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혜숙이네 문제

1

 

정시명이 집에 들어서니 길철이 안지생과 함께 기다리고있었다.

《하, 우리 신랑이 돌아오셨구려. 그런걸 난 걱정하였지. 잘 다녀왔소?》

정시명이 길철이를 보자 속이 가벼워졌다.

《혜숙동문 거기에 떨어졌습니다.》

《아버지와 화해가 된 모양이구만. 보오, 인정이란 그런거라니깐.》

정시명은 사뭇 기분이 좋아서 가볍게 소리내여 웃었다.

《이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안동무, 먼저 보고드리우.》

길철이 열적게 웃으며 뒤전에 물러났다. 무슨 말거리를 따로 가지고온 모양이다.

정시명은 그의 얼굴에 비낀 우수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심상한 어조로 받았다.

《그럼 뭐 길철선생은 잠시 우리 례영의 말동무나 돼주구려. 그러잖아도 상받던 얘기를 듣고싶어 례영이 몸 달아있는데… 발바닥은 성해서 왔소?》

《발바닥이요?… 허허…》

길철이 웃는 바람에 모두가 즐겁게 웃었다.

남도에도 결혼식때 신부마을총각들이 모여들어 신랑을 거꾸로 달아매고 방망이로 발바닥을 조기면서 장모되는 사람한테서 술을 받아내는 풍습이 있다.

《전 뭐 다른게 없습니다. 김구선생을 만나군 하는데 아무래도 선생님이 한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가지는 래일 이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어디로?》

《서병남선생이 자기 집을 팔아치우고 서소문동에 더 큰집을 마련해놓고 정선생님을 기다립니다.》

《서소문동이라?… 도심이구만… 좋지. 여긴 변두리가 돼서 조용한것 같지만 사실은 너무 표적이 되여있어 드나들기 불편하거든. 앞으로 우리 동무들이 리용할 거점들은 시내중심을 기본으로 해서 여러곳에 분산시켜 놓아야겠소.》

《예, 저도 생각해봤는데 이미 창설했던 거점들도 이젠 바꿀 때가 된것 같습니다.》

《그게 다요?》

《예.》

《김구선생을 내가 꼭 만나야겠소? 그냥 입산을 고집하는가?》

《예, 저더러 어제저녁에도 골머리 아픈 얘기를 합니다. 미국놈들에다 요즈음은 김성수네 동네에서까지 곁묻어 드나드는데 도무지 떨떨해지는게 종작이 없다는겁니다.》

《안동무가 더 사업해보오. 평양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였다고 일선에서 물러선단 말이요.》

《김구선생은 물러나는게 자기로서는 마지막싸움이라는겁니다. 미국놈들은 어떻게 하든지 김구를 정권에 참여시키려고 합니다.》

《정략적이겠지?》

《물론이지요. 김구가 정권참여를 선언하면 곧 평양선언 탈퇴선언으로 되는겁지요.》

《옳소, 안동무분석이 정확한것 같소. 〈국회〉개원식이나 지켜보고난 후에 만나기로 합시다. 그전에라도 김구선생에게 똑똑히 밝혀두오. 입산은 외세에 대한 항복이요, 통일운동에 대한 배신이라구 말이요.나라의 운명을 함께 걸머질 생각을 했으면 끝까지 그 책임에서 벗어나서야 안되지 않겠는가. 처신이 힘들구 숨쉬기가 가쁘다구 해서 물러선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돼간단 말이요. 제주도의 통곡소리가 건넌마을의 풍악소리로 들려서야 될법인가.》

정시명은 슬그머니 울기가 솟아서 언성이 커졌다.

《그럼 전 먼저 떠나겠습니다. 래일 서병남선생님댁에 가있겠습니다.》

안지생은 인차 자리를 떴다.

민순임이 저녁상이나 받고가라고 했으나 통금시간이 돼간다며 한사코 대문을 나섰다.

인차 저녁상이 차려졌다.

길철이 민순임의 소매를 끌어 그들은 다같이 상에 모여앉았다.

《별로 할 이야기도 아니고… 천천히 이야기하지요.》

길철이 내키지 않은듯 숟가락을 들고 입을 열었다.

그때 례영이 《언니가 꽂감 한보따리 갖고오겠다 했는데… 그런데 상술 한병이라도 차고와야 옳지 않아요?》 하며 웃었다.

《맞아, 중매 잘서면 찰떡 서말이라 했는데. 난 혜숙이 가져올 인절미 기다리기에 목구멍에 탈이 났다.》

《허허… 이제 한꾸레미 싸들고 들어서겠지.》

정시명이네 식솔들이 이렇게 저들끼리 주고받으며 길철이를 시까스르는데 당자는 씨물씨물거릴뿐 맞장구치고싶은 흥심이 없는듯 숟가락만 부지런히 놀렸다.

《아유 이것 보세요. 장인, 장모가 사위 굶겨서 보냈군요.》

민순임이 기어이 길철의 말구멍을 열어놓고싶어 안달이 나 또 한마디 걸고들자 그제서야 길철이 밥사발에 숟가락을 쿡 박아놓고는 《하긴 뭐… 개 보름쇠듯 했지요.》하고 코방귀를 뀌였다.

《아니 개 보름쇠듯 하다니. 사위는 소잡아 겪어야 할 백년지객이라는데 제 딸 건사는 어떻게 하라는건가?》

정시명이 여전히 반죽좋게 입심을 부렸다.

《그 사람들 그걸 알아주는 량반들이랍니까. 이번에 맞다들어보니 혜숙이 뛰쳐나올만 한 소구신들입니다. 아버지에 오빠라는 사람까지도…》

《무슨 소린지?》

《에에…》 길철이 숭늉까지 들이키고는 밥상에서 물러나 이야기를 벌려놓기 시작하였다.

《혜숙의 고향인 남해도에 가니 아들따라 동래에 간지 세해가 된답니다. 그 고장 사람들 보태주는 소리가 그 집안이 굉장히 잘 되였는데 오빠되는 사람은 제헌의원에 뽑혔다는겁니다. 그래 늙은 량주도 다 떵떵거리며 산다는겁니다.

