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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생원이 전라도 순천을 떠난것이 신록이 춤추던 초여름인데 한양(서울)에 도착한것은 어느덧 산마다 단풍이 타는 가을이였다.

이 고을에서 하루, 저 고을에서 이틀, 이 친구와 닷새, 저 친구와 열흘, 그러는 사이에 가을이 온것이였다.

남산밑 리태원마을의 어느 객주집에서 밤을 자고난 리생원은 새벽파루가 서른세번을 울고 숭례문이 열리자 천천히 성안으로 들어갔다.

이른새벽이라 성안은 아직 그리 붐비지는 않았으나 종로 륙의전 점포앞에는 벌써 짐 실은 소달구지와 산더미같이 부담을 진 말과 하늘소들, 짐을 이고 진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고있었다.

한양성이 생긴 초기부터 《운종가》라 하여 번화하기로 이름높은 저자거리였다.

임진전쟁전에는 이 거리에 종루가 있어 하루 열두번 종소리로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었으나 그것도 옛일이였다.

전쟁의 불길속에서 종각은 불타버리고 《종로》라는 거리의 이름속에 《종루》가 있었던 옛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을뿐이였다.

리생원은 서글픈 눈길로 거리를 살피면서 혜정교를 건너 돈의문쪽으로 향하였다. 세종왕시절에는 이 혜정교부근과 종묘(선대임금들의 신주를 두는 곳.)앞에 《앙부일구》라는 해시계를 설치하여 다니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었으나 지금은 그것도 자취를 찾아볼수 없었다.

혜정교를 지나 오른쪽 큰길로 들어서자 허물어진 궁담사이에 광화문터가 어수선하게 드러났다. 문루는 다 없어지고 이끼오른 돌축대우에 반나마 허물어진 무지개문이 입을 하 벌리고있었다.

경복궁이 이 나라의 왕권을 자랑하며 위세당당히 서있을 그때에는 왕궁의 남문인 이 문루의 량쪽에 두다리를 힘차게 뻗치고서서 오고가는 사람들의 넋을 뽑던 해태(돌사자)도 지금은 홍예문앞 쑥덤불속에 나뒹굴고있었다. 임금이 정사를 보던 근정전은 돌축대와 주추돌만 남았는데 그나마 흙에 파묻히여 거의 평지나 다름없이 되여버렸다.

아, 이것이 200년동안이나 이 나라 사직을 받들어오던 왕궁이였단 말인가.

간악한 왜놈들이 불사르고 허물어버린 이 쑥대무성한 왕궁. 아직 이 왕궁이 치욕스러운 전쟁의 상처를 가시지 못하고있는데 왜놈들이 또다시 피묻은 혀를 날름거리며 먹이를 노리는 여우처럼 먼발치에서 소리없이 감돌고있는것을 과연 누가 알고나 있는가.

동래부사나 경상좌수사는 지방의 말직에 있는 미외속류(아첨하는 속된 인간)이고 탐관오리여서 그렇다치자. 하지만 이 쑥대무성한 왕궁을 페허로 내버려둔채 저 창덕궁의 금빛단청 찬란한 인정전에 자리를 틀고앉은 임금이며 그아래서 3공6경(3정승과 6조의 판서들)을 위시한 문무백관들은 과연 이것을 알고있는가. 아니, 알려고나 하는가. 모름지기 그네들은 종묘와 사직을 받들고 백성을 다스리며 조정을 지키는 이 나라의 주인들일것이다.

변방 바다가에서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삼고있는 이름없는 젊은이들은 제 나라 령토가 왜놈들의 롱락물이 되는것을 보고만 있을수 없어 가슴을 치며 뛰여다니건만 나라의 《주인》으로 자처하는 저 대궐안의 량반사대부들은 지금 과연 무엇을 하고있는가.

리생원은 다시한번 서글프고 쓸쓸한 눈길로 쑥대 설렁거리는 궁성터를 휘둘러본 다음 오던 길을 되돌아나왔다.

광화문밖에서 남쪽으로 곧추 뻗은 이 길은 의정부와 리조, 호조, 례조, 병조, 형조, 공조 등 6조와 한성부가 길 좌우에 자리잡고있어서 예로부터 《륙조앞》이라 불리우는 번화하고 으리으리한 거리로 소문이 높았다.

