들을 끌고가고있어요. 미군찦차뒤에 바줄로 맨 사형수들을…》
《그래서?》
누가 먼저 소리쳤는지… 일시에 고함친것인지도 모른다.
《거기… 거기에 은영선생 아버님과 동생… 일한씨와 그담 또…》
귀가 멍-해졌다. 무수한 불꽃들이 눈앞에서 맴돌이쳤다. 은영은 사람들이 정애를 붙들고 다우쳐묻는 소리를 얼나간듯 듣고있다가 급기야 《아!-》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문을 차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사람들이, 특히 날파람있는 강상일이 제때에 붙잡지 않았더라면 2층계단에서 굴러떨어질번 하였다.
눈이 바로 서지 않았다. 그래도 허우적거리며 벌떼같이 웅성거리는 거리의 소음을 쫓아 정신없이 달려나갔다.
흐릿한 해빛이 눈이 녹아 번들거리는 포도에서 어룽거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한쪽으로 밀려가고있었다. 그들이 보고있는것은 차도에 끌려가는 사람들이였다. 미군찦차꽁무니에 바줄로 맨 사람들이 끌려가는데 다섯인가 여섯인가 되여보였다. 아니, 일곱명의 사람들이였다. 그 가운데서 맨 처음 눈에 띈것은 일한이였다. 머리를 높이 들고 사방을 휘둘러보고있다. 시꺼먼 피자욱이 얼룩을 그린 그 얼굴… 다음순간 은영은 심장이 뚝 멎는듯 했다. 찦차의 속도를 미처 따르지 못해 비칠거리다가 쓰러지는 아버지를 보았던것이다. 아스팔트바닥에 질질 끌려가는 아버지, 은영은 울부짖었다.
《아버지!-》
그러나 그것은 입안에서만 꾸룩거린 신음소리에 불과했다. 팔을 내뻗치며 또 소리치려 했으나 목이 꽉 메여 아무 소리도 나가지 않았다.
길복판에서는 일한이가 아버지쪽에 머리를 돌리며 무어라고 소리치고있었다. 손목을 묶고있는 바줄을 힘껏 당기며 아버지를 도우려 하나 찦차의 속도에 그만 저자신도 나동그라졌다. 그통에 한바줄에 묶이운 여러사람이 같이 넘어져 질질 끌려갔다. 차도에 피가 랑자했다. 길옆으로 따라가던 사람들이 째지는듯 비명을 질렀다. 그때에야 미군찦차가 멎어서고 경찰 하나가 뛰여내려 바줄에 묶인 사람들을 일으켜세웠다.
은영은 보았다. 수염이 시꺼먼 아버지의 험상궂게 된 모습이며 적들을 향하여 무어라고 웨치는 일한이… 아버지와 일곱사람 모두의 목에는 나무표쪽이 걸려있었다. 매 사람들의 표쪽에 이름을 크게 쓰고 《빨갱이》들의 말로는 이렇게 된다고 쓴것 같았다. 아버지 김학송에 이어 김일한, 김철규, 박선봉, 리용수, 림호… 그 패쪽까지 눈에 띄였을 때 은영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은영이와 제일 가까운 사람들모두가 거기에 있었다. 그들모두가 사형수들로 끌려가고있다. 심장의 아픔이 너무도 커서 온몸의 살과 근육이 푸들푸들 떨렸다.
사람들이 그를 일으켜 데리고 갔다. 어데로 무엇때문에 가는지도 알지 못했다. 웅성거리는 소음과 째지는듯 한 부르짖음이 귀청을 찢을뿐이였다. 누가 무엇때문에 부르짖는것인지? 사형수들을 끌고 가던 찦차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강상일이 어느 골목길로 은영이를 잡아끌고있었다. 은영은 죽은듯 끌려가다가도 발작적으로 머리를 돌려 아버지와 동생을 그리고 림호를 찾으며 정신없이 울부짖군 하였다.
뒤늦게야 어느 길섶의 제방뚝에 이르렀다. 그곳에서는 이미 사형수들의 《죄상》이 렬거되고 그들을 한사람씩 끌고나가 나무말뚝에 묶고있었다. 림호의 목소리가 쩡쩡 울린것은 바로 그때였다.
《여러분!- 우리가 왜 피를 흘려야 합니까? 일본놈들이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학살하더니 오늘은 미국놈들이 또 피비린 살륙을 벌리고있습니다. 내 나라, 내 땅을 타고앉아 주인행세를 하면서 조선의 완전독립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안될것입니다.》
바줄을 쥔 놈들이 달려들어 행패를 했으나 림호는 더 높이 머리를 추켜들며 웨치고있었다.
