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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되는 날 아침녘에 배는 울릉도에 닿았다. 사철푸른 나무가 많은데다가 새움이 틀것은 벌써 다 튼 때여서 섬은 초록빛으로 곱게 단장하고있었다. 세해만에 다시 보는 울릉도! 예나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답고 정다운 섬이였다.

룡복은 이름할수 없는 기쁨과 흥분으로 높뛰는 가슴을 눅잦히며 포구쪽으로 천천히 키를 돌리였다. 그런데 포구의 진잔한 물결우에 돛을 내린 시꺼먼 배 한척이 떠있었다.

(왜놈들의 배로구나!)

번개치듯 떠오르는 생각이였다. 그런데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배모양으로 미루어보아 왜놈들의 배는 아니였다.

전라도배군들이 더러 섬에 드나든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혹시 그 사람들일가?

사람들은 저으기 마음을 조이며 천천히 포구에 들어섰다.

정체모를 배우에서 흰옷 입은 사람 서넛이 다급히 뛰여다니는것이 보이였다. 그쪽에서도 섬에 낯선 배가 들어오는것을 보고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두 배사이가 가까와지자 룡복은 배전으로 나섰다.

《여보시우, 어디서 온 배요?》

룡복이가 소리를 지르자 저쪽 배에서 채수염이 더부룩한 사공이 바줄을 사리다말고 저 사람들에게 물어보라는듯이 선창 뒤곁에서 무엇인가 수군거리고있는 두 사나이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등을 돌리고 서있던 두 사나이가 배전으로 다가섰다. 한사람은 말쑥한 무명중치막에 검정갓을 썼고 다른 사람은 허드레옷에 베수건을 동이였는데 낯익은 얼굴들이였다. 갓 쓴 사나이는 힘깨나 쓰는 울산 박충량의 집 차지 송서방이고 베수건을 동인 사나이는 박충량의 집 청지기녀석이였던것이다.

(저자들이 무슨 일로 왔을가?)

매우 수상쩍은 생각이 들었다.

룡복이네가 뭍으로 내려서자 송서방이 먼저 아는체를 하며 다가왔다.

《동래 안총각일세그려. 아니, 힘장사총각도 오구. 생원님도 오시구.… 허허… 참 오래간만이옵니다. 그런데 안총각은 그때 울릉도 왔다가 왜땅구경에 옥구경까지 했다더니 무슨 배심으로 또 왔나?》

송서방이 주홍코를 실룩거리며 빈정거리는 투로 물었다.

《또 왔소. 그런데 박주부댁에서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 먼곳까지 왔소?》

《허허… 못 올데를 왔나? 돈벌이를 좀 해보려구 왔네.》

《그러시우? 그래 섬에 들어온지 며칠이나 되우?》

《한 열흘전에 배를 붙였네.》

《그동안 별일 없던가요?》

《뭐 별일 있을게 있나? 전복을 따구있네.》

《왜놈들의 배가 오지 않던가 말이우?》

《아니… 못 봤네.》

문초받는 사람처럼 부지런히 대답하던 송서방이 제딴에 기분이 상하였던지 갑자기 심청 비뚤어진 소리를 했다.

《흥, 임자가 뭐 이 섬의 주인이기라도 한가? 빈 집에 뛰여든 사람을 문초하듯 하네그려.》

《주인인가구요?》

룡복의 눈빛이 사납게 번뜩이였다.

《그래 그쪽에선 우리가 주인이 아닌줄 알았소?》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주렁주렁 모여들었다.

《조상대대로 우리 나라 사람이 살아온 섬인데 우리가 주인이 아니면 누가 주인이겠소?》

《흥, 그런 주인이라면 우리도 주인일세.》

《주인이라면 주인구실을 바로하우. 지금 왜놈들이 이 섬을 차지하려 하고있으니 우선 왜선이 들어오는것을 목숨걸고 막아야 할것이구 흔한것이 전복, 미역이라고 빈 집 물건 털어가듯이 하지 말고 아껴따야 할게 아니겠소?》

《허 그것 참, 알량한 시에미를 만났네. 남이야 아껴따든 몰아따든 그게 임자물건인가?》

《헤헤… 그러게 말이웨다.》

사람모자라는 청지기녀석이 송서방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목청을 돋구었다.

