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췰란드통합을 대하는 민족적립장

 

도이췰란드통일을 서도이췰란드에 의한 동도이췰란드의 흡수와 통합으로 리해해왔다.

남쪽의 통일부는 도이췰란드통일 20주년을 맞아 도이췰란드통일과정을 종합연구한다고 했다. 국제보수론객을 동원한 《대북고립》, 《붕괴》정책을 연구하고 도이췰란드처럼 《흡수통일》하겠다는 정책기도가 분명하다. 또한 북쪽의 미래에 대한 여러가지 예측이 란무하는 가운데 북이 《개혁》과 《개방》을 할수밖에 없고 이러한 과정중에 시점을 정확히 예측할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남쪽에 《흡수》될것이라는 주장이 여기저기에서 나돌고있다.

도이췰란드통일의 과정이 이러한 전망의 기본론리를 제공하고있는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후 지구상에 발생한 3개의 분단국가중에서 윁남은 1970년대에 전쟁의 방식으로 통일을 이룩하였다. 남아있던 분단국가중 도이췰란드가 통일의 문을 열어제꼈다.

윁남식전쟁통일은 사이공함락으로 바로 이루어졌고 도이췰란드식흡수통일도 베를린장벽이 무너짐으로써 곧바로 이루어졌던것이다.

동서랭전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이 1989년 11월 9일 저녁 무너졌다. 같은 분단의 운명을 지닌 우리 《한》반도에 밀려온 그 충격파는 컸다. 동서도이췰란드문제와 남북《한》문제라는 문제의식이 제기되였다.

분단이라는 사실자체만을 념두에 두고볼 때 도이췰란드와 《한》반도는 같은 운명에 놓여있었다고 할수 있다.

도이췰란드의 분단이 전쟁을 도발한 패전국에 대한 응징과 징벌의 성격을 지녔던데 비해 《한》반도의 분단은 부당하게 이루어진 미쏘 량대국의 자의적인 조치였다.

우리 나라가 분렬된 경위와 통일이 지연된 원인을 따져본다면 그것은 중요하게 외세와 관련되여있다. 원래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하고 식민지통치를 하지 않았더라면 분렬이요, 통일이요 하는 문제자체가 생기지도 않았을것이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렬강들이 《한》반도문제를 동서간의 대립관계에 기초하여 처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나라가 분렬되지 않았을것이다. 또한 분렬된 다음 60여년이 지나도록 외세의 간섭과 방해가 계속되지 않았더라면 통일은 이미 우리 민족끼리 실현되였을것이다.

분단의 원인이 달랐기때문에 분단을 해결하는 과정도 방법론도 다를수밖에 없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와는 다르게 도이췰란드가 평화적으로 통일을 달성한만큼 우리도 그 전철을 밟아나갈수밖에 없는것이 아니냐는 견해를 가지고 도이췰란드의 흡수통일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는것 또한 사실인것이다.

그렇다면 동서도이췰란드의 흡수통일을 보는 정확한 민족적립장은 어떤것으로 되여야 하는가? 이것은 남쪽의 현 집권세력이 《흡수통일》론을 제창하고있는 현시점에서 《한》반도의 장래를 결정하는 문제라고 생각할수 있을만큼 중요하게 제기되는것이다.

동서도이췰란드와 우리 나라 남북과의 관계의 비교설명에는 간단한 도식이 하나 등장하고있다. 서도이췰란드는 남《한》이고 동도이췰란드는 북조선이라는 등식이다.

과연 남《한》은 서도이췰란드와 같거나 또는 비슷한가.

《한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싶어하지만 서도이췰란드의 자주적정치질서와 체제 그리고 발전된 선진국으로서의 민주주의와 복지적원칙들은 이 등식을 부정하고있다.

또 정치, 군사적측면에서 볼 때 나토의 중추적역할을 맡고있는 서도이췰란드가 미국에 대해 갖고있는 상대적자률성, 다른 한편 3만 8 000명의 미군과 핵무기의 보호를 지레대로 하는 정치적통제아래 있는 남《한》의 정치적, 군사적예속성, 이 량자를 동일시할수 없다.

그러면 북조선은 동도이췰란드와 같거나 또는 비슷한가.

사회주의국가라는 측면에서 볼 때 두 사회는 물론 비슷하다. 그러나 40만의 쏘련군이 주둔하고있었던 와르샤와조약의 전초기지인 동도이췰란드와 쁠럭불가담운동에 나서고있으며 외국군대가 단 한명도 주둔하고있지 않은 북조선을 동일시할수는 없다.

