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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후인 6월 7일, 안룡복은 나가사끼를 향하여 돗도리성을 떠났다. 호끼주의 봉행(벼슬이름) 두사람과 의사 한사람, 무사(사무라이)와 졸병 여라문명이 일행의 호위를 맡고 동행하였다.

돗도리에서 나가사끼까지는 수백리 먼길이였다.

한여름에 들어선 날씨는 개인날이면 무덥고 흐린날이면 숨막히듯 습하였으나 룡복이와 어둔이는 마냥 기분이 즐거웠다.

막부의 공식서계까지 받은데다가 쯔시마에 들리면 어순이를 만날수 있다.

쯔시마도주에게 보내는 박충량의 편지를 가지고있으니 그를 구원해내는 일은 그리 힘들것 같지 않았다.

(어순이, 조금만 기다려주우. 며칠만 참으면 우리는 함께 돌아갈수 있소.)

룡복은 길옆으로 펼쳐진 낯선 산천이며 뙈기논들이며 멀리 동쪽으로 내다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걸음을 다그쳤다.

그런데 호끼주왜인들은 비가 조금만 와도 길가의 집이나 관사에 들어가 며칠씩 쉬면서 길을 재촉하지  않았다.

《육실할… 여드레 팔십리걸음이라더니 젠장, 느린 황소도 하품을 하다가 아가리가 찢어져 죽는걸 봐야 하겠구나! 왜놈들이 나막신을 발가락에 걸고 다닌다더니 그래서 걸음이 이렇게 더딘가?》

어둔이가 혀를 끌끌 차며 두덜거리였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하면 룡복이도 같은 심정이였다. 빨리 쯔시마로 가야겠는데 왜놈들은 그런것에 대해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입에서 쌍욕설이 막 쏟아져나오는것을 겨우 참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비를 구실로 며칠 쉬고난 뒤인데도 왜놈들의 걸음은 그냥 그 모양이였다.

룡복은 나이든 봉행에게 왜말로 넌지시 물었다.

《날씨가 좋을 때 걸음을 다그치면 안되우?》

《예. 도노사마가 몇번이나 말하기를 국서(막부의 서계를 말함.)를 받들고 가는 이웃나라사람들인만큼 나가사끼까지 무사히 호송하는데 첫째가는 관심을 돌리고 그밖의 일에는 일체 참견하지 말라고 했으니 우리는 그 지시를 받들뿐이옵니다.》

《허허… 그렇소?》룡복은 껄껄 웃고말았다.

상전의 지시를 받는다는데야, 더구나 이웃나라 손님들이 무사하기를 바래서 그런다는데야 무슨 할 말이 있을텐가. 그날 저녁에 또 미친듯이 바람이 불면서 궂은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일행은 급히 가까운 길가마을에 들어가 밤을 묵게 되였다. 왜놈들에게 물으니 여기서 나가사끼포구까지는 겨우 반나절길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쯔시마도 그리 멀지 않은것이였다.

어둔이는 한밤중에 비내리는 문밖에서 왜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룡복은 시름을 놓고 깊은 잠에 빠져있어서 아무것도 모르고있었다.

몇달만에 시름을 잊고 깊은 잠에 든 사람을 깨울수가 없어서 어둔이는 혼자서 문밖의 동정에 귀를 기울이였다. 왜말이여서 말뜻은 모르겠으나 어떤자가 우악스러운 소리로 왜인들에게 무엇인가 따져묻는듯 하였다. 이상스럽게 여긴 어둔이는 비오는 밖에서 파수를 서는 왜인졸병에서 물어보았다.

《예. 문을 두드리기에 나가보니 웬 괴한 셋이 조선사람들을 데리고가는 호끼주사람들이 옳은가? 조선사람 두놈이 맞는가? 약혼녀가 쯔시마에 있다는 바로 그놈들이 틀림없는가? 하고 밑도끝도 없이 따져묻는게 아니겠소이까.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무슨 일이 생기더라두 너희들은 꿈쩍하지 말구 가만있으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귀신도 몰래 죽을터이니 명심하라!>하고는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리였소이다.》

《그게 왜놈들인지 모르겠소?》

어둔이는 온몸이 버쩍 긴장해지는것을 느끼며 다우쳐물었다.

