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밤은 퍼그나 깊었으나 리씨는 잠들지 못하고있었다.

룡복이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것이였다. 문밖에서는 여전히 끝없이 칭얼거리는 비소리만 들리였다.

문득 그 비소리속에서 절벅절벅하는 먼 발자국소리가 섞여들렸다. 발자국소리가 점점 가까와지더니 삽짝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였다. 다급한 발자국소리가 마당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에그, 오는가부다.)

자리에 누워 오만가지 불길한 생각을 더듬고있던 리씨가 막 일어서려는데 밖에서 《룡이야!》 하고 부르는 룡복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왔어?》

자는줄 알았던 룡이가 먼저 일어나 문을 열고 나는듯이 퇴마루로 달려나갔다.

《허청간으로 등불 좀 가져오너라.》 하는 룡복의 목소리가 들린후 뒤미처 《악!》 하는 룡이의 가는 비명소리가 터지였다.

리씨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듯 하였다. 황급히 문을 열고 캄캄한 밖으로 뛰여나갔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룡이야, 웬일이냐?》

겁에 질린 룡이가 팔에 와 왈칵 매달리며 바들바들 온몸을 떨었다.

《어머니, 저것 봐요.》

그제야 리씨는 죽어 늘어진 사람을 등에 업고 마당을 지나 허청간쪽으로 사라지는 검은 그림자를 보았다.

《아니, 저게 누구냐?》

《모르겠어요.》

《그럼, 네 오빠는?》

《업고가는 사람이 오빠같아요. 뒤따라가는건 어둔이오빠구…》

리씨는 가슴이 떨리였다.

(업어들인 사람이 어순이일가? 그런데 왜 허청간으로 가져갈가? 아니?! 그럼 벌써 숨이 진걸?…)

리씨는 두눈을 꼭 감았다. 캄캄한 하늘땅이 빙빙 맞붙어 돌아갔다. 찌쿵! 하고 젖은 허청간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두런두런 주고받는 말소리도 들리고…

리씨는 그 소리를 먼 꿈나라에서처럼 어슴푸레 들으면서 밑둥을 잘린 나무처럼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정신을 잃었다.

온밤 집안팎이 불안으로 잠들지 못하였다. 허청간문이 조심스레 여닫기고 사람들이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리였다.

리생원은 깜박 잠이 들었다가 새벽녘에 깨여났다. 뒤간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가 허청간문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여나오는것을 보았다.

부쩍 이상한 생각이 든 리생원은 허청간쪽으로 조심히 다가갔다. 사람의 신음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새벽 고요속에서 그 신음소리는 꺼질듯꺼질듯 하다가 다시 이어지군 하였다.

상투끝으로 무슨 독벌레같은것이 스르르 기여가는듯 한 무서움을 느끼며 리생원은 허청간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엎어놓은 빈 장독이며 헌 삼태기며 멍석과 찢어진 그물, 마사진 노대같은것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그런데 구석쪽 희미한 등불밑에 웬 사나이 하나가 쓰러져있는것이 보이였다.

희미한 불빛아래서도 그사람의 시체같이 창백한 얼굴이 보이고 가슴노리에 감긴 피가 내밴 흰 천쪼각도 보이였다. 그 사람의 옷인듯 한 앞섶이 터진 검정옷이 활개를 편채 벽에 걸려있었다.

(아니, 저게?)

리생원은 흠칫 놀라며 한걸음 물러서기까지 하였다. 왜인의 옷이였던것이다! 옷뿐만아니라 누워있는 사람도 틀림없이 왜인이였다. 앞머리털을 정수리까지 밀어버리고 그뒤로 한뽐이나 되게 틀어 쪽진 길쭉한 왜상투가 똑똑히 보이였다.

(아니? 어떻게 되여 이 집 허청간에 왜인이 들어와 있을가? 룡복이가 끌어들였을가? 아니, 그럴리 없지.…)

리생원은 그때부터 번거로운 생각때문에 끝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앉아있다가 날이 훤히 밝자 밖으로 나섰다.