혜숙이 그 소릴 처음에는 곧이 듣지 않습디다. 나도 이미 조사한 자료를 되살려보았는데 그의 오빠되는 권영호라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하여튼 길을 떠났습니다. 남해도라면 경상도의 한끝에 있는 섬인데 동래가 어딥니까. 뻐스도 타고 기차도 타구 배도 타고 수태 걷기도 했지요. 부산에서 돌아설가 하다가 혜숙일 혼자 집안에 들여세우는게 안심찮아 이왕 내친길인데 하고 구차스러운 걸음을 했지요. 헌데 … 허허허…》

귀환담을 방금 떼기 시작한 길철이 갑자기 웃음보따리를 탁 헤쳐놓은듯 큰소리로 웃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정시명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품이 상서롭지 않아 숟가락을 놓고는 담배쌈지를 찾았다.

《들어서고보니 그놈의 집안이라는게 아직도 상투냄새가 물씬거리는데다가 온통 반동집안입디다. 집부터 둘러보니 2층짜리 서양벽돌가옥인데 그 오빠라는건 정말로 이번에 동래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였다고 합니다.》

《저런 〈국회〉의원에?… 어떻게 돼서 혜숙이네 집안에 그런 난 인물이 있었소?》

정시명이 당장은 길철의 말이 희한해서 물었다.

《그 오빠되는 작자가 원래 일본놈 때 교또에 건너가 대학을 다니다가 광복바람에 고향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뜨내기말이지만 영어를 좀 번지는통에 군정청의 부산행정장관의 눈에 들었지요. 이게 빌미가 돼서 통역으로 몇해 굴러다니며 적산물자를 넘겨받아 아버지를 벼락부자로 만들어주고 상전의 눈에 들어 리승만의 〈독촉〉의 부산지부장으로 되였다고 합니다. 한데 그 아버지되는 사람은 김구의 〈한독당〉의 부산지구 후원회 회장으로 있고 어머니되는 사람은 임영신의 녀자 〈국민당〉의 동래책임자라구 합니다.》

《허허, 거참… 혜숙이는 그 반대계렬에서 그 정도의 자리쯤은 되겠고…그놈의 집안은 주의주장갈래가 정말 복잡하구만. 〈한독당〉과 〈독촉〉은 앙숙간이고 뭐 임영신의 녀자〈국민당〉은 혜숙이 제일 싫어하는 부녀마을이 아닌가. 임영신이 녀자〈국민당〉창당대회때 뭐라고 했는지 아오?

이 나라 녀성들은 마땅히 〈해방자〉인 미군병사들을 위해 애국의 한마음으로 몸을 바치는걸 영광으로 생각하라고까지 했소.

거참… 보기드문 집안이군, … 그런데 그게 사위, 딸 맞아들이는것 하구 무슨 관련이 있다는거요?》

정시명이 길게 탄식을 하며 뒤말을 재촉하였다.

《허 참…》 길철이 입이 쓰거운듯 입을 다시는데 례영이가 그에게 담배갑을 내밀었다.

《혜숙이가 어쨌다는겁니까?》

례영이도 뒤말이 불길하게 생각되여 나직이 재촉하였다.

길철이는 서두름이 없이 천천히 담배불을 붙여 련거퍼 서너모금 길게 빨다가 불을 신경질적으로 재털이에 비벼버렸다.

그리고는 목이 달아올라 웃동을 벗고 랭수 한그릇까지 청해 마시고야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 …

서울을 떠난지 사흘만에야 그들은 동래시의 바다가에 자리잡은 혜숙의 집에 들어섰다.

높은 벽돌담벽을 둘러치고 대나무로 쌍겹이를 한 크고 호화스러운 대문우에 고미다락까지 덩실하게 솟아있는 집앞에서 혜숙이도 길철이도 어리둥절해졌다.

꼭 서울부자로 소문났던 박정인의 집에 짝지지 않을 대궐이였다.

혜숙이 광복전해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제손으로 궁색하지 않을만큼 살아갈수 있는 땅마지기와 자그마한 매생이 한척을 바다에 띄워놓고 살아왔었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호사를 부릴만 한 재력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혜숙이 대문을 여러번 주먹으로 쳐서야 빗장을 뽑는 소리가 나고 커다란 대문이 가볍게 열렸다.

웬 털보가 상판만 내밀고 기웃거리였다. 그놈에게서는 술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다.

《이 집이 권씨댁이 맞습니까?》

권혜숙은 울렁거리는 가슴을 싸안고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의 말투에는 제발 《아니요.》라는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기대가 어려있었다.

《예, 〈국회〉의원 권영호선생님의 댁이요. 거기는 뉘기요?》

털보는 수상한 눈찌로 가볍게 차려입은 말쑥한 녀자를 훑어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 대답에 벌써 권혜숙은 아래다리가 매시시해졌다.

털보의 등뒤에서는 노래소리, 웃음소리, 박수소리가 어지럽게 흘러나왔다.

《비켜서요. 당신은 도대체 누구세요?》

혜숙이는 무작정 그를 밀치고 들어가려 하였다.

《아니 이러면 안됩니다. 지금 부산서 행정장관 어르신도 찾아와 외인출입은 금하게 됐심더…》하면서 털보는 대문을 쿵 하고 닫아버렸다.

《문을 열어요. 어서요. 난 이집 딸이예요. 어머닐 찾아줘요. 어머니! 어머니!…》

권혜숙이 주먹으로 대문을 꽝꽝 치며 새되게 소리질렀다.

그럴 때마다 대문우에 있는 방울이 절랑절랑 소란을 피우고 여러마리의 사냥개들이 컹컹 짖어댔다.

대문간이 소란스러워지자 뒤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급한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동이냐?》

혜숙이가 금시 낯빛이 해쓱해져서 《아버지목소리예요.》하고 길철에게 나직이 귀띔을 하였다.

《너무 흥분하지 말고 침착하게… 인사도 제대로 올리고…》

길철이가 혜숙의 토실토실한 손목을 꼭 잡아주며 진정시키느라고 했다.

발자국소리는 대문에 이르러 멎었다.

《무슨 소란인고? 집안에 어떤 손님이 와있는걸 몰라서 이 소동이냐?》

《아, 글쎄 어떤 미친년 사내까지 척 달고 동냥왔는데 하는 소리가 제가 뭐 주인집 딸이라나요. …어서 썩 가지 못해. 이년! 이 털보의 주먹소리를 듣지 못했냐, 이년놈들아!…》 하며 털보가 대문을 발바닥으로 냅다 차서 종이 또 한번 자지러지게 소리를 냈다.