하지만 허물어진 궁성을 등지고앉은 관청들은 다 헌이불을 들쓰고 앉은것처럼 볼꼴이 없고 거리는 한산하고 어수선하기만 하였다.

길 량쪽에 처마를 맞대고 늘어선 크고작은 기와집들에서는 한창 아침연기가 피여오르고있었다.

청계천상류인 이 길 좌우편과 서대문쪽은 이른바 《웃대》라 하여 주로 각 관청과 영문관아의 아전들과 관공리들이 사는 곳이요, 청계천하류인 동대문안팎은 《아래대》라 하여 군교를 비롯한 무관계렬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요, 청계천중류인 종로, 구리개아근은 중촌이라 하여 의관, 역관, 주관 등 이른바 중인신분의 사람들과 장사치들이 사는 곳이였다.

이밖에 북촌과 남촌이 있는데 여기는 다 량반들이 사는 곳이였다. 하지만 량반이라도 북촌과 남촌에 사는 량반이 달랐으니 산수 좋은 북악산밑 삼청동을 중심으로 한 북촌에는 왕족들과 권문대가들이 살았지만 남산밑 청학동을 중심으로 한 남촌에는 사화당쟁에서 밀려난 령락한 량반들과 벼슬없는 량반들이 모여살고있었다. 갖바치와 같은 노비천역들은 량반들만 득실거리는 북촌, 남촌에는 얼씬 못할뿐아니라 웃대, 아래대에서도 살기 두려운듯 동소문밖 한구석으로 밀려가 비좁게 옹크리고앉은 초가지붕밑에서 살고있었다.

이것이 무서운 신분의 올가미에 칭칭 묶이운 이 나라 왕도의 모습이였다.

한해만에 다시 보는 한양장안이지만 달라진것은 별로 없었다.

리생원은 문득 눈길을 들어 멀리 북부 광화방(당시 한양성안 한 구역의 이름)에 자리잡은 창덕궁쪽으로 눈길을 던지였다. 숙종왕이 열아홉해째 룡상을 지키고 앉아있는 저 대궐, 고요한 천길물속에 가라앉는 돌덩이처럼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듯이 보이는 저 대궐의 깊으나 깊은 구중심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그것을 누가 알랴.

하지만 며칠후 리생원은 례조좌랑을 지내는 먼 조카벌되는 사람에게서 궁담을 넘어 새여나온 상서롭지 않은 사건의 일단을 얻어들을수 있었다.

그것은 지난 4월 어느날 밤, 자정도 훨씬 기운 때에 있은 일이였다.

번거로운 생각때문에 잠 못들고있던 임금이 잠행(남몰래 혼자서 궁궐안을 돌아보는것)을 하다가 무수리들이 거처하는 어느 한 방에서 아직도 불빛이 보이기에 이상스러워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릿다운 젊은 녀인이 떡 한그릇, 찬 한그릇을 올려놓은 개다리소반앞에 무릎을 꿇고앉아 두손을 비비며 무엇인가 열심히 빌고있었다.

미심쩍은 생각이 든 임금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무수리 최씨는 들어서는 사람이 다름아닌 임금인것을 알아보자 황급히 그 자리에 엎드리며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였다. 서리발을 날리는듯 한 임금의 표표한 기상에 벌써 기가 질린 무수리는 독수리발톱에 채인 병아리처럼 얼혼이 나가버리였다.

《이게 무슨 해괴한짓이냐?》

임금의 엄한 목소리가 울렸다.

《상감마마, 쇤네가 죽을 죄를 지었소이다.》

최씨의 목소리는 애처롭게 떨렸다.

《황송하오나 오늘이 페비되신 중전마마(왕후의 자리에서 밀려난 인현왕후 민씨)의 탄일(생일)이라 평소에 쇤네를 사랑해주시던 중전마마를 차마 잊지 못하여 감히 외람된짓을 하였사오니 백번 죽어 마땅하오리다.》

인현왕후 민씨가 왕후의 자리에서 쫓겨난것은 기사년(1689년)의 일이였다.