남쪽의 로태우《대통령》이 도이췰란드를 방문했을 때 바이츠체커 서도이췰란드대통령이 직접 남《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고 특히 통일을 위해 북조선과 접촉하는것을 범죄시하지 말것을 촉구한 사실은 남《한》이 서도이췰란드가 아니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있다.

남《한》은 서도이췰란드와 같고 북조선은 동도이췰란드와 같다는 등식은 공허한것이다.

오히려 자주성의 측면에서 볼 때 그 반대의 등식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우리의 주변에는 많이 있다.

다 알다싶이 북쪽에서는 자주성을 국가와 인민, 민족의 생명이라고 한다. 그만큼 그들의 세계관, 국가관, 민족관에서 자주성은 핵이며 절대적인것이다.

1972년의 7. 4공동성명을 출발점으로 하여 6.15공동선언의 제1항에 명시되였듯이 북의 통일에 대한 일관된 립장은 자주로 모아진다.

이러한 북의 자주에로의 주장은 2000년대 들어 우리 민족끼리의 슬로건으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2007년 수뇌회담에서 민족공조에 대한 강조로 표현되였다.

어떤 사람은, 상당한 지성을 가진 남쪽의 이름있는 지식인까지도 이러한 북의 자주적립장에 대해 배타적인 《닫긴 자주》라고 말하는데 원래 자주는 세계 여러 나라와의 협력을 결코 부정하지 않을뿐아니라 나라와 민족들사이의 참다운 국제주의적관계를 지지한다.

이러한 차이는 통일을 바라보는 립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북쪽은 통일을 민족적자주성의 회복이라는 립장에서 바라본다면 남쪽은 통일을 국제적인 협력을 우선시하는 관점에서 남과 북의 통합을 바라본다.

지금까지 론의된바와 같이 부정되는 전자와 긍정되는 후자의 두 등식을 놓고볼 때 《한》반도의 경우에는 여러가지 조건이 달라서 도이췰란드처럼 《흡수통일》이 되기도 어렵지만 민족의 앞날을 위해서도 《흡수통일》이 되여서는 안된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이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일이 통일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조건이 도이췰란드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흡수통일》이 되기 어렵다고 설명되고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한》반도전체가 제국주의종주국인 미국의 세력권에 들어가느냐, 반대로 사회주의쏘련의 세력권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전후 동아시아의 정세가 크게 달라질 상황이였다. 그만큼 우리 땅의 지정학적위치가 중요하였다.

아이젠하워가 한 말이 있다.

일본이 미국세력권안에 있으면 태평양은 《미국의 호수》가 되지만 일본이 대륙의 사회주의권으로 들어가면 태평양은 《붉은 호수》가 된다고 하였다.

38˚선이남의 《한》반도 남쪽땅만이라도 미국세력권안에 둠으로써 쏘련과 중국 등 대륙세력으로부터의 방파제역할을 하여야 일본이 안정되게 미국세력권안에 있을수 있고, 그래야 태평양이 《미국의 호수》로 되는것이다. 나아가 해양세력이라고 하는 미국의 대륙침략, 반사회주의의 교두보를 확보할수 있는것이다. 그러한 정책이 1950-1953년의 조선전쟁으로 터졌던것이다.

데어도어 루즈벨트시기 그의 대외정책자문팀에 의해 고안되고 그후 오늘까지도 미국이 추구하고있는 대외정책교리가 있는데 그 내용은 한마디로 세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으로 구분되며 해양세력에 속하는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자면 대륙세력과 대결해야 한다는것이였다.

이 교리에 의해 섬나라로서 해양세력에 속하는 영국, 일본과 손을 잡고 유럽과 아시아대륙을 각각 장악해야 한다는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이 립안되였다. 미국이 로일전쟁시 일본을 지원하여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떠밀어넣은것은 다름아닌 이러한 미국의 대외정책교리와 세계지배전략에 따른것이였다. 말하자면 미국은 해양세력인 일본과 손을 잡고 대륙세력인 로씨야의 남진, 해양진출을 가로막아 아시아침략을 위한 발판을 닦으려 하였던것이다.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의 기초로 되는 해양세력 대 대륙세력교리는 20세기 후반기까지 스웨리예의 루돌프 첼렌과 영국의 헬포드 매킨더에 의해 지정학으로 과학화되였다.

