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삼남지방에서 5월이면 아주 한여름이나 다름없다. 립하가 갓 지난 때였건만 벌써 가마속처럼 무더웠다.

전라도 순천지경에 들어서서 린제산이 멀리 보일 때쯤부터는 길가에 드문드문 보이는 초가집들마다 울바자그늘이나 처마그늘밑에는 어김없이 누렁개가 아니면 검정개들이 긴 혀를 빼물고 팔자좋게 늘어져있었다.

바싹 마른 길에서는 누런 흙먼지가 펄펄 일어났다.

짐실은 소달구지 아홉바리가 그 길에 한줄로 길게 늘어서서 길먼지를 일쿠며 송광사가 자리잡은 골안으로 들어서고있었다.

길다란 달구지행렬뒤로는 먹베장삼을 늘어뜨린 상승(장사하는 중) 세사람이 따라 걷고 그뒤로 삿갓을 쓴 선비 한사람이 여윈 하늘소등에 올라앉아 끈에 단 조롱박처럼 타박타박 따라가고있었다.

느린것을 황소걸음이라 하는데 여윈 하늘소는 황소보다도 못하였다.

짐실은 소달구지를 겨우 따라가는 형편이였다.

삿갓 쓴 선비는 두귀를 축 늘어뜨린 하늘소를 내려다보다가 어이없는 웃음을 껄껄 웃었다.

《허허… 참, 딱한 짐승이로다. 사람신세를 지려고드는구나…》

그러더니 선비는 하늘소등에서 훌쩍 내려 걷기 시작한다. 숙여쓴 삿갓밑으로 보이는 땀에 젖은 훤칠한 이마, 검은 수염… 리생원이였다.

안룡복의 어머니 리씨가 그동안 잘 먹여준 하늘소를 타고 길을 떠난것이 보름전이였다.

전라도지경에 들어서니 한 시오리전부터 이 소짐바리를 만나 길을 같이 걷게 된것이였다.

소짐바리들은 송광사로 가는것들이였다. 소짐바리들 뒤로 슬금슬금 따라가는 몸집이 크고 나이듬직한 뢰헌이라는 중은 송광사 장사배를 맡아부리는 사람이였다.

그는 배에서 부리운 짐들을 달구지에 옮겨싣고 지금 송광사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이름이 중이여서 머리를 깎고 장삼을 걸치였으나 말을 나누어보니 뜻이 속되지 않고 세상리치에 밝은 헌헌장부였다.

《길이 험한데 어째 하늘소에서 내리시오니까?》

뢰헌이 하늘소에서 내려 걷는 리생원을 돌아보며 의아하게 물었다.

《허허, 지기일이요 미지기이(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라더니 사람 편한것만 알고 짐승의 고생을 몰랐소그려.》

리생원은 하늘소고삐를 달구지뒤채에 헐겁게 매여놓고 활개를 저으며 뢰헌과 나란히 걸었다. 하늘소는 빈몸인데도 타박거리며 잘 걷지 못하고 어쩌다 돌부리에 걸채이면 비틀거리기까지 하였다. 그때마다 리생원은 하늘소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참, 불쌍한 짐승이로다!》 하고 혀를 끌끌 찼다.

뢰헌은 리생원과 함께 걸으면서 장사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돈은 돈마다 다 구리돈이요, 돈잎마다 《상평통보》 넉자를 열십자로 박은것은 다 같지만 그 씀씀에 따라 돈은 돈마다 다 다르게 깨끗한것이 있는가 하면 더러운것도 있고 선한것이 있는가 하면 악한것이 있고 간사한것이 있는가 하면 우직한것도 있다는것이였다.

무수집전하고 불문곡가(손에 돈을 쥐지 않고 곡식값을 묻지 않는것)한다는 량반선비인데다가 또 그런 세상사는 원래 알려고 하지 않던 리생원인지라 뢰헌의 그 말이 매우 이상스럽게 들렸다.

