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안룡복이와 박어둔이는 산줄기를 타고 가고 또 가다가 송악산기슭에 이르렀다. 다대포에서 북쪽으로 20리나 떨어진 산속이였다. 이곳으로도 벌써 두번째 찾아왔다. 그러니 여기서 어순의 흔적을 찾으리라는 기대는 거의 가질수 없었다.
그들은 산기슭의 나즈막한 등성이우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산기슭을 따라 고불고불 흘러내린 실오리같은 오솔길이 눈앞에 보이였다. 두모포아근에 사는 사람들이 황산강쪽으로 넘어다니는 지름길이였다.
서쪽으로 내려가면 황산강이 나지고 동쪽으로 내려가면 두모포다. 두모포로부터 서평포, 다대포에 이르는 여러 마을 사람들은 급히 다닐 일이 있으면 언제나 이 지름길을 넘어다니였다.
그 오솔길 한끝에 웬 사람 둘이 나타났다. 타박타박 앞서걷는 사람은 분명 일여덟살난 사내아이이고 뒤따르는 사람은 지팽이를 짚은 늙은이였다. 사내아이는 그래도 머리태를 촐싹거리며 힘들지 않게 걷는데 늙은이는 새우등같은 허리를 막대기에 의지하고 땅을 핥으며 겨우겨우 톺아오르고있었다.
룡복이와 어둔이가 앉아있는 고개마루에 다 올라서자 늙은이는 숨을 헐썩거리며 사내아이를 불러세웠다.
《이애, 예서 좀 쉬여가자.》
늙은이는 룡복의 곁에 와앉으며 헌 갓을 벗고 망건밑으로 흥건히 내밴 땀을 팔소매로 훔치였다.
두모포에 사는 늙은이인데 김해에 있는 일가집 제사보러 손자녀석을 데리고 갔다오는 길이라고 하였다.
땀을 좀 들이고나자 늙은이가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오늘 고개를 넘어보니 내가 저 코빠는 녀석보다두 못한 물건이 되였어. 쉬지도 못하는 길이니 나는 인생 륙십고개를 숨 한번 그어보지 못하구 어느새 넘었네만 이 고개길이야 힘들면 쉬여가고 내키면 걷는 길인데 여북 좋은가. 인생길도 이 길같다면 사람이 곱은 살걸세. 허허…》
혼자 감개무량해하던 늙은이는 그제야 흥심없이 앉아있는 두 젊은이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의아해하였다.
《젊은이들은 어디로들 가는 길인가?》
《예, 그저… 예까지 왔습니다.》
룡복이가 무어라 할 말이 없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 무인산중에 무엇하러 왔단 말인가?》
룡복은 할수없이 어순이를 찾아다니게 된 경위를 대강 이야기하였다.
《허어- 그것 참, 큰 불상사를 당했네그려. 헌데 근자에는 범이 나다닌다는 말이 없었는데… 가만있자, 그 처녀가 없어진것이 어느날이라구 했던가?》
《동래서 그 소식을 들은것이 지난달 그믐날이였으니까 다대포서 사람이 없어진것은 스무아흐레날이지요.》
《내가 이 애를 데리구 집을 떠난게 바로 스무아흐레날이야. …그러면 황산강나루에서 본 처녀가? 가만있자, 그 처녀가 몇살이나 났다구?》
늙은이가 긴장한 낯빛으로 서둘러 물었다.
《열여덟이지요. 열여덟!》
어둔이가 성급히 대답하며 다가앉았다.
