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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는 제법 비소리가 소란하다. 이른봄의 찬비, 아무리 좋게 들으려 해도 그 소리는 처량하다.
벼짚이영에서 떨어지는 처마물소리여서 그런지 장단도 없고 가락도 없다. 그저 츨츨츨하고 쉼없이 떨어지는것이 있는가 하면 겨우 한번 쭐렁하고 마는것도 있다.
츨츨츨… 쭐렁, 쭐렁!
가락이라면 가락같고 아니라면 아닌듯도 한 이 눅눅한 비소리.
풍류방랑 20여년세월에 이런 비소리를 얼마나 들었던가.
어느 고을 주막에서, 어느 길가의 원집에서, 어느 량반집 행랑방에서…
《어-》
리생원은 기지개를 켜며 눈을 번쩍 떴다. 방안은 어느새 캄캄해졌다. 아래방에서 희미한 등불빛이 문틈으로 새여들었다. 탁배기 한사발을 들이키고 시장한 김에 밥 한그릇을 다 내고 누웠다가 그만 깜박 잠에 곯아떨어졌던것이다.
리생원은 눈을 감은채 한동안 문밖에서 들려오는 비소리에 귀를 기울이였다. 그러자 고달프게 흘러간 풍류방랑의 기나긴 세월이 눈앞으로 주마등처럼 흘러지나가는듯 하였다.
그가 세상에 한을 품고 평산포 고향집을 뛰쳐나와 풍류객으로 방랑의 길에 오른지도 어느덧 스무해가 지났다. 허물어져가는 한미한 량반집 첩의 자식으로 태여난 죄아닌 《죄》때문에 글을 읽던 한창시절에 그는 남달리 총명한 두뇌를 가지고도 과거에조차 나설수 없었다.
첩자식들을 차별시하여 과거와 벼슬길에 나서는것을 금지하는 《서얼방한법》은 태종15년(1415년)부터 시작된 전고에 다시 없는 악법이였다. 그때 우대언으로 있던 서선이라는 사람이 서얼의 자손은 현직벼슬에 임명하지 말것을 진언한것이 발단이 되여 서자들에 대한 취급이 차별시되여오다가 그후 《경국대전》을 편찬하면서 《서얼은 문과생원, 진사시를 보지 못한다》라고 법조문에 박아넣은 다음부터는 그 누구도 허물수 없는 사회륜리의 규범으로 아주 법제화되고말았던것이다.
시집을 두번 간 녀자의 소생에 대한 제한은 손자대에 그치였으나 서얼은 백대를 지나도 허용되지 않았으니 서자들의 원한은 하늘에 사무치고 그 페단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뜻있고 분별있는 사람들은 나라를 좀먹고 인재를 파묻히게 하는 이 악페를 없앨것을 여러번 조정에 건의하였으나 동인이요 서인이요 하고 갈라져서 당파싸움에만 눈이 어두워있던 량반관료들은 그 누구도 이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서얼의 페단이 더는 참을수 없는 지경에 이른 인조왕때에 이르러서야 조정의 원로들이 거듭 론의한 끝에 드디여 을축년(1625년)에 《서얼허통법》을 결정하고 말로는 서얼들에게도 청환(깨끗한 벼슬)의 요직을 준다고 하였다. 평산포시골에 묻혀있던 리생원도 이 《서얼허통법》에 등을 대고 향시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였다.
《청환의 요직》은 말뿐이고 서얼출신들은 요행 벼슬길에 나서도 실권없는 미관말직이나 겨우 차지할뿐이였다.
재능과 학식은 없어도 문벌이 좋고 권력에 아부할줄만 알면 벼슬에 올라 세도를 잡는 세상이였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부귀영화와 문벌과 당파의 리익만을 탐내는 벼슬살이는 벼슬살이가 아니라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못살게 구는 도적행위나 다름없다는것을 깨달은 리생원은 드디여 벼슬길을 단념하고 썩은 세상에 등을 돌려대고말았다. 거기다가 말년까지 백면서생으로 근근히 량반의 체면이나 겨우 지켜오던 부모까지 세상을 떠나자 가정에도, 세상에도 마음 붙일수 없이 된 리생원은 안해와 자식들을 버려둔채 마흔전의 한창나이에 분연히 집을 뛰쳐나오고말았다. 비뚤어진 세상에 대한 일종의 반발이였다. 그리고 반생을 바쳐 착실히 닦아온 학문과 청운의 뜻을 차마 좁은 시골에서 속절없이 썩여버릴수 없었던 마음의 몸부림이기도 하였다.
