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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밑에 너와로 지붕을 이은 집 한채가 숨어있었다. 지붕까지 가리우도록 돌담을 높이 쌓고 거기에 바위덩굴까지 입혀놓아서 얼른 보면 오랜 돌무지같이만 보였다.
그뒤에 집이 숨어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할수 없을만큼 잘 위장되여있었다.
양지바른 벼랑안쪽에 그런 집이 두채나 더 있었다. 첫집이 문서방네 집이였다.
문서방내외는 낯선 배 두척이 섬에 들어왔다는 쇠동의 말을 듣고 송곳방석에 앉은듯 마음을 조이고있다가 뜻밖에도 룡복이와 어둔이가 들어서는 바람에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여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쇠동이 어머니는 너무도 반가와 눈물만 쏟고있다가 《에그, 이 정신 좀 봐.》 하면서 부엌으로 내려가고 문서방은 쇠동이를 이웃에 사는 김서방과 최서방네 집에 보내서 뭍에서 사람들이 왔다고 기별을 하게 하였다.
경사라도 이런 경사가 없었다. 10여년동안 정을 나눌만 한 사람을 한번도 만나지 못하고 지내온 사람들이였다.
김서방과 최서방이 신도 바로 꿰지 못한채 급히 쇠동이를 따라 들어왔다.
김서방은 쉰소리를 갓 듣기 시작한 중늙은이였고 흰 수염을 가슴에 드리운 최서방은 예순고개를 훨씬 넘겼는데 섬의 좌상으로 대접받는 늙은이였다. 언제나 뭍이 그립고 사람이 그리웠던 그들이라 뭍의 소식을 이것저것 많이도 물으며 감탄도 하고 한숨도 쉬고 때로는 껄껄 웃기도 했다.
이윽고 새로 지은 손님밥상이 들어오고 탁배기도 몇사발 돌았다. 쇠동이 어머니가 반가운 손님대접으로 성의를 다했던탓에 급히 한 밥이고 찬이였으나 밥상은 그리 어설프지 않았다.
《갑자기 아무 마련도 없네만 많이들 들게.》
쇠동이 어머니는 밥상을 당겨놓아주며 음식을 권하였다.
그러나 룡복이와 어둔이는 상에 마주앉을 기분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온갖 성의를 다해 차려주는 아침상을 그저 물릴수도 없는 일이였다.
어둔이는 룡복이 무거운 마음을 어떻게 하나 풀어보려고 우정 너스레를 떨며 밥상에 성큼 마주앉았다. 길다란 대저가락으로 이것저것 듬북듬북 집어먹던 어둔이가 갑자기 눈을 둥그렇게 흡뜨며 물었다.
《아니? 이게 무엇인데 이렇게 맛있소? 혀까지 넘어가겠소.》
《허허허… 그게 전호나물일세. 울릉도에서만 나는 산나물이네. 지금 철이 좀 늦어서 맛이 못하네만 이른봄에 전호나물, 꼬치미, 삼나물맛이란 정말 별맛이지.》
《그것 참, 듣던 소문대로 정말 이 섬이 보물섬이우.》
《허허허… 보물섬이구말구.》
최서방이 흰 수염을 흔들며 껄껄 웃었다.
《어디 그뿐인가. 산에는 향나무, 후박나무, 오동나무, 동백나무 같은 귀한 나무가 울창하지, 려죽이라는 아름드리참대가 자라는 대숲이 곳곳에 있지, 바다에는 물고기가 욱실거리고 해삼, 전복같은것은 다 뭍에서는 볼수 없는 희귀한것들이네.》
《그런데 이 좋은데서 왜 사람을 못살게 한단 말이우?》
《그러게 말이네. 섬을 비워두니 도적은 더욱 끓지…》
《왜놈들이 자주 들어옵니까?》
룡복이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근년에는 해마다 한두번씩은 오군 하네. 주로 봄철 3월과 5월사이에 오는데 조총까지 가진 놈들을 맨손으로 어찌할수가 없네.》
《섬에 모두 몇집이나 살고있습니까?》
《이 포구에 세집, 북쪽 천부동마을에 다섯집, 섬동쪽바다가에 홀로 사는 천서방네까지 꼽으면 모두 아홉집일세. 아홉집이 해안 백리지경에 널려있으니 아주 빈것이나 다름없네.》
어둔이가 수저를 놓으며 최서방을 바라보았다.