《허허… 스님의 말씀이 참 희한도 하구려. 돈잎마다 각각이라니… 그럼 상목이나 쌀도 각각이란 말씀이요?》

《소승의 소견에는 그렇소이다. 상목은 다 서른다섯자가 한필이지만 농사집아낙네가 바디집에 손이 닳도록 짜낸것이 다르고 저 동래 울산의 갑부라 하는 박충량이 같은 사람이 광마다 쌓아둔 수백동의 상목은 다 다른것이오이다.》

뢰헌의 말은 박충량의 돈과 물건은 나라와 백성을 생각지 않는것이기때문에 더럽고 악한것이지만 농사집의것은 나라와 생계를 위한것이니 선한것이라는것이였다.

《허허… 스님의 말뜻은 알겠소.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돈도 각각이라… 그것 참, 뜻이 깊어 기억해둘만 한 말씀이요. 그런데…  그렇다면 스님이 손수 쓰는 저 돈이나 물건도 마찬가지일터인데 그것은 어떤것이라구 해야 하겠소?》

뢰헌은 빙그레 웃었다. 입술 뾰족하기가 하늘높은줄 모르는 풍류선비답다고 생각한것이였다.

《소승들이 쓰는 저 돈은 다 악한것이오이다.》

《아니? 악한것이라니? 그것은 어떻게 하시는 말씀이오?》

《저 돈은 우리 송광사 사찰소유인 130결의 토지를 소작하는 백성들에게서 땅값이상으로 긁어모은것이오이다.》

뢰헌의 사나이다운 부리부리한 눈자위가 불그레해졌다.

《그런것을 소승이 모르는바 아니지만 승적에 오른 몸이요 또 생업이 천한 장사이니 어찌할수 없소이다.》

리생원은 뢰헌이라는 이 사람을 다시 보지 않을수 없었다. 장삼을 걸친 한갖 장사치가 아니였다.

갑자기 덜커덕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달구지뒤에 매달려 끌려가듯 하던 하늘소가 길바닥에 푹 꼬꾸라졌다. 고삐가 끊어진채 먼지바닥에 나동그라진 하늘소는 한동안 네발을 버둥거리였다.

소짐바리들을 급히 세우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나 지친데다 더위를 먹고 쓰러진 하늘소를 일으켜세울수 없었다. 하늘소는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말았다.

비명에 죽은 하늘소를 길옆 웅뎅이에 옮겨놓고 풀가지로 대충 덮어놓고났을 때 리생원은 자식을 잃은 사람만큼이나 애석해하며 한숨을 푹 내쉬였다.

《참, 세상사가 허무하기도 하구나. 4년세월을 함께 풍상고초를 겪다가 한번 가오 소리도 못하고 객지에서 꺼꾸러지니 그만이로구나. 나같이 박명한 선비를 등에 지고 동분서주하다가 남긴것 하나없이 가버리니 이 세상에 네가 살았던 흔적이 과연 무엇이구 그런 한생을 살걸 무엇때문에 살았더란 말이냐. 어허- 허무한 세상사로구나!》

비감에 잠겨 긴 넉두리를 늘어놓는 리생원의 눈기슭에 물기까지 번들거리였다.

《허허… 짐승의 일을 두고 그러실것이 있소이까? 어서 가던 길이나 가십시다.》

뢰헌이 보기가 딱하여 한마디 하였다.

《짐승이지만 살고죽는것이야 사람이나 무엇이 다르겠소? 참, 불쌍도 하구려.》

리생원은 손에 쥐고있던 풀가지를 하늘소의 굳어진 몸우에 조심히 던지고 뢰헌을 따라 길에 나섰다.

뢰헌은 허름한 리생원의 차림새를 새삼스럽게 뜯어보았다.

구겨질대로 구겨진 누런 도포자락과 숙여쓴 낡은 대삿갓, 하지만 번쩍거리는 눈빛과 꾸밈이 없는 표정, 허리를 쭉 펴고 활개를 내저으며 걸어가는 그 모습에서는 불의앞에서 꺾일지언정 굽히려 하지 않는 사나이다운 기개가 력력히 보이였다. 죽은 하늘소를 놓고 비록 미친 넉두리같은 말을 했지만 그 말속에서는 사람다운 진정이 느껴졌다.

