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지막한 황령산 남쪽기슭.

파랗게 새싹이 내돋은 봄잔디를 어루만지는 해빛은 유난히도 따스하다. 떨기떨기 피여 하느적이는 연분홍진달래, 황금나리…

어디를 보나 봄꽃이 눈에 띄운다.

해묵은 잔디가 곱게 덮인 무덤우에도 봄빛은 서슴없이 깃들어 생명의 신비로운 꿈자리를 펴고있다.

하기야 봄은 그 무덤이 주검을 품어주는 구슬픈 흙무지라는것도, 그 둥싯한 봉분밑에 누가 주검이 되여 누워있는지도 알턱이 없을것이다. 봄은 봄대로 웃고있건만 이 세상에서 어떤 원통한 일들이 벌어지고있는지, 이 강산을 위해 누가 차거운 흙을 덮고 무덤속에 누워있는지 알턱이 없을것이다.

룡복은 봉분우에서 무심히 어리광치는 봄빛을 말없이 내려다보며 오래동안 서있었다. 그러다가 《어둔아!》하고 부르며 무덤앞에 주저앉아 부드러운 잔디를 쓸어만지였다.

그리워 찾아왔건만 얼굴 한번 볼수 없고 말 한마디 주고받을수 없는 친구, 좋은 말 궂은 말 가릴것없이 말끝마다 《육실할…》을 붙이던 그 정다운 목소리를 이제는 이 세상 그 어디에 가서 다시 들어볼 길이 있으랴!

(어둔이!)

룡복은 다시 불러보았다. 물론 대답이 있을리 없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놓지 않고서는 못 견딜 심정이였다. 두해만에 옥에서 풀려나왔건만 마음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어둔의 무덤앞에 서니 가슴은 더욱 찢어지는듯 아팠다.

(어둔이, 자네가 여기 와 이렇게 누워있으면 나는 어떻게 하나? 매일같이 약을 달여오며 자네를 살리려고 그토록 애쓰던 어순이의 정성은 왜 생각하지 못하구 여기 와서 홀로 누워있단 말인가! 그 인정깊구 뜨겁던 마음은 어디다 버려두고 이렇게 차거운 흙을 덮고 누워있나?)

룡복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리였다.

참으로 울릉도를 위해 한몸을 바친 어둔이의 그 값진 죽음을 이렇게 숨결없고 온기도 없는 찬 흙으로 덮어둘수가 있으랴싶었다. 향기로운 꽃으로 덮어주고 영원히 식지 않는 뜨거운 마음으로 고이고이 감싸주고싶었다.

(내 기어이 자네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네. 저 간사한 왜놈들의 흉계를 기어이 꺾어버리고야말겠어.)

룡복은 천천히 일어서서 봄빛짙은 동평벌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잠자는듯 묵묵히 누워있는 동평벌, 봄아지랑이만이 잠든 벌을 깨우려는듯 거뭇거뭇한 땅우에서 안타깝게 아물거리고있었다. 그 아지랑이너머로 멀리 펼쳐진 푸르디푸른 바다, 그 바다건너 저 먼 동쪽 한끝에 외로이 떠있는 울릉도!

하루에도 열백번씩 마음속에 그려보군 하는 섬이였다. 그 섬을 생각할 때마다 그리운 어순이의 모습이 떠오르고 쇠동이와 섬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눈앞에서 얼른거리였다. 그리고 울릉도를 기어이 지켜달라는 마지막말을 남기고 간 어둔이의 얼굴이 눈앞에 우렷이 떠올랐다.

(자네는 무덤속에서도 울릉도를 못 잊을것이구 어순이때문에 눈을 감지 못할걸세.)

룡복은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어둔의 무덤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서있었다.

(하지만 나를 믿어주게. 내 자네가 이루지 못한 일을 기어이 이루어놓을테니 부디 눈을 감게, 부디…)

룡복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황령산을 내리였다. 꽃향기가 슴배인 맑고 부드러운 봄바람이 불어와 옷자락을 가볍게 흔들어주었다. 산기슭 오솔길을 벗어나 범어사쪽으로 뻗은 큰길에 들어서는데 범어천을 따라 골짜기안으로 화려한 관원의 행차가 떠가는것이 보이였다. 벙거지를 제껴쓴 전배사령들이 앞에 서서 륙모방망이를 휘두르며 별반 인적도 없는데 목청을 돋구어 길잡는 소리를 호기있게 울리였다. 그뒤로 한무리의 세악수들이 길군악을 울리며 따라오고 그뒤에 사인교 두틀이 교군들의 어깨에 떠받들리여 물결우에 뜬것처럼 궁싯거리며 움직이고있었다.

