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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바다 그 어디에서나 따뜻한 해빛이 차넘치고있었다. 안개끼는 날이 계속되는것이 보통인 울릉도의 봄철치고는 매우 보기드문 날씨였다. 들리는것은 오직 기슭에서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한가로이 날아예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뿐 한없이 조용하고 평화롭고 지어 한적하게까지 느껴지는 날이였다.

이날 섬 동북쪽 천부동근방과 서쪽 송곳산에서 거의 동시에 연기가 솟아올랐다. 시꺼먼 두줄기의 연기가 섬 량쪽에서 구렝이처럼 그물그물 치솟아올랐다.

그동안 따들인것들을 말리느라고 섬기슭에 하얗게 널려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손을 멈추고 불안한 눈길로 두줄기의 연기를 바라보며 술렁거리였다.

《도망쳐간 왜놈들이 하는짓이 틀림없네.》

《두놈이 량쪽에 갈려서 저짓을 하는 모양일세.》

《그런데 왜 저런 지랄을 부린단 말인가?》

《글쎄, 연기를 올리는것을 보면 분명 서로 무슨 련락을 하는 꼴인데 도깨비 쓸개속같은 그 내막이야 알수가 있나?》

룡복은 날랜 젊은이 대여섯씩 두패로 나뉘여서 연기가 오르는 곳으로 쫓아가보게 하였다. 그리고 물가에 모여서서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오늘은 바다에 나가거나 포구에서 멀리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할것을 당부한 후 초막으로 돌아왔다.

머리속에서는 각가지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들고일어났다. 숲속으로 도망친 왜놈들끼리 서로 무슨 연통을 하는것일가? 아니면 다른 곳에다 연통을 하는것일가?

이 근방에 저 연기가 보일만 한 곳에 있는 섬은 대섬과 관음섬뿐이였다. 그런데 그곳은 매생이 하나면 얼마든지 련락이 닿는 곳이니 거기에 연통하려는것은 아닐것이다.

좀 먼곳의 섬으로는 동남쪽 200리남짓한 곳에 우산도(독도)가 있다. 우산도는 개인날이면 여기서 건너다보인다고 한다. 그러니 우산도에서 저 연기를 볼수 있을것이다.

그러면 우산도에 왜놈들이 들어와있단 말인가?

룡복은 급히 쇠동이를 데리고 뒤산으로 올랐다. 산중턱쯤 올라가자 해빛을 받아 온통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드넓은 바다건너 먼 동남쪽 수평선가에 거뭇거뭇한것이 보이였다. 우산도였다.

우산도!

먼 옛날부터 울릉도와 이웃하여 백두산과 한지맥으로 잇닿아있어 동해 한끝까지 조선의 더운 피가 맥박쳐가게 하는 내 나라 섬!

룡복은 오래도록 우산도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지난해 여름에 아버지랑 김서방이랑 함께 나두 저 산에 가보았소.》

쇠동이가 말하였다.

《먼데서 보면 하나같아두 둘레가 한마장되나마나한 바위섬 두개가 나란히 솟아있소. 주변바다에는 전복, 성게, 다시마, 미역이 많구 한창철에는 낙지가 욱실거리구 기슭에서는 물개가 무리를 지어 살고있소. 온통 바위뿐이여서 발붙일 곳이 없지만 두 섬사이에 200평 잘되는 평평한 자갈밭이 있어서 거기다 초막을 치구 한달가량 묵어있었소.》

《그때는 왜놈들이 들어오지 않더냐?》

《자주 와서 배를 대는 모양 같았소. 그때도 왜놈의 배 한척이 와서 배를 대자구 하기에 우리가 못 댄다고 하니까 그놈들이 우산도를 가리키면서 하는 수작이 〈마주서마. 마주서마.〉 자꾸 이런단 말이우. 〈야, 이놈들아. 네놈들과 누가 마주서겠다느냐? 당장 물러가라〉 하고 호통을 치니 이번에는 울릉도쪽을 가리키면서 〈다가서마, 다가서마〉 이런단 말이우. 별 더러운 놈들이… 마주서기는 누구와 마주서고 다가서기는 어디루 다가선단 말이우? 우리가 사생결단을 하구 막아나서자 놈들은 할수 없는지 꽁무니를 빼지 않겠소.》

룡복은 쇠동이가 하는 말이 우스워서 빙그레 웃었다.

