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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시마도주의 집은 키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있었다. 큰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지간히 넓은 뜰이 나지는데 그 뜰을 마주안고 들어앉은 대청은 도주가 일을 보는 관사였다.
관사뒤쪽 후원에는 여러채의 호화로운 살림집들과 행랑채와 부엌채들이 처마를 맞대고 즐비하게 들어앉아있었다.
부엌채는 후원 제일 북쪽에 있는데 그뒤로 꽃과 나무가 우거진 넓은 정원이 펼쳐져있었다. 무엇에 쓰는지 알수 없는 여러채의 낡은 집들이 나무와 잡초가 무성한 북쪽담장밑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언제나 이 집 담장안에서는 무덤속같은 정적이 무겁게 떠돌고있었다.
어느 구석에선가 피에 굶주린 귀신의 곡성이 문득 터져나올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침묵, 밤이 오면 이 무서운 정적은 더 깊어가군 하였다.
하지만 오늘밤은 먼 하늘우로 떠가는 달이 있었다. 파르스름한 달빛이 쏟아져내리고있었다. 애잎이 돋아난 나무가지에도 마당가에도…
그 어디에나 흰서리가 내린듯이 달빛이 내려앉고있었다. 내린 우에 또 내리고 쌓인 우에 덧쌓이고… 온통 달빛뿐이였다.
어순이는 누비돗자리를 깐 부엌바닥에 넝마쪽을 덮고 쪼그리고 누워서 창밖에서 환히 비쳐드는 달빛을 바라보고있었다.
문득 왜도적들에게 잡혀 알지 못할 곳으로 끌려가던 그 무서운 밤,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던 먹물같은 바다물이 다시금 눈앞에서 출렁거리는듯 하였다.
…숲속에서 도적 두놈이 불쑥 나타나 입에 더러운 수건을 틀어막고 두손을 묶을 때 어순이는 무슨 영문인지 알수가 없었다. 소리를 지르려 해도 숨이 막혔고 발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었다. 도적들이 지껄이는 말소리를 듣고서야 그는 왜놈들에게 잡혔다는것을 알았다.
왜도적들이 들것에 담아들고 어디론지 달려갈 때 어순이는 왜관으로 끌어가는줄 알았다. 몇해전에도 왜관왜놈들이 부산진에서 녀자 둘을 잡아다 가두어두고 욕을 보인 일이 있어서 우리 나라 관원들과 왜놈들사이에 말썽이 많다가 끝내 불쌍한 녀자 둘은 왜인과 간통을 했다 하여 목을 잘라 왜관담장밖에 매단 일이 있었다.
어순이는 왜관으로 끌고들어가는 날이면 치마끈으로 목이라도 매리라 마음먹고 정신없이 몸부림치며 들것에서 여러번 굴러떨어지기도 하였다. 그 바람에 저고리 안고름에 매여 품고다니던 명주실에 꿴 옥가락지가 옷섶밖으로 흘러나온것을 왜놈들이 빼앗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순이는 몸부림치며 울음을 터뜨리였다.
(대를 물려오던 귀한 물건을 이 못난년이 왜도적에게 빼앗겼으니 내 한몸은 죽으면 그만이지만 이 죄를 무엇으로 씻을가.)
어순이는 컴컴한 배칸에 끌어와 넣는줄도 모르고 그냥 몸부림치며 울었다. 쾅쾅 배밑창을 울리는 사나운 물결소리를 듣고서야 난바다에 나온줄 알았다.
여러날이 지난 후 어딘지 모를 곳에 배가 멎었다. 왜놈들이 다른 배에 옮겨실을 때 얼핏 살펴보니 낯익은 곳인듯 하였다.
선창밑으로 급히 밀쳐넣는 바람에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으나 분명히 울릉도였다! 나서자란 고장이고 꿈에도 잊지 못하는 울릉도인데 순간에 보았다고 왜 알아보지 못하랴!
(아, 울릉도… 나를 여기다 내려놓아요. 저 땅을 한번만이라도 밟아보게 해주어요. 어머니, 어순이가 여기 와있어요. 아버지, 저를 구원해주세요…)
어순이는 몸부림치며 울부짖었으나 왜놈들은 선창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사흘이 지난 후 배는 다시 난바다로 나왔다. 어디론지 가고 또 갔다.
며칠이 지났는지 가늠할수도 없었다. 어딘지 모를 낯선 뭍에 내린 후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이 집으로 다시 끌려왔다.
동자질하는 두 왜인아낙네와 함께 부엌일도 시키고 바느질감도 맡기였다.
함께 일하는 두 아낙네는 대대로 이 집 부엌에서 살아온 녀인들인데 쯔시마왜인들이 다 그러하듯이 조선말을 약간씩 알았다.
