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안룡복이와 박어둔이는 왜관사후원에 외따로 떨어져있는 빈창고같은 집에 갇혀있었다.
어느때 어디에 쓰려고 지은 집인지는 알수 없으나 여러해동안 비워두고있었던듯 마당과 널지붕우에는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집을 둘러싸고있는 두길가까운 나무울타리는 거멓게 고삭아있었다.
방석만 한 뙤창에는 쇠살창이 박혀있고 두꺼운 널로 만든 외짝문에는 쇠가 잠기고 빗장까지 질려있었다. 조총을 든 왜인 하나가 밤낮으로 울타리밖에서 파수를 서고있었다.
이곳에서 관사는 먼발치로 지붕만 약간 보일뿐이고 제일 가까이 있다는 부엌채도 울창한 나무와 련못이 가로막혀서 잘 보이지 않았다.
룡복은 눅눅한 바닥에 널려있는 썩은 벼짚을 밟으며 방안에서 불안하게 서성거리고있었다. 구석쪽에는 혼수상태에 빠진 어둔이가 죽은듯이 누워있었다.
왜의관이 들어와 상처를 보려고 하자 《죽으면 죽었지 네놈들의 구원으로 살겠느냐?》 하고 소리를 질러 쫓아보낼 때까지만 하여도 정신이 맑았고 힘도 진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힘이 진하였는지 잠잠하였다. 이 눅눅한 방에서 이틀밤을 넘기고나자 온몸이 열에 떠서 절절 끓고 가슴에 난 상처가 퍼렇게 색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가끔씩 정신을 잃고 헛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그러더니 오늘 새벽부터 혼수상태에 빠져버리였다. 룡복은 무릎을 꿇고앉아 어둔의 얼굴을 조심히 들여다보았다.
허옇게 조갈이 들어 터갈라진 입술, 움푹하게 꺼진 눈자위, 숨을 들이그을 때마다 애처롭게 들려오는 가르릉거리는 소리…
이러다가 그냥 죽어버리지 않을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둔이, 힘을 내라구. 제발 정신을 차리게.》
안타깝게 부르며 흔들어보았으나 아무 기척도 없었다.
이때 문밖에서 쇠를 열고 빗장을 뽑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쫓겨갔던 왜의관이 다시 왔으리라는 짐작이 들어서 룡복은 급히 문쪽을 돌아다보았다.
외짝문이 활짝 열리더니 눈부신 해빛에 휩싸인 웬 녀인의 자태가 문가에 나타났다. 한손에는 자그마한 보퉁이를 들고 방금 터져나오는 울음을 막아보려는듯 주먹으로 반쯤 벌어진 입술을 꼭 누르며 서있는 녀인!
숨가삐 오르내리는 앞가슴우로 치렁치렁 드리운 탐스러운 머리태, 그 머리태끝에서 불타는듯 한 붉은 댕기!
(이게 누군가?)
룡복은 벌떡 일어섰다.
녀인이 손에 들고있던 보퉁이를 방바닥에 내던지고 엎어질듯이 달려왔다.
《룡이 오빠!》
《어순이!》
어순이는 정신없이 달려오다가 룡복의 앞에 와서 못박힌듯이 서버리였다.
룡복이도 한순간 어찌할바를 모르고 어순의 모습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그동안 겪은 말할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말해주는듯 한 살이 빠지고 피기가 가신 파리한 얼굴, 그리움과 설음이 가득찬 눈빛, 말라터진 입술…
하지만 해지고 덧기운 옷이라도 흐트러진데가 없이 알뜰히 비다듬어입은 그 단정한 차림새며 붉게 타는 댕기를 드린 윤기도는 머리태며 맑고 깨끗하게 반짝이는 그 기쁨에 넘친 눈동자에서는 그전날의 아름다운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온 처녀의 깨끗한 마음이 그대로 내비치고있었다.
《어순이!》
룡복은 어순이앞으로 급히 다가섰다.
《룡이 오빠!》
어순이는 북받치는 오열을 참을길 없는듯 그만 두손바닥에 얼굴을 묻으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버리였다.
《어순이!》
룡복은 얼굴을 가리우고있는 어순의 두손을 꼭 잡아 일으켜세웠다. 그러자 어순이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룡복의 가슴에 묻으며 겁에 질린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리였다.
(아, 이렇게 만나다니…)
처녀의 따뜻한 체온이 가슴으로 흘러들었다.
(꿈이 아니구나! 꿈이 아니야. 이렇게 살아있었구나!)
웬일인지 룡복의 두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리였다. 하지만 룡복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안도감과 행복감 그리고 무엇이라고 딱히 말할수 없는 푸근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소리없이 일렁거리고있었다.
아, 얼마나 애태우며 찾아헤매던 어순이였는가!
문득 10여년전 울릉도에서 철없는 어순이가 자기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빠를 부르며 서럽게 울던 그때의 일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를 잃은 설음을 그 여린 가슴으로는 다 감새길수가 없어서 아직 덜퉁스러운 총각애에 지나지 않던 자기 가슴에 매달려 의지할 품을 찾던 어순이.