뢰헌은 길가에서 만난 이 선비와 은근히 마음 터놓고 사귀고싶어졌다.

서울길은 아직 먼데 동무삼던 하늘소까지 잃었으니 이 선비의 일이 걱정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송광사에 들려서 하루밤이라도 쉬다가 가라고 권하고싶었지만 절조를 지키는 량반선비가 낯모르는 천한 장사중을 따라 호락호락 아무데나 들려서 다리를 펴고 앉을것 같지 않아서 얼른 말을 꺼내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다가 송광사로 꺾어들어가는 갈림길이 가까와오자 더 미룰수 없어서 조심히 말을 꺼냈다.

《비록 루추하오나 박대하지는 않을터이니 소승들의 절로 함께 가서 한숨 쉬여가심이 어떠합니까?》

뢰헌의 청이 지극하기도 했지만 구태여 그 청을 마다할만큼 급한 일도 없는 리생원이였다.

리생원은 껄껄 웃으며 뢰헌의 청을 받아들였다.

《참 고맙소이다. 스님의 덕분에 이름높은 송광사구경을 하게 되는가보오.》

《천한 상승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니 감개무량할뿐입니다.》

《허허허… 그런 말씀 마시우. 내가 도포를 걸쳤지만 반상(량반과 상사람)의 차별이나 빈부의 귀천 같은것은 원래 안중에 두지 않는 사람이요. 풍류방랑 20년에 내가 즐기는 시조 한수가 있으니 들어보시겠소?》

리생원이 수염을 내리쓸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고 먼 하늘 한끝에 눈길을 주자 뢰헌은 물론 함께 가던 상승들도 모두 롱담이 아닌줄 알고 은근히 귀를 기울이였다.

 

나비야 청산에 가자 범나비야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면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허허허…》

《허허허…》

호탕한 긴 웃음소리를 뒤에 남기며 리생원일행은 삐거덕거리는 소짐바리와 함께 천천히 송광산골안으로 들어가고있었다.

 

송광사는 합천 해인사, 량산 통도사와 더불어 남부조선의 3대사찰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널리 알려진 절간이다.

송광산기슭에 이 절의 첫 기둥을 박은 백제의 그 시절로부터 세월은 천여년이나 흘렀다. 그 사이에 고쳐짓고 다시 짓기를 거듭하였으나 고색창연한 대웅전이며 조계문, 설법당, 웅진전, 약사전을 비롯한 수십채의 건물들이 주런이 처마를 맞대고 들어앉은 이 절간아근에는 언제나 천길물속같은 정적이 깃들고있었다.

절간경내를 흘러지나는 맑은 시내물이 우화각, 침계루 등 수많은 루정들의 발부리를 흔들며 아무리 오는 봄, 가는 가을을 속살거려도 두껍게 내려쌓인 무거운 적막을 깨뜨리지는 못하였다.

이 끝없는 적막때문에 열한돌림두공으로 금단청한 처마를 높이 괴여올린 조계문이 단 두개의 기둥에 의지하여서도 신비하달만치 수백년간 한치도 기울지 않고 서있는지도 모른다. 대웅전의 배부른 기둥우에 틀고앉은 청룡, 황룡이 혀끝에서 맴도는 붉은 여의주(환상적인 구슬)를 수백년이 지나도록 아직 낚아나지 못해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하고있는것도 이 적막때문은 아닌지… 하지만 이 적막은 100여년전의 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있기도 했다.

묘향산에서 서산대사가 승군을 무어 왜적을 무찌르던 저 임진왜란때 송광사의 중 삼혜대사도 리순신장군에게서 시호별도대장의 칭호를 받고 순천에 진을 치고 왜적을 막아 용감히 싸웠다는 한줄기이야기는 순천의 자랑이고 송광사의 자랑이였다.

밤도 어지간히 깊었다.

대웅전과 설법당쪽에서 중들이 밤새워 경을 읽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도간도간 들려온다. 꽃을 감도는 가을벌의 붕붕거리는 날개소리처럼 그쳤다이어졌다하며 가늘게 들리는 그 소리는 무겁게 드리운 적막을 더 한층 짙게 해주었다.

