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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사람들은 창덕궁을 《동관대궐》이라고 부른다. 서대문안에 자리잡은 경희궁을 《서관대궐》이라고 부르는데 대비하여 성 동쪽에 자리잡은 대궐이래서 그렇게들 부르는것이였다.

태종4년인 1404년에 북부 광화방에 터를 닦고 역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10월에 락성된 이 궁궐은 임진전쟁때 일부 불탄것을 광해군 초엽에 크게 수리를 하고 린접한 창경궁까지 한궁으로 합친 다음부터 자못 규모가 크고 화려한 왕궁으로 변모되였다.

이 동관대궐의 단청 찬란한 추녀밑으로 복잡다단한 이 나라 수백년 력사의 풍운이 흘러지나갔다.

숙종왕이 바로 이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에서 신하들의 조하를 받으며 룡상에 앉은 때로부터 어느덧 스무해, 그동안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큰 전쟁을 겪은 일은 없지만 어느 하루도 이 대궐안에 안정이 깃든적이 없었다.

사색당쟁의 피비린 란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경신대출적》이라는 한차례 파도가 지나간지 10년도 못되여 다시 《기사환국》이라는 세찬 물결이 휩쓸어지나갔으며 그로부터 겨우 6년도 넘기지 못하고 또다시 《갑술옥사》라는 큰 파도가 밀려들어 대궐의 기둥뿌리를 흔들며 지나갔다.

8도강산에 기근과 역병이 만연되고 살길을 잃은 백성들이 곳곳에서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거기다가 왜놈들까지 남해변방에서 매일같이 간사한짓을 일삼으면서 자는 범의 수염을 건드려보는 심사로 당치도 않은 일을 꺼들어대면서 저들의 야욕을 채워볼 기회만 노리고있었다.

동관대궐이 제아무리 드높은 궁담으로 둘러막혀있다고 해도 쉼없이 밀려들고 밀려나가는 세월의 이 풍파속에서 한순간의 안정도 얻을수 없으리라는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다가 계유년 겨울부터 조정을 불안하게 흔들어놓기 시작하던 울릉도문제는 갑술년, 을해년에 이르러 더욱 크게 번져지고있었다.

령의정 남구만은 나라의 수석정승으로서 이 일을 저으기 우려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일찌기 벼슬길에 올라 함경감사, 한성좌윤, 병조판서, 좌의정을 력임해오다가 남인정권이 무너지던 《갑술옥사》때에 령의정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였다. 그가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에는 수난곡절도 없지 않았다.

혈기왕성하던 한성좌윤시절에는 남인들의 횡포를 상소하다가 임금의 미움을 사서 머나먼 변방인 남해고을로 쫓겨가서 류배살이를 하기도 했고 《기사환국》때는 남인들의 등쌀에 밀려나 시골에 파묻혀있기도 했다.

하지만 소론(서인에서 갈라져나온 한 당파)의 중심인물로서 조정을 지휘하게 된 오늘 문무백관이 그의 말을 무시하지 못하였으며 임금도 정사를 그에게 의탁하고있었다.

그런만큼 그는 나라의 크고작은 모든 일을 실수없이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런데 이즈음 그는 울릉도문제때문에 저으기 마음이 번거로왔다. 쯔시마차왜를 만나고 돌아온 접위관 유집일의 말을 들어보면 울릉도일이 매우 심상치 않았다. 더구나 이전 남인관료들이 울릉도문제를 말썽없이 처리한다고 하면서 왜인들을 덮어놓고 어루만져준탓에 일은 더욱 비뚤어져버린것이였다. 그때 접위관이였던 홍중하만이라도 한 나라의 외교관답게 처신을 바로하여 왜인들의 기세를 눌러놓았더라면 쯔시마차왜라는자가 지금까지 저렇게 검질기게 대들지 못할것이였다.

이번에 차왜가 가지고온 쯔시마도주의 서계를 보아도 왜놈들이 기어이 섬을 차지해보려고 하는것이 분명하였다.

물론 먼 바다가운데 떠있는 보잘것없이 작은 섬을 가지고 왜인들과 시끄럽게 다투지 말고 적당히 어루만져서 무마하는것이 오히려 편안하리라는 론의도 있었지만 남구만은 그렇게 할수가 없었다.