《여러분! 무서워 마십시오.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이북사회처럼 나라의 주인이 되여 잘 살기 위하여 힘껏 싸우십시오!》
먼저 말뚝에 매인 아버지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잘해, 림호군, 장하이!》
말뚝으로 끌려가며 림호는 노래를 불렀다. 아니, 그것은 노래가 아니라 피나는 호소였고 절규였다.
저기 바다로 가자 저기 바다로 가자
놈들이 헝겊으로 눈을 싸매고 입을 틀어막기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하늘을 향해 웨치는것이였다.
《나의 갈매기, 어데 있소?!… 내 노래를 들어주-》
끝내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몸부림치며 자기의 마지막당부를 드러내보일뿐이였다. 《여기 있어요. 여기!…》 은영이 허우적거리며 앞으로 밀고나가려했으나 한발자국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누군가 꽉 붙안고 놓아주지 않았고 수많은 군중이 앞을 막아서있었다.
《아버지- 안녕히!…》 이것은 동생 일한이의 작별인사였다. 거쉰 목소리가 그에 대답하였다.
《장하다, 내 아들아-》
《동지들!-》 이렇게 마감으로 소리친것은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그 다음 은영은 아무것도 가려듣지 못하였다.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보지도 못하였다. 사격구령이 내리고 일제사격의 총성이 칼끝처럼 날카롭게 가슴을 찢으며 울렸을 때에는 그만 실신하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사람들의 물결이 파도치듯 그를 밀치며 흘러갈 때에야 별안간 눈을 뜨며 부르짖었다.
《어데 있어요, 아버진? 일한이는, 그리구 림호씨는?… 어데, 어데 있어요?》
리근우와 고종우 두사람이 은영이를 량쪽에서 붙들고있었다. 두사람중 누가 말했는지 놈들이 시신들을 차에 싣고 갔다고 했다. 이렇게 모든것이 끝난단 말인가. 이렇게?!… 다시 기신없이 허우적거리며 줄줄이 찍혀있는 피자욱을 따라갔다. 자기를 붙들고 있는 사람들을 사납게 뿌리치고 차들이 달리는 길복판에까지 나아갔다.
은영이때문에 달리는 전차가 멎어서고 화물자동차며 미군장교가 탄 찦차도 아츠럽게 바닥을 허비며 멎어섰다. 바로 그 차도에 참혹한 피자욱이 점점이 찍혀져있었다. 은영은 그 시뻘건 피자욱을 손으로 쓸며 정신없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버지!- 일한아!-》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저게 동백꽃아가씨 아니요?》
《바로 그 녀가수요.》
《저런! 미인가수가 끔찍한 일을 당했구만.》
아니다. 이제 더는 동백꽃아가씨가 아니다. 질다아가씨도 아니고 카르멘도 꼰스딴찌나(쇼뻰의 가극 《리별의 곡》녀주인공)도 아니다. 물론 춘향아씨도 아니다. 피가 줄줄 흐르는 심장에서 새로운 노래를 엮고있는 은영이일따름이다. 은영은 미친것 같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보이는것은 온통 피자욱뿐이였다. 하늘도 태양도 피빛으로 물들어있었다.
도로 한복판에서 얼어붙은 아스팔트를 더듬고있는 은영이때문에 숱한 차들이 길이 막혀 멎어서 있었다. 자동차들이 겨끔내기로 경적을 울렸다. 미군장교가 탄 찦차에서 특히 앙칼진 소리가 신경질을 부렸다. 위협하는 소리, 악을 쓰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고 숨가쁘게 달려온 교통경찰이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사정없이 발길질도 하기 시작했다.
《야, 이년! 차길을 막으문 어떻게 해? 일어나라, 일어나!… 어디 죽어봐야 알겠어?》
다음순간 은영이 뛰쳐일어났다. 통분한 마음이 피타는 증오로 바뀌였다. 아버지를, 동생을,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자들을 눈앞에 보는것만 같았다. 하여 은영은 손바닥에 매닥질된 눈과 피의 덩어리를 경찰의 면상에 마구 휘뿌렸다.
《이 백정들아!-》 난생처음 은영은 성대에 무리가 갈 념려도 않고 목터지게 울부짖었다. 《우리 아버질 내놔라! 내 동생을 살려내라- 아!-》
경찰이 미친듯 날뛰며 곤봉을 휘둘렀다. 은영은 두손으로 머리를 움켜쥐며 쓰러졌다. 그러자 길가에 모여섰던 사람들이 일시에 왁 밀려들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경찰에게 달려들어 뭇매질을 시작했다.
