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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룡복의 일행은 그날 저녁에 오끼시마포구에 배를 대였다.
포구를 지키는 왜인들에게 조선에서 울릉도감세장일행이 왔다는것을 알려달라고 부탁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주라는자가 관리 몇명을 데리고 포구에 나타났다.
계유년에 왔을 때 형구를 벌려놓고 룡복이와 어둔이를 심문한적이 있는 그 도주였다.
그자는 안룡복의 얼굴을 알아보고 매우 의아해하면서 상전인 호끼주태수에게 알리겠으니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고는 급히 관사로 돌아가버리였다.
배에서 묵으면서 이틀을 기다렸으나 아무 소식도 없었다. 왜놈들이 또 무슨 간사한짓을 꾸민다는 짐작이 든 룡복은 즉시 돛을 올리고 호끼주로 향하였다.
돗도리성에서 얼마 멀지 않은 어느 포구에 배를 대이자 룡복은 포구를 지키는 왜인에게 조선에서 울릉우산량도감세장이 왔다는것을 태수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왜인들은 호기심이 어린 눈길로 조선에서 온 관리들과 배를 살펴보며 저희들끼리 한동안 수군거리더니 곧 사람을 태수에게 띄워보내였다. 한낮이 지나서야 호끼주태수가 보낸 봉행 두사람과 왜인 십여명이 포구로 나와서 안룡복의 일행을 맞이하였다.
이미 오끼시마도주로부터 조선에서 울릉우산량도감세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일행 셋을 거느리고 왔는데 감세장은 계유년에 왔다간 그 조선어부가 틀림없다는 련락을 받은 호끼주태수 마쯔다이라 신따로는 안룡복이가 다시 왔다는것을 알고 속으로 매우 놀랐다.
울릉도에 갔던 쯔시마배를 뒤쫓아왔다는것을 보면 울릉도일때문에 찾아온것이 분명하였다. 그렇다면 혹시 막부의 서계와 관련한 지난일을 따지러 온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건에는 그도 관련되여있기때문에 어지간히 불안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도 어부에 지나지 않던 안룡복이가 과연 그사이에 감세장이 되였을가 하는 의혹이 더 컸다.
물론 조선관리제도의 구체적실정은 그도 잘 모른다. 그저 조선의 관리는 대개 과거에 급제한 량반들이 맡아한다는 정도였다. 그 옅은 지식으로 재여보아도 한갖 어부였던 사람이 관리로 되였다는것이 믿기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만나보면 다 밝혀질것이였기에 마쯔다이라는 우선 관리접대의 례절에 맞게 그들을 맞아들이라고 분부를 내렸다.
며칠후 왜관리들의 안내를 받으며 안룡복의 일행은 돗도리성으로 향하였다.
룡복은 태수가 보낸 비단차일을 드리운 가마를 타고 류일천이와 리생원과 뢰헌은 각기 안장이 화려한 말을 탔다.
감세장의 비장인 류일천은 긴 장대우에 일행의 위풍을 자랑하듯이 돛대우에 달았던 기발을 높이 매달아들고 가마옆에 붙어서 걷고 록사인 리생원과 장로승격인 뢰헌은 가마뒤를 따랐다.
궁싯궁싯 흔들거리는 가마안에 거북하게 앉은 룡복은 차일을 걷어올리고 밖을 내다보았다. 가마는 넓게 펼쳐진 들판을 가로질러가고있었다. 아직 갈지 않은 넓은 논밭이 내다보이였다. 묵은 벼그루가 그대로 있는 논밭가운데서 농부인듯 한 수십명의 왜인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것이 보이였다. 쿵창쿵창 북과 징소리도 들리였다.
눈여겨 살펴보니 벼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가운데 세워놓고 홰불을 들고 북을 치면서 왜인들이 춤을 추고있었다. 희한한 광경이였다. 룡복은 가마채를 두드리며 천천히 가자고 하였다.
그러자 안내를 맡았던 왜인관리가 급히 달려와서 무슨 일인가고 물었다.