《어디서 비슷한 처녀라두 봤나요?》
《글쎄 내 말을 좀 듣게. 그날 해가 뉘엿뉘엿할 때 김해쪽으로 빠지는 큰 길목에 이르렀는데 웬 사나이 셋이 거적으로 만든 들것에 웬 사람을 싣고 급히 달려오더란 말일세. 차림새며 행동거지가 하도 이상스러워서 마른 기침소리로 인기척을 내며 길옆에 비켜서는데 들것에 실렸던 사람이 왈칵 몸부림을 치며 땅으로 굴러떨어진단 말이네. 급히 앓는 사람이겠거니 했는데 글쎄 굴러떨어진걸 보니 두팔을 꽁꽁 묶이운 녀인이 아니겠나. 큰 보자기를 칭칭 감아놓아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네만 보자기안에서 가위눌린 신음소리가 새여나오는것으로 보아 입을 틀어막은것이 분명하였네. 수상한 사나이들이 급히 녀인을 들것에 다시 실을 때 붉은 댕기를 드린 긴 머리태가 등뒤에서 얼핏 보였네. 장가 못든 홀아비들이 남의 집 과부를 남몰래 업어가는 페단이 아직 더러 있기는 하지만 남의 집 처녀를 그것도 저렇게 모질게 동이고 묶어서 도적질해가듯 할수가 있을가싶은게 매우 수상쩍은 생각이 들더란 말이네. 나는 그 사나이들보다 한발 늦어서 황산강나루에 이르렀는데 그때보니 그 사나이들이 벌써 처녀를 배에다 싣고 내려서는 참이였네.》
《그 배가 어디로 가는 배인지 알아보지 않았는가요?》
룡복이가 다급하게 물었다.
《글쎄, 강을 건너야겠기에 사공에게 어디로 가는 배인가 물으니 울산 가는 배라구 대답하더군. 그런데 그때 배우에 버티고섰던 놈팽이가 꿱 소리를 질러서 사공을 독촉하는 바람에 다른것은 더 알아보지를 못했어. 그러니 배에 실려간 처녀가 꼭 임자네들이 찾는 그 처녀라구 할 근거는 없네만 날자가 바로 그 날이구 또 그 사람들의 행동거지가 어쩐지 수상했단 말일세.》
《가만, 로인님, 그놈들의 차림새가 어떻던가요?》
룡복이가 눈빛을 번쩍이며 물었다.
《어떨게 있나, 그저 그렇지. 무슨 장사치들같기두 하구… 아니, 그 머리수건 동인것이 좀 별랗더군. 뒤꼭지가 커다란게… 상투가 두세개 들어가있는것 같았어.》
룡복은 벌떡 일어서며 주먹을 꽉 부르쥐였다. 늙은이는 손자녀석을 앞세우고 두모포쪽으로 천천히 가버리였다.
룡복은 어둔의 팔소매를 꽉 거머쥐며 부르짖었다.
《틀림없네, 호환이 아니라 왜환이야.》
《왜환이라니?》
《왜놈들이 한짓이 틀림없어.》
룡복의 눈빛이 무섭게 타번지고있었다.
어둔이는 아까 쉴참에 룡복이가 범의 짓이라고만 생각하는가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던 일이 문득 생각났다. 역시 궁냥이 넓은 룡복의 생각은 남다른데가 있다는것이 깨도되였다.
《그럼 어서 울산으로 가세. 그믐날 황산강나루에서 떠나온 배를 찾으면 어순의 행처도 알수 있고 그 왜놈들도 찾아낼수가 있지 않겠나?》
두사람은 급히 산길을 내리였다.
어둔이는 이길로 곧장 산발을 타고 울산으로 가자고 하였다. 그러나 왕복 200리길을 무턱대고 해질녘에 떠날수는 없었다. 집에 들려 하루밤을 묵으며 길차비를 한 다음에 떠나기로 하고 두사람은 포촌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룡복은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 수백, 수천번이나 믿지 않으려고 애쓰며 묻어오던 그 무서운 사실, 어순이가 왜놈들에게 잡혀갔으리라는 그 사실이 이제는 거의 믿지 않을수 없는 일로 된것이였다.
길옆나무가지에 얼굴이 할퀴여도 피할줄 몰랐고 발이 돌부리에 걸채여 넘어질번 하면서도 발을 조심히 내짚을 생각을 못하였다.