나이 쉰을 넘긴듯 한 늙은 아낙네는 그래도 어순이를 측은히 여기는 눈치였으나 좀 젊은 하나에라는 아낙네는 독살을 피우며 우정 못살게 굴려고 악을 쓰는듯 하였다. 아무 까닭도 없이 어순이만 보면 눈을 붉히고 욕질을 하며 잡아먹을듯이 노려보군 하였다.
새끼잃은 암승냥이처럼 그 아낙네의 눈에서는 언제나 시퍼런 불이 이글거렸다.
까닭도 없이 몸서리치는 미움을 받는것이 억울하고 원통스러웠으나 억울한 마음을 하소할 곳도 인정을 주고받을만 한 사람도 없었다. 상대할 사람이라야 좋던 궂던 왜인아낙네 둘뿐이였다.
늙은 아낙네는 일손만 놓으면 젖은 걸레쪽처럼 쓰러지기때문에 물을 말도 변변히 물을수 없었다. 그래서 어순이는 어느날 조용할 때 하나에라는 젊은 아낙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가 대체 어디나요?》
그러자 하나에는 얼굴을 붉히며 독살스럽게 뇌까렸다.
《흥, 어디면 어째서? 네년이나 말라죽을데지.》
어순이는 입술을 깨물며 돌아서고말았다.
밤이 되면 젊은 아낙네는 담장밖에 있는 제 집에 가서 자는 때가 많고 부엌방에는 의지가지없는 늙은 아낙네와 어순이만 남게 되군 하였다.
며칠이 지나도록 말이 없던 늙은 아낙네가 어느날 밤 어순이에게 귀띔해주었다.
그 젊은 아낙네의 남편은 배군인데 몇달전에 장사치들을 따라 부산왜관으로 갔다가 무슨 일때문엔지 조선사람들에게 잡혀서 죽었다는것이였다.
그래서 그 아낙네는 죄없는 어순이를 남편 죽인 원쑤대하듯 한다는것이였다.
《그러니 너무 탓하지 마오. 임자도 마음을 가라앉히구 여기 아주 눌러앉을 생각을 해야지 도망칠데도 없는 곳이요.》
《여기가 대체 어디나요?》
《여기는 쯔시마라는 섬이구 이 집은 도주어른의 집이야.》
《쯔시마라구요?》
어순이는 와뜰 놀라며 몸서리를 쳤다. 왜땅인줄은 알았으나 쯔시마인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온몸이 무섭게 떨려왔다. 이 도적의 소굴에서 다시 살아나갈수 없으리라는 무서운 절망과 억울함보다 부모를 죽인 원쑤의 소굴에 자기가 또 갇혔다는 사실에 몸서리가 쳤다.
아버지, 어머니와 오빠를 빼앗아간 원쑤, 룡이 아버지를 숨지게 한 원쑤… 불타 허물어진 울릉도의 집…이런것들을 생각하니 마음은 무쇠쪽처럼 모질어졌다. 한목숨 내놓기로 마음먹으면야 무엇이 두려우랴.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다만 두려운것은 이 무서운 왜적의 소굴에서 자기 한몸을 지켜내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그것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것이였다.
하지만 피할길 없는 치욕의 순간이 닥쳐오면 반드시 죽음을 앞세우리라는 무쇠쪽같이 모진 마음으로 그 두려움을 이겨가고있었다.
벌레 한마리를 무서워하던 그의 여린 마음은 나날이 얼음장처럼 굳어져가고있었다.
강심을 먹고 소태같이 쓴 음식도 한술두술 삼키였고 왜놈들이 맡기는 바느질감도 얼없이 주무르고있었다.
그렇게 흘러가는 하루하루는 천년같이 길게 여겨졌다. 그동안 백번이나 지쳐 쓰러졌으련만 이를 악물고 일어서군 하였다.
낡은 누비돗자리우에 넝마쪽같은 이불을 덮고 누운 어순의 볼을 타고 눈물이 소리없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울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달밝은 밤 홀로 누워있느라면 눈물은 사정없이 솟아올라 뺨을 어루만지며 흘러내리는것이였다.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이 못 견디게 가슴에 사무쳐왔다.
(룡이 오빠는 내가 대마도에 끌려온줄 모르겠지? 지난 보름날 밤에도 룡바위로 배를 저어왔을텐데 내가 기다리고있지 못했으니 얼마나 서운해하며 돌아갔을가.)
밖에서 휙- 소리를 내며 바람이 불자 마른 나무잎 한줌이 종이를 바른 창문을 와르르 두드리고 지나갔다.
어순이는 소스라치며 몸을 옹송그렸다. 아래목에 쪼그리고 누운 늙은 왜인아낙네는 고달픈 잠에 곯아떨어져 가늘게 코를 골았다.