두 가마안에서 갓 쓴 머리가 봄빛짙은 경치를 내다보고있었다. 앞선 가마안의 사람은 동래부사이고 뒤선 가마안의 사람은 좌수사였다. 가마뒤로 동래부의 판관이하 관원들과 옥색도포에 정자관을 쓴 량반선비들이 흥청거리며 따라오고 그뒤로 록의홍상을 떨쳐입고 분을 발라 요염한 자태를 한껏 드러낸 일여덟명의 관기들이 바람에 춤추는 버들가지같이 호리호리한 몸매를 흔들며 따라왔다. 행차의 맨뒤에는 심부름을 들 녀종들과 군노들이 삿자리며 술방구리며 갖가지 음식이 담긴 그릇따위가 실린 소달구지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였다.

흥취를 돋구느라 울려대는 길군악소리는 별로 흥취없고 행차를 따라가는자들이 제 흥에 떠서 지껄이는 말소리며 기생들의 무리속에서 가끔씩 터져나오는 호들갑스러운 웃음소리가 오히려 행차의 흥취를 더 돋구고있었다.

첫눈에도 량반님들의 햇풀밟이행차가 분명하였다. 산수좋기로 이름난 금정산골짜기에 들어가 꽃지짐을 부치며 하루를 놀아보내려고 떠난 행차였다.

룡복은 길옆에 비켜서서 한동안 행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나라의 섬이 왜놈들의 롱간에 들어 어느 손아귀에 굴러떨어질지 모르는 이때에 일본과의 관계를 직접 맡고 나라의 남쪽관문을 지켜선 동래관아의 관리라는것들이 봄놀이에만 정신이 팔려 흥청거리고있으니 차마 눈을 뜨고 볼수가 없는 광경이였다.

룡복은 못 볼것을 본 사람처럼 행차를 등지고 돌아섰다. 그런데 행차뒤로 따라가던 기생 하나가 심부름드는 나어린 계집애와 함께 뒤에 떨어져 머뭇거리는것이 보이였다. 갖신에 든 모래라도 털어신을 모양이였다.

룡복은 그 모든것을 등지고 돌아서서 동래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등에서 급히 쫓아오는 신발소리가 들리였다.

《저… 저 좀 보세요.》

노랑물을 들인 무명저고리를 입은 열서너살 나보이는 계집애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룡복을 불러세웠다.

《웬일이냐?》

《저― 안룡복이라는이가 아니세요?》

《그렇다, 왜 그러느냐?》

계집애는 반가운듯 방싯 웃었다.

《진향언니가 알아오라구 해서 왔어요. 잠간만 서계세요.》

계집애는 진향이라는 기생이 서있는쪽으로 달려갔다.

진향이라구?

룡복은 놀라운 눈길로 먼발치에 서있는 기생을 바라보았다.

반쯤 몸을 돌린채 수태를 머금고 서있는 진향의 불타는듯 한 다홍치마가 가볍게 날리고있었다.

달밝은 그밤 동래옥에 찾아와 왜놈자객이 들어오리라는것을 알려준후 서글프고도 애절한 웃음을 남기고 사라진 잊을수 없는 녀인이였다. 룡복은 옥에서 풀려나오자바람으로 어머니와 리생원에게서 진향이라는 기생이 집에 찾아왔던 이야기며 그의 도움으로 산천초목까지 쓰러뜨리던 그 무서운 을해년의 기근도 이겨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때 가슴속에 가득 차오르던 그 고마운 마음이 되살아났다.

룡복은 진향이쪽으로 다가갔다. 다소곳이 숙였던 머리를 들고 다가오는 룡복을 바라보는 진향의 눈빛에는 기쁨과 수집음 그리고 무엇이라 말할수 없는 뜨거운 마음이 비껴있었다.

《저, 바쁜 길을 지체시켜서 정말 죄송해요.》

진향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였다.