《저것이 무슨 놀음인지 좀 보고 가려고 그러는데 어떤가?》
《아, 그렇소이까?》
왜인관리는 허리를 갑싹거리며 흥미있다는듯이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저것은 무시오꾸리(벌레쫓기)를 하는 농부들이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그해에 벼에 벌레가 성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제사를 지내고 저 벼짚허수아비에게 해충을 잡아넣은 광주리를 채워서 멀리 강에 내다버리지요. 이제 저 농부들이 모두 논밭을 발로 짓밟으며 가다가 마을끝에 있는 강에다 발에 묻은 잡스러운것과 벼짚허수아비를 다 던져버리고 돌아온답니다. 그러면 그해 병해충이 없어진다고 하옵니다.》
룡복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뜻을 짐작할만 한 놀이였다. 우리 나라 농부들도 립춘날이면 저 비슷한 놀이를 하는 곳이 더러 있는것이였다.
《우리 호끼주땅에서는 저것을 〈사네모리오꾸리〉라고들 한답니다.》
《왜 그렇게들 부르는가?》
《옛날에 사네모리라는 사람이 벼그루에 걸려 넘어져서 적의 총에 맞아 죽었는데 그 원혼이 벌레가 되여 벼를 해친다는 말이 있지요. 그래서 여기서는 벌레쫓기를 〈사네모리오꾸리〉라고 부르옵니다.》
잠시 멈춰섰던 가마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논에서 떠들던 왜인들이 북과 징을 울리며 떼를 지어 가는것이 보이였다. 벌레를 쫓으면서 마을 한끝에 있는 강쪽으로 몰려가는 모양이였다.
가마는 어느덧 성안 저자거리로 들어섰다. 알쑹달쑹한 옷을 입은 녀인들이 문발을 걷어올리고 창문으로 일행을 내다보며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는것이 보이였다.
이발을 까맣게 물들이고 길옆에 나앉아 술이나 차를 팔고있는 녀인들, 천수관음상을 앉혀놓고 경쇠를 치며 시주를 청하는 중들, 놀이감연을 사려고 큰 문어를 그려붙인 길옆 점포앞에 몰려서있는 아이들… 저네들은 지금 우리가 무엇때문에 찾아왔는지 모를것이고 저희족속들이 흑심을 품고 남의 나라 섬에 기여들어 불을 지르고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략탈한 사실이 있었다는것도 알지 못할것이다. 그저 례절이 높은 이웃 나라 사람들이 왔다고 하니 호기심에 넘쳐서 저렇듯 모여들어 바라보며 떠들고있는것이다. 이 왜땅에도 우마무라와 같은 순박한 사람들이 수많이 살고있으련만 어째서 우리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안고 이 땅으로 찾아오지 못했는가, 어째서 조선사람들이 오랜 옛적부터 왜땅을 아니꼽게 눈아래로 굽어보면서 지내게 되였는가를 그들도 스스로 깨달을 날이 있을것이다.
룡복의 일행은 왜관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전념사》라는 절간에 려장을 풀고 그날밤을 쉰 다음 왜관사로 안내되여갔다. 길안내를 맡은 봉행 두사람이 일행을 례절에 어긋남이 없이 안내하느라고 분주히 돌아치고있었다.
가마에서 내린 룡복은 일행과 함께 기둥마다 붉은 칠을 한 대문간을 지나 왜관사 안뜰에 들어섰다. 나지막한 대청마루우에 호끼주태수 마쯔다이라 신따로가 수놓은 삼층비단방석을 깔고 앉아있고 그앞으로 여러 관리들이 귀빈을 접대하는 례의대로 주런이 벌려서있는것이 보이였다.
룡복은 푸른 철닉자락을 펄펄 날리며 성큼성큼 안뜰을 지나 대청마루에 올라섰다.
태수와 장로는 천천히 일어서며 일행을 맞이하였다.
정해진 격식과 례절에 따라 인사를 마치고나자 태수는 앞에 벌려서있던 관리들을 다 물러가게 한 다음 장로와 함께 안룡복의 일행을 안으로 안내하였다. 누비돗자리를 깐 아늑한 방이였다. 룡복은 태수와 마주앉고 량옆에 록사와 장로승이 앉았다.
보기좋은 검은 갓 양태아래서 지혜롭게 번쩍거리는 침착한 눈매와 바다바람에 그슬린 둥실한 얼굴, 푸른 관복자락을 뒤로 갈라젖히고 비단방석우에 틀지게 앉은 룡복의 모습에서는 당장 벼락이 떨어진대도 끄떡하지 않을듯 한 무게와 담력이 느껴지였다.
마쯔다이라는 두눈을 간사하게 깜박거리면서 룡복을 마주보았다.
