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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에서 해운포쪽으로 한 7리쯤 가면 바다가에 돌섬 하나가 나지는데 이것이 경상좌도 수군절도사가 좌기하여 군무를 보는 수영성이다.

수군의 병영이니만치 성문 량쪽에 산수털벙거지 쓰고 군복입은 문지기 두사람이 긴 창을 세워들고 서있었다.

거의 한낮이 가까운 때였다.

문루우에서 수문장인듯 한 수염 꺼먼 중년사나이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여보게들, 이제 사또께서 납시니 정신들을 차리게.》

《흥, 그 어른이야 장참 술에 취해있을터인데 성문지기야 있으나 없으나…》

《허, 곤장맞을 소리만 탕탕… 화는 눈섭끝에서 떨어지는게야. 정신들을 차리게.》

성문 아래웃쪽으로 오고가는 말수작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몸매 다부진 젊은이 하나가 성문앞으로 다가오며 인사말을 건넸다.

《번을 들기에 욕들을 봅니다.》

《아니, 이거 동래 안총각일세그려.》

두 문지기가 반가와하며 안룡복이를 맞아주었다. 봄, 가을 수군훈련때마다 얼굴을 익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임자는 능로군이라 번들 념려도 없을텐데 무슨 일로 나타났나?》

《사또께 급히 고할 일이 있어 왔소.》

《그런가? 그런데 지금 사또께서 급히 어디로 행차할 모양인데 만나주시겠나?》

《나라방비와 관련된 중대한 일이니 만나주실거요.》

《그럼 어서 들어가보게.》

안룡복이가 성문으로 급히 들어서고있을 때 좌수사 장우영은 내아에서 동래부사의 생일잔치에 갈 준비를 갖추느라고 분주하였다.

례절치레를 해야 할 곳으로 가는만큼 무관의 모자인 상모달린 붉은 전립은 벗어두고 오래간만에 점잖은 티를 좀 내볼양으로 인모망건우에 탕건을 곁들어쓰고 그우에 기름기 지르르 흐르는 삼백열두돌림 통량갓을 올려놓았다. 정3품관의 지체에 따르는 련꽃을 새긴 큼직한 옥관자와 호박풍잠이 갓양태아래서 번들거리였다.

화장을 진하게 한 계집 두엇이 앞뒤에서 뺑뺑 돌아가며 비단천릭을 입히고 전대를 매주며 아양을 떠는데 장우영은 그래도 무엇이 못마땅한지 찌뿌둥해서 트집만 잡았다.

신발을 신길 때에는 열두새백목버선을 신은 발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신경질을 부리며 계집이 쥐고있던 수혜자(수놓은 가죽신발) 한짝을 섬돌아래 와락 집어던지였다.

그러자 섬돌아래와 대청마루우에서 시중을 들던 군노잡색들이 모두 당황하여 썰썰기며 돌아갔다.

장우영은 비록 경상좌도 수군의 한 진영의 우두머리에 지나지 않으나 그의 등뒤에는 지금의 새 왕후인 중전 장씨의 오래비이고 훈련대장인 장희재가 있었다.

장희재라고 하면 얼굴 반반한 누이를 궁궐에 들이민 덕에 한갖 시골부랑배에 지나지 않던자가 하루아침에 임금의 처남으로, 거부로, 권력자로 둔갑을 하여 세상에 못하는짓이 없이 놀아난다고 항간에 소문이 자자한자였다.

이러한 장희재와 같은 장씨문벌인데다가 시골부랑배시절부터 술동무, 투전동무였던 장우영이가 지금 앉은 좌수사의 자리만 해도 정3품 무관의 자리라 미꾸라지가 룡이 된셈이라 하겠지만 이제 어느날 아침에 또 병사나 감사의 자리에 가앉을지 알수 없는 일이였다. 그래서 한다하는 시골량반들은 물론 높낮은 관직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은근히 두려워하고있는것이였다.