《정말 반갑소. 그동안 어머니와 어린 동생까지 돌보아주었다니 고맙다는 말을 어떻게 다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소.》

《그런 말씀 마세요. 마음뿐이지 별로 도와드린것이 없어요. 옥에서는 아주 풀려나오셨나요?》

진향은 다시한번 눈을 치떠 룡복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제 풀려나왔소. 지금 옥에서 죽어나온 친구의 무덤을 찾아보구 오는 길이요.》

《그러세요?》

형틀에 매여서도 친구의 억울한 죽음을 하소연하던 룡복의 피맺힌 부르짖음을 잠시 돌이켜보는듯 진향의 눈빛에 무거운 그늘이 스쳐지나갔다.

《정말 아무나 못할 그렇게 장한 일을 하시고도 억울한 일만 당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찢어지는듯 하였어요. 상을 주어 높이 받들지는 못할망정… 형틀에… 매고…》

진향의 고운 눈에 눈물이 고여 반짝이였다.

《그걸 어떻게 다 알구있소?》

《동헌뜰에서 벌어진 일을 소녀가 죄다 보았어요.》

진향의 입술에서는 가는 한숨이 새여나왔다.

《정의도 모르고 흑백도 분간치 못하는 저런 량반무리들과 낯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것이 정말 부끄럽고 분해요.》

룡복은 희희락락거리며 멀어져가는 화전놀이행차를 쏘아보았다.

《진향이도 아는지 모르겠소만 울릉도일은 여전히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고있소그려. 조정에서도 이제는 손을 털고 나앉는 모양인데 이 나라의 물과 낟알을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참말 그저 보고만 있을수 없구려.》

진향의 얼굴에 걱정하는 빛이 떠올랐다.

《룡이 오라버님은 그 일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험한 고생을 많이 겪으셨는데 이제 또 무슨 변을 당하실지 어찌 알겠어요. 부디 서뿔리 나서지 마세요.》

《하지만 제 나라 섬이 왜놈들에게 롱락당하는걸 어떻게 보고만 있겠소. 나는 달리할수 없는 사람이요. 섬을 위해 목숨바친 아버님과 친구를 생각해서도 그렇구 진향의 그 고마운 정성을 생각해서도 그렇지 않소? 그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나는 달리는 할수 없는 사람이요.》

진향의 아름다운 얼굴에 한가득 감동의 빛이 물결쳤다.

《저의 정성같은거야 무엇이겠나요. 하지만 저의 마음에도 룡이 오라버님이 하시는 일이 참말 장한 일이라고 생각되여요.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도 해보지요. 량반님네들의 관복 같은걸 맡아 지을 때면 더구나 그래요. 이 옷을 입어야 할 사람은 참말 누구인가…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룡이 오라버님 생각이 나군 하지요.

참말 나라의 큰일을 맡아나서는 그런이들에게 비단옷을 해입히고 수놓은 꽃방석을 깔아드릴 그런 세상은 없을가요?》

《허허… 그런 세상이 있었으면 오죽 좋겠소만 이 하늘아래에는 그런 세상이 없소. 어디 가나 량반들의 세상뿐이지. 하지만 이 땅에서 사는것은 우리들이니 량반들을 바라보고 살것이야 없지 않겠소. 울릉도에서 살 사람도 남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요. 그러니 꽃방석을 깔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목숨을 내대고 나서는것이요.》

진향은 다시한번 룡복의 얼굴을 황홀한 눈길로 훔쳐보았다. 가슴속에 지닌 저 아름다운 마음이 사람을 그토록 돋보이게 하였다는것을 비로소 깨달은듯 하였다.

《한번 다진 마음이 그러시다면 이 진향이는 더 할 말이 없어요. 다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도와드릴수 있겠는지… 그게 안타까울뿐이예요. 오늘도 마음없는 화전놀이에 병을 구실로 몸을 빼려했으나 매인 몸이라 끝내 끌려나오고말았어요.》

진향이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나서 버릇된 그 애절한 웃음을 방긋 웃었다.

《그럼 부디 그 마음 굽히지 말고 기어이 성공해주기를 바래요.》

진향이는 가볍게 머리를 숙여보인 다음 옷고름을 깨물며 돌아섰다. 벌써 먼 산굽이를 돌아서고있는 화전놀이행차쪽으로 여라문발자국 옮겨짚다가 다시한번 룡복이의쪽을 돌아다보았다. 그의 타는듯 한 다홍치마가 바람결에 세차게 펄럭이고있었다.…

룡복이가 옥에서 풀려나온지도 어느덧 달포가 가까와오고있었다.