《감세장대인이 뜻밖에도 구면이여서 참말 반갑기 그지없소이다.》
《구면이기는 피차에 같소. 그런데 그사이에 태수어른은 퍼그나 늙으셨소그려.》
룡복은 빙그레 웃었다.
《허허… 세월이 류수라더니 참말 그렇소이다. 그사이에 감세장대인께서 중한 관직까지 맡은 귀인이 되여 나타났으니 참말 놀랍소이다.》
태수가 감세장이라는 관직을 매우 의심쩍어한다는것을 눈치챈 룡복은 조금도 낯빛을 달리하지 않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되였소. 내가 이미 울릉도일에 관계한바 있다고 하여 울릉, 우산 두 섬의 세금을 감독할 소임을 맡기기에 감히 사양하지 못하였소. 더구나 지난 여러해동안 섬을 잘 관리하지 못하여 섬에 사는 사람들이 나라에 바쳐야 할 세금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본의 여러 주들에서 고기를 잡아가는데 대해서도 세금을 징수하지 못하였기에 나라에서 이런 조처를 하기에 이른줄로 압니다.》
《아, 그렇소이까.…》
마쯔다이라는 그럼직해하면서도 아직 아주 믿는 기색은 아니였다. 룡복은 태수가 믿어의심치 않도록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태수어른은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우리 어장에 와서 고기를 잡는 일본어부들에 대하여 세금을 받는 규정이 뚜렷이 있소. 우리 나라 남해어장에 와서 고기를 잡는 쯔시마어부들의 경우에는 대선 한척에 대해서 납세량은 200미이고 중선은 150미, 소선은 100미로 한정되여있소. 그것도 반드시 도주의 문인(증명서)을 가지고오는 어부에 대해서만 고기잡이를 허락할뿐이지요. 나는 장차 울릉도, 우산도에 대해서도 나라에서 정한 이 규정대로 할 생각이니 그리 알아주시기를 바라오.》
룡복은 태수의 낯빛이 저으기 불그레해지는것을 살펴보고나서 말을 이었다.
《이전처럼 허락도 없이 무난히 출입하여 고기를 잡거나 나무를 베여가는 일이 있으면 가차없이 도적으로 처리할것이고 또 승인하지 않은 곳으로 횡행하거나 무기를 가진자와 납세하지 않는자는 규정에 따라 문인이 있건없건 다 도적으로 론단하여 처리할 생각이요.》
룡복의 얼굴에서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풍기였다.
마쯔다이라는 아무말없이 룡복의 낯빛만 살피고있었다. 감세장의 직분을 못미더워하던 기색이 덜리운 대신 상대를 은근히 조심히 대하는 눈치였다.
룡복은 천천히 자리를 고쳐앉으며 울릉도와 우산도에 왜선이 또 들어오기때문에 부득이 국경을 넘어 쫓아오게 된 경위를 밝히고 울릉도에 일본어부들의 출입을 금지시키겠다는 막부의 서계까지 이미 받아갔는데 이번 사실은 대체 어찌된 일인가를 따지였다.
《그때 태수어른께서도 만약시 일본사람이 울릉도와 우산도에 다시 발길을 들여놓을 경우에는 엄중히 다스리겠다고 철석같이 언약하지 않으셨소? 그런데 말과 행동이 이같이 다르고서야 어찌 두 나라사이의 교린관계에 대하여 말할수 있겠소.》
《다 지당한 말씀이요, 하지만…》
마쯔다이라는 간사하게 웃으며 머리를 살레살레 저었다.
《후에 알아보니 그때 우리 어부들이 귀국의 울릉도에 간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 지경인 죽도에 가서 고기를 잡았다고 하였소이다. 그러니 막부의 서계를 받도록 주선해준 본관만 난처하게 되고말았소이다.》
(흥, 이 간사한놈이 쯔시마 왜놈들과 꼭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룡복은 고개를 쳐들고 쓰거운 웃음을 껄껄 웃었다.
《태수어른은 선견지명이 있는분인줄 알았는데 쯔시마도주와 같은 그런 간악한 도적의 무리와 손을 잡고있으니 매우 유감스럽게 여기는바이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요?》
《쯔시마도주는 오래전부터 울릉도를 차지해보려고 간악한 일을 꾸며오던자로서 년전에 우리가 받아가지고 가던 막부의 서계를 빼앗고 사람까지 잡아가두는 무도한짓을 저질렀소. 그런자와 손을 잡고있으니 우리도 달리 대할수가 없다는 말씀이요.》
《아니, 막부의 서계에 감히 손을 대다니? 그게 사실의 말씀이요?》
마쯔다이라는 그때 안룡복이와 박어둔이를 호송하던 관리와 사공들의 말을 듣고 나가사끼에서 두사람이 서계를 빼앗기고 체포된 사실을 이미 알았으나 처음 듣는듯이 수선을 떨었다.
