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다음날, 동래 동헌뜰에서는 울릉도에 함부로 건너가서 일본과 말썽을 일으킨 《범월죄인》 안룡복을 비롯한 여러 어부들에 대한 심문이 벌어졌다.

안룡복이와 한배를 타고갔던 능로군젊은이들과 목서방네 배군들도 모두 끌려와있었다.

숯불이 이글거리는 청동화로를 량쪽에 벌려놓아서 부사 리희룡과 접위관 홍중하가 앉아있는 동헌마루에는 봄날같이 훈훈한 기운이 서려돌았으나 《죄인》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섬돌아래에는 한겨울의 차거운 바람이 언땅을 핥으며 불어지나고있었다.

산수털벙거지를 제껴쓰고 검정더그레를 걸친 라졸들이 먼저 안룡복을 끌어다 섬돌아래에 꿇어앉히고 허리를 굽신거리며 물러가자 부사 리희룡은 《죄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있었다. 옥에서 옥으로 옮겨지며 여러달동안 해빛을 보지 못한 《죄인》의 얼굴은 초췌하고 옷은 람루하였다.

하지만 목에 걸린 큰칼을 두손으로 힘겹게 받쳐들고 동헌마루를 바라보는 《죄인》의 눈빛은 조금도 생기를 잃지 않고 번쩍거리였다. 무엇인가 절절히 호소하는듯 한 눈빛이였다.

리희룡의 머리속에는 문득 지난해 봄 생일잔치때 보았던 능로군총각의 얼굴이 떠올랐다.

거의 한해가 지나가는 사이에 몰라볼 지경으로 수척해지고 변모되기는 하였으나 그 당돌한 태도며 번쩍거리는 눈빛은 그대로였다.

(호장이 말하던 바로 그 총각놈이 틀림없구나!)

그렇다면 당초에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부사는 갑자기 위엄어린 눈길로 섬돌아래 벌려놓은 형구들을 휘둘러보며 호통을 뽑았다.

《네 이놈, 지은 죄를 알겠느냐?》

뜻밖의 물음을 받고 머리를 쳐든 안룡복의 얼굴에는 놀라는듯 한 기색이 떠올랐다.

《소인은 지난해 봄에 풍랑에 밀려 울릉도에 갔다가 뜻하지 않게도 왜놈들에게 잡혀 왜땅에 가서 갖은 고초를 겪다가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사람이온데 자초지종을 밝히기 전에 지은 죄부터 물으시니 그 뜻을 짐작할수 없소이다.》

《짐작할수 없다구? 그래 네 죄를 모르겠단 말이냐?》

리희룡은 눈알을 부라리며 그러면 어디 들어보라는듯이 안룡복의 《죄행》을 내리엮기 시작하였다.

《네 이놈! 먼 바다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나라의 법을 어기고 울릉도에 배를 대였을뿐아니라 섬에 들어가 왜인들과 되지도 않은 말썽을 일으키지 말고 돌아오라는 관가의 령을 거역한것은 죄가 아니더냐? 또 표류해간 처지로 왜인들에게 잡혔으면 순순히 살려주기를 바랄노릇이지 일본의 여러 태수들에게 갖은 행악을 다하여 두 나라 사이의 교린관계를 흐리게 하였다니 그것은 죄가 아니고 무엇이냐? 거기다가 지은 죄를 일시 면해보려고 일본막부의 서계까지 받았노라고 엄청난 거짓말로 이웃나라 관원을 속이고있다니 그래도 네 죄를 모르겠느냐?》

룡복은 한동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앉아있었다.

(천하에 가증스러운 왜놈들!)

쯔시마차왜라는자가 미리 부사에게 저들에게 유리하도록 사건의 진상을 뒤집어서 말을 한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리 별짓을 다해도 대낮처럼 밝고 분명한 사실을 간사한 지껄임으로 영영 뒤집어놓을수는 없다!)