당시 인현왕후는 궁궐에 들어온지 7~8년이 되여오도록 왕자를 낳지 못하였다. 임금의 나이가 벌써 30인데 왕자가 없으니 명종대부인(숙종왕의 어머니)과 명안공주(숙종왕의 누이)는 물론 여러 신하들도 걱정을 하고있었다. 그러던중 무진년(1688년) 10월에 궁녀로 있던 희빈 장씨가 왕자를 낳았다.

임금이 왕자를 낳은 장희빈을 총애하게 되자 눈치빠른자들은 벌써 장희빈을 중전(왕후)으로 받들며 그가 낳은 왕자로 세자를 책봉하여야 한다고 떠들었다.

당시 우리 나라 량반통치배들은 《남인》이요 《서인》이요 하면서 여러패로 갈라져서 당파싸움을 벌리고있었는데 임금이 장희빈을 총애하는 이 기회를 리용하여 남인들은 정권을 쥐고있는 서인을 꺼꾸러뜨릴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아직 피덩이나 다름없는 어린 왕자 균을 둘러싼 왕후 민씨와 희빈 장씨와의 암투는 한갖 시앗싸움에 그치지 않고 서인과 남인의 피비린 당파싸움으로 화하게 되였으며 조정은 매우 불안하고 첨예한 정치적국면에 직면하게 되였다.

서인의 우두머리인 송시렬 등은 어린 왕자를 세자로 책봉하는것은 아직 이르다는것을 주장하였으나 장희빈의 유혹과 남인들의 참소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임금은 기사년 4월, 드디여 인현왕후를 페출(왕후의 자리에서 쫓아내는것)한다는 전교를 내리고야말았다. 임금의 그릇된 처사를 충간하던 신하들은 모조리 파직당하거나 류배의 화를 면할수 없었다. 세자책봉의 시기상조를 론하던 송시렬은 사약을 받고 죽었으며 판서 오두인, 참판 리세화, 응교 박태보 등은 임금에게 련명으로 상소를 올렸다가 매를 맞고 죽거나 갑산으로 쫓겨가는 등 40여명의 서인관료들이 하루아침에 꺼꾸러지고 민암, 목래선 등 남인들이 등용되여 정권을 쥐게 되였다.

이것이 력사에 이른바 《기사환국》이라고 전해오는 페비의 비극을 둘러싼 정권교체의 일단이다.

그러니 인현왕후 민씨는 장희빈과의 시앗싸움에서 지고 쫓겨난 녀인이면서 동시에 당파싸움의 제물로 희생된 불행한 녀인이였던것이다.

인현왕후가 페출되여나가자 궁궐은 장씨의 세상으로 변하고말았다. 장희빈은 중전의 자리를 차지했고 그의 애비는 옥산부원군으로 봉군되고 오래비 장희재는 훈련대장을 제수받았다.

장씨의 말 한마디면 이 궁궐안에서는 안될 일도 되고 될 일도 안되게끔 되였다.

그런데 장씨의 세상으로 화한 이 궁궐안에서 남몰래 민씨의 명복을 빌고있었으니 무수리 최씨의 죄는 죽음이 아니면 갚지 못할 중죄가 아닐수 없었다.

무수리 최씨도 이것을 알고있었기에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몸을 떨면서 임금의 마지막말 한마디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대노하여 벼락을 내릴줄 알았던 임금의 태도였다.

한동안 아무 말없이 애처롭게 떠는 최씨의 잔등을 내려다보던 임금은 저으기 비감에 잠긴 목소리로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는것이였다.

《흠- 그렇지. 오늘이 4월 스무사흘, 그러니 민씨가 페출된지도 어느덧 5년세월이 흘러갔구나. 세월은 가버려도 못 가버리는것이 사람의 마음이지… 민중전을 못 잊어하는 네 마음이 참으로 갸륵도 하다!》

민씨를 그리워하는 임금의 마음은 이날부터 최씨를 총애하는것으로 표현되였다. 그리하여 무수리 최씨는 뜻밖에도 임금의 사랑을 차지하여 《숙인》으로 승격하고 후궁(왕의 후실부인)으로 책봉되였다.

