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바람이 불었다.

울창한 소나무숲이 세차게 설레이였다.

쏴―아―쏴, 마치나 그 무슨 사연을 하소연하고싶기라도 한듯 소나무들은 한동안 묵묵히 서있다가도 돌연 《쏴―아―》 하고 한숨같은 소리를 터뜨리군 하였다.

룡복은 방안에 홀로 앉아 그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리생원과 뢰헌은 류일천이와 함께 포구에 두고 온 배와 사공들이 그동안 무사한지 알아보려고 아침에 떠나가고 룡복이 혼자 집을 지키고있었다.

왜인들이 안룡복일행을 류숙시키고있는 이 집은 울창한 소나무숲속에 자리잡고있었다. 앞뒤뜰에는 그리 초라하지 않은 정원도 있고 방도 여러칸이였다. 열네댓살나는 얼굴 곱살한 종자아이가 하루세끼 밥을 가져다주고 세면물도 떠다주며 크고작은 심부름을 다 맡아주기때문에 큰 불편은 없었으나 마음은 나날이 불안해졌다.

호끼주태수가 에도로 떠나간지도 어느덧 달포가 지났건만 아직 아무 소식도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이날 점심밥을 들고온 종자아이가 에도에 갔던 태수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룡복은 귀가 번쩍 띄여서 종자아이에게 다정히 물었다.

《그래, 무슨 소식이 없더냐?》

《다른것은 모르겠으나 도주의 아버지라는 늙은이가 왔사와요.》

《도주의 아버지가?》

《예, 틀림없사와요.》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것이 느껴졌다.

그 다음날에야 호끼주태수 마쯔다이라가 룡복의 앞에 나타났다. 이날도 바람이 불었다. 련 이틀째 바람은 계속되고있었다.

마쯔다이라는 상글상글 웃는 낯으로 인사수작을 하고나자 은근한 투로 말하였다.

《이번에 갔던 일은 아주 잘되였소이다. 대개 쯔시마와 관계되는 일이기에 에도에 가있던 쯔시마도주의 부친께서 친히 맡아 조처하겠다고 하면서 불원천리하고 감세장어른을 찾아왔소이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나서 따로 할 말이 없소만 먼 길을 찾아왔다니 만나는 보겠소.》

룡복은 마쯔다이라의 안내를 받아 쯔시마도주의 아버지 소 요시쯔네가 들어있는 방으로 갔다. 벌써 어둑어둑해오는 저녁녘이였다. 휘둘러친 병풍앞에 세층으로 된 비단방석을 깔고 깊숙이 앉아있던 얼굴이 조글조글한 늙은이가 급히 일어서며 룡복을 맞이하였다.

룡복은 인사를 나누고 비단방석우에 자리를 잡았다. 은초대우에서 초불 두가락이 희미하게 타는것이며 요시쯔네의 등뒤에 휘둘러친 병풍에 그려진 그림들을 대충 둘러보고나서 룡복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막부장군에게 상소하는 글은 내였는데 뜻밖에도 도주의 부친되는분이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다 하기에 무슨 영문인지 알고싶어 왔소이다.》

《허―그럴테지요. 이 60이 넘은 늙은이가 지친 몸을 이끌고 먼길을 급히 올 때에는 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어서이지요.》

요시쯔네는 재빨리 룡복의 눈치를 살피고나서 늙은이답게 뜨직뜨직 말을 이었다.

《감세장대인은 보건대 아직 젊으신분이지만 어리석은 자식때문에 가슴 썩이는 부모의 심정을 모르지는 않으리라 믿소이다. 그래서 부끄럽소만 죄많은 내 자식을 너그럽게 처분해달라는 부탁을 가지고왔소이다.》

