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왜 도 적 들

  1

계유년(1693년) 이른봄.

춘분이 갓 지났건만 해빛은 벌써 어지간히 뜨거웠다. 한낮의 볕을 등에 받으며 허줄한 대삿갓을 쓴 한 선비가 여위고 지쳐 쓰러질듯한 하늘소를 타고 힘겹게 길을 가고있었다.

이 선비가 가는 길을 따라 곧추 남쪽으로 내려가면 곧 부산진이고 거기서 다시 서남쪽으로 나가면 두모포를 지나 다대포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 선비는 부산진에 들릴 생각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대포로 내려갈 모양도 아니다.

부산진에서 동쪽으로 비스듬히 뻗어나간 길로 하늘소를 돌려세우면서 삿갓을 뒤로 젖히고 하늘을 쳐다본다.

삿갓이 쳐들릴 때 망건밑으로 땀발이 내솟아 번들거리는 얼굴이 드러나보이였다.

검은 수염이 유표하고 그리 늙지도 젊지도 않은데 쉰두셋, 아니 쉰네댓은 지났을듯한 나이. 먼길을 온듯 누런 도포자락은 되는대로 안장밑에 깔려서 쭈그러들대로 쭈그러들고 등에 진 메산자보짐은 흘러내려 안장옆에서 건들거리였다.

선비는 하늘소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리였다.

《어서 가자, 한낮도 지났으니 너도 배고프겠고 나도 시장하구나!》

하지만 하늘소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저 놀양으로만 걷는다. 하기는 사람보다 짐승이 더 지쳐보였다.

량산서 아침을 먹고 떠난것이 이제 겨우 30리길을 축내고 여기까지 온것은 주인과 하늘소가 다같이 (한양)서울을 떠난후 한달가까이 길가에서만 헤맨 까닭에 길독이 들어 노그라질 때가 된때문이였다.

선비는 타박타박 힘들게 걷는 하늘소를 내려다보더니 어이없다는듯 껄껄 웃었다.

《하긴 너도 지쳤구나. 허허허… 하지만 힘을 내서 어서 가세나.》

선비는 친구에게 말하듯이 하늘소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리였다. 그러자 하늘소는 갈기를 털며 코전을 푸루루 내불었다. 마치 (어디 갈데나 있으시우?) 하고 묻는것만 같았다.

《허- 이 량반 보게.》

선비는 하늘을 쳐다보며 저혼자 껄껄 웃었다.

《갈데가 없으면 가기를 왜 가겠나? 이제 초량까지만 가면 다리두 쉬구 탁배기도 한사발 생길걸세.》

하늘소가 다시 코김을 푸루루 하고 내불었다.

(누가 그저 준답니까?)

《그저라두 못먹을것 없겠지만 거기 가면 누이 못지 않은 어진분이 계시네. 10여년만이니 그 누이도 몰라보게 늙으셨을걸? 그리구 그 개똥이녀석두 좀 보구. 이젠 장가까지 들었을텐데…》

(그 개똥이라는건 누구시우?)

《그 누이님의 아들이지.》

(이름이 없어서 개똥이라 붙이셨소?)

《허허… 무신년에 큰 흉년에다 염병까지 돌아 어른아이 할것없이 무리로 쓰러질 때 그녀석이 강보에 싸여있었는데 험한 이름을 붙여야 애가 무탈하고 명이 길다는 말이 있어서 그렇게 했을걸세. 허지만 이름이야 개똥이면 어떻구 량반이라면 어떻나?》

하늘소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부지런히 걷고있었다.

(하지만 생원님은 량반댁 출신인데 벼슬살이라도 하면 이런 고생이야 하시겠소?)

《허- 당치않은 소리… 내 벼슬에는 뜻이 없기도 하지만 내게 벼슬을 살라는 세상도 아니라네. 뜻이 높으면 무엇하구 글을 읽었으면 무엇하나. 서자의 신세에 근본까지 한미하니 사대부들이 쓴외보듯하는데 이 리인성이라구 세상을 달게 볼리가 있을가?》

리생원은 조글조글 구겨진 소매자락으로 널직한 이마에 내돋은 땀을 훔치며 후유-하고 긴 한숨을 내쉬였다.

