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낯선 녀인

1

림현순이 그 미지의 녀인을 알게 된것은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였다. 도저히 믿을수 없는 그런 일이 중국방문공연길에서 벌어졌다. 후에 가서도 현순은 그 낯선 녀인이 수십년이나 그런 상봉의 기회를 노려오지 않았을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가끔 하군하였다. 그처럼 그것은 믿기 어려운 우연중의 우연이였던것이다.

그때 그는 《베이징반점》이라는 호화현판이 걸린 호텔의 435호실에 들어있었다. 지난해에 왔을 때에도 이곳 3층 어느 방엔가에 들어있었다. 그러나 그때엔 민속무용조곡 《계절의 노래》공연차로 왔었지만 지금은 전설무용극 《봉선화》의 공연을 위해 와있다. 중국측에서 아시아민족예술축전에 우리가 전설무용극을 가지고 참가해줄것을 정식 초청했던것이다.

림현순은 전설무용극의 형상지도를 맡고있는 강사로서 작품의 녀주인공역을 맡고있는 신정미와 한방에 들어있었다.

《베이징반점》은 □자모양의 고색창연한 건물이다. 밖에서 보면 극장이나 옛 궁전을 상기시키나 건물내부는 현대적으로 꾸린 전형적인 중국식호텔로서 □자모양건물의 가운데 빈 공지는 유리지붕을 씌우고 그안에 갖가지 열대식물과 고급식탁들을 조화롭게 배치했는데 무도장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무대까지 갖추어놓았다. 밤늦도록 그곳에서는 춤과 음악이 그칠줄 몰랐다.

지난해 여름에 왔을 때 이 □자형호텔의 현대식뒤쪽채에는 국제의회동맹년차총회에 온 대표들이 들어있었다. 그들은 국제적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답게 유리지붕아래의 유흥장에서 조용히 고전음악을 들으며 음료를 마시는것이 전부였었다. 그들은 조선의 무용수들을 만날 때에도 두팔을 쩍 벌리며 아릿다운 그 모습에 황홀해하거나 엄지손가락을 쳐들며 찬탄과 환영의 뜻을 보내군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수많은 외국의 관광객들이 떠들썩 웃으며 달려들어 기념수표를 요구하는가 하면 사진을 찍자고 혹은 춤을 추자고 잡아끄는것이였다. 그들이 청하는 유흥장에서는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

건물벽체를 따라 오르내리는 원형유리승강대도 멎을줄 몰랐고 샴팡술의 병마개들도 끝없이 튕겨오르며 포물선을 그었고 몸이 둥싯한 녀인들과 회초리처럼 하느적거리는 처녀들에게 초점을 맞춘 갖가지 현란한 조명불빛도 술에 취한듯 정신없이 껌벅거렸다.

방의 뒤쪽창가에서 그곳을 내려다보느라면 어지럼증에 머리가 휘돌아가는듯 싶었다.

두툼한 창가림까지 내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쪽의 환락의 세계와 그들은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였다.

첫 공연을 앞두고 현순은 신정미와 같이 《봉선화》의 녀주인공 봉선이의 형상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고있었다. 시간을 아껴야 했다. 외국에서 진행하는 첫 공연이였으므로 하나의 춤가락, 얼굴표정에도 깊은 주의를 돌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더우기 조국에서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는 그 어려운 속에서도 그들을 외국에 보냈는데 유흥장에 정신을 판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별안간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현순은 미간을 찡기였다. 호화로운 호텔방에서 배우들중의 누군가가 쓸데없이 전화질을 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아닐세라 무대에서 봉선이의 애인 억쇠역을 맡은 조인규였다.

《무슨 일이예요?》 현순이 물었다.

《강사동지, 좀 이상한 일이 있어서…》 조인규가 별스레 갑자르며 떠듬거리는 말이였다. 《저기 뒤쪽의 유흥장에서 지금 어떤 녀인이 계속 우리를 살피고있습니다.》

조인규는 무용가답게 키가 늘씬하고 곱게 생긴 젊은이였다. 주역을 맡고있는 그가 지금껏 뒤쪽의 유흥장에 눈을 팔고있었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한창나이 젊은이일수록 유혹을 이겨내기 힘든 법이니… 현순은 나직이 말했다.