뢰헌이 거처하는 크지 않은 승방(중들이 거처하는 방)에서는 등잔불이 가물거리였다. 대까비노전을 깐 방바닥에서 불그림자가 너울거리였다.

리생원과 뢰헌은 목침을 베고 비스듬히 누웠다.

리생원은 뢰헌의 기구한 인생사를 듣고있었다.

…뢰헌의 속명은 석경래였다.

열다섯살때 종이를 만드는 쟁인바치인 아버지를 따라 송광사로 들어왔다.

당시 봉건정부에서는 절간마다 《지역》이라 하여 종이를 생산하여 나라에 바치는 부역을 지우고있었다.

대를 물려오는 지쟁이집안에서 자란 뢰헌의 아버지는 닥나무종이는 물론이지만 대잎과 뽕나무껍질을 섞어서 만드는 황지, 뽕나무껍질로만 만드는 백지, 삼과 닥을 섞어 만드는 마저지 등 여러가지 종이를 떠내는 귀신같은 재간을 가지고있었다.

뢰헌은 어렸을 때부터 절간에서 공물로 바치는 종이바리를 끌고 중들과 함께 서울과 순천부중으로 자주 다녔다. 규장각이요, 홍문관이요, 춘추관이요 하는 서울관청들에서는 송광사종이가 품질이 좋다하여 앞을 다투어 받아들이였다.

돌아올 때면 번번이 절에서 쓸 물건들을 구해서 싣고오군 하였다.

이것이 장사의 시작이라면 시작으로 되는것이요, 또 세상물정에 눈을 뜨는 시작으로도 된것이였다.

어린 뢰헌이가 무슨 일에나 눈썰미가 있고 착실하다 하여 중들이 글도  가르치고 경읽는 법도 배워주더니 나중에는 승적에 넣어 머리를 깎고 장삼까지 입혀주었다.

하지만 공물바리를 실어가고 절에 쓸 물건을 실어들이는 그의 소임은 변함이 없었다.

뢰헌이 열아홉에 나던 해에 아버지가 끝내 끓는 재물가마옆에서 숨지고말았다.

그러자 홀로 남은 어머니는 입에 풀칠을 할수가 없어서 녀승들의 뒤치닥거리를 해주는 불목승이 되여버렸다.

뢰헌은 이때부터 어머니를 자주 볼수도 없었다. 그런데 스무살나던 해 공물을 바치고 돌아온 뢰헌은 어머니가 《왜승》에게 몸을 더럽히고 목을 매여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왜승》이란 중의 차림으로 정체를 가리우고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우리 나라의 허실을 렴탐하다가 송광사에 들어와 할일없이 얼마간 머물러있던 왜놈이였다.

그 왜놈이 그때 주지의 방에 자주 드나들면서 무슨 금부처의 비밀을 탐지해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당시 주지로 있던 로승자신이 극력 헛소문이라고 우기는 바람에 그 이상한 소문은 크게 번져지지 않고말았었다.

뢰헌이도 그자를 몇번 본적이 있었다. 그자는 뢰헌의 어머니가 목을 매자 그만 정체가 드러나서 장삼을 벗어던지고 어디론가 달아나버리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후에 한 장사중이 왜관근처에서 그놈을 보았는데 밀무역소굴인 가덕섬으로 드나들고있더라는것이였다.

뢰헌은 우정 물건 사들일 구실을 만들어가지고 장사배에 올라 가덕섬으로 들어갔다.

밀무역에 재미를 붙인 왜놈들이 쉬파리 꾀듯 모여드는 곳이였다.

열흘이나 묵으며 드나드는 왜놈들을 살피다가 끝내 그놈을 찾은 뢰헌은 으슥한 곳으로 끌고가서 요정을 내버렸다.

그날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간 뢰헌은 땅밑에서나마 어머니가 눈을 감아줄것을 빌며 비로소 통곡을 터뜨리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뢰헌은 개인의 처지로서는 어머니의 원쑤를 갚은 효자였지만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의 계률을 어긴 《파계승》으로 굴러떨어지게 되였다.