《자네 또 너무 마셨군, 집지기로 들어왔으면 분수를 지켜야지. 뒤날에 서울가서 의원 모시고 다닐 사람이 이렇게 고주망태가 돼서야 꼴이 됐느냐. 래일중으로 당장 보따리를 싸게.》

《아 아, 주인님, 사실은 방금 부엌에 갔더니 식모년이 모두가 얼근해있는데 혼자만 맹숭맹숭해 있겠느냐며 자꾸 부어주기에…》

《아, 됐네, 됐어. 이봐, 누가 왔다구?》

대문너머에서 묻는 소리다.

《아버지, 저예요. 혜숙이예요.》

《혜숙이?!… 네가 정말 무슨 미친 바람이 불어 이렇게 날아왔니. 네가 정말 내 딸 혜숙이 맞냐?》

그 소리에는 반가움이 흠싹 서려있다.

《예, 혜숙이예요. 이 문 어서 열어줘요. 전 부모님께 인사 올리고 축복을 받을 일도 생겨서 이렇게 왔어요.》

《축복받을 일?… 그러면 외간사내 달고온게 네 짝이란 말이냐?》

들려오는 소리가 대뜸 거칠어졌다.

《아버지, 이제 말씀 드리겠어요. 어서 문을 열어주세요.》

《그렇다?… 그럼 좋다. 너 대문밖에서 사흘날 사흘밤을 로숙하면서 그동안 애비, 에미 속태우고 집안망신시킨 속죄를 해라. 그 다음에야 대문턱을 넘어선다.

얘 털보야, 찾아온년 돌아서기야 하겠느냐. 사흘동안은 절대로 저년놈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말아. 알아들었느냐?》

《그래도 따님되는분이 확실하다면야 헤헤…》

《무슨 말대답이냐.》

《예, 예, 주인님분부대로 저년놈들, 아니 저 따님내외분에게 대문만은 열어 안줍지요.》

털보의 대답소리가 나더니 발자국소리가 멀어졌다.

혜숙이 다시 대문을 두드리며 애절하게 부르짖었다.

《아버지, 어찌 이러시나요. 나홀로 온게 아니잖나요. 불원천리하고 인사드리러 예까지 찾아왔는데 이런 인사불성이 세상에 어디 있나요.》

그러자 발자국소리가 다시 가까워지더니 거센 고함소리가 벽력같이 들려왔다.

《뭐라구? 인사불성이라구?!… 대처에 싸다니다가 너같은 망나니패당과 배꼽을 맞춰가지고 왔다는것도 인사겠다. 고현년!》

《아버지!》

《썩 물러가라! 집안형세가 하늘로 뻗쳐가는데 이 무슨 불길한 조짐인가. 화를 업고 네 분명 돌아왔으니 네같은 불륜의 계집에겐 대문은 암만이고 열리지 않을거다.》

아버지의 걸직한 욕설이 어지러운 채찍처럼 대문밖의 두 사람을 쫙쫙 후려갈기였다.

권혜숙은 대문에 이마를 박고있다가 쭈르르 미끄러져 내렸다. 그 녀자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물먹은 모래담벽처럼 폭삭 무너져버리였다.

《아-》 그는 목놓아 울기 시작하였다.

길철은 그뒤에 우두커니 서있다가 뼈를 바스는듯 한 혜숙의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어쩔줄 몰라 쩔쩔맸다. 그는 맨땅에 주저앉은 혜숙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찾아오면서 혜숙의 말을 다시 들으며 예상은 하였지만 이건 너무도 뜻밖이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저리도 푸접없고 몰인정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할수 없었다. 정말 얄궂기 짝이 없는 노릇이였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가, 돌아가는수밖에 없다.

《난 어쩌면 좋아!… 네, 용서해줘요, 길철동지… 이럴줄 알면서도 제가 못난이였지요. 이런 망신꼴 보일라구 길철동지를 모시고왔으니… 아, 난, 난 어쩌면 좋아요.》

혜숙이 길철의 품에서 몸부림을 치며 설분을 토하였다.

《혜숙이, 여기서 울구있지 말고 오늘밤은 려관에 갑시다. 하루밤을 자고나면 아버지 성도 가라앉겠지. 꼭 생각을 고쳐하게 될거요. 우리가 문득 나타난데다가 취중이니 반갑기도 하고 노엽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자, 어서…그동안 그리워 한 아버님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구 지금은 자리를 뜹시다.》

길철이 태를 치는 처를 품속에 꽉 그러안은채 곡진한 어조로 달래였다.

혜숙이는 그냥 흑흑 흐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철이 혜숙의 가방을 집어들자 돌연 그 녀자는 새파래져가지고 부르짖었다.

《그건 왜요? 인줘요. 다 필요없어요!》 혜숙이 가방을 빼앗아내려고 하자 길철이 조용히 나무랬다.

《이러지 마오, 응, 혜숙이. 이거야 우리 사모님이 꾸려준 성의가 아니요. 어서 이걸 놓소. 그러면 안되지. 이런 때 보면 그저 아이같다니.》

그 가방에는 민순임이 싸준 술 두병과 혜숙의 부모들에게 보내는 옷감 두벌이 있었다.

혜숙이 그 소리에 다시 눈물을 펑펑 쏟으며 길철이 끄는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열시가 가까워서야 동래온천려관을 찾았다.

려관방에 들어섰어도 혜숙은 옷을 입은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냥 울었다.

길철이는 그의 머리맡에 앉아서 그를 위로하다가 자정이 썩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길철이도 혜숙이도 잠은커녕 시간이 갈수록 정신이 점점 더 또렷해지기만 하였다.

아침녘에 차칸에서 먹다만 음식을 꺼내놓고 서로 밀치닥거리는데 문기척소리가 났다.

길철이 문을 열어주니 허우대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젊은 신사가 자그마한 구럭을 들고 긴장한 눈길로 지켜본다.

(혜숙의 오빠구나…)

길철은 첫눈에 알아보았다. 늘씬한 허리와 큼직큼직하게 생겨먹은 이목구비며 닦은 방울처럼 광채가 흐르는 두눈이 신통히도 혜숙이와 한형타로 찍어낸 모습이다.

《난 권영호라고 하오. 이 방에 권혜숙이라고?…》

목소리도 자못 우렁우렁하고 틀이 잡힌 어투다.

