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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중.
호끼주태수 마쯔다이라 신따로는 종자녀석이 가져다놓은 은궤를 가운데 놓고 장로와 마주앉아있었다.
초불에 비쳐서 번들거리는 장로의 알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쯔다이라는 무겁고 시름겨운 생각에 잠겨있었다.
《천만금으로도 살수 없는것이 이 세상에 있다는것을 모르는것이 참으로 가련하다》고 했다는 안룡복의 말이 귀가에 우뢰소리처럼 들려오는듯 하였다. 불덩이가 이글거리는듯 한 두눈을 부릅뜨고 자기를 노려보며 달려들던 박어둔의 억척같은 모습도 눈앞에 보이였다. 산처럼 눈앞을 콱 막아나서는 그 모습에는 그 힘과 무게를 가늠하기 어려운 《조선백성》이라는 큰 모습이 비껴있는것만 같았다.
일세의 영웅이노라 자랑하던 도요도미 히데요시를 꺼꾸러뜨린 저 조선백성의 무서운 힘과 꺾을수 없는 의지, 내가 그것과 맞다들었단 말인가?
마쯔다이라는 마음속으로 진저리를 쳤다.
아니, 그것은 머리속에 우연히 떠오른 불길한 생각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밖에 내기에는 너무도 끔찍한 생각이였다.
마쯔다이라는 서리맞은 호박처럼 조글조글한 얼굴을 맥없이 가로 흔들고나서 침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무래도 이번 울릉도의 일은 막부에 품해야 할듯 하오. 저자들도 조선사람의 종자라 형틀이나 칼로 의기를 꺾을수 없고 재물이나 계집으로도 녹일수 없는자들이 분명하오. 우물쭈물하다가 도리여 우리가 덫에 치일수 있으니…》
《설마하니…》
《설마가 다 무엇이요? 종자녀석의 말을 들으니 저자들이 에도로 가는 길도 묻고 성안에 사는 조선사람들도 찾고있다는데 잡도리가 벌써 심상치 않소.》
《하, 그런것을 소승은 전혀 모르고있었소이다. 하지만 그들이… 감히…》
《여러말 할것이 없는줄 아오.》
태수의 표정이 날카로와졌다.
일이 뜻대로 펴나갈 형편이 아닌것이 분명한데 가만히 앉아있다가 마른벼락을 맞기보다는 미리 사실을 알려 당장 떨어질 화를 면하고 보는것이 상책이라는것이였다.
이리하여 벼룩의 간을 빼먹을만큼 간특하고 조심스러운 마쯔다이라는 미리 발빼기를 하기에 바빠 울릉도의 사실을 막부에 보고하고말았다.
호끼주태수의 지급장계를 받은 막부장군(막부의 최고통치자) 도꾸가와 쯔나요시는 한동안 마음을 종잡지 못하고있었다.
그가 형인 도꾸가와 이에쯔나로부터 막부장군의 자리를 물려받은지 열세해, 참으로 조심스럽게 지나온 나날이였다.
개미구멍 하나가 동뚝을 허물어뜨리는것과 같은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아니, 거의 언제나 큰일은 보잘것없는 작은 일에서부터 부르터지군 하였다.
그러니 조선어부 두사람이 호끼주에 와서 울릉도가 저희 나라 지경이라고 떠드는것을 결코 작은 일로만 볼것이 아니였다. 더구나 그것이 조선과 관계되는 일이였기에 쯔나요시는 가볍게 대할수가 없었다. 이 좌우명은 임진년에 조선침략전쟁을 일으킨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비극적인 멸망이 력사에 남긴 심각한 교훈에서 생겨난것이였다.
근 100년간이나 지속되여오던 피비린 《전국시대》의 혼란을 끝장내고 일본을 통채로 손아귀에 거머쥔 《일세의 영웅》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임진전쟁에서의 실패를 기화로 30여년간 다져온 자기의 권력과 명예를 하루아침에 력사의 무덤속에 묻어버리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은 무엇때문인가.