허둥지둥 집마당에 들어서자 허청간옆 말뚝에 매여놓은 리생원의 하늘소가 놀라서 갈기를 털며 물끄러미 내다보고있었다.
날은 어느덧 어두워졌다.
룡복은 저녁을 짓던 어머니와 룡이가 놀라운 낯빛으로 무슨 말인가 묻는것도 느끼지 못한채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등초롱에 불을 달아들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웃마을 누구네 집에선지 개가 동안이 뜨게 짖어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룡복은 배나무가 아지를 드리운 뒤울안으로 들어가 반쯤 허물어진 움앞에 멈춰섰다. 움을 가리워놓은 섶나무단을 발로 차서 밀어제끼자 시꺼먼 아구리가 들여다보였다. 움안의 동정을 살피는 룡복의 눈빛이 무섭게 번뜩이였다.
안에서 가는 신음소리가 들려나왔다.
룡복은 등초롱을 들고 움안으로 뛰여들어갔다. 멍석우에 누워있던 왜인이 놀라서 다급히 일어나 앉는것이 보이였다.
상처자리가 그리 깊지 않았던탓에 그동안 저 혼자 정신이 들어 일어나 앉을만 해진 모양이였다.
룡복의 거친 숨소리와 눈빛에 놀란 왜인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룡복의 동정만 살피고있었다. 룡복이가 이글이글 증오로 타번지는 눈길로 쏘아보며 한발자국두발자국 다가서자 왜인은 겁에 질려 신음소리를 질렀다.
룡복은 두말없이 왜인의 목덜미를 와락 움켜쥐였다.
《아…제발…이러지 마시우, 난 아무 죄도…없소.》
왜인은 룡복의 억센 팔에 매달리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애원하였다.
《살려달라구? 네놈들을 씨도 없이 다 죽여버려도 시원치 않겠다. 네놈도 왜관에서 뛰쳐나온 놈이지?》
《예. 왜관에서… 그놈들이…》
《네놈의 정체를 밝혀라. 네놈도 대마도왜놈이지?》
《예. 대마도사람이요.》
룡복은 이발을 부득부득 갈았다.
《며칠전 다대포뒤산에서 처녀를 훔치는 일에 네놈도 끼여들었지?》
《아니, 제발… 이러지 마시오. 다 말하겠소. 나는… 도적이 아니우…》
왜인은 숨을 헐떡거리였다.
룡복은 거머쥐였던 목덜미를 슬며시 놓았다.
《왜말로 해도 들을만 하니 어서 낱낱이 말하라!》
《예, 다… 말하겠소. 나는 대마도사람이요.…》
왜인의 얼굴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있었다.
…그는 쯔시마(대마도)도주의 집에서 대대로 종살이로 매여사는 배군이였다. 나이는 마흔셋이고 성은 우마무라였다. 집에는 늙은 어머니와 안해와 아이들이 있었다.
어느날 그는 도주로부터 낯모를 사람들을 배에 싣고 조선으로 다녀오라는 분부를 받았다. 장사치같아보이는 그 사람들은 자기들을 따라 조선에 한차례 다녀오면 한평생 먹고 쓸만 한 재산을 잡을수 있다고 구슬리였다.