《글쎄, 모르겠소이다. 봉행어른께 여쭈었더니 모르는체 하고 가만있으라구만 하였소이다.》

어둔이는 가슴이 떨리리였다.

왜놈들이 무슨짓을 꾸미고있는것이 아닐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약혼녀가 쯔시마에 있는 사람을 찾더라는 말을 되새겨보던 어둔이는 그만 가슴이 철렁하였다.

(아, 내가 술에 취해서 지껄인 말때문에 생긴 일이 아닐가?)

왜놈들이 자기가 취중에 한 말을 끈잡아서 무슨 흉계를 꾸미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어둔이는 당황한 눈길을 들어 밖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할수없이 자는 룡복이를 깨웠다.

《아무래도 의심쩍어. 왜놈들이 무슨 흉계를…》

《흉계라니?》

룡복이가 벌떡 일어서 나앉으며 물었다. 룡복이가 어둔의 말을 채 듣기도 전에 검은 옷을 입고 검을 찬 왜놈 일여덟이 문을 열어젖히며 쓸어들어와 소리를 질렀다.

《어디로 가는 사람들인가?》

어둔이는 온몸을 우들우들 떨며 다가오는 왜놈들을 노려보았다.

《쯔시마로 가는 사람들이다. 왜 그러는가?》

룡복이가 왜말로 대답하며 앞으로 나섰다.

《쯔시마로? 그런데…》

그놈들은 흰옷입은 룡복이와 어둔이를 의심쩍게 바라보았다.

《우리는 조선사람들이다. 왜 그러는가?》

《조선사람?》

그놈들은 눈을 희번뜩거리며 룡복이와 어둔이를 흘겨보았다.

《듣자니 네놈들이 수상한 문서를 가지고 간다면서?》

《수상한 문서라니?》

룡복은 놀란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런것을 가진것이 없다.》

《없다구? 그럼 어디 좀 보자! 야, 빨리 뒤져라!》

《이게 무슨짓인가?》

룡복이가 왜말로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자 달려들던 놈들이 잠시 주춤거렸다.

《막부의 서계를 가진 사람들을 함부로 건드리고 무사할줄 아는가?》

《막부의 서계? 그것이 위조문서라는데 어디 좀 보자.》

두목인듯 한자가 룡복의 곁으로 다가왔다.

《건드리지 말라. 너희들은 대체 누군가?》

《해안을 순찰하는 나가사끼사람들이다.》

나가사끼포구가 지척인데 나가사끼사람들이 왜 포구밖에 나와서 순찰을 하는가? 룡복은 조금도 주저하는 빛이 없이 떳떳이 항의하였다.

《해안을 순찰하는것은 좋으나 나라사이에 오가는 국서는 다루는 절차가 따로 있으니 함부로 다치지 못한다.》

《흥, 절차? 그런 절차는 우리한테도 있다.》

두목놈이 눈짓을 하자 졸개들이 룡복에게 우르르 달려들어 무작정 팔을 비틀어 묶고 옷섶을 헤치더니 서계를 넣은 두루말이통을 빼앗아냈다.

《이놈들아, 그건 못 다친다!》

어둔이가 벼락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성난 범처럼 달려들었다. 주먹을 휘두르자 룡복에게 붙어섰던 두놈이 악 소리를 지르며 나뒹굴었다.

왜놈들이 여기저기서 칼을 빼들고 달려들었다.

《강도같은 놈들… 네놈들에게 굽어들줄 아느냐?》

자기의 불찰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짐작한 어둔이는 죽음을 각오하고있었다. 방안에 나뒹구는 부러진 삿대를 집어들고 칼날을 막는 한편 가까이 접어드는 놈들을 발길로 차던지였다. 한놈이 발길에 채워나가떨어지고 한놈은 얼굴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칼을 휘둘렀다.

