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백년잠을 깨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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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음력 11월.

진눈까비가 푸득푸득 흩날려 떨어지는 음산한 날씨였다. 동지달의 짧은해가 어느덧 서쪽산마루에 걸리고 불그레한 저녁노을이 하늘 한끝에서 너울거리고있을무렵.

크고작은 배들이 닻을 내리고있는 부산포 한구석에서 금방 고기잡이에서 돌아온 매생이 한척이 고기를 푸고있었다.

포구에 빼곡이 들어선 배들을 살펴보며 물고기를 그물망태에 퍼넣고있던 귀얄수염달린 중늙은이가 얼마 멀지 않은곳에 닻을 내린 왜선쪽을 눈여겨보다가 아들인듯 한 젊은이에게 말하였다.

《저 왜놈은 무슨 벼슬 사는 왜놈인가부다.》

젊은이도 왜선쪽을 바라보았다.

그리 크지 않은 배인데 왜놈 하나가 배우에 짧은 두다리를 벌리고 서서 포구를 이리저리 살펴보고있었다.

작은 키에 앙바틈한 목, 가무잡잡한 상판에서 반뜩거리는 작은 메밀눈, 검은 기모노자락밑으로 약간 드러나보이는 알락바지, 허리에 찬 왜검 두자루…

장사치왜인이 아닌것이 분명하였다. 왜관쪽에서 빈 가마 한틀을 메고 왜인 일여덟이 부두가로 급히 오는것을 보자 배우에 서있던자가 서둘러 그들을 맞을 차비를 하고있었다.

《흥! 저놈들의 꼬락서니를 보지 않았으면 먹은 밥이 살로 가겠어요.》

젊은이는 눈을 찔 흘기며 저혼자 역증을 냈다.

《남의 나라에 와서 장사를 하는 주제에 쩍하면 칼부림을 하구… 아버지, 못 들었어요? 어제 아침에 왜관왜놈이 또 사람을 칼로 쳤대요.》

《아니? 어째서?》

《반찬거리값으루 내준 쌀에 뉘가 좀 섞였다구 고지기와 서로 다투었는데 왜놈이 칼을 빼들고 좌자촌앞까지 따라가서 칼로 고지기의 머리를 쳤대요. 그래서 부산진 첨사어른이 급히 군사를 풀어 칼을 빼앗구 결박을 지워 왜관에 넘겨주면서 엄중히 처벌하라구 들이댔대요. 그런데 왜관왜놈들이 뭐라구 했는지 아세요? 고지기가 죽기 전에는 죄를 중하게 다스릴수 없다는거예요.》

《원, 죽일 놈들… 그래, 그놈들을 가만 내버려둔단 말이냐?》

《동래부사가 비변사에 급보를 띄웠다지만 어느 세월에 시원한 대답이 오겠어요. 벌써 왜관놈들이 그놈을 대마도루 빼돌렸다는데…》

《허― 기막힌 일이구나. 그 짐승같은놈들을 이 땅에 들여놓은게 잘못이지…》

혀를 끌끌 차며 부두에 내려서는 왜놈들을 흘겨보던 로인이 깜짝 놀라 소리를 쳤다.

《아니? 저게 웬 사람이냐?》

흰옷 입은 사람들이 왜인들의 배에서 내려서는것을 본것이였다.

한사람은 어디를 상했는지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 겨우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저것 봐라, 차림새를 봐선 우리 사람인데…》

《가만있어요. 저게 동래 안총각이 아니우?》

눈밝은 젊은이가 물고기를 푸던 참대조리를 뿌려던지고 벌떡 일어섰다.

《안총각이라는게 누구냐?》

《올봄에 풍파에 밀려가서 돌아오지 못한 안룡복이라는 총각이지요. 올봄 수군훈련때도 저 사람이 안 보였어요.》

《그럼 다른 사람은 누구냐?》

《그 사람은 얼굴을 들지 않으니 모르겠어요.》

이때 왜관에서 나온 왜놈들이 두사람을 가마안에 쓸어넣고 차일을 드리운 다음 왜관쪽으로 메고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저것 보지. 가마에 태워가지구 가네.》

《그것참, 이상두 하다.》

그사이에 가마를 둘러멘 왜놈들은 룡두산에 있는 왜관수문안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다음날 아침.