마음을 다잡은 안룡복은 침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사또께서 기어이 죄를 주신다면 소인이 감히 무슨 대답할 말이 있겠소이까. 다만 바라건대 소인이 그간에 겪은 일들을 사실대로 낱낱이 아뢰이겠으니 대마도차왜가 한 말에 비추어서 어느것이 진실이고 어느것이 거짓인지 하는것은 사또께서 분별하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놈, 되지도 않은 장황설로 또 누구를 속이려는거냐?》

무작정 눌러보려고 덤비는 부사를 옆에 앉아 보고있던 홍중하가 딱한듯이 입을 열었다.

《그럴것없이 잠간 들어보시는것이 어떻소이까? 아무래도 그간의 일을 따져물은 다음에야 죄를 주어도 줄터인데… 제 스스로 공초를 하겠다는데 못 들을것이 있겠소이까. 진실여부는 둘째치더라도 우선 들어봄이 마땅할가 하오.》

《허허… 홍교리는 아직 잘 몰라서 그러시는구려.》

리희룡은 벌개진 얼굴에 어색한 웃음을 띠웠다.

《저놈이 비록 천한 능로군에 지나지 않으나 말주변이 좋고 담이 커서 소 갈데, 말 갈데를 가리지 않는자로 린근에 소문났는데… 어험!》

리희룡은 생일날에 있은 일까지 다 말하려다가 그만두는 눈치였다.

《정 그러시다면 어서 들어보시오만…》

벼슬품계로 보나 나이로 보나 아래사람이였으나 친히 임금으로부터 접위관의 임무를 받고온 조정의 관리를 소홀히 대할수가 없어서 리희룡은 입맛을 다시며 돌아앉아버리였다.

이리하여 안룡복은 동래부사와 접위관 홍중하는 물론 동래관아의 판관이하 여러 벼슬아치들과 각방 아전들 그리고 목서방을 비롯한 여러 어부들이 다 듣는 자리에서 왜땅에서 겪은 일들을 말하게 되였다. 간사한 쯔시마차왜에 의하여 사실이 오도될수 있었기때문에 룡복은 될수록 누구에게나 확실한 납득이 가도록 세세한 일까지 빼놓지 않고 낱낱이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청어떼를 쫓아 목서방네 배와 함께 북쪽으로 향하다가 뜻밖에 풍랑을 만나 울릉도에 표류해간 일 그리고 울릉도에서 섬으로 기여드는 왜놈들의 배와 맞다들었던 일로부터 시작하여 일본의 오끼섬과 호끼주에 가서 어둔이와 함께 왜놈들의 위협과 온갖 간사한짓을 이겨내던것도 다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어찌하다가 박어둔이는 목숨까지 잃게 되였느냐?》

비분에 잠긴 룡복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홍중하가 차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예, 낱낱이 아뢰이겠소이다. 그후 거의 한달가까이 지나서 호끼주태수는 막부의 명의로 울릉도와 그 부속섬들이 조선에 속한 섬이므로 다시는 일본어부들이 함부로 출입하지 않게 하겠다는 공식서계를 만들어주었소이다. 그 서계를 가지고 왜인들의 〈호위〉까지 받으면서 귀로에 올랐을 때 소인들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소이까! 이 땅에 태를 묻고 자란 백성의 도리를 끝끝내 지켜내였으니 이제는 그 땅을 밟아도 떳떳하리라는 마음이…》

《쓸데없는 사변요설로 인심을 유혹할 생각을 말고 어서 사실만 아뢰여라.》

리희룡은 룡복의 말허리를 사정없이 잘라놓고나서 채수염을 천천히 내리쓸며 《죄인》으로 끌려와 섬돌아래 늘어앉은 수십명의 어부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놀랍고 지어 황홀해하는 눈길로 안룡복을 바라보고있었다. 실로 험한 왜땅에 가서 세상을 놀래울만 한 큰 일을 했다는 감탄이 모두의 얼굴에 가득하였다.

리희룡에게는 그것이 더욱 비위에 거슬리였다.

《어서 사실대로 낱낱이 아뢰지 못할가.》

부사가 다시 독촉을 하자 룡복은 잠시 끊었던 말을 계속하였다.

《원통한것은 그때까지 소인들이 간사한 왜놈들의 속심을 전혀 모르고있은것이였소이다.

막부의 서계를 가져다 조정에 바치면 왜놈들이 다시는 울릉도를 넘겨다보지 못하리라는 생각으로 그저 기쁜 마음뿐이였소이다.

