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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없는 시골고을의 동헌처마밑에서 한가하게 지내고있던 양양현감은 뜻밖에도 나라의 큰일에 관계되는 안룡복의 일을 맡아안자 제김에 놀라 벌벌 떨며 강원감사에게 급히 첩정을 띄우고 강원감사 심평은 또 그대로 황급히 임금에게 지급장계를 올리였다.
심평의 지급장계를 가진 역마가 원주 감영을 떠난지 여러날만에 한양(서울)에 이르렀는데 장계는 그날로 비변사에 들어갔다.
비변사에서는 장계를 임금에게 올리면서 안룡복 등을 한양으로 잡아올려다가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서 처리하겠다고 상주하여 허락을 얻었다.
안룡복이 그 일행과 함께 한양으로 잡혀온것은 그해(1696년) 9월 20일이였다.
수인차(죄인을 싣는 수레)에 실려 동래에서 한양까지의 먼길을 끌려오면서 줄곧 무거운 생각에 잠긴 안룡복을 바라보는 리생원의 가슴속에서는 연방 개탄의 울부짖음이 터져나왔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온갖 고통을 다 참고 견디며 후세에 길이 남을만 한 큰 일을 해놓은 사람을 높이 받들어 찬양하지는 못할망정 오라를 지워 끌어가다니… 죄와 공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저 사모쓴 도적놈들!
그래, 네놈들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손가락 하나 상한적이 있느냐, 피 한방울 흘린적이 있느냐.
저 사람은 원쑤의 칼날앞에서 생명의 위협을 수없이 당하며 둘도 없는 친구를 잃고 꽃같은 약혼녀까지 잃었다. 가슴속으로 말없이 흘린 그 피와 눈물을 어찌 자와 척으로 다 재일수 있겠느냐. 동전 한잎 생기지 않는 일에 무엇때문에 생명을 내대고 나섰는지 그 갸륵한 뜻을 헤아리기도 전에 어찌 어마어마한 죄명부터 씌우려든단 말이냐.
허가없이 국경을 넘은 범월죄인과 가짜 관리를 자칭하거나 가짜관명을 남에게 준자는 참한다는것이 법조문에 뚜렷한바이니 풍전등화와 같은 저 목숨을 구할길이 과연 없단 말인가.
나같은 구새먹은 고목은 백번죽어 아까울것 없건만 앞길이 구만리같고 가히 일세의 인걸이라 칭해 부끄럼없을 저 젊은 목숨을 어찌한단 말인가.
이 나라에 이만 한 일을 바로잡을 사람이 없단 말이냐. 임금은 무엇때문에 있구 만조백관은 다 무엇을 하는 무리들이냐. 아, 지통한 일이로구나!》
목소리가 갈리여 곁사람도 그 말소리를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리생원은 무겁게 흐린 가을하늘을 쳐다보며 통탄에 통탄을 거듭하였다.
길바닥에서는 누런 길먼지가 피여올랐다. 수인차에 실린 사람들은 그 먼지때문에 숨도 제대로 쉴수 없었다.
9월 22일.
형조와 비변사의 당상관들이 안룡복이에 대한 심문을 벌리였다.
형조의 당상대청마루우에는 심문관으로 임명된 형조 당상관 한사람과 비변사 당상관 한사람이 나앉고 그 아래뜰에는 형조의 랑관들과 상복사, 고률사, 장금사 등 형조소속의 각 관청관리들이 모를 꺾어 나앉고 심문과정을 기록하는 록사 두사람이 벼루와 붓을 갖추어들고앉아 심문이 시작될 시각을 기다리고있었다.
이윽고 안룡복, 류일천, 리인성, 뢰헌 등 《범월죄인》 11명이 형조의 라졸들에게 끌려들어와 당상대청 왼쪽뜰에 꿇어앉았다.
당상대청앞뜰에는 두개의 돌비석이 세워져있는데 왼쪽의것은 《가석》이라 하여 죄인을 다스리는 곳을 표시하였고 오른쪽것은 《페석》이라 하여 백성들의 신소를 받아 처리하는 곳을 표시하였다. 그래서 지금 《죄인》들은 《가석》이 서있는 왼쪽뜰에 꿇어앉게 된것이였다.
심문이 시작되였다.
안룡복은 서두르거나 두려워하는 빛이 조금도 없이 있은 일을 그대로 공술하였다.
못할 일을 한것이 없고 량심에 죄되는 일을 저지른것이 없다는 떳떳한 마음이였다.