의관차림이 끝나자 장우영은 거울을 내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옆에서 시중들던 계집이 코등에 빠질빠질 내돋은 땀을 훔칠새도 없이 안으로 땔땔 굴러들어가 솥뚜껑만 한 청동거울을 들고나왔다.

장우영은 거울앞에 서서 큰 갓을 기울기울하며 누런 상판을 이리저리 비쳐보거니 검은 코수염을 비틀어보거니, 입짓, 코짓 별별짓을 다하고나서야 《그만 되였구나, 어험!》 하고 큰 기침을 하며 섬돌아래로 내려섰다. 이만하면 동래관아의 숱한 기생가운데서도 이쁘고 코대높기로 소문난 진향의 환심도 넉넉히 살만 하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뜰아래 놓인 가마안에 넌떡 들어가앉았다.

(진향이 그년이 저 혼자 절조 높은체 하지만 이 장우영이한테 끝내 큰절을 하구야말걸?)

장우영은 가마안에서 다시한번 수염을 내리쓸었다.

소문에는 아직 어느 량반도 그 녀자의 마음을 꺾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제스스로 한 말인지 남들이 짐작으로 한 말인지는 몰라도 진향이는 제가 마음을 맡길만 한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세도높은 사람에게도 큰절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생이라 노래와 춤은 아니 팔수 없어도 마음은 팔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그러면서 고운 목소리로 《솔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기생이 지어불렀다는 이런 시조를 늘 읊조린다는것이였다.

 

솔이솔이라 하니 무슨 솔만 여겼는가

천심절벽의 락락장송 내 그로다

길아래 초동의 접낫이야 걸어볼줄이 있으랴

 

(길아래 초동?)

장우영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니 잘못 지분거리다가는 좌수사가 접낫을 든 초동의 신세가 되고만다는 말인가?

(어허, 꾀바른년, 절조를 자랑하는체 소문을 돌려 몸값을 올려보려구? 세상에 그런 장난으로 몸값을 올리려고 헛되이 애쓰는 계집이 한둘이라구? 기생으로 정절이란 무엇이구 큰절을 않는다는것은 또 무엇이냐.)

장우영은 가마안에서 센웃음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가자!》

벙거지 쓴 교군 넷이 가마채를 가볍게 메고 일어서자 섬돌아래와 마루우에 바둑씨 널리듯 벌려서서 장우영의 시중들기에 땀을 흘리고있던 사람들이 모두 후-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이때 대문간에 통인 하나가 들어와 절을 하며 《급히 고할 일을 가지고 동래사는 능로군 한 사람이 찾아와 문밖에 대령하고있소이다.》 하고 아뢰였다.

《급히 고할 일이라니? 군포 탕감해달라는 소청은 아니라더냐?》

장우영은 가마안에서 수염을 내리쓸며 내다보았다.

《군포이야기는 없고 나라방비에 관한 급한 일이라 했소이다.》

《나라방비? 시끄럽기라니… 나라방비가 어쨌단 말이냐? 내가 가마에서 내리고 오르고 할새 없으니 그냥 나가다가 보고 가자!》

이리하여 가마가 운주헌앞뜰을 지나 대문간을 막 벗어져나오는데 문밖에서 기다리고섰던 나이든 총각 하나가 가마앞으로 달려나와 허리를 깊이 굽히며 엎드리였다.

《좌수영 능로군 안룡복이 문안드리오.》

《무슨 일이냐?》

장우영이 매우 귀찮아하는 눈길로 가마안에서 룡복을 내다보고있었다.

룡복은 수사의 얼굴을 한번 살펴보고나서 대마도 왜놈들이 울릉도를 렴탐하러 갔으니 무슨 흉측한 일을 꾸미고있는것이 분명하다는것을 낱낱이 아뢰이였다.

《대마도왜놈들이 울릉도를?》

장우영은 설핀 눈섭을 흠칫 떨며 자못 놀라운 눈길로 안룡복을 쏘아보았다.

