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온 동래사람들이 귀양배가 떠나는 포구로 쓸어나왔다. 어른, 아이, 로인, 젊은이 할것없이 숱한 사람들이 《죄인》이 나오기전부터 포구에 모여 웅성거리였다.
귀밑머리를 따늘인 예닐곱살 됨직한 손자애의 손목을 잡은 웬 갓쓴 늙은이가 사람들을 비집고 부두가로 나오더니 떠날 준비를 하고있는 귀양배사공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여보게 젊은이, 아직 늦지 않았나? 안룡복이라는 젊은이를 한번 보려구 달골서 20리를 달려왔네.》
《늦지 않았으니 좀 기다리시우.》
무뚝뚝하게 생긴 젊은 사공이 퉁명스럽게 대꾸하였다.
로인은 손자애의 손목을 놓고 헌갓을 벗고 땀을 훔치고나서 다시 물었다.
《그래, 임자는 그 사람을 잘 알테지?》
《그 사람이라니요? 그 박충량이란 눔 말이우?》
《아니, 갑자기 박충량이라는건 누군가?》
《흥, 말두 마시우. 근 한달전부터 귀양죄인을 싣고갈 배를 준비하라 하기에 알아보니 왜놈들과 밀통을 하다가 들장이 난 박충량이라는 부자놈이 귀양을 간다질 않겠어요. 그런 놈이라면 백번도 실어가리라 하고 기다리고있는데 갑자기 그놈 대신 안룡복이 그 사람을 싣고 간다질 않겠어요.》
《아니, 그게 도대체 어찌된 감투끈인가?》
달골로인은 영문을 알수 없다는듯이 젊은 사공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어찌될게 있나요? 그 박충량이란 놈이 원래 왜도적을 끼구 밀무역을 하며 나라를 팔아먹던 눔인데 대궐과 형조의 떨거지들에게 뢰물을 바리로 섬겨바치고 귀양에서 벗어난것이지요. 그렇게 돼먹은 세상인걸요.》
《그러면 그 눔이 무사하게 되였단 말인가?》
《무사하기는 어떻게 무사해요. 량반놈들은 속일수 있어두 백성의 눈이야 속여내는수가 있나요?》
《그럼 어떻게 되였나?》
달골로인은 젊은이곁으로 바싹 다가섰다.
《그놈이 변성명을 하구 다른 곳으로 옮겨앉으려 하다가 〈살약계〉한테 걸렸대요.》
《〈살약계〉라니? 못된 량반놈들을 잡아죽인다는 그 도적패 말인가?》
《도적은 웬 도적이요? 우리같은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사람들이지요.》
《그야 그렇지. 나도 소문을 들은지가 오랬어. 그 박충량이라는 놈도 그 사람들의 손에 걸렸으면 제갈데로 갔겠군그래.》
《그래요.》
로인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아무렴, 그렇겠지… 세상은 비뚤어져도 천도는 무심치 않은 법이야. 그런데 임자는 그 안룡복이라는 사람을 잘 아나?》
《잘 알지요.》
《그래, 어떻게 생긴 젊은이인가?》
《어떻게 생길게 있나요? 그저 나처럼 생겼지요.》
《에끼, 그렇게 말할 법이 어디 있나. 일본 관백의 항복을 받아온 사람이라는데 용모인들 범상할텐가?》
《허허허… 로인님두 참.》
젊은이의 검실검실한 얼굴에 자랑어린 웃음이 피여났다.
《그 사람도 배군인데 나와 같은데가 많으면 많았지 다른데라군 별루 없어요.》
《허, 모르는 소리… 풍신수길이를 꺼꾸러뜨린 리순신장군도 인물이 비범하구 지략이 출중한분이였고 왜왕의 항복을 받아온 사명당대사도 도술에 능한 어른이였네. 백년에 한번 나올가 말가 하는 그런 인걸을 나도 그렇지만 이 애들한테 보이지 못해서야 될 말인가?》
달골로인의 말을 듣고난 젊은이는 다시 빙그레 웃었다.
《해마다 수군훈련을 함께 해서 나도 그 사람을 잘 알아요. 키는 나보다 좀 큰편이지만 이목구비는 별다르게 생긴것이 없구… 남다른것이 있다면 노군의 손이라 그 펀펀한 손바닥에 썩살이 섬으루 붙은것뿐이지요.》
《허- 그럴리가 있겠나.…》
고개를 기웃거리던 달골로인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들어볼 생각인지 손자애의 손목을 이끌고 사람들속으로 사라지였다.