풍류방랑 20여년세월, 이 나라 방방곡곡을 아니 다녀본 곳이 없었다.
명승고적을 찾을 때면 이 나라 산천의 아름다움과 찬란한 문화에 현혹되여 상처입은 마음을 시줄에 담아보기도 했고 밭갈고 씨를 뿌리는 농부들과 어울려있을 때는 이 나라 백성들의 아름다운 마음과 풍습과 근면성에 탄복하면서 이 아름답고 순후하고 근면한 백성을 못살게 구는 량반사대부들때문에 나날이 비뚤어져가는 나라의 운명이 걱정스러워 마음속으로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프고 쓰린 마음을 눈물로 달랠수는 없었다.
차라리 통절한 웃음을 터뜨리고나면 마음이 위로되였다. 슬픈 일이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언제나 어이없는 웃음으로 아픈 마음을 스스로 달래는 버릇도 이렇게 생긴것이였다.
리생원이 이 집 주인인 안서방내외와 알게 된것은 량반선비살이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풍류방랑의 길에 올랐던 첫 시절부터였다. 촌수가 그리 멀지 않은 손우 누이 한분이 장사를 하는 남편을 따라 이 마을에 와 살고있어서 리생원은 령남의 명승고적을 두루 찾아 유람을 올 때면 언제나 그 누이네 집에 머물군 하였다. 누이네와 이웃하고 살던 안서방네 집에도 자주 들려서 개똥의 아버지 안치록이와 마주앉아 바둑도 두었고 기회가 생기면 탁배기도 허물없이 한자리에서 마시군 하였다. 그러다가 기미년 봄, 삼남지방에 염병이 돌아 사람과 짐승을 삼대베듯 쓸어눕힐 때 누이네 온 식솔이 하루아침에 무덤으로 실려가고말았다.
그후부터 리생원은 동래로 올적마다 누이집대신 안서방네 집에 들군 하였는데 죽은 누이와 성씨도 같고 나이도 같은 리씨를 누이라 부르면서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였다.…
밖에서는 여전히 속살거리는듯 한 비소리가 그칠줄 모르고 들려왔다. 그 비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리생원의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빙그레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개똥이에 대한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것이였다.
리생원이 개똥이를 처음 본것은 집을 버리고 풍류방랑의 길에 오른지 5~6년이 되여오던 때였다. 그때 리생원은 이 마을에 있는 누이네 집에서 며칠간 묵고있었다.
그날은 마침 온 동네가 김매기를 끝내고 하루를 쉬는 《호미씻기날》이여서 리생원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정자나무그늘에 앉아 탁배기를 나누며 한담을 즐기고있었다.
탁배기에 얼근히 취한 개똥의 아버지 안치록이가 그때 제또래들과 함께 나무주변을 뛰여다니며 노는 여라문살나는 아들을 가리키면서 껄껄 웃었다.
《저놈의 자식이 배우라는 바다일은 아니 배우구 밤낮 왜통사(일본말통역)를 따라다니며 말같지 않은 왜말을 흉내내더니 오늘은 제법 붙잡은 왜놈을 문초까지 했다질 않소. 왜관에서 변색을 하고 뛰쳐나온 왜놈을 관원들이 붙잡았는데 저녀석이 나서서 왜말로 문초를 들이대는바람에 제꺽 본색이 드러났다는구려. 허허허… 빌어먹을 놈의 자식, 생원님, 잊지 말구 저녀석을 일본에 보낼 통신사루 천거를 해주소이다. 능로군(수군에 소속된 노젓는 군졸.)의 집안에서는 왜말을 지껄이는 시라소니를 쓸데가 없지요, 쓸데가…》
리생원은 안치록의 말이 너무 처량하게 들려서 진심절반 위로절반으로 껄껄 웃으며 대답하였다.
《허허… 나라에 크게 쓰일 재목이 될러는지 누가 알겠나?》
《원, 그런 말씀 마십시오. 서울 갈 하늘소는 발통 생긴것부터가 다르답니다.》
《허- 자네가 제 자식이래서 너무 홀대를 하네그려. 그 애가 저희 동무들을 따라 서당출입을 자주 한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들었네만 어깨너머글로 천자를 떼였다 하기에 설마 그러랴싶어서 내가 시험을 해보았는데 강미(서당공부를 하는 값으로 바치는 쌀)를 꼬박꼬박 바치며 몇삼년을 다닌 아이들보다 월등하더란 말일세. 가히 신동이라 이를만 하니 제 자식이라고 눈아래로만 보지 말게.》
리생원은 총각머리태를 출썩거리며 정신없이 뛰노는 개똥이를 눈여겨 살펴보았다. 톡 튀여나온 앞이마며 새별처럼 반짝거리는 눈매며가 그 나이 아이들치고는 눈에 띄우게 야무지고 영특해보이였다.