《사실이지요. 쯔시마도주는 나가사끼도주와 공모하여 그런짓을 꾸미였소. 뿐만아니라 죽도와 울릉도가 서로 다른 섬인듯이 우리 나라의 조정까지 속여서 섬을 차지해보려고 별짓을 다하고있소.》
룡복의 옆에 자리를 잡고앉아있던 리생원이 태수의 간사한 낯짝을 마뜩지 않게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감세장을 따라온 일개 록사에 지나지 않으나 울릉도의 연혁을 알고있으니 태수에게 대강 알려주지 않을수 없소. 울릉도가 우리 나라 섬이라는 고금의 력사기록을 새삼스럽게 다 렬거할것은 없고 다만 오래전에 만든 우리 나라의 지도인 〈운천지도〉나 〈여지도〉같은것만 보아도 울릉, 우산 두 섬이 뚜렷이 표시되여있다는것을 말하고싶소. 막부에서도 인정하고있는 이 사실을 무시하고 지방번주들이 제멋대로 〈죽도〉니 〈송도〉니 하는 이름을 지어내여 섬을 저의 차지로 만들어보려고 하니 어찌 가소롭지 않겠소.》
호끼주태수와 장로승은 리생원쪽을 흘끔흘끔 바라볼뿐 아무 대답도 못하였다.
《소승도 말씀 좀 합시다.》
이번에는 뢰헌이 장삼소매속에 가리웠던 큼직한 손을 마주잡고 한걸음 나앉았다.
《백제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여온지 근 천년을 헤아리지만 이 나라에서는 불가의 법도를 중히 여길 대신 도리여 부처의 존엄을 깨뜨리고 부처를 욕보이기를 밥먹듯 하고있으니 이것은 어떻다고 말해야 하겠소?》
《그럴리가 있겠소이까?》
장로승이 얼굴을 붉히며 목청을 돋구었다.
《귀국에서야말로 부처를 천시하여 불사와 승려들을 산곡벽지로 내쫓고있지만 우리는 부처를 공경하여…》
《하하하…》
뢰헌이 커다란 몸집을 들썩거리며 웃었다.
《부처를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남의 나라 지경에 들어와서 불탑밑을 파고 부처를 도적질해간단 말씀인가요? 물론 이 나라에서 부처를 공경하든 안하든 그것은 우리가 알바 아니지만 남의 나라 지경에 들어와 부처까지 훔쳐가는것을 보고만 있을수 없소. 장로승도 가사를 멘 사람으로서 어찌 이것을 보고만 있겠소.》
머리털 한오리 없는 장로승의 알머리가 불그레해졌다.
《그럴리가 없소이다. 혹시 무지한자들이 어떤 불칙한짓을 했는지는 모르오나 그것은 다 무식한…》
《구차스러운 변명은 그만들 하시오.》
룡복은 더는 참고 들을수가 없어서 장로의 말허리를 꺾으며 쏘아붙이였다.
《년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일본배가 울릉도에 들어온것은 어부들이 무식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당신네들이 울릉도를 차지해보려고 미리부터 꾸며오는 일이라는것을 속일수가 없소.》
마쯔다이라는 송곳방석에 앉은 사람처럼 저으기 안절부절하였다.
《그것은 지나치게 하시는 말씀이요. 미리 꾸며오는 일이라니 그럴리가 있겠소이까…》
《나는 공식좌석에서 한 나라의 관리로서 근거없는 말을 하지 않소. 이번 배에 요시라라고 불리우는자가 타고있었는데 그자는 내가 계유년 봄에 우리 나라 경상도 산중에서 붙잡았던 쯔시마도적들의 두목이였소. 그자의 졸개들이 이번에 울릉도에서 민가를 불지르고 금부처 한쌍을 파가지고 도망쳐왔소. 요시라의 말에 의하더라도 쯔시마도주는 울릉도를 차지하려고 오래전부터 일을 꾸며왔소. 그 금부처의 내막도 이미 여러십년전에 렴탐해간것이라는 확실한 근거가 있소.》
마쯔다이라는 얇은 눈가죽을 천천히 감았다 다시 뜨면서 생각을 굴리였다.