《그놈들이 〈마주서마〉라구 한것은 왜말로 〈마쯔시마〉라고 한것이다. 우리 말로는 〈송도〉라는 뜻이다. 그리구 〈다가서마〉라고 한것은 왜말로 〈다께시마〉라는건데 〈죽도〉라는 뜻이다.》

《아니, 그게 정말이우! 그놈들이 왜 남의 나라 섬을 제멋대로 그렇게 부르우?》

《그놈들이 지금 그 이름으로 우리 나라 조정까지 속여서 섬을 저희 차지로 만들려구 한단다.》

《그래요? 도적놈들같으니…》

룡복은 산을 내리면서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산도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엄연히 우리 땅인 저 외로운 섬에까지 왜놈들이 드나들게 되고 울릉도에 기여드는 왜놈들은 저 섬을 징검돌로 삼고있는것이다.

한낮이 지나자 두곳에서 치솟던 연기가 거의 동시에 서서히 꺼지였다.

불안에 싸여 술렁거리던 사람들이 얼마간 마음이 풀려서 점심까지 대충 치르고났을 때 연기가 피여오르는 곳으로 쫓아갔던 젊은이들이 돌아왔다.

두곳에서 다 불놓은 놈들은 볼수가 없었지만 크게 번져 온 섬을 태워버릴번 한 불을 때마침 끄고 왔다고 하였다.

천만다행이였다. 하지만 이제 무슨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은 더욱 뚜렷해졌다.

룡복은 쇠동이와 함께 젊은이 셋을 뒤산에 올려보내여 바다와 포구주변을 살피며 망을 보게 하였다.

아니나다를가 해질녘에 쇠동이가 《왜놈의 배다!》 하고 소리를 지르며 포구로 돌처럼 굴러내려왔다. 멀리 대섬뒤쪽으로 흰 돛을 올린 큰 왜선 한척이 떠들어오고있었다.

사람들은 물가에 쓸어나와 포구로 들어서는 왜선을 지켜보고있었다.

멀리 배우에서 검은 옷을 입은 왜놈들이 얼른거리는것이 보이였다.

왜선이 포구로 들어와 멈춰서자 룡복은 류일천이와 함께 배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리생원과 뢰헌을 비롯한 숱한 배사람들과 섬사람들이 그들의 등뒤에 성벽처럼 둘러서서 왜놈들을 쏘아보고있었다.

《나는 이 섬의 수포장(포구를 지키는 사람)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남의 나라 포구에 마음대로 들어오는가?》

룡복은 왜말로 엄하게 물었다. 감히 대답하는 놈이 없었다.

《너희들이 이 섬이 조선의 지경인줄을 알고있을터인데 무슨 심사로 함부로 남의 나라 지경을 침범해들어오는가?》

거듭 호령을 치자 눈찌가 사나와보이는 왜놈이 배전에 나타났다.

《우리가 해마다 여기 와서 고기도 잡고 나무도 베여가는데 갑자기 지경은 무슨 지경이란 말인가? 그런것을 모른다!》

《뭣이라구? 네놈들이 남의 나라 섬에 몰래 들어와 도적질을 한 지나간 일도 용서할수 없지만 다시 오지 않겠다 하고도 또 침범해들어왔으니 이번에는 용서할수가 없다.

두말말고 모두 내려서 우리 나라 법대로 오라를 받아라!》

안룡복이와 류일천이가 정말 잡아묶을듯 한 기세를 보이자 왜놈들은 다소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이놈들! 당장 내려오지 못하겠느냐?》

류일천이가 나무몽둥이로 배전을 쾅쾅 두드리며 호통을 쳤다.

《웬놈이 배를 들부시는가?》

우악스럽게 생긴 왜놈 하나가 배전으로 나서며 살기띤 눈알을 부라리였다.

《내가 그랬다. 이놈아, 냉큼 내려오지 못하겠느냐?》

시꺼먼 눈섭을 푸들푸들 떨며 마주 소리를 지르던 류일천은 흠칫 놀라서 룡복이쪽을 돌아다보았다. 백운산왜도적 두목 요시라를 알아본것이였다.

