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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룡복은 일행과 함께 왜관사로 찾아갔다. 앞장서 들어간 류일천이가 관사문을 힘껏 열어젖히며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아, 모두들 어디가 숨었느냐?》
관사에서 일을 보던 왜인들이 당황하여 뿔뿔이 헤여지면서 태수를 찾아 달려갔다.
호끼주태수 마쯔다이라와 늙은 요시쯔네는 이 시각 컴컴한 관사 뒤골방에 마주앉아있었다.
두 왜인의 가슴은 그 무엇인가 쫓기운 사람처럼 마구 두근거리였다.
참으로 무서운 광경을 목격한 그들이였다. 그 어린 처녀가 주저없이 목숨을 끊어 자기들을 이토록 헤여날길 없는 궁지에 빠뜨려버릴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한 일이였다.
총검을 든 수천수만의 군대의 힘도 처녀의 죽음처럼 무서운 힘으로 최후의 일격을 가해오지는 못했을것이였다. 이제는 자기들모두가 아니, 일본이라는 나라가 통채로 그 어린 처녀의 죽음앞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게 되였다는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처녀의 그 불가사의한 행동은 결코 한사람의 우연한 행위가 아니였다. 그 행동에서는 함부로 건드릴수 없는 저 나라 백성의 무서운 넋이 느껴지였다.
어제는 도요도미 히데요시를 꺼꾸러뜨리였고 오늘은 도꾸가와막부의 손발을 얼게 만드는 그 넋, 저 나라 백성의 가슴가슴마다에 살아있는 그 넋은 그 무엇으로써도 꺾을수 없고 없앨수 없는 그런것이였다. 그러니 이제는 다른 길은 없었다.
좋던 궂던 감세장의 요구를 들어줄수밖에 없었다. 그를 굽혀낼만 한 아무 구실도 없었다. 만일 지금 일을 조금이라도 서뿔리 처리하여 말썽을 내면 조선과의 교린관계를 그토록 조심히 다루고있는 막부에서 틀림없이 된벼락을 내릴것이다.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그 도고한 젊은 감세장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모든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것은 결코 일시적방편이거나 그 어떤 승산을 엿보는 계책도 아니였다.
그것은 피할길 없고 어쩔수 없는 운명이였다. 그것을 똑똑히 깨달은 두 왜인은 더욱 깊은 절망에 빠져들고있었다.
이윽고 감세장일행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두 왜인은 무거운 걸음으로 관사대청으로 나왔다. 그들은 관사대청우에 먼저 자리를 잡고앉아 기다리는 안룡복의 앞에 와서 조심히 앉았다.
마쯔다이라가 먼저 머리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참말 뜻밖의 불상사를 당하고보니 죄송하기 그지없소이다.》
룡복은 머리를 숙이고 앉은 두 왜인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뜻밖의 불상사라구? 너희들이 어리석게도 사람의 생명을 칼끝으로 롱락하여 누구를 꺾어보려고 했지만 목숨이 두려워 굽어들 우리가 아니다. 그 처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뜻을 너희들이 알기나 하는가? 그 처녀가 왜 이 거친 왜땅에 끌려와서 목숨을 버리지 않으면 안되였는지, 그처럼 고향을 그리워하던 사람이 고향으로 갈수 있게 된 이때에 와서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그 참뜻을 너희들은 영영 짐작도 못할것이다.》
《참으로 죄송하기 그지없소이다.》
이번에는 늙은 소 요시쯔네가 고개를 조아리였다.
《감세장대인의 요구대로 년전에 받았던 막부의 서계와 울릉도의 금부처를 다 가져왔으니 사과의 뜻으로 여기고 삼가 받아주시기를 바라오.》
룡복은 심부름온 두 왜인이 나무함 두개를 조심히 맞들어다 놓고 물러서는것을 불이 펄펄 이는듯 한 눈길로 쏘아보았다.
《너희들이 조선에 진 죄를 몇가지 물건이나 말로는 절대로 갚지 못한다. 피와 목숨으로 대를 두고 갚아도 모자란다.》
호끼주태수 마쯔다이라가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감세장대인의 요구대로 울릉도에 불법침입했던 죄인 열다섯도 모두 처형하였으니 그리 알아주시기 바라오.》
리생원과 뢰헌이 나무함을 열고 서계와 금부처를 꺼내보았다. 서계에 찍힌 관인(도장)이며 서계의 마지막에 일본 동산천황의 년호인 《원록6년》이라는 글을 뚜렷이 박은것이 모두 확실하였다. 금부처는 높이가 한자남짓한 금동 관음붙인데 불길모양의 광배뒤면에는 《신라 우산국 대불사》라는 글자가 뚜렷이 새겨져있었다.