《임자가 이 리인성이를 등에 지고 다니기에 넌덜이 날테지만 참구 견디여 봅세. 〈고진감래요 흥진비래〉라- 고생끝에 락이 오고 락이 진하면 비운이 온다는 말도 있지 않나? 이제 볕을 볼날도 있을걸세. 허허허…》

리생원의 웃음소리는 웬일인지 처량하다. 하늘소와 대답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혼자 웃기에는 너무도 무겁고 깊은 사연을 담은 웃음이였다.

그 웃음소리가 채 끝나기도전에 어디선가 무서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서라! 이놈, 서지 않을테냐!》

리생원은 하늘소고삐를 당기며 우뚝 멎어섰다.

담장을 높다랗게 둘러막은 왜관이 눈앞에 나타났다.

왜관은 우리 나라에 외교상거래와 장사를 목적으로 오는 왜인들이 머물러있는곳이였다. 그러니 지나가는 선비를 불러세울만한데가 아니였다. 그런데 웬일일가?

《이놈, 서라! 서지 못할가!》

왜관수문을 지키던 파수군이 또다시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이때 왜관안에서 갑자기 시꺼먼 왜옷차림을 한 왜놈 하나가 담장을 넘어나오더니 급히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그놈을 뒤따라 긴칼을 빼든 왜놈 셋이 또 쫓아나왔다. 앞서 도망친자를 잡으려고 독이 올라 달려나오던 왜놈들은 파수군이 막아서자 이발을 사려물고 찢어지는듯한 소리를 내질렀다.

《도께로!(비켜라)》

《못나간다. 이놈들!》

파수군이 긴창을 꼬나들고 막아섰다.

《저놈이나 도적놈이다. 어째 당신이나 도적을 놓아주었소까?》

술취한 왜놈들이 살기뻗친 눈을 희번뜩거리며 파수군에게 대들었다.

《내가 놓아주었느냐? 그놈이 도망쳤지.》

《당신이나 못잡았으니 우리가 잡겠다는것이다.》

《도망간놈은 우리 관원들이 이제 잡을터이니 군말 말구 들어가우.》

《당신이나 우리 일본사람의 일에 간섭하지나 말라.》

《내가 할일이 없어서 네놈들의 더러운 일에 간섭을 해?》

파수군이 더 참지 못하고 마주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왜놈들이 손에 들고있던 시퍼런 칼을 꼬나들고 파수군에게 대들었다.

《아니, 이 죽일놈들이?》

파수군이 놀라서 흠칫하는 서슬에 왜놈 셋은 벗은 발로 길바닥먼지를 차던지며 급히 문밖으로 빠져나갔다.

《서라, 서지 못할가!》

파수군이 다시 소리를 질렀으나 왜놈들은 들은체도 하지 않고 미친듯이 달려갈뿐이였다.

《에익, 짐승같은놈들… 내가 이 더러운노릇을 그만두어야지… 퉤!》

파수군이 돌아서며 땅바닥에 침을 뱉었다.

리생원은 그제야 하늘소를 끌고 파수군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허허… 거 젊은이 보아하니 참 안되였소그려. 대체 저놈들이 파수군을 뭘로 알고 저처럼 방약무인하게 군단말이오?》

《매일같이 저 지랄이니 어디 견디여내겠습니까. 싸우겠으면 담장안에서나 싸울것이지 담장밖으로 뛰쳐나와 지랄을 하니… 퉤!》

젊은 파수군은 왜관수문옆에 서있는 죄없는 돌비석에 대고 눈을 흘기였다.

리생원은 비석을 살펴보았다.

왜관에서 왜인들이 지켜야 할 사항을 써박은 비석이였다.

《흠- 〈약조제찰석비〉라-》

리생원은 눈을 슴벅이며 어깨노리까지 오는 키에 두어자가량의 너비를 가진 돌비석에 새겨진 글을 읽어나갔다.

《일. 대소사를 물론하고 표시한 정계밖으로 나가는것을 금지하며 그것을 범하고 나간자는 죄로 삼을지어다.

  이. 시장을 열 때 제각기 방에 들어가 몰래 팔고사는자는 피차에 다 죄로 삼을지어다. 흠… 그렇거니…》

리생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조항씩 다 읽어내려갔다.