그동안 주변마을사람들과 능로군친구들이 옥고를 치르고 나온 사람의 몸을 추세우는데 좋다는 여러가지 약재와 음식을 꾸려들고 매일같이 찾아왔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룡복에게서 울릉도이야기를 듣고는 왜놈들의 가증스러운 흉계에 치를 떨기도 하고 조정의 그릇된 처사에 격분을 터뜨리면서 돌아가군 하였다.

그런데다가 목서방네 배군들도 룡복이가 옥에서 풀려나오기전부터 울릉도이야기를 가는 곳마다에서 사람들에게 전했었다.

그리하여 한동안 포촌과 동래아근에서만 들리던 울릉도와 안룡복이에 대한 이야기는 삽시에 경상도일판으로 번져가고 전라, 충청도를 거쳐 서울로 전해졌으며 온 나라를 휩쓸게 되였다.

농군들이나 어부들이 모인 곳에서는 더 말할것도 없고 량반집 사랑과 안방들에서도 사람들이 모여앉기만 하면 그 이야기를 벌리군 하였다.

전해지고 또 전해지는 과정에 부정확한 억측과 제나름의 허구가 덧붙기도 하였지만 어쨌든 이 이야기로 하여 울릉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왜놈들에 대한 경계심은 전례없이 높아지고 조정의 처사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울려나오게 되였다.

 

어느날 룡복이가 성안에 들어가 몇몇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둔의 아버지 박지삼로인이 삼노끈으로 죽지를 비끄러맨 검정암탉 두마리를 안고와서 룡복을 기다리다가 금방 돌아간 뒤였고 부산포와 두모포, 개운포아근에 사는 룡복의 친구들이 찾아와 아래우 두방이 터질 지경으로 모여앉아있었다. 울릉도이야기는 소문으로 이미 들었으나 룡복이를 직접 만나보고싶어서들 찾아온것이였다.

룡복이가 울릉도와 왜땅에 가서 겪은 가지가지 일들을 다 이야기하고나자 젊은이들은 저마끔 열이 올라 떠들었다.

《야, 울릉도가 그렇게 살기좋은 곳이라는데 한번 가 살아봤으면 좋겠구나.》

《그렇지 않아두 지금 서울에서는 각처에서 몰려온 기근민들을 여러 섬에 실어보내여 살게 한다는데 우리도 한번 가볼가부다, 젠장.》

《그런데 왜놈들이 아직도 그냥 드나든다는데 가면 꼭 말썽이 생길거야. 볼기맞기 쉬우니 함부로 날뛰지 말라구.》

《볼기구뭐구 그 가증스러운 왜놈들을 단단히 혼뜨검 내주어야지. 그놈들이 무슨 낯짝으로 남의 나라 섬에 그냥 드나든단 말이우? 그렇지 않수. 룡복형님? 내 그놈들의 모가지를 비틀어다가 왜관수문밖에 매달겠소.》

친구들의 말을 듣고있던 룡복이가 저으기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울릉도에 왜놈들이 그냥 드나든다는게 사실인가?》

《사실이 아니구. 며칠전 우리 개운포에서 사는 천서방네 부자가 청어떼를 쫓아가다가 풍랑에 밀려 할수없이 울릉도에 가닿게 되였는데 왜놈들의 배 여러척이 포구에 닻을 풀구있기에 말썽이 두려워서 배를 대지 못하구 그냥 돌아왔다구 하였네.》

《아니? 제 나라 섬에 도적은 버젓이 닻을 풀고 주인은 배도 못 대보구 돌아서다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세상일이 왜 이렇게 꺼꾸로만 돼가나?》

《그것 참, 복통이 터질노릇일세. 그저 참기만 할텐가?》

모두가 격분을 참을수 없어 거친 숨을 톺고있었다.

룡복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다가 입을 열었다.

《여보게들, 내 말을 듣게. 제 나라 섬에 왜놈들이 마음대로 싸다니는것을 보구서야 어찌 참을수 있겠나? 더구나 다시는 출입하지 않겠다구 문서로 약속을 해놓구서 계속 드나드는 저 간사한짓을 어찌 참고 볼수가 있는가 말일세.》

룡복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번지였다.