밤중까지 비를 뿌리던 하늘은 파랗게 개였는데 뒤울안 배나무에서는 바람결에 잎새가 흔들릴 때마다 아직도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고있었다.

그 배나무밑에서 무엇인가 하고있던 웬 낯선 총각이 리생원을 보자 꾸벅 인사를 하며 마주나왔다.

《편히 주무셨습니까? 제가 룡복이올소이다.》

《아니? 임자가?》

리생원은 너무도 놀랍고 반가와서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대견한듯 껄껄 웃었다.

《참, 세월이란… 임자가 아주 다 큰 사람이 되였군. 그간 홀로 난 어머니와 어린 동생을 거느리구 고생이 많았겠네.》

《고생이랄게 없소이다.》

대답도 의젓하였다. 리생원은 다시한번 룡복의 름름한 모습을 홀린듯 바라보았다.

총각의 머리태를 보기좋게 감아넣고 베수건으로 가뜬하게 동인 둘레머리와 붓으로 그어놓은듯이 검고 숱진 눈섭밑에서 번쩍거리는 정기도는 눈, 둥실한 얼굴과 침착하고 어른스러운 몸가짐… 걸친것은 비록 물날은 베옷에 지나지 않지만 마구 다룰수 없는 무게와 인품이 엿보이는 름름한 모습이였다.

남달리 총명하고 지혜로왔던 그의 어린시절을 잘 알고있는 리생원이였기에 더욱 마음 대견해지는것이였다.

리생원은 룡복의 모습을 흡족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참, 지난밤에는 밤이 깊도록 앉아서 임자를 기다리다가 그만 피곤에 몰려서… 허허허…》

그러자 룡복은 미안해하며 얼른 대답하였다.

《생원님이 여러해만에 오셨는데 저는 그런줄도 모르고 밤늦게 돌아온데다가 뜻밖에 급한 일까지 당하고보니 미처 인사도 올리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뜻밖에 급한 일을 당했다는 말을 들은 순간 리생원은 문득 허청간에서 피투성이가 된 왜인을 본 일이 생각나서 저도 모르게 낯빛이 굳어졌다. 그 왜인이 룡복이와 련관이 있는자가 틀림없다는 짐작이 들자 속생각을 숨길줄 모르는 리생원은 참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따져물었다.

《뜻밖의 일을 당했다니… 임자가 무슨 상서롭지 못한 일을 저지른게 아닌가?》

《아니, 그럴리 있소이까?》

《그러면 저 허청간에 숨긴 왜인은 대체 웬놈인가?》

리생원은 룡복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룡복은 조금도 당황해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그 왜인은 지난밤 제가 업어왔소이다.》

《그 도적놈의 족속을 사람의 집에 끌어들인단 말인가?》

리생원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검은 수염을 내리쓸며 룡복을 쏘아보고 룡복은 문옆에 무릎을 깔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래, 임자가 왜인을 숨겨두었다가 어찌할 심산인가? 자네 선친이 살아있어두 내 오래간만에 만난 임자에게 이런 말은 하지 않을걸세. 하지만 임자가 아버지없이 자라 왜인들과 집적거리며 무슨 사단을 일으킬지 측량할수 없으니 강건너 불보듯 할수가 있겠나?》

《생원님, 고정하십시오. 죽어가는 사람을 그저 내버리고 올수 없어서 업어왔을뿐 왜인들과 무슨 거래가 있는것은 아닙니다.》

《남이야 죽건말건 임자가 무슨 상관인가. 더구나 제 나라 사람도 아닌 왜인을… 왜놈들이 어떤 족속인지 임자가 모르나? 천하에 간사조폭한 무리들이네.》

룡복은 말없이 듣기만 하였다.

《임자의 선친인 안치록이 그 사람도 왜놈들에게 잘못되였는데 그래 임자가 그것을 잊었단 말인가?》

공손히 앉아있던 룡복은 천천히 머리를 들며 대답하였다.

