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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순아, 내 언젠가 노래에는 색이 없다고 말한적이 있지?… 차츰 알게 되였지만 노래도 역시 붉은색과 하늘색 그리고 요염하고 유혹적인 황색 또한 어둡고 침침한 색으로 갈라볼수 있는거야. 노래란 결국 소리로만 울리는게 아니더구나. 음색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건 소리의 색갈을 두고 하는 말이고 내가 말하는건 사람들이 듣고 감수하는 감정의 색조라고 할가… 그래서 어떤 노래는 사람들에게 힘과 랑만을 주지만 어떤 노래는 애수와 절망의 눈물을 안겨주지.

나는 뒤늦게야 그걸 깨닫고 좌익계의 예술단체들에서 주최하는 무대에만 나섰단다. 미국놈들과 나라를 분렬시키려고 꾀하는 매국노들을 반대하여 일떠서도록 사람들을 고무하고 추동하는 그런 노래를 부르려고 말이지. 바로 아버지와 림호씨 그리고 일한이와 차한이 두 동생들이… 아니 아니, 이렇게 말하는게 아니구나. 바로 현순이 네 할아버지와 아버지, 삼촌들이라구 해야 하는걸.

그들이 박수갈채와 꽃다발에 눈이 멀어있던 나를 의로운 그 길로 이끌어주었던거야.

현순아, 그때 내가 《카르멘》이요 《뜨라비아따》요 하는 가극무대를 떠나 처음 출연한것이 바로 좌익에서 조직한 《춘향전》이였어.

물론 후에는 적극적인 무대물들을 내놓았지만 처음엔 《춘향전》으로 시작했던거야. 민족의 얼을 살린다고 시작했는데 아직 그밖엔 무대에 내놓을 작품이 없으니 그것만도 다행한 일이라고 봐야지. 내가 주인공을 하고 리도령역은 강상일, 변학도역은 너도 잘 아는 고종우 그분이 맡았는데 그것때문에 좀 난처한 일이 생겼단다. 고종우란 사람을 어떻게 믿을수 있는가 하고 극성스레 반대해나서는 사람이 있었던거야. 그게 바로 좌익계 음악가동맹(우익에서도 그런 조직을 무었길래 갈라서 부르군 했단다.) 부위원장을 하던 오학성이라는 사람이였지. 칼날같은 사람이였단다. 강마른 몸에 턱이 뾰족하구 눈이 작은 사람이였는데 좀 비뚤어진 성미라 할가, 편협하다구 할가… 한때 지휘봉도 들긴 했지만 그 성격엔 음악지휘가 잘 어울리지 않는것 같더구나. 너도 잘 알겠지만 지휘란 팔을 흔들며 박자나 쳐주는게 아니지 않니. 종이에 그려진 악보를 그대로 옮기는것도 아니야. 오선지에 그려져있는 하나의 악보를 놓고도 자기 식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게 바로 지휘인데 오학성이란 그 사람은 차라리 연설을 하고 시위대렬의 앞장에서 구호를 웨치는게 더 좋았을거라구 난 생각하군 했어. 그가 고종우동무를 왜 그리 미워했는지 그때 나는 다 알지 못했구나.

그걸 알게 된것은 퍼그나 오랜 세월이 흘러간 다음이였지만 그때 고종우가 《춘향전》의 변학도역을 맡아하는것까지 반대해나서니 나도 그가 바로 보이지 않더구나. 다른 사람들도 머리를 기웃거렸구… 그렇지만 처음에는 나도 그를 대단히 고맙게 여긴 일이 있었어. 차한이가 부탁한 한정애란 처녀를 바로 그 사람이 극장에 넣도록 힘써주었으니까.

참, 얼마전까지 인민배우가 되여 이름을 날리던 한정애도 인젠 늙었더구나.

무정세월이라더니… 한정애는 지금도 나를 만나면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물짓군 한단다. 차차 얘기하겠지만 그럴만 한 사연이 있었어. 언제든 잊지 못할 가슴아픈 눈물의 사연말이지… 가만, 이야기가 빗나가누나.