《모여살면 의지가 될터인데 왜 그렇게 널려들 사시우?》
《모여살고싶어도 사는 내를 내서는 안되겠으니 그럴수밖에 없네. 사람살기는 이 포구가 제일 좋네만 관가에서도 자주 오고 왜놈들도 가끔 배를 붙이는 까닭에 모여살기가 불안하네. 그래서 모두 사람의 눈에 띄우지 않을만 한 으슥진곳에 널려사는것일세.》
더 듣지 않아도 마음펴고 살지 못하는 섬사람들의 처지가 짐작되였다. 섬사람들은 대개가 부역과 량반놈들의 괄시를 피해온 사람들이였다. 그리고 관가에 매여 종살이를 하다가 가족을 이끌고 들어온 사람도 있고 죄아닌 《죄》를 짓고 몸을 피해온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인데 왜놈들까지 성화를 부리니 안팎으로 고생을 겪고있는것이였다.
아침상을 물린 룡복이와 어둔이는 문서방네 집을 나섰다. 어느덧 아침해가 높이 떠올라 이슬에 젖은 쇠동이네 너와지붕우에서 흰김이 무럭무럭 피여오르고있었다. 문서방과 최서방이 룡복을 따라 포구로 넘어오고 쇠동이도 따라나섰다. 포구에서는 두 배에 싣고온 물건들을 한창 부리우고있었다.
룡복은 배에서 부리운 무명 아홉필을 따로 갈라내여 최서방에게 주었다.
《이것을 섬에 사는 아홉집에서 한필씩 나누어 쓰시우. 오래간만에 뭍에서 사람이 왔는데 별로 줄만 한것이 없습니다.》
《고맙네. 섬에서 무명끝을 구경할 도리가 없더니… 허허허…》
최서방은 흰 무명필을 손바닥으로 조심히 쓸어보았다.
《시집가고 장가들 때에도 바라지 못하던 무명일세. 섬에는 베밖에 없네. 얘, 쇠동아, 얼른 이 무명을 집집마다 나누어주면서 뭍에서 사람들이 왔다구 알려라.》
《알겠어요.》
쇠동이는 도래굽이에 숨겨두었던 매생이에 무명 아홉필을 싣고 곧 떠나갔다. 사람들은 나무를 찍어다가 절터아래 양지바른곳에 림시 거접할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쉴참에 룡복은 어둔이, 문서방, 최서방과 함께 절터뒤산으로 올라갔다.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나지막한 산등에 이르자 무덤 세개가 가지런히 솟아있었다. 파란잔디에 뒤덮인 그 무덤들에는 10여년전에 있은 원한에 사무친 불상사를 상기시킬만 한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말없고 조용하고 지어 영원한 안정이 깃든듯 한 저 봉분밑에 그리운 아버지며 어순의 부모와 오빠가 눈도 감지 못한채 누워있으려니 하는 생각이 들자 룡복의 마음은 말할수 없는 슬픔으로 설레이였다. 아버지와 함께 울릉도에 처음으로 왔던 그때의 일들이 눈앞에 생생히 되살아나는듯 하였다. …불타버린 집터에서 울고있던 어린 어순이를 구원하던 일, 왜놈들에게 무참히 죽은 어순의 부모와 오빠를 땅에 묻을 때 아버지와 함께 온 사공들이 모두 이를 갈며 왜놈들을 저주하던 일…
그런데 그 일이 있은 다음날에 사람들은 뜻밖에도 섬 서쪽에 있는 주칠굴이라는 굴속에서 주토를 파가는 왜놈들과 맞다들렸었다. 어순의 부모를 죽이고 섬을 략탈한 바로 그 왜놈들이였다.