룡복은 터져오르는 격분을 가까스로 참으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가져온 문건들은 다 도적질해갔던것을 도루 바친데 지나지 않고 처형했다는 열다섯명의 죄인들은 제스스로 진 죄때문에 목숨을 바쳤을뿐이다. 그러니 너희들의 죄가 조금도 가벼워질것이 없다.》
《…》
두 왜인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머리를 숙인채 앉아있었다.
뒤덜미로 휘우듬하게 구부러져 드리운 일각모의 시꺼먼 꼬리는 살아움직이는 독뱀처럼 꿈틀거리였다. 저 독뱀의 대가리… 저것들마저 잘라서 불속에 던져버려야 영영 후환을 없앨터인데…
룡복은 문득 이런 치떨리는 충동에 사로잡혀 가슴을 떨었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가야만 하였다.
어순이를 왜땅에 묻고갈수는 없는것이였다.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 고향땅, 살아서 그토록 가고싶어하던 울릉도에 죽은 몸이나마 묻어주어야 하였던것이다.
울릉도와 우산도에 다시는 일본사람들을 출입시키지 않겠다는 막부의 서계도 찾았고 대불사 금부처도 찾았으며 울릉도에 불법침입했던 왜도적도 남김없이 처형하였으니 목적은 다 이룬셈이였다. 하지만 어순이를 잃은 이 통절한 마음의 울분을 풀지 않고서는 십년이고 백년이고 물러서고싶지 않은 심정이였다.
룡복은 머리를 숙이고 앉아있는 두 왜인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요구를 더 들어주어야 우리가 떠날수 있겠소.》
《념려마시오. 호송할 배와 길량식은 다 마련해놓았소이다.》
《그런것은 바라지도 않소. 어제 잡아가둔 우마무라라는 쯔시마사람을 내놓으라는것이요. 그 사람은 응당 처형해야 할 요시라라는 도적두목을 죽였으니 죄가 없는데 죄없는 사람을 잡아가두는것은 결국 우리 일행에 앙갚음을 하는것으로밖에는 달리 볼수가 없소.》
《지당한 말씀이요. 감세장대인의 말씀을 듣고보니 실로 실례되는 일을 저질렀소이다.》
늙은 요시쯔네는 뒤에 서있는 졸개들에게 우마무라를 급히 데려오라는 분부를 내렸다. 잠시후 우마무라가 왜인들에게 끌려왔다.
룡복은 그에게 지운 오라를 풀어주게 한 다음 두 왜인에게 말하였다.
《만약 이후에 다시 울릉도와 우산도에 배를 대는 일이 있으면 두 나라사이 교린관계는 끝나는줄로 아시오.》
《명심하겠소이다. 다시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즉시 서계와 함께 관리를 보내여 알려주시면 엄중히 조처하겠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만 돌아가겠소. 다시 약속을 어길 때에는 무사치 못할것이니 그리 아시오.》
두 왜인은 거듭 머리를 조아린 후 관사안으로 물러갔다.
이날 저녁 안룡복의 일행은 왜인들이 의례상으로 차린 상선연을 받은 다음 배에 올랐다. 배가 떠나기 전에 룡복은 우마무라와 작별하였다.
《우리가 떠나면 다시 앙갚음을 당할지 모르니 급히 쯔시마로 가서 몸을 피하던지 가족을 데리고 조선으로 건너와 사우.》
우마무라는 룡복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였다.
《고맙소 안상, 명심하겠소.》
그의 목소리가 떨리였다.
《나를 원망하우. 어순이가 잘못된것은 다 내탓이요. 가슴아플 때마다 나를 원망하우. 내 안상을 잊지 않을테요. 다시는 죄되게 살지 않겠소.》
이윽고 배가 떠났다. 배가 오끼시마지경을 벗어나고 호송하여 따라오던 왜인들도 다 돌아가자 룡복은 입고있던 관복과 갓을 벗어버리였다. 류일천이와 리생원도 본래의 옷차림으로 돌아왔다.
달리는 배의 이물쪽에는 푸르싱싱한 대가지를 두껍게 둘러친 뜸집같은것이 보이였다. 푸른 대나무가지들은 싱그러운 바다바람을 안고 조용히 설렁거리고있었다.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가는 룡복이의 걸음걸이가 비틀거리였다.