《인규동무, 쓸데없는데 눈팔지 마세요. 그러다 머슴총각 억쇠의 눈이 흐려지면 어쩌겠어요.》

《아, 강사동지.》 조인규가 급해했다. 《어쨌든 뒤쪽창문을 좀 내다보십시오. 선인장화분곁의 식탁에 앉아있는 녀인인데 정말 이상합니다.》

《인규동무, 내가 몇번이나 말했어요. 공연을 앞두고는 절대 잡념을 버려야 한다구요!》

현순이의 그 말이 조금 랭랭하게 울렸던지 그는 《예, 강사동지.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그는 창밖의 녀인에게서 눈을 뗄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얼마후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그가 방안에 들어섰다.

《강사동지, 잠간만 저길 좀 내다보십시오. 정말 이상합니다.》

현순은 언짢아하는 표정으로 그를 스쳐보았다. 혹시 신정미와 무엇을 약속한것은 아닐가? 이들이 무대우의 애인관계를 여기 호텔방에까지 끌고오는것이라면?…

《강사동지.》 조인규가 계속했다. 《저 녀인이 계속 강사동지를 따라다니다가 지금도 살피고있는데… 누군지 보십시오. 혹시 아는 사이일수도 있지 않습니까. 조선사람이 분명한데…》

옆에서 듣고있던 신정미가 코웃음쳤다.

《베이징에 와서 아는 사람을 만나요?》

조인규가 대꾸했다.

《그럴수도 있지 뭐. 아니면 우릴 감시하는지 알게 뭐야!》

《그럼 우리한테 정보원이 붙었다는 말이예요? 아이참, 어처구니도 없지!》

《동문 좀 가만있소!》

조인규의 성난 표정이 현순이로 하여금 자리에서 일어서게 했다.

《우릴 살핀다구요?》

창가로 다가가 창가림을 들치였다. 조인규가 선인장화분이라 한것은 사실 석류나무화분이였다. 그옆의 원형식탁에 홀로 앉아 이쪽을 지켜보고있는 녀인이 곧 눈에 띄였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중년부인이였는데 첫눈에도 그 녀자가 이상야릇한 매력을 가지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아까 우리가 호텔에 들어설 때…》하고 조인규가 속삭이였다. 《강사동지와 마주치자 입을 딱 벌리고있던게 생각 안납니까?… 생각 안난다구요? 아, 4층에까지 따라와 어정거렸는데요. 그때부터 계속 우리쪽만 살피고있단 말입니다.》

현순은 머리를 저었다. 그 녀인은 그들을 살피고있는것이 아니라 무심히 눈을 들어 갖가지 불빛이 언뜩거리는 허공을 견주고있을뿐이였다. 미친듯 히히닥거리며 서로 껴안고 돌아가는 사람들과는 관계없이 한자리에 앉아 남모르는 상념에 잠겨있었다.

현순은 창가림을 놓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인규동무, 내 이번에 전설무용극을 창조하면서 고전작품들을 더러 읽어봤는데 이런 옛 시가 있더군요.

 

거문고소리 자지러질 때

마음 또한 자지러지누나

 

충고하는데 애당초 저런덴 귀기울이지 마세요. 눈길도 돌리지 말고.》

조인규는 물고기모양 입만 벙긋거리고있었다. 무용지도를 전문하는 림현순이 대단한 독서가라는것은 이미 알고있었지만 옛 시까지 꺼들줄은 생각지 못했을것이다.

신정미가 그의 어눌해진 모양을 두고 키득거렸다. 그러자 그는 처녀쪽을 흘끔 치떠보고나서 중얼거렸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가서 머슴총각의 감정표현이나 잘 연구하세요.》

《예 예, 그러지요.》

다음날 아침 식당으로 들어서던 현순은 앞쪽의 가운데 식탁에 홀로 앉아 기다란 저가락을 입에 물고있는 그 녀인을 보았다.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현순이만을 지켜보는데 어쩐지 섬찍한 느낌이 들었다. 그처럼 그 녀인의 눈빛은 류달랐다.

현순은 갖가지 료리들이 쟁반들에 무드기 담겨져있는 료리대로 걸어가 남새빵과 닭알부침 그리고 우유고뿌만을 골라들고 돌아섰다. 그때까지도 녀인의 눈빛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여러 배우들이 손짓하여 부르는 식탁을 지나 맨 뒤쪽의 조인규에게로 갈 때까지도 지꿎은 시선은 비수처럼 현순의 잔등에 박혀있었다.

자리에 앉자 숨을 활 내뿜고 여전히 자기를 견주고있는 그 녀인을 언짢게 마주보았다. 그제서야 녀인은 눈길을 떨구었다.

《강사동지.》조인규가 놀란듯 말했다. 《왜 이렇게 식사를 조금 합니까. 어디 말짼게 아닙니까?》

《아-니, 그저 기름진 중국료리들이 구미에 맞지 않아서…》

빵을 들고 조금씩 뜯으며 이상한 녀인을 살펴보았다.