그러나 도꾸가와 쯔나요시는 이것을 단순한 력사의 론리로만 받아들일수 없었다. 지금도 그의 넋을 짓누르고있는 너무도 불가사의하고 무서운 력사의 화폭을 생생히 돌이켜볼수 있기때문이였다.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60살이 다 되도록 자식을 얻지 못하게 되자 조카인 히데쓰꾸를 양자로 삼아 관백이 되게 하고 자기는 《태합》이라 자칭하면서 천하를 정복할 꿈을 꾸고있었다.
그런데 이때 진중에 따라와있던 애첩 도요기미가 히데요리라는 사내자식을 낳아주었다.
58살에 비로소 자식을 본 도요도미는 자기 친자식에게 관백의 자리를 물려주기 위하여 조카를 죽여버리고 27살의 젊은 애첩과 아들을 위하여 그 어려운 전란중에도 수십만을 부역에 끌어내여 후시미에 《모모야마》라는 큰 궁전을 짓게 하였다.
일본건축사상 최대의 궁전인 후시미성의 7~8층의 화려한 문루들과 궁궐의 황금추녀들은 당시만 해도 천하를 호령할듯싶던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불가항력적인 권력과 과대망상적인 《꿈》의 상징처럼 하늘을 꿰지르고 솟아났다.
그런데 무술년(1598년) 8월 8일 밤 해시, 갑자기 무서운 지진이 하늘땅을 뒤흔들었다.
《모모야마》궁전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5월부터 시름시름 앓던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8월 10일부터 아주 의식을 잃고 침상에 쓰러진채 일어나지 못하였다.
근 한달 계속되는 지진… 지진에 뒤이어 나고야의 하늘에서는 재비가 내리고 오사까에서는 붉은 모래비가 쏟아졌으며 그후 오래동안 백발로인의 머리털같은 털비가 내리고 동쪽하늘에는 대낮에도 활활 타오르는 혜성이 나타났다.
이 무시무시한 천지재변으로 일본이라는 나라가 송두리채 불타버리는듯싶던 바로 그 시각, 조선을 침략하였던 일본군이 조선수군에게 최후의 일격을 받고 총퇴각을 시작하였다!
과연 우연한 일치였을가?
조선을 침략한 죄로 천벌을 받았다고 느낀것은 림종을 고하던 도요도미 히데요시자신만이 아니였다.
죽음의 그림자가 무겁게 드리운 그의 병상옆에서 죽음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한 인간의 최후를 목격하면서 죽어가는 그자신보다도 더 심각하고 예리한 감각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된다는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새 막부를 일떠세울 야심을 품고있던 도꾸가와 이에야스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도요도미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도요도미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공포에 질려 마음속으로 다진 이에야스의 이 처절한 맹세는 후에 그가 도꾸가와막부를 세우고 그 통치자로 군림하자 이른바 《례문정치》를 표방하던 막부의 대외정책에 반영되여 조선과의 평화적인 교린관계를 유지하는것을 1차적인 요구로 내세우게 하였던것이다.
이 요구는 도꾸가와막부의 90여년간의 전력사를 관통하고있는 《철칙》이였으며 력대의 막부우두머리들이 충실히 받들어오는 대조선정책의 좌우명이기도 하였다.
그런만큼 도꾸가와 쯔나요시는 울릉도때문에 조선에서 어부 두사람이 건너왔다는것을 알게 되자 벌써 마음속으로 은근히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건너온자들이 한갖 어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자들을 잘못 건드리면 조심스럽게 이어오는 조선과의 《교린관계》를 크게 허물어뜨릴수 있는것이다. 그것은 아직 통치기반을 마련하기에 바쁜 막부에 있어서는 무시 못할 위험이였으며 그것을 기회로 도요도미 히데요시처럼 도꾸가와막부도 날개를 펴보지 못한채 력사의 무덤속에 영영 파묻히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수 있겠는가.