그 어순이는 지금도 그때처럼 혼자서는 견디기 어려운 크나큰 설음으로 가슴을 태우며 흐느끼고있는것이였다. 아니, 그때는 아직 몰랐던 그리움과 사랑이라는 불덩어리를 간직했기에 지금은 그때에 비할수도 없이 뜨겁고 세찬 감정으로 가슴을 태우고있을것이다.
(어순이, 나를 용서해주오. 더 일찌기 찾아오지 못한 나를 용서해주오. 어순이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나선 길이 이렇게 될줄을 누가 알았겠소.)
어순이를 알게 된 때로부터 지나간 10여년의 긴 세월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를 찾아헤맨 수백수천굽이의 험한 산발과 벼랑들이 눈앞으로 주마등처럼 흘러지나갔다.
이윽고 옷고름으로 눈물을 훔치고난 어순이는 조용히 방안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둔이오빠는 어찌되였어요?》
구석쪽에 누워있는 어둔이를 알아보자 어순이는 급히 달려가 주저앉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불렀다.
《오빠, 오빠! 어순이가 왔어요. 오빠, 정신차려요.》
그러나 어둔이는 아무것도 모르고있었다.
《아, 사람을 어쩌면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가요?》
어순이는 가지고 온 보퉁이를 헤치고 고약과 천쪼각따위를 급히 꺼내놓았다.
《집사라는 놈이 이 약을 주면서 나를 들여보냈어요. 어둔이오빠를 기어이 살려내라구…》
룡복은 말없이 어순이를 도와 어둔의 상처에 약을 바른 다음 천으로 동여맸다. 그러는동안에 어둔이는 두어번 신음소리를 냈을뿐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하지만 숨결은 한결 고르로와진것 같았다.
룡복이와 어순이는 어둔의 옆에 마주앉은채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참으로 얼마나 멀고도 험한 길을 헤쳐오다가 서로 만났는가. 설음과 슬픔은 얼마였고 애타는 그리움과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또 얼마였던가.
아, 몇밤을 새워도 못다할 그 모든 사연을 굳이 말해선 무엇하랴. 말하지 않아도 알고도 남을 그 모든것들을.
룡복은 품속에 소중히 간직하고있던 옥가락지를 꺼내들었다.
《아이, 옥가락지, 끝내 찾아냈군요. 그걸 어떻게 찾았나요?》
《어떤 왜인의 도움으로 그 왜도적의 정체를 다 밝혀냈소. 이 옥가락지가 아니였으면 어순이가 여기로 끌려온것도 모를번 했소. 내가 끼워줄테니 손을 이리 주오.》
어순이는 손을 얼른 내들지 못하였다. 너무도 큰 기쁨때문인지 부끄럼때문인지 아니면 옥가락지를 잃은 지울수 없는 자책때문인지 그의 얼굴은 빨갛게 타오르고있었다.
룡복은 빙그레 웃으며 불같이 뜨거운 어순의 손을 잡고 조심히 가락지를 끼워주기 시작하였다.
정성들여 가락지를 끼워주는 룡복의 손만 말없이 들여다보고있던 어순이는 끝내 고개를 떨구며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영영 잃어버릴번 한 그 옥가락지! 그것은 순간을 잃고서도 살수 없는 사랑과 같은것이였다. 그것을 잃다니… 그 사랑이 아니라면 부모도 혈육도 없는 허허벌판같은 이 세상에서 무엇이 나를 위해주고 지켜줄것인가.
(룡이 오빠!)
어순이는 마음속으로 뜨겁게 속삭이였다.
(다시는 한순간도 몸에서 떼여놓지 않겠어요. 죽어도 이것만은 잃지 않겠어요.)
어순이는 옥가락지를 볼에 마구 비비며 흐느끼였다.
이윽고 얼마간 마음을 진정한 어순이는 룡복의 얼굴을 정겹게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울릉도에 갔댔나요?》
《갔댔소. 왜도적들이 어순이를 싣고 울릉도로 갔다고 하기에 급히 뒤쫓아갔지.》
룡복은 울릉도에서 있은 일들과 일본 호끼주에 가서 겪은 일들, 나가사끼포구에서 잡히던 일들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어순이는 한숨을 내쉬였다.
《정말 무서운 고생을 겪었군요. 그걸 생각하면 내가 겪은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예요.》
《혼자서 겪자니 더 어려웠을거요.》
《난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부모님의 원쑤나 갚고는…》
어순의 눈에서는 눈물이 어룽거리였다.
《다만 룡이 오빠를 다시 보지 못하는것이 원통하구… 나를 찾느라 얼마나 애를 태울가 하는 생각을 하면… 그런데 다행히도 룡이 오빠가 구원해주었다는 우마무라라는 왜인을 여기서 만나지 않았겠어요.》
《아니, 우마무라를?》
룡복은 지금까지 감감 잊고있던 우마무라의 소식을 듣자 반가와했다. 그 사람이 무사히 바다를 건너 집으로 돌아온 모양이였다.