잘만 가르치면 제 한구실은 넉넉히 할만 한 아이가 분명하였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왜말을 흉내내고 다닌다는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탐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어느날 리생원은 개똥이를 불러놓고 짐짓 엄하게 물었다.
《듣자니 네가 왜통사를 따라다니며 왜말을 배운다는데 그게 사실이냐?》
개똥이는 해진 짚신끝을 내려다보며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아무리 장난이라도 그런짓을 해서는 못쓴다.》
리생원은 부드럽게 타일렀다.
《말같지도 않은 왜말을 배우다니. …옷갓이 분명한 조선사람으로서 할짓이 아니다. 알겠느냐? 당장 그만두어라.》
령리한 아이이니 그쯤해도 알아들었으려니 했는데 뜻밖에도 개똥이가 리생원의 얼굴을 고집스럽게 쳐다보며 또렷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만두면 왜놈들의 간사한짓에 속아넘어가는데두요?》
《속아넘어가다니?》
리생원은 개똥이의 말뜻을 짐작할수 없어서 되물었다.
《왜관왜놈들은 우리 말을 알지만 우리는 왜말을 모르니 아무리 속여넘겨두 모르거든요. 그걸 보고만 있겠나요?》
《아니? 그럼 네가 그때문에 왜말을 우정 배운단 말이냐?》
리생원은 놀라운 눈길로 개똥이를 내려다보았다.
사실 그때로 말하면 왜관근처의 여러 고을들에서 왜인들의 간사한 속임수에 걸려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일이 매일같이 벌어지던 때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막을만 한 방책을 세우지 못하고있었다.
관가에서도 그저 왜인들과 상종하지 못하게 하는것으로써 그 페단을 막아보려고 할뿐이였다. 그런데 10대의 소년이 왜인들의 그 간사한 속임수를 꺾어보겠다고 왜말을 배운다는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것이 얼마나 실속있는 방법으로 되겠는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품은 뜻이 얼마나 영특하고 장한가? 결코 철부지의 장난으로만 여길 일이 아니였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리생원은 개똥이를 이전과는 좀 다른 눈으로 살펴보았다. 그저 신동이라 하여 기특하게만 볼 아이가 아니였다. 총명함과 아울러 강한 실천력과 림기응변의 기지를 겸비한 아이였던것이다.
리생원이 그를 마지막으로 본것이 10여년전이였다. 개똥이가 아버지를 잃은지 이태가 지난 때였던것 같다.
그때 개똥이는 제법 총각꼴이 잡히고 몸가짐도 의젓해졌었다. 동무들을 휘동해가지고 자주 바다에 나가 물고기도 잡고 산에 가 나무도 하군 하는데 그의 곁에는 언제나 그또래동무들이 한무리씩 붙어다니군 하였다.
팔월대보름날의 홰불싸움이나 줄다리기, 석전놀이(돌팔매싸움)같은데서는 언제나 개똥이네 패가 상대를 누르군 하였다. 그래서 그때 벌써 동네 일판에서는 어른아이 할것 없이 《개똥이네 소년패》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어디 가나 《개똥이네 소년패》에 대한 소문을 들을수 있었다.
지난 단오명절때 성밖 씨름터에서 판막이군으로 황소를 탄것도 개똥이네 패라고 했고 왜관문밖에서 매일 열리는 아침시장에 물고기 몇마리와 채소를 들고나간 촌아낙네에게 생트집을 걸던 왜놈을 혼쌀내운것도 개똥이네 패라고 하였다.
이 지방에서는 예로부터 석전놀이나 씨름에서 이긴 마을이 봄에 논물도 먼저 대고 풀베기 좋은 장소도 먼저 차지하는 풍습이 있는데 개똥이네 패가 모든 놀이에서 이기기때문에 해마다 포촌과 그 이웃마을에서는 그 덕을 크게 보고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이들을 칭찬하고 떠받들면서 자랑으로 여기고있었다.
개똥이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구김살없이 름름한 청년으로 자라나는것이 리생원에게는 무엇보다도 대견하게 여겨졌다. 리생원은 개똥이를 데리고 자주 금정산으로 가군 하였다.