감세장을 따라온 록사나 중이라는 사람들까지 모두 말하는것으로 보나 인품으로 보나 만만치 않은자들이고 감세장도 그 위풍이며 언변의 솜씨가 누구도 따를수 없을 지경인데 이 사람들을 감히 허투로 대하다가는 뜻하지 않은 실수를 저지를수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때를 놓치기 전에 모든 죄를 쯔시마도주에게 넘겨씌우고 빨리 꼬리를 사리는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마쯔다이라는 얼굴에 매우 딱해하는듯 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감세장대인의 말씀을 듣고보니 과연 짐작되는바가 있소이다. 쯔시마 도주라는 사람이 원래 욕심이 지나쳐서 처신을 그르칠 때가 많소이다. 더구나 막부의 서계를 받들고 가는 이웃나라 사람들을 감히 범하였다니 국서의 존엄을 허물어뜨린 죄도 죄려니와 두 나라사이의 교린관계까지 흐리게 한것은 더욱 덮어둘수 없는 일인줄 압니다.》
《쯔시마도주가 저지른 죄는 이루 다 말할수가 없지만 한가지만 말할터이니 들어보시오.》
룡복은 쯔시마도주의 죄행을 낱낱이 알려주던 어순의 모습을 눈앞에 선히 그려보면서 준렬히 말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해마다 일본막부에 례물로 보내는 흰쌀은 15말이 한섬인데 도주는 7말을 한섬이라 속여 매 섬에서 8말씩 횡취하고 상목은 35자가 한필인데 20자를 한필이라 속여 매 필에서 15자씩 떼먹고 종이는 20장이 한권인데 그것을 세몫으로 갈라서 한몫만 막부에 보내고 나머지는 모두 저희가 차지하고있소. 이것은 누구도 모를것이오.》
마쯔다이라뿐아니라 장로도 이런 말은 처음 들었던지 매우 놀라는 표정들이였다.
《쯔시마도주가 이렇게 중간에서 간사한짓을 마음대로 하게 된것은 우리 나라가 일본과의 모든 거래를 쯔시마를 통해서만 하고있기때문에 그자가 우리 나라를 속이고 돌아앉아서는 다시 일본을 속이지만 누구도 그것을 알수 없게 된것이요.》
《지당한 말씀이요.》
태수가 고개를 조아리였다.
《그러니 이번에 우리가 직접 막부에 글을 올려 페단의 전말을 알리고 죄를 묻겠으니 태수어른은 우리가 올리는 글을 삼가 막부에 전달하여주기를 바라오.》
태수의 가느다란 눈에서는 한순간 걱정스러운 빛이 스쳐지나갔다.
막부장군이 조선 감세장의 글을 받으면 어떤 태도로 나오겠는지가 걱정된것이였다. 모름지기 막부장군은 막부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날벼락을 내려 애매한 모가지 몇개를 황천으로 날려보낼것이다.
마쯔다이라는 막부장군 도꾸가와 쯔나요시의 사람됨됨을 잘 알고있었다.
겉은 말할수 없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물이였다. 성을 내는 일은 거의 없고 언제나 표정은 부드러웠다. 정사도 얼굴표정처럼 그렇게 부드럽게 살핀다는 소문도 있었다.
새와 짐승을 애처롭게 여기라는 명령을 온 나라에 내린것이라든지 쉰줄에 잡힌 사나이가 철부지아이들처럼 강아지를 너무 즐기고 사랑하여서 《개나으리》라는 별명까지 얻은것만 보아도 이 소문이 뜬소문이 아니라는것은 알수 있다.
하지만 도꾸가와 쯔나요시가 허리에 찬 칼은 결코 장식물로만 쓰는것이 아니며 그가 자랑삼아 표방하는 《례문정치》의 비단옷자락밑에는 언제나 시퍼런 칼날이 숨겨져있다는것을 마쯔다이라는 모르지 않았다.
자기의 비위에 거슬리거나 막부의 체면을 세우는데 거칫거리는것은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고 처치해버릴만 한 《담력》은 얼마든지 가지고있는 위인이였다. 더구나 조선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범의 수염을 건드리는 일만큼이나 조심스럽게 대하는 도꾸가와 쯔나요시였다.