《나라의 바다나 섬을 지키는 일에서는 바다에 명줄을 건 우리가 주인일세. 우리처럼 바다에 명줄을 걸지 않은 사람은 그 바다와 섬이 우리네 살점이나 다름없다는걸 알바없네.》

《룡복형님 말이 옳소.》

나어린 총각 하나가 주먹을 내흔들며 큰소리로 말하였다.

《이 세상 누가 우리 배군들만큼 바다와 섬이 귀한줄 알겠소. 그러니 울릉도두 우리가 지켜야지 누굴 바랄것이 없소.》

《옳네. 남의 일이 아닐세. 바로 우리 일이구 내 일일세.》

《그렇구말구. 바루 내 집을 가지구 내 목숨을 지키는 일이나 같단 말이요.》

《모두들 울릉도루 가세. 가서 섬을 지켜야지 이러구 앉아있을텐가?》

젊은이들은 모두가 당장 자리를 털고 일어설듯이 윽윽거리였다.

룡복은 마음이 후더웠다. 감격으로 숨결이 벅차지고 눈굽이 뜨거워졌다.

얼마나 미덥고 훌륭한 친구들인가! 결코 자기 한사람의 운명과만 련결된 울릉도가 아니였다.

저들모두가 울릉도를 제 살점처럼 귀중히 여긴다. 그러니 울릉도를 위한 일은 나를 위한 일이고 저들을 위한 일이고 이 나라 백성모두를 위한 일이였다.

룡복은 자기의 어깨우에 얼마나 크고 무거운 짐이 지워져있는가를 다시한번 마음속으로 가늠해보고있었다. 친구들의 미더운 모습을 보고있노라니 이제 울릉도를 다시 가서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더욱 선명히 떠올랐다.

우선 울릉도에 가서 섬으로 기여드는 왜선을 붙잡은 다음 그것을 끌고 일본으로 가서 울릉도일을 깨끗이 해결할 생각이였다. 그러자면 사람들을 모아야 하고 배를 구해야 하였다.

관가에서 알면 떠나지 못하게 할것이기때문에 울산에 가서 배를 구해가지고 소문없이 떠날 계획이였다. 이윽고 룡복은 이 계획을 이야기하고 함께 갈 뜻이 있는 사람은 열흘안으로 울산포구에 오라는것을 알려준 후 친구들을 떠나보내였다.

젊은이들이 다 돌아가자 리씨는 룡복이와 마주앉았다. 룡이도 그늘진 얼굴로 어머니곁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래, 기어이 또 떠날 생각이냐?》

《어머니, 사내대장부가 어찌 시작했던 일을 떳떳이 끝맺지 못하구 말겠습니까. 왜놈들의 배가 그냥 드나든다는데 분한 마음을 참을길 없습니다. 더우기 섬을 위해 목숨을 바친 어둔이를 어떻게 잊을수 있겠어요. 또 섬사람들의 부탁을 생각해서도 그렇고 대마도에 홀로 남은 어순이를 생각해서도 그렇고…》

룡복은 목소리가 떨리였다.

《아마 섬에 묻힌 아버님도 저를 나무라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리씨는 맑은 눈물이 고인 눈길을 들어 한동안 말없이 아들의 얼굴만 살펴보았다.

《내가 네 마음을 왜 모르겠느냐. 그런데 가더라두 몸이나 좀 추세우고 떠나면 안되겠느냐? 네 몸이 아직 말이 아니구나!》

《어머니, 내 한몸이 무엇이겠어요. 조상대대로 물려오던 섬을 빼앗기게 되는 판에… 내 몸은 일없어요.》

옆에 앉아있던 룡이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넌 웬일이냐?》

리씨가 룡이를 가볍게 나무랬다. 그러자 룡이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하였다.

《오빠는 너무두 몰라. 오빠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머니가 앓아누운것두 다 오빠때문이야.》

《이년, 썩 걷어치우지 못하겠느냐?》

《어머니, 내가 못할 말을 했나요? 보세요. 우리 집이 무슨 꼴이 되였어요. 이영이 썩구 울바자가 쓰러지구 삽짝이 다 떨어지구…》

룡복은 아무 말도 못하고 어머니무릎에 쓰러져 우는 룡이를 바라보았다.