《무슨 당치않은 소리를… 울릉도라는게 먼 바다가운데 있는 조막만 한 섬에 불과한데 무엇을 바라구 왜놈들이 렴탐을 한단말이냐? 또 렴탐을 한다면 그 생쥐같은 왜놈들이 감히 어찌하리란 말이냐?》

《왜놈들이 비록 보잘것없는자들이오나 울릉도가 비여있으나 다름없으니 실로 우려되는바올소이다. 배와 군사를 급파하여 방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수 없소이다.》

장우영은 보잘것없는 능로군이 급히 군사를 파해달라거니 방비대책을 세워야겠다거니 하는것이 매우 아니꼽다는듯이 다시한번 안룡복을 흘끔 쏘아보았다.

적정이 있으면 응당 통제영(남해안의 수군을 통솔하는 수군병영)에서 령을 내릴것인데 제가 무얼 안다구 주제넘게 나선단 말인가.

나라방비에 나설 사람은 너무도 많다. 병조와 훈련원의 여러 관직에 앉은 관리들은 더 말할것이 없고 3도수군통제사며 경상 좌병사와 우병사, 경상 좌수사와 우수사 그리고 그아래 우후들과 첨사, 만호, 군관들까지 내려꼽자면 실로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데 저런 보잘것없는 능로군이 적정이 이러니저러니 하고 떠들며 다녀야 옳단 말인가.

장우영은 아주 더 입을 벌리지 못하게 눌러놓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호통을 뽑았다.

《고현놈, 군사를 움직이는것을 어찌 너의 어리석은 말 한마디에 따를수 있겠느냐. 공연히 뜬소문으로 민심을 동요케 하지 말고 그만 썩 물러가지 못할가!》

가마가 막 움직이려고 하자 안룡복은 다시 부르짖었다.

《소인의 말은 뜬소문이 아니옵니다. 확실한 근거가 있으니 소홀히 듣지 마십시오.》

《무슨 근거로 너의 말을 믿으라는거냐?》

룡복은 할수없이 백운산에서 왜도적 셋을 잡아서 왜놈들이 울릉도를 렴탐하러 떠났다는것을 알게 된 경위를 낱낱이 아뢰이였다.

(왜도적을 잡았다구? 관가에서도 잡지 못하는 왜도적을? 그것도 셋씩이나?)

장우영의 얼굴에는 더욱 믿지 않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래, 그놈들을 어떻게 했느냐?》

안룡복의 얼굴에서 구슬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리였다.

《소인의 불찰로 놓쳐버렸소이다. 왜도적을 놓친 죄는 소인이 달게 받겠소이다만 왜놈들의 흉계가 있는것이 확실하오니 부디 믿어주십시오.》

《하하하…》

가마안에서 너털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다가 그 소리가 갑자기 호령소리로 변하였다.

《네 이놈, 다시한번 그따위 뜬소문을 떠들고 다니면 가만두지 않을터이니 썩 물러가거라! 별 미친 놈이 다 있군. 얘들아, 어서 가자!》

가자는 소리가 떨어지자 다리아프게 서있던 전배사령들이 우르르 밀려나가고 뒤따라 좌수사가 탄 가마가 움직이고 마지막으로 동래부사에게 가는 선물상자를 둘러멘 후배군노 두엇이 그뒤를 따라나갔다.

수영성밖 길가에는 개 한마리 얼씬하지 않건만 행차의 위세를 뽐내느라 전배사령들이 호기있게 벽제소리를 울리였다.

《에라께라, 물러께라, 사또행차요. 쉬-쉬- 물러께라.》

먼지를 보얗게 일쿠며 회오리바람처럼 사라지는 수사의 행차를 바라보는 안룡복의 마음은 마치나 갑자기 허공을 밟고 천길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때처럼 아뜩해졌다. 왜도적의 일을 고하면 좌수사가 당장 조정에 보고하고 군령을 내려 도적을 칠 준비를 서두를줄 알았는데 이것은 너무도 통분한 일이 아닌가!