거의 한낮이 가까울무렵에 류배《죄인》이 나타났다. 새로 지은듯 한 하얀 무명저고리와 바지, 머리에 동인 석자베수건, 발에 신은 네날미투리…
죄인이라기보다 먼 나들이를 떠나는 사람처럼 깨끗하고 정성이 느껴지는 차림새였다.
사람들이 서로 가까이 보겠다고 몰려들자 류배지까지의 호송을 책임맡고 나온 동래부의 형방아전과 형졸 두사람이 앞에 나서서 길을 헤치였다.
안룡복이를 따라 류배지로 함께 가서 살기로 작정한 류일천이와 리생원, 뢰헌 등이 《죄인》의 뒤에 따라서고 그뒤로는 룡복의 어머니 리씨와 룡이, 어둔의 아버지 박지삼로인과 어둔의 안해 그리고 포촌마을의 여러 사람들이 줄레줄레 따라나왔다.
룡복은 배곁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고 사람들쪽으로 돌아섰다. 수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마음을 온몸에 느끼는듯 한동안 아무말없이 정다운 눈길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고향사람들과 말없이 주고받는 작별의 인사였으리라.
룡복의 눈길이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룡이에게 와서 멎었다.
《룡복아!》
《오빠!》
리씨와 룡이가 룡복의 가슴에 매달리였다.
《룡복아, 부디 몸성히 가있거라.》
룡복은 조글조글한 어머니의 손등을 다정히 쓸어만지였다.
《어머니, 이번에도 집의 울타리는 바로세우지 못하구… 떠납니다.》
《오냐, 이 에미는 탓하지 않는다.》
리씨의 거친 볼을 타고 끝내 눈물이 쏟아지고야말았다.
《나라의 울타리를 바로잡았으니 이 에미는 장하다는 생각뿐이구나!》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에게서 물러선 《죄인》이 배에 오르려고 축축히 젖은 발판우에 한발을 내짚었다.
이때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록의홍상으로 화려하게 단장한 웬 젊은 녀인이 《죄인》의 앞으로 급히 다가오더니 무릎을 꿇고앉아 큰절을 올리는것이였다.
녀인의 고운 입술사이에서 애절한 부르짖음이 터져나왔다.
《룡이 오라버님, 진향의 인사를 받아주세요.》
한순간 놀라움이 어리였던 《죄인》의 얼굴에 점차 깊은 감동이 물결치고있었다.
진향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채 시중드는 계집애에게 미리 준비시켜가지고온 박꽃처럼 흰 사기주전자를 두손으로 받쳐들고 큰 은술잔에 조심히 술을 부었다.
맑은 술이 넘쳐날듯이 찰랑거리는 술잔을 두손에 받쳐들고 《죄인》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는 진향의 눈에서는 소리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얼마나 따르고싶고 받들고싶은 사람이였던가. 후세에 길이 남을 큰일을 이룩하고 돌아온 오늘 더더욱 높이 받들어 위해주고싶은 사람이였다.
하지만 진향이는 그를 도울 아무 힘도 없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한잔의 맑은 술로 자기의 뜨거운 진정을 하소연하는수밖에 없었다.
《룡이 오라버님! 꿈결에도 드리고싶던 진향의 잔이예요. 온 나라 백성들이 올리는 잔이거니 생각하구 부디 받아주세요.》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녀인의 행동을 지켜보고있었다.
진향이는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칠념을 하지 않고 잔을 두손으로 받쳐든채 그린듯이 서있었다. 그의 뺨으로 흐르는 뜨거운 눈물이며 가늘게 떨리는 손에 들고있는 술잔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죄인》은 큼직한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아들었다.
《고맙소!》
고개를 돌려 사람들쪽으로 뜨거운 감사의 눈길을 보내고난 《죄인》은 아무말없이 술잔을 두손으로 들어 천천히 마시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숨결이 뜨거워지고있었다.
저 술 한잔에 《죄인》을 위해주고싶은 만사람의 진정이 다 담겨있다고 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저 술 한잔이야말로 앞날이 구만리같은 저 젊은이를 먼 귀양길에 내던지고마는 량반관리들의 무모한 처사에 비해볼 때 얼마나 의롭고 뜨겁고 깨끗한것인가. 얼마나 뜨거운 진정이 담긴것이고 얼마나 많은 뜻이 담긴것인가.
리생원은 아까부터 축축히 젖어오는 눈시울을 슴벅이며 머리를 크게 끄덕이고있었다. 무엇이라 말할수 없는 크나큰 감동과 깨달음이 이 순간 한가슴에 가득하였다.
그는 넋을 잃은듯 룡복의 모습만 바라보고있었다.