《이제 섬이 왜놈들의 차지가 되고보면 전복 한개 가져가기 힘들텐데 아끼구말구 할게 어디 있나 말이요?》

《아니? 이 섬이 왜놈들의 차지가 된다니… 그게 무슨 방정맞은 수작이요?》

옆에서 듣고있던 류일천이가 시꺼먼 눈섭을 푸들푸들 떨며 송서방과 청지기를 쏘아보았다.

《방정맞은 수작이 아니라 박주부어른이 우리를 보내면서 한 말인데 틀림이 없소. 그 어른이 그렇게 된다면 꼭 그리 되는거요.》

《그럼 울릉도가 왜놈의 차지가 된단 말이요? 이게 어디서 이따위 쓸개빠진 작자들이 굴러왔어?》

류일천의 눈자위가 허공에서 핑핑 돌아갔다.

《남은 왜놈들을 막자구 불원천리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왔는데 이제보니 네놈들은 불난 집에 도적들듯이 섬을 가죽채 몽땅 벗겨가자구 온 놈들이로구나!》

《저런 괘씸한 놈들…》

《저것들도 조선사람인가? 왜놈들과 한몽둥이에 쳐죽여야 할것들이야.》

《저것들을 섬에서 쫓아버리세!》

둘러서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자 송서방과 청지기녀석은 기가 꺾여서 슬금슬금 게걸음을 쳤다. 룡복은 겁에 질린 두사람의 얼굴을 쏘아보며 말하였다.

《주인구실을 해야 주인이지. 제 돈주머니 채울 생각만 해서는 이 섬에 붙어있지를 못하우. 섬에서 무사히 지내겠으면 내 말을 명심하우, 알겠소?》

송서방과 청지기녀석은 대답도 없이 저들의 초막쪽으로 황급히 가버리였다.

다른 사람들이 짐을 부리우는 사이에 룡복은 포구를 돌아보았다.

계유년 봄에 왔을 때 목서방네 배군들과 함께 지어놓았던 집 세채가운데서 두채는 아주 허물어져서 터만 남고 성한채로 남아있던 한채에는 송서방네가 먼저 들었기때문에 당장 사람이 거접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우선 허물어진 집터에 집 두채를 새로 세우기로 하였다.

한낮때가 거의 되여서 룡복은 리생원, 류일천이, 뢰헌들과 함께 고개너머에 있는 문서방네 집을 찾아떠났다. 무성한 동백나무숲속에서 《진―진―》하고 애절하게 우는 새소리가 들리였다. 울릉도에만 산다고 하는 동박새라는 새의 울음소리였다.

높은 돌담뒤에 묘하게 숨겨지은 세채의 너와집이 나타났다. 대나무삽짝을 열고 들어서니 문서방내외는 밭일을 하러 나가고 고뿔에 걸려 아래목에 누워있던 쇠동이가 반가와 허둥거리며 마주나왔다.

이제는 나이도 스물, 제법 끌끌한 총각이 되였다. 코밑에 수염터까지 거멓게 잡히고 몸집도 실하고 끼끗해졌다.

서로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고나자 쇠동이는 《어둔이형님은 안왔소?》 하고 물었다.

《…》

《벌써 울릉도를 잊어버렸다우?》

《이젠 영 못 온다.》

《아니, 그럼?》

《그때 왜놈들한테 끌려갔다가 끝내… 잘못되였다!》

룡복은 왜땅에 끌려가 겪은 일들을 대강 이야기하였다.

《그래, 그후에 왜놈들이 다시 오지는 않았니?》

눈물이 글썽하여 벽쪽으로 돌아서있던 쇠동이가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안 오긴 왜 안 오겠소. 그해에는 안 왔지만 그 이듬해부터 또 왔소. 금년에도 지금쯤 올 때가 되였소. 그놈들을 그저…》

쇠동이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동안 섬에 다른 일은 없었니?》

쇠동이는 팔소매로 눈물을 훔친 후 부리부리한 눈을 섬벅거리였다.