외적을 막아싸운 흔적이 뚜렷한 이 산에 올라서면 아름다운 산천이 눈앞에 펼쳐지고 마음은 한없이 넓어지는것이였다.
《내 말을 명심해 듣거라. 지금 시골이나 서울이나 할것없이 서당이요 향교요 하는데서는 다 공자와 맹자만을 숭상하여 남의 나라 경서를 읽고 남의 나라 력사를 읊조릴뿐 제 나라 력사와 지리를 강론하는데가 없으니 내 굳이 너에게 이런 말을 하는것이다. 우리 나라는 력사가 유구하여 반만년을 헤아리고 령토가 좁지 않아 남북삼천리, 동서가 오백리에 이른다.
북에는 백두산, 남에는 지리산, 동에는 금강산, 서에는 묘향산이 솟아 이 땅의 아름다움을 더 한층 돋구어주고 크고작은 강과 맑은 시내가 산과 들을 적시며 흘러내려 동서남의 세 바다를 이루고있으니 실로 백두산의 억센 기상과 금강산의 아름다움, 대동강, 한강의 맑은 물과 호남, 호서의 기름진 천리옥야는 이 나라의 자랑이 아닐수 없다. 산천의 맑은 정기를 타고난 사람들이 또한 예로부터 굳세고 순후하고 근면하여 이 땅우에 자랑높은 력사와 문화를 어엿이 이루어놓았구나.
그 기상이 동방을 넉넉히 제압할만 하던 저 고구려의 강성과 신라, 백제의 번영은 더 말할것이 없고 고려 오백년의 찬란한 문화는 세계에 널리 알려져있느니라.》
어린 개똥이의 별처럼 반짝이던 눈빛이 지금도 리생원의 기억에 생생하였다.
이런 이야기는 그후에도 자주 있군 하였다. 을지문덕, 강감찬, 리순신 장군의 이야기도 하였고 제 나라를 위한 《실사구시》의 학문으로 이름을 떨친 학자문인들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세상을 보는 개똥이의 눈은 나날이 밝아지였다. 하지만 소년이 성장하면 할수록 리생원의 가슴속에는 남모르는 그늘이 짙어가고있었다.
과연 이 영특한 아이의 앞날은 어떻게 될것인가?
희세의 영걸이라 해도 신분이 천하면 초야에 묻혀 썩어야 하는 현실이였다. 더구나 능로군이란 《칠반천역》이라 하여 일곱가지 천한 일중의 하나로 꼽히는것인데 백대를 지나도 그 허울은 벗을수가 없는것이였다. 아무리 값진 옥이라도 흙속에 묻히고보면 빛을 뿌릴 도리가 없는것이 아닌가.…
리생원은 소년의 앞날에 대한 깊은 우려를 품은채 동래를 떠났었다.
그후 마땅한 기회가 생기지 않아서 다시 찾아오지 못하고있다가 이번에 십여년만에 오게 된것이였다. 어서 빨리 개똥이를 만나보고싶었다. 아까 리씨에게 물어보니 어디론가 나갔다고 하였는데 잠든 사이에 돌아왔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리생원은 얼른 사이문을 열었다. 방문 열리는 소리에 놀란 리씨가 젖은 손을 베치마에 문대며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왜 더 누워계시지 않으시구…》
쉰다섯고개를 갓 넘겼건만 리씨는 어느덧 귀밑머리가 희슥희슥해지고 얼굴은 온통 잔주름에 덮이였다.
《누이님네 탁배기가 독하긴 하구려. 그만 깜박 곯아떨어졌댔소.》
《에그, 길독이 풀리느라고 그렇지 탁배기 한사발이 무엇이겠나요.》
《허허… 그런데 밖에 나갔다던 개똥이는 여직 안돌아왔소?》
《글쎄, 아침에 나간 사람이…》
이때 부엌에서 갑자기 《호호호…》 하는 녀자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참으려고 애쓰다못해 터친 웃음이였다.
《이년아, 생원님앞에서 무슨 웃음이 그 모양이냐?》
리씨가 부엌에 대고 엄하게 꾸짖었다.
《개똥이라니 그러지요? 호호호… 오빠가 그 소리를 듣고 펄펄 뛰는 모양을 좀 보았으면… 호호호…》
불을 지피던 룡이가 이렇게 대답하자 그제야 리생원도 영문을 알아차리고 껄껄 웃었다.