도주의 집 울타리안에서 세상물정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여서 우마무라는 놈들의 검은 속심을 조금도 짐작할수 없었다. 하라는 일은 무엇이나 다 하였다. 배를 저으라면 아무리 험한 곳이라도 군말없이 저어갔고 짐을 나르라면 아무리 무거운것도 다 날랐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는 이자들이 그저 장사만 하러 온자들이 아니라는것을 눈치채기 시작하였다. 그놈들은 언제나 조선옷으로 변색을 하고 나다니였을뿐아니라 우마무라에게도 조선옷을 입으라고 강박하군 하였다. 그리고 그놈들이 끌어들이는 물건들속에서 어느 량반댁으로 들어가는 봉물짐이나 서울 대궐로 올라가는 진상품에 섞였던 물건 같은것들도 보이였고 길가던 사람들의 보퉁이를 털어낸것이 분명한 물건도 있었다. 때로는 왜관안 저들의 소굴에서 무슨 지도같은것을 그리며 이마를 맞대고 수군거리기도 하였다. 정체 꺼림직한 이자들을 따라왔다가 저도 모를 죄를 짓지 않을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불안해질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부터 술을 처마시며 끌어들인 물건을 나누어가지고 돌아갈 차비를 하던 놈들이 그를 불러들이였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고 얼려추면서 술 한잔을 부어주기에 영문도 모르고 받아마시려는데 한놈이 왈칵 달려들어 목덜미를 틀어쥐면서 으르렁거리였다.
《이 도적놈아, 훔친 물건을 다 내놔라!》
《훔친 물건이라니요?!》
《더러운 종놈의 새끼, 제 몫은 벌써 다 훔쳐가졌지? 네놈에게 줄것은 쥐뿔도 없다. 알겠는가?》
놈들의 눈에는 살기가 번뜩이였다.
우마무라는 그제야 이놈들이 자기를 도적으로 몰아 차례진 적은 몫조차 주지 않으려고 생트집을 건다는것을 깨달았다.
《에익, 이 강도같은 놈들… 사람을 속여도 분수가 있지… 더럽다!》
우마무라는 술잔을 방바닥에 내던지며 벌떡 일어섰다. 순간 눈앞에서 칼날이 번뜩이더니 오른쪽가슴노리가 선뜩하였다. 뒤이어 다시 날아드는 칼날을 피하면서 칼 쥔자의 손목을 비틀어 칼을 빼앗은 우마무라는 그자의 목에 칼을 콱 박았다.
《악!》
《사람이 죽었다!》
비명소리에 정신이 든 우마무라는 피흐르는 가슴을 움켜쥐고 왜관수문으로 내뛰였다. 왜관수문을 지키던 조선군사가 앞을 막자 담장을 넘어뛰였다.
왜관규정에 왜인들은 왜관정면으로는 항구로 나가지 못하며 서쪽으로는 연향정, 동쪽으로는 객사를 지나 나갈수 없게 되여있었다. 규정에 어긋나는줄 몰라서 담장을 넘은것이 아니였다. 뒤쫓아 나오는 놈들에게 잡혀죽기도 싫었지만 이 도적의 소굴인 왜관을 영영 떠나버리고싶었고 사람이기를 그만둔 강도의 무리들과 더는 마주서기가 싫었다.
갈 곳도 없고 숨을 곳도 없었으나 미친듯이 내달렸다. 얼마나 달렸는지… 어떤 낯선 골짜기에 이르러 숲속에 몸을 숨기고 뒤를 돌아다보니 쫓아오던 놈들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우마무라는 몸에 걸친 왜옷을 벗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왜옷차림을 하고있다가 조선관원들에게 잡히면 다시 왜관으로 끌려갈것이기때문이였다.
우마무라는 급히 어깨를 더듬어보았다. 어깨에 엇메고다니던 괴나리보짐이 그대로 걸려있었다. 칼부림을 할 때에도 벗겨지지 않은것은 천만다행이였다.
그는 보짐속에서 때묻은 조선옷 한벌을 꺼냈다. 어디로 나갈 때마다 그놈들이 입으라고 강요하군 하던 옷이였다. 그날도 그는 놈들이 어디로 나가자고 부르는줄 알고 옷이 든 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나섰던것이다.