하지만 숙인 최씨의 행운속에서 자기에게 닥쳐올 불행이 싹터 자라고있음을 누구보다도 먼저 간파한것은 장희빈이였다. 녀성본연의 단순한 시샘만이 아니였다. 자기와 자기가 낳은 왕자의 운명을 위협하는 일이 닥쳐올것을 두려워한것이였다.

그런데 그 일은 끝내 닥쳐오고야 말았으니 숙인 최씨가 왕자를 잉태한것이였다.

만일 최씨가 새 왕자를 낳는다면 일이 어떻게 될것인가? 장희빈자신도 왕자를 낳은 덕에 중전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던가! 속수무책으로 닥쳐오는 불행을 기다릴 장희빈이 아니였다.

그리하여 전고에 다시없는 무서운 살인음모가 구중궁궐 깊숙한 내전에서 남모르게 꾸며지게 되였다.

어느날 밤, 어수선한 꿈에 시달리던 임금이 답답한 가슴을 식히려고 전각후원을 거니는데 담장밑 컴컴한 그늘속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임금이 급히 대전별감을 불러 앞세우고 소리나는쪽으로 가보았을 때 담장밑에 주런이 엎어놓은 빈독들가운데서 약간씩 움씰거리는것이 하나 있었다. 대전별감이 그 독을 조심히 번지자 질식되여 빈사지경에 이른 숙인 최씨가 독속에서 나왔다.

장씨의 간악한 소행임을 알게 된 임금은 치를 떨며 부르짖었다.

《간악하기가 이지경에 이르렀더란 말이냐? 민씨가 중전의 자리를 지키고있었더면 이런 일은 없었을것을… 괘씸한지고!》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진 다음부터 임금은 장씨를 더는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는것이였다.…

얼른 들으면 할일 없는 안방마님들이 입방아를 찧기에나 알맞을 소문이라 하겠지만 결코 그런것만도 아니였다.

임금이 장희빈을 멀리하는 동시에 민씨를 더욱 잊지 못해한다는 이 사실은 매우 중대한 사변을 암시하고있는것이였다.

물론 지금 임금의 심중을 그 누구도 다는 들여다볼수 없다. 하지만 민씨를 못 잊어한다는 이 사실은 곧 기사년의 처사를 후회한다는것을 뜻하며 그것은 또한 남인을 저버리고 서인을 믿게 되리라는것을 의미하는것이였다.

이제 임금이 인현왕후 민씨를 다시 중전으로 맞아들이는 날이면 장희빈이라는 녀인 하나가 중전의 자리에서 밀려나는것으로 그치는것이 아니라 남인의 무리가 정권에서 쫓겨나고 서인들이 다시 정권을 쥐는 일대 정변이 일어나게 되리라는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였다.

이 시절에 한양장안 곳곳에서는 이런 노래가 불리웠다.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는 사철이라…

 

《장다리》란 장희빈을 가리킨것이고 《미나리》란 민씨를 말하는것이였다. 장씨는 한철이니 오래 못간다는것이고 민씨는 사철이니 이제 다시 꽃필 날이 있으리라는것을 암시한 일종의 참요였다.

또한 이때 서포 김만중이 인현왕후를 페출한 숙종왕의 그릇된 처사를 바로잡을 목적으로 썼다고 하는 국문소설 《사씨남정기》가 한양장안과 여러 지방의 량반집 안방에서는 물론 궁녀, 무수리들과 일반 서민녀성들속에서도 널리 읽히우고있었다.

사회여론의 화살은 이미 썩어빠진 왕실에 향해지고있었고 닥쳐올 또 한차례의 피의 참극을 예감하고있은것이였다.

다홍치마 두른 녀인들의 시앗싸움과 신하들의 당쟁때문에 돌틈에 치인 호박처럼 이물러 터지고 쭈그러진 왕권, 오늘은 남인,  래일은 또 서인이라 하며 왕이 갈팡질팡하는데 따라 백여년이나 비틀걸음에 비틀걸음을 거듭해오는 조정.

저 선조왕 계미, 갑신년간(1583~1584)에 처음으로 동인이니 서인이니 하고 갈라진 후 정견이나 주의, 주장이 달라서 싸운것도 아니고 순전히 저의 문벌과 당파의 리익을 위해 검은것도 희다 하고 흰것도 검다 하며 피를 물고 싸우다가 동인이 다시 남인, 북인으로 갈라지고 서인이 또한 로론, 소론으로 갈라져서 벌써 100여년동안이나 이른바 《사색당쟁》이라는 정치적살인참극을 거듭해오면서 나라를 파산지경에 몰아넣고있는 저 고루하고 완고하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량반사대부들.