동래부사 리희룡이 방금 조사를 마치고 륙방관속들에게 하루일을 대강 분부하고난 뒤였다.

내아에 들어가 조반을 먹으려던 참인데 머리태를 따늘인 여드름투성이통인녀석이 쭈르르 기여들어와 쯔시마도주가 보낸 차왜(도주의 사신)가 만나뵙기를 청하여 동헌밖에서 기다린다고 아뢰였다.

리희룡은 대뜸 이마살을 찌프리였다. 또 무슨 말썽거리를 들고왔는지 만나기 전부터 골치가 아팠다. 언제 보나 좋은 일로 찾아온적이 없는 왜놈들이였다.

왜관에서 시장을 여는 날이 엿새에 한번은 너무 뜨니 사흘에 한번씩 열게 해달라, 팔고 사는것을 금지하는 물건의 가지수가 너무 많으니 줄여달라, 급료로 주는 쌀이 정하지 못하고 찬거리가 적다.… 이런 자질구레한 일뿐만아니라 례조에 보내는 지저분한 공문따위를 들고와서도 제놈들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무리를 지어 동헌에 몰려와 입을 모아 짖어대고 심지어 문을 지키는 병졸들이나 통사(통역)들을 칼로 쳐서 상하게까지 하는 등 그 시끄럽고 번거로운 페단은 이루 다 말할수가 없었다. 리희룡은 제발 자기가 이 동래 동헌에 앉아있는 24삭(24개월)동안만은 큰 말썽이 없어주었으면 했다. 과만(임기가 끝나는것)으로 벼슬이 갈리게 된 후에야 무슨 일이 터지든지 상관할바 없지만 자기가 앉아있는 동안만은 저 조폭한 왜놈들이 좀 참아주든가 아니면 자기가 그놈들의 잔등을 잘 쓰다듬어주어서라 어쨌든 말썽이 없게 만들어야 하였다.
 속궁리가 그랬지만 식전아침부터 찾아온 쯔시마차왜와 마주앉기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내가 조반전이니 좀 기다리라구 해라.》

리희룡은 통인녀석에게 역정섞어 한마디 한 후 내아로 들어가버렸다. 내아로 들어가니 수청기생으로 점찍어 분부를 내린지 오랜 진향이는 오늘도 보이지 않고 늙어 쭈그러진 행수기생이 할기죽거리며 반주를 부어주었다.

《진향이는 아직 병이 중하여 못 나왔으니 너무 울울해하지 마세요.》

잠자코 부어주기만 한대도 역겨울터인데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으며 아양을 떠는 바람에 리희룡은 더럭 골을 냈다.

《그년이 아직도 병을 칭탈하구 몸을 도사린단 말이냐? 괘씸한 년!》

리희룡은 달기가 꿀같은 잣죽이지만 두어술 뜨는체 하다가 동헌으로 나와버렸다. 나오자바람으로 차왜를 불러들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윽고 키 자그마하고 얼굴이 가무잡잡한 왜인이 대문간에 나타났다.

진눈까비가 흩날리던 어제 저녁 부산포구에 내린 쯔시마차왜 다찌바나 신죠였다.

그는 성급한 동작으로 허리에 찬 왜검을 풀어 따라온자에게 맡기고 동헌마루아래 와서 읍을 하고 서더니 허리를 깊이 굽혀 갑삭갑삭 두번 절을 하였다.

《부사대인께 문안드리오. 쯔시마도주의 분부를 받고 온 차왜옵니다.》

옆에서 통사가 뒤번져주는 왜말을 듣고있던 동래부사는 고개를 두어번 크게 끄덕이였다.

《그래, 그대의 소임은 무엇인고?》

《황송하옵니다. 형부군(쯔시마도주를 가리키는 말)의 서계를 가지고 왔소이다.》

다찌바나는 두루마리서계 두퉁을 두손으로 들어 바치였다. 리희룡은 통인녀석이 재빠르게 받아올린 그 서계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한통은 례조에 보내는 공식서계이고 다른 한통은 자기에게 보내는 사사편지였다.