《이놈들, 잘 만났구나. 어순의 원쑤를 갚게 되였구나!》
사공들은 모두 이를 갈며 뿔뿔이 도망치는 왜놈들을 쫓아갔다.
그런데 다른 놈들은 다 숲속으로 도망쳤으나 약삭바른 왜놈 둘은 바위뒤에 숨겨두었던 매생이를 타고 도망치고있었다. 매생이우에는 어느사이에 실었는지 주토 한가마니가 놓여있었다.
《저게 이 섬에서 파간 주토가 아닌가?》
룡복은 아버지의 두눈에서 불이 펄펄 이는것을 보았다.
《그까짓것 한가마닐세. 놔두세.》
정서방이라는 사공이 아버지의 팔소매를 붙잡으며 만류하였다.
《그 한가마니는 남의 나라것인가? 안되네. 한줌이라도 못가져가네. 이 도적놈들아. 게 서지 못할가!》
아버지는 벼락치듯 한 소리를 지르며 바다가로 뛰여갔다.
매생이는 금방 기슭을 떠나 굼뜨게 움직이고있었다.
《서라, 이놈들!》
아버지는 왜놈들이 급히 끊어내버리고 간 매생이를 매였던 바줄을 풀어들고 물속에 뛰여들었다.
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 노젓는 배보다 더 빨리 헤염쳤다. 왜놈들은 죽을 힘을 다하여 노를 저었지만 아버지가 던진 바줄이 고물에 와 걸리자 꼼짝 못하게 되였다.
《걸렸다! 아버지 걸렸어요.》
룡복은 환성을 지르며 사공들과 함께 아버지를 도우려고 물에 뛰여들었다.
그런데 이때 바줄을 당기며 재빨리 매생이에 다가붙는 아버지의 머리우에서 왜놈들이 칼을 빼드는것이 보이였다.
《아버지, 위험해요-》
《여보게, 바줄을 멀리서 당기라구-》
사공들이 급히 소리를 지르는 순간에 흰 섬광이 번쩍이며 칼날이 아버지의 머리우에 떨어졌다.
사공들이 매생이를 섬에 끌어다붙이고 두 왜놈을 요정내고났을 때 아버지는 이미 마지막 숨을 모으고있었다.
《룡복아, 흔한 흙이라두… 오늘 한줌을 주면 래일은 한배를 주게 되고… 나중에는 섬을 통으로 먹히운다. 흙 한줌, 돌 한개라두… 안되지.… 이 섬도 내 나라 땅이 아니냐…》
아버지는 흰 구름이 소리없이 떠가는 푸른 하늘을 마지막으로 쳐다보고있었다.
《넋이라도 남아 섬을 지키겠으니 나를 여기에 묻어다우. 그리구 불쌍한 어순이를 부탁한다… 룡복아, 어순이를…》
감지 못한 아버지의 눈동자우에 비낀 흰 구름이 어디론지 소리없이 흘러가고있었다.
《아버지!》
룡복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아버지의 가슴에 엎드려 몸부림쳤다.
사공들은 양지바른 산비탈에 어순이네 식구들과 나란히 아버지를 묻었다.
아버지가 목숨과 바꾼 피빛처럼 붉은 주토 한가마니를 봉분앞 상돌밑에 정성들여 다져넣었다.
《룡복아, 이 흙 한줌에 아버지의 얼이 비껴있구나. 이걸 가지고 가서 아버지의 뜻을 언제나 잊지 말어라.》
정서방이라는 사공이 주토 한줌을 목에 둘렀던 무명수건에 소중히 싸서 룡복에게 안겨주었다.