시골에 가면 몰라도 서울에 가면 썩고 병든 이 나라를 눈앞에 보는듯 하여 언제나 마음 무거워지는 리생원이였다.

밖에서는 왜놈들이 창궐하여 갖은 간사한짓으로 나라의 사등뼈를 꺾고 골수를 빨아먹으려고 혀를 날름거리며 덤비는데 이 나라에 과연 그 혀바닥을 한칼에 베여버릴만 한 담력과 용기와 의기를 가진 인물은 없단 말인가.

량반사대부들은 사리와 공명만 탐내고 선비유학자들은 공리공담과 음풍영월로 세월가는줄 모르고 가난한 백성은 당장 먹고 살아갈 일이 급하여 허리를 펼새 없으니 과연 누가 나라의 목을 감고 늘어지는 저 독사를 찍어버리겠는가!

리생원은 시름겹게 한숨을 내쉬며 눈길을 들어 앞을 내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캄캄하고 암담할뿐이였다.

하지만 리생원의 괴로운 생각에는 아랑곳없이 저자거리는 여전히 북적거리고 소란스러웠다.

《저… 울산서 뵈운적 있는 생원님 아니신가요?》

누군가 앞에 와서 굽석 인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흰 무명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웬 젊은이가 벙실벙실 웃으며 앞에 서있었다. 표가 나게 시꺼먼 눈섭과 황소목처럼 굵은 목이 대뜸 눈에 익어보였다.

《아니? 이게 누군가? 백운산에서 나를 구원해준 힘장사총각일세그려.》

리생원은 백운산 왜도적의 소굴을 칠 때 안룡복이와 함께 자기를 구원해준 류일천이를 알아보았다.

《녕해서 산다던 임자가 어떻게 한양에 와있나?》

《대궐에 들어갈 진상짐을 실은 수운선 사공으로 뽑혀 한 열흘전에 왔어요.》

《대궐에 진상이라니? 무슨 때아닌 진상인가?》

《섣달 초엿새가 왕대비(왕의 어머니)의 6년제사날이라나요. 경상감사는 물론이고 좌우병사, 수사가 승벽내기로 진상을 올리는바람에 대동미 천석을 싣는다는 대중선 한척이 가득했지요. 거기다가 동래서 동래부사와 박충량이라는 부자가 또 제각기 훈련대장앞으로 올리는 진상짐까지 더 처실었으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인데… 제길, 칠산바다를 지니고 안흥목, 손돌목을 지날 때는 사공들이 모두 칠성판을 지는가 했소이다.》

리생원은 길게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두사람은 천천히 륙의전 점포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혜정교에서부터 창덕궁동구까지 길 량쪽에 점포들이 죽- 늘어선 여기가 한양장안에서는 사람붐비기로 으뜸인 곳이였다.

길 좌우에 늘어선 긴 행랑들에 각가지 물건을 벌려놓았는데 솜파는 목화전, 땔나무 파는 시목전, 담배 파는 연초전, 돼지고기 파는 지육전, 갓양태 파는 양태전, 반찬 파는 자반전… 별의별 물건을 파는 점포가 다 있었다.

구석구석에 멍석이나 삿자리를 깔고 물건을 펴놓은것도 있는데 그곳에도 사람들이 어깨를 비비며 이리저리 밀리였다. 검정갓양태가 여기저기서 기울기울하고 누런 초립, 패랭이, 푸시시한 맨상투들이 콩끓듯 복작거렸다.

몽두리로 얼굴을 가린 젊은 아낙네들과 삿갓을 쓴 녀인네들도 남정네들 못지 않게 장군들을 비집으며 삼삼오오 떼를 지어 밀려다녔다.

장군들의 소와 말들을 매놓은 버드나무가 듬성듬성한 장통방아래 천변에서는 말과 하늘소들이 우는 소리, 소영각소리가 들리고 퀴퀴한 말오줌냄새가 물씬물씬 풍겨왔다.