《룡복형님네가 왔다간 그 이듬해 가을에 관가에서 배 한척이 왔다갔소. 어떤 량반이 군사 십여명을 데리고와서 한 댓새 묵으며 섬을 샅샅이 돌아보지 않겠소. 우리는 수색을 왔는가 해서 모두 산에 올라가 숨어서 관원들이 하는 일을 내려다보았소. 그런데 사람이 사는 집들은 끝내 찾아내지 못한채 포구 뒤등에 밭을 일쿠더니 무엇인가 뿌려놓고 가지 않겠소. 싹이 난걸 보니 보리였소.》

그것은 조정의 지시에 따라 삼척첨사 장한상이 섬을 조사하고 간것을 말하는것이였다.

《그런데 요지음 이상한 일이 자주 생겨서 정말 불안하우.》

《무슨 일인데?》

《저 울산배가 닻을 내린 다음날인데 웬 사람 둘이 우리 집 주변을 빙빙 돌아보고 가지 않겠소. 나는 무슨 약초라도 찾아다니는 사람들인가 했소. 그런데 섬년의 말을 들으니 그 사람들이 천부동마을에도 나타나서 하는 일 없이 집주변을 돌아보고 가더라우. 우리야 남몰래 숨어사는 사람들인데 아무리 제 나라 사람들이라 해도 낯선 사람이 왔다간것이 꺼림직하더란 말이우.

그런데 바루 그제밤이였소. 자정도 훨씬 지난 뒤였는데 내가 볼일이 있어서 밖에 나가니 뒤울안 나무무지쪽에서 부시를 치는 소리가 달깍달깍 들리지 않겠수. 더럭 수상한 생각이 들어서 발볌발볌 다가가보니 어떤 시꺼먼 놈이 쭈그리고앉아서 정신없이 부시를 치는데 불빛이 벙긋벙긋할 때마다 드러나는 그 얼굴이 며칠전에 왔다간 바로 그놈이 틀림없더란 말이우. 당장 나무무지에 불이 달릴 판이라 나는 너무도 급해서 〈웬놈이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소. 그놈은 너무 놀라서 화닥닥 뛰여일어나다가 무엇에 걸채였는지 두어번 딩굴고나서 어둠속으로 달아났소. 밝은 다음에 가보니 나무무지밑에 기름먹인 삼거웃뭉치가 흩어져있고 그놈이 뒹굴던 자리에 이런 낯선 물건이 떨어져있었소.…》

쇠동이는 당반에 얹어두었던 하얀 펼부채를 꺼내보이였다. 룡복은 부채를 받아서 펴보았다. 상아를 정교하게 다듬어서 살을 댄 부채였다.

《아니, 이 부채가?》

리생원과 뢰헌이 놀라며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허허… 세상에 신기한 일도 다 있군.…》

리생원이 룡복의 손에서 부채를 받아쥐고 뢰헌에게 보이였다.

《송광사에서 스님이 내게 보여주던 그 왜아선이 바로 이것이 아니시우?》

《글쎄올시다, 소승도 그래서 놀랐소이다. 가만있자.…》

뢰헌은 옷고름을 끄르고 한참 부시럭거리더니 품속에서 기름종이에 싼 부채를 꺼내놓았다.

신통히도 꼭같이 생긴 부채였다.

리생원은 두손에 갈라쥐고 번갈아보더니 룡복에게 말하였다.

《이것 보게. 〈부상국이 밭의 냉이라면 울릉도는 물에 뜬 부평초라〉, 글귀조차 꼭 같네! 왜놈들이 품고다니는 아선이라 부르는 부채일세. 바로 이 부채가 뢰헌스님의 어머니를 죽인 왜놈이 가지고다니던것일세. 그러니 이것도 틀림없이 왜놈들이 떨군 물건일세.》

《아니, 그럼 우리 동네에다 불을 지르려던 그놈이 왜놈이였단 말이우?》

쇠동이는 눈이 둥그래졌다.

《오는양 없던 왜놈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단 말이우? 하늘에서 떨어졌겠소?》

룡복의 머리에는 벙긋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울릉도에 나타난 박충량의 배, 박충량의 집에서 도망쳤다던 왜도적,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격으로 뒤미처 벌어진 수상한 사건들… 그러면 박충량의 배를 타고온 사람들가운데 왜놈이 섞여있단 말인가? 아직 분명하지는 않으나 틀림없이 무슨 쪼간이 있었다.

저녁녘에 돌아온 문서방내외와 섬의 좌상로인인 최서방을 만나본 후 룡복은 포구로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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