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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랴! 이 육실할 놈의 소!》

어둔이는 느리게 걷는 소잔등을 고삐로 툭 갈기며 중얼거리였다.

《아무리 미물이래두 사람의 급한 마음이야 좀 알아줘야 할게 아니냐?》

달구지에는 십여섬 잘되는 쌀가마니와 여러필의 무명이 실려있었다.

불타는 백운산왜도적의 소굴에서 건져내서 숲속에 감추어두었던것들이였다.

어둔이가 그것을 실으러 빈 소달구지를 끌고 포촌을 떠난것은 이틀전이였다. 좌수영으로 간 룡복이가 돌아오는것도 못 보고 천서방네 소달구지를 빌려가지고 저물녘에 급히 떠났는데 온밤을 새워서 걸었으나 서생포에 이르니 벌써 다음날 아침녘이 되였었다. 그곳 주막에서 아침겸 점심겸 밥 한그릇을 얻어먹고 잠간 눈을 붙였다가 곧장 백운산골짜기로 접어들었는데 길이 험해서 날이 퍽 저물어서야 백운산에 이르렀다.

애꿎은 천서방네 황소에게 눈먼 욕을 퍼부으며 무시무시한 산속에서 고깔불을 피워놓고 하루밤을 지낸 다음 감추어두었던 물건을 처싣고 아침녘에 길을 떠났다.

그런데 종일 왔다는것이 기장고읍동네에 이르니 벌써 해가 서산마루에서 기울기울하였다.

느린것을 황소걸음이라고 하지만 소걸음이 이렇게 느리게 여겨진적은 없었다.

하지만 동래까지는 겨우 15리길밖에 남지 않았기에 땀에 젖은 소잔등을 자꾸 갈기며 길을 재촉하고있었다. 동래가 가까와질수록 그의 마음은 가랑잎에 불달린듯이 조급해졌다.

울릉도로 떠날 배와 사람들을 다 구해놓고 자기를 목빠지게 기다리는 룡복이가 눈앞에 보이는듯 했다. 급한 마음으로 말하자면 룡복이가 더할것이다.

울릉도로 렴탐하러 갔다는 왜도적을 따라잡고 어순이를 찾자면 한시라도 빨리 떠나는 길밖에 없었다.

《이랴! 육실할 놈의 소…》

어둔이는 다시한번 성급하게 소잔등을 갈기였다.

포촌마을에 들어서니 어느덧 캄캄해졌다. 개울건너에 있는 룡복이네 키낮은 두칸짜리 초가집 창문에서는 불빛이 비쳐나오고있었다.

삐거덕거리는 소달구지소리를 들었는지 종이를 바른 지게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 밖을 내다보더니 안에 대고 달구지가 온다고 소리를 지르는듯 하였다. 그러자 아래웃방 지게문이 펄쩍펄쩍 열리면서 숱한 사람들이 삽짝밖으로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어둔인가?》

룡복의 목소리였다.

《한낮때쯤 돌아올줄 알았는데 왜 이리 늦었나?》

룡복이가 소고삐를 받으며 물었다.

《육실할… 소란 놈이 사람의 마음을 어디 알아주나?》

어둔이는 달구지를 마당안에 들여다세우고 소멍에를 벗기면서 어둠속에서 분주히 서둘고있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웬 사람들인가?》

《함께 갈 친구들일세.》

룡복은 그동안 동래아근에 사는 능로군 친구들을 급히 불러왔는데 모두 열댓사람 잘되고 좌수영의 방패선도 한척 빌려놓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개운포에 사는 목서방이라는 사람이 청어배 한척을 가지고 울릉도에 함께 가기로 하였다는것이였다.

그 말을 듣고나니 조급하던 마음이 얼마간 풀리여서 어둔이는 짚신과 행전에 묻은 길먼지를 툭툭 털며 기분좋게 두덜거리였다.

《허허… 육실할… 백운산숲속에서 온밤을 떨었네.》

《물건은 다 제대로 있던가?》

《있지 않으면… 그런데 캄캄한 숲속에서 혼자 밤을 새려니 별생각이 다 들더라니까. 울산서 도망친 왜도적이 다시 달려들것 같기두 하구…》

《나도 그것이 제일 근심되였네. 우둔해도 분수가 있어야지. 떠날 때 한두사람 데리구 가면 못쓰나?》

《언제 그럴새가 있던가? 육실할…》

《자네 그 육실할, 육실할 하는 성미가 이제 큰일을 치지 않나 보게.》

두사람이 방안으로 들어서니 리씨와 룡이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어둔이는 리씨가 차려주는 저녁상을 받고앉아서도 수저를 들 생각은 않고 찬물 한사발을 달라고 해서 단숨에 벌컥벌컥 마셔버리였다.