《예, 혜숙이가 있습니다. 어서 들어오시오. 난 길철이라고 하오. 혜숙의 동무되는 사람이요.》

길철은 반갑게 그를 맞아들였다.

혜숙이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더니 《오빠!》하며 그에게로 다가가서 또 얼굴을 싸쥐고 쿨적거리기 시작하였다.

길철이가 포단과 이불을 돌돌 말아 벽장에 얹어놓고 그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보고싶었다. 이게 몇해만이냐. 43년도에 일본서 왔다가 만나보고는… 혜숙아!》

권영호는 동생을 와락 끌어안더니 목이 꺽 메여 눈섭끝에 쌀알같은 눈물을 매단다.

《너를 내쫓은 아버지도 한심하지만 넌 어찌 그리도 무심하냐. 그래 어디가 뭘 한다는 편지 한장없이 몇해도록 녀자의 몸으로 외지에 나돌아다니는게 옳단 말이냐? 자, 됐다. 이젠 옛말하며 모여살자꾸나.》

이렇게 떠듬거리는 권영호의 음성도 퍽 갈려있다.

《오빠, 용서해요. 그 얘길 어떻게 선자리에서 다 하겠어요. 모두들 속태우게 해서 정말이지 미안해요.》

《자, 앉자. 오늘 아침에야 아버지가 말씀하더라. 어머니가 그 소리 듣고 대판 붙었다. 그리고는 몸져누웠지. 그래서 내 슬며시 식전바람으로 온다는게 늦었구나. 네 형님도 따라서는걸 떼놓고 조용히 왔다.》

《고마워요, 오빠.》

《아버지를 리해해라. 벽도 문이라고 하면 냅다 밀고나가는 그 성미 너도 알지 않느냐. 〈한독당〉이 꺼졌는데도 아직도 그 사람들 뒤바라지 해주지. 리유가 뭔지 아느냐. 옛날옛적 김구를 본적이 있는데 영웅호걸치고 그만한 인물이 없다는거다. 그러니 김구생전에는 김구의 부하로 산다는거야. 하하…김구가 꼭지물러난 호박신세 된게 언제라구 아직도 김구냐.…하긴 그걸 보면 아버지도 촌량반치고는 개명했거던.자, 내게는 매부되는분이지요. 샴팡이나 한방 터뜨려봅시다.》

권영호가 방안이 드렁드렁하게 목청을 돋구어 한바탕 몇해만에 만나는 누이동생의 옭맺힌 설음을 확 풀어주고는 가져온 구럭을 풀었다.

송편을 담은 놋그릇이 나오고 노르끄레하게 튀긴 경단과 삶은 닭알과 대순을 무친 반찬이 나왔다.

그는 샴팡을 꺼내 쇠줄을 풀어내고 뚜껑을 열었다.

샴팡 터지는 소리가 팡-하고 나자 거품이 부그그 괴여오르는 아구리를 얼른 손바닥으로 막고 가져온 유리잔에 붓는데 그 솜씨가 몸에 배여있는듯싶다.

《매부, 축하하오. 혜숙아, 축하한다. 난 매부가 첫눈에 척 마음에 든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런분을 모시고 들어서면 군소리 일절 없어질게다.》

《형님, 찾아주어 고맙소. 사실인즉 혜숙의 마음이 파김치처럼 됐지요, 뭐. 나도 아뿔사, 권씨댁 대궐 넘어서긴 코집이 틀렸구나, 혜숙이를 둘러메고 줄행랑 놓는게 상책이겠다 했지요. 헌데 이렇게 형님이 찾아주어 혜숙의 속도 풀어주고 쉽사리 인연을 이어주니 정말 다행스럽소.》

그들은 유쾌하게 웃으며 축배잔을 들었다.

《이제 어머니가 상을 차리게 될거요. 네 형님되는 사람도 시누이왔다는 소릴 듣더니 나만 몰아대는구나. 상은 제가 맡아 차린다는거다. 그런데 난 이길로 〈국회〉개원식차로 서울길에 올라야겠으니 상 받는 자리에 없을것 같구려. 자, 매부, 이 대순 맛 좀 봐유. 그래도 남도에는 이게 일품이요. 가시집이라고 상 받으러 왔다가 려관방에서… 참 미안하게 됐소. 내 백배로 사죄하우. 그래 혜숙아, 말해봐라. 지금 어디서 살구 뭘하구 지내느냐? 아직도 적색에 따라다니지야 않겠지?》

권영호는 이렇게 이쪽저쪽 둘러치며 비위살 좋게 엮어가다가 동생에게로 눈길을 박았다.

그 묻는듯 한 눈길에 그때까지 두리두리한 오빠의 얼굴에서 고마움과 혈육의 정이 어린 시선을 옮기지 못하던 혜숙이 고개를 슬며시 돌리였다.

권영호의 눈에 점차 날카로운게 번져갔다.

길철이도 저으기 신경이 바늘끝처럼 예리해지면서 드디여 올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너무 예상밖의 자리이다. 그리고 너무 이른것 같다. 그러나 피할수도 없게 되였다. 차라리 아무튼 이 집안과는 이런 식의 맞불질을 한바탕 치르고 넘어가야 할 일인즉 애초에 터쳐놓는것도 속 편할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혜숙의 파릿해진 볼을 보니 아니아니한 심정을 금할수 없다. 간밤에 대문가에서 얻어들었던 소리까지 윙 머리를 파고들어 그 무슨 벼랑턱에 나선것 같은 아찔한 생각에 길철은 두 사람의 격렬한 눈빛을 지켜보았다.

혜숙이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길가? 어떻게 자기를 밝히게 될가? 피할수 없게 된 충돌과 파국을 어떻게 수습할것인가.

길철이 미처 대답을 찾지 못했는데 권영호쪽에서 불질을 시작했다.