국가, 민족, 문화, 문명, 종교발전의 많은 합법칙성은 지리적, 공간적요인에 의해 크게 규정된다는 뜻에서 지정학자들은 《지리는 운명이다.》라고 말하였다.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와 지정학적인 세계지도는 최종적으로 대륙세력인 쏘련을 축으로 하는 유라시아동방쁠럭과 해양세력인 미국을 축으로 하는 대서양서방쁠럭으로 갈라진것으로 그려졌다.

지정학이 옳은 학설이든 그릇된 정치궤변이든 어쨌든 우리 나라는 21세기 세계정치세력관계의 중심으로 되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기본부분인 동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한것으로 하여 그 정치지리적중요성이 부각되고있다. 그러한 정치지리적중요성은 통일문제에서 복잡성을 피할수 없게 하였다.

그밖에 경제적조건으로도 남과 북은 도이췰란드와 같은 《흡수통일》이 되기 어렵거나 또 되여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리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동도이췰란드가 흡수통일될 때 서도이췰란드는 국민소득이 2만US$나 되는 경제대국이였다. 그런데도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는것을 우리는 잘 알고있다. 1990년 4월 동도이췰란드의 임금과 년금 그리고 개인저축 1인당 4 000DM에 한해서는 1대1, 그 이상은 1대2로 교환되는 환률이 적용되였었다. 이것이 동도이췰란드붕괴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는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서도이췰란드는 서도이췰란드기본법에 의하여 서도이췰란드의 한 지역으로서의 동도이췰란드의 성격을 규정했다. 동도이췰란드의 사회주의가 내세웠던 반파쑈라는 정통성도 무너졌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북쪽이 내세우는 항일무장투쟁과 이에 근거한 사회주의도 결국에는 비슷한 운명을 맛볼것이라는 주장을 펴고있다.

이러한 주장은 동도이췰란드와 북에 건설된 사회주의의 본질적차이를 무시한데로부터 발생하고있다. 그들이 세계정세에 대한 주관주의에 사로잡혀있었다고도 할수 있겠고 사회과학적지식과 과학적인식력이 결여된 상태였다고 말할수도 있을것이다.

동도이췰란드와 쏘련과의 관계를 북과 쏘련과의 관계에 투사시켜볼수 없는것은 민족해방투쟁시기부터 오늘까지 근 한세기에 걸쳐 주체라는 자기 립장을 지켜온 북과 40만 쏘련군대가 진주한 상황에서 자주적행동반경이 극도로 제약되였던 동도이췰란드를 동일시할수는 없을것이다.

현재 추진되고있는 남쪽 대북정책의 한 고리가 로씨야나 중국의 압력을 빌어 북쪽을 《개방》에로 유도하는데 있다면 북쪽사회주의와 동유럽사회주의의 본질적, 본성적차이를 모르고있거나 무시하고있는데 그러한 착오의 원인이 있다고 보아진다.

지정학적조건이나 경제적조건을 떠나서도 민족의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예속되거나 지배되는 통일은 결코 옳은 의미의 평화통일, 바람직한 통일이 될수 없다. 특히 6.25전쟁의 비극을 겪은 우리 민족의 경우, 전쟁통일이나 《흡수통일》은 의식적으로 철저히 부정되여야 한다. 우리에게는 화해와 협력에 의한 자주적평화통일밖에 다른 길이 없다.

도이췰란드가 흡수통일된 뒤 도이췰란드에 사는 한 교포학자를 만났을 때 그에게 도이췰란드통일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어본적이 있었다. 그는 한마디로 《지난날의 한일합방과 같은것이라고 보면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도이췰란드가 통일된지 불과 수년사이에 동도이췰란드지역의 모든 산업은 서도이췰란드의 자본가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분단전에 동도이췰란드지역에 자기의 재산을 가지고있었던 사람들, 그 자손들이 자기의 경제적권리를 찾는다고 옛 고향에 몰려들어 혼잡을 이루기도 하였다. 오늘에 와서 동도이췰란드주민들은 대다수가 미국의 할렘구역과 같은 가난한 사람들의 집단거처지에서 삶을 이어가는 실정이라고 한다. 도이췰란드의 통일 당시 몇푼의 서도이췰란드마르크와 딸라에 현혹되여 자기의 제도를 버렸던 동도이췰란드사람들이 이제 와서 땅을 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서글픈 생각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지난해에 남쪽의 한 력사학자는 옛 동베를린지역에 있는 유명한 훔볼트대학에 가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훔볼트대학은 대부분이 서도이췰란드학생들로 채워져있었다. 사회주의시대에는 없던 대학등록금이 흡수통일후에 생겨서 동도이췰란드출신 학생들은 이 등록금을 마련하기 어려워 대학을 다니지 못하는것이였다. 뿐만아니라 맑스주의를 가르치던 동도이췰란드출신 교수들도 대부분 물러나고 그 자리는 서도이췰란드출신 교수들로 채워졌다고 했다.