연방 날아드는 칼날에 잘리워서 몸둥이만큼밖에 남지 않은 부러진 삿대토막을 거머쥔 어둔의 얼굴에서도 피가 철철 흐르고있었다.

왜놈 넷이 어둔이를 좁은 구석쪽에 몰아넣고 머리우에 칼날을 쳐들었다. 날아드는 칼을 맨손으로 받아쥔 어둔이가 그것을 빼앗으려고 힘을 쓰는 찰나에 다른 왜놈의 칼날이 그의 가슴노리에서 번쩍하였다.

《억!》

피투성이가 된 어둔이는 황소같이 튼튼한 몸을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왜놈들은 쓰러진 어둔의 몸을 뒤지더니 밀봉한 박충량의 편지를 찾아내여 막부의 서계와 함께 두목놈에게 바치였다.

《어둔아, 정신차려라!》

룡복은 바줄에 꽁꽁 묶이운 몸을 힘껏 뒤척이며 애타게 불렀으나 어둔이는 더는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의 오른쪽겨드랑이밑으로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있었다.…

《호송》을 맡았다던 호끼주관리라는자들이 항변 한마디 하지 않고 자취를 감춘것도 이상하지만 아까 어둔이가 왜놈들이 흉계를 꾸민다고 급히 알려주던것도 무슨 조짐이 느껴진때문이였으리라고 룡복은 생각하였다.

그런데 나가사끼포구에 있는 왜놈들의 관사에 끌려가보니 울산 박충량의 집에서 놓쳐버린 왜도적의 두목인 요시라라는자가 와있었다.

그자는 룡복을 보자 볼을 타고지나간 징그러운 칼자리를 움씰거리며 히물히물 웃었다.

《어이 쭁가. 나를 알만 한가?》

룡복은 그제야 이놈들이 쯔시마놈들이라는것을 알아차렸다. 해안을 순찰한다고 한것은 거짓이고 막부의 서계를 빼앗아내자는 속심이 틀림없었다.

룡복은 이글이글 타번지는 눈길로 요시라의 낯짝을 쏘아보았다.

어순이를 잡아간 철천지원쑤, 백운산에서 잡혔을 때에는 목숨만 살려달라고 발치에 엎드려 빌던 이 짐승같은 놈, 이놈이 어떻게 이곳에 나타났는가? 박충량의 집에서 도망친 후 쯔시마로 갔을것이고 거기서 다시 이곳으로 왔을것이다.

그렇다면 서계를 탈취한 이번 사건은 쯔시마도주의 작간이 틀림없지 않은가.

룡복은 사태를 대강 짐작할수 있었다. 쯔시마도주의 흉계에 걸려든것이 분명하였다.

(아, 분하고 원통하구나!)

룡복은 묶이운 몸을 부들부들 떨며 부르짖었다.

《요시라 이놈, 내가 그때 네놈을 살려둔것이 정말 분하다. 네놈이 죄없는 처녀를 잡아가고 사람들을 죽이고 울릉도를 렴탐하고… 비록 도망을 쳤지만 무사할줄 아느냐? 네놈이 막부의 서계에 손을 댔으니 이제 값을 톡톡히 치를줄 알아라!》

《흥, 잡혀서도 큰소리인가? 어제는 내가 네 손에 잡혔지만 오늘은 네가 내 손에 잡혔단 말이다. 네놈은 이제 쯔시마로 끌려가서 목을 바칠것이구 나는 상을 탈것이며 인생이라는게 참 알다가도 모를것이 아니구 무엇인가. 흐흐흐…》

짐승같은자가 인생타령을 하는것이 역겹기 그지없었다.

룡복은 요시라의 낯짝을 쏘아보며 준절히 부르짖었다.

《사람의 탈만 썼을뿐이니 네놈이 인생이 뭐고 정의가 뭔지 알턱이나 있겠느냐? 네놈은 그걸 영영 모를게다!》

《뭣이?》

요시라의 흰 눈자위가 번뜩이였다.