이제껏 억세게 지탱하여오던 온몸의 힘이 한순간에 다 흘러 빠져버린듯 걸음을 옮길 기력조차 없는듯이 보이였다.
룡복은 축축한 갑판널우에 주저앉아 넋잃은 사람처럼 초점없는 눈길로 앞을 바라보고있었다. 푸르싱싱한 대나무를 초막처럼 둘러세운 서늘한 그늘속에 희슥희슥한 그 무엇이 고요히 놓여있었다. 움직일줄도 소리낼줄도 모르는것이였다. 영원히 고요하고 영원한 정적속에 잠긴것이였다.
아, 아무것도 없구나! 이 가슴도, 이 세상도 모두 텅 비였으니… 파도는 왜 출렁이고 해는 왜 비칠가, 바람은 왜 불고… 배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룡복은 축축히 젖은 거친 널판을 손바닥으로 두어번 천천히 쓸어보더니 갑자기 《으흐흐…흑!》하고 오열을 터뜨리였다. 무서운 의지의 힘으로 참아오던 슬픔이 가슴밑바닥에서 뚝을 터치고 쓸어나오는 밀물처럼 치밀어오르기 시작한것이였다.
류일천이와 리생원, 뢰헌은 사공들과 함께 고물쪽에 서서 측은한 눈길로 룡복을 바라보고있었다.
모두가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면 저 슬픔을 위로할수 있고 저 몸부림을 달랠수 있단 말인가! 저 푸르싱싱한 대나무그늘속에 고요히 누워있는 어순이가 지금 웃으며 일어선다면 몰라도…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아무도, 그 무엇도 오열에 떠는 사나이의 저 마음을 진정시킬수 없을것이다.
무심히 불어지나는 바람결에 무성한 대나무잎들이 쏴- 소리를 내며 설렁거리였다. 룡복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였다.
생전에 못다한 어순이의 말소리는 아닌지… 그 애절한 혼백이 대잎을 흔들며 몸부림치는것은 아닌지.…
문득 룡복의 귀가에는 노래소리가 들려오는듯 하였다.
달밝은 다대포 앞바다… 물결우에서 은빛으로 부서지는 달빛을 손으로 휘저으며 어순이가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바람따라 바다에선 물결만 출렁
잠결에도 꿈결에도 밤낮도 없이
이내나 가슴에선 너만 출렁 너만 출렁
아하이요 내 사랑 울릉섬아
은은한 노래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더니 하늘땅에 꽉 차서 흐른다.
룡복이도 눈물을 머금고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아하이요 아하이요 꿈엔들 잊을소냐
섬아 섬아 울릉섬아 내 사랑 섬아
룡복의 두눈으로 눈물이 줄지어 흘러내리였다.
그는 밤이 지새고 낮이 지나는것도 느끼지 못하고 설렁거리는 대잎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넋없이 앉아있었다. 리생원이며 류일천이가 그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보려고 아무리 애썼으나 아무 소용도 없었다.
며칠후 한낮이 지났을 때 멀리로 울릉도가 보이였다.
《울릉도다!》
몇달만에 다시 보는 고국산천이 반가와서 사람들이 모두 환성을 지르며 배전으로 몰려나왔다.
《룡복형님, 울릉도요! 저것 보우. 울릉도가 보이오.》
일천이가 룡복의 기분을 돌려보려고 일부러 큰소리로 부르며 곁으로 다가갔다.
울릉도라는 소리가 들려오자 룡복은 벌떡 일어섰다. 그의 눈빛이 한순간 번쩍 하더니 뒤이어 이전보다 몇배나 더 무거운 슬픔속에 잠기고마는것이였다.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간신히 지탱해오고있던 리성의 마지막탕개가 끊어져버린것이였다.
룡복은 사태처럼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더는 걷잡지 못하고 밑둥을 잘린듯이 무릎을 꺾고 주저앉으며 어깨를 떨었다. 가슴속에서 무서운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울릉도! 아, 저 섬을 바라보기가 왜 이토록 괴로울가. 어순이가 그렇게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섬이고 그자신이 모든것을 다 바쳐 지켜온 저 섬이 이렇듯 가슴을 찢어놓을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꿈결에 보여도 기쁘고 사랑스럽기만 하던 저 섬이 이토록 서먹서먹해지고 그 기슭에 발을 내짚기가 이렇게 괴로울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어순이, 어서 일어서오.)
룡복은 마음속으로 넋없이 부르짖었다.