어린 룡복은 그것을 가슴에 품은채 피눈물을 뿌리며 무덤앞에서 오래도록 떠날줄 몰랐다. 이렇게 아버지를 섬에 묻은 룡복은 사공들과 함께 보름만에 뭍으로 돌아왔었다.…
룡복은 말없이 무덤주변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세개의 무덤중에서 상돌앞흙이 눈에 띄우게 불그레 물든것이 있었다. 아버지의 무덤이였다.
룡복은 품속에 깊이 간수하고있던 주토가 든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어렸을 때 정서방이라는 수군에게서 받아두었던것이였다.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꺼내보군 하던 주머니였다.
《아버지!》
룡복은 이끼덮인 상돌앞에 엎드리며 조용히 부르짖었다.
상돌밑에 묻은 주토가 오랜 세월 비물에 씻겨내려 무덤앞을 벌겋게 물들이며 흘러내린것을 내려다보는 룡복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였다. 그것은 아버지가 흘린 선혈같기도 하고 섬이 흘리는 피눈물같기도 하였다.
(아버지, 룡복이가 왔어요. 넋이나마 여기 남아서 섬을 지키겠다고 하셨는데 아직도 왜놈들이 그냥 드나들고있으니 얼마나 원통하셨어요. 그런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아버지!
아버지, 저 간악한 왜놈들을 천백배로 복수하고 어순이를 찾아오기 전에는 내 아버지앞에 떳떳이 나설수 없는 자식입니다. 그 험악한 왜도적의 소굴에서 어순이가 무사히 살아나있겠는지…아버지, 어찌하면 좋습니까!)
룡복은 쯔시마가 있을 먼 남쪽바다를 말없이 지켜보고있었다.
수평선쪽에서 재빛구름이 낮게 떠돌고있었다. 그 구름때문인지 바다는 컴컴하고 무겁고 우울한 빛으로 가득차있었다. 검푸른 물결만이 마치 그 무슨 하소연을 터뜨리듯 섬기슭을 치며 쉼없이 철썩이고있었다.
무덤주변에서 풀도 뽑고 비물에 씻겨내린 흙도 다져주고있던 최서방과 문서방이 다가오고 어둔이도 룡복의 곁에 와 해묵은 잔디를 깔고앉았다.
최서방이 흰 수염을 후들후들 떨며 침통한 어조로 말하였다.
《쇠동이의 말을 들으니 며칠전에 섬을 렴탐하고 간 왜놈들이 임자의 약혼녀를 싣고 가버렸다는데 섬사람들이라는게 정말 면목이 없네. 여기 자네 아버지두 묻혀있구 박서방네 내외두 묻혀있지만 우리를 뭐라구들 했겠나. 어순이 그애가 이 섬에서 나서자란 애인데 섬사람들이 그애를 잡아가는 왜놈들에게 돌 한개 던지지 못했으니 여기 묻힌이들이 우리를 얼마나 원망했을텐가…》
최서방의 목소리가 떨리였다. 룡복은 너무도 비통해하는 로인의 모습을 보자 가슴이 찢어지는듯 하여 더는 견딜수가 없었다. 천리바다를 헤여서라도 어순이를 찾아가고싶은 마음뿐이였다. 쯔시마에 가서 그 가증스러운 왜놈들을 꺾어누르고 어순이를 찾아올수만 있다면 그 무슨 일도 마다하지 않을 마음이였다.
최서방은 괴로와하는 룡복의 얼굴만 살펴보다가 얼른 말을 다른데로 돌리였다.
《그런데다가 왜놈들이 섬을 렴탐하고 간것으로 보아 당장 기여들 조짐인데 이 일은 또 어찌하면 좋은가? 우리 섬사람들한테야 이보다 더 큰 우환거리가 있겠나?》
《로인님.》
룡복은 격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말하였다.
《섬을 방비하는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떠나올 때 관가에 낱낱이 알리였으니 곧 방비대책을 세울것입니다.》
《아니? 관가에서?》
최서방이 놀라와하였다.