물론 저 사모쓴자들이 범월죄인으로 몰아 사형에 처할지도 모른다는것을 그는 알고있었다. 그러나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울릉도를 위한 그 모든 일들은 그자신이 스스로 택한것이였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고 찬사나 보수를 바라고 한 일도 아니였다. 바란것이 있다면 오직 울릉도가 예나지금이나 영원히 내 나라 땅으로 남아있기를 바랐을뿐이였다. 바라던것이 이루어졌으니 살아도 떳떳하고 죽어도 떳떳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떳떳한 일을 하고서도 《가석》아래 엎드려 죄를 받아야 하며 가슴속에 키워오던 한줄기의 가냘픈 사랑의 꿈마저 잃지 않으면 안되는가. 나라를 위하여 바칠수 있는 모든것을 다 바쳤건만 그 대가로 피묻은 형틀앞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것은 조상전래의 섬이 왜도적의 롱락에 빠지는것도 막아내지 못할만큼 이 나라가 병들고 무맥해진때문이였다.
나라의 힘은 박충량이나 리희룡이 같은자들의 뢰물과 투기행위에 녹아나고 나라의 정사는 사색당쟁과 시앗싸움에 미친 임금이하 조정의 관리들의 손탁에서 나날이 비뚤어져가는 이 나라, 이 병들고 무맥해진 나라때문에 조상전래의 신성한 령토가 왜적에게 무시로 롱락당하고 백성은 제 나라 땅을 지켜내고도 형틀에 매워 피를 흘려야 하는것이다. 치밀어오르는 울분을 그 어디에 하소연할데도 없었다. 믿을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죄없는 사람들이 죄인으로 몰리는것을 그저 보고만 있을수는 없었다. 아무 믿을 곳도 없는 그 사람들을 구원해내는것이야말로 자기가 해야 할 마지막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가슴을 흔들었다.
룡복은 리생원, 뢰헌 등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심문이 다 끝나자 《가석》앞에 다시 나가 엎드리였다.
《마지막으로 몇가지 아뢰이겠소이다. 소인은 이번에 여러 사람을 이끌고 울릉도와 일본 호끼주까지 갔다왔으니 두말할것없이 주모자올소이다.
일행중에서 리인성은 비록 일본에 가서 막부에 상소하는 글을 지은 일이 있어 죄를 중하게 론하고있지만 주모자와 추종자를 따진다면 리인성은 추종자요, 소인은 주모자올소이다. 또한 나머지 사공들과 장사중들은 다만 장사를 위해 고기잡이를 갔을뿐이니 죄를 론할것이 없는줄 아옵니다.
소인은 이번에 일본을 다녀오면서 보잘것없는 왜놈들이 우리 나라의 섬까지 넘겨다보게 된것은 다 나라가 힘을 널리 떨치지 못한때문이라는것을 알게 되였소이다.
그런데 나라는 탐학한 관리들과 일신의 부귀만을 탐내는자들에게 롱락을 당하고있으니 어찌 힘을 떨칠수 있겠소이까?
동래부호 박충량이라는자는 대마도주와 밀통하면서 왜도적들을 숨겨주었으며 심지어 왜놈들을 울릉도에 싣고 들어가서 로략질을 하도록 도와주었으니 마땅히 나라를 배반한 죄인으로 다스려야 할줄로 아옵니다. 그리고 울릉도에 왜도적이 들어오리라는것을 알면서도 모르는체 한 사람들도 그와 조금도 다를바없는자들이라고 생각하옵니다.
그러한자들을 그냥 두고서는 나라가 바로 설수 없고 나라의 령토가 왜놈들에게 다시 롱락당하지 않는다고 어찌 말할수 있겠소이까!》
《음, 그게 모두 적실한 일이냐?》
형조당상관이 엄하게 물었다.
《사실이옵니다. 박충량이 왜도적을 몰래 싣고 울릉도에 들어갔던것은 그와 함께 갔던 사공들이 다 목격한바이고 왜도적을 몰래 감추어준 사실은 박충량의 집차지 송서방이란자가 이미 실토한바올소이다.》
《그만 알겠다. 그것은 왜인과 밀통을 한 중한 죄이니 이제 형조에서 탐문해보고 조처할것이다. 더 할말이 없느냐?》
《소인은 품은 뜻을 이루었으니 죽어도 한이 없소이다. 다만 소인과 함께 갔던 사람들은 아무 죄도 없으니 밝게 살펴주시기를 바랄뿐입니다.》
《가석》앞에서 물러서는 룡복의 이마에서는 구슬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마음은 불화로처럼 달아올랐다. 무엇인가 더 하고싶고 더 웨치고싶은 말이 가슴속에 가득하였다.
《죄인》들에 대한 첫날심문을 마친 심문관들은 사흘후인 9월 25일에 그 결과를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그때로 말하면 죽은 아들을 대신하여 쯔시마도주의 자리를 다시 차지한 소 요시쯔네가 이미 차왜를 보내여 울릉도와 우산도를 일본땅이라 속이고 두 나라사이에 오가는 례물을 횡취한 전 도주의 잘못을 사과해온 때였고 막부장군 도꾸가와 쯔나요시도 사신을 보내여 전 쯔시마도주의 죄행을 다시 사과하고 울릉, 우산 두 섬에 일본사람이 다시는 침범하지 않게 하겠다는 공식서계를 보내온 때였다.