(울릉도에 다 왔으니 어서 일어나 나와 함께 섬으로 내려서주오. 저 기슭의 흰 모래를 한번만이라도 밟아보오.자, 어서…)
무릎걸음으로 비척비척 대나무무지앞으로 다가가던 룡복이가 그만 젖은 갑판에 이마를 짓쪼으며 목갈린 소리로 통곡을 터뜨리였다.
《어허헉… 어순이! 울릉도에 왔는데 왜 그러고만 있소… 어허헉!》
울릉도가 보인다고 환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갑자기 입을 다물고 오열에 떠는 룡복의 모습을 지켜보고있었다. 리생원의 눈기슭에서 반들거리던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려 검은 수염속에 스며들고있었다.
《아, 기막힌 일이로구나! 사람이 가슴이 아무리 넓다 한들 어찌 저 슬픔을 다 담을수가 있으며 이 세상을 덮고도 남을 저 큰 슬픔을 어찌 한 사나이의 가슴으로 다 감당해낼수가 있을터인가.…》
류일천이와 뢰헌은 여러 사공들과 함께 눈굽을 적시며 룡복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하였으면 좋을지 몰라서 안타까이 망설이고있었다.
이윽고 배는 섬기슭에 닻을 내리였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어순의 령구를 메고 기슭으로 내려섰다.
저녁해가 피빛으로 붉게 타번지고있었다. 섬은 끝없이 숭엄한 침묵에 잠겨 자기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딸을 맞이하고있는듯 하였다.
섬기슭을 휩쓸어내리는 구슬픈 파도소리와 사람들의 가슴을 찢는듯 한 무거운 흐느낌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룡복의 아버지의 무덤과 어순의 부모님들의 무덤사이에 새 무덤 하나가 생겨났다.
섬의 품에서 나서자란 섬처녀 어순이는 죽어서도 섬의 품에 고이 안긴것이였다. 그립고그리운 아버지, 어머니곁으로 영원히 돌아온것이였다.
소식을 들은 섬사람들이 달려왔다. 섬년이는 무덤에 엎드려 통곡을 터뜨리고 쇠동이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들고 룡복의 가슴에 매달리며 울부짖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요? 어순이를 왜 이 모양으로 만들었소? 말좀 하우. 왜 말을 못하우?》
일천이가 룡복의 가슴에 매달려 몸부림치는 쇠동이를 떼여내여 한옆으로 끌고가면서 눈을 흘기였다.
《네가 아직 철이 없구나, 철이 없어… 누구한테 그런 말을 물어보니? 누구한테?》
그제야 쇠동이는 돌덩이같이 굳어진 룡복의 거멓게 질린 얼굴을 면구스러운 눈길로 살펴보며 조용히 부르짖었다.
《나도 아우. 다 들었소. 어순이가 섬을 위하구 우리를 위해 저렇게 되였다는걸…
하지만 이렇게 원통한 일이 어디 있소? 왜 그때 나를 데리고 가주지 않았소. 나도 이 섬에 태를 묻은 사람이란 말이우.》
사람들의 가슴은 더욱 찢어지는듯 아파왔다.
그날 밤, 룡복은 홀로 무덤앞에 서있었다. 허리 꼬부라진 초생달이 먼 서쪽바다우에 걸려 푸르스름한 빛을 뿌리고 술렁거리는 밤바다는 소리내기를 저어하는듯… 파도소리를 잠재우려고 애쓰는듯…
(어순이, 날이 밝으면 나는 뭍으로 떠나우. 꼭 돌아올테니 기다려주우. 부디 안심하고 눈을 감소. 이제는 이 섬을 왜놈들이 더는 짓밟지 못할거요. 어순의 부모님도 우리 아버님도 이제는 편히 누워계시게 되였소.)
룡복은 봉분우의 부드러운 흙을 다정히 어루만지였다. 어순의 체온인듯 낮동안 달아오른 흙은 아직도 따스하였다.
룡복은 파르스름한 달빛이 소리없이 흐르고있는 먼 수평선쪽을 바라보았다. 달빛을 받아 고기비늘처럼 반짝거리는 물결이 섬을 향해 끝없이 파도쳐오고있었다. 마치나 고요히 누워있는 어순의 령전에 감사를 보내기 위하여 밀려오는 수천수만의 은빛꽃송이들 같았다.
룡복은 그 무엇에 끌린듯 그 바다기슭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였다. 바위가 듬성듬성 널려있는 모래불우에는 푸르스름한 달빛이 어려있었다.