《그러면 군사를 파하리란 말인가?》
《모르기는 하겠습니다만 섬에다 진을 설치하구 군사를 얼마간 주둔시키면 왜놈들이 더는 기여들지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허허… 그것 참, 귀가 열리는 소리일세. 그러니 이 섬에도 진이 서고 군사들이 둔전을 부치며 살겠네그려. 그러면 우리 섬사람들도 더는 숨어살지 않아도 될것이 아닌가.》
말수 적은 문서방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진이 서면 우리 쇠동이를 당장 군사로 번을 들리겠네. 섬을 지키는데 섬사람이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나? 헌데 그게 그리 쉽게 될가?》
문서방이 머리를 기웃거리자 밝아졌던 최서방의 낯빛도 어두워졌다.
《자고로 이 섬이 관가의 덕을 본 일이 없네. 화는 입혀두 섬을 위해준적이 없었단 말일세.》
《동래부사가 한 대답인데 그렇게 가볍게 들을수 있겠습니까. 꼭 조처해줄겁니다.》
《글쎄… 부사가 한 대답이라니 어떨는지…》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운지도 오랬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포구로 내려오려고 하는데 쇠동이가 숨이 턱에 닿아 달려왔다.
《룡복형님, 관가에서 배가 왔소.》
《관가에서?》
관가에서 나오려면 아직 얼마간 더 기다려야 할줄 알았는데 벌써 배가 와닿았단 말인가?
《그래, 몇척이나 왔냐?》
《한척뿐이오.》
《한척? 수군은 몇사람이나 되구?》
《수군같은건 그림자도 못봤소. 가보면 알게 아니우. 어서 내려가우.》
룡복은 사람들과 함께 급히 포구로 내려왔다.
돛을 내린 소맹선 한척이 기슭에 매여있고 군복입은 무관 한사람과 라졸 대여섯이 방금 섬으로 내려서는 참이였다. 그런데 라졸들은 륙모방망이를 찬것외에는 병쟁기를 가진것이 없고 무관은 허리에 긴칼 한자루를 찼을뿐이였다. 섬을 지키러 오는 사람들치고는 너무도 어설핀 차림새였다.
무관은 푸르죽죽한 전복에 붉은 전립을 비뚜름하게 젖혀쓰고 시꺼먼 목화를 신은 발로 흰 모래불을 어석어석 밟으며 사람들쪽으로 다가왔다. 옷차림으로 보나 거들먹거리는 몸가짐으로 보나 활쏘기와 칼 다루는 법보다 멋부리기를 먼저 배운 사람이라는것을 어렵지 않게 가려볼수 있었다.
집을 짓느라고 한창 바삐 서둘던 사람들이 모두 몰려와서 경계하는 눈길로 배에서 내려서는 무관과 라졸들을 지켜보고있었다. 무관은 사람들앞에 와서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동래부사의 령을 받고나온 검차관이다. 헌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이렇게 무리를 지어 금지하는 섬에 들어와있느냐?》
룡복은 급히 사람들앞으로 나서며 한쪽무릎을 꺾고 엎드리였다.
《소인들은 다 경상도 동래에 사는 사람들이온데 저 목서방네 사람들은 청어잡이를 나서고 소인들은 죄없는 사람을 잡아가는 왜도적 렴탐군을 쫓아나섰다가 그만 다같이 풍랑에 밀려 섬으로 표류해왔소이다.》
《포류해왔다구?》
검차관이 룡복의 얼굴을 흘깃 바라보았다.
《다 알고나왔으니 속일 생각을 하지 않는것이 좋다. 너희들중에 안룡복이가 누구냐?》
검차관이 눈알을 굴리였다.
《소인이 안룡복이오.》
룡복은 저으기 불안을 느끼며 대답하였다.
《음, 바로 만났구나. 네가 감히 금지하는 섬에 사람들을 끌고들어와 왜인들과 공연한 말썽을 일으키려 한다지?》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룡복은 놀라서 부르짖었다.