《참, 그 애가 개똥이라는 아이적 이름을 고쳤소?》
《제 아버지가 있을적에 룡복이라고 지어주었소이다. 대대 능로군의 집에서 났지만 룡이 된듯 천만복을 다 누리라는 뜻이라나봅디다.》
《허허… 그런줄 모르구 개똥이라고 불렀다가 그 애한테 면박을 당할번했군.》
밖에서는 비발이 점점 굵어지는듯 처마물소리가 한결 소란해졌다.
리씨는 아들의 발자국소리가 들리는가 하여 잠시 어두운 창밖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잔주름이 엉킨 리씨의 얼굴에는 웬일인지 무거운 불안과 초조감이 어려있었다. 십여년만에 찾아온 손님을 섭섭치 않게 하려고 마음쓰며 때때로 웃음을 지어보이기도 했지만 그 웃음의 바닥에 무거운 시름이 깔려있음이 느껴졌다. 아까 우물가에서 범에게 물려간 처녀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리생원은 룡이의 얼굴에서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일이 문뜩 생각키웠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는것을 예감하면서 리생원은 조심히 물었다.
《그런데 오면서 들으니 뉘집 처녀인지 범한테 물려갔다는데 그게 사실이시우?》
리씨는 그만 아픈곳을 찔리운 사람처럼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시름겹게 푹 한숨을 내쉬였다.
《그 처녀가 바로 우리 룡복의 색시감이지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생원님께서 마음을 쓸것 같아서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 처녀는 이웃 박씨네 딸인데… 글쎄 그 얌전하구 마음씨 고운 애를… 아이구!》
리씨는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이 무너지는듯 한 한숨만 다시 토하였다.
《좀 자세히 말을 하우. 대체 어찌된 일이우?》
《그애를 며느리감으로 점찍은건 룡복의 아버지였소이다. 그게 룡복이가 열세살나던 해였는데 그해봄에 룡복의 아버지는 룡복이를 데리구 청어잡이를 나갔어요. 아직 뼈도 굳지 않은 아이가 늘 아버지를 따라 바다로 나가기에 그때도 내가 걱정을 했더니 룡복의 아버지는 〈걱정 마우. 사내자식은 바다바람을 쏘여야 철이 들어.〉 하면서 그냥 데리구 나가지 않겠나요. 그런데 그 청어배가 끝내 풍랑을 만났지요.》
…
룡복의 아버지 안치록이가 탄 청어배는 사흘동안이나 파도에 밀려가다가 간신히 울릉도에 닻을 내리고 구원되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섬동쪽 바다기슭에서 금방 불타넘어진 집 한채를 발견하였다. 섬에 기여든 왜놈들이 외로운 섬사람의 집을 불지르고 물건을 빼앗은 다음 사람들을 찔러죽인것이였다.
불타는 재무지속에 쓰러진 예닐곱살쯤 나보이는 귀엽게 생긴 계집아이를 찾아냈다. 계집아이는 죽은 엄마, 아버지와 오빠를 부르면서 련사흘을 먹지도 않고 울었다.
목이 쉬고 기진맥진한 계집아이의 가련한 정상을 보다못하여 안치록은 눈물을 삼키며 달래였다.
《얘야, 용타, 울지 말어라. 내가 원쑤를 꼭 갚아주마. 그리고 너는 우리 집에 가서 살자.》
《싫어, 난 여기서 살래.》
계집아이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더욱 서럽게 울었다.
《여기서 어떻게 살겠니? 집도 없고 엄마도 없는데…우리 집은 동래라는 곳에 있는데 참 좋은 곳이란다.》
《그래도 난 여기가 좋아.》
《그래, 그래…그런데 네 이름은 무엇이냐?》
《어순이예요.》
《어순이라, 참 용쿠나.》
안치록은 계집아이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나무옹이같은 굵은 손가락으로 알뜰히 씻어주었다.