룡복은 맥없이 수영성밖으로 터벅터벅 걸어나왔다. 그러다가 길옆에 기우둠하게 서있는 나무장승앞에 풀썩 주저앉았다. 몸은 천근같이 무겁고 가슴은 텅 빈듯이 허전하였다.

룡복은 두눈을 부릅뜨고 선 장승의 무서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역병과 잡귀신을 막으려고 사람들은 예로부터 마을어구마다 길가에 저런 장승을 해세운다. 얼굴은 귀신도 놀라 도망칠만큼 무섭게 그려놓고 몸에도 《천하대장군》, 《지하녀장군》이라는 어마어마한 글을 써놓는다.

물론 저 말 못하는 장승이 역병이나 잡귀신을 막아줄리는 없다. 하지만 그래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것이다. 그 까닭에 장승은 이 땅 그 어디나 어제도 서있었고 오늘도 서있게 된것이다.

그런데 저 가증스러운 왜도적에 대해서는 왜 그렇지 못할가? 어째 장승같은것이라도 해세우지 않는가?

저도 모르게 이런 의문에 잠겼던 룡복은 천천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장승보다도 더한것을 세워놓기는 했다. 동래좌수영이요 울산의 좌병영이요 하는것들이 다 왜적을 막으려고 세워놓은 군영들인것이다. 그런데 그 군영들이 눈앞에서 날뛰는 왜도적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저 말 못하는 장승보다 나을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장승보다도 못한것을 위해 봄, 가을마다 천오백명 좌수영수군이 쇠북을 울리고 노질을 하며 죽을 힘을 다하여 훈련을 했으며 백성들은 굶주리고 헐벗으면서도 해마다 군포를 꼬박꼬박 바쳐왔단 말인가!

참을수 없는 격분이 치밀어올랐다. 어순이가 잡혀간것도 왜놈들이 제멋대로 날뛰게 내버려둔때문이 아닌가. 어순이를 위하고 자신을 위해서도 그저 내버려둘수 없는 일이였다. 좌수영이 아니라 이 땅 한끝에 찾아가서라도 기어이 왜도적의 죄행과 흉계를 고발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텅 빈듯하던 가슴이 세차게 높뛰였다.

룡복은 그 무엇에 놀란 사람처럼 벌떡 일어서며 장승의 무서운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잠시나마 맥을 놓고 주저앉아있은 자기를 무섭게 질책하는듯이 느껴졌다.

어느덧 해는 금룡산마루를 넘어 뉘엿뉘엿 지고있었다.

룡복은 주먹을 부르쥐고 동래읍성을 향하여 부지런히 걷기 시작하였다.

동래부사를 찾아갈 생각이였던것이다.

그가 동래관가의 삼문앞에 이르렀을 때 드넓은 대청안뜰에서는 때아닌 풍악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려나오고있었다. 부사의 생일놀이가 한창이였다.

울긋불긋한 문양돋친 화문석을 깐 섬돌아래 넓은 뜰에서는 칠보단장을 한 관청기생 대여섯이 너푼너푼 춤을 추며 돌아가고있었다. 발끝에 찰찰 끌리는 다홍치마자락이 화문석우를 미끄러지듯 휘끈휘끈 돌아가는데 외씨같은 하얀버선발이 치마끝에서 보일락말락 사뿐거리였다.

호화로운 일월병풍앞에 생일상을 벌려놓고 대청마루에 나앉은 동래부사 리희룡의 불그레한 얼굴에 취흥이 흘러 넘실거리였다.

풍악소리가 《늦은 하닢》으로부터 점차 《가웃두닢》, 《가웃세닢》을 지나 《잦은 하닢》으로 치달아오르자 춤추는 기녀들의 색동한삼자락이 허공에서 펄펄 나붓기고 다홍치마자락이 바람을 안고 구름처럼 부풀어올라 눈앞에서 어찔어찔 돌아갔다.