그런데 소인들이 나가사끼에 거의 이르렀을 때 뜻밖에도 대마도왜놈들이 밤중에 달려들었소이다.》

룡복은 어둔이가 왜놈들과의 격투끝에 심한 상처를 입고 쓰러지던 일을 낱낱이 이야기하였다.

《막부의 서계를 중간에서 빼앗은 대마도왜놈들은 저들의 죄행이 들어날가보아 소인들을 부산에 압송해온 후에도 또 달포가 넘도록 왜관토옥속에 가두고 내놓지를 않았소이다.

옥에 갇혀있는 동안에 박어둔의 상처는 안으로 곪으며 위독한 상태에 이르게 되였소이다. 거의 숨이 끊어지게 되여서야 왜놈들은 할수없이 소인들을 동래부에 넘기였는데 박어둔이는 동래옥에 넘어온 그날밤을 넘기지 못하고말았소이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석달가까이 옥에 가두어서 끝내 죽인것은 저 간악한 왜놈들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옳고그름을 밝게 살펴 대마도차왜의 간사한짓을 낱낱이 일별해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룡복이가 말을 마치자 리희룡과 홍중하는 한동안 무어라고 대답할 말이 없어서 잠시 헛기침만 하고있었다. 그러다가 부사가 먼저 《죄인》을 다스려야 할 관장의 체면을 생각했던지 자리를 고쳐앉으며 섬돌아래에 대고 호통을 뽑았다.

《네 이놈, 네가 아무리 말주변이 좋다 하지만 감히 관부를 속이기를 식은죽먹듯 할셈이냐?》

룡복이가 머리를 쳐들었다.

《소인은 사실대로 말하였을뿐 추호도 속인 일이 없소이다.》

《그렇다면 네가 무슨 근거로 막부의 서계를 빼앗은것이 대마도주의 작간이라고 하는거냐?》

《그럴만 한 근거가 있소이다. 나가사끼관사에 잡혀있을 때 소인들이 년전에 백운산속에서 잡았다가 놓친 왜도적두목 요시라라는자가 와있었소이다. 그자가 막부의 서계를 빼앗아 보내달라는 대마도주의 부탁을 가지고 나가사끼포구로 온것이 분명하였소이다. 그럴뿐아니라 소인들을 호송하던 호끼주관원들과 사공들이 우리가 잡히는것을 보면서도 모르는체 하였으니 그것은 그자들이 사전에 서로 연통하고있은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소이까.》

리희룡은 잠시 생각을 굴려보다가 더럭 역증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괘씸한 놈, 나라간의 교린관계를 그런 애매몽롱한 추측으로 의혹삼아 그르치라는것이냐? 대마도주의 편지에는 그런 말은 일언반구도 없을뿐더러 차왜의 말을 미루어보더라도 너희들이 막부의 서계를 받았다는 거짓말로 일시 죄를 면해보려 한다는것이 분명하다. 홍교리, 그렇지 않으시오?》

리희룡은 홍중하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홍중하의 얼굴에는 알릴듯말듯 쓰거운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명색이 동래부사라는 사람이 이름없는 능로군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여 무작정 욕설과 관권으로 내려누르려 하는 꼴이 너무도 가소로왔던것이다.

옳고그른것은 둘째치더라도 한개 고을의 원으로서 사람다루는 방법이 저러하고서야 어찌 지방행정이 바로 될수 있겠는가. 말을 들어보면 안룡복이라는 능로군이 울릉도와 일본에 건너가 한짓이 비록 나라의 법에는 어긋난다 하더라도 제 나라 령토를 지키려다가 왜놈들의 간사한 롱락에 빠진것인데 무작정 죄인으로 다스릴수는 없는 일이였다. 실로 변방고을의 한 배군으로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큰일을 하려고 한것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쯔시마차왜를 잘 위무하여 말썽없이 돌려보낼 소임을 맡고 온 홍중하로서는 안룡복을 두둔할수가 없었다.

만일 이 사실을 그대로 조정에 상주하면 틀림없이 일이 크게 번져져서 온 조정이 술렁거리고 자기도 시끄러운 일에 말려들어 무슨 곤경을 겪을는지 알수 없었다.