《룡복형님, 저놈이 그 두목놈이요.》

류일천이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에 룡복이와 리생원도 그리고 배우에 서있던 요시라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요시라 이놈!》

류일천이가 몽둥이로 다시 배전을 쾅쾅 울리였다.

《네놈을 오늘 잘 만났다. 냉큼 내려와 오라를 받아라!》

지렁이같은 칼자리가 가로 건너간 요시라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쳐지나갔다. 안룡복이를 알아본 순간에 벌써 일이 심상치 않게 번져질것을 눈치챈 요시라는 졸개들에게 어서 떠나자는 뜻으로 눈짓을 한후 구구히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아, 이러지들 마시오. 사실은 우리가 여기로 오려고 한것이 아니고 저… 송도(독도)에 와서 고기를 잡다가 그만 길을 잘못 들어서 이렇게 되였으니 곧 가겠소.》

《아무데도 못 간다!》

룡복이가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내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네놈이 말하는 송도란 곧 우리 나라 우산도(독도)인데 네놈들이 감히 그 섬에 들어간단 말이냐? 저 두목놈을 당장 잡아내려서 묶어라!》

사람들이 와―소리를 지르며 다가들자 배가 흠씰흠씰 기슭에서 멀어지면서 배머리를 밖으로 돌리기 시작하였다.

《저놈들이 도망친다!》

사람들이 발을 구르고 팔을 내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이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수 없는 매생이 하나가 멀어져가는 왜선을 향해 급히 다가가고있었다.

두 사나이가 타고있었다.

《가시라사마!(두목님) 우리를 살려주시오―》

매생이에 탄 두사나이가 분명한 왜말로 소리를 질렀다.

매생이가 왜선에 다가붙자 왜선에서는 긴 삿대를 내려보내였다. 두 왜놈은 그 삿대를 잡고 순식간에 큰 배에 올라갔다. 앞서서 올라가는자의 등에서 칡으로 묶어서 걸머진 자그마한 독 한개가 번쩍거리였다.

《저놈들이 금부처가 든 독을 가지고 가는구나!》

뢰헌이 발을 구르며 다급하게 소리질렀다.

《저놈들을 그대로 보내다니… 아이구, 이런 복통이 터질노릇이 어디 있나.》

사람들이 모두 안타깝게 발을 구르며 아우성을 질렀다.

도망치는 왜선을 지켜보고있는 룡복의 눈빛은 무섭게 번쩍이고있었다. 리생원이 뢰헌과 함께 허둥지둥 다가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 이런 통분한 노릇이 어디 있나? 눈을 뻔히 뜨고 도적을 놓아보내다니…》

룡복은 사람들쪽으로 돌아섰다.

《제가 전부터 해오던 생각이 있으니 모두들 좀 들어주시오.》

섬사람들과 사공들이 모두 가까이 모여왔다.

《우리가 저 왜놈들을 그냥 돌려보내면 선조들앞에 큰 죄를 짓는것으로 됩니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저놈들의 성화를 받으며 살겠습니까. 이제 더는 그렇게 살수가 없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왜땅으로 쫓아가서 다시는 기여들지 못하게 해놓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잠시 술렁거리였다. 왜선을 그냥 놓아버리기는 아쉬운 마음들이였지만 누구도 왜땅으로 쫓아갈 엄두까지는 내지 못하고있는것이였다.

《조금도 걱정할것이 없습니다. 년전에 제가 왜땅에 갔던적이 있기에 왜놈들의 간사한짓을 낱낱이 알고있습니다. 그때 왜땅의 여러 태수들을 만나서 다시는 울릉도에 배를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언약과 막부의 서계약속까지 받았는데 제놈들이 그 언약을 어기였으니 이번에는 더욱 당당히 맞설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럼직하네만…》

말수적은 문서방이 걱정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나라의 법을 어기고 함부로 지경을 넘어가면 반드시 후환이 있지 않겠나?》

《그럴테지요, 물론… 나라의 법을 어깁니다.…》

격해지는 흥분때문에 룡복의 목소리는 떨리였다.