유집일의 말에 의하면 지금 울릉도가 우리 땅이라는것을 주장하여 일본에까지 갔다온 어부들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져서 민심을 수습할 도리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는것이였다.

안룡복이라는 동래부의 젊은 능로군이 일본에 갔다온 사실이 발단이 되여 지금 떳떳한 제 나라 섬을 왜놈들에게 내맡길수 없다고 변방해안의 어부들과 백성들이 모두 들고일어나 관가와 조정의 그릇된 처사를 드러내놓고 시비하며 떠들고있었다. 그것이 동래 한 고을이나 경상도 한도에만 머무른 일이라면 또 모르겠으나 전라, 충청도를 거쳐 서울에까지 미치고 강원도 바다연안 어부들의 입을 통하여 함경도로 번져져서 지금 온 나라가 울릉도문제로 떠들썩해지고있었다.

그러니 조정을 지휘하고 나라의 크고작은 일을 다 주관해야 하는 관직을 맡은 사람으로서 이 사태를 수수방관할수가 없었던것이다.

부득이 시끄러운 일이 생기더라도 왜인들에게 강경한 태도를 보여 비뚤어진 사태를 바로잡아야 하였다.

그래서 남구만은 임금에게 이 일을 상주하여 대책을 세울 적당한 기회를 은근히 기다리고있었다.

때마침 어느날 인정전에서 경연이 있었다. 경연이란 원래 조정의 신하들이 임금앞에서 유교경전을 강론하는 모임이였지만 나라의 정치, 외교, 군사상의 중요한 문제들이 대개 여기서 론의되고 결정되는 수가 많았다.

이날 령의정 남구만은 깊이 우려하고있었던 울릉도의 사실을 아뢰일 결심으로 1품문관의 쌍학흉배를 붙인 단령자락을 조심히 여미며 룡상앞에 나가 엎드리였다.

《삼가 아뢰입니다. 작금년간에 이르러 울릉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왜인들의 간사한짓이 더욱 우심해가고있소이다. 신이 대마도차왜를 접견하고 돌아온 헌납(사간원의 정5품벼슬) 유집일을 만나 울릉도사실의 전말을 들은데 의하면 례조의 복서를 받아가지고 갔던 대마도차왜가 다시 와서 기어이 복서를 고쳐달라고 한다 하옵니다.

대마도도주가 이번에 보내온 서계에도 〈울릉〉이라는 두 글자를 삭제해달라고 씌여있습니다.

신이 〈지봉류설〉을 보니 왜들이 말하는 죽도가 곧 우리 나라의 울릉도라는것이 뚜렷이 씌여져있었소이다.

그 섬에 대가 많이 나므로 죽도라고도 부르지만 실은 같은 섬에 대한 두가지 이름에 불과한것이옵니다. 왜들이 이러한 사실을 감추고 죽도라고만 부르려 하는것은 우리 어부들의 출입을 금지시키겠다는 허락을 얻은 다음에는 그것을 구실삼아 울릉도를 아주 차지해보려고 꾀하는 까닭이옵니다.

그런데 전날 왜인들에게 회답한 글에는 죽도를 일본의 지경이라 하고 죽도에 들어가 고기를 잡은 어부들에게 죄를 주겠다고 했으니 아주 잘못되였다고 생각하옵니다. 그러니 례조의 회답하는 글을 고치되 죽도는 곧 우리 나라의 울릉도로서 울릉도, 죽도는 다 한섬에 대한 두가지 이름이라는것을 분명히 밝히고 우리 나라 사람이 제 나라 섬에 간것이 어찌 경계를 침범한것으로 되겠는가고 따져묻는다면 아무리 간사한 왜인들이라도 할 말이 없을줄 아옵니다.》

임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전페아래 늘어선 신하들에게 눈길을 돌리였다. 달리 아뢰일 말이 없느냐는 뜻이였다. 임금의 눈길이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적이 있는 우의정 윤지완에게 가서 멎었다.

나이는 쉰아홉, 숙종이 즉위한지 8년이 되던 해에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왔고 기사년에는 남인들에게 밀려나 한동안 경기도 동산시골에 묻혀있다가 《갑술옥사》때 남구만 등과 함께 조정의 대신으로 정승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였다.

《아뢰옵건대 령상의 말씀이 지당한줄 아옵니다.》

윤지완이 임금앞에 엎드려 아뢰이였다.