룡복은 치가 떨리여 짐승같은자와 더는 응대할 생각이 없었다. 먹칠을 해놓은듯 한 컴컴하게 흐린 먼 수평선쪽에서 번쩍번쩍 마른번개가 터지였다.

뒤미처 우르르―하고 무거운 우뢰소리가 머리우로 천천히 굴러지나갔다.

어둔이는 다음날 저녁녘에야 나가사끼포구에 있는 도주의 관사안 어느 음침한 방에서 정신을 차리였다. 칼에 찍힌 상처가 거멓게 죽어가고 온몸이 불덩이같이 달아올랐다.

왜놈들의 시퍼런 칼날을 받아쥐고 당긴 오른쪽손가락 넷이 다 끊어지다싶이 건뎅거리는것을 천쪼각으로 싸맸는데 그 천쪼각은 피에 잠궜다낸듯이 거멓게 절어붙어있었다.

겨우 정신이 들자 어둔이는 룡복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딘가?》

《나가사끼포구의 왜관사에 갇혀있네. 별일없을것이니 안심하게.》

《서계는?》

《빼앗겼네.》

어둔이는 가쁜 숨을 톺다가 성한 손으로 옷섶을 더듬어보더니 괴롭게 중얼거리였다.

《육실할 놈들… 내가 가지고있던 편지까지 앗아갔구나… 아, 다 내탓이지. 내탓이야…》

어둔이는 자기때문에 모든 일이 뒤틀려지는줄로 여기고있는것이였다.

며칠후 두사람은 요시라의 호송밑에 쯔시마로 향하였다.

 

×

쯔시마도주 소 요시미찌는 신당에서 아침기도를 마치고 관사로 나왔다. 기다리고있던 종자녀석이 엎드려 아뢰이였다.

《나가사끼로 가던 요시라가 돌아와서 만나뵙기를 청하옵니다.》

《요시라가 벌써 돌아왔느냐?》

《예, 무사히 돌아왔다고 하옵니다.》

요시미찌의 훌쭉하게 여윈 병색짙은 볼이 푸들푸들 떨었다.

(아무렴. 그만큼 정성을 다했으니 여러 천신들과 조상제신들이 살펴주지 않을수 없으셨겠지.)

그는 천천히 눈을 감고 신당쪽으로 돌아앉아 두손바닥을 가슴높이에 마주댄채 잠시 엄숙한 감사의 묵례를 올리였다.

조선에 가있던 요시라가 졸개들과 함께 잡혔다가 겨우 도망쳐왔을 때만 하여도 요시미찌는 마음을 종잡지 못하고 불안에 잠겨있었다. 요시라의 무리가 잡히는 바람에 울릉도를 렴탐한것이며 장차 선대를 들여보내려 한다는것들이 다 드러났으니 서뿔리 손을 대기도 두렵고 그렇다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릴수도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그때 뜻밖에도 에도에 가있던 아버지가 심복졸개를 시켜 편지를 보내여왔었다.

…호끼주에 온 조선어부 두사람이 울릉도가 조선의 섬임을 인정하는 막부의 서계를 받아가지고 돌아갈터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서계가 조선으로 건너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 서계는 조선어부의 무지한 항변에 못이겨 막부가 부득이 꾸며주도록 한것에 지나지 않으니 이번에 저 나라와 교섭하여 울릉도를 일본의 섬으로 인정받는 길을 열어놓는다면 막부에서는 도리여 큰 상을 내릴것이다. 막부의 뜻이 이러하니 서계가 저 나라에 건너가지 못하게 하는것이나 울릉도를 일본의 섬으로 인정받고 못받는것은 다 너의 계책과 수완에 달렸을뿐이다. 이번 일을 그르치면 쯔시마는 영영 울릉도에 발을 붙일수 없게 될것이니 어찌 후세에 씻지 못할 후회를 남기겠는가 하는 편지였다.

편지를 읽고난 요시미찌는 화로를 엎지른 사람만큼이나 마음이 급해졌다.