창틈으로 비쳐든 달빛이 누비돗자리를 깐 거무스름한 방바닥을 비치고있었다. 어순이는 쏟아져들어오는 달빛을 눈물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문득 룡이 오빠의 말소리가 들려오는듯 했다.
《천리밖에 가도 저 달만 뜨면 나는 어순이를 생각하지.》
(아, 룡이 오빠. 날 생각하지 말아요. 난 여기서 살아돌아가지 못해요. 그러니 부디…)
사무치게 그리운 룡이 오빠의 정다운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자 어순의 가슴은 찢어지는듯 아파왔다. 어순의 파랗게 피기가 가신 뺨으로 또다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저도모르게 깜박 잠들었던 어순이는 새벽녘에 눈을 떴다.
왜인아낙네는 아직 꼬부리고 누운채 일어나지 않았다.
어순이는 소리없이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넓고 컴컴한 후원에 자욱하였다. 찬바람이 옷속으로 스며들었다.
밤새 불어지나간 세찬 바람에 애어린 나무잎새는 처참하게 뜯기였다. 누렇게 마른 해묵은 잎사귀 몇개가 앙상한 나무가지끝에서 외롭게 떨고있었다.
키높은 나무가 들어선 뒤울안 북쪽담장아래에 띠풀로 지붕을 덮은 거멓게 낡은 널집 한채가 보였다. 신주를 모시는 신당이라고 왜인아낙네가 알려주던 집이였다.
그런데 그 을씨년스러운 귀신의 집 문틈으로 불그레한 불빛이 깜박깜박 새여나오는것이 보이였다. 매일 새벽 동틀무렵이면 그 시꺼먼 널집에서 늘 그런 불빛이 너울거리군 하였다.
(무슨 불빛일가?)
어순이는 마른 풀대를 밟으며 조심히 다가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소리없이 신당뒤벽에 붙어섰다. 옹이구멍으로 컴컴한 안을 들여다보던 어순이는 그만 《악!》 소리가 터져나오려는 입을 주먹으로 꽉 틀어막았다.
검은 옷을 입은 하얗게 여윈 사람이 바닥에 엎드려있었던것이다.
은초대우에서 너울거리는 한쌍의 초불에 비친 그 사람의 누렇고 길다란 여윈 얼굴과 뼈가 앙상한 두손과 구렝이처럼 바닥에 똬리를 틀고 늘어진 긴 옷자락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웅얼거리는 가는 말소리도 들려나오는듯 했다.
무덤속에서 울려나오는듯 한 그 소리를 들은 어순이는 온몸을 떨며 정신없이 부엌으로 쫓겨들어왔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왜인아낙네가 동자질을 하려고 부엌에서 어정거리고있었다.
어순이는 화들화들 떨리는 손으로 불을 지피면서도 부엌뒤문으로 내다보이는 신당쪽에서 겁에 질린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이윽고 신당문이 열리더니 발등까지 끌리는 검은 기모노로 몸을 감싼 사람이 구렝이처럼 소리없이 빠져나와 본채쪽으로 걸어가는것이 보이였다.
어순이는 저도모르게 장작을 발등에 떨어뜨리며 몸을 떨었다.
《무슨 일이나 있소?》
왜인아낙네가 의아한 눈초리로 파랗게 질린 어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것 보세요. 저기 웬 사람이…》
등이 구부정한 유령같은 그 사람을 얼핏 보고난 왜인아낙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말하였다.
《놀라지 마오. 도주어른이라오. 새벽마다 귀신에게 기도를 드린다우.》
《기도를?!》
어순이는 다시한번 입술을 깨물었다. 구석구석에 피를 문 귀신들이 욱실욱실 나도는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집이였다.
이 무서운 집에서 악몽같은 달포의 나날이 흘러갔다.
담장밑 유자나무꼭대기에서 까치가 깍깍 우짖는 어느날 아침이였다.
날씨도 맑게 개였지만 늘 표독스럽던 하나에아주머니의 얼굴은 그 개인 하늘보다 더 밝았다. 그릇을 부시면서도 어순이쪽을 자주 건너다보는데 그 눈빛이 전에없이 부드러웠다.
부엌이 조용해졌을 때 하나에는 어순의 곁으로 말없이 다가오며 얼굴에 어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 이보라구, 내가 못된년이였으니 용서하우. 까닭도 없이 임자를 미워했지…》
《아니?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어순이는 의아한 눈길로 하나에를 바라보았다.
《죽었다던 남편이나 살아서 돌아왔소. 어떤 조선사람이 다 죽게 된 내 남편을 구원해주었다우. 조선사람은 다 일본사람을 미워한다더니 그렇게 인정많은 사람이 있을줄은 몰랐지…》
하나에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어룽거리였다.