《헌납 유집일의 말을 들어보면 동래사람인 안룡복, 박어둔이 울릉도에 표류해갔다가 왜인들에게 끌려 일본에 갔는데 호끼주태수에게 울릉도가 우리 나라 섬이라고 결사항의하여 일본막부의 서계까지 받았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돌아오던 도중 나가사끼지경에서부터 간섭을 당하기 시작하여 대마도에 갇혀있다가 범월죄인(국경을 넘은 죄인)으로 동래부에 압송되였다고 하옵니다.

변방포구의 천한 배군들이 이웃나라에 표류해가서 한 일이라 믿기 어려운바가 없지 않으나 전후사실을 미루어보건대 분명 근거없는 말은 아닐듯 하옵고 또 대마도왜인들의 간사한짓을 짐작하기도 어렵지 않은줄 아옵니다. 그러니 신의 생각에는 복서를 고쳐 써주되 우리 나라 어민들이 제 나라 섬에 가서 물고기를 잡은것이 어찌 경계를 침범한 일로 되겠는가, 너희들이 함부로 남의 나라 지경에 들어와 어민들을 체포해간 제 잘못을 론할 대신 도리여 우리 어민들이 울릉도에 출입하는것을 금지시켜달라고 하니 어찌 도리에 닿는 일인가라고 대답하는것이 마땅한줄로 아옵니다.》

두 정승이 이렇게 아뢰이자 좌의정 박세채는 물론 리조판서 류상운을 비롯한 륙조의 판서들도 모두 이구동성으로 《지당한 말씀이요.》하고 찬동을 표시하였다.

마침내 임금은 왜인들의 요구를 직접 거절하여 례조의 회답편지를 다시 써서 보낼것을 지시하였다.

이때 훈련대장 신여철이 엎드려 아뢰이였다.

《생각하옵건대 울릉도는 비록 먼 바다밖에 떨어진 섬이오나 만약 왜인들이 차지하면 강릉과 삼척 등지에서 반드시 화를 입을것이요, 동해에 면한 여러 포구와 진들이 또한 무사치 못할줄 아옵니다. 바라건대 방비대책을 세우는것이 마땅하지 않을가 하옵니다.》

《그러니 어찌하면 좋겠는고?》

임금이 근심스럽게 물었다.

남구만이 다시 엎드려 아뢰이였다.

《신의 생각에는 왜인들이 울릉도를 차지해볼 욕심을 내게 된것은 오래동안 섬을 비워둔탓인줄 아옵니다. 그러니 우선 삼척첨사를 골라 임명하여 섬의 지형지세를 살펴보게 한 다음 백성들을 살게 하거나 진을 설치한다면 왜인들이 다시는 넘보지 못할줄 아옵니다.》

《황송하오나 백성들을 들어가 살게 하는것은 고금의 일을 널리 상고하여 페단이 없도록 하는것이 마땅할줄 아옵니다.》

좌의정 박세채가 흰 수염으로 가슴을 쓸며 아뢰이였다.

《고려 의종왕초년에 이미 김유립을 울릉도에 보내여 조사해보니 동서가 2만여보밖에 안되고 돌이 많아 사람이 살수 없다고 한것을 보아도 그러하옵고 그후 무인 최충헌이 백성들을 이주시켜 살게 하였으나 때때로 심한 풍랑에 마을이 씻겨내려가서 죽은 사람이 많았다 하였으니 지금의 형편도 별로 다를바 없는줄로 아옵니다.》

좌의정이 말을 마치자 남구만은 자기의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고 다시 아뢰이였다.

《그렇지만 우리 태종왕시절과 세종왕시절에 많은 백성들이 섬에 들어가 사는것을 여러번 수색해 내왔다 하오니 그것은 우리 백성들이 오래전부터 섬에서 살고있음을 말하는것이 아니겠소이까!

짐작컨대 지금도 섬에는 우리 백성들이 살고있으리라 생각하옵니다. 그러니 우선 섬을 조사해보고 선대임금때부터 전해오는 나라의 령토를 내버려둘것이 아니라 마땅히 관리해야 할줄로 아옵니다.》

신하들의 말을 다 듣고난 임금은 이윽고 령의정의 뜻을 쫓아 일을 그르치지 않게 하라는 분부를 내리고 편전으로 들어가버리였다. 이리하여 이날 장한상을 삼척첨사로 임명하여 울릉도를 조사하게 하며 접위관 유집일은 다시 동래로 가서 쯔시마차왜에게 례조의 두번째 복서를 전달하도록 할것이며 안룡복 등을 범월죄인으로 그냥 옥에 가두고있는것은 왜인들의 간계에 발을 맞추어주는것이나 다를바 없는 일이므로 내놓아줄것 등을 론의한 후에 경연을 마치였다.