《그렇다면 나라에서는 어째서 섬을 지켜주지 않습니까? 대답 좀 해보시우. 어째서 량반관리들은 섬의 일을 모르는체 합니까. 그렇다구 우리들까지 팔짱을 끼고 앉아있어야 하겠습니까? 섬에 피를 바치고 명줄을 건 우리들이 나서서 지키지 않으면 섬은 영영 왜놈들의 차지가 되고맙니다. 생각들 해보시우. 우리가 뭍에서 섬으로 들어온것이나 여러분들이 섬에서 사는것은 나라의 법을 어기는 일이 아닌가요?》

룡복은 이글이글 불타는듯 한 눈길로 섬사람들쪽을 둘러보았다.

《나라의 법은 비록 어기여도 섬에 뿌리내린 뜨거운 마음들을 끊을수 없기에 그 누가 무엇이라구 해도 우리는 섬을 떠나지 못하는것이거던요. 사람이 제 마음을 속이고는 못삽니다. 그러니 제 나라 섬을 지키려구 지경을 좀 넘어간단들 어떻단 말입니까. 그게 죄가 될수 있습니까!》

《옳은 말이네!》

리생원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백성들의 마음이 곧 법이지 다른것이 법이겠나? 헌데 내 생각에는 과연 자네나 내가 왜땅에 가서 그 흉악한 도적놈들을 눌러내겠는가 하는것이 미흡할세.》

《그건 념려마십시오. 년전에는 제가 그놈들의 내속을 잘 몰라서 속임수에 들었지만 이번에는 다 알고 가니 그런 념려는 없습니다. 그리고 왜놈들쪽에서는 이미 한 약속을 어긴데다가 막부의 서계에 손을 댄 잘못까지 있으니 경우를 따지고들면 빠져나갈 길이 없을것입니다.》

리생원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였다. 그옆에 서있던 뢰헌은 나직한 목소리로 리생원에게 말하였다.

《저 젊은이는 지략이 남다른데가 있소이다. 분명 승산이 있을듯 하고 금부처도 찾아올듯싶으니 돛을 올리고 따라나서는것이 마땅하리라 생각합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만 배주인이야 스님이 아니시오?》

뢰헌은 리생원의 말뜻을 알았다는듯이 배사공들과 함께 온 중들쪽을 돌아다보았다.

《여보게들, 나는 저 젊은이를 따라나서기로 마음을 정하였네. 그러니 그쪽에서들은 의향이 어떤가?》

《스님이 마음을 정했으면 그만이지 다른것이 있소이까.》

《우리 마음도 같소이다!》

사공들과 중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찬성하자 리생원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감동어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무리 어두운 세상이라두 정의라는것은 있는 법인데 그것을 외면하고 살수야 없지. 왜선을 쫓아나서는것은 천만번 마땅한 일일세!》

이리하여 왜선을 쫓아 왜땅으로 가는 일은 락착을 보았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이왕 나라일을 맡아나서는바에는 떳떳이 나서야 할것 같네. 왜놈들이 숙보지 못하게 룡복이 자네는 무슨 관직을 맡아나서는것이 좋겠고 일행이 모두 차림새도 바로하며 배도 잘 꾸며가지고 떠나는것이 마땅하리라고 생각하네.》

《옳소이다.》

뢰헌이 얼른 말을 받았다.

《아까도 이 사람이 수포장이라고 하니 왜놈들이 기가 한풀 꺾이는 꼴이였소이다.》

《룡복형님, 그것 참 그럴듯 하오. 저기 진향이가 보낸 관복도 있으니 안성맞춤이 아니요? 어서 관복을 입소.》

룡복은 성급히 구는 일천이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것은 아직 급하지 않으니 이제 때를 보아가며 의논하기로 하세. 제일 급한것은 떠날 준비를 하는것일세. 여보게 일천이, 식량과 물은 될수록 푼푼히 싣고 첫새벽에 돛을 올리기로 하세. 알겠나?》

《알았소,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 그건 념려마우.》

일천이는 사공들을 휘동해가지고 배를 매둔 바다가로 급히 내려갔다. 리생원과 뢰헌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려고 초막쪽으로 헤여져갔다.