《알겠다. 회답은 후일 줄터이니 그리 알고 물러가 기다리라구 해라.》

통사가 이 말을 왜말로 번져놓자 다찌바나는 두말없이 머리털을 정수리까지 밀어버린 시퍼런 이마를 깊이 숙여 두번 절을 한 대문간으로 나가서 허리에 칼을 차더니 역시 성급한 걸음걸이로 삼문밖으로 사라지였다.

차왜가 나가자 리희룡은 옆에 있던 판관에게 서계를 읽게 하였다. 노란 쥐꼬리수염을 흔들며 판관이 류창하게 서계를 읽어내려갔다.

《…귀국의 연해 어민들이 해마다 우리 나라의 죽도에 배를 대기때문에 지방관리가 금지한다는것을 설명하고 다시는 배를 대지 말것을 일렀습니다. 그런데 올해 봄에 이미 40여명이 죽도에 들어와 고기를 잡으므로 지방관이 그중 2명을 잡아 한때의 증거로 삼도록 하였습니다.…

앞으로 그 섬에 결코 배를 대이지 못하게 금지하여 두 나라의 좋은 관계에 흠이 가지 않게 하기를 바랍니다.…》

리희룡은 반쯤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죽도라니… 그게 여러 십년전부터 말썽많던 의죽도를 말하는것이 아니냐?》

《소인도 그렇게 알고있소이다. 왜인들이 죽도라고도 하고 의죽도라고도 하지만 실상은 그것이 다 울릉도를 가리키는것이옵니다.》

판관이 떠듬거리며 대답하였다.

리희룡은 버썩 긴장해지는것을 느끼며 다시한번 이마살을 찌프렸다. 왜놈들이 하는 잡도리가 심상치 않았다. 울릉도를 저희 차지로 만들려고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마루를 빌려주면 방으로 기여들려 한다더니 왜놈들이 하는짓이 바로 그랬다. 가끔씩 울릉도에 들어와 고기도 잡고 나무도 베여간다는것을 알면서도 말썽이 시끄러워서 내버려두었더니 이제는 아주 저희차지로 만들려고 대드는것이였다. 이 사실을 혼자 깔고앉아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수 없었다.

(흠― 증거를 삼겠다구 사람까지 잡아갔다니 일은 벌써 심상치 않구나. 그러니 이제는 조정에 밀어버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리희룡은 이마살을 잔뜩 찌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안채로 들어갔다.

장침에 의지하여 비스듬히 누워 쯔시마도주가 보낸 편지를 읽어보았다.

…귀국 동래부에 사는 어민 안룡복과 박어둔은 이번에 법을 어기고 남의 나라 지경인 죽도에 들어와 고기를 잡다가 붙잡힌자들인데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바랄 대신 일본의 여러 주 태수들에게 갖은 행악을 부리며 무도한짓을 수없이 하여 두 나라사이의 좋은 관계에 흠이 가게 하였습니다. 원래 두 나라사이의 교린문제는 서로 관리를 파견하여 론의하는것이 정한 례절인데 그런 무지하고 우둔한 어민들까지 나라일을 맡아나선다면 귀국과 부사대인의 점잖은 체면에 매우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법을 어긴 무지한 어민들을 엄중히 처벌하여 법도를 바로세우며 이번 사실을 조정에 삼가 품달하여 다시는 죽도에 귀국의 어민들이 출입하지 않도록 잘 조처하여주시면 어찌 후히 인사를 하지 않겠소이까.…

편지를 다 읽고난 동래부사는 혀를 낄낄 찼다.

(원, 무지막지하기란… 잡혀갔으면 곰상곰상 굴면서 제 살도리나 할 노릇이지 대체 무엇을 믿구 그렇게 행악을 부린단 말인가. 그러니 내 체면이 뭐가 되구 나라의 교린관계는 또 어떻게 되겠는가.…)

리희룡은 천정을 쳐다보며 생각을 굴리였다.

저런 무지한것들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말썽많은 왜인들과의 사이에 시끄러운 일이 자꾸 벌어져서 동래부사의 자리가 물우에 뜬 함지박처럼 언제 엎어질지 모를 지경이 되는것이다. 안룡복인지 박어둔인지 하는 그 무지한 놈들을 당장 물고(형틀에 매고 때려죽이는것.)를 내버리고싶도록 괘씸하였다.