그러니 이번 울릉도의 일을 결코 풍파없이 넘길리 없다는것은 명백하였다. 자기에게 날아올 불똥을 미리 막기 위해서라도 우선 선선히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념려마시오. 감세장대인이 먼길을 쫓아와서 삼가 하시는 부탁을 어찌 마다할수가 있겠소이까.》
《그렇다면 이 글을 받아주기 바라오.》
룡복은 리생원이 미리 써가지고 온 막부에 보낼 글을 마쯔다이라에게 넘겨주었다.
마쯔다이라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그 글을 받아쥐면서 제법 천연스럽게 수선을 떨었다.
《이번일뿐이 아니라 년전에 막부의 서계를 받도록 주선한것도 본관이였다는것을 잊지 않으리라 믿소이다.》
룡복의 얼굴에는 쓰거운 웃음이 어리였다.
《막부의 서계를 받아준것은 누구의 사정을 보아서 그렇게 한것이 아니라 울릉도가 조선의 섬이라는것이 명백했던때문에 그렇게밖에 할수 없는 일이였다고 생각하오. 울릉, 우산 두 섬이 조선섬이라는것이 명백하지 않다면야 당신네 막부에서 그런 서계를 써주라고 할리가 만무하지 않았겠소?》
《하, 그야 그렇지만…》
태수는 무안을 당한 사람처럼 얼굴을 붉히며 눈길을 떨구었다.
《분명히 말하고싶은것은 년전에 받았던 막부의 서계를 이번에 도루 찾아가지고 가야 하겠다는것이요. 쯔시마도주가 지은 죄는 곧 일본이 조선에 진 죄로 되오. 그러니 빈말만 할것이 아니라 서계를 돌려주어야 속죄가 될것이오. 그리고 요시라의 졸개들이 울릉도에서 훔쳐온 대불사의 금부처 한쌍을 지체없이 돌려주어야겠소.》
룡복은 자리를 고쳐앉으며 숨쉴틈없이 들이대였다.
《그럴뿐아니라 이번에 울릉, 우산 두 섬에 불법침입했던자들을 이미 언약한대로 엄중히 처벌할것을 다짐해주셔야 하겠소. 특히 요시라와 같은 주모자들은 살려둘수 없는 강도의 무리들이니 마땅히 처형하여야 할것이요. 조선에 가서 죄를 지은자는 본국에 도망쳐와도 벌을 면할수 없다는것을 널리 보여주기 위해서도 태수어른이 이번 일을 잘 조처해주리라 믿소.》
《지당한 말씀이오만 그것은 본관의 힘만으로는 안될 일이니 막부에 품하고 의논을 붙여야 알겠소이다. 그러니 감세장대인은 얼마간 기다려야 할줄 아오.》
《그렇다면 기다리겠소. 하지만 우리의 요구가 이루어지는데 따라 차후 할바를 정할터이니 그렇게 알아주시오.》
룡복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리생원과 뢰헌, 류일천이도 룡복을 따라 중간섬돌아래로 내려섰다. 태수는 관리들을 시켜 일행을 연회장으로 안내하려고 서둘렀으나 룡복은 태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나서 대답하였다.
《우리가 귀주에 대접받으러 온것이 아니라 나라의 중대한 일을 맡아가지고온 몸이니 일이 성사된 다음이라면 태수어른의 성의를 마다하지 않겠소만 오늘은 그만 돌아가겠소.》
일행은 왜인들의 당황해하는 눈길을 등뒤에 받으며 천천히 왜관사밖으로 나왔다.
관사안뜰과 담장밖에 무성히 우거진 사꾸라나무에서는 무너져내리듯 흰꽃이 흩날려 떨어지고있었다. 땅바닥에 눈처럼 허옇게 덮인 꽃잎에서는 눈물겹도록 처량한 빛이 흐르고있었다.
그 꽃잎을 밟으며 일행은 대문쪽으로 향하였다. 대문밖에서는 일행이 타고갈 가마와 말을 준비하느라고 왜인 여럿이 바삐 돌아치고있었다.
그들속에 요시라가 몸을 숨기고 끼여있는것을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요시라는 금방 안룡복이가 태수와 주고받은 말을 죄다 엿듣고 나오는 길이였다.
그의 두눈에서는 함정에 빠진 짐승처럼 시퍼런 불빛이 번뜩이고있었다. 자기에게 피할길 없는 죽음의 운명이 닥쳐오고있다는것을 깨달은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