섬기슭에는 어느덧 황혼이 깃들고있었다. 잠자리를 찾는 갈매기 몇마리가 머리우로 낮게 떠돌다가 사라졌다.

룡복은 사공들이 떠날 준비를 서두르고있는 바다쪽으로 발길을 옮겨짚었다. 그런데 갑자기 박충량이네 배군들이 든 초막쪽에서 《사람 살리우―》 하는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왜선을 타고 도망친 놈들이 왜도적이 확실하다는것을 제눈으로 본 사공들이 송서방에게 무슨 속심으로 왜놈을 배에 태우고 왔는가 따지고들다가 고분고분 숙어들지 않자 주먹을 안기기에 이른것이였다. 룡복은 급히 초막쪽으로 달려갔다.

사공들의 드센 주먹벼락을 맞은 송서방과 청지기녀석이 맨땅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있었다.

《허허, 내 사공 삼십년에 이런 더러운 일에 끼여보기는 처음일세…》

도사공이 더부룩한 채수염을 후들후들 떨며 거칠게 호랑이숨을 내쉬였다.

《이놈들아, 그래 우리 사공들을 대체 뭘루 알구 백주에 왜도적을 약초캐는 사람으로 둔갑을 시켜 배에 태운단 말이냐? 네놈들은 제 나라두 모르고 량심도 모르는 개돼지냐? 내 두번다시 네놈들의 배를 탈줄 아느냐.》

《옳소, 우리도 그만 내리겠소.》

《제길할것, 저런 놈들과 어울려다니다가는 역적이 되고말겠네. 저런 쓸개빠진 놈들을 여기다 내버려두고 모두들 뭍으로 나가세.》

《더러운 놈들, 부자놈의 대궁밥을 얻어먹으며 도가집강아지처럼 살아가는 천하에 치사한 놈들… 바다물에 처넣어버리세.》

사공들이 모두 주먹을 거머쥐고 일을 저지를듯이 다가들자 송서방은 매에게 쫓기는 까투리처럼 두무릎짬에 머리를 틀어박고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룡복이가 앞으로 나서자 송서방은 더욱 사색이 되여 뒤걸음을 쳤다.

《바른대로 말하우. 박충량의 허청간에서 도망쳤다던 저 왜놈들을 어디다 감추었다가 섬으로 끌고왔소?》

룡복이가 이렇게 따져묻자 송서방이 녹은 엿가락처럼 굽어들면서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여보게 안총각, 다 말하겠네. 우리야 박주부어른이 시키는대로 했을뿐이니… 제발 이러지들 말라구. 제발 이 늙은것을 좀 살려주게. 이런 법이 어디 있나?》

《글쎄 바른대루 말하우.》

《말하지.… 그날 밤 저 왜놈들이 허청간벽을 치고 나간것은 다 박주부가 꾸민 일이네. 태화강나루에다 미리 배까지 대여놓았다가 세놈을 해운포수포장 황서방한테 실어다 숨겼네. 달포가 지나서 두목놈은 대마도루 먼저 보내구 나머지 두놈은 이번에 섬으로 싣고왔네. 그건 저 청지기도 잘 아네.》

《이보라구, 그게 사실이우?》

사공들의 발길에 채워 이마가 퍼렇게 이물어터진 청지기녀석이 볼부은 소리로 대답하였다.

《모두 사실이오만 박주부어른이 시키는대로 심부름이나 했으니 나는 상관없소.》

《발명은 그만하우. 사람의 눈은 속일수 있어도 이 땅은 못속이오. 이 땅에 태를 묻고 태여난 사람으로서 제 나라 땅을 왜도적에게 내맡기려 한 그 죄는 천만대를 두고도 씻지 못하우.》

룡복은 빙 둘러선 사공들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우리는 아무래도 도망치는 왜놈들을 끝까지 쫓아가서 결판을 보아야겠소. 그러니 먼저 뭍으로 돌아들 가시우. 돌아가거든 다시는 박충량이 같은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시우. 그놈은 왜놈들이 제 나라 섬을 차지하건말건 자기 장사배만 불리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더러운 놈입니다.》

《옳소, 칠성판을 지면 졌지 그런 놈의 배는 다시는 타지 않을테요.》

사공들은 송서방을 흘겨보면서 저마다 걸직한 욕을 마구 퍼부었다.