《이눔아, 이 아가씰 때려?》
《야, 네놈두 사람이여?》
《이름난 녀가수한테 무슨 행패질이야, 이놈아!》
《사람을 때리는게 경찰이야?》
《조겨라! 사정보지 말구 조겨라!-》
군중의 살벌한 폭발을 지켜보던 미군찦차가 뒤걸음쳤다. 공포에 질린 미군장교의 우거지상이 퍼릿한 배기가스에 가리워졌다. 미군장교는 뒤골목길로 달아나버렸다. 뒤늦게야 나타난 경찰들도 곤죽이 된 교통경찰을 보면서도 어쩌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여러사람이 은영이를 끌어내였다. 리근우, 강상일, 고종우와 한정애 그리고 수미… 그런데 넌 누구냐, 누구냐?… 휘뿌예진 은영의 눈에 비쳐든것은 나어린 동생 유한이였다. 유한이 뒤에는 미영이가 어푸러져있다.
아버지가 사내애들은 한자돌림으로, 계집애들은 영자돌림으로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미영이는 이제 겨우 6살이다. 그 애까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있단 말인가?…
그러나 은영이에게 매달려 울부짖은것은 유한이였다.
《누나, 아버지가 죽었어. 맏형님두…》
어린 동생은 맏누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겼는지… 죽었다고 한다. 죽는다는게 무엇이냐?… 그것은 영영 가버렸다는것을 의미한다. 아버지와 남동생을, 사랑하는 림호를 다시는 볼수 없다는것을 말하는것이다.
철없는 미영이까지 어푸러져서 중얼거린다.
《죽었어-》
《유한아, 미영아!-》 혀가 까드라드는것 같았다. 《아버진 살아계셔. 누구도 죽지 않았어.》
그러나 어린 동생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유한이가 울부짖었다.
《죽었어. 누나-아! -난… 다 봤어.》
미영이도 째지는듯 소리친다.
《나두 봤어!-》
그렇다. 부정할수 없는것이다. 비로소 은영은 머리를 뒤로 젖히며 목놓아 울기 시작하였다. 하늘이 빙빙 돌아갔다. 이렇듯 참혹한 일이 자기에게 차례지리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봉천에서 왜놈들이 말꼬리에 매여 끌어왔던 그 사람들이 아버지와 동생, 림호의 모습우에 떠올랐다. 총창으로 찔러죽이던 그 끔찍한 참변… 그런데 나라가 해방된 오늘 《해방자》라고 떠들던 미국놈들이 아버지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무참하게 죽였다. 이 땅과 이 나라의 주인을 멀고먼 바다건너 남의 나라에서 기여든 놈들이 죽인것이다.
피에 젖은 태양, 피에 젖은 땅… 그 땅으로 머리를 풀어헤친 어머니가 무릎걸음을 하며 오고있었다.
《은영아, 얘야!-》 어머니는 실성한듯 했다. 두팔을 뻗치며 딸의 이름만 정신없이 웨치고있었다. 《은영아- 이 일을 어쩐단 말이냐. 이게 무슨 변이란 말이냐- 은영아!-》
은영이는 어린 동생 유한이를 껴안고 어머니에게로 벌벌 기여갔다.
《엄마!-》
《어머니!-》
어머니와 딸, 어린 동생들이 한덩어리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모여섰던 사람들도 눈물을 참을수 없어 고개를 돌리며 눈굽을 훔쳤다. 어떤 아낙네는 그들을 일으키려다가 저도 같이 껴안고 왕왕 소리쳐 울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울고있는 사람들속에서 곡하는 소리가 제일 높은것은 수미였다. 한정애는 길가의 가로수를 붙안고 소리없이 울고있었다.
그러나 은영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추위에 얼어붙었던 포장도로까지 꺼져내리고있었다. 발을 딛고 설 땅이 은영이에게는 없었다.…
×
그날은 추위가 한물 진 일요일이였다.
수천명에 달하는 군중이 은영이의 눈앞에 운집해있었다. 서울시 한복판의 파고다공원이였다. 석탑을 중심으로 정자와 은행나무, 오동나무, 측백나무들이 들어선 공원 어느 구석에나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소개를 하고 들어오던 수미가 은영이를 꽉 껴안았다.
《은영씨, 내 마음까지 합쳐서 노랠 해줘요. 응?!》
그 녀자의 말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은영이에게 모질게 굴던 수미가 무엇때문에 이처럼 절절한 목소리를 짜내는지 알려고도 안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그저 여느때와 다름없이 무대로 나설뿐이였다.