《말을 해봐라. 적색은 일본놈때도 허용되지 않았지만 광복후에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 너도 남로당이냐?》

《아니요.》

혜숙이 고개를 돌린채 오연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그럼?… 음, 이제는 알만하다. 어째서 아버지가 너를 쫓아내고도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는지, 뭐 대구항쟁에도 끼여들었다면서? 무슨 계집애가 그리도 오지랖이 넓으냐. 내앞에서 맹세를 다져라. 적색은 아니였구 앞으로도 아닐거라구.》

《오빠, 모처럼 만났는데 그런 싱갱이하지 말자요. 저도 오빠가 제헌의원이 됐다는게 믿어안져요.》

《어째서?… 난 자격이 없다는거냐?》

《자격이요?… 오빠가 어떻게 제헌의원이 되였는지? 〈국회〉의원의 자격이라는게 도대체 뭐예요. 오빠도 훑어봤겠지만 이번에 선거된 〈국회〉의원들은 신통히도 반동이라고 욕을 먹는 사람들이라더군요.》

《뭐라구, 흥! 너 정말 적색이 분명쿠나. 누가 규정한 반동이야, 좌익이 규정한 반동이겠지. 우익에서는 애국자로 불리우는 사람들이다. 단언코 이 남쪽은 우익만이 애국으로 불리우게 되여있어. 난 애국자로 뽑히운 사람이야.

나도 좌익의 테로를 두번이나 받았다. 너 어제저녁 만났던 털보가 어떤 놈팽인줄 아냐. 동래시의 깡패두목이다. 애국자의 목을 치려고 달려드는놈은 사정없이 쏘아버리라고 했다.

그래 우리 집은 적색이 규정한 반동집이요 백색이 규정한 애국자의 집이다. 아버진 〈한독당〉후원회 회장이고 어머닌 녀자〈국민당〉소속이다. 이런 집안에서 너같은 빨갱이가 나오다니. … 썩 보따리 싸들고 사라져! 매부한테도 물읍시다. 분명히 찍고 넘어야겠소. 혜숙이 나를 반동이라 불렀소. 당신도 날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요?》

극도로 분기가 치밀어오른 권영호는 그 부리부리한 눈망울이 온통 적의로 불붙는듯싶고 두볼과 목덜미까지 시뻘겋게 상혈되여올랐다.

남매간에 오가는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있던 길철은 자기에게로 날아와 박히는 칼끝같은 눈초리를 태연히 받으며 싱긋이 웃었다.

《허허, 듣던바대로 형님이 보통이 아니구만요. 형님, 너무 흥분한것 같소. 우리는 초면이요. 그리고 좋은 일로 사귀게 된 사람이구요. 새롭게 인연이 얽혀지는 자리인데 좌석에 어울리지 않게 감정을 앞세워야 되겠소. 이런 이야기는 지금은 접어놓았다가 서로의 정을 더 두터이한 다음 소통하는것이 어떻겠소. 아무 일에서나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가요.》

길철은 마디마디에 무게를 담아 위엄있고도 례절있게 처남을 훈계하였다.

권영호는 천근같은 무게가 실리고 반석같은 배심과 담력이 비낀 상대방의 사리정연한 반박에 어기가 질려 그 큰눈을 부릅뜨고 창밖을 쏘아보았다. 잠시동안 맹수처럼 거친 숨소리만 씩씩거리던 권영호는 다시 덤벼들었다.

《아니요. 난 먼저 알아야겠소. 그래야 인연이 얽혀질수 있는지 결심할수 있겠소. 밝히시오. 난 당신앞에서 지금은 처남이고 그리고 〈국회〉의원이며 〈독촉〉의 부산지부장이요. 당신은 적색이요?》

《당신은 어떤 색갈이요?》

《난 백색이라는걸 감추지 않소.》

《그러면 당신은 통일애국운동에 나선 사람들은 어떤 색갈로 부르오?》

《?…》

《통일애국이 적색이라면 당신은 통일애국을 반대하는 색갈이요?》

《통일은 현 단계에서는 공리공담이요. 그건 공산당의 주장이요.》

《공산당의 주장이건 공리공담이건 통일이야 좋은 일이 아니겠소.》

그들의 날카로운 대화는 타협할수 없는 두 극단의 세계에서 사는 인간들의 더는 피할수 없는 폭발의 발화점을 향하여 확 날아올랐다.

그때 눈길을 내리깔고 그들의 언쟁에 잠시 피해있던 권혜숙이 총알처럼 여문 소리로 나섰다.

《오빠! 난 오빠를 이젠 알수 있을것 같아요. 오빠는 결국 리승만의 국토분렬론의 기수가 됐군요.》

《그래 그게 어쨌단 말이냐. 난 친미분자요, 〈단선〉주창자다. 친미와 〈단선〉은 리승만회장의 애국적결단이다. 그것만이 이 남쪽땅에서 건국을 도모할수 있고 장차 독립완전국가의 기초를 닦을수 있다.》

《뭐라구요?! 친미와 〈단선〉이 애국적결단이라구요? 리승만이 어떤놈이기에…》

엄청난 실망과 노여움이 뒤섞인 야멸찬 부르짖음을 권영호가 오빠라는 혈연의 권위와 상반되는 리념의 대표자다운 궤변으로 거침없이 눌러버리기 시작하였다.

《닥쳐! 그분은 60년 항일운동에 헌신해온 애국의 원로이다. 그분앞에서는 하지도 어쩌지 못해. 그분의 주장은 애국이고 애국은 그분의 최고의 리상이야.

그리고 미국으로 말하면 이 나라 국민앞에서는 해방자요, 원조자고 나와 우리 가문에서는 바라볼수 없었던 황금과 명예를 안겨준 은인이야. 집안의 번성은 미국이 가져다준것이다. 그래 네가 이런걸 버려도 된다는거냐. 도대체 무엇을 바라서 아직도 적색을 따라다니는거냐.》

《오빠!》

《난 너희들의 결합을 오빠로서 지지할수 없다. 네가 달고온 이 사람도 받아들일수 없단 말이다. 너도 정신을 차려. 오빠가 적색과 맞붙어 선 백색진영의 선두주차라는걸 명심해.》

권영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사람을 사납게 흘겨보고는 려관문을 세괃게 열고 홱 나가버렸다.

《오빠!》

혜숙이 새되게 부르며 달려나가다가 길철에게 붙잡혔다.

방안에는 오래동안 권영호가 휘뿌려던지고 간 싸늘한 랭기가 가셔지지 않았다.