희끄무레한 바위가 눈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아, 잊을수 없는 바위!
룡복은 달빛에 휩싸인 가마바위를 두팔로 와락 부둥켜안고 쓰다듬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이 바위를 한번 타보고싶다던 그 소박한 소원도 이루지 못한채 어순이는 영영 가버렸다! 지금 이 바위우에 어순이가 앉아있다면 몇밤이고 싫증을 모르고 흔들어주련만…
어순이는 룡복의 이 마음을 전혀 모르는듯 양지바른 산기슭에 조용히 누워만 있었다.
그러나 어순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이 바위는 이제 자라날 섬아이들의 《꽃가마》,《꿈의 가마》가 되여 영원히 남아있게 된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영원히 그를 잊지 않을것이다. 이름없는 하나의 바위와 조약돌과 풀 한포기까지 그가 얼마나 귀중히 여기였던가를 사람들은 잊지 않을것이다. 그 귀중한 모든것을 위하여 한목숨 서슴없이 바친 어순이였다는것을 섬이 알고 저 무궁토록 설레이는 바다도 알것이다.
룡복은 가마바위를 부둥켜안은채 오래도록 움직일줄을 몰랐다.
이튿날 섬사람들이 모두 포구로 떨쳐나왔다. 배가 떠나는것이였다.
흰수염을 가슴에 드리운 좌상로인 최서방과 문서방, 쇠동이와 섬년이… 모두가 잊지 못할 정다운 사람들이였다.
쇠동이와 섬년이는 오는 가을에 잔치를 한다고 하였다. 룡복은 사랑스러운 그들을 마음속으로 뜨겁게 축복해주며 배에 올랐다.
아름다운 이 섬의 앞날과 같은 그들이였다. 그들의 사랑이 끝내 꽃피여 열매를 맺게 된것은 마치 이 섬우에 영원히 꽃필 생활과 앞날을 상징하는듯 하였다.
부디 행복하거라, 우리가 이루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것까지 너희들이 마음껏 누리며 이 섬을 꽃피워다우.
룡복은 마음속으로 뜨겁게 축원하며 섬의 모습을 다시한번 휘둘러보았다.
배가 떠났다.
룡복은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넋을 잃은 사람처럼 멀어져가는 섬만 바라보고있었다. 꿈도 희망도 사랑도 모든것을 이 섬에 묻어두고 가는것이였다. 아무리 달래여도 아물지 않는 마음의 상처에서는 다시금 피가 흐르고있었다.
룡복은 얼을 앗기운 사람처럼 덤덤히 앉아있었다. 그 무슨 뜻이나 목적이 있어 가는것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끌려가는 사람같았다. 울산이나 포항에 대이려던 배가 역풍을 만나 뜻밖에도 강원도 양양현지경에 이르렀을 때도 그는 그저 무쇠덩이같이 아무 변화도 없었다.
룡복은 지글지글 내리쪼이는 8월의 폭양을 뚫고 양양현감을 찾아가서 울릉도일때문에 일본 호끼주에 갔다온 사실을 밝히고 막부의 서계와 공문서들을 모두 바친 후 다시 배로 돌아왔다.
《이제는 어찌할셈이우?》
류일천이가 룡복의 컴컴한 낯빛을 근심스레 살피며 물었다. 리생원과 뢰헌도 룡복의 곁으로 다가왔다.
룡복은 그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뿐 아무 말도 없었다. 무슨 말을 할수 있으랴. 할수 있는 모든것을 다 하였으니, 힘이 닿고 지혜가 닿는껏 모든것을 다하고 다 바치였으니 이제 과연 무엇을 더 하며 무슨 말을 할수 있으랴.
그 어떤 위로나 보수를 바라는 마음도 없었다. 다만 떳떳한 마음으로 이 땅을 밟을수 있고 저 하늘을 바라볼수 있다는것을 느낄뿐이였다.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크고 자랑스럽고 고귀한것인가!
그 떳떳한 마음을 간직하기 위하여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어야 하는가를 사람마다 아는것은 아니다. 발밑에 누워있는 이 말없는 땅과 머리우에 펼쳐진 저 푸른 하늘이 얼마나 값지고 귀중한것인가를 깨달은 때에야 사람들은 그것을 떳떳이 밟고 바라본다는것이 또한 얼마나 큰 행복으로 되는가를 깨달을수 있는것이다.…
다음날 일행은 다시 돛을 올리고 동래를 향하여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