마당에서 분주히 서둘던 젊은이들이 들어오자 어둔의 얼굴에는 반가운 웃음이 피여올랐다. 밝은데서 보니 다 알만 한 사람들이였던것이다. 어릴적부터 《개똥이네 소년패》에 들어 어깨동무하고 함께 자란 젊은이들인데 지금도 룡복의 말이라면 아무리 험한곳에라도 발벗고 나서주는 믿음직한 친구들이였다. 어둔이처럼 상투를 튼 사람도 두셋쯤 되였지만 거의가 둘레머리를 한 룡복이 또래의 나이듬직한 총각들이고 날렵하게 생긴 애숭이총각도 두엇 보이였다.

마음 든든해진 어둔이는 배고픈김에 밥 한그릇을 게눈감추듯 하고 상을 물리였다.

이때 웃방문이 열리면서 맨머리에 망건만 쓴 리생원이 어둔이를 내다보았다.

백운산 왜도적의 소굴에서 졸경을 치르고 난뒤에 아직도 몸이 시원치 않아서 누워있던 참인듯 하였다.

《그래, 무사히 다녀왔나?》

어둔이는 얼른 몸가짐을 바로하며 대답하였다.

《예, 물건은 다 실어왔소이다.》

《혼자서 욕을 보았네. 헌데 산에 불이라도 나지 않았던가?》

《아니 불이 난 흔적은 없었소이다.》

《흠, 그것참 다행이로군. 혹시 왜도적의 소굴이 불탄 자리에서 불티라도 날려서 산림을 태우지 않을가 근심이 되여 나는 자다가도 놀라 깨군 하였네. 괘씸한 놈들같으니… 그놈들을 모조리 잡아죽여야지 옷섶에 가시가 든듯 해서 마음을 놓을수가 없네.》

《생원님, 걱정마십시오.》

룡복이가 리생원의 초췌해진 얼굴을 바라보며 위로하듯이 말하였다.

《이제 그놈들이 꼭 값을 치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 관가에서는 뭐라구 하던가?》

룡복은 좌수사와 동래부사를 만났던 일을 다 이야기하였다.

《어지간히 시끄러워하는 기색이기는 했지만 동래부사가 급히 조처하겠노라고 대답하였소이다.》

《시끄럽기는 왜 시끄럽다는건가?》

리생원이 격분을 터뜨리였다.

《왜도적이 제 나라 섬에 기여들어가 렴탐을 하면서 무슨짓을 꾸미는지 알수 없는 이때에 마땅히 군사를 풀어 일을 바로잡아야지. 국록으로 배를 불리는 관리의 명색으로 그만한 일도 못한단 말인가?》

《리치는 그렇습니다만 그날도 관리라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나라일을 맡아할 사람은 따로 있으니 능로군의 주제에 분수없이 간참하지 말라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나라를 위하는데서야 어찌 량반상놈이 다를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방비책을 세워달라구 거듭 말하였더니 동래부사가 할수 없었던지 그만 알아서 조처하겠노라구 대답하였소이다.》

 

《그것 참 잘했네. 나라를 위하는데서야 량반상놈이 다를수 없구 말구…》

리생원이 통쾌한듯 껄껄 웃었다.

《룡복형님앞에서야 부사가 아니라 감사라두 어쩔수 없지… 안그렇소?》

제일 나어린 능로군총각이 신이 나서 맞장구를 쳤다.

《그래, 언제 떠날텐가?》

《래일 첫새벽에 떠날 생각입니다. 목서방네 배는 벌써 포구에서 기다리고있습니다.》

《그럼 기어이 약혼녀를 찾아가지고 돌아오게. 나도 임자네들을 따라가고싶네만 졸경을 치른뒤라 몸이 말을 들어줄것 같지 않아서 선듯 나서지를 못하네.》

리생원은 룡복을 도와나서지 못하는것이 진심으로 가슴에 걸리는듯 침통한 낯빛이였다.

《내 임자를 힘으로는 돕지 못하지만 걸음으로야 못 돕겠나? 좀 걸을만 해지면 급히 행장을 수습해가지고 서울로 가겠네. 거기 옛친지들도 더러 있고 례조의 관직을 맡은 조카도 하나 있으니 왜놈들의 간사한짓때문에 이곳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낱낱이 알리겠네. 그게 임자네들 일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태를 바로잡지 않으면 장차 나라가 어느 지경에 이를지 알수 없으니 어찌 속수무책으로 앉아만 있겠나?》

《생원님, 고맙소이다.》

룡복은 리생원의 마음이 진심으로 고마왔다.