《여봐라! 게 누가 없느냐?》

리희룡은 문밖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예― 이, 통인 대령했소이다.》

《얼른 가서 호장을 불러오너라.》

《예― 잇.》

길청으로 내닫는 통인녀석의 발소리가 들린지 이슥하여 호장이 호적장부를 옆구리에 끼고 들어왔다.

《우리 부중에 안룡복이라는 어부가 있다는데 어떤자인지 아는대로 아뢰여라!》

《예.》

호장은 버릇대로 호적장부를 뒤적뒤적 번지였으나 그것은 별로 보지도 않고 주어섬기였다.

《안룡복은 대대로 경상좌수영 능로군의 역을 지고있는자올소이다. 아비 안치록은 소인이 다소 아는 인물이온데 갑자년 봄에 좌수사의 령을 받고 울릉도에 갔다가 왜인들과 맞다들려 죽음을 당했사옵고 안룡복이 본인은 올해 봄에 바다에 나갔다가 풍파를 만나 돌아오지 못한바올소이다. 늙은 어미와 누이동생 하나가 집에 남아 겨우 연명을 해나가는줄로 아뢰오.》

호장이 잠시 말을 끊고 부사의 낯빛을 흘끔 살피였다.

《황송하오나 사또께옵서도 안룡복이를 아실줄 아옵니다.》

《음? 내가 알턱이 있느냐?》

《지난봄 사또님 생신날 동헌뜰로 들어와 울릉도에 대마도왜놈들이 들어오리라는 조짐이 있으니 방비책을 세워달라는 엉뚱한 소리를 하던 총각눔이 바루…》

《그 총각눔이 안룡복이란 말이냐?》

《그렇소이다.》

안석에 비스듬히 기대앉았던 부사가 급히 일어나앉았다.

자기의 생일날 동헌안뜰로 버젓이 들어와서 울릉도방비대책을 세워달라고 하던 안룡복이라는 능로군의 만만치 않은 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사람들을 데리고 울릉도에 건너가 왜인들과 말썽을 일으키려 한다는 박충량의 말을 듣고 급히 사람을 띄워 섬을 비우고 모두 나오도록 했던 일도 생각났다.

그런데 그때도 그 총각놈이 관리에게 항거하면서 말을 듣지 않고 섬에 그냥 남아있다가 끝내 나라의 교린관계에 저촉되는 큰일을 저질러놓은것이였다.

왜인들에게 잡혀가서도 그렇게 꿋꿋이 대들었을터이니 대마도도주가 이런 편지를 보내올밖에…

《과시 그럼직한 놈이로구나!》

《그렇소이다. 소인이 들은바에도 원래 안치록이도 그랬지만 그 아들도 담이 커서 세상 두려운것을 모르는 사람으로 린근에 널리 소문이 났던터이라…》

《담이 커? 그래, 담이 크면 어떻단 말이냐?》

부사가 갑자기 역정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상놈의 주제에 나라일에 간참을 하다니 어디 가당한 일이냐? 일본과 관계되는 일을 맡아 아래에는 동래부가 뚜렷이 서있는것이고 우로는 조정이 있고 상감(임금)께서 나라일을 다 살피시는데 한갖 배부리는 상놈이 무엇을 안다고 이웃나라간의 교린관계에 끼여든단 말이냐? 그게 우습고 중뿔나지 않느냐? 괘씸한 놈들 같으니…》

리희룡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갈았다.

부사가 너무도 야단스럽게 떠드는 바람에 호장은 아무 말도 못하고 허리만 굽신거리다가 나가버리였다.

호장이 나가자 리희룡은 혼자 앉아 생각을 굴려보았다.

쯔시마도주가 차왜를 보내온것으로 보나 왜놈들이 걸고드는 품으로 보나 벌써 쉽게 풀려나갈 일이 아니라는것이 명백하였다. 그런데다가 이런 일이 터질 기미를 이미 알고있으면서도 이렇게 깊이 곪아터질 때까지 내버려둔 자기의 처사가 드러나면 일은 더욱 재미없이 번져질수 있었다.

리희룡은 급히 연상에 마주앉아 임금에게 올리는 장계를 초잡기 시작하였다.

그날 저녁녘에 쯔시마도주의 서계와 부사의 장계를 가진 파발이 동래성문을 빠져나갔다.