삼척첨사로 임명된 장한상은 9월 19일에 울릉도로 떠나갔다가 10월 6일에 돌아왔는데 그의 보고에 의하면 섬에 왜인들이 다녀간 흔적이 있으나 와서 살고있는것은 없으며 우리 백성들이 사는것도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섬에는 희귀한 나무와 참대가 많고 해산물이 풍부하나 땅의 품질은 알수 없으므로 보리를 뿌리고왔으니 래년에 다시 가보면 알수 있을것이라고 하였다.

령의정 남구만은 이 사실을 임금에게 보고하고 앞으로 한두해 간격으로 관리를 파견하여 섬을 조사하도록 할것을 허락받았다.

한편 헌납 유집일은 례조의 두번째 복서를 가지고 다시 동래로 향하였다.

유집일이 역마를 갈아타며 부지런히 달려 동래를 20리 앞둔 감동역참에 이르렀을 때였다.

황산강녘에 자리잡은 역참이여서 강건너 불암나루를 거쳐 김해쪽으로 오가는 길손도 많지만 밀양, 대구쪽에서 동래, 부산쪽으로 오가는 사람 또한 그치지 않는 곳이였다.

번잡한 곳을 서둘러 지나가려고 하는데 길 한복판에 거적을 깔고 엎드린 한무리의 사람들이 보이였다. 행차앞에서 길을 잡던 하인들이 비켜서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엎드린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가던 길손들이 신기한 구경거리를 만난듯이 하얗게 모여들어 술렁거리고있었다.

유집일은 할수없이 말을 멈추었다. 대구감영에서부터 행차를 따라오는 동래판관이하 뒤에 따라섰던 후배하인들도 모두 서버렸다.

《웬 사람들이냐?》

유집일은 저으기 불쾌한 어조로 물으며 말우에 앉은채 엎드린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맨앞에 헌 대삿갓을 쓰고 엎드렸던 늙은이가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헐망스럽기 짝이 없어도 입은 옷은 량반의 도포였고 여위고 거친 얼굴에 주름은 많아도 눈빛은 찌르는듯 날카로왔다. 이상스러운 늙은이라는 생각이 들어 동래판관에게 물어보니 동래부중에 자주 드나드는 실성한 늙은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실성한 늙은이라? 그럼 저뒤에 엎드린 사람들도 다 미친 사람들인가?》

《글쎄올시다. 저 늙은이는 봉수군들에게 잡혀온바 있기에 소인이 대강 알뿐…》

유집일은 길바닥에 엎드린 일여덟명의 사람들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엄하게 물었다.

《웬 사람들인고?》

《소인들은 동래부 백성들이옵는데 대마도차왜를 접견할 소임을 맡고 접위관이 내려온다 하옵기에 긴히 아뢰일 사연이 있어서 로상에 부복대기하던중이올소이다.》

이렇게 아뢰이는 대삿갓을 쓴 늙은이는 다름아닌 리생원이였다.

옥에서 풀려나오자바람으로 목서방네 사공들을 찾아가서 옥에 갇힌 안룡복을 구원할 일을 여러날 의논하던끝에 그동안에 있은 상서롭지 못한 사실들을 접위관에게 낱낱이 알리기로 하고 벌써 이 역참에 나와 이틀째나 행차를 기다리고있던중이였다.

유집일의 얼굴에 저으기 불쾌해하는 빛이 떠돌았다.

《상주할것이 있으면 동래에 가서도 못할것이 없을터인데 하필 번잡한 길가에 무리를 지어 나와서 관원의 행차를 이다지도 조롱하고있으니 이런 망녕된짓이 어디 있느냐?》

유집일의 아직 파랗게 젊은 얼굴을 쏘아보는 리생원의 눈빛이 가을서리처럼 차겁게 번쩍거리였다.