드디여 은영은 멎어섰다. 수천에 달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머리숙여 인사하고 눈길을 들었다.
《여러분, 노래에 앞서 꼭 하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가수는 노래부르는 사람이지 연설하는 사람은 아니다. 커다란 호기심이 그들모두를 은영이 한사람에게 집중케 했다.
《바로 이틀전에…》 어느새 은영은 목이 잠기는것을 느끼며 젖은 목소리로 계속하였다. 《저의 아버지와 남동생 그리고 저와 일생을 약속한 사람이 무참하게 학살되였습니다. 그날 제가 마지막으로 본것은 길바닥이 온통 피로 젖어있는것뿐이였습니다. 그걸 보고서야 저는 울었습니다. 너무 가슴아파서, 원통하고 분해서… 목터지게 울었습니다.》
목소리가 떨린다. 눈물로 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수천에 달하는 사람들이 그를 지켜보고있다.
《여러분, 말해보세요. 그래 조국통일을 바란것이 과연 죄로 되여야 한단 말입니까. 제 나라, 제 민족이 하나로 되여 살기를 바라고 그것을 위해 싸운 사람을 학살하다니!… 무엇때문입니까. 예?!… 그때, 바로 그때… 난 보았습니다.
하늘의 태양이 피에 젖어있는것을 보았습니다. 그건 내가 찾고 부르던 태양이… 우리모두가 바라던 밝은 태양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나의 태양을 소리쳐 부르려고 합니다. 나의 태양이, 어서 오라고 어서 새날을 밝혀달라고 노래하겠습니다.》
은영이 이럴줄은 몰랐으리라. 처음 리근우를 비롯한 동료들은 무엇때문에 은영이 곡목도 알리지 않고 나가겠다고 우겨대는지 의아해했었다. 그러나 지금 무대뒤쪽의 석탑에서 내다보는 그 사람들, 리근우며 강상일, 고종우, 한정애와 수미까지도 눈시울을 떨며 그를 지켜보고있다. 관중들도 숨을 죽였다.
그처럼 모진 아픔을 안고 나온 녀가수의 노래를 기다리며 하나같이 두눈을 슴벅거리고있었다.
지휘자가 멍하니 서있는통에 반주음악이 늦어졌다. 은영이 노래를 시작해서야 그들은 서둘러 따라섰다.
오 밝은 태양 너 참 아름답다
폭풍이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은영이 13살 어린 나이에 전국녀중생들의 성악콩클에 나서서 처음 불렀던 노래였다. 봉천에서의 참변때에도 이 노래를 택했었다. 그런데 그 밝은 태양은 언제나 솟으려는것인가?!…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오고
하늘의 밝은 해는 비친다
은영은 지금 참혹하게 학살된 아버지와 남동생, 림호의 넋을 위로하여, 그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려 싸운 그 념원을 위하여, 은영이 자신과 지금 노래를 듣고있는 수천에 달하는 군중의 간절한 희망을 대변하여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나의 몸엔 사랑의 별
오 나의 태양 비친다
오 나의 나의 태양 찬란하게 비친다
그렇다. 은영은 사랑했고 그 결과 자기자신을 발견하였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받을수 있다. 아버지는 만사람의 사랑을 받는 딸을 원했다. 만사람이란 곧 대중을 말하며 인민을 말하는것이다. 지금 그 대중이, 만사람이 요란한 박수갈채로 은영이에게 사랑의 정을 보내고있다.…
만장이 재청을 소리질렀다. 은영은 그것을 준비해두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부르려던 노래였으나 오늘은 은영이 혼자서 불러야 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도 합쳐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흰 물새 훨훨 파도우에 넘나들고
아득한 수평선엔 흰 돛이 아름다운
저기 저 바다로 우리 가자
림호씨, 이 노래를 들어주세요. 흰 돛이 아름다운 저 바다로 우리 언제나 함께 가자고 한 그날의 약속을 되새기며 부르는 노래, 이 노래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의 사랑, 나의 파도… 그 파도우에 흰 물새가 넘나들며 노래하고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 나래를 펴고 파도우를 날고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랑만과 희열에 넘친 선률로 이어진 노래였지만 은영의 얼굴은 온통 눈물에 젖어있었다. 어느 소절부터 어떻게 울기 시작했는지 알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눈물의 노래가 아니다. 희망의 노래, 행복의 노래이다. 그것이 눈물에 녹아있을뿐이다. 은영은 희망의 바다, 아득한 수평선에서 태양이 빛나는 바다를 보며 노래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