동래부사 리희룡은 제흥에 겨워 이따금 《좋구나!》 하고 소리를 지르며 어깨를 들썩거리였다. 그러나 그옆에 앉은 좌수사 장우영은 얼굴이 찌뿌드해서 맞장구 한마디 쳐주지 않았다.

벼슬품계로 보면 부사가 종3품이요 수사는 정3품으로서 수사가 웃쪽이지만 부사는 문관인데 비하여 수사는 쇠뿌러기무관이니 두사람의 높낮음을 어떻다고 말할수 없었다. 하지만 리희룡은 장우영이가 위인은 우직스럽고 허수룩해도 훈련대장 장희재를 등에 업고 날뛰는자임을 모르지 않았기때문에 은근히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왼심을 쓰고있었다.

장우영이가 오래전부터 은근히 마음에 두고있는 기생 진향이가 보이지 않아 속이 뒤틀린것을 눈치챈 리희룡은 《진향이 나와 소리 한마디 하거라!》 하고 대청안쪽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기다리고있기나 했던듯이 진향이라는 기생이 화문석우로 사뿐사뿐 걸어나와 대청마루를 향해 나부죽이 절을 하였다.

풍악소리가 울리자 진향이가 사뿐 일어서며 고운 눈을 한번 살짝 치뜨자 대청마루우에 죽 벌려앉았던 수사와 부사는 말할것도 없고 여러 향관들과 젊고 늙은 량반나부랭이들이 모두 갑자기 넋을 잃은듯 숨소리를 죽이였다. 눈구멍이 멍해진자가 있는가 하면 헝 벌어진 입으로 파리가 날아들어도 모를 지경이 된자들도 있었다.

그토록 진향이는 아름다왔다.

 

산아산아 국시산아

국시산에 철이 들면

온갖 꽃이 피여나네

 

진향의 노래소리가 울리였다. 청아하면서도 부드럽게 굴려넘기는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려주는 애절한 그 무엇이 있었다.

 

열다섯에 나는 꽃은

봉이 지여 한창일세

스물에라 나는 꽃은

피느라고 한창일세

 

대청안팎이 조용해졌다. 노래는 점점 고조되여갔다.

 

꺾어갔네 꺾어갔어

강남나리 꺾어갔네

금을 주랴 은을 주랴

금도 싫고 은도 싫어

요내 꽃만 내고 가소

 

노래가 끝나자 넋을 잃고있던 술취한 량반들이 《과시 명창이로다!》, 《동래명기 진향이 분명쿠나!》 하며 저마다 흥이 나서 떠드는 바람에 한동안 술자리가 술렁거리였다.

노래를 마친 진향은 대청마루에 올라 부사의 분부대로 좌수사 장우영에게 술을 부은 다음 그옆에 눌러앉았다. 그제야 찌뿌드하던 장우영의 얼굴에 흐뭇한 기색이 떠돌고 리희룡이 또한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얼마간 가라앉아서 생일잔치는 한창 무르익어가고있었다.

그때까지 대문간에서 먼발치로 이 모든것을 바라보며 서있던 룡복은 저도 모르게 안타까운 눈길을 들어 서쪽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느덧 해는 지고 울적한 저녁어스름이 무겁게 내려앉고있었다. 룡복의 마음속에서는 짙어가는 그 저녁어스름보다도 더 울적한 그 무엇이 무겁게 서려돌고있었다.

휘둘러친 금병풍이며 높이 괴여올린 울긋불긋한 생일상에 마주앉은 동래부사며 좌수사며 그밖에 거나하게 취한 량반들, 춤추며 돌아가는 기생들과 자지러지듯 울려나오는 풍악소리… 이 모든것들이 우두커니 서있는 자기를 비웃으며 상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라는것을 매정스럽게 깨우쳐주고있는것만 같았다. 차마 꽃바다, 춤바다, 취흥의 바다를 이룬 대청안뜰로 선듯 들어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그 무엇인가 고집스럽게 룡복을 떠미는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기가 주저하고있는 이 순간에도 왜놈들에게 끌려간 어순의 운명이 어디로 어떻게 굴러떨어질지 모른다는 엄혹한 현실에 대한 가슴저미는듯 한 감각이였다. 그 감각이 절박하게 가슴을 흔들수록 그리고 잔치의 질탕한 소음이 더욱 기승스럽게 들려올수록 룡복은 순간도 더는 주저할 권리가 없는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것이였다.