그것이 대구― 서울사이에 늘어선 수많은 역참을 바람처럼 지나 한양 숭례문안으로 들어서고 승정원 도승지의 손을 거쳐 임금에게 전해진것은 바로 계유년 음력 11월 열사흗날이였다.

이날, 동래부사 리희룡의 장계와 쯔시마도주의 서계를 받은 서른다섯에 난 젊은 임금(숙종)은 편전에서 신하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때 누구보다도 먼저 룡상앞에 엎드려 아뢰인 사람은 일흔일곱에 난 늙은 좌의정 목래선이였다.

《…왜인들이란 원래 간사조폭한 족속들이라 함부로 건드려 사단을 일으키면 저 나라와 100년가까이 지내오던 선린관계를 깨뜨리지 않을가 저어되는바 없지 않소이다. 지금 왜들이 말하는 죽도란 신이 알기에도 우리 나라 울릉도를 말하는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300여년동안이나 비워오던 작은 섬을 가지고 옷갓이 분명한 우리가 비린내나는 왜들과 더불어 시비를 가려 다투는것은 그럼직한 계책이라 할수 없소이다.》

임금은 졸리는듯 한 눈길로 좌의정이 쓴 사모뒤등에서 파들파들 떨고있는 잠자리날개같은 뿔만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표정하게 앉아있었다. 지금 임금의 귀에는 《울릉도》니 《죽도》니 하고 신하들이 주어섬기는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는 페비된 민씨의 원한어린 얼굴이 떠오르는가 하면 문득 중전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장씨의 요사스러운 얼굴이 얼른거리기도 하고 독속에서 죽어가던 숙인 최씨의 가련한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 간악한 장씨를 극구 찬양하고 민씨를 모함하여 자기의 눈과 귀를 멀게 만든것은 남인들이였다.

지금 발치에 엎드려 흰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주절거리는 좌의정 목래선도 남인이다. 남인일뿐아니라 민씨페위에 제일 열을 올리던 인물이였다. 임금이나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인들의 득세를 위해서 그러했던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또 무엇을 위해서 저렇게 열심히 주절거리는것일가.

목래선이 물러서자 뒤이어 우의정 민암이 나와 엎드리며 아뢰였다. 그도 남인이였다.

《신의 생각에는 이번 일이 일어나게 된것은 우둔한 백성들이 나라의 법을 우습게 여기고 금지하는 섬에 무리를 지어 들어가서 고기잡이를 한 때문인줄로 아옵니다. 변방백성들이 나라의 법을 지켜 섬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당초에 이런 상서롭지 않은 일이 생기지 않았을것이옵니다. 그러므로 나라의 법을 어기고 섬에 들어간 어부들은 법조문에 따라 죄를 지워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것은 물론이옵고 와서 기다리는 대마도차왜에게는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례조의 복서(회답편지)를 만들어주어 말썽없이 돌아가게 하는것이 상책인줄로 아뢰옵니다.》

두 정승이 이렇게 나오자 그 누구도 감히 다른 말을 할수 없게 되였다.

하지만 조상대대로 물려오는 제 나라 령토를 말썽이 두렵다 하여 어찌 왜놈들의 롱락밑에 그대로 내여맡길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흰것을 검다고 하는것쯤은 누워서 떡먹듯 하는 위인들이라 해도 이것은 지나친 일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주 없은것은 아니였던지 젊은 승지 한사람이 참지 못하고 룡상앞에 엎드리며 아뢰였다.

《삼가 아뢰옵니다. 이번에 대마도왜인들이 울릉도라는 이름은 감추고 죽도라는 말만 내세워 조선어부의 출입을 금지시켜달라고 하는것을 보면 반드시 간사한짓이 있는듯 하오니 밝게 살펴주시기 바라옵니다.

만일 우리 어부들의 출입을 금지시키겠다는 조정의 허락만 받으면 왜놈들은 반드시 그것을 구실삼아 섬을 아주 차지하려고 할것이오니 한때의 말썽을 없애려다가 도리여 후손만대에 씻기 어려운 루가 미칠가 신은 두렵게 생각하옵니다. 그럴뿐아니라 이번에 일본에 가서 갖은 행악을 다 했다는 어부들로 말하오면 나라의 법을 어기고 금지하는 섬에 함부로 건너간것은 잘못이오나 그것도 풍랑을 만나 막부득이 그렇게 된것이옵고 제 나라 섬을 제 나라 섬이라 주장한것을 행악이라 론단하는것도 정상을 밝게 살필 여지가 있는것으로 아뢰옵니다.》

임금은 젊은 승지의 말을 옳게 여기는듯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였다.