물론 이것은 겉으로는 조선과의 이른바 《교린관계》를 유지하면서 기회를 노리다가 더 큰 야심을 이루어보려는자들의 간사한짓에 불과하였지만 조정에서 여러해동안 교섭을 해도 이루기 어렵던 울릉도령유권문제를 안룡복 등이 이루어놓았다는것을 뚜렷이 증언해주고있었다.
신하들로부터 안룡복의 공술내용을 다 듣고난 임금은 한동안 룡상에 말없이 앉아있다가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였다.
《변방의 이름없는 격군으로서 실로 갸륵한 일이로다!》
그러자 룡상앞에 좌우로 벌려서있던 신하들은 모두 답변할 말을 찾지 못하고있는데 형조판서 김진구가 형벌을 주관하는 관리답게 얼른 나가 엎드리며 아뢰이였다.
《황송하오나 안룡복은 나라의 금법을 어기고 함부로 지경을 넘어 남의 나라에 가서 참람하게도 관리로 가장하여 나라사이의 중대한 외교관계에 감히 간섭하였으니 비록 약간의 공을 세웠으나 마땅히 죄를 주어야 법망(법의 집행을 믿게 하는것)을 바로세울수 있고 후날 다시 생길 페단도 막을수 있을줄 아옵니다.》
《음, 그도 일리가 있는 말이로다!》
금방 갸륵하다고 한 말은 벌써 잊었는지 임금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였다. 그러더니 잠시후 신하들을 내려다보며 뜻밖의 분부를 내리였다.
《과인이 〈죄인〉을 잠시 보고싶으니 이리로 데려오너라!》
아니, 《죄인》을 대궐로? 룡상앞으로? 아무리 당당한 량반이라도 상참관이 아니고서는 감히 들어서볼 엄두도 못내는 이 으리으리하고 엄엄한 룡상앞으로 《죄인》을 들여놓다니? 강상의 대죄(유교의 도리를 어긴 큰 죄)를 진 죄인이라 하더라도 임금이 반드시 만나보고 처리한다는 법은 없다. 그런데 굳이 《죄인》을 만나보겠다고 하는 뜻은 무엇일가? 그것은 누구도 짐작할수 없었다.
금방 《죄인》의 소행을 갸륵하다고 하다가 죄를 주지 않을수 없다고 하는 신하의 말을 듣자 그도 일리있다고 수긍해버리는것과 같은 모순된 말과 행동이 지금 임금의 복잡한 심중을 조금이나마 말해주는것이라고나 할지.…
아니, 그저 《죄인》의 얼굴이나 한번 보고싶은 지극히 단순한 호기심때문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는것을 확인하는듯 한 임금의 말소리가 다시 울리였다.
《한번 얼굴이라도 보고싶으니 전례를 살필것 없이 얼른 입궐시키라!》
거듭 분부가 내려서야 승지 한사람이 대전 별감 두엇을 데리고 급히 대궐문밖으로 나갔다. 그사이에 임금과 신하들은 안룡복의 처리문제를 계속 론의하였다.
전 령의정이였던 령중추부사 남구만과 령돈녕부사 윤지완은 안룡복이가 비록 죄를 지었으나 조정에서도 풀기 어려워하던 일을 성사시킨 공로가 없지 않고 또 왜인들이 스스로 잘못을 사죄해오는 이때에 와서 그를 처형하는것은 그럼직한 계책이 못된다는것을 력설하였다. 그러나 형조와 비변사의 관리들은 한사코 법조문에 따라 죄를 주어야 한다고 고집하면서 사형죄로 론단하고있었다.
이윽고 《죄인》이 인정전 앞뜰에 들어섰다. 뒤따르던 대전별감 두사람은 멀리 섬돌아래 떨어지고 《죄인》만 돌계단을 밟고 으리으리한 전각마루로 조심스럽게 올라서고있었다. 《죄인》은 마치나 잘못들어온것이 아닌가를 생각해보듯이 알른거리는 마루며 번쩍거리는 붉은 기둥을 놀라운 눈길로 살펴보고있었다. 아득히 멀리보이는 룡상쪽에 한번 얼핏 눈길을 주었으나 선뜻 걸음을 옮기지는 못하고 머뭇거리였다.
데리러 나갔던 승지가 어서 들어가라고 일러주어서야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였다. 안개속에 잠긴듯 아득히 멀고 아득히 높은 룡상, 그우에서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임금의 붉은 곤룡포, 좌우에 늘어선 조정대신들의 몸을 감싸고있는 금관조복의 눈부신 광채, 엄엄하게 지켜보는 눈길들… 엄숙한 분위기…
룡복은 임금의 얼굴을 거의 알아볼만 한 거리에 이르자 그만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였다.