《그래, 어디서 살고있소?》
《바로 이 집에서 일해요. 하나에라는 그 집 아주머니는 나와 함께 부엌일을 하구요.》
《그렇소? 참, 사람의 인연이란… 이렇게 될줄 누가 알았겠소. 그래도 나는 우마무라가 도주의 집에서 쫓겨나지 않았을가 걱정했소.》
《처음에는 혼자서 돌아왔다구 도주가 죄를 주겠다고 했대요. 그런데 그후에 금품을 가지고 도주 몰래 도망치던 그놈들이 다 잡혀들어와서 우마무라는 죄를 받지 않고 무사히 되였대요.》
《참 잘되였소. 정말 불쌍한 사람인데…》
《그런데 룡이 오빠가 여기에 갇혀있다는것을 안 다음부터 우마무라와 하나에아주머니는 매일같이 걱정하고있어요. 어떻게 하면 구원하겠는가 하구…》
룡복은 우마무라의 무던하고 순박한 얼굴을 마음속으로 더듬어보았다.
《걱정말라구 이르오. 나를 아는체 하면 왜놈들이 또 무슨 흉계를 꾸밀지 모르니 모르는체 하라구 하오. 그게 우리를 돕는 길이라구 하오.》
어순이는 눈물이 글썽한 눈길로 룡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러면 룡이 오빠는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어순이는 근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진 죄가 없으니 두려울게 없소. 왜놈들의 흉계를 꺾어놓지 않으면 어순이도 구원할수 없구 울릉도두 무사할수 없으니 나한테는 다른 길이 없소. 어떻게 해서라도 막부의 서계를 도루 찾아가지고 가는 길밖에. 그런데 도주라는 놈은 한사코 만나기를 피하면서 시간만 끌고있으니…》
어순의 낯빛이 저으기 긴장해지였다.
《도주란 놈이 나를 여기로 들여보내면서 한 말을 이제 생각해보니 심상치 않아요. 룡이 오빠가 죽도라는 일본섬에 함부로 건너가 물고기를 잡다가 잡혀왔다고 했어요. 막부의 서계를 받았다는것은 죄를 면하려고 꾸며낸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만일 잘못을 빌면 나도 함께 고향으로 돌려보내겠으니 기어이 룡이 오빠의 마음을 돌려세우라는거예요.》
룡복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거리였다. 막부의 서계를 받았던 일을 거짓말이라는 구실로 영영 묻어버리려는것이 왜놈들의 속심이였다. 그리고
어순이를 미끼로 하여 《죽도》라는 저희들의 섬에 불법침입했다는것을 인정시켜보려는것이였다.
《죽도》란 곧 울릉도인데 울릉도에 갔던 일을 잘못했다고 빌란말인가!
룡복은 치를 떨었다.
호끼주왜놈들은 울릉도의 일을 어떻게 하나 덮어두려고 안달아하였지만 쯔시마왜놈들은 아주 흑백을 뒤집어놓으려드는것이였다.
《어순이, 마음을 굳게 먹어야겠소. 왜놈들이 말하는 〈죽도〉라는게 바로 울릉도요. 부모님들의 백골이 묻혀있는 제 나라 섬에 간것을 잘못했다고 빌라는것인데 이런 강도놈들이 어디 있소.》
어순이는 깊은 근심에 잠겨 입을 열었다.
《헌데 그 그악스러운놈들이 이제 무슨 짓을 꾸밀지 몰라요. 도주놈은 제놈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고향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할줄 알라고 을러멨어요.》
《아무리 별짓을 다 꾸며도 우리는 굽어들수 없소. 굽어들면 부모님들의 백골을 왜놈들의 발밑에 내던지는것이나 같고 제 고향을 저버리고 섬사람들을 배반하는것이나 같은데… 그렇게는 못하오.》
어순이는 겁에 질린듯 한 눈길로 룡복의 번쩍거리는 눈빛만 바라보고있었다.
《마음놓소. 왜놈들이 우리를 건드리지는 못하오. 어둔이를 살리려고 약을 지어주는걸 보면 모르겠소?》
어순이는 옷고름을 깨물며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난 아무렇게 되여도 일없어요. 하지만 룡이 오빠랑 갇혀있는것을 정말 더는 보고만 있을수 없어요.》
어순이는 저도 모르게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용케도 참아오던 설음과 그리움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걱정과 근심으로 변하여 다시금 그 여린 가슴을 못견디게 저며내고있는것이였다.
룡복은 싸늘하게 식은 어순의 두손을 따뜻이 잡아주었다.
이때 문밖에서 파수서던자가 문을 쾅쾅 두드리였다.
《그만 나오라. 문을 잠그겠다.》
어순이는 흠칫 놀라며 가지고온 고약과 물통을 내놓고 얼른 일어섰다.
《그만 가겠어요. 이 약을 밤중에 한번 더 갈아붙이세요. 래일 또 들여보낼거예요.》
《너무 걱정마오. 아무 일도 없을것이니…》
어순이는 룡복을 안심시키려는듯 터져나오는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끝없는 걱정이 어려있었다.
어순이가 나가자 문밖에서 빗장을 지르고 쇠를 잠그는 소리가 무겁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