《어순아, 우리 집에는 오빠두 있구 동생도 있단다. 가만 있거라. 저기 오빠가 있지 않느냐?》
안치록은 곁에 서있는 룡복이를 가리켜주었다. 어순이는 룡복을 말끄러미 바라보더니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우리 오빠가 아니야.》
《이제 너하구 재미있게 놀게다. 암만봐두 저 애가 너희 오빠와 꼭같이 생겼구나. 그렇지 않니?》
어순이는 정말 저의 오빠와 비슷한가를 알아보려는듯이 까만 눈을 깜박이며 룡복의 얼굴을 다시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룡복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빙그레 웃으며 계집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나와 재미나게 놀자. 자꾸 울면 울보가 된다. 자, 그만 울고 이리로 오너라.》
그러자 어순이는 말없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두팔을 벌리고 룡복의 품에 매달리였다. 그다음부터 어순이는 룡복이를 오빠라고 부르면서 끈에 맨 조롱박처럼 따라 다니였다. 다른 사람들의 곁에는 가지도 않고 잘 때에도 룡복의 곁에서만 잤다. 그것이 기특하여 안치록은 껄껄 웃으며 사공들에게 말하였다.
《저 애는 내 며느리감일세. 팔도강산을 다 뒤져도 저렇게 고운 색시감을 못 고를걸세.》
며칠후 섬의 북쪽기슭에 살고있던 문서방이란 사람이 찾아와서 동래포촌에 사는 박지삼이라는 사람이 어순의 큰아버지이니 아이를 거기다 맡겨달라고 부탁하였다.
《아니, 그럼 이 애가 지삼의 조카딸이란말이우?》
안치록은 이웃에 사는 박지삼에게 어순이를 맡기지 않으면 안될것을 생각하니 섭섭했던지 계집아이를 무릎우에 앉히고 볼을 쓸어주며 물었다.
《그래도 어순이는 내 며느리감이지. 그렇지 않니?》
그러자 계집아이는 서운해하는 안치록을 위로하듯이 대꾸하였다.
《그래요. 난 며느리가 좋아요.》
사공들은 배를 그러쥐고 웃었다.
그런데 며칠후 뜻하지 않게도 섬서쪽에 있는 주칠굴에서 주토(염료로 쓰는 붉은 흙)를 파가지고 도망치는 왜놈들을 뒤쫓아가다가 안치록은 칼에 맞아 그만 목숨을 잃었다.
사공들은 피눈물을 뿌리며 안치록을 어순이네 식구들과 나란히 양지바른 산기슭에 묻은 후 어순이를 데리고 뭍으로 돌아왔다. 고인의 부탁대로 어순이는 룡복이네 이웃에 사는 큰아버지 박지삼에게 맡기였다. 이리하여 어순이는 룡복이와 한마을에서 살며 자라게 되였다.
섬에서 이미 정들었던탓인지 아니면 룡복이가 각별히 다정히 굴었던탓인지 어순이는 철이 들고 다 큰 처녀가 될 때까지도 그냥 오빠라고 부르면서 룡복을 남달리 따랐다.…
리씨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옷고름으로 눈굽에 맺힌 눈물을 찍어내였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서 어순의 나이도 열일곱에 났는데 섬에 묻힌 룡복의 아버지가 남긴 말도 있었으니 나야 그 애를 며느리로 삼고싶은 마음을 둔지가 오랬지요. 그런데 저희들끼리도 서로 좋아하고 의지하는 눈치이고 더구나 어순의 사촌오래비인 어둔이라는 사람이 룡복이와 송아지동무인데 그 사람이 나서서 부쩍 부채질을 하는바람에 올해 봄에 두집사이에 혼사말이 났소이다. 혼수감마련이 당장 없으니 오는 가을에 잔치를 하기루 하고 약혼을 하였지요. 그런데 세상일이 어쩌면 이리도 외로만 꼬이겠나요.》
리씨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여 어룽거리였다.
《약혼한지 며칠만에 다대포에 살던 어둔의 외삼촌댁이 숱한 식솔을 남겨놓고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이 왔는데 당장 때식을 끓여줄 사람이 없게 되질 않았겠나요. 그 딱한 정상을 보다 못해서 어순이가 얼마동안이라도 제가 동자질을 해주겠노라고 자진 나서서 다대포로 갔지요. 몇달만 지나면 잔치를 하구 내 집으로 데려오리라 생각하구 그냥 가게 하였더니 글쎄 산나물캐러 나간것이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질 않겠소이까. 범에게 물려갔다는 흉흉한 소문이 자자한데 이젠 살아오기가 열번도 틀렸지요. 어이구!》
리씨는 참고참았던 마음을 더는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였다.
부엌에 있던 룡이가 들어와서 리씨를 안아일으켰다.
《어머니, 그만 진정하세요.》
리씨와 룡이가 아래방으로 내려간지도 이윽하였다.
리생원은 목침을 찾아베고 자리에 누웠으나 한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문밖에서는 여전히 소란스러운 비소리, 쭐렁쭐렁 락수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