《이상의 제조항을 관중에 써 세워 지켜야 할바를 명백히 하노라.》

《흥, 왜놈들이 그것을 몰라서 그러는가요? 번번이 혼뜨검을 내주지만 그때뿐이고 아무리 타일러도 소귀에 경읽기나 같지요. 이 왜관이라는걸 아주 없애버려야지 저런 돌비석이나 해세우면 뭘합니까. 세운지 10년이 된다지만 아무 소용도 없지요. 그 짐승같은 왜놈들이 이따위 약조같은걸 아는체나 한답니까. 퉤!》

파수군은 분을 삭일수 없어서 길바닥에 침만 퉤퉤 내뱉는다.

원래 왜관은 부산 모두포에 있었다. 그러던것을 무오년(1678년)에 지금의 초량마을 룡두산기슭에 옮겨왔다. 옮겨온지도 어느덧 10년이 지났건만 사람들은 아직도 초량왜관을 《신왜관》이라고 부른다.

신왜관은 모두포의 구왜관보다 부지가 널직할뿐아니라 왜인들의 공청, 시장, 상점, 창고 등이 다 갖추어있고 담장 서쪽에 큰 관사 세채를 더 지어서 왜인들에게 아무 불편도 없이 꾸려주었다. 그대신 왜인들은 함부로 담장밖으로 나가지 못하며 시장을 열 때에는 조선측 관원들인 훈도, 별차, 수세산원, 개시감관 등의 감시밑에 모든 물건을 검수한 후에 동래부의 허가증을 가지고 들어온 조선 장사치들과 물건을 바꾸도록 두 나라사이에 약조가 되여있었다. 그러나 왜인들은 이 약조를 어기고 자주 담장밖으로 뛰쳐나와 주변마을로 싸다니며 물건을 속여 팔기도 하고 조선사람으로 변장을 하고 근방의 절간과 산으로 다니면서 나라의 비밀을 탐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왜관수문에 밤낮으로 파수를 세우건만 우리에 갇힌 이리나 다를바없는 왜놈들을 단속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원래 옛적에도 왜인들은 《인면수심》이라고 하여 사람의 낯짝에 짐승의 심보라고 이르는 말이 있었지만 저렇게 무도하고 조폭한 무리들인줄은 리생원도 눈앞에 띠여보기가 처음이였다.

리생원은 쓴 입맛을 다시며 다시 하늘소에 올라 가던 길을 가기 시작하였다.

해는 어느덧 서쪽하늘로 기울고있었다. 금방 지나온 연향정 검은 기와우에서 불그레한 해빛이 번쩍거리였다.

리생원은 객사앞을 지나 북쪽으로 뻗은 자드락길에 들어섰다. 그 길로 한 3리정도 가면 포촌이 나진다. 양지바르고 맑은 시내가 흐르는 살기 좋은 마을이였다.

마을어구에 들어서자 커다란 느티나무 한그루가 보이였다. 마지막 다녀간지가 10년이 훨씬 넘었는데 나무는 여전하였다.

동네 늙은이들과 함께 이 나무그늘에 멍석을 펴놓고 모여앉아 구수한 이야기로 시간가는줄 모르던 일이 눈앞에 선하였다. 그런데 마을에 들어서고보니 너무도 낯선 고장같이 느껴져서 길을 잘못들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였다.

개울 량옆에 오붓하게 들어앉아있던 집들은 간곳이 없고 안서방네 집이 있던 양지바른 둔덕에는 뙈기밭이 생겼는데 누렇게 마른 해묵은 조짚대들만 바람에 설렁거리고있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과연 이럴수가 있을가.

리생원은 하늘소에서 내려 길을 물을 사람이라도 없나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였다. 때마침 향나무 한그루가 서있는 박우물가에서 아낙네들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글쎄 범이 한짓이 틀림없대요. 산나물캐러 산에 갔다가 그만 종적을 잃었다질 않아요?》

《그 총각이 미쳤다는 말두 있어요. 달덩이같은 처녀를 잃었으니 미칠밖에… 매일 산속을 헤맨대요.》

(어느 집 처녀인지 범한테 물려간 모양이군.)

리생원은 하늘소를 끌고 스적스적 우물가로 다가갔다. 두어번 헛기침소리로 인기척을 내자 물긷던 아낙네들이 황급히 자리를 비키였다. 비록 차림새는 허름해도 걸친 옷이 량반의 도포인것을 알아본것이였다. 젊은 아낙네들은 고개를 숙이고 엎드린채 곁눈으로 쳐다볼 생각도 못하지만 늙은이 두엇은 아낙네들만 있는 우물가로 아무 꺼리낌없이 다가오는 이 낯설고 렴치없는 량반을 의아스러운 눈길로 훔쳐보고있었다.