룡복은 그들과 헤여져 포구로 내려왔다. 떠날 준비가 거의 되여가는듯 하였다.

늦은저녁을 지어먹고 떠날 준비를 다 끝내고나니 어느덧 별빛이 총총하던 먼 동쪽수평선어방이 희끄무레해지고있었다.

돛을 올릴 시각이 되여올무렵에 섬의 좌상로인인 최서방이 섬사람들과 함께 포구로 나왔다. 문서방과 쇠동이도 나오고 녀인들로는 쇠동이 어머니와 섬년이가 보이였다. 최서방이 큼직한 보꾸레미를 룡복에게 내밀었다.

《자, 섬에서만 나는 음식가지들이니 우리네 성의인줄 알구 받게.》

룡복은 꾸레미를 받았다.

《정말, 고맙습니다.》

《부디 몸조심하게.》

최서방은 룡복의 손을 굳게 잡고 흔들었다.

이때 쇠동이가 앞으로 불쑥 나섰다.

《룡복형님, 나두 가겠소. 데리구 가주오.》

괴나리보짐까지 등에 진것을 보니 벌써 떠날 준비를 다하고 나온 쇠동이였다. 쇠동이 어머니며 섬년이까지 따라나온것도 그때문인듯 하였다.

《섬을 위한 일인데 섬사람들이 나서야지 누가 나서겠나. 어서 데리고 가주게.》

문서방이 아들의 잔등을 밀어 룡복의 앞으로 내세웠다.

룡복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섬사람들의 마음이 가슴뜨겁게 헤아려졌던것이다.

그러나 쇠동이를 데리고 가서는 안되였다. 그사이에 왜놈들이 다시 기여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수 없는것이였다.

룡복은 쇠동이에게 타일렀다.

《가려는 네 마음이나 너를 보내는 섬사람들의 마음도 다 알만 하다. 하지만 왜놈들이 또 기여들수 있으니 너는 부득이 섬에 남아있어야 하겠다.》

《싫소. 난 떠나기루 맘먹었소.》

《내 말을 들어라. 너까지 가면 섬에는 늙은이와 녀자들뿐인데 너혼자서 열사람몫을 해야 할 형편이 아니냐? 왜놈들이 기여들면 이제는 그전처럼 숨지 말구 막아 싸우거라, 알겠니?》

쇠동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룡복의 말뜻이 리해되였던지 더는 고집을 쓰지 않았다.

《좌상로인님, 그럼 그동안 섬을 잘 지켜주십시오.》

《념려말게, 부디 몸조심하게.》

최서방은 뜨거운 부탁이 어린 눈길로 배에 오르는 사람들을 바라보고있었다.

《왜땅에 가서두 우리 섬사람들을 잊지 말게. 부디 몸조심들을 하게!》

룡복이도 배에 올랐다. 이윽고 배는 포구를 떠났다.

섬기슭에서 손을 저으며 오래도록 떠날줄 모르는 섬사람들이며 푸름푸름 밝아오는 동쪽하늘을 바라보는 룡복의 옷자락이 세차게 펄럭이고있었다.

 

그날 아침녘에 배는 우산도(독도)에 이르렀다. 온통 바위뿐인 그 섬뒤쪽에서 푸른 연기가 무럭무럭 피여오르고있었다. 온밤 도망치기에 바쁘던 왜놈들이 그 섬에 머물러있는것이 틀림없었다.

룡복은 배머리를 섬쪽으로 돌리고 급히 쫓아들어갔다. 때마침 펑퍼짐한 자갈밭에 가마를 걸고 한가하게 아침을 끓이고있던 왜놈들이 배가 쫓아온것을 보자 황급히 닻을 올리고 다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급해맞은 왜놈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이 자갈밭에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류일천이와 몇몇 젊은이들이 섬에 내려서 아직도 펄펄 끓고있는 질가마를 몽둥이로 산산이 부셔버린 후 왜놈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을 뒤져보았으나 울릉도에서 도적질한 독은 보이지 않았다. 도망치는 왜선을 쫓아 배는 다시 푸른 물결을 가르며 살같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배머리에 우뚝 서서 왜선을 쏘아보는 룡복의 옷자락이 거세게 퍼덕이고있었다.