도꾸가와 쯔나요시는 호끼주태수가 알려온 크지 않은 사실속에서 이렇게 큰 사실을 음미하고있었다.
그 사실은 력사가 증언해주고있는 어쩔수 없는 진리이고 교훈이였다. 이 력사의 교훈을 보지 못하거나 보려고 하지 않는데서 파멸이 시작되는것이였다.
하지만 아무리 불가항력적인 력사의 교훈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똑똑히 알고 정확히 분별하기만 한다면 닥쳐오는 불행을 에돌아갈수도 있다고 믿는 쯔나요시였다.
그의 머리속에는 드디여 어떤 계책이 떠올랐다. 분명히 이것은 력사의 교훈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닥쳐오는 난국을 소리나지 않게 에돌아나갈수 있는 길이라고 믿어졌다.
이윽고 그는 《참근》하려고 에도에 와있는 쯔시마도주의 아버지 소요시쯔네를 급히 불러들이라는 분부를 내리였다.
《참근》이란 막부가 각 지방 태수들의 근친족속들을 인질로 에도에 불러올려다 살게 하는 제도로서 지방에서 할거하는 봉건세력들의 반막부움직임을 억제하기 위하여 고안해낸 통치방법의 하나였다. 도꾸가와막부는 그 통치 전기간에 이 《참근》제도의 올가미로써 지방할거세력들의 손발을 얽어매고 그들의 정치적반란을 막아왔던것이다.
1년에 한번씩 이른바 《산깅고다이》(참근교대)라 하여 각주 태수들이 참근할 사람을 바꾸고 막부에 경의를 표시하기 위하여 막대한 진상품을 가지고 수백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호화로운 행렬을 지어 에도에 왔다 가는 관제행사를 제도화하였다. 각주 태수들로 하여금 순시도 막부의 《올가미》를 잊지 않게 하는 동시에 막대한 재정을 그에 소모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세력팽창을 억제하려고 한것이였다. 실로 교활의 극치를 이룬 도꾸가와막부만이 고안해낼수 있었던 사상류례없는 통치방법이라고 할만 한것이였다.
도꾸가와막부의 이 《참근》제도에 따라 당시 쯔시마에서는 도주의 애비인 늙은 소요시쯔네가 에도에 와 살면서 막부와 쯔시마사이의 일체 거래를 주관하고있었다.
막부장군의 뜻밖의 부름을 받은 소요시쯔네는 발끝에 끌리는 알락바지를 입고 버선을 신지 않은 벌건 맨발에 길이가 두어자 됨직한 흰천 한폭을 뒤로 늘어뜨려 땅에 철철 끌면서(이것은 모두 막부장군에 대한 공경의 표시였다.) 전각안에 들어와 공손히 엎드리였다.
겹겹이 둘러친 구슬발과 채색휘장들때문에 물속처럼 흐릿하고 희미한 전각안 깊숙한 곳에 여러층으로 된 두툼한 수방석을 깔고 앉아있던 도꾸가와 쯔나요시는 일각오모를 쓴 머리를 약간 들어 늙은 요시쯔네의 메마른 잔등과 알락바지짬으로 드러난 누르무레하고 여윈 발을 흘끔 내려다보았다.
《듣거라. 루차 말하는바이지만 쯔시마는 일본과 조선사이에 있으면서 두 나라사이의 관계에 관여하는바가 실로 크다.》
한동안 쯔시마의 《공적》을 추어주고나서 그는 오래전부터 쯔시마가 울릉도를 관리하려고 하는 야심을 품고있다는것은 알고있으나 울릉도가 조선의 섬이라는것이 확실하고 또 조선어부 두사람이 호끼주에 와서 일본어선의 울릉도출입을 금지시켜달라고 요구하므로 부득이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수 없다는것을 말하였다.