그러니 접위관의 소임을 말썽없이 수행하자 해도 그렇고 조정을 소란하지 않게 하자고 해도 안룡복이를 두말 못하게 죄인으로 눌러버리는 길밖에 없었다.

홍중하가 아닌 다른 관리가 이 일을 맡는다 해도 달리는 처리할수 없을것이였다. 세상이 그렇게 되여먹은것인데 굳이 동래부사만을 탓할것도 없는 일이였다.

《허허… 홍교리생각은 어떠시오?》

리희룡은 홍중하가 쓰거운 표정을 지은채 한동안 말이 없자 등이 달아서 다시한번 물었다.

홍중하는 다물고있던 입을 열고 마지못해 대답하였다.

《지당한 말씀이요. 외교관계의 전례를 보아도 일본막부가 천한 배군에게 서계를 써준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니 거짓말로 론단할만도 합니다.》

리희룡은 보란듯이 섬돌아래에 대고 눈알을 부라렸다.

《봐라 이놈, 너의 거짓말을 곧이 듣을 사람이 어디 있느냐?》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룡복은 더는 참을수 없는듯 울부짖었다.

《막부의 서계를 찾아서 일을 바로잡을 계책을 론할 대신 덮어놓고 의심하며 죄만 묻고있으니 실로 억울하옵니다. 서계만 도루 찾으면 소인의 유죄무죄도 백일하에 밝혀질것이 아니겠소이까.

만약 대마도차왜에게 너희들이 서계를 중간에서 빼앗은 사실을 막부에 알리겠노라고 하면 그자가 할 말이 없게 될뿐아니라 서계도 돌려보내지 않을수 없을것입니다. 소인의 어리석은 계책이오나 한번 시험해보기를 바라옵니다.》

룡복의 말을 듣고있던 홍중하의 얼굴이 갑자기 모욕을 당한 사람처럼 울기가 올라 벌겋게 변해가고있었다.

《네가 변방고을의 한개 격군으로서 조정을 대체 어떻게 알고 감히 어리석은 계책을 내놓으며 관원을 가르치려드는것이냐?》

《나라를 지키는 일에서 어찌 량반, 상놈이 다르겠소이까? 소인은 이 나라 백성된 도리를 지키려 했을뿐 조정과 관원들을 무시하거나 속인 일은 추호도 없소이다.》

《저런 불경스러운 놈!》

리희룡은 홍중하의 체면을 지켜주려고 다급히 호통을 뽑았다.

《한사코 제가 옳다고 발악을 하고있으니 그게 또한 불경죄에 속하는줄 모르느냐?》

룡복은 목에 걸린 칼을 두손으로 움켜쥐고 몸부림을 쳤다. 사실을 밝혀놓으면 모든 일이 순조로이 풀릴줄 알고 부사나 접위관을 만날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렇게 원통하고 기막힌 일이 어디 있는가.

룡복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동헌마루를 쏘아보았다.

《실로 원통하오. 비록 천한 배군이지만 소인도 이 나라 백성임에 틀림없는데 어찌 제 나라 사람의 말보다 대마도도주나 차왜의 말을 더 믿으며 왜놈들의 죄는 아니 보고 죄없는 사람에게 죄를 만들어 씌우려드는지… 실로 원통하오.》

《아니, 저눔이?》

부사와 접위관이 흠칫 놀라며 마주보았다. 동헌뜰이 술렁거리였다. 꿇어앉은 《죄인》들속에서도 수군수군 불만스러운 소리가 터져나왔다.

부사 리희룡이 불에 덴듯이 벌떡 일어서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봐라! 저놈을 당장 형틀에 잡아매구 볼기를 쳐라! 태장 30도를 어김없이 세여서 매우 쳐라!》

《예―잇―》

통인이 길게 대답하고나서 급창을 불러 부사의 령을 전하자 급창이는 다시 찢어지는듯 한 목청으로 사령들을 불렀다.

《사령! 태장 30도를 매우 치라신다!》

《예―잇―》

련이어 울리는 살벌한 청령소리에 동헌뜰이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형장으로 변하고말았다.

《죄인》을 형틀에 잡아매자 집장사령이 곤장을 한아름이나 안아다 와르르 쏟아놓았다.