혜숙이는 길철에게 잡힌채 방안 한가운데 굳어져서 얼빠진 사람처럼 문쪽을 하염없이 지켜보다가 길철의 품에 와락 안기였다. 그리고는 또다시 목이 갈리여 흑흑 어깨를 떨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왜 서울에서 떠나자고 했어요. 이 꼴 보자고 왔는가요? 제가 그렇게 오지 말자고 했는데… 이봐요, 말씀해요. 정말 오빠가 반동중에서도 상반동이 되였을가요? 아, 장차 이 일이 어떻게 되려나.》

혜숙이는 길철의 품에서 그냥 어린애처럼 턱을 우들우들 떨며 그의 가슴을 파고들다가 가슴을 텅텅 치며 눈물만 쏟아놓는다. 그러다가는 솜털같은 속눈섭에 눈물을 달고 길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애처롭게 울부짖었다.

《어쩌면 좋아요 이 일을!…》

어제 저녁부터 그냥 눈물로 젖어 눈두덩이가 부어오르고 눈망울이 풀린 그 흩어진 얼굴을 내려다보노라니 길철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기는듯 아프고 밸굽밑에서는 분노와 울화가 설설 끓어번지였다.

《혜숙이, 그만하오. 한번 더 집으로 찾아가보는게 어떻소? 어머님이라도 만나봅시다.》

길철은 혜숙이를 자리에 앉히며 달래였다.

그 소리에 혜숙은 고집스럽게 도리질을 하였다.

《정 내키지 않으면 서울로 갑시다.》

《… …》

《우리는 도리를 지켰으니 한을 남길건 없는게구 죄될것도 없소. 좀 누워서 쉬오. 나도 쉬고싶소.오빠를 저대로 놔둬서는 안될것 같구만. 탈선이요, 위험한 탈선이거든. 눈을 보면 겁기가 많아보이는 량반이 고집부리는걸 보면 벽창호구 심술꾸러기구만. 뭐 삐뚤게 생각하는걸 보면 탈난 인간이지만 혜숙이 성격과 비슷한게 많아. 울뚝거리는게.》

눌린 속을 풀어주고싶어 분노와 흥분을 씹어삼키며 애써 엉너리를 치는 길철의 그 마음이 고마워 혜숙은 눈물속에서도 웃어보였다.

《자, 잡시다. 긴밤을 뜬눈으로 밝혔는데 그까짓 늘어지게 잠이나 푹 자구 갑시다. 신혼려행의 뒤날에 옛말 하나 남기게 됐으니 헛걸음은 아니요. 하늘이 열두번 무너진다 해도 이젠 누구도 우릴 갈라놓지 못하지. 길철과 권혜숙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하나로 얽혀살거야.》

길철이 가늘게나마 혜숙의 웃음을 보는게 다행스러워 일부러 즐겁게 소리치며 다시 포단을 펴고 이불을 내렸다.

그 순간 혜숙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봐요!》하며 길철의 목을 꼭 그러안고 매달렸다.

그리고는 그의 볼에 눈물에 젖은 자기의 볼을 마구 비비였다.

길철은 그의 새까만 머리에서 풍기는 동백기름내와 연한 향수내에 목이 콱 막히는듯싶었다. 돌발적이면서도 고마움과 진정에 넘치는 혜숙의 애무에 길철이 덩달아 치밀어오른 열광에 휩싸여들며 부르르 떨고있는 그 녀자의 허리를 힘껏 부둥켜안았다.

길철은 불덩이처럼 확 달아오른 흥분으로 해서 행복에 겨워 헉헉거리는 안해의 숨소리를 사랑스럽게 들으며 자기의 입귀로 젖어드는 그의 쩝쩔한 눈물을 감미롭게 삼키였다.

오래전부터 사귀여왔으나 일찌기 느끼지 못했던, 비로소 이 사람은 나의 사람, 나의 몸의 한 부분이라는 그지없이 행복하고 흐뭇한 무아경에 휘말려 두 련인은 오래도록 방 한복판에 한덩어리로 되여 서있었다.

《울지마오. 슬퍼마오. 다 잘될거요. 잘될거요.》

길철은 손가락으로 그의 눈굽에 잦아오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타일렀다.

닦아낼수록 혜숙의 큰눈에는 맑은 눈물이 하염없이 샘솟아오른다.

《그래서 울지 않아요. 슬퍼서 울지 않아요. 난 기뻐요. 난 울지 않아요. …아! 그래요, 그래요!》

혜숙이는 참말로 행복에 겨워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이였다. 그러며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히고 길철의 얼굴을 수집게 쳐다보았다. 수치와 절망과 흥분으로 풀렸던 눈망울이 눈물에 씻겨 흑진주처럼 빛나기 시작하였다.

이 순간 그들은 모든것을 잊고있었다. 절교를 선언하고 달아뺀 오빠도 대문가에서 자기들을 쫓아버린 아버지도 그들의 망막에서 지워져있었다. 어떤 서러움도 불안도 없었다. 오직 사랑하는 심장과 심장에서 보다 굳세고 보다 강렬한 사랑의 불이 확확 타고있을뿐이였다.

그들은 잠시후에야 아래다리로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간듯 맥살이 매시시 풀려 서로 끌어안은채 포단우에 노그라져 내리였다.

문기척소리에 먼저 잠을 깬것은 길철이였다.

길철은 자기의 목을 꼭 그러안고있는 안해의 팔을 살며시 풀고 이불에서 조심히 빠져나왔다.

려관심부름군아이가 려관앞에서 권영호라는 신사가 선생님을 만나자고 기다린다고 전하였다.

《그까짓 나가지 마세요.》

어느결에 들었는지 혜숙이 눈을 감은채 토라진 어조로 말했다.

《또 만나야 고운 소리 한마디 있겠어요.》

《그래도 알겠소. 매부라고 불러주고싶어 다시 찾아왔는지…》

길철이 싱긋 웃으며 딴 생각 말고 한잠 더 자라고 이불깃을 꽁꽁 여미여주고는 옷을 주섬주섬 걷어입고 방을 나섰다.

심부름군아이를 따라 려관대문밖으로 나오니 두대의 자동차가 서있었다.

길철이 나타나자 한대는 곧 떠나고 다른 차에서 세명의 사나이가 거들먹거리며 다가왔다.

《당신이 권영호<국회>의원님의 매부라 자칭하는 머시내야? 뭐 적색이라면서?》

두볼이 시커먼 털이 뒤덮여 마치도 동물원의 성성이를 련상케 하는 사내가 씨벌이였다. 걸고드는 품이 불량스럽기 그지없다.