겨우 밥술이나 얻어먹던 절에서 쫓겨나게 된것을 저희 절에 매여있다가 숨진 그의 부모를 생각하고 그랬던지 늙은 주지가 남의 눈에 덜 띄우는 장사배를 타게 해주었다.

그때부터 20년이 넘는 허구한 세월, 돛 한폭에 목숨을 내맡기고 아니다닌 곳이 없었다.

쌀을 수백섬씩 싣고나가 피륙도 사들이고 목재나 석재, 구리쇠 같은것도 사들이였다.

나중에는 절에서 쓸 물건이 아니더라도 리가 나는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싣고다니며 팔기도 했다. 박충량이와 몇번 장사거래를 한것도 이때였다.

이러는 과정에 돈이나 물건의 내속을 알게 되였고 박충량이와 같은 량반부호들이 모아들인 돈이나 물건이 어떤것인가 하는것도 속속들이 알게 되였던것이다.

돈을 위해 나라나 백성을 파는것은 장사가 아니라 매국행위라는것을 잊은적 없는 뢰헌이였다.

남들이 큰 리가 난다고 다 왜관시장으로 드나들어도 뢰헌만은 왜놈들과는 상목 한필 바꾼적없이 20여년동안 장사를 해왔다. 그의 마음속에는 왜놈들에 대한 원한의 옹이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었던것이다.…

창밖에 달이 떴는지 창문은 아까보다 더 환해졌다. 중들의 념불소리는 어지간히 설피여졌다.

리생원은 뢰헌의 사나이다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절간에 매운 몸으로 천한 장사일에 파묻히운 저 기구하고도 불우한 운명, 그 운명만 아니였어도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재목일는지도 모를 저 사나이…

첩자식의 설음을 안고 세상에 한을 품은채 피눈물어린 웃음으로 그 설음과 한을 불사르며 20여년의 풍상을 방랑으로 헤쳐온 리생원…

그 역시 불우하기는 뢰헌이나 다를바없는 사람이였다.

사람들은 지금도 그를 《리생원》, 《리생원》하고 듣기 좋고 부르기 좋게 부르고있지만 사실은 젊어서 한창시절에 평산시골에 살면서 큰뜻을 품고 향시(시골에서 보는 과거시험, 초시)에 급제하고 뒤이어 서울에 가서 복시(다시 치는 시험)인 진사시에 급제하여 진사의 백패(증서)까지 받았으나 그때 뒤늦게나마 벼슬살이라는것이 나라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개인의 부귀영화와 가문과 당파의 리익을 위해 하는 일이며 그것이 나라를 병들게 하고 백성을 못살게 구는 도적행위나 다름없다는것을 깨닫고 썩은 세상에 침을 뱉고 돌아서고말았던것이다.

그런 그에게 생원이면 어떻고 진사면 어떻단 말이냐. 대감이라면 어떻구 정승이라 해서 놀랄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생원님》해도 《예》, 《정승대감님》으로 불러도 《예》했는데 천연스럽게 대답하는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쓰겁디쓰거운 웃음이 떠돌았다.

뢰헌의 인생사를 듣고난 리생원은 문득 그의 불우한 모습속에 비낀 자신의 모습을 보는듯 하여 주름잡힌 눈기슭이 남모르게 젖어오고있었다.

이때 어둑시근한 방구석에 놓인 농짝앞에서 무엇인가 찾고있던 뢰헌이가 누렇게 색이 변한 명주천에 싼 물건을 꺼내놓았다.

《이것이 소승의 어미를 숨지게 한 그 왜놈의 몸에서 떨어진 물건이옵니다.》

명주천을 풀자 하얀 상아로 살을 댄 부채 하나가 나타났다.

정교하게 기름을 먹인 하얀 부채면에는 아무 장식도 없고 다만 먹으로 쓴 몇자의 글이 보이였다.