우마무라는 힘이 진해가고 정신이 가물가물 흐려지였지만 죽어도 다시는 왜관으로 잡혀들어가지 않으려고 필사의 힘을 다하여 그 옷을 껴입었다. 그리고는 심한 갈증을 참을길 없어서 개울가로 기여갔다. 그다음은 아무것도 기억할수 없었다…
다행히도 인정깊은 젊은이들을 만나서 생명은 구원하였지만 자기의 처지를 돌이켜볼수록 우마무라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비록 놈들이 시키는대로 했지만 자기가 한 일들은 분명히 조선에 죄되는 일들이였다. 그러니 조선쪽에도 죄인이 되였고 왜인들에게도 《죄인》으로 몰리워 갈곳도 없고 몸을 의지할데도 없이 된것이였다.
그런데 생명을 구원해준 고마운 젊은이가 갑자기 격분을 터뜨리는것을 보자 우마무라는 가슴이 떨리였다. 젊은이가 쯔시마왜인들한테서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한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니 쯔시마사람인 자기를 곱게 볼리가 없는것이였다.
우마무라는 모든것을 각오하였다. 죽여도 할말이 없고 왜관이나 조선관가에 끌어다 바쳐도 어쩌는수가 없었다.
말을 마치자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온몸을 사시나무떨듯 하며 앉아있었다.
룡복은 아무말없이 우마무라를 쏘아보았다. 수염많은 너부죽한 얼굴과 썩살이 두껍게 앉은 망짝같이 큰 손… 아무모로 보나 험한 일에 몸을 매운 사람이 분명하고 그가 한 말도 사실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날카롭게 번쩍거리던 룡복의 눈빛은 한결 누그러졌으나 아직도 숨결은 거칠었다.
《내 말을 듣소. 나흘전에 다대포뒤산에서 나물캐러 갔던 이 마을 처녀가 잃어졌소. 황산강나루에서 배에 실어간듯 한데 왜놈들이 한짓이 분명하오. 그러니 아는것이 있으면 다 말하우. 불쌍한 사람같은데 나는 당신을 해칠 생각이 없소. 그러니 마음놓고 말을 하우.》
나흘전 황산강나루라고 하니 우마무라에게는 한가지 짚이는 생각이 있었다.
그날 어슬녘에 그는 황산강나루에서 배에 짐을 옮겨싣는 일을 하였었다. 함께 온 장사치들이 쯔시마에서 왔다는 요시라라는 왜인에게 장사짐을 넘겨주고있었던것이다.
우마무라는 무엇인가 희슥한것이 움직거리는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급히 짐짝을 내려놓고 다가가보니 바줄에 꽁꽁 묶이우고 더러운 보자기로 얼굴을 칭칭 감기운 웬 녀자가 쓰러져 몸부림치고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짓인가? 장사를 왔다는 사람들이 이런짓을 하다니…)
우마무라는 가슴이 떨려서 급히 선창밖으로 뛰여나왔다. 마치 자기가 짐을 나르는 일이 아니라 조선녀자를 잡아가는짓을 돕고있는듯 한 죄책감으로 가슴이 떨리였다.
그런데 밖으로 나설 때 선창사다리 모서리에서 명주실에 꿴 옥가락지가 떨어져있는것을 보았다.
선창밑으로 끌어넣을 때 녀자의 몸에서 떨어진 물건이 틀림없었다. 녀자가 몸에 품고 다니면서 귀중히 여기던 물건이라는것이 한눈에 알리였다.
옥가락지를 돌려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우마무라가 다시 선창밑으로 내려서려고 할 때 일하는것을 살피고있던 요시라라는 왜인이 꽥 소리를 질렀다.
《거기서 왜 꾸물거리는가? 어서 선창뚜껑을 닫아라!》
우마무라는 와뜰 놀라며 옥가락지를 손바닥에 감추어쥔채 어쩔줄을 모르고 서있었다.
《저…선창밑에 웬 녀자가…》
그러자 요시라가 사납게 소리를 질렀다.
《네놈이 참견할 일이 아니다! 잔말 말구 뚜껑을 닫지 못하겠는가!》
우마무라는 할수 없이 선창뚜껑을 닫았다.