《인규동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 녀인이 어째 계속 나만 볼가요?》

조인규가 머리를 홱 돌렸다.

《누구라구요? 아, 저 녀자!》 그는 소고기볶음을 입에 쓸어넣고나서 히쭉 웃었다. 《강사동지, 그런데 속쓰지 마십시오. 이런 옛시가 있지요. 거문고소리 자지러질 때… 생각나시지요?》

《됐어요.》

우유를 한모금 마시고나서 현순은 또 눈길을 돌렸다.

《어쨌든 저 녀자는 우리를 살피고있어요. 왜 그럴가. 무얼 노리고?》

조인규가 낮게 수군거렸다.

《강사동질 노리는게 아닙니까? 랍치해가려구요.》

《또 쓸데없는 소리!》

그때 그 녀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추 현순이를 향해 마주 오는데 눈길은 허공을 찌르고있는듯 했다.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걸음새, 축을 곧추 세우고 어깨를 올린 자세로 호흡을 받쳐서 걷고있다. 무용수들만이 그렇게 걷는다. 호흡으로 걷고 률동적으로 걷는다. 그러면 저 녀자도 무용가인가?… 춤출 나이는 퍼그나 지났는데… 혹시 내가 젊었을 때 어느 외국공연길에서 만난 일이라도 있는게 아닐가?… 림현순은 눈앞으로 다가오는 녀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면바로 다가오던 그 녀인은 현순의 앞을 지나 문쪽으로 곧추 걸어갔다. 한무리의 외국관광객들이 떠들썩하며 밀려드는 통에 그 녀자의 모습은 곧 가리워지고말았다.

 

전설무용극 《봉선화》의 첫 공연은 요란한 박수갈채와 환호속에 끝났다. 무대막이 몇번이나 오르내리고 그때마다 배우들은 손에 든 꽃다발을 흔들며 답례를 보냈다.

현순은 끝까지 남아있는 관객들속에서 얼핏 이상한 그 녀인을 알아보았다. 막은 완전히 내려지고 조명등의 불빛마저 서서히 꺼져가고있었으나 그 녀자는 선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있다가 머리를 수굿한채 천천히 몸을 돌려 걸어나갔다.

그러나 그것으로 일이 끝난것이 아니였다. 공연성과를 축하하는 연회에까지 참가하고 늦게야 호텔로 돌아왔을 때였다. 차에서 내려 울긋불긋한 축등들이 칠색무지개빛으로 어룽거리는 현관에 들어서던 현순은 급기야 걸음을 멈추고 굳어져버렸다. 호텔수위와 무슨 말을 주고받던 그 녀인이 앞을 막아서며 인사를 했던것이다.

류행복진렬장의 마네킨이 허리굽혀 인사를 했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것이다. 아래로 감기(조선춤가락)동작을 하는듯 두손을 맞잡고 무릎의 굴신이 유표하게 공손히 인사하고나서 그 녀자는 말했다.

《림현순선생이죠?》

《?!》

더더욱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어떻게 이름까지 다 알고?… 현순은 구원을 청하듯 앞서가는 처녀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속에 끼여있던 조인규가 무슨 기미를 채고 천천히 다가왔다.

《실례입니다만 한가지 청이 있어서…》하고 그 녀인이 계속하였다. 《전 미국에 사는 고진아예요. 잠간만 저를 만나주셨으면 해서… 제발 거절 말아주셔요. 그러시죠?》

《헌데 무슨 용건인지?…》

《그걸 한마디로 설명할순 없네요. 우선 약속해주셔요. 저를 만나주시겠다는…》

《지금 이렇게 만나고있지 않나요.》

《참 그렇군요.》 녀인은 한숨을 지었다. 《그런데 여기서야 어떻게… 저기 보석매장앞의 휴계장이 제일 조용하죠.》

《좋아요. 옷을 갈아입고 내려오겠어요.》

《고마와요, 림선생. 정말 친절하시군요.》

녀인은 처음으로 생긋 웃었다. 애처롭게 보이는 미소였는데 현순은 그 미소뒤에 바르르 떠는 눈물이 숨어있는듯 느껴졌다.

승강기앞에서 기다리고있던 조인규가 불안해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강사동지, 그 녀자가 뭐라고 합니까?》

현순은 어깨를 으쓱하며 재빨리 말했다.

《마침 잘 만났어요. 이제 나랑 같이 그 녀자를 만나보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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