그러자 문득 자기의 불행에 대해서는 아무런 동정도 아량도 베풀려 하지 않는 이 대청안뜰의 모든 역겨운것들에 대한 참을수 없는 울분이 울컥 치밀어올랐다.

드디여 마음을 다잡은 룡복은 풋낯이나 아는 문지기에게 수통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수통인은 부사의 잔심부름을 드는 통인아이들의 우두머리인데 부사에게 만나기를 청하려면 그를 거치는 길밖에 없었던것이다.

잠시후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 핀 나이든 통인녀석 하나가 대문간으로 다가왔다. 나이든 품으로 보아 총각은 아니지만 통인구실을 하느라고 따늘인것이 분명한 굵은 머리태가 그의 등뒤에서 출렁거리였다.

급히 고할 일이 있으니 부사에게 연통하여달라고 하자 수통인녀석은 어이없다는듯이 눈알을 붉히였다.

《사또 생일잔치가 한창인데 무슨 봉변을 당할라구 그러우? 잡인을 금하라 하셨으니 그만 물러서우.》

룡복은 푸접없이 구는 수통인녀석을 그 고집스러운 눈길로 지그시 쏘아보았다.

《생일놀이도 중하겠지만 시각을 다투는 급보를 제때에 알리지 않아 화가 미치면 네나 내가 다 큰 봉변을 당하고말겠는데 그것은 두렵지 않으냐?》

수통인녀석이 미처 대답을 못하고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룡복은 성큼성큼 대문간을 지나 동헌안뜰로 들어섰다. 술취한 목소리, 간드러진 계집들의 웃음소리, 그릇이 딸그락거리는 온갖 소음속을 뚫고 기생들이 춤을 추던 화문석에 가닿을 때까지 그 누구도 룡복에게 관심을 돌리는 사람이 없었다.

제일먼저 룡복을 본 사람은 좌수사의 옆에 앉아 술시중을 들고있던 진향이였다. 옷차림으로 보아서는 분명히 상사람인데 이 어마어마한 동헌안뜰을 가로질러 조금도 주저하는 빛이 없이 들어서고있는 사나이! 다부진 몸매, 가뜬하게 동인 둘레머리, 류달리 번쩍거리는 눈빛… 호화로운 일월병풍을 휘둘러치고 대청마루에 높이 앉은 사람들은 모두 고을안팎이 마주보기조차 송구해하는 서슬푸른 량반들인데 저 총각은 어쩌면 저렇듯 떳떳이 들어서는것일가? 무슨 일일가?

진향이의 놀란 눈길을 좇아서 장우영이가 룡복이를 내려다보더니 시꺼먼 눈섭을 흠칫 떨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부사며 그밖에 귀빈의 자리에 앉아있던 량반들이 모두 룡복이를 내려다보았다. 룡복은 섬돌아래 이르자 허리를 깊이 굽히고 엎드리였다.

《아니, 이게 웬일이냐?》

리희룡이 잡인단속을 잘못한 수통인을 찾아 눈알을 굴렸으나 보이지 않았다.

《소인은 이 고을에 사는 능로군 안룡복이온데 감히 범접 못할 자리인줄 알지만 시각을 다투는 급한 변보를 아뢰이려고 찾아들어왔으니 널리 통촉하여 주십시오.》

그 말하는 솜씨가 하도 사리분명하고 침착하기에 그 누구도 서뿔리 막으려들지 못하였다. 진향이는 호기심이 담뿍 어린 고운 눈길로 룡복의 둥실한 얼굴을 말끄러미 내려다보고있었다.