아, 저 자랑스럽고 떳떳한 모습, 이 나라 백성이 지닌 저 슬기와 기개와 의리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꺾을수 없는 그 힘! 그 힘이 기둥이 되여 이 나라를 부지해주는줄을 이제껏 왜 몰랐던고…
《아, 저러한 백성의 힘이 있기에 이 나라는 천만년이 가도 망할수 없는 나라였구나! 영원토록 망할수 없는 나라였어.…》
손자녀석을 안고 리생원의 곁에 서있던 달골로인은 그 소리를 들었는지 의아한 눈길로 리생원의 모습을 한동안 살펴보다가 주저주저하며 물었다.
《저… 지금 누구와 하시는 말씀이온지… 혹시 소인의 귀가 멀어서…》
《아니, 아니웨다.》
리생원은 그제야 로인과 로인의 가슴에 안긴 사내아이를 바라보며 어줍게 대답하였다.
《내 홀로 하는 말이니 개의치 마시오.》
리생원은 감개무량한듯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계속하였다.
《내 얼마전까지도 이 나라가 주인없는 나라인줄 알고 여윈 가슴을 치던 눈물 헤픈 포의지사였소만 그런게 아니였구려. 오늘 보니 정말 이 나라는 주인없는 나라가 아니였소.
나라를 지킬 주인은 어엿이 있었던것을 내가 보지 못했구려. 어제도 있었구 오늘도 있구 천세만세 끊기지 않을 이 나라의 주인을 내 오늘에야 알아보았소.》
달골로인은 가슴에 안았던 손자를 높이 쳐들어주며 말하였다.
《이녀석, 똑똑히 보거라. 저기 저 젊은이가 보이느냐? 잘 보아두었다가 너도 저런 사람이 되거라!》
리생원은 삿갓을 높이 쳐들고 환한 얼굴로 애녀석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주면서 아이에게가 아니라 마치 온 세상을 향해 웨치듯이 말하였다.
《오냐, 그래야지. 그래야 이 나라가 억만년 빛나구 부강해지느니라.》
이윽고 《죄인》은 배에 올랐다. 류일천과 리생원, 뢰헌도 《죄인》을 따라 배에 오르고 호송하는 형졸들도 올랐다.
흰 돛을 올리고 배가 포구를 떠났다.
포구가 점점 멀어지고있었다.
물가에 하얗게 널려서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도 이제는 형체만 겨우 알릴뿐이였다.
아, 정든 고향, 정든 사람들.…
철늦은 진달래, 철쭉꽃이 붉게 타는 저 황령산기슭, 어순이가 고요히 누워있는 저 산언덕에도 꽃은 피여났구나!
룡복의 두눈에는 눈물이 어룽거리였다.
하지만 슬픔의 눈물이 아니였다. 아무리 험한 곳으로 간다고 해도 정다운 고향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가는 길이였다.
저 포구에서 손저어주는 사람들, 좋아도 나빠도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이 땅을 가꾸며 억세게 살아가는 저 사람들, 저 미더웁고 의로운 사람들의 모습…
저것이 바로 내가 지켜온 나라이고 변할줄 모르는 내 나라의 영원한 모습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억척같이 든든해지는것을 느끼였다.
룡복은 눈길을 천천히 바다쪽으로 돌리였다.
푸른 바다가 발밑에서 설레이였다. 큰 바다가 끝나는 저 먼 하늘가에 가없이 펼쳐진 수평선…
문득 그 수평선가에서 어순의 모습이 뚜렷이 떠오르는듯 하였다.
룡복은 무너져내리는듯 한 가슴을 움켜잡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불러보았다.
(어순이!)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저 아득히 펼쳐진 수평선너머 그 어디에선가 울릉도가 푸르싱싱한 대숲을 설레이며 크게 대답하는듯 하였다.
그 대답소리가 하늘땅에 가득 차넘치고 텅 빈듯 하던 가슴을 가득 채워주었다.
그러자 룡복의 눈물어린 얼굴이 떠오르는 해빛을 받은듯이 천천히 밝아졌다. 울릉도가 영원히 이 나라 지경안에 남아있듯이 어순이도 영원히 가슴속에 살아 생동하리라는것을 깨달은것이였다.
(아, 어순이!)
다시 부르자 푸르디푸른 먼 바다 한끝 도라지빛물결우로 울릉도가 정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마주 달려오고 어순이도 두팔을 벌리고 옷고름을 날리며 기쁨에 겨워 달려오는듯 하였다.
어순이가 달려오고 울릉도와 독도가 달려오고 온 조국땅이 달려와 가슴에 안기는듯 하였다. 검푸른 바다가 거세게 술렁거렸다.
귀양배는 기슭에서 점점 멀어져가고있었다.
그러나 조국땅은 가슴 한복판으로 더욱더 가까이 다가오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