산같은 파도가 배를 떠싣고 거세게 숨쉬며 뒤척이였다.

… 그렇게 하루낮. 하루밤을 달리고나니 동쪽에 자그마한 섬이 나타났다.

룡복이와 어둔이가 계유년 봄에 잠간 들렸던 오끼섬이였다. 울릉도에서 바람따라 돛을 올리고 달려오면 배는 해류에 밀려 자연히 이 섬으로 흘러오기마련인것이였다.

앞서달리던 왜선이 그 섬으로 들어서고있었다.

《저기 저 섬이 오끼시마라는 섬이우.》

룡복이가 섬을 가리키며 설명을 하자 사공들까지 모두 모여들었다.

《일본 호끼주에 속한셈인데 저 섬에서 한 200리 더 가면 호끼주땅이우. 거기 돗도리라는 고을에 태수가 있고 왜관사가 있소. 년전에 호끼주왜놈들을 만나보았는데 별로 대단한것은 없으나 그지없이 간사한 놈들이요. 그러니 모두 왜놈들앞에 조선사람이라는 떳떳한 마음으로 나서고 의관수습도 잘해야겠습니다.》

《옳은 말이네.》

리생원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러니 떠나기 전에도 말이 있었지만 떳떳한 관원행차를 꾸미고 나서야 왜놈들을 꺾어누를수가 있겠네.》

《소승의 생각에는 울릉도 수포장이라든가 감세장쯤 관직을 내대야 왜놈들이 가볍게 대해지 못할줄 압니다.》

《허허… 그럴듯 한 말씀이요.》

리생원이 껄껄 웃으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룡복이 이 사람, 어서 의관수습을 해야겠네.》

일천이가 급히 선창밑으로 들어가더니 진향이가 보낸 옷함을 들고 나왔다.

《자, 룡복형님, 이 옷을 입구 한번 감세장쯤 되여주오. 이 옷을 보낸 사람의 생각인즉 진정 이런 옷을 입을 사람은 형님뿐이라는것이 아니겠소? 또 우리들 생각도 그렇단 말이요. 노를 잡았으니 배군이지 쌍학흉배를 붙이고 금관조복을 입으면 삼정승이 할 일을 혼자서 할만 한 형님이 아니우?》

룡복은 난처한듯이 웃었다.

《그런 소리 말게. 나야 한뉘 배군이지 금관조복이 다 뭔가.》

리생원이 정색을 하며 한걸음 나앉았다.

《이 사람, 그런게 아닐세. 저 총각의 말이 뜻이 깊네. 이 나라 량반관원들이라는게 다 썩고 곯아빠져서 제 나라 섬이 남의 나라 롱락에 들어도 발벗고 나서는자가 하나도 없는 이때에 임자가 나라의 큰일을 한몸에 맡아나섰는데 정승이라면 정승이고 감세장이라면 감세장인것이지… 항차 사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일을 바로잡으려구 관복을 입는것인데 무엇을 주저할것이 있단 말인가?》

《옳은 말씀입니다.》

뢰헌도 진정을 담아 말하였다.

《나도 저 옷을 가지고 올 때는 미처 몰랐으나 우리 진향이가 생각도 깊구 사람도 제대로 본것 같소이다. 진정 관복을 입고 이번일을 맡아나설 사람은 안룡복이 저 사람이 아니면 다시 없을줄 압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 말이 옳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웅성거리였다.

일천이가 옷함을 앞에 내들며 졸랐다.

《자, 듣지 못했소? 내 혼자뜻이 아니란 말이우. 두말말구 입소.》

룡복은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었다.

계유년의 경험으로 보아도 간사한 왜놈들을 눌러놓는데는 관직을 내대고 나서는것이 나쁘지 않다는것은 명백하였다.

《좋습니다.》

룡복은 결연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잠시 관복을 입겠습니다.》

《허허… 아무렴, 그래야지. 그러니 이제는 모두들 저 사람의 분부를 깍듯이 받들어야 하겠네.》

리생원이 시름놓으며 믿음어린 눈길로 룡복을 바라보았다. 룡복은 옷함안에서 관복 두벌을 꺼내놓았다.