《공연한 말썽을 일으키려는것이 아니라 왜도적이 한마을에 사는 죄없는 처녀를 잡아가기에 쫓아나섰을뿐이오.》
《두말할것이 없다. 왜인들과 말썽을 일으켜 나라의 교린관계를 흐리게 하지 말고 지체없이 섬을 비우고 돌아오라는 부사의 령이 내렸으니 그리 알고 모두 떠날 준비를 갖추어라.》
(아니, 섬을 비우고 돌아오라니?)
룡복은 벌떡 일어섰다.
도대체 이런 처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동래부사가 다 알아서 조처하겠다고한것은 무엇이였단 말인가! 과연 이럴수가 있는가.
룡복은 눈을 부라리고 서있는 검차관과 라졸들을 쏘아보았다.
《왜도적이 당장 기여들려고 하는 이때에 섬을 지킬대신 섬에 있는 사람들까지 끌어가려 하다니 이런 처사가 어디 있소? 동래부사가 이미 한 말이 있으니 이런 처사를 믿을수 없소.》
검차관의 얼굴에 쓰거운 웃음이 비껴지나갔다.
《믿을수 없다구? 네가 세상물정에 아주 어둡지 않다면 울산에 사는 부자 박충량이라는 어른이 세상에 모르는 일이 없다는것쯤은 알아야 할터인데 전후사연을 그렇게도 짐작 못하겠느냐?》
이것은 룡복이네가 울산을 떠난 후 왜도적을 빼돌린 비행이 드러날가보아 마음을 조이고있던 박충량이가 미리 선손을 써서 안룡복이가 울릉도에 가서 왜인들과 말썽을 일으키려 한다는것을 동래부사에게 련통해주고 그 련통을 받은 동래부사가 급히 무관 한사람을 검차관으로 삼아서 섬에 간 사람들을 모두 잡아내오도록 한 그동안의 사실을 말하는것이였다.
검차관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것을 깨달은 룡복은 온몸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그런것도 모르고 《관가의 조처》라는것을 믿고 기다려온것이 분하고 원통하였다. 사람을 이렇게 속일수가 있단 말인가? 룡복은 주먹을 부르쥐고 몸을 떨었다.
《이게 무슨 처사란 말이오? 어찌 제 나라 섬이 왜놈들의 롱락에 빠지는것을 보고도 못본체 한단 말이오?》
《그렇소이다. 널리 통촉하여주시오.》
최서방이 흰수염을 드리우고 앞에 나와 엎드리며 간청하였다.
《이 섬이 바다가운데 외로이 떠있으나 우리 나라와 한지맥으로 잇닿은 땅이 분명하온데 어찌 말썽이 두렵다하여 내버려둘수 있겠소이까? 바라건대 검차관께서 섬의 정상을 잘 살피고 가서 군사를 보내여 섬을 지키도록 다시 조처해주신다면 더 바랄것이 없겠소이다.》
《더 말할것이 없다. 나는 령을 받고온 사람이라 령을 따를뿐이다. 만약 순순히 따라가지 않으면 오라를 지워서라도 끌고갈터이니 그리 알아 처신들을 하라!》
《아니, 오라를 지우겠다니? 육실할…우리가 무슨 죄인인가?》
어둔이가 왈칵 옆사람을 밀치고나서며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 뒤에서 팔소매를 잡아당겼으나 참지 못하고 그냥 소리를 질렀다.
《그따위 쓸개빠진 수작을 하겠으면 이 섬에서 썩 물러들 가우. 섬을 지키러 온줄 알았더니 이건 어디서…》
《네 이놈! 어디다 대구 행악질이냐?》
젊은 검차관이 얼굴이 불그락푸르락하여 소리를 질렀다.