《룡복아, 철없는년의 말이니 너무 아프게 듣지 말어라.》

《어머니, 정말 자식구실, 오빠구실을 못했으니 그런 소리를 들어 마땅하지요.》

《아니다. 자식구실을 못하구 오빠구실을 못하면 어떠냐. 나는 네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나라의 백성된 구실을 하려는것이 더 장해보인다. 나도 이젠 일어나겠다. 나라의 울바자가 쓰러지구 삽짝문이 열려 도적이 뛰여들게 되였는데 우리 한집의 울바자가 다 무엇이겠느냐. 집걱정은 아예 말구 떠나거라.》

《어머님!》

룡복은 어머니의 거칠어진 손을 와락 부여잡고 목메인 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의 무릎에 엎드려 울던 룡이는 더욱 세차게 북받치는 울음을 참을길 없는지 밖으로 뛰여나갔다.

《그런데 한가지 걱정이 있구나.》

잠시후 리씨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어순이의 일 말이다. 나는 자나깨나 그애 생각뿐이다.》

《…》

《그게 아무리 굳은 마음을 가진다 해도 짐승같은 왜놈들속에서 홀로 어떻게 견디여내겠느냐? 네가 나를 위로하느라 별별 소리를 다 했지만 나는 어느 하루도 마음을 놓을수가 없구나.》

《…》

어머니의 말을 듣고있던 룡복의 얼굴빛이 컴컴하게 변해가고있었다.

리씨는 가늘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 애를 한시급히 찾아올 생각을 해야 한다.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어두 그 애를 꼭 찾아가지고 오너라. 네가 한시라도 그애 생각을 잊으면 마음이 약해져서 아무 일도 못하구만다. 나도 그애 생각을 하면서 고생을 이겨간다.》

《명심하겠어요. 그만 누우세요.》

룡복은 북받치는 격정을 참을길 없어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서쪽하늘에 불그레 저녁노을이 엷게 펼쳐져있었다. 황혼이 뜰안팎을 감싸며 고요히 내려앉고있었다. 룡복은 쓰러진 울바자와 고삭아 주저앉은 이영을 살펴보며 배나무가 가지를 드리운 뒤울안으로 들어갔다. 꽃망울이 하얗게 맺힌 배나무아래서 룡이가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고있었다.

룡이의 잔등에서 가늘게 하느적이는 빨간 댕기를 보는 순간, 룡복은 그만 눈을 꼭 감아버리였다. 어순의 어깨우에 흰 눈처럼 흩날려 떨어지던 하얀 배꽃을 털어주던 못잊을 그날의 일이 아득한 옛날의 일처럼, 아니 방금 지나간 일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다대포로 떠나던 그날 밤, 이 배나무아래서 울음을 삼키며 길지 않은 리별조차 그토록 괴로와하던 어순이의 모습…

룡복은 머리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감았던 눈을 떴다. 흐느끼던 룡이가 달려와 품에 와락 매달렸다.

《룡이야, 많이 욕을 해라. 내가 못난 오빠다.》

《아니우. 그런게 아니우. 난 오빠가 걱정되여 그랬수. 오빠두 어둔오빠처럼… 난 막 무섭수. 그런 꿈도 꾸었수.》

룡이는 룡복이의 품에 더욱 꽉 매달리며 흐느끼였다. 어린것이 얼마나 마음 아프면 이러랴.…

룡복은 룡이의 어깨를 다정히 어루만져주었다.

《어머니말씀을 못 들었니? 나라의 울바자가 다 쓰러졌다고 하던 말씀말이다. 반나절이면 우리 집 울타리는 바로 세울수 있지만 나라의 울타리는 너나 나도 그렇구 많은 사람들이 모든것을 다 바쳐 힘써야 바루 세울수 있는것이란다. 어둔이오빠가 목숨을 바친것두 다 그래서였다. 알겠니?》

《다 아우. 내가 그걸 몰라서 그러는줄 아우?》

룡이는 이윽고 울음을 멈추고 눈물을 닦았다.

《어머니걱정, 집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구 어서 떠나우. 어순이언니도 꼭 데리구 오우.》

룡복은 사랑스러운 누이동생을 와락 껴안았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왔지만 머리우에 아지를 드리운 배나무우에 이제 하얗게 피여 향기를 떨칠 끝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배꽃이 보이는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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