《짐을 다 실었으니 배에서 내려라. 주둥이를 잘못 놀리면 네놈을 가만두지 않겠으니 명심하라!》
요시라가 이렇게 명령하자 우마무라는 옥가락지를 움켜쥔채 잠시 망설이다가 쫓기듯이 배에서 내리고말았다.
(이 옥가락지를 어떻게 할가…)
우마무라는 자기 매생이에 올라서도 불안한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그 녀자에게 돌려주지 못한바에는 더러운 도적놈들과 어울렸던 증거물로만 남게된 옥가락지를 어디엔가 던져버리고 이 끔찍한 일을 말끔히 잊어버리고싶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옥가락지를 선듯 강물속에 내던질수가 없었다. 헐벗고 굶주리는 안해와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것이였다.
오래동안 주저하며 망설이던 끝에 우마무라는 옥가락지를 주머니속에 넣어버리였다.…
지금도 그 옥가락지 한쌍이 허리에 찬 주머니속에 들어있었다.
이 사실을 다 말하면 젊은이가 자기를 더욱 용서하려 하지 않으리라는것은 명백하였다.
말하기가 주저되였다. 그리고 그 죄악의 증거물인 옥가락지를 그때 어디엔가 보이지 않는곳에 던져버리지 못한것이 후회되였다.
그러나 자기를 구원해준 젊은이가 저렇게 가슴을 태우는것을 보면서도 제 한목숨이 두려워 입을 다문다는것은 량심에 죄되는 일이였다.
그 짐승같은자들과 영영 결별하기로 마음다진바에는 죽더라도 량심에 죄되는짓은 하지 말아야 하였다.
우마무라가 오래도록 망설이며 말못하는것을 본 룡복은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주저하지 말고 다 말하우. 다대포에서 잃어진 처녀가 바루 내 약혼녀이니 아는대로 다 말하우.》
우마무라는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약혼녀를 잃고 안타까와하는 젊은이앞에서 이제 더는 아무것도 숨길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던것이다. 만약 그 녀자가 이 젊은이의 약혼녀가 틀림없다면 자기는 더는 구원받을 가망이 없다는것도 짐작하였지만 우마무라는 마지막까지라도 사람다운 마음을 지키고싶었다.
그는 죄송스럽게 겁에 질린 눈길로 룡복의 얼굴을 조심히 살피면서 말없이 주머니속에 들어있던 옥가락지를 꺼내놓았다.
룡복은 우마무라의 넙적하고 험한 손바닥우에서 반짝거리는 옥가락지를 급히 집어들고 살펴보더니 《이게 어디서 났소?》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순의 옥가락지가 틀림없었던것이다.
우마무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요시라라는 쯔시마왜도적놈이 처녀를 잡아가는것을 본 일이며 옥가락지를 얻게 된 경위를 죄다 말하고나서 룡복의 발치에 쓰러지듯 엎드리였다.
《그러니 나를 죽여주시우. 나도 쯔시마놈이요. 그 짐승같은 놈들과 어울렸으니 나도 그놈들이나 다 같은놈이요. 더구나 제 계집과 자식 생각이 나서 그 옥가락지를 주머니에 넣은 놈이니 나는 사람값에 못 가는 놈이구… 죽어 마땅한 놈이요. 제발 나를 죽여주시우…》
옥가락지를 꽉 거머쥔 룡복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였다.
《그래, 그 처녀를 어디로 실어갔는가?》
룡복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울산으로 간다고 했소. 울산 박주부라는 사람네 배라고 했으니 틀림없소.》
《울산으로는 왜 실어갔는가?》
《그것은 알수 없소. 난 그저 곁에서 보았을뿐이요.》
《그 요시라라는놈은 어떻게 생긴 놈인가?》
《날이 저문데다가 그놈이 수건으로 얼굴을 반나마 가리우고있어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소. 다만 이름이 요시라라는것은 분명히 들었소.》
우마무라는 가슴을 집어뜯으며 괴로와하다가 갑자기 기침을 터뜨리였다. 그러자 입귀로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나왔다. 허파를 상한 모양이였다. 그는 정신을 잃고 그자리에 쓰러졌다.