《접위관은 조정의 관리로서 중대한 소임을 맡은 몸인데 어찌하여 차왜를 옳게 다스려 나라일을 바로잡아줄것을 바라는 백성들의 진정을 아니보고 한몸의 체면과 행차의 실례됨만 중히 여기시오?》

(아니, 이 늙은이가?…)

유집일은 노기가 북받쳐서 험한 소리를 내지르려다가 실성한 늙은이라고 하던 판관의 말이 생각나서 그만 입을 다물고말았다.

《내 베옷입은 이름없는 선비고 루추한 방랑객에 지나지 않으나 대마도차왜의 간사한짓을 보고만 있을수 없어 어리석은 소견이나마 여기에 낱낱이 적었으니…》

리생원은 도포소매속에서 두루말이종이 한장을 꺼내서 후들후들 떨리는 손에 받쳐들었다.

《만약 이 종이 한장에 나라를 걱정하는 이 늙은 사람의 진정이 담긴줄을 짐작하거든 대마도차왜를 다스리는데 긴히 써줄것이요만 그렇지 않을 생각이면 이 길바닥 먼지우에 내던지고 가시오.》

리생원은 종이두루말이를 머리우에 높이 쳐들며 다시 엎드리였다.

말우에 앉아있던 유집일은 별안간 고개를 젖히고 껄껄 웃었다.

참말 실성한 늙은이란 소리를 들을만 하다고 생각한것이였다.

《얘들아!》

유집일은 하인들을 불렀다.

《늙은이가 섭섭해할듯 하니 저 종이를 어서 받아올려라.》

앞에 섰던 하인이 종이두루말이를 받아올리자 유집일은 보지도 않고 소매속에 넣어버리였다.

이때 리생원의 뒤에 엎드려있던 귀얄수염 목서방이 한걸음 나앉으며 절절히 아뢰이였다.

《소인들은 동래옥에 갇힌 안룡복이와 함께 울릉도에 표류해갔던 사공들이옵니다. 제 나라 섬에 간것이 어찌 죄가 되며 죄가 된다면 어찌 안룡복이만 가둘법이 있소오리까? 왜땅에 끌려가서 갖은 곤욕을 다 겪다가 돌아와서 실로 억울하게 갇힌 안룡복이를 내놓지 못할바에는 차라리 소인들도 다같이 가두어주기를 바라옵니다.》

아직 때가 덜묻은 마흔전의 젊은 관리라 유집일의 마음속에 한쪼각의 의협심같은것이 남아있었던지는 모르나 목서방의 말을 듣는 그의 얼굴에 짐짓 심중한 표정이 떠올랐다.

《알았으니 그만 물러들 가거라!》

길가운데 엎드렸던 사람들이 거적을 들고 부산스레 일어서서 길을 내주자 유집일의 행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날 저녁에 동래 객사에 려장을 푼 유집일은 옷을 갈아입다가 소매속에서 종이 한장이 떨어지자 낮에 있은 일을 생각하고 서둘러 읽어보았다.

촌늙은이의 글이려니 하고 흥심없이 읽어나가던 유집일은 (아니? 옥에 자객까지?…) 하고 몸을 떨었다.

이튿날 그는 동헌에 나가 옥에 갇힌 안룡복을 불러들이라 해서 만나보았다.

해를 넘기며 옥에 갇혀있는 몸이여서 비록 옷은 람루하고 얼굴은 창백하였으나 《죄인》은 조금도 주눅이 들어보이지 않았다. 잠시동안이지만 한번 머리를 쳐들고 동헌마루를 살펴보는 남달리 번쩍거리는 눈빛, 무엇인가 열렬히 호소하는듯도 하고 못미더워하는듯도 하고 지어 무관심한듯도 한 그 눈빛에 담긴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채 유집일은 입을 열었다.

《듣거라. 네가 옥에 갇혀있는 동안 왜인자객이 들어왔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냐?》

《사실이옵니다.》

안룡복은 엎드린채 대답하였다.

《자객을 왜 들여보냈는지 짐작되는바가 없느냐?》

안룡복은 다시한번 못미더하는듯 한 눈길을 들어 접위관의 표정을 살피였다.

《짐작되는바가 없지 않소이다만 소인이 구태여 말씀올려 무엇하겠소이까?》

《아니, 그게 무슨 무엄한 대답이냐?》

《황송하옵니다.》

룡복은 들었던 머리를 다시 숙이며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왜놈들의 간사한짓에 대하여 년전에 다녀간 접위관에게도 저저이 아뢰였으나 도리여 관원을 속인다 하며 죄를 주려고만 하였소이다.》

《허허허…》

별안간 유집일이 껄껄 웃었다.