《어찌 제가 왜놈 미운 마음을 한시인들 잊겠소이까? 하지만 저 왜인의 일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룡복은 침착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어제저녁 어슬녘에 어둔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다가 개울가 풀숲에 웬 사람이 쓰러져있기에 달려가보니 가슴을 칼에 찍힌 한 마흔살남짓한 사람이였소이다. 아무리 흔들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더군요. 그런데 때마침 쏟아지는 찬비가 얼굴에 떨어지자 그 사람이 약간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더니 〈제발… 살려주시오.〉 하고 간신히 말을 합디다. 어찌다가 이렇게 되였는가고 묻자 〈왜관에서… 그놈들이 나를 도적으로… 몰아…〉 겨우 이 말을 하고는 다시 정신을 잃지 않겠소이까.》

《그놈이 우리 말을 하던가?》

리생원이 놀라운듯이 물었다.

《말뿐이 아니라 입은 옷도 우리 옷이였으니 우리는 조금도 의심을 가지지 않았소이다. 왜놈들에게 화를 당한 사람이라기에 그저 목숨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급하여 우리는 무작정 업고왔소이다. 그런데 상처를 처매려고 옷을 벗기니 안에 입은 왜옷이 드러나고 머리수건밑에서 왜상투가 나타나지 않겠소이까!》

《허- 그러니 변복을 한 왜놈이였네구려.》

《그런셈이지요. 매우 꺼림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죽어가는 사람을 다시 밖에 내다버릴수 없어서 상처를 대강 동여서 허청간에 그대로 두었는데 이제 목숨이나 구하면 저갈데로 보내겠소이다.》

리생원은 큰 기침을 두어번 할뿐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굳어진 얼굴빛이 그냥 풀리지 않은것을 보니 마음은 아직도 매우 언짢은 모양이였다.

《불행을 당한 사람을 동정하는 임자의 마음은 갸륵하네만 세상사람을 다 그렇게 대할수는 없네. 짐승을 사람으로 잘못 알수도 있는것이니.》

《저에게도 생각이 있소이다.》

《그리고 관가에서 이 일을 알면 왜인을 숨겨준 죄를 임자가 받게 되겠는데 화를 입지 않도록 조심을 하게.》

어디까지나 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룡복이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뜻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말씀을 명심하고 실수없이 하겠소이다.》

리생원은 침착하게 대답하는 룡복의 름름한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문뜩 생각난듯이 물었다.

《듣자니 임자의 약혼녀가 불상사를 당한 모양인데 그 일은 어찌 되였나?》

룡복은 말없이 눈길을 떨구었다.

《아직 종적을 찾을길이 없소이다.》

리생원은 《허-》 하고 시름겨운 긴 탄식을 터뜨릴뿐 더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두사람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이윽고 리씨가 아침상을 들고 들어왔다.

지난밤에 너무도 놀라운 일을 당하여 잠시 정신까지 잃었던 리씨는 앓고난 사람처럼 아직도 낯빛이 퍼릿하였다. 그닥 개운치 않은 몸이였으나 리씨가 있는 정성을 다해 차린것이여서 리생원의 상에는 그래도 보리가 약간 섞인 흰쌀밥에 비지찌개와 고추장에 마른 전복붙이도 있었지만 상도 없이 아래목 맨땅에 둘러앉은 룡복이네 식구들의 앞에 놓인 질자배기에는 모래처럼 흩어지는 피쌀밥에 토장국뿐이였다.

아침을 치르고나자 리생원은 리씨에게 다리 저는 하늘소를 부탁한 후 헌 삿갓만 쓰고 어디론가 나가버리였다. 룡복이에 대한 언짢은 마음때문인지도 몰랐다.

《원래 한시도 가만 앉아있지를 못하는게 그 어른의 성미란다. 그러니 이제 두루 돌아다니다가 또 들릴게다.》

아들의 마음을 짐작한 리씨는 누워있는 주인없는 하늘소를 바라보며 룡복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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