하지만 승지의 말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조정의 원로대신인 두 정승의 말을 듣지 않고 젖비린내나는 젊은 승지의 말을 따를수는 없었다. 나이 많은 정승에 대한 대접으로써도 그랬고 이 궁궐에서 흘러온 수백년정사의 전례가 다 그러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임금은 좌의정과 우의정의 의견을 좇아 례조에서는 회답복서를 써주며 교리 홍중하를 접위관으로 임명하여 급히 동래로 보내서 쯔시마차왜를 잘 위무하여 말썽없이 돌아가게 하라는 어명을 내린 후 침전으로 들어가버렸다.

 

례조의 복서를 가진 교리 홍중하는 11월 스무날, 전후배하인 서넛을 앞뒤에 달고 숭례문을 빠져나와 급히 동래로 향하였다.

그가 가지고 가는 례조의 복서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민들을 단속하여 먼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울릉도에도 멀기때문에 마음대로 왕래하는것을 허락하지 않고있는데 하물며 그밖의 땅이야 더 말할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번에 우리 나라 어선들이 귀국의 지경인 죽도에 들어갔다고 하니 매우 유감스럽게 여기는바입니다.… 지경을 넘어들어가 함부로 고기를 잡은데 대하여서는 법조문에 따라 죄를 지울것이며 이뒤로는 다시 규정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엄하게 주의를 주겠습니다.…》

앞에서는 《우리 나라 울릉도》라 하고 뒤에서는 다시 《귀국의 죽도》라고 하여 울릉도와 죽도가 서로 다른 두 섬인듯이 말하면서 울릉도는 조선의 섬이라는것을 매우 조심스럽게 암시한 우유부단한 외교적인 답서였다.

이러한 회답복서를 가지고 홍중하가 서울을 떠났다는 소식을 리생원은 다음날, 례조정랑 리세화의 사랑방에서 들었다.

리세화는 리생원의 먼 조카벌되는 사람인데 아직 젊은 나이에 례조의 정6품벼슬인 정랑의 직책을 맡고있었다. 리생원은 서울에 올적마다 그의 집 사랑에서 며칠씩 묵어가군 하였다.

《그런데 복서를 그렇게 써줄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리생원이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

《글쎄요. 원체 시끄러운 왜놈들이라 적당히 어루만져 말썽없이 하자는 뜻이겠지요.》

리세화는 리치에 당치 않는 일을 보면 참지 못하고 의분을 터뜨리는 리생원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어물어물 대답하였다.

《조상전래의 섬인데 당당히 우리 나라 섬이라고 할노릇이지 무엇때문에 그렇게 에둘러서 왜놈들을 어루만진단 말인가? 우리 나라 어민들이 제 나라 섬에 들어간것을 너희들이 옳다 그르다 할것이 있는가, 이렇게 써보내면 아무리 간사한 왜놈들이라도 감히 두말을 못할터인데… 그렇지 않나?》

리생원은 마치 례조의 복서를 어리석게 꾸민것이 리세화이기나 한것처럼 그의 얼굴을 쏘아보며 따져물었다.

《허허… 고정하십시오. 미관말직을 지키고있는 저나 생원님이 참여할 일도 아닌 조정지사를 가지고 시야비야할것이 있습니까.》

《뭐라구?》

리생원의 눈길이 날카롭게 번뜩이였다.

《나는 백면서생이래서 참여치 못하고 임자는 미관말직이여서 참여치 않구 조정대신들은 말썽이 두려워 어리석은 처사로 정사를 대치하고… 그래, 조상전래의 제 나라 섬이 언제 왜놈들의 차지로 굴러떨어질지 모르는 이때에 그 일을 책임질 사람은 누구란말인가. 대체 누가 주인이 되여 이 나라를 지킨단 말인가?》

리생원은 벌떡 일어서서 신을 신고 퇴마루로 나섰다.