《그 변보란 다름이 아니오라…》 룡복은 쯔시마왜도적들이 울릉도를 렴탐하러 떠났다는것과 모든것으로 미루어보아 왜놈들이 울릉도를 차지하려고 꾀하는것이 분명하다는것을 낱낱이 고하였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그게 적실한 소식이냐?》

부사 리희룡을 비롯한 량반들이 모두 눈알을 굴리며 놀라 술렁거리고있을 때 좌수사 장우영이가 안룡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괘씸한 놈같으니라구… 여기까지 따라와서 기어이 뜬소문을 떠들고 다닐테냐?》

장우영은 우선 이렇게 호통을 지른 다음 좌중을 둘러보며 안심하라는듯이 말하였다.

《여러분은 모두 안심들 하시오. 저놈이 거짓소문을 떠들고 다니는것이니 부사령감도 술잔을 내려놓기는 아직 이른가보우. 저놈이 좌수영에 찾아와 하는 말인즉 산에서 왜도적 셋을 잡아 문초를 해서 그런 사실을 알아냈다고 하는데 관가에서도 못잡는 왜도적을 셋씩이나 맨손으로 잡았다는것도 못믿을 일이거니와 그 왜도적은 그만 놓쳐버리고말았다 하니 믿을만 한 증거가 없는 터이라 조금도 들음직한 말이 못되는줄 아오.》

《지당한 말씀이요.》

턱에 달린 하얀 염소수염을 들까불며 손님들 가운데 끼여앉았던 늙어꼬부라진 한 량반이 맞장구를 쳤다.

《그 잔내비같은 섬오랑캐들이 감히 그럴수가 있겠소이까. 풍설이 적실하웨다.》

그제야 이 생일잔치의 주인된 처신을 해야 한다는것을 깨달은 부사 리희룡이 안룡복을 노려보며 동헌 대들보가 찌렁찌렁 울리게 호령을 뽑았다.

《네, 이놈, 거짓변보로 관부를 기망(속이는것)하고 민심을 소란시키면 무사치 못하리라는것을 몰랐더냐?》

《소인이 어찌 거짓변보를 고하겠소이까. 대마도왜놈들이 오래전부터 울릉도에 기여들어 때로는 표류해왔다 하고 때로는 고기를 잡아가고 나무를 베여가고 사람까지 해친다는 소문이 있은지가 이미 오랬고 이번에 백운산에서 잡은 왜도적이 제입으로 한 소리가 그러하온데 어찌 풍설로 스쳐보낼수 있겠소이까. 더구나 청명이 지나면 동북풍이 오래 계속되여 배길이 열리므로 왜놈들이 기여들기에 안성맞춤이 되옵니다. 시각을 놓치지 말고 대응책을 세워주신다면 더 바랄것이 없겠소이다.》

하잘것없는 능로군으로 여기였던 사람이 뜻밖에도 깍듯이 사리를 밝히는 바람에 동헌마루에 앉았던 량반들은 모두 할말이 없게 되였다. 기생, 악공들과 심부름을 들던 관노들의 얼굴에서까지 덮어놓고 거짓말이라고 윽박지르는 수사나 부사를 마뜩지 않게 여기는 빛이 떠돌았다. 더우기 아까부터 안룡복의 름름한 모습을 남다른 눈길로 살펴보고있던 진향이는 아주 홀린듯 그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좌중의 이러한 눈치를 알아차린 리희룡은 모처럼 무르익어가던 생일연의 흥취가 깨여지고 시끄러운 일이 생기는것을 꺼려했던지 저으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하였다.

《너의 말을 들어보니 사정은 대강 짐작할만 하다. 하지만 왜놈들이 울릉도에 대해 감히 불칙한짓을 꾸민다 하면 네가 아니래도 어련히 알아서 조처할 사람들이 다 있으니 걱정말고 물러가거라.》

《지당한 말씀이요.》

염소수염달린 늙은 량반이 아첨기섞인 목소리로 부사의 말에 발을 달았다.