동헌뜰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일을 아까부터 문틈으로 내다보고있던 진향이는 저도 모르게 온몸을 떨며 두눈을 꼭 감아버리였다. 하얗게 질린 뺨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큰일을 치르고 돌아와서도 죄인취급을 당하는 안룡복이라는 청년에 대한 애끓는 동정과 그것을 보면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줄수 없는 자기의 처지를 원망하여서만 흘리는 눈물이 아니였다.

의롭고 아름다운것은 무엇이나 다 썩고 고린내나는 량반들에게 짓밟히고마는 이 세상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저렇듯 기개높고 장한 청년을 영웅으로 떠받들지는 못할망정 죄인으로 몰아 형틀에 잡아매는 저 사람들이 과연 이 나라의 량반인가, 아니면 왜놈들의 비위나 맞추는 남의 나라 량반인가.

진향이는 입귀로 흘러드는 눈물을 삼키며 다시 문틈으로 동헌뜰안을 내다보았다.

안룡복의 모습이 한눈에 안겨왔다. 목에 걸린 큰칼우에 반나마 풀어헤쳐진 머리태, 여위고 축갔으나 본바탕이 다부지고 둥실하게 생긴 얼굴모습, 정기도는 눈매와 꽉 다물린 입술.

지난해 봄 부사의 생일잔치때 름름한 그 모습을 본 때로부터 한해의 세월이 흘렀지만 진향의 머리속에서는 그의 모습이 한시도 지워진적이 없었다. 일신의 부귀영화밖에 모르는 부사나 좌수사와 같은 썩은 량반들의 더러운 몰골을 볼 때마다 그 깨끗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이 더욱 뚜렷이 마음속에 사무쳐오군 하였던것이다.

《철썩!》

드디여 볼기를 치는 끔찍한 소리가 들리였다.

《하나이요―》

《처절썩!》

《두흘이요―》

진향은 두주먹을 부르쥐고 눈을 꼭 감은채 몸부림을 쳤다. 곤장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제 몸에 매가 떨어지기나 하듯이 흠칠흠칠 놀라며 몸을 떨었다.

《열다섯이요―》

《철썩!》

《스물이요―》

피가 튀고 살점이 묻어나는듯 매질소리는 점점 더 처절하게 울려퍼졌다. 아무리 굳센 사람이라도 이쯤되면 비명을 터뜨리지 않을수 없는 때였다.

문득 안룡복의 피타는 울부짖음이 터지였다.

《아, 원통하구나! 왜놈들의 소굴에서도 형틀에 한번 매우지 않았는데 제 나라에 와서 매를 맞을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아―》

피가 철철 흘러떨어지는듯 한 그 소리를 가슴이 저려와서 더는 들을수 없었다. 진향이는 두귀를 손바닥으로 막은채 미친듯이 안채로 달려들어가 싸늘한 방바닥에 엎드려 남모르는 통곡을 터뜨리였다.…

이날, 동래부사 리희룡은 안룡복이와 함께 울릉도에 갔던 능로군들과 목서방네 배군들까지 모두 볼기를 치며 심문한 다음 모조리 《도류안》(법을 어긴 사람들을 적어두는 문서.)에 기입하게 하였다.

이 《도류안》에 한번 오르면 언제가도 도적의 루명을 벗지 못할뿐아니라 늘 사령놈들의 감시와 시달림을 받아야 하는것이였다.

《나라의 법을 우습게 여기고 금지하는 섬에 함부로 건너가면 어떻다는것을 이제는 알겠느냐?》

리희룡은 피가 랑자한 형장을 굽어보며 무섭게 으름장을 놓은 다음 《죄인》들을 모두 놓아보내였다.

하지만 안룡복이만은 일본에까지 건너가서 두 나라사이의 교린관계에 간섭한 중죄인임으로 그냥 옥에 가두라고 분부하였다.

동헌뜰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였다. 성북쪽에 우뚝 솟은 소산을 성급히 휘돌아내린 하늬바람이 구석구석을 차겁게 핥고 지나갔다.

불꺼진 청동화로에서 흩날린 재티가 동헌마루와 섬돌우를 허옇게 덮어가고있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