《그러니 네가 죄를 받을가 두려워 말 못한다는것이냐?》

《죄를 받는것이 두려운것이 아니라 받지 말아야 할것을 믿으려다가 화를 당하는것이 두려울뿐입니다.》

유집일은 놀라운 표정을 지을뿐 한동안 말이 없었다. 못미더워하는듯 한 《죄인》의 표정과 번쩍거리는 그 눈빛에 담겨있는 헤아리기 어려운 그 무엇이 어렴풋이 짐작되는듯싶었다.

《내가 오던 도중 길가에서 웬 늙은 선비로부터 절절한 사연이 담긴 소지 한장을 받은바 있기에 그 사실여부를 확인하려고 그러는것이니 여러말 말고 아뢰여라!》

《소지라니요?》

안룡복의 얼굴에 놀라운 빛이 떠돌았다.

《그 실성한듯 한 늙은 선비뿐아니라 어부 여러 사람이 길가에 부복하여 왜놈들의 간사한짓과 너의 투옥이 부당함을 아뢰였기에 대마도차왜를 만나기전에 너의 뜻을 묻는것이다.》

안룡복은 엎드린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아뢰이겠소이다. 대마도차왜가 옥에 자객을 들여보낸것은 막부의 서계를 빼앗은 저들의 죄행이 드러날가 겁을 내여 한짓이 틀림없소이다.》

《그렇게 단정할 근거라도 있느냐?》

《있소이다. 막부의 서계를 빼앗은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은 소인과 박어둔이뿐인데 박어둔이는 이미 목숨을 잃고 소인만 남아있으니 차왜는 소인의 입까지 아주 막아보려고 그런짓을 꾸미였을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옵니다. 그럴뿐아니라 자객으로 들어왔던놈은 소인들에게 한번 잡힌바있는 대마도왜도적의 우두머리였으니 더 말할것이 없는줄 아옵니다.》

《음― 괘씸한 일이로다. 나라의 변방관가가 좀도적들에게 무시당하구 롱락당하기가 이 지경이란 말이냐!》

유집일이 격분을 참을수 없어서 앞에 놓인 연상을 주먹으로 두어번 두드리였다.

안룡복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대마도왜놈들이 그렇게 간사한짓을 서슴지 않게 된것은 우리 나라가 일본과의 관계를 오직 대마도를 통해서만 하고있기때문이옵니다. 조정에서 이 외교관계상의 페단을 막을 대책을 세워야 할것은 더 말할것이 없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도 그렇소이다. 차왜에게 대마도를 거치지 않고 막부에 직접 글을 보내여 너희들의 죄행을 알리겠노라고 하면 아무리 간사한 차왜라도 할 말이 없이 될것입니다. 일본막부가 아직 우리 나라와의 선린관계를 깨뜨리는것을 두려워하고있으므로 이렇게 방책을 세우면 이번 일도 무사히 조처될줄로 짐작하옵니다.》

유집일은 저으기 감동어린 눈길로 안룡복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세상을 보는 안목과 언변과 기지가 저만하니 감히 두 나라 지경을 넘나들며 일본의 태수들을 상대로 어려운 싸움을 벌릴수 있었으리라는것이 깨달아졌다.

(아까운 인물이로구나! 만약 저러한 인물이 사족(량반사대부)의 집안에서 태여났으면 나라의 큰 재목으로 쓰이였을것을…)

유집일은 말없이 섬돌아래 엎드린 안룡복을 한동안 내려다보고있었다.

《듣거라. 너를 옥에 가두는것이 왜인들의 간사한짓에 발을 맞추는 일로 된다 하여 풀어놓기로 하였으니 그리 알고 그만 물러가 동래부의 조처를 기다리거라. 허지만 풀려나면 다시는 경거망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알겠느냐?》

엎드려있던 안룡복은 고개를 들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유집일은 라졸들에게 끌려 성문밖으로 나가는 안룡복을 바라보며 그가 결코 울릉도 일에서 손을 떼지 않으리라는것을 예감하였다. 아니, 그가 아니면 그 일이 성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윽고 연상을 밀어놓고 일어선 유집일은 역관을 왜관에 보내여 차왜를 만나겠다는것을 알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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