(그 요구를 인정해주면 쯔시마가 다시는 그 섬을 넘보지 못할터인데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소이까!) 하는듯 한 소 요시쯔네의 얼굴표정을 유심히 살펴보고있던 도꾸가와 쯔나요시는 빙그레 웃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것은 없다. 하늘이 다르고 땅이 다르듯이 나의 하는 말과 쯔시마태수가 하는 말이 늘 같으라는 법은 없다. 내가 있다고 하는것을 태수는 없다고 하고 내가 좋다고 하는것을 태수는 나쁘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 막부를 위한것이라면 누가 탓하겠는가.》
엎드려 듣고있던 약삭바른 요시쯔네는 막부장군의 말뜻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울릉도를 일본의 차지로 만들기 위하여 앞으로 쯔시마가 자기가 한 말과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관계하지 않겠다는 은밀한 약속이고 부추김이였던것이다.
《삼가 높은 뜻을 받들겠소이다.》
요시쯔네는 고개를 거듭 조아렸다.
눈치빠르고 약삭바른 요시쯔네를 기특한듯이 내려다보는 당년 마흔여덟살나는 도꾸가와 쯔나요시의 여위고 누르스름한 얼굴에 야릇한 웃음이 떠돌았다. 그는 자기의 뜻을 더욱 분명히 표현하고싶었던지 말을 이어나갔다.
《듣건대 울릉도라는 그 섬이 수토가 기름지고 수목이 울창하며 어족패류가 심히 많다면서?》
《네, 우리 쯔시마는 물론이옵고 이나바, 호끼 두 주에서 막부에 진상하는 많은 특산물들이 다 울릉도에서 나온것들이옵니다.》
《흠, 그렇겠지. 그리고 그 섬에서 조선본토가 멀지 않아서 그쪽으로 발을 내짚기가 아주 편리하다면서?》
요시쯔네는 속으로 흠칫 놀랐다.
(그쪽으로 발을 내짚다니? 그러면 조선을?)
그는 황급히 대답하였다.
《하, 그 섬에 들어서고보면 조선본토는 문턱너머나 다름이 없소이다.》
《흠… 문턱너머라…》
도꾸가와 쯔나요시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우연인듯이 심상치 않은 말 한마디를 문뜩 내던지였다.
《문턱너머이면 조총철환이 능히 넘어가겠지?》
(조총철환이?)
늙은 요시쯔네는 다시한번 놀라며 고개를 버쩍 쳐들었다. 도꾸가와 쯔나요시의 저 온화한 웃음속에 그런 무서운 야심이 숨겨져있었던가 하는 놀라운 생각이 뇌리를 쳤다.
그러니 막부장군의 야심이 결코 울릉도에만 그치는것이 아니라는것이 이제는 명백해졌다.
그런데 조총철환이 조선본토로 능히 넘어가는가고 한 그의 물음은 너무도 가당치 않은것이였다. 아무리 별짓을 다 해도 일본의 조총철환은 거기로 넘어갈수가 없는것이다!
요시쯔네는 어떻게 대답해야 막부장군의 기분을 거슬리지 않겠는지 몰라서 잠시 아연한 눈길로 도꾸가와 쯔나요시를 쳐다보다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황송하오나 우리 일본의 조총은 300보를 능히 가는줄 아옵니다만 울릉도에서 조선본토까지는 350리라…》
《하하하…》
도꾸가와 쯔나요시는 수염덮인 넙적한 턱을 쳐들고 전각안이 들썩하게 웃어댔다.
《내가 롱담을 해본것이니 너무 놀라지 말라.》
하지만 그것은 롱담이 아니였다.
진담이라도 너무나 살기찬 진담이였다. 울릉도를 차지하면 조선본토를 조총으로 위협하여 완고하고 도고한 조선조정을 굴복시킬 길을 열어보려고 오래전부터 꿈꾸어온 막부가 아니였던가.