《허허, 무슨 말씀이신지요?》

《내 자식이 도주의 자리를 물려받았지만 배운것이 없다보니 하늘 무서운줄 모르고 죄되는짓을 더러 저질렀소이다. 하지만 죄는 죄이고 인정은 또 인정인지라 감세장대인께서 너그럽게 살피여 막부에 알리는것만은 부디 삼가해주신다면 더 바랄것이 없겠소이다. 그리고 울릉도에 우리 어부들이 갔던 사실에 대하여 말한다면 이번이 처음인것도 아닌데 굳이 문제삼아 말썽을 돋군다면 감세장대인의 처지로 보아서도 조금도 리로울것이 없는줄로 압니다. 그러니 그 일을 더는 말하지 않는것이 어떠하겠는지 하는 생각이옵니다.》

룡복은 말없이 요시쯔네의 등뒤에 둘러친 병풍속의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앙상한 나무가지에 발톱을 걸고 앉아 먹이를 찾는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이 룡복을 노려보고있었다.

룡복은 쓰겁게 껄껄 웃으며 요시쯔네를 바라보았다.

《나에게 리로울것이 없다니 그것은 어떻게 하시는 말씀인가요? 나는 울릉, 우산 량도감세장으로서 그 섬의 일을 맡은 사람인데 남의 나라 사람들이 섬을 로략질하는것을 못 본체 할수가 없지 않겠소?》

《허허… 젊으신분이라 그 혈기는 어쩔수 없구려…》

요시쯔네는 매우 유감스럽다는듯이 일각모를 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는 지금 관리의 직분같은것은 다 버리고 오직 자식을 낳아키우는 사람으로서 감세장대인을 대하고있소이다. 이 관리의 직분이라는게 다 뭐겠소이까? 사람이 살고죽는데서야 그것이 무슨 값에 가는것이겠소이까?》

《사람이 죽고살다니요?》

《허허… 굳이 밝혀 말한다면 이렇소이다. 감세장대인이 이번 일을 기어이 막부에 상소하면 내 아들은 부득이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나에게가 아니라 막부장군이나 나라의 법을 상대로 하여 인정을 구해보시는것이 마땅하지 않겠소이까?》

요시쯔네의 눈에서는 싸늘한 빛이 번뜩이였다.

《그러니 감세장대인은 기어이 내 아들을 죽이고야말겠다는것인가요?》

《허허…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오. 내가 왜 아무 일없이 당신의 아들을 죽이자고 하겠소? 다만 우리 나라의 섬인 울릉도를 더는 건드리지 말며 빼앗은 서계를 되돌려주고 사죄하며 두 나라사이에 오가는 물건에 더는 손을 대지 말았으면 할뿐이지요.》

요시쯔네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룡복을 쏘아보았다.

《기어이 상소를 그만둘 생각이 없으신 모양인데… 그렇다면 나도 분명히 일러둘 말이 있소. 만일 내 아들이 잘못되는 날이면 내 수하사람들이 쯔시마에 와있다는 감세장대인의 약혼녀를 죽이겠다고 하는데 이 일은 어찌하면 좋겠소?》

룡복은 흠칫 놀랐다. 무엇인가 잘못 들은것처럼 생각되여 귀를 기울이자 요시쯔네의 살기어린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고있었다.

《허허… 놀라지 마시오. 이 마음 약한 늙은이가 피를 즐기는것은 아니오만…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구려.》

(어순이를 죽이다니?)

룡복은 갑자기 가슴이 떨리였다. 진정할수없이 떨려왔다.

《그런 온당치 않은 말은 그만두시오. 도주가 벌을 받는것은 자기가 진 죄때문인데 그 처녀는 왜 해친단 말이요?》

격분에 치를 떠는 룡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요시쯔네는 삵의 웃음을 웃었다.

《나도 사람이고 부모인데 자식이 죽는것을 바라지 않지요. 감세장대인도 약혼녀를 잃고보면 아직 젊은 인생이 적막한 빈 들판과 같이 될것이 아니겠소? 그러니 우리 두사람이 다 손해볼 일은 하지 말자는것이 이 늙은 사람의 소청이요.》

룡복의 눈에는 병풍속의 독수리가 다시 보이였다. 여전히 자기를 노려보는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빛이 마치 철철 흘러떨어지는 피방울처럼 번쩍거리였다.

(이자가 노리는것이 무엇인가?)

룡복은 잠시 생각을 굴려보았다.