그 목소리가 어디선가 귀에 들어둔 소리다.

(옳지, 어제 대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섰던 권영호의 집 문지기로구나.)

《너흰 웬놈들이냐?》

길철이 뜻밖의 정황에 부닥치자 어안이 벙벙해져서 소리질렀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조여드는 놈팽이들의 눈에 살기가 뻗쳐있었다.

길철은 대뜸 부닥친 정황이 짐작이 갔다. 분명 권영호가 비렬한 음모를 꾸민것 같다. 매부라는 인물은 정 붙이기전에 조용히 모살해치워 자기의 지반을 흔들수 있는 위태로운 우환거리를 일찌기 뿌리뽑아 던지려고 결심한 모양이다. 그래서 이 무지막지한 깡패족속들을 보냈는가부다.

놈들은 일시에 덮쳐들어 길철이를 자동차에 처실었다.

이 광경을 겁에 질려 지켜보던 려관심부름군아이가 려관마당에 뛰여들며 강도들이 사람 잡아간다고 소리질렀다.

려관창문들이 와당탕 열렸다.

순간 자동차는 려관 앞도로로 뽀얀 먼지를 일구며 뺑소니를 치기 시작하였다.

《어쩌자는게냐?》

길철이 벌어진 일에 눈앞이 아뜩해졌다가 인차 자신을 수습하고 물었다.

《요즈음 동래앞바다 고기들이 먹이가 없어 여윈다는데…》

털보놈의 수작질에 깡패들은 흐아- 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 아무도 모르게 바다물속에 처넣어버리자는건가?

《어째서?》

길철은 정신을 가다듬고 탈출의 기회를 노리면서 놈들을 방심시키느라고 말을 걸었다.

《몰라, 죽이라면 죽이는거구 죽으라면 죽는거지.》

《너희들은 어느 패당이냐?》

《독촉청년회… 리승만박사의 직계이지. 당신은 그 반대쪽에 있다면서?》

털보놈의 옆에서 시퍼런 칼을 만지작거리던 뱁새눈이 야죽거리였다.

《그게 어쨌다는거냐?》

《우린 적색이라면 따라다니며 족쳐대는 반공애국투사들이야. 죽는 리유는 그게 다다. 우리 의원님은 단단히 혼구멍을 내주어 쫓아버리라 했지만 우린 아예 없애버리자는거다.》

《이따위 살인청부업을 얼마나 해먹었느냐?》

《어랍쇼. 10분후이면 꼴깍할놈 담도 크시네. 뭘 자꾸 콩팔칠팔 하는거야.》

여전히 뱁새눈의 수작질이다. 인간이 되기를 그만둔 짐승같은 놈들과 싱갱이를 하는것조차 넌더리나는 일이였지만 길철은 마음을 늦춰주느라고 주근주근 말을 걸었다.

자동차는 네거리에 들어섰다. 시내를 벗어나면 인차 바다가 나타날것이다.

자동차는 여러대의 우마차행렬이 앞을 가로막자 잠시 부르릉거리며 멈춰섰다.

우마차행렬에 이어 량쪽 인도에 서있던 행인들이 무리지어 바쁘게 지나갔다.

운전사놈이 연방 경적소리를 울리다가 천천히 몰아나갔다.

순간 길철은 머리로 한팔을 잡고있는 뱁새놈의 눈통을 들이받고 비칠거리는 그놈을 깔고넘어 자동차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는 두어바퀴 도로에 굴면서 소리쳤다.

《강도들이다! 강도들이다!》

사람들이 와-하고 몰려들었다. 네거리복판을 왔다갔다하던 교통순사가 호각을 호르륵 불면서 뛰여왔다.

자동차는 앞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길철은 얼른 일어나서 혼잡을 이룬 사람들의 틈사구니를 빠져나와 무작정 뒤골목으로 뛰였다. 그리고는 저녁무렵까지 어느 농가에 숨어있다가 걸어서 부산으로 갔다.

부산호텔에서 하루밤을 보낸 길철은 동래려관에 전화를 걸었다. 필경 혜숙이 사건을 인차 심부름군아이로부터 전해듣고 실종된 자기를 찾으려고 속이 한줌으로 졸아들어가지고 뛰여다닐것이 념려되였던것이다.

려관접수원을 찾아 혜숙이를 찾아달라고 했더니 낮에 나갔다가 여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다시 동래교환을 찾아 《국회》의원 권영호댁에 대라고 하니 그쪽에서 녀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혜숙의 형님되는 녀자였다.

반가워 하면서도 몹시 미안쩍어 하는 소리였다. 혜숙이한테서 자초지종을 들은 모양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주인을 대신해서 사과합니다. 시누이를 바꾸겠습니다.》

인차 혜숙이 바꿨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하는수없이 아버지를 내세울가 해서 집에 와있다는것이였다.

무사하다는 소리에 혜숙이는 너무도 기뻐서 목이 메여 인차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후 《오빠가 한짓이죠?》하고 떨리는 소리로 물어왔다.

《그런가보오. 하지만 뭐 일없소. 아무 걱정말고 인차 돌아오오.》

《알겠어요. 정말 다행이예요. 당신이 무사하다니 이젠 됐어요. 당신이 잘못됐으면 나도 죽어버릴 생각을 했어요. 어서 떠나세요. 털보놈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는데 조심히 가요.》

《이제 당장 당신도 부산호텔에 오오. 함께 갑시다.》

《전 며칠 더 있다가 올라가겠어요. 거저 올라가지는 못하겠어요. 우리 집안과 셈을 치르고야 올라갈래요.》

《또 무슨 딴생각 하는게 아니요? 좋소. 그럼 난 곧 서울로 가겠소. 인차 따라오오.》

《잘 다녀가세요. 우리 집에 오는 전화를 악당들이 다 엿들을거예요. 어서 떠나요.》

그리고는 혜숙이 전화를 뚝 끊고 말았다.

길철은 랭정과 리성을 되찾고 또박또박 대답하는 혜숙의 말투에서 그 무슨 상서롭지 않음을 느끼고 가슴이 서늘해왔다.

그는 혜숙이쪽에서 삭막한 소음만이 들려오는 수화기를 손에 든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

… …

길철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정시명은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맹랑하기도 하고 치사스럽기도 하였다.