《네가 감히 관가의 령을 거역하겠단 말이냐?》
《우리는 그따위 령은 모르우.》
《뭐라구? 네가 관가를 대체 뭘루 알구…애들아. 저놈을 당장 묶어라!》
검차관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라졸들이 꽁무니에 차고온 오라를 풀어들고 어둔이를 묶으려고 덤비였다.
《아니 이게 무슨짓이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라졸들을 막아섰다.
《그 사람이 무슨 죄가 있다구 오라를 지운단말이오?》
《그 사람을 묶겠으면 우리를 다 묶어라!》
《미친놈들…그 사람을 다쳐만 봐라!》
사람들은 당장 드잡이를 할 기세로 대들며 어둔이를 막아나섰다. 라졸 대여섯의 힘으로는 마흔가까운 이 사람들을 눌러낼수가 없다는것을 알아차린 검차관은 잠시 어쩔줄 모르고 서있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외진 섬에서이 막된 사람들을 서뿔리 건드렸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를 일이였던것이다. 검차관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두어발자국 물러서면서 맥빠진 소리로 호통을 뽑았다.
《벌이 두렵지 않거든 마음대로들 하거라. 하지만 관가의 령을 감히 거역하고 무사할줄 아느냐? 나는 래일아침까지 대답을 기다려볼터이니 분별있게 처신들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무사치 못할것이다. 얘들아, 그만 가자.》
배를 매여둔 바다기슭으로 급히 물러가는 검차관일행을 지켜보고있던 룡복의 입에서 갑자기 무서운 울부짖음이 터져나왔다.
《아, 관가의 조처라는게 이런것이였단 말인가!》
룡복은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몸부림을 쳤다. 무서운 절망과 울분이 가슴속으로 사정없이 밀려들고있었다.
해가 지자 바다는 더욱 사나와지기 시작하였다. 하늘은 먹물을 풀어놓은것처럼 까맣게 흐리였다. 산더미같은 멀기가 끝없이 밀려나오는 바다는 거세게 온몸을 뒤척이며 날뛰고있었다.
들부실것을 찾아 한길씩 치솟아오른 시꺼먼 물마루가 하늘공중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분풀이를 못한채 모래불에 쾅! 좌르르-쏟아져서는 쏴-하고 기슭을 사정없이 휩쓸어대였다. 그러다가 다시 성칼지게 솟구쳐올라 으르렁거리고 쏟아지고 다시 일어서고… 끝이 없었다.
온통 무엇인가 짓부셔대는듯 한 소리가 바다기슭에 꽉 차있었다. 하늘은 더욱 어두워지고 바다가에는 쩝쩔한 물안개가 자욱히 떠돌았다. 놀란 갈매기 몇마리가 불안스럽게 끼륵거리며 날아돌았다.
룡복은 돌이끼가 거멓게 덮인 바위우에 걸터앉아 무섭게 날뛰는 바다를 지켜보고있었다.
가슴속에서는 참을수 없는 절망과 울분이 치솟아오르고있었다. 왜놈들은 어순이를 끝내 쯔시마로 끌어가버리였고 울릉도를 지켜 조처하겠노라던 동래부사의 말은 더는 믿을수 없게 되였다!
너무도 분하고 원통한 일이였다. 두팔을 부르걷고 나서서 왜놈들을 모조리 짓쳐버리고 허수아비들만 앉아있는 관가의 기둥뿌리를 모조리 뽑아던지여도 가슴속에서 끓어번지는 울분은 풀릴것 같지 않았다.
울릉도와 쯔시마사이에는 거의 천리에 이르는 낯설고 험한 바다가 가로놓여있다.
룡복이도 어둔이도 그 바다길은 모른다. 쯔시마라는 왜섬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어순이가 그 섬 어디쯤에 끌려가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면 어디로가며 가서는 또 어떻게 할것인가.