룡복은 옥가락지를 움켜쥔채 움밖으로 뛰쳐나왔다. 하얗게 꽃망울이 맺힌 배나무가지가 어깨를 건드리였다.
(아, 어순이!)
룡복은 배나무에 이마를 찧으며 몸부림을 쳤다. 요시라라는 그 짐승같은 왜놈을 기어이 잡아족치고 어순이를 구원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있었다.
(어서 울산으로 쫓아가자. 박주부라는자의 배를 찾으면 어순이를 구원할 도리도 생길것이다.)
이윽고 마음을 다잡은 룡복은 움쪽으로 돌아섰다. 움안에서 희미한 등초롱 불빛이 새여나오고있었다. 피를 토하고 쓰러진채 정신을 잃은 우마무라의 모습이 보이였다.
저 사람한테야 무슨 죄가 있는가. 같은 쯔시마왜놈이기는 하지만 불쌍한 사람이 틀림없다. 저 사람이 아니였으면 어순의 행처도 몰랐을것이 아닌가.
룡복은 움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쓰러진채 움직일줄 모르는 우마무라를 측은한 눈길로 지켜보고있던 룡복은 그의 잔등밑에 팔을 넣어 일으켜세운 다음 움밖으로 업고나왔다.
누기찬 움속에 그냥 내버려두면 그대로 숨이 질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방에 들여다 눕히고 헌 이부자리를 내려서 덮어주었다.
어머니와 룡이가 방으로 들어오자 룡복은 왜관왜놈들에게 목숨을 잃을번 한 왜인이니 잘 살펴주어야 하겠다는 말만 하였다. 어순이가 왜도적에게 잡혀서 울산으로 실려갔다는 그 무서운 말은 차마 입밖에 낼수가 없었다.
리씨와 룡이는 병색짙은 우마무라의 얼굴을 측은한 눈길로 들여다보고 말없이 나갔다.
밤이 퍼그나 깊어서야 우마무라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룡이가 보리죽이 담긴 질자배기에 놋숟가락을 얹어가지고 들어왔다.
《자, 좀 자셔보우. 이틀동안이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했겠으니…》
룡복은 보리죽물을 떠서 그의 입술에 가져다대였다. 그러나 우마무라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더운 눈물이 눈귀로 소리없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나는 이 집에 누워있을 체면이 없는 놈이니 제발… 가게 해주시우.》
우마무라는 일어서려고 몸을 궁싯거리였다. 룡복은 가슴이 쓰리였다. 비록 왜인이라도 사람다운데가 있는 사람이였다.
룡복은 우마무라를 눌러 눕히였다.
《진정하우. 그 몸으로 가기는 어디로 간단 말이우? 몸이 추서면 쯔시마로 보내줄테니 안심하우.》
룡복은 자기가 없는 동안에도 우마무라를 잘 돌보아달라고 어머니에게 부탁하였다.
《관가에서 라졸들이 나돌수 있으니 낮에는 움속에 숨기더라도 밤이면 꼭 더운 방에 들여다눕히세요.》
측은한 눈길로 왜인을 살펴보고있던 리씨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였다.
잠시후 보리죽물을 몇술 받아먹은 우마무라는 혼곤히 잠들었다.
그제야 늦어진 저녁을 치르려고 룡복이네 세식구가 모여앉았는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어둔이가 불쑥 들어섰다.
《육실할… 아직두 저녁전인가? 난 마음이 쑤셔서 이밤을 혼자 지낼것 같지 못해서 찾아왔네.》
《어서 올라오게.》
룡복은 그에게 우마무라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리고 요시라라는 왜놈의 패거리가 어순이를 잡아 울산으로 실어간것이 분명하다는것도 알려주었다.