《지나가던 길손인데 목이나 좀 추기고 가세.》

리생원이 이렇게 말을 건네자 그중 나이많은 로파가 허리를 펴고 일어서서 표주박을 정히 가셔내고 박우물을 가득 퍼서 공손히 내밀었다. 리생원은 수염을 한손으로 썩 갈라쥐고 샘물을 꿀꺽꿀꺽 마시였다. 얼음같이 차고 단 샘물이였다.

《어- 과시 령남 명산인 금정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르구나!》

한마디 칭찬을 하고나서 빈 표주박을 내밀었다.

하늘소도 흘러내리는 도랑물에 입을 박고 걸탐스럽게 물을 마시고있었다.

《헌데 안로인, 안되였네만 뉘집 처녀가 범에게 물려갔나?》

《예, 올가을에 잔치를 하자던 박씨네집 어순이라는 처녀가 범에게 물려갔는지 종적이 없어진지가 며칠째 되였소이다.》

《허- 그것참, 불상사로군. 이 고장에 호환이 자주 있는가?》

《기미년에는 울안에서 노는 아이를 대낮에 물어간 일도 있지만 근자에는 범이 난다는 소리가 아주 없었소이다. 처녀와 약혼을 한 총각이 반정신이 나가서 매일같이 산으로 찾아다닌답디다만 산사람을 찾기야 이젠 글렀지요.》

우물가로 물동이를 인 열댓살 나보이는 예쁘장하게 생긴 계집아이 하나가 수심어린 얼굴로 아장아장 걸어오고있었다. 그러자 로파는 웬일인지 하던 말을 그치였다. 우물가에 둘러앉아있던 아낙네들은 동정어린 눈길로 그 계집아이를 바라보면서 서로 자리들을 내주었다.

누군가 심히 앓거나 무슨 불행을 당한 집 아이인가보다 하고 생각하면서 리생원은 몰라보게 황량해진 마을을 둘러보았다.

《참, 세월이 흉흉도 하군.》

말을 그치였던 로파가 한숨을 쉬고나서 대답하였다.

《세월탓이 아니라 저 왜관을 가까이둔탓이옵니다. 왜인들이 자꾸 가까운 마을로 나돌면서 간사한짓을 한다고 하여 몇해전에 관가에서 이 포촌에다 불을 질렀소이다. 동네를 비우고 사람이 살지 말라는것이지만 이 고장에 태를 묻고 조상때부터 살아온 사람들이 어디 가서 마음붙이고 살겠소이까. 한두해가 지나자 여기저기에 집을 짓구 다시 모여살기 시작했지요.》

리생원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아까 왜관 파수군을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늙은이의 말까지 듣고 보니 간사한 왜놈들의 성화때문에 순박한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이 가슴아프게 헤아려졌다. 아니,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볼모양없이 변한 마을의 모습이 이 고장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너무도 잘 말해주고있는것이 아닌가.

리생원은 누렇게 마른 조짚만 설렁거리고있는 개울건너 뙈기밭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니 저 조밭자리에 있던 안서방네는 지금 어디 가서 살고있나?》

《그 집을 잘 아시옵니까?》

《내 그 집을 찾아오는 길일세.》

질동이에 물을 퍼담으며 이쪽말을 듣고있던 계집아이가 잔등에 드리운 붉은댕기를 한들거리며 놀라운 눈길로 리생원을 흘끔 돌아다보았다.

그러자 리생원과 말을 주고받던 로파가 그 계집아이를 불렀다.

《얘, 룡이야, 이 길손이 너희집을 찾으시는가보다.》

계집아이가 얼른 일어서면서 겁에 질린 눈으로 리생원을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볼이 빨갛게 익은것이 제법 처녀꼴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럼, 네가 개똥이 동생이냐? 허허…세월이란…》

리생원은 반가와서 껄껄 웃었다.

《네가 나를 모를테지. 그때 네가 네살인지 다섯살인지 났으니… 어서 가자.》

계집아이는 아무말없이 질동이를 이고 앞장서서 아장거리며 걸었다.

리생원은 하늘소를 끌고 계집애의 뒤를 따랐다.

찬 비방울 몇점이 후두둑하고 삿갓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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