《나는 이제부터 이 옷을 입구 울릉, 우산 량도감세장이라 칭하고 나설 생각입니다. 그리고…》

룡복은 관복 한벌을 리생원의 앞에 내놓았다.

《생원님은 그 대삿갓대신 이 갓을 쓰고 이제부터 록사가 되면 좋을듯 합니다. 글을 잘하시니 말입니다.》

《허허… 록사라… 임자덕분에 이 리인성이가 늙마에 백면서생을 면해보네그려.》

리생원이 서글프게 웃었다.

《그리구 뢰헌스님은 그냥 그 차림으로 나섭시다. 왜놈들은 반드시 관청마다 장로승를 두어 정사를 돕게 하는데 우리도 스님 한분이 있어야 위풍이 뚜렷해질듯 합니다.》

뢰헌은 말없이 빙그레 웃는것으로 찬동을 표시하였다.

《그리구 일천이, 자네는 감세장의 비장노릇을 하게.》

류일천이는 어이없다는듯이 픽 웃었다.

《비장은 무슨 비장이요. 난 배군이 좋소.》

배우에 벌려앉아있던 사람들이 허리를 꺾으며 껄껄 웃었다.

《좋기야 정승 한자리 시키면 더 좋아하지 않으리… 저 총각이 힘만 센가 했더니 욕심도 하늘에 닿을 사람이야.》

《흥, 다른 욕심은 있어두 량반되고싶은 욕심은 정말 없소. 이에 신물이 나는 그 잘난 량반…》

웃음소리는 더 크게 터지였다.

《왜놈들을 눌러놓으려고 그러는것이니 두말말구 내 말을 따르게.》

룡복이가 먼저 머리태를 풀어헤치고 상투를 틀 잡도리를 하자 류일천이도 더는 군소리없이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룡복은 사람들이 관복차림을 했으니 배도 관원행차다운 모양을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원님, 이왕이면 배에다 기발 같은것이라도 써드리우고 나서야 될듯 합니다.》

《옳네, 그걸 미처 생각 못했군. <울릉우산량도감세장>이란 울릉도와 우산도(독도)의 세금과 조세를 관리하는 벼슬인데 중추원 종2품관인 동지사가 그 관직을 맡고있네. 그러니 기발에다 당당히 그렇게 쓰세나.》

잠시후 리생원은 천과 붓이 마련되자 소매를 걷어붙이고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조울량도감세장 신 안동지기》(조선의 울릉우산량도감세장인 신하 안동지일행) 그리고 기발 뒤면에는 《조선국 안동지 승선》(조선국의 안동지가 탄 배)라고 썼다. 또 그보다 좀 작은 기에는 《기선미견성도 우귀고향사농서》(선미에 서서 무성한 논벼를 보니 우리 역시 고향에 돌아가 농사지을 때를 생각하노라)라고 크게 써서 돛대우에 높이 걸게 하였다.

류일천이가 돛대우에서 기세좋게 펄펄 날리는 기를 한동안 올려다보다가 아무래도 알수 없는지 리생원에게 물었다.

《생원님, 저 작은 기에는 뭐라구 썼소이까?》

《허허… 그건 내가 생각나는대로 써본것인데 <선미에 서서 무성한 논벼를 보니 우리 역시 고향에 돌아가 농사지을 때를 생각하노라>, 이런 글이네. 말하자면 간특하고 무지한 족속들인지라 왜인들이 본의를 모르고 놀랠수 있으니 우리도 고향에 돌아가 농사지을 때를 생각한다는 문구를 내걸어서 그내들을 안심시키려는것일세.》

《정말 그럴듯 하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야 어디서 살건 다 어진 사람들이지요.》

《허허… 그렇지. 그런데 저 기발에 우리 일행의 위엄이 실려있고 우리 일행의 목적한바가 밝혀져있으니 함부로 다루지 않도록 마음을 쓰게.》

《예, 알겠소이다.》

류일천은 돛대우에서 펄펄 날리는 기발을 한번 더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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