《귀한 물건이 되여 간수한것은 아니고 부채에 새긴 글이 이상스러우니 무슨 곡절이 있는듯 해서 두고있소이다. 또 부채를 볼 때마다 불쌍하게 숨진 어미를 생각하게 되니 자식의 도리를 잊지 않게 해주는 물건이기도 합니다.》

리생원은 부채를 펴서 등잔불가까이에 내들고 살펴보았다. 상아로 만든 부채라 하여 왜놈들이 흔히 쓰는 《아선》이라 이르는것이였다.

리생원은 부채에 씌여진 글을 소리내여 읽었다.

《<부상국이 밭에 냉이라면 울릉도는 물에 뜬 부평초라>, 흠-》

리생원은 부채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생각을 더듬고있었다.

《이 글귀는 옛날 왕유라는 사람이 일본조감에게 보낸 글가운데 있는것이니 별로 놀랄것이 없지만 그것을 부채에 써가지고 다니는 곡절은 알수 없구려.

예로부터 왜땅을 부상국이라 일러왔는데 우리 나라 울릉도에 비기여 왜땅의 초라함을 말한 글귀를 왜들이 부채에 써가지고 다닐리가 없을터인데…》

리생원은 한동안 말없이 생각을 더듬었다.

《하여간 곡절여하는 불문하고 이 부채를 깊이 간수해두시오. 왜들이 원래 간사조폭한자들이라 닭을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놓는수가 비일비재한데 한때 요긴한 증거물로 되겠는지 아시겠소?》

뢰헌은 낡은 명주천에 부채를 둘둘 말아쥐더니 신중하게 말하였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울릉도라는 섬에 대해서 소승이 이왕부터 알고싶었소이다만 해박다식한분을 만나지 못하여 소원을 이루지 못하던차올소이다.》

리생원은 껄껄 웃었다.

《해박다식은 몰라도 책권이나 읽어둔 덕으루 무식이나 겨우 면했을 따름이니 무슨 들을만 한것이 있겠소.》

리생원은 울릉도에 대하여 동서고금의 기록들을 들어가며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헌데 왜놈들이 근래에 울릉도를 차지하려고 하는것이 틀림없는데 세상은 아직도 잠을 깨지 못하고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니겠소. 이번에 내가 보고들은 일이오만 동래 사는 안룡복이라는 젊은이가 산속에 숨어있던 왜도적들을 잡아서 문초를 하다가 대마도왜놈들이 울릉도를 차지할 흉계를 꾸민다는것을 확실히 알아내였지요. 좌수영과 동래부에 급히 고하니 처음에는 헛소문이라고 하면서 믿어주지 않다가 나중에야 조처를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한심한 일이 아니겠소. 그 젊은이는 왜도적에게 약혼녀를 빼앗긴 사람이라 기어이 왜도적을 따라잡겠다면서 울릉도로 급히 떠나는것을 내 눈으로 보고오는 길이웨다.》

《아니, 그것 참, 놀라운 소식이올소이다.》

뢰헌은 커다란 몸집을 궁싯거리며 웬일인지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있었다.

안룡복이라는 젊은이가 울릉도로 떠나갔다는 소식이 그의 마음을 사정없이 뒤집어놓은것이였다.

무엇때문일가? 그것은 송광사의 늙은 주지와 그만이 알고있는 일종의 비밀이였다.

송광사에는 수백년전부터 전해오는 귀중한 책 한권이 있었다.

고려 의종11년(1157년)에 경차관 김유립이 울릉도를 조사하러 갈 때 따라갔던 진허대사라는 고승이 써서 남긴 책이였다. 책에는 울릉도의 연혁과 자연, 지리에 대해 자세히 적혀있을뿐아니라 부락과 절간자리, 돌부처와 쇠종, 석탑들의 위치와 크기가 낱낱이 적혀있었다. 그 고승은 송광사에서 죽었는데 죽기 전에 유언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그 책에 남기였다.