《서울로 가시더라도 몸조리를 잘한후에 떠나십시오.》

《념려말게.》

《그럼, 밤도 깊었는데 그만 쉬십시오. 우리는 밤도와 떠날 준비를 갖추어야 하겠소이다.》

《어서 그리하게.》

리생원이 웃방문을 닫자 룡복은 동무들에게 소달구지를 끌고 포구로 먼저 나가라고 이른 다음 어둔이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나는 이제 얼른 개운포에 다녀와야겠네.》

《이밤중에 거기는 왜?》

《저 우마무라라는 왜인을 그냥 숨겨두고 떠날수야 없지 않나? 우리가 없는 사이에 관가에 잡히기라두 하면 어떻게 하겠나. 그래서 개운포에 사는 진서방한테 부탁해두었네.》

《진서방이라니? 그게 왜계집을 데리구 사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네.》

당시 왜인녀자를 데리고 사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으나 남해안일대의 섬들과 외진 포구에 얼마간 널려 살고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왜호》라고 부르면서 인간이하의 족속으로 천시하였다. 왜인녀자를 데리고 산다는데 대한 일종의 민족적멸시감도 없지 않았다. 그랬기때문에 《왜호》들은 대개가 남의 눈을 피하여 외진 포구나 섬에서 살면서 장사를 하려고 남몰래 쯔시마나 이끼섬으로 자주 드나들군 하였다. 그래서 룡복은 개운포에 사는 《왜호》 진서방에게 우마무라를 쯔시마로 실어다달라고 부탁하였던것이다.

진서방은 무슨 리속을 보았는지 군말없이 그렇게 해주겠노라고 대답하였다.

아마 쯔시마왜인인 우마무라를 통하여 장사길을 열어볼 심산이였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내가 지금 우마무라를 데리고 개운포로 갔다올테니 자네는 얼른 집에 들렸다 오게.》

《집에는 왜? 언제 그럴사이가 있나? 육실할…》

《그래두 부모님께 떠난다는 인사라두 해야 할게 아닌가. 그리구 달덩이같은 아주머니얼굴도 한번 더 보구…》

《흥, 새빠진 소리 그만하게. 집에서 내가 어순이 찾으러 가는걸 모르는줄 아나? 그만두겠네.》

《또 그 육실할놈의 성미가 사람을 애먹이는군. 그렇게 훌 떠나면 자네 집 늙은이, 젊은이가 다 나를 욕하네.》

《흥, 욕할 일도 많겠네. 내가 어순이 찾으러 가지 자네를 쫓아가는줄 아나?》

그러거나말거나 룡복은 어둔의 잔등을 문밖으로 마구 밀어냈다.

《어서 갔다가 첫닭울이에 포구로 나오게. 상투값 하기가 그리 헐한줄 알았나?》

《허허… 육실할… 자네 쇠고집은 귀신이나 꺾겠는지…》

어둔이는 마지 못해 포촌막바지에 있는 집쪽으로 발길을 돌리였다.

룡복이가 개운포에 가서 우마무라를 진서방에게 맡기고 돌아오니 그동안 친구들이 쌀과 먹을 물과 상목필들을 배에 다 옮겨싣고 떠날 준비를 끝내였다.

어느덧 첫닭울이가 지났다.

아직 컴컴하였지만 멀리 수평선 동쪽에는 알릴락말락 희끄무레한 빛이 떠오르고있었다. 영글대로 영근 새벽별들이 캄캄한 바다우에서 반짝이고있었다.

그 별이 반짝이고있는 먼 동쪽 바다가운데 자리잡고있는 울릉도! 지금쯤 그곳에서는 새날이 밝고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룡복의 마음은 웬일인지 말 못할 불안으로 설레이였다.

왜도적의 무리가 지금도 그곳에 머물러있을는지… 섬에 기여들어 무슨짓을 벌리고있는지… 어쨌든 배 두척에 사람 수십명이 건너가게 되였으니 무슨 일이 벌어져도 바로잡을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있었다.

첫닭이 홰를 치며 우는 소리가 멀리 마을쪽에서 두어번 들려왔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포구로 급히 다가오는 사람의 발자취가 들리였다.

어둔이였다.

《육실할… 나를 기다리구있나?》

《그래, 아주머니가 눈물동이나 흘렸겠군.》

《내가 뭐 죽을데루 간다구? 어서 떠나자구.》

룡복이와 어둔이는 배에 올랐다.

어느덧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오고있었다. 순풍을 암시하는듯 한 가는 바람이 바다쪽에서 솔솔 불어왔다.

룡복은 아직 잠에서 깨여나지 않은 마을쪽을 바라보았다.

《룡복아, 부디 어순이를 구해가지고 무사히 돌아오너라.》

집을 나설 때 어머니가 동구앞까지 따라나오면서 하던 말이 생각났다.

《어순이를 찾으면 아버님묘에도 꼭 함께 찾아가 뵈워라. 잔치나 치르고나면 나도 너희들을 데리구 한번 꼭 찾아가 뵙자구 했다만… 언제나 그렇게 되겠는지…》

어머니의 가는 한숨소리가 지금도 귀가에 들려오는듯 하였다.

룡복은 눈길을 돌려 조용히 설레이는 새벽바다를 바라보았다. 검푸른 물결은 어서 가자고 재촉하는듯 배전을 치며 굼늬였다.

《자- 닻을 올리게!》

룡복의 구령에 따라 목서방네 배와 룡복이네 배에서 거의 동시에 닻을 감아올리였다.

좌르르- 철썩! 철썩!

돛과 바줄이 물우로 끌려올라오는 소리가 울려퍼지였다.

포구가 잠을 깨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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