늙은 요시쯔네는 이윽고 전각안에서 물러나왔다. 가마를 타고 궁성앞거리를 벗어져나오면서 거듭 생각을 굴려보았다. 막부장군이 자기에게 느닷없이 그런 롱담아닌 롱담을 왜 했을것인가. 분명 그 《롱담》으로 자기의 본심을 드러내보이려고 한것이였다.
(아, 그랬구나!)
요시쯔네는 가마안에서 다시한번 무릎을 쳤다.
(이것이야말로 쯔시마를 위해 하늘이 베풀어준 천재희유의 기회로구나!)
늙은 요시쯔네는 그달음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와 아들인 쯔시마도주에게 보낼 밀서를 급히 쓰기 시작하였다.
쯔시마도주의 애비를 돌려보내고난 도꾸가와 쯔나요시는 아무일도 없었던듯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비단휘장을 드리운 전각안을 서성거리였다.
이제 쯔시마가 어떤 태도로 나오겠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막부가 상관할 일이 아니였다. 원래 쯔시마는 수백년전부터 해적행위로 살아왔고 조선, 중국 등 동방의 여러 나라들이 그 성화를 당해왔다는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이제와서 쯔시마가 어떤 일을 저지른다고 하여 그것을 막부가 책임지라고 할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일본의 막부가 조선과의 《교린관계》를 귀중히 여긴다는것만 그 나라 조정에 알려지게 하면 되는것이였다. 이윽고 그는 조선어부들의 항의내용을 보고해온 호끼주 태수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문을 보내게 하였다.
…호끼주 태수와 조선인에게 알린다.
보고된 울릉도에 대한 일을 상고해보건대 예로부터 우리의 섬이라고 전해오는 문헌도 없고 우리 사람들이 그 섬에 거주한 사실도 없다.… 조선에서 그 섬을 내버려둔다면 조선의 조정과 의논할 여지가 있겠지만 그들이 섬을 관리하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요구에 달리할수가 없는것이다.
태수는 조선인의 요구에 따라 대책을 세울것이며 마땅히 이 뜻을 저 나라에 알릴것이다.…
막부의 이 지시를 받은 호끼주태수 마쯔다이라 신따로는 부득이 막부의 명의로 울릉도와 그 부속섬들이 조선의 령토이므로 일본어부들의 출입을 금지시키겠다는 내용의 공식서계(문서)를 만들지 않을수 없었다.
마쯔다이라는 막부의 명의로 된 국서를 함부로 흔한 돌멩이 쥐여주듯이 할수 없기에 부득이 관사에서 여러 관리들의 참석밑에 위의를 갖추고 안룡복에게 전달하였다. 그러면서 마치 자기가 그 어떤 《아량》을 베풀어 서계를 받도록 주선해주었다는듯 한 태도를 보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마음은 텅 빈듯이 허전해지는것이였다.
보잘것없는 조선어부들앞에서 그렇게 처신할수밖에 없는 막부나 자기의 처지가 너무나 서글프고 가긍하게 느껴지였기때문이였다.
물론 이것이 장차 보다 큰 야심을 이루기 위하여 일시 보여주는 《선의》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고 자기로서도 그 어떤 《아량》을 베푸는 좋은 기회인듯이 꾸며보이고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현실을 달리할수는 없는것이였다.
5월 26일, 막부로부터 안룡복일행을 바다길로는 위험하므로 나가사끼까지는 륙로로 호송하고 나가사끼에서 다시 쯔시마를 거쳐 조선(부산포)으로 호송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소 요시쯔네는 쯔시마에 들리게 되면 안룡복이가 자기 약혼녀를 찾으려 할것임을 넘겨짚고 차라리 잘되였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막부의 지시와 암시때문에 할수없이 보잘것없는 이웃나라 어부들에게 머리를 숙였던 모멸감에 잠겨있던 그의 마음속에서는 문득 무서운 앙심이 사품쳐오르고있었다.
《끝까지 잘 모셔다드릴터이니 며칠만 기다려주기를 바라오.》
그의 목소리며 표정이며 태도는 너무도 부드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