리생원은 그길로 한양을 떠났다.

불안하고 조급하고 근심스러운 마음을 달리는 달랠수 없었던것이다. 더구나 쯔시마에서 차왜가 오고 조정에서 접위관을 내려보내는것을 보면 안룡복의 일이 매우 크게 번져지는것이 틀림없는데 천리밖에 앉아서 마음 썩이기보다는 동래에 가서 알아보는것이 시원할듯 하였다.

홀가분한 빈몸이라 낮에도 걷고 달이 있으면 밤에도 부지런히 걸었다. 혹시 홍중하의 행차를 따라잡으면 기회를 보아 물에 빠진 놈이 지푸래기를 잡는셈으로 안룡복의 일을 잘 조처하여달라고 청이라도 드려볼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칠패, 팔패를 지나고 한강나루를 건너 신원 너더리에 이르렀을 때는 하루전에 지나갔다던 접위관의 행차가 문경새재를 넘을 때는 사흘전에 지나갔다고 했고 령남대로에 들어서서 신총이 닳게 부지런히 걸어 대구에 들렸을 때는 벌써 닷새전에 지나갔다고 했다.

역마를 갈아타며 날개돋친듯이 대구, 밀양, 량산을 지나 곧장 동래로 바람처럼 휩쓸어내려가는 접위관의 행차를 짚신신은 늙은 선비의 발로는 도저히 따라잡을수가 없었다.

홍중하의 행차를 따라잡을 생각을 단념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힘자라는껏 부지런히 걸어서 리생원은 열사흘만에 밀양에 들어섰다. 이튿날로 량산을 지나 동래에 들어서니 늦은 저녁때라 집집마다 굴뚝에서 저녁연기가 고즈넉이 잦아들고있었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도록 급히 걸어왔건만 룡복의 집앞에 이르자 리생원은 저도 모르게 우뚝 서버렸다.

거멓게 고삭아 쓰러진 울바자, 집주인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듯 반쯤 열린채 있는 삽짝문, 몇군데 바람에 흩날려 헤쳐진채로 있는 벼짚이영…

이 모든것이 한해 봄과 여름을 남정네의 손길이 닿지 못하고 지났음을 력력히 말해주고있었다.

리생원은 인기척을 내며 삽짝안으로 들어서는데 재가 담긴 헌 삼태기를 들고 부엌문으로 나오던 룡이가 《어마나! 생원님 오셨네!》하고 놀라움 절반, 반가움 절반으로 맞이하였다.

《오냐, 그간 잘들 지냈느냐?》

《편안히 오셨어요?》

룡이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후 《어머니!》하고 부르며 급히 부엌문을 열고 들어갔다. 뒤미처 리씨가 맨발바람으로 허둥지둥 퇴마루로 나왔다.

《아니, 평산생원님, 어찌되신 일이옵니까? 어서 들어오세요.》

《누이님, 그간 편안하셨소?》

리생원은 퇴마루에 걸터앉아 마루를 쓰는 몽당비를 집어들고 짚신발과 행전에 부옇게 오른 길먼지를 툭툭 털었다. 삿갓을 벗어놓고 이마에 내돋은 땀을 훔친 다음 주름많은 리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 룡복의 소식은 있으시우?》

《…》

리씨는 대답대신 한숨만 푹 내쉬였다.

한양 륙의전거리에서 절름발이 송서방에게서 들은 소식이 모두 사실이였다. 그런데 지난 11월 초순에 룡복이와 어둔이가 배에 실려와서 왜관수문으로 끌려들어가는것을 본 사람이 있다는것이였다.

그리고 왜관 방지기를 하는 배서방이란 사람의 말에 의하면 왜관에서 심부름드는 아이녀석이 끼니때마다 토옥쪽으로 밥을 날라가기에 누가 갇혔느냐고 물으니 조선사람들이 갇혀있다고 하더라는것이였다. 그것이 룡복이와 어둔이가 틀림없다는것이였다.

《그러니 어쩌면 좋겠소이까?》

리씨는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리생원을 바라보며 안타깝게 물었다.

리생원은 아무 대답도 없이 망연히 앉아있었다. 한양을 떠날 때부터 가슴속에서 감돌던 불안이 더욱 커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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