《옛 성인들도 자기 직분을 지키는것이 백성의 마땅한 도리라 하였는데 분수에도 없는 일에 뛰여들어 사또의 생일연을 이다지도 흐리게 할 법이 어디 있겠소이까!》

룡복은 머리를 깊이 숙이며 절절히 부르짖었다.

《소인은 나라를 위하는데서는 량반 상놈이 다를수 없다고 여기였을뿐이옵고 또 나라방비와 관계되는 급보를 제때에 아뢰이지 않으면 도리여 죄되리라는것만 생각하고 달려왔으니 널리 통촉하여주십시오. 급히 조처해주기를 바랄뿐입니다.》

《너의 마음은 알만 하다. 다 알아서 조처할터이니 그만 물러가거라!》

룡복은 깊이 숙였던 머리를 쳐들고 부사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째 못미더워 그러느냐? 남아일언이 중천금이라(사나이의 말 한마디가 천금의 무게와 같다는 뜻) 고을의 관장으로서 어찌 가벼이 대답하겠느냐. 념려말고 물러가거라!》

룡복은 깊이 숙였던 머리를 쳐들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 알고 소인은 물러가겠소이다.》

부사의 대답을 분명히 들었건만 웬일인지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부사의 대답이 못미더워서가 아니였다. 어쩐지 이 대청안뜰에서 벌어진 모든 일과 분위기가 성난 아이를 달래듯이 자기를 구슬리고 조롱하는것처럼 느껴진때문이였다.

왜도적에게 빼앗긴 약혼녀를 찾기 위해 울릉도로 가는것을 허락해달라는 말을 하지 않은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관가에서 조처해주면 가고 안해주면 못갈 그런 길이 아니였기때문이였다. 자기의 운명과 목숨을 걸고 떠나는 그 엄숙한 길을 그 누구의 허락이나 온당치 않은 조롱에 내맡기고싶지 않았다.

룡복은 대청마루우에 높이 앉은 량반관리들을 한번 쳐다보고나서 묵묵히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 성큼성큼 대문쪽으로 물러갔다.

안룡복의 모습이 삼문밖으로 사라지자 장우영의 옆에 앉아있던 염소수염달린 량반이 수사가 들으라는듯이 야살궂게 발라맞추었다.

《그 총각놈이 제가 바루 삼도수군통제사라도 된듯이 수군을 준비시켜 미리 대응책을 세우라거니 조처를 해달라거니… 허허허… 해안방비를 맡으신 좌수사령감께서 여기 앉아계시는데 그게 우습지 않소이까?》

그러자 장우영이가 흰 목을 뽑았다.

《그러기에 내가 아까도 말하지 않았소. 고하분별도 못하는 그런 능로군이 들고다니는 거짓풍문은 들을것도 없거니와 원래 울릉, 우산 두섬으로 말하면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땅이라 경상좌도의 해안방비를 맡은 좌수영이나 동래관아에서 관여할바가 아닌데 부사령감은 공연히 가벼운 대답을 했소.》

분명히 동래부사에 대한 힐책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허허… 듣고보니 참말 그렇구려.》

리희룡은 얼른 발뺌을 하였다.

《우리가 관여할바 아닌것이 분명하다면야 굳이 귀를 기울일것이 없지요. 자, 그러니 모두들 어서 술이나 듭시다!》

리희룡은 잔치분위기를 다시 돋구어볼양으로 호기있게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어서 술이나 치거라, 풍악소리는 왜 멎었느냐!》

풍악소리가 다시 울리고 술따르는 소리가 들리였다. 그러나 진향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우고있었다.

(어쩌면 나라방비를 걱정하는 그 깨끗한 마음을 이토록 무참히 짓밟을수 있을가?)

취흥에 익어가는 량반관리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진향의 고운 입술사이에서는 원망어린 한줄기 가는 한숨이 남모르게 새여나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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