앞에서 말했지만 도이췰란드에 사는 한 동포학자로부터 도이췰란드의 흡수통일은 한일합방과 같다는 말을 들었던터라 경우는 좀 다르지만 한일합방후 우리 나라 교육기관에서 우리 말과 우리 력사를 가르치던 교사들은 설 교단을 빼앗겨 학교에서 쫓겨나갔던 일들이 상기되였다.

그후 여러 글들을 통해서 도이췰란드통일의 후유증을 알게 되였고 우리는 그런 통일이 될수도 없겠지만 되여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확실해졌다. 서도이췰란드의 흡수통일이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우리 민족에게 《흡수통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가르쳐준 《반면교사》로 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이췰란드로 날아가서 그들의 흡수통일경험을 배우겠다고 동분서주한 남쪽의 현 집권세력의 언동이야말로 반민족적이고 반통일적인 추태로 락인해야 할것이다.

도이췰란드통일문제와 《한》반도통일문제는 분단원인과 통일과정, 통일방법론에서뿐아니라 통일을 해야 할 주인들 즉 사람들의 심리적측면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도이췰란드가 통일되던 날 서도이췰란드에서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환희의 합창》이 장엄하게 울리였다. 이것은 제2차대전시기 히틀러군대가 쓰딸린그라드대격전에서 완전히 패배한 그날 도이췰란드의 라지오방송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이 연주되였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명암이 교차되듯 뇌리에 떠올랐다.

통일의 날에 울린 서도이췰란드인들의 환희는 정확히 말해서 통일의 환희라기보다 《통합》의 환희였던것 같다. 에어푸르트에서 빌리 브란트 서도이췰란드총리와 빌리 스토프 동도이췰란드총리가 첫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동도이췰란드사람들은 환호를 올리며 기대감을 표시하였지만 서도이췰란드사람들은 예상밖의 랭정한 태도를 보였었다. 서도이췰란드사람들에게는 민족적통일의 가치보다 이른바 《자유》의 가치가 더 귀중했고 통일보다 경제가 우선적가치였기때문이였다.

도이췰란드는 《철혈재상》으로 이름을 남긴 비스마르크에 의하여 1871년에 통일된 제국으로 되여 지금까지 백수십년의 단일국가력사를 가졌으나 우리 민족은 고려이후 천년의 통일국가에서 공통된 삶을 이어온 력사적경험을 자기의 피에서, 심장에서 확인하고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통일은 피의 울부짖음이요, 력사의 소명, 지상명령으로 되는것이다.

우리의 통일열망이 그토록 뜨겁고 절절하기에 남과 북이 만나 부르는 노래도 《우리는 하나》이며 피아노협주곡도 《조선은 하나다》인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통일은 되면 더 좋고 안되여도 좋다는 그런것이 아니다. 민족통일, 조국통일의 피의 력사속에 세계력사에 류례가 없는 비전향장기수-통일애국인사들 수십, 수백명이 자기의 신념과 의지의 이름을 남긴것도 우리 민족이다.

그렇기때문에 남과 북이 누가 누구를 먹고 누가 누구에게 먹히우는 《흡수통일》은 절대로 이루어질수 없고 되여서도 안되는것이다. 도이췰란드와 달리 그러한 《흡수통일》은 민족적파멸을 가져올뿐이다.

지금은 21세기이다. 새 세기의 문을 열고 들어선지 10년이 지난 지금이야말로 남과 북이 자주력량을 펼쳐 우리의 생명권, 평화권, 통일권을 일구어낼 평화통일의 결정적시기이면서 동시에 자칫 잘못하면 전쟁위기 등이 정점에 이를수 있는 민족위기의 시기이기도 하다.

이 갈림길에서 남과 북, 진보와 보수모두 우리 민족끼리의 자주평화통일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할 때임을 놓쳐서는 안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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