아, 어순이, 어디에 가있는지 대답이나 해주오, 어디에 있는지…
룡복은 사납게 날뛰는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천리바다를 헤염쳐 건너서라도 기어이 찾아갈테니 한마디만 대답해주오, 한마디만…
바다는 여전히 무섭게 몸부림치며 기슭을 들부시고있었다. 뽀얗게 날려오는 물보라때문에 룡복의 온몸은 휘줄근하게 젖어가고있었다.
절망과 울분으로 들끓던 순간이 지나가자 어순이를 빼앗아가고 아버지를 숨지게 한 왜놈들을 천백배로 복수하고야말리라는 생각으로 온몸이 떨리였다.
그 짐승같은 왜놈들을 이 땅에 발붙이게 내버려둔때문에 어순이도 끌려가게 된것이고 아버지와 어순이의 부모들도 원한을 품은채 땅에 묻힌것이다.
그놈들을 그냥 내버려두고있는 한 누군가는 또다시 어순이처럼 끌려갈것이고 누군가는 또다시 목숨을 잃을것이고 이 땅에 평화로운 날이 없을것이다.
룡복은 두주먹을 부르쥐고 일어섰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길길이 치솟아올랐다가 흰 갈기를 날리며 부서지는 사나운 물결만이 어슴푸레 내다보이였다. 그리고 멀리 새로 지은 초막마당에 화토불을 피우고 모여앉아 불안하게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는 사람들도 보이였다. 그쪽에서 누군가 어둠속을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육실할… 온밤 여기 나와 앉아있으면 어쩔셈인가?》
어둔이가 앞에 와 장승처럼 버티고 섰다가 젖은 모래우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룡복을 찾아 여러곳을 헤매던 어둔이였다.
《그래 말 좀 하게.》 어둔이는 모래바닥에 주저앉은채 갈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어순이는 대마도로 끌려갔지, 관가에서는 되돌아오라지… 뜻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으니 육실할… 어떻게 하면 좋은가? 말 좀 하게.》
어둔이는 아주 절망에 빠져있었다. 부모없이 불쌍히 자라는 녀동생이라 하여 어둔이는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사랑을 기울이면서 어순이를 키워왔다. 그랬던만큼 지금 그의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절망은 아주 헤여날길 없는것으로 되여 가슴을 짓누르고있는것이였다.
절망에 빠진 어둔의 모습을 보자 룡복은 쓰라린 마음을 더는 참을길이 없었다.
그는 정신없이 소리를 질렀다.
《정신을 차리라구! 여기까지 왔다가 그렇게 주저앉을텐가? 왜놈미운 생각도 없구 어순이 찾을 생각도 없나?》
《그러니 어찌하란 말인가? 육실할… 날 붙잡지 말게. 나 혼자서라두 대마도로 가겠네. 대마도주한테 보내는 박충량의 편지를 받아둔게 있으니 그걸 가지구 가겠단 말이야. 죽어두 그애 곁에 가서 죽을테야…》
어둔이가 그 덩지 큰 어깨를 떨며 두어번 헉헉 흐느끼였다.
룡복은 그만 목이 메여 한동안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뺨으로 소리없이 흘러내리는 뜨거운것을 삼키며 갈린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죽기는 왜 죽어? 우리는 못 죽는다. 왜놈들을 살려두고 우리가 왜 죽어?
그놈들이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놓아야 어순이도 찾아올수 있지 그렇지 못하면 그 누군가가 또 잡혀간단 말이야. 내 말 뜻을 알겠나? 힘을 내라구!》
룡복은 어둔의 두어깨를 잡아서 일으켜세웠다. 그를 이끌고 화토불이 빨갛게 피는 초막쪽으로 향하였다.
《어서 가서 왜놈들을 막을 일을 의논하세. 그 짐승같은 왜놈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한시도 마음펴고 살수가 없네. 어순이도 찾을수 없구…》
말없이 걸어가는 두사람의 그림자는 타오르는 화토불빛에 비치여 거인의 영상처럼 모래우에 뚜렷이 새겨지고있었다.
그날밤, 화토불은 온밤 꺼질줄 모르고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