잔등에 와 살처럼 박히는 눈초리가 느껴졌다.
《네가 일본에 건너갔다온 안룡복이더냐?》
임금의 목소리가 들리였다. 이른바 《옥음》이라 하여 만조백관이 신성시하고 백성들은 들어보기조차 어려운 임금의 목소리였다.
룡복은 엎드린채 대답하였다.
《그렇소이다.》
《네가 세운 공이 아주 없지는 않으나 금법을 어기였으니 부득이 처형은 면치 못할것인즉 그만 머리를 들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아뢰이여라.》
룡복은 천천히 머리를 들고 임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직 마흔전의 임금이였다. 숱이 적은 수염은 아직 한오리도 희지 않았지만 약간 부을사해보이는 누르무레한 얼굴, 졸리는듯 내리드리운 부석부석한 눈시울, 광택이 없고 표정이 없는 눈초리…
끝없는 권태와 향락과 무력감에 시들어 늙은이같이 보이는 저 사람,
심문관들이 하던 말을 그대로 옮겨놓을뿐 답답한 가슴을 열어줄 시원한 말 한마디 못해주는 저 사람.
아, 과연 저 사람이 임금인가?
가늠할수 없이 큰 실망이 밀려드는 순간, 웬일인지 룡복의 두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가슴속에서는 무엇이라고 딱히 말 못할 너무도 큰 설음이 북받쳐올랐다.
허무하고 서글프고 원통하였다. 무엇에겐가 속히운듯 한 억울한 기분이였다. 문득 귀가에서 어둔이가 남기고 간 말이 쟁쟁히 울려오는듯 하였다.
《우리 나라에는 어째 주인이 없느냐?》
눈물은 그냥 흘러내리였다. 멈출수도 막을수도 없었다. 볼을 타고 흘러내려 구름무늬를 수놓은 호화로운 화문석우에 점점이 떨어지고있었다.
《상감마마!》
룡복은 목멘소리로 불러보았다. 그러나 목이 꽉 잠기여 소리가 밖으로 울려나가지 못하였다.
(어째 이 나라에는 주인이 없소이까. 이 나라 백성은 어째 나라를 사랑해도 사랑하노라 가슴펴고 말할수가 없고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하소연할데가 없소이까?
거치른 남의 나라 땅에서 말할수 없는 고통을 겪을 때에도 의지할 품이 없었으니 이 나라 백성은 어찌하여 부모잃은 고아처럼 되였습니까?)
《어서 아뢰여라, 할말이 있거든 주저치 말고 아뢰여라!》
령중추부사 남구만이가 안룡복의 얼굴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동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나직이 일깨워주었다.
절절히 아뢰고싶은, 소리높이 웨치고싶은 말이 가득하였다. 그러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하고싶지도 않았다.
《상감마마! 아뢰일 말이 없소이다. 울릉도가 우리 나라 지경안에 남아있어 우리 어부들이 마음놓고 살수 있는 땅으로 된다면 소인은 한이 없소이다. 다만 바라고싶은것은 이 나라에 부디 주인다운 주인이 있어 나라가 좀더 부강해지구 강대해져서 더는 외적이 넘보지 못하는 나라가 되여주었으면 하는것뿐이옵니다.》
임금은 표정없는 눈길로 룡복의 눈물에 젖은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룡복이가 아뢰인 말뜻을 리해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저 머리만 끄덕였을뿐이였다.
《네가 변방고을의 한개 격군으로서 나라를 위해 나선 그 마음은 실로 갸륵한바 없지 않다. 하지만 나라에는 지켜 어김없어야 할 법이 있고 백성은 마땅히 행하여야 할 도리가 있는것이다. 알겠느냐?》
룡복은 머리를 숙이고 엎드린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가슴만 더욱 답답해질뿐이였다. 이윽고 임금은 신하들에게 엄한 목소리로 분부를 내리였다.
《지은 죄는 실로 무거우나 세운 공이 없지 않고 또 경들이 아뢰인 말을 아니 참작할수도 없으니 이미 론의한 사형은 한급 감하여 귀양으로 처결하라!》
《황공무지하오이다!》
《황감하오이다!》
금관조복들이 일시에 무너지듯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리며 임금의 《은총》에 감동을 표시하였다. 죄없는 사람을 귀양보내는것이 과연 《황공무지》한 일인지… 과연 《황감한》 일인지…
이것은 수백년을 흘러도 변할줄 모르는 이 나라 대궐의 풍경이고 이 나라의 눈물겨운 모습이였다.
아, 이것이 내가 위해오고 지켜온 내 나라였던가!
허무하고 서글프고 원통한 마음은 눈물로 변하여 룡복의 두볼을 적시며 더욱 하염없이 흘러내리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