말썽없이만 처리하면 이 일에 대하여 막부에서는 크게 개의치 않을것이라니 우선 그 서계를 앗아내는것이 제일 급한 일이였다.

그런데 그 서계를 가진자들이 언제쯤 쯔시마지경에 들어서겠는지 알수 없으니 어떻게 손을 쓸것인가.

요시미찌가 밤낮으로 문을 닫아걸고 머리를 짜내고있을 때 집사가 뜻하지않던 소식을 알려주었다. 호끼주에서 왔다는 어떤 장사군이 저자거리에서 막부의 서계를 가진 조선어부 두사람이 약혼녀를 찾으러 떠났으니 아무날쯤 쯔시마에 들이닥치겠는데 그렇게 되면 도주가 무사치 못할것이라는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있다는것이였다.

호끼주에서 온 장사군?

요시미찌는 짚이는데가 있어서 그 장사치를 불러들여서 이리저리 구슬려보았다. 호끼주태수가 일부러 보낸 장사치가 틀림없었다.

흥, 간사한 놈… 요시미찌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울릉도특산물을 저 혼자 차지하려고 쯔시마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던 때가 언젠데 이제 와서는 나더러 선손을 써달라구? 그렇게 해서 우리가 울릉도를 일본의 섬으로 인정받아놓으면 제가 먼저 타고앉자는 속심일테지.…

요시미찌는 간사한 호끼주태수가 밉살스러웠으나 울릉도를 조선에 내주지 않으려는데서는 자기와 리해관계를 같이한다는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호끼주태수가 하나를 헤아리면 쯔시마도주는 셋은 몰라도 둘쯤은 능히 헤아린다는것을 보여주어야 하였다.

요시미찌는 여러날 생각하던 끝에 드디여 조선어부들이 오는 바다길목에 자리잡은 나가사끼포구의 도주에게 부탁하여 막부의 서계를 빼앗는 일을 꾸미였다. 후날에 일이 잘못 꼬이더라도 그 책임을 저 혼자 뒤집어쓰지 않을수 있었던것이다.

요시라에게 편지를 주어서 급히 나가사끼로 떠나보내고난 요시미찌는 그동안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소식을 기다리고있었다.

요시라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종자녀석의 말을 듣자 그가 신당쪽에 대고 감사의 묵례까지 올리며 기뻐한것은 바로 이때문이였다.

《어서 들어오라구 하라!》

요시미찌는 급히 나가는 종자녀석을 바라보며 휘둘러친 금병풍앞에 다리를 틀고 깊숙이 들어앉았다.

이윽고 요시라가 들어와 마루아래 맨 땅에 엎드리였다.

《그래, 갔던 일이 어찌되였느냐?》

《하, 도노사마의 분부대로 두놈을 다 잡아왔소이다.》

《서계는 어떻게 했느냐?》

《여기 있소이다.》

요시라는 막부의 서계와 박충량의 편지를 두손으로 들어 바치였다. 요시미찌는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서계를 받아들다가 거멓게 피에 젖은 밀봉한 박충량의 편지를 보자 흠칫 놀라며 물었다.

《이것은 웬것이냐?》

《하, 잡혀온자의 몸에서 얻어낸것이옵니다. 도노사마에게 보내오는 편지라 하기에 어지럽혀진 물건이오나 삼가 받들고 왔소이다.》

요시미찌는 피에 젖어서 글자를 알아보기 힘든 겉봉을 눈가까이 가져다대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박충량이?》 하면서 급히 밀봉을 뜯었다. 속에 든 종이도 피에 절어서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웠으나 내용은 짐작할만 하였다. 얼마전에 요시라의 무리들이 잡아다 바친 처녀가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사람의 약혼녀라는것이였다.

요시미찌의 얼굴에서는 천천히 삵의 웃음이 비껴지나갔다. 호끼주태수는 이 사실을 알려주려고 장사군을 시켜 그런 소문을 퍼
뜨리게 한것이였을터이지만 그때는 약혼녀라는 처녀가 자기 집 부엌에 있을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것이였다.