《넨장, 사람사태가 났군. 무슨 사람이 이리도 많을가…》

한달에 여섯번 서는 촌장이나 구경해오던 류일천이가 어리둥절하여 두덜거렸다.

《한 나라의 왕도로서 인총과 물산이 이만 못해서야 될 말인가. 세상만물중에 제일 큰 보배는 사람이야. 사람이 흥해야 세상도 흥하는걸세. 사람을 천하게 여기면 도리여 세상도 천해지는 법이네.》

《량반님들이나 사람을 천하게 여기지 누가 그러나요?》

류일천이가 시꺼먼 눈섭을 쭝긋거리며 리생원의 눈치를 흘끔 살핀다.

《허허허…》

리생원은 파랗게 개인 가을하늘을 쳐다보며 껄껄 웃을뿐이였다. 절름발이 량반이지만 그도 량반은 량반이였던것이다.

두사람은 륙의전 장거리를 거의 벗어나 저자변두리로 나왔다. 사람도 덜 붐비고 짐실은 소달구지와 부담상자를 진 말들이 여기저기에 널려있었다.

장을 다 본 사람은 싣고갈 차비에 분주하고 물건을 새로 싣고온 사람은 물건을 부리우기에 분주한 판이였다.

말뚝벙거지를 쓴 말구종 몇몇이 장보러 간 주인을 기다리는지 빈달구지채에 걸터앉아서 지나가는 젊은 아낙네들의 얼굴을 곁눈질하며 킬킬거리고있었다.

누군가가 《송서방!》 하고 부르자 달구지채에 걸터앉아있던 주홍코가 《왜 그래?》 하며 돌아다보았다.

이 순간에 그곁으로 지나가던 류일천이는 주홍코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니?》

류일천이가 우뚝 걸음을 멈추고 서자 송서방이라고 불리운자가 불에 덴듯이 찔끔 놀라며 허름한 갓밑에 얼굴을 감추며 돌아앉아버린다.

《아니? 울산서 온 송서방 아니시우?》

류일천이는 달구지곁으로 다가서며 지꿎게 말을 걸었다.

그제야 주홍코는 마지못해 일어서며 푸시시한 뒤자분이를 긁적거리였다.

《이게 누군가? 글쎄, 어쩐지 낯익다 하면서두… 힘장사총각을 한양바닥에 와서 만날줄이야 생각이나 했겠나? 아니, 생원님께서두 오셨습니다려. 그간 무고하셨소이까?》

송서방은 얼른 일어서며 배허벅에 두손을 붙이고 제법 곰살궂게 허리를 굽석해보이였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예까지 왔나?》

《예, 소인은 박주부어른네 장사짐을 싣고 따라왔소이다. 박주부어른은 지금 동평관(서울에 온 왜인들이 머무르는 집.)에… 아니, 동평관이 아니라… 저 점포에 물건 바꾸러 갔소이다.》

(동평관에?)

두사람이 다 이런 의심이 부쩍 일어나서 귀를 강구는데 송서방과 함께 달구지채에 걸터앉아있던 두사람이 서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급히 눈짓을 하더니 슬그머니 일어서서 자리를 피하는것이였다.

급히 자리를 피하는 두 사나이의 얼굴을 무심히 살펴보던 리생원과 류일천은 (아니? 저게 울산서 놓친 왜도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피끗 떠올랐다. 하지만 너무도 뜻밖에 떠오른 의심이여서 잠시 어정쩡해있는 사이에 의심쩍은 두 사나이는 벌써 붐비는 장군들속으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허허허… 여보게, 이럴 때 탁배기라두 한사발 있었으면 좀 좋겠나? 참, 한양장안에 없는게 없네그려. 정말 없는게 없어.》

송서방이 이렇게 딴전을 피워보았으나 리생원과 류일천의 얼굴에는 그냥 의심스러운 기색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자 송서방은 류일천의 팔소매를 잡아끌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보게, 임자와 함께 왜도적을 잡아왔던 그 안룡복이라는 젊은이의 소식을 들었나?》

《아니, 못들었소. 나야 그때 녕해로 이내 떠났으니 뒤일을 알리가 있소?》

류일천은 왜도적생각은 그만 까마득히 잊고 안룡복의 일이 궁금하여 송서방의 입술 열리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송서방은 얇은 눈까풀을 깜박거리며 류일천의 얼굴을 뻔히 쳐다볼뿐 입을 열려하지 않았다.