《그래요? 참 기쁘겠어요.》
어순이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글쎄, 내 말 좀 들어보우. 내가 사내아이 다섯이나 데리구 앞 못 보는 늙은 시어머니까지 있으니 혼자서 어떻게 살아가겠소. 죽어버릴 생각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우.》
하나에는 터갈라진 손등을 어루만지며 혼자서 방그레 웃었다.
물을 들인 까만 이발이 두툼한 입술사이로 드러나보이였다. 그처럼 표독스럽던 녀인이 마음을 터놓기 시작하자 끝이 없었다. 수다스러울 정도로 말을 많이 하였다.
《참, 죽어버렸으면 어쩔번 했소. 저 마음 어진 사람이 글쎄 홀아비로 남아있을게 아니우. 참, 생각만 해두 끔찍하지. 그런데 그때 주인과 함께 갔던 놈들은 강도질을 해서 모은 금품을 가지고 다 도망을 쳤다우. 그래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우리 주인이 도리여 죄를 받을번 했다우. 글쎄, 우리 주인한테야 무슨 죄가 있겠소.》
하나에의 얼굴에는 행복에 넘친 웃음이 피여났다.
《우리 주인이 내게 가네붓(이발을 물들이는데 쓰는 붓)을 보낸것이 벌써 십오년전이였소. 우리 쯔시마에는 그런 풍습이 있다우.》
하나에는 열여섯살때 동네 늙은 할머니로부터 시집갈 나이가 되였다는 뜻으로 가네붓을 받고 이듬해 10월 17일에 같은 나이또래들이 이를 물들이고 부끄럼을 타며 절에 가서 중의 념불을 듣던 《성녀식》이야기며 그후 남편될 사람이 저의 집에 가서 가네를 끓이는 단지와 붓 두개를 보내여 청혼하던 일, 첫아들을 낳고 조상의 묘에 찾아가 등불을 켜놓고 중원절(7월 15일)을 맞이하던 일… 고달픈 종의 신세였지만 지나간 생활의 가지가지 아름다운 추억을 골라서 이야기하였다.
《내 평생에 마음놓고 산 날은 별루 없소. 그래도 죽은줄 알았던 남편이 살아돌아온것을 보면 나두 그리 팔자 기막힌 년은 아닌 모양이지. 다 조선사람들 덕분이지. 조선사람들이 정말 고맙소. 이젠 조선사람이라면 누구한테나 다 절을 하구싶소. 무스메(처녀)한테도 절을 해야 할가보우. 정말… 절을…》
하나에는 그만 흥분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어순의 발치에 엎드려 온몸을 떨기 시작하였다.
해진 조리(왜인들의 짚신)를 신은 어순의 발등에 하나에의 더운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불우한 운명을 저주하면서 아무 죄도 없는 처녀를 구박한 일이며 심지어 남편의 원쑤를 갚아볼 무서운 생각까지 품었던 지나간 악몽같은 모든 일에 뼈저린 마음의 아픔을 느낀 녀인의 울음이였다.
달포가 지나도록 사람다운 인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어순이는 갑자기 하나에의 눈물을 보자 그도 녀성이였던탓인지 저도모르게 왈칵 치밀어오르는 설음을 참을수가 없었다.
《아주머니 이러지 마세요. 어서 일어나세요. 기쁜 날 이러면 나도…》
어순의 눈에서 소리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본 하나에는 그제야 마음을 다잡으며 눈굽을 훔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하나에는 어순이를 여러가지로 위로해주려고 애를 썼다. 랭대하여온데 대한 인정갚음이라기보다 진심으로 어순이의 처지를 동정하여 도와주려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하나에가 어순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저… 조선 어느 고장에서 살다 끌려왔소?》
《왜 그러세요?》
《달리 생각말라구. 남편이 꼭 알아보아달라구 해서 그러니…》
《동래라는데서 살았어요.》
《동래라는데가 부산포 화관(왜인들은 왜관을 이렇게 불렀다)에서 멀지 않은 곳이우?》
《한마을이나 다름없이 가까워요. 나두 그곳에 몇번 가봤어요.》
다음날 새벽에 하나에는 어순이를 끌고 뒤울안구석으로 가서 나직이 물었다.
《임자가 박씨아니우?》
《그래요. 박어순이예요. 어떻게 그걸?》
《아이구,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가!》
하나에는 손벽을 치며 왜말로 환성을 질렀다.
《우리 남편을 구원해준 사람도 동래사람이라는데…》
《동래사람이라구요? 누군데요?》
《안상을 모르우?》
《네?》
《이름이 안룡복이라던데…》
어순이는 아무것도 못들은 사람처럼 하나에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볼뿐이였다.
《아이구,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을가? 안룡복이라구 모르겠소? 동래사람이라는데.》
어순이는 아무 소리없이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으며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룡이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