요시미찌는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무릎을 치며 흡족해하였다.

이제는 막부의 서계를 받아가지고 가던 저 만만치 않은자들을 휘여잡을 확실한 《미끼》를 손에 쥔셈이였다.

요시미찌는 거멓게 피에 절은 박충량의 편지를 막부의 서계와 함께 그 무슨 보물처럼 칠을 한 문갑안에 소중히 보관하고나서 피냄새를 맡는 짐승처럼 숨을 흑흑 들이그으며 소리없이 웃었다.

《그래 그자들을 잡아올 때 별일은 없었느냐?》

《하, 별일은 없었소이다만 그자들이 얼른 나타나지 않사옵기에 소인이 밤중에 50리를 맞받아나가 알아보니 비를 피해 포구에서 묵고있지 않겠소이까. 그래서 그날로 잡아서 서계를 빼앗았소이다.》

《음, 참 잘했다.》

《그런데 그중 한놈은 구척장신에 힘이 장사여서 묶으려 하자 완악에게 덤비는 바람에 사람 몇이 심히 상하는 판이라 소인이 그저 볼수가 없어서 칼로 찍어 쓰러뜨렸나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자기의 공로를 내세워서 상을 많이 타볼 생각으로 요시라는 보지도 못한 일을 제가 한듯이 주어섬기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도주의 기겁한 호령소리가 터져나왔다.

《아니, 그자를 죽였단 말이냐?》

《아, 아니올시다.》

요시라는 겁에 질린 눈으로 도주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죽인것이 아니오라…》

《그럼 어찌되였는가?》

도주는 펴들고있던 부채를 무릎에 절컥 쳐서 접으며 급히 몰아세웠다.

《나가사끼포구의 도주어른이 그자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하옵기에 상처에 약을 발라서 끌고 왔소이다. 원래 황소같은자이라 쉽게 죽지 않사옵니다.》

《그자가 죽으면 네놈을 가만두지 않겠다. 그것때문에 말썽이 생기면 네놈이 무슨 수로 막겠는가?》

요시라는 말 한번 잘못한탓에 상은 고사하고 죽을 죄를 뒤집어쓸번 하였다는것을 알자 사색이 되여 연방 고개만 조아리였다.

《그런데 상처입은 그자가 일본 의관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하며 일체 접근하지 못하게 하니 죽지 않을가 걱정되는바 없지 않소이다.》

요시미찌는 얇은 눈가죽을 천천히 내리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럴법한 일이다. 원래 아무리 천한자라도 일본사람이라 하면 제 발바닥보다 못하게 여기는것이 저 나라 사람들의 버릇인데 그럴수밖에 더 있느냐. 그러나 그자가 죽으면 일이 시끄러워질것이니 이가 갈리여도 살려야겠다. 우리 부중에 조선 의관이 없느냐?》

《조선 의관은 모르겠사오나 조선계집이 도노사마의 집 부엌에 있는줄 아옵니다.》

《년전에 너희들이 잡아온 그 계집 말이냐?》

요시미찌의 두눈알이 한낮을 맞은 고양이눈알처럼 천천히 가늘어졌다.

《다 알고있으니 그만 돌아가거라.》

요시라를 돌려보내고난 요시미찌는 그 얇은 눈가죽을 천천히 내리감고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드디여 그 계집을 요긴하게 써먹을 때가 왔구나. 벌써 오늘을 내다보고 여러 천신들께서 그 계집을 미리 내 집에 보내준것이였으니 참 신의 섭리란 불가사의한것이라 할밖에… 아 천신님, 조상제신들, 고맙소이다.)

그는 눈을 감고앉은채 타산의 닭알낟가리를 쌓고 허물기를 거듭하고있었다.

문밖에서는 한여름의 맑은 아침이 시작되고있었으나 도주가 틀고앉은 음침한 방안에서는 무덤속처럼 무겁고 숨막히는듯 한 공기가 소리없이 떠돌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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