《울릉도에는 신라시절에 만든 금부처 한쌍이 있으니 이는 해동(우리 나라를 가리키는 말)의 보물로서 이 금부처를 모시면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만복을 누리리라. 금부처를 찾는 사람은 부처의 광배에 〈신라우산국 대불사〉라는 글이 새겨져있어 울릉도가 태고적부터 우리 나라 땅임을 말해주고있으니 이를 명심할지어다.》

진허대사라는 고승은 죽으면서 책을 송광사주지에게 넘기였는데 그 주지는 끝내 금부처를 얻지 못한채 또 다음 주지에게 넘기고 받은 주지는 또 다음 주지에게 넘기면서 여러백년이 흘러왔다.

송광사주지들은 자기 한 당대에 금부처를 얻으려던 희망을 이루지 못하면 금부처를 찾으려고 애쓴 사람들을 낱낱이 책에 기록하여 다음 주지에게 넘기군 하였다. 이러는 과정에 금부처를 얻으려는 희망은 일종의 미신으로 굳어져갔고 진허대사의 유언은 신령스러운 《비결》로 전해지게 되였다.

한때 중으로 가장한 왜놈이 송광사에 머물러있으면서 금부처의 비밀을 탐지해갔다고 소문이 난것이 바로 이 책에 적힌 《비결》을 몰래 베껴간것을 말하는것이였지만 당시의 주지가 그것을 한사코 아니라고 하면서 비밀에 붙였기때문에 그 일은 력사의 망각속에 영영 묻혀버리고 말았던것이다.

물론 지금의 송광사주지는 이전 주지들이 수백년동안 비밀로 여기면서 꼬박꼬박 적어놓은 수많은 실패의 기록들을 다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역시 선배주지들과 마찬가지로 금부처를 찾아보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있었다.

그래서 사나이답고 믿음이 가는 뢰헌에게 누구도 몰래 울릉도에 한번 다녀올것을 부탁하였던것이다.

사나이로 세상에 한번 나서 나라에 리익이 될만 한 일을 하지 못하고 먹베장삼을 걸친채 한생을 마칠 일이 늘 한스러웠던 뢰헌은 비록 믿기 어려운 《비결》일망정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만복을 누리리라는 그 일에 한몸을 바칠수 있게 된것을 기쁘게 여기였다. 언제든지 기회를 보아 울릉도로 배를 띄워볼 생각이였으나 선뜻 용단을 내리지 못한채 한해두해 바재임속에 세월을 보내고있었다. 울릉도라는 글귀가 씌여있는 왜놈의 부채를 리생원에게 보인것도 섬에 대한 들을만한 말이 나오기를 바래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안룡복이라는 젊은이가 울릉도로 떠났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자 뢰헌은 휘저어놓은 독속의 물처럼 마음은 무섭게 출렁거리며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이튿날 리생원은 서울로 떠났다.

뢰헌은 길량식과 로자를 푼푼히 마련하여 내놓았다. 풍류방랑하는 선비이지만 박식할뿐아니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갸륵한 리생원을 알게 된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창졸간에 급히 떠나니 하늘소 한마리 얻어드리지 못하는것이 죄송스럽소이다. 먼 길을 걸어서 어찌 가겠소이까?》

뢰헌은 송광사 조계문밖으로 멀리 따라나와 이렇게 작별을 고하였다.

《고맙소. 죽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만나는게 세상사인데 부디 적선(선한 일을 하는것)을 많이 하여 중생(세상의 모든 생명)을 구원하고 스님의 한몸도 길이 보존하기를 바랄뿐이오.》

《허허허…》

뢰헌이 오래간만에 껄껄 웃었다.

《파계승에게 적선이 다 무엇이고 중생구제가 어찌 가당하겠소이까.》

《허허허…》

리생원도 껄껄 웃었다.

《뢰헌스님이 파계승이라면 소생은 파계량반이랄가.… 하여간 쉽지 않은 연분으로 서로 알게 된것이니 부디 잘 계시오.》

리생원은 산기슭을 따라 구불구불 내리뻗은 길로 도포자락을 훨훨 날리며 걷기 시작하였다.

송광산 소나무숲에서 돌연 쏴- 바람소리가 일어나더니 향기로운 솔꽃가루를 날리며 솔마다 가지를 흔들었다.

리생원의 거무스레한 낡은 대삿갓이 멀리에서 아물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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