《그러니 왜놈의 짓이 틀림없단 말인가? 응? 어이구!》
어둔이는 떡메같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두드리였다.
《어이구!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냐.》
리씨는 가슴을 움켜잡고 이 한마디를 할뿐 룡복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할가싶어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훔치고있었다.
어둔이도 가슴 무너지는듯 한 한숨을 두어번 내쉬더니 그만 입을 다물고말았다.
덩이덩이 엉킨 불안과 걱정의 그늘이 방안에 무겁게 떠돌고있었다. 그 무엇으로써도 그 무거운 그늘을 헤쳐낼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리씨가 먼저 마음을 다잡고 어둔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사람 어둔이, 임자가 매일같이 마음썩이며 산속을 헤매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겠나? 마침 탁배기를 걸러둔게 있으니 들여오라나?》
《아니, 웬 탁배기가…》
어둔이는 무거운 마음을 술로 달랠수 있어 다행이라는듯이 한숨을 쉬며 한걸음 나앉았다.
리씨가 눈짓을 하자 룡이는 탁주가 허리노리까지 가득찬 질동이를 안고 들어왔다. 노르무레한 기름기가 도는 탁주우에 표주박 하나가 동동 띄워있고 된장종발과 썰어놓은 생무우쪽을 안주감으로 들여왔다.
룡복은 탁배기 한표주박을 푹 떠서 말없이 어둔이에게 내밀었다.
어둔이는 표주박을 받아들자 웃어른에 대한 례의치레로 리씨가 앉은 반대쪽으로 입을 돌려대고 단숨에 꿀꺽꿀꺽 마셔버리고나서 표주박을 룡복에게 내밀었다.
《자네도 들게.》
룡복이도 시큼한 탁배기를 정신없이 꿀꺽꿀꺽 퍼마시였다.
밤은 깊었다.
어둔이는 어느새 머리가 휭 돌아가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삼년 굶은 귀신에 접한 사람모양으로 자꾸만 퍼마시였다. 그러더니 동가슴을 쾅쾅 두드리면서 혀꼬부라진 소리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 육실할… 술이라는게 좋기는 좋구나! 막 터지는것 같던 가슴도 훈훈해지구… 육실할… 어순이를 찾지 못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지. 왜놈들이 붙잡아갔다구? 암만 붙잡아가두 이 하늘아래 있겠지 갈데가 있어? 룡복아, 걱정말아, 이 어둔이를 믿으라니까. 내가 이제 머리카락 한오리 상하지 않은 어순이를 네앞에다 척 가져다 놓을테니 두고봐라. 이 어둔이라는 놈이 막돼먹어두 제 할일은 안단 말이다.…》
탁배기동이가 바닥이 나서야 어둔이는 일어섰다. 삽짝밖으로 나서며 비틀걸음을 하였다.
《내가 왜 너의 집에서 자겠니? 육실할… 제 색시가 있는 내 집에서 자지 않구… 룡복아, 이 망할 자식, 네가… 어순이를 잃구서는 살수가 없지, 살수가…》
어둔이는 그냥 비틀걸음을 하며 혀곱은 소리로 중얼거리였다.
《죽으나사나 그애를 찾아야 너두 살구 나두 살구… 육실할… 울산에 가자, 가서 찾아야지… 찾구말구…》
이윽고 비틀거리는 어둔의 모습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가슴아프게 흥얼거리는 혀꼬부라진 노래소리는 그냥 들려왔다.
천지조종은 백두산이요
수의 조종은 압록수라
기생조종은 평양기생
대감조종은 오녕대감
…
노군조종은 이녀석인데
매일장춘 술만 먹고
한다는 소리가 노래로다
노래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룡복은 삽짝문을 닫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화김에 퍼마신 술기운이 돌아 머리가 화끈거리였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뭇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불러보았다.
《어순이!》
그러자 뒤울안 배나무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그 배나무가지에서는 또 한차례 꽃망울이 맺혀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