(겉으로는 아들의 죽음을 막아보려는듯이 꾸미지만 속심은 울릉도를 그냥 차지해보겠다는것이다. 그래서 어순의 목숨을 미끼삼아 나를 위협하는것이다.)

룡복은 자리를 고쳐앉으며 날카롭게 부르짖었다.

《그런 어리석은짓은 그만두는게 좋겠소. 이웃나라의 관리에게 제 나라 령토를 버리라고 강박을 하다니… 이런 무례한짓이 어디 있소?》

《그러니 약혼녀를 죽이겠다는 말씀인가요?》

요시쯔네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누구를 죽인다는것인가? 누구를?》

룡복은 이글이글 타번지는 두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는 못하오. 그런 어리석은 위협으로 내 마음을 꺾을 생각은 하지도 마시오.》

《으흐흐…》

갑자기 늙은이가 어깨를 떨며 미친듯이 웃어댔다.

《으흐흐… 가슴아프기는 마찬가지일테지.… 으흐흐…》

시퍼렇게 피기가 가셔진 늙은이의 주름많은 얼굴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울고있었다. 긴 옷소매로 천천히 눈물을 닦고있었다.

《내 아들은… 벌써 죽었소. 으흐흐… 황천으로 갔소. 이 늙은 가슴이 찢어지는듯 하오.》

《?…》

룡복은 늙은이의 시체같은 무시무시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죽었소. 피를 물고… 앓아서 죽었다는것은 거짓소문이요. 무엇때문에 그렇게 죽었는지 나는… 아오.》

요시쯔네는 새끼잃은 승냥이처럼 시퍼런 불빛이 번뜩이는 눈길로 룡복을 쏘아보았다.

《자, 그러니 대답을 하시오. 약혼녀를 죽이겠는가 울릉도일에서 물러서겠는가? 아들까지 죽은 지금에 와서 나는 조금도 주저할것이 없소. 피를 보아도 두려울것이 없소. 자, 어서 대답하시오.》

피를 물고 덤비는 이 악귀같은 늙은이앞에서 룡복은 말을 할수가 없었다. 사람의 말로는 이 짐승들과 뜻을 통할수가 없다는것을 문득 깨닫자 눈앞이 막막해졌다.

《잘 생각해보시우. 울릉도일에서 그만 물러서겠다면 약혼녀를 데리고 가도록 해주겠으니 후회없도록 하기를 바라오. 다 쓸데없소이다. 나라가 무엇이구 령토라는것은 또 무엇이겠소이까. 며칠간 말미를 줄터이니 잘 생각해주시오. 아…》

요시쯔네는 서리맞은 구렁이처럼 맥없이 앉은걸음으로 침상쪽으로 기여가더니 안석에 비스듬히 기대앉아서 가쁜숨을 몰아쉬고있었다. 지나친 흥분때문에 기력이 진해버린것이였다.

하얗게 피기가 가신 조글조글한 얼굴에서는 아직도 젖은 눈물자욱이 번들거리였다.

아니, 그것은 눈물이 아니라 피자욱이였다. 온 얼굴에 피칠을 하고 앉아있는 저 악마같은 늙은이!

룡복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것을 느끼며 얼른 눈길을 돌리였다. 그러자 병풍속의 독수리가 다시 보이였다. 사람의 눈알을 파먹는다는 저 독수리야말로 오히려 선한 짐승이 아닌가 하는 이상스러운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쓴 저 늙은 악마에 비하면 썩은 고기를 먹고사는 저 독수리가 얼마나 선하고 떳떳한 짐승인가.

룡복은 며칠후에 다시 의논해보자는 요시쯔네의 말을 아득히 먼 땅밑에서 울려오는 소리인듯 어렴풋이 들으며 피비린내 풍기는 방에서 급히 뛰쳐나와버리였다.

그날 밤 안룡복의 일행 네사람은 누구도 잠들지 못하고있었다.

바람은 아직도 불었다. 련 사흘째 그칠줄 몰랐다.

쏴―아―쏴―

캄캄한 어둠속에서 여전히 소나무숲이 설레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초불밑에 앉아있던 리생원이 시름겹게 말하였다.