《아니, 무슨 일인데 된똥 누듯 갑자르기만 하우?》

《아, 급하다구 콩밭에 서슬을 처넣을텐가. 그 사람이 잡혀갔네.》

《잡혀가다니? 어디루?》

류일천의 시꺼먼 눈섭이 꿈틀 놀라 뛰였다. 리생원도 뜻밖의 소식인지라 온몸이 굳어졌다.

《왜놈들한테 잡혀갔네.》

《왜놈들한테?》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청어배를 타고 나갔다가 풍랑에 밀려 울릉도에 가붙었는데 거기서 왜놈들과 맞다들렸다더군.… 그 사람이 왜도적을 잡아올 때는 기세가 등등했지만 제가 왜놈들에게 잡힐줄이야 꿈에나 생각했겠나. 알다가두 모를게 사람의 일이지. 올리막이 있으면 내리막두 있구…》

《그게 정말이우?》

류일천이가 황소숨을 쉬며 다가섰다.

《정말이 아니믄 거짓말이겠나? 안룡복이 그 사람과 함께 바람에 밀려 울릉도까지 갔던 목서방이 구사일생으로 돌아와서 하는 말을 내 귀로 들었네, 내 귀로…》

《허- 그 사람이 졸경을 치르겠구나!》

리생원이 긴 한숨을 내쉬였다.

《그런데 혼자 잡혀갔다던가?》

허름해도 명색이 량반인 리생원까지 이렇게 안달아하는것을 눈치챈 송서방은 말할 재미가 부쩍 났다.

《혼자가 아니라 박어둔이라는 사람과 함께 잡혀갔답디다.》

《어둔이까지?》

《그렇소이다. 그 사람도 백운산에서 왜도적을 묶어온 사람인데 왜놈들한테 앙갚음을 당했지요.》

《덜된소리 그만하우.》

류일천이가 도끼눈을 해가지고 송서방을 흘겨보았다.

《앙갚음은 무슨 앙갚음이요? 왜도적을 잡은것과 우리 사람이 잡혀간것이 경우가 같단 말이우?》

《허, 이 사람이… 나보구는 왜 역정인가. 나야 그저 그렇단 말이지.》

삿갓밑에 드리운 리생원의 낯빛이 컴컴하게 변해가고있었다.

동래를 떠난 후 순천 송광사를 거쳐 한양에 이르기까지의 지난 몇달사이에 있었던 상서롭지 못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으로 흘러지나갔다. 그리고 한양성안에 머무른 이 며칠사이에 보고들은 놀라운 일들이 머리속에서 무섭게 소용돌이치고있었다.

어디서나 왜놈들의 간지러운 독침에 찔리우는줄 모르고 찔려 부어오르고 곪아가는 상처들을 보았다. 임진왜란이라는 큰 재난을 겪은지 겨우 백년이 되였을뿐인데 어느사이에 제살덩이와 배짬에 다시 박히는 왜놈의 독침을 느끼지 못하고 수백년래의 깊은 잠속에 다시 빠져 태평스레 자고있는 이 나라.

소리지르며 흔들어 깨우고싶도록 안타까왔다. 하지만 세상의 버림을 받은 비천한 선비의 몸으로 잠든 나라를 깨울만 한 우렁찬 목소리와 드센 힘을 구할 도리가 없었다.

문득 우악스러운 왜도적을 묶어 앞세우고 개선장군처럼 백운산을 내리던 그때의 안룡복이네들의 름름한 모습이 그리워졌다.

그 젊음과 기백과 용기와 의기… 하지만 안룡복이, 박어둔이… 그들은 불행하게도 왜놈들에게 잡혀간 몸이 아닌가!

간특한 왜놈들이 그 불덩이같은 젊은이들의 살을 찢고 뼈를 부서뜨리고 나중에는 마음까지 이그러뜨리려 할것이니 아,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고…

리생원의 얼굴에 그늘이 더욱 짙게 드리우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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