《허 참, 상 받으러 보냈다가 사람 떼울번 했구만. 그게 어디 사람이 할짓인가.》

민순임과 례영은 커다란 설음에 몸부림치고있을 혜숙이를 그려보며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광복바람을 타고 생겨난 무리들이지요. 그 꼴들 보기 싫어서 기어코 반역자들과는 결판을 봐야 하겠습니다.》

길철이 눈부리가 홧홧 달아올라 강심을 다지듯 뼈마디에 힘을 준다.

《어휴, 혜숙이 일도 … 어째서 그리도 배배 꼬이기만 하는지…》

민순임이 한숨을 쉬고는 사발들을 왈랑절랑 거두어들고 일어났다.

《얘, 어서 자리를 펴드려라. 일찌기 쉬세요. 객지에서 그런 일까지 당하고 잠이나 들어봤겠어요.》

《하긴 전 잠부터 청해야겠습니다. 뭐 이게 다 옛말이 되겠지요. 너무 속 쓰지들 마십시오.》

길철이 다 이야기해놓고나니 멋적기도 하고 쑥스러운 생각도 들어 성큼 자리에서 일어나 미닫이문을 드르릉 열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례영이 소랭이에 물을 떠가지고 와서 걸레질을 하였다.

정시명은 너무도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에 접하고나니 가슴이 답답해서 곰방대에 담배를 다져넣어가지고 문을 나섰다.

벌써 초생달이 중천에 떠올라 사위는 대낮처럼 밝다.

그는 사랑채의 토방마루에 걸터앉아 나무기둥에 비스듬히 허리를 붙이고 달을 쳐다보았다. 누렇게 익은것이 마치도 방금 이글거리는 불독에서 꺼내놓은 말편자 비슷하다.

저도모르게 저 하늘 중천에 저 달덩이같이 환한 혜숙의 얼굴이 그려졌다.

기쁨의 눈물, 행복의 눈물을 촉촉히 머금고 사랑의 노래를 부르던게 꼭 닷새전의 일이 아닌가. 다시는 수심이 실릴것 같지 않던 그 소담하게 생긴 얼굴이 또다시 비애에 휩싸여 번민에 시달리고 피눈물을 짜고있다. 길철이 당했던 위험도 자못 랑패스럽기 그지없건만 혜숙이 지금 당하고있을 고통을 어찌 당자가 아니고서야 헤아릴수가 있으랴. 그 무도한 집대문가에서 당한 모욕에다가 다름아닌 제 오빠가 남편을 죽음에로 몰아간 인간말세의 불륜까지 목격했으니 혜숙의 속이 지금 만신창이 되여있을것이다.

《엥이, 길철이도 한심하지. 제색시가 그 지경이 되여있는데 만사 젖히고 끌고올 노릇이지. 그 지저분한 집안에 떨궈놓고 저만 덜렁 달아빼오면 혜숙이는 어쩐단 말인가. 쫓아내고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판에…혜숙이 제 부모와 셈을 치른다기로 그래서 볕 볼 일은 뭐란 말인가.》

정시명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울화를 참아낼수 없어 이렇게 중얼거리였다.

지금이야말로 혜숙에겐 옆에서 각근히 돌봐주는 애무와 사랑이 필요한 때다.

사정없이 터갈라지고 어혈이 진 마음의 상처를 누가 따뜻이 헤아려주고 쓰다듬어줄것인가.

《아버지-》 례영이 어느새 등뒤에 와있다가 아버지의 사색에 방해가 될가 저어하듯 나직이 부르며 두루마기를 내민다.

정시명은 그것을 받아 걸치고는 례영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하루 한시도 새길길 없는 그리움과 애수가 있으련만 언제 한번 내색을 보이지 않고 주변사람들을 돌봐주느라고 눈썰미있게 바지런히 돌아가는 례영이가 그지없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아, 언제면 이 땅에 차넘치는 한숨과 눈물과 고통이 끝날수 있을가.)

사랑으로 행복하고 사랑으로 보람이 커져야 할 젊은이들이 그것으로 하여 불행해진다는것을 례영이도 혜숙이도 체험하고있다.

그러한 고통이 어디서 시작되느냐. 나라가 하나로 합쳐지지 못하고 미국놈들이 이 땅의 민심을 둘로 갈라놓은때문이 아니겠느냐. 미국놈들이 자꾸만 반동들을 만들어내서 대를 이어 화목하게 살아온 이 나라 사람들을 자꾸 이편저편으로 갈라놓고 서로 물어뜯게 만들기때문이 아니겠는가.

《혜숙이 참 불쌍해요.》 례영이 눈굽에 눈물이 자박자박해가지고 측은해서 말했다.

《후-》 정시명은 대꾸없이 다시 봄바람에 애처롭게 떨고있는것 같은 달을 보며 거친숨을 톺아올렸다.

《이 일이 장차 어떻게 번져질려는지…》

정시명은 혼자소리로 나직이 중얼거리였다. 혜숙이를 저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 집에 데려다가 속을 풀어주고 생활의 활기를 되찾아주어야 한다. 빨리 데려와야겠다.

길철이는 돌아와서 락심천만해있으니 그 사람더러 뒤거두매를 시킬수도 없다.

그리고 길철이를 다시 동래에 보내는것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례영아, 네가 또 중한 일을 맡아줘야겠다.》

정시명은 여전히 달에서 눈길을 거두지 않고 부탁조로 말했다.

《말씀하세요.》

《밤을 자고나서 혜숙이 데리러 갔다오너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례영은 그 소리를 기다리기나 한듯 선뜻 대답하였다.

《그래야 할가부다. 혜숙이 거기 있어야 속만 타지 뭐가 또 남겠느냐. 네가 가서 무작정 서울로 데리고오거라.》

《예, 래일 여덟시차로 내려가겠습니다. 혜숙인 사실 참 좋은 동무입니다.》

《그렇구말구… 그런데 이 일을 잘해야 한다. 조심히 … 먼저 부산에 가서 전화로 알아봐라. 네가 먼저 집에는 들어가지 말고 불러내서 만나라. 려관도 좋고 농촌집에서 지내는것도 좋을거다. 그놈들이 지금도 혜숙의 주변에 초롱을 켜놓고있을지도 몰라.》

《예, 조심하겠습니다. 아버님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여러말 하지 말고 데리고만 오너라.》

《예.》

례영이 정시명이 일러주는 말을 새기며 나부시 고개를 숙여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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