《듣고보니 왜놈들이 피를 물고 덤비는 판인데 꼭 무슨 일을 저지르고말것 같네.》

뢰헌의 낯빛도 흐린 하늘처럼 어두웠다.

《왜놈들이 처녀의 목숨을 저렇게 롱락하려드니 참으로 진퇴량난이올소이다. 소승의 생각에는 일시 물러서는척 해서라도 사람의 목숨부터 구해놓고보면 어떨가 하는것이옵니다.》

《물러서다니요? 어디로 물러선단 말입니까?》

벽에 기대앉았던 룡복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뢰헌을 바라보았다. 벽에 걸린 초불이 불안하게 흔들거리였다.

《왜놈들한테 조금이라도 약한 꼴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저놈들이 점점 목주를 물어뜯으려고 대들것이 뻔합니다.》

《그래도 하는 잡도리가 그저 으름장이나 놓다가 그만둘것 같지 않네. 더구나 대마도주가 죽었다고 하니 그 애비라는자가 더욱 피를 물고 덤빌것이 아닌가?》

리생원은 초불그림자가 흔들거리고있는 천정을 쳐다보며 탄식하였다.

《왜놈들이 겉으로는 교린관계를 그르칠가보아 조심하는척 해도 실지로는 저토록 포악하게 나오는것을 누가 알겠나? 조정이 이것을 알아서 꾸짖는 서계라도 한장 띄워보낸다면 이 어려운 고비를 한결 헐하게 헤쳐보련만… 그 누가 먼 바다건너 왜도적의 소굴에 들어와 홀로 겪는 이 가슴타는 사정을 알아주겠나.…》

리생원의 가슴을 찢는듯 한 탄식을 듣고있는 룡복의 가슴속에서는 격분이 끓어올랐다.

나라의 섬을 지키려고 먼 이역에 나와서 뜻밖에 겪게 되는 이 곤경을 알아줄 사람이 없고 도와줄 사람이 없고 동정해줄 사람이 없는것이 더없이 가슴아프고 서글픈 일이였다.

어둔이가 숨지면서 《이 나라에는 어째 주인이 없느냐.》 하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어째서 주인이 없는가? 어째서 이럴 때 우리를 부축해줄만 한 품이 없는가? 나라도 있고 겨레도 있고 량반관리도 있고 임금도 뚜렷이 있건만 어째서 섬을 지켜주고 우리를 지켜주고 어순이를 지켜줄 품은 없는가?… 어순이를 지켜줄 품은 어째 없는가?

룡복은 찾을수 없는 이 물음이 너무도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룡복형님, 별수 없소. 내 말대로 하우.》

창문쪽에 앉아있던 류일천이가 시꺼먼 눈섭을 푸들푸들 떨며 불쑥 말을 꺼냈다.

《원쑤들이 대마도에 어순이를 실어오는것을 포구에 나가 지키고있다가 빼앗아 싣고 도망치면 그만 아니우? 오늘 가보니 배사공들도 다 무사하우. 아무때나 떠날수가 있소. 우리가 뭐 진짜 감세장도 아닌데 떠나가버린다고 큰일날것이 있소?》

룡복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진짜 감세장이 아닌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정당당히 감세장으로 처신하여 나라의 존엄에는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하여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떠나가버리면 울릉도일도 허사로 될뿐이니라 애써 지켜온 나라의 존엄까지 왜놈들앞에서 허물어버리게 된다. 나라는 비록 우리를 돌보지 않지만 우리는 그 나라를 배반할수 없는 사람들이다!

안된다. 도망칠데도 물러설데도 없다.

만일 어순이를 구하려고 물러선다면 어순이자신이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쏴아―쏴―

모질게 태질하며 울부짖는 바람소리는 여전히 세차게 들려왔다.

룡복은 벽에 머리를 기댄채 두눈을 감았다.

(아, 어순이!)

별안간 벌겋게 단 쇠덩이가 피를 태우며 가슴속으로 뒹굴며 지나가는듯 하였다.

멀리 서남쪽 어순이가 있는 그곳에서부터 련 사흘째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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