그때 오학성이라는 사람이 피대를 돋구던 일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어.

《고종우씨는 믿을수 없습니다. 그가 우리 조직에 박힌 스파이인지 어떻게 안단 말이요. 기업가인 아버지를 등대고 떵떵거리며 살 사람이 아닌가 말입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란 사람이 미국놈들의 턱밑에 붙어서 군수품조달을 맡고있는거야 여러분들도 잘 알지 않습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좀 야박스레 꼬집는다 하겠지만 고종우씨한테 붙어다니는 수미씨는… 사실 수미씨는 고종우씨와 정식 혼약도 없으면서 그 사람의 정부처럼 붙어있는데 그건 그렇다치구 그녀가 지금 김해송의 <KPK악단>에서 매일같이 미국놈들의 털난 귀구멍에 간지러운 소개문따위나 불어넣어주며 해죽거리고있으니… 참을수 있는가 말이요?… 그런 박수미와 한짝인 고종우씨를 난 절대 믿을수 없습니다. 분명코 그는 저쪽편이란 말이요!》

그는(오학성이란 사람말이다.) 참 별난 사람이였어. 자기는 보잘것 없는 관현악단이 아니라 세상을 지휘하고싶다고 말하군 했는데 롱으로 하는 말은 아니였던것 같애. 그의 본심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을 지휘하고싶었던게야. 사람들을 다스리는데서 만족을 느끼는 그런 사람들이 있지?… 그 사람은 한때 일본에서 고학을 하고 서울과 동북지방에도 떠돌아다녔다는데 흥!… 제가 뭐 유명한 혁명가나 되는것처럼 행세하면서 사람들을 꼬집군 했지.

난 고종우란 사람을 끝까지 두둔했어. 그는 좋은 사람이였다. 그때도 그랬구 그후에도 늘 점잖구 의젓했어. 진짜 예술가였지. 음악을 사랑하구 생활을 사랑하구 사람들과의 관계도 진실했어. 그래서 나만 아니라 우리 좌익계음악가동맹 위원장인 리근우와 작곡가 안기영(그분은 그후 인차 북에 들어왔단다.) 그리구 강상일동무랑 다 그를 좋은 사람이라구 우겼던거야. 우리가 뭐 지하투쟁을 하는가, 노래로 사람들을 고무하고 깨우치는데 기업가인 아버지면 어떻구 수미는 또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고 몰아주었지. 그리고 난 수미씨도 우리 좌익계로 돌려세울수 있다고 장담했어. 이를 갈며 일본놈들을 미워하던 수미씨가 지금 미국놈들의 본심을 몰라서 김해송파에 붙어있는거라구 생각했던거야.

그리구 또 중요한건 고종우만 한 바리톤가수를 어데 가서 또 구한단 말인가.

그가 좌익계로 찾아온 이상 뭣때문에 쫓아버려야 한단말이냐.

솔직히 말해서 그때 나는 정치적식견이 아직 소학생정도밖에 안되였단다.

그래서 좌와 우가 피를 물고 싸우던 그때 고종우씨가 왜 우리쪽에 기울어졌는지 알지 못하구있었어. 알려구도 안했구…

남조선에서 10월인민항쟁이 터지던 때였단다. 림호씨가, 아니 너의 아버지가 말하던 그런 투쟁이 대구를 비롯한 경향각지에서 일어났던거야. 정말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단다. 서울에서도 매일같이 무서운 소문들이 돌아가군 했어. 누가 암살되고 누가 폭탄을 던졌다느니, 누가 또 미국놈들의 총에 맞았다느니 하면서… 정말 무서운 때였구나. 그런데도 난 여전히 제일에만 바쁘군 했지.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공연을 하고 공연비를 제때에 주지 않는다고 경영주를 찾아가 다투고… 그러는새 어느덧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또 겨울이 왔구나. 평생 잊을수 없는 무서운 겨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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