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주먹은 타더라도 기발은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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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개원식을 앞둔 리화장은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여있었다.

림시의장으로는 다른 나라들의 관행을 본따서 이번에 선거된 의원들속에서 제일 나이먹은 리승만이 내정되여있었다. 이것이 금후 대통령자리에로 이어지리라는것이 누구에게나 불보듯 한 일로 되였다.

그래 벌써 사처에서 리화장으로 축하의 꽃다발을 보내온다. 각양각색의 어중이떠중이들이 리승만의 손목이라도 한번 잡아보려고 담밖에 장사진을 쳤다.

지금 리승만은 2층의 침실에서 창가림을 활짝 걷어올리고 대문가에서 붐비는 축객들을 흡족한 기색으로 내려다보고있었다.

요즈음 리승만은 틈나는껏 이 자리에 서서 구름처럼 몰려드는 방문객들을 보면서 황홀한 꿈나라에 빠져들군 한다.

충청도 정읍에 내려가 남조선에 《단독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세상이 들썩거리게 선언해버린것이 46년도 6월, 꼭 두해전이다.

그동안 겪어온 일들을 생각하느라면 매연속을 헤매고온듯 싶다.

하지만 대권을 바라고 허우적거려온 70여평생의 꿈이 손에 잡힐듯 바투 다가온 지금 그 악몽과도 같은 인생의 력정도 다 이 나라의 력사에 오르게 될 위인전으로 엮어질수 있을것이라고 저 홀로 고개를 끄덕거리군 한다.

이제는 대통령옥좌에로 가는길은 얼음판에 박 밀듯이 될 노릇이다.

며칠전에 리승만은 극비밀리에 도꾜로 날아갔었다.

맥아더를 불의에 방문한것이였다.

맥아더는 리승만이 며칠동안 수하심복들을 시켜 부랴부랴 성문화하게 한 정치구상을 다 듣고나서 담배물주리로 조용히 앞상을 다독거리며 말했다.

《난 벌써 이태전에 당신에게 주패장을 던졌소. 이건 최종적이요. 극동의 대소사는 이 맥아더의 소관권에 속하니 더는 앞뒤를 살필게 없소.》

허세를 부리는것 같아 크게 신뢰는 가지 않았지만 리승만은 한시간 못되는 짧은 시간에 결국은 도꾜에 자기의 바람막이를 세우는데 성공하였다.

리승만은 맥아더에게 반공의 광기와 극도의 허영심을 적절하게 불어넣으면서 이 사람을 장차 내키는대로 주물러놓을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돌아왔다.

한생의 절반이상을 미국의 물을 마시고 미국의 빠다에 습관되여온 리승만에게는 미국사람들을 다불리는 자기식의 방법이 있었다.

양인들이라는건 허우대가 커서 그런지 도무지 여무진데가 없다. 약한 구석을 면바로 찾아내 슬쩍 건드리면 쉽게 넘어지는게 다리힘이 약한 양인들이다.

리승만은 맥아더의 만만한 구석이 명예욕이라는것을 제꺽 잡아냈다. 잔뜩 춰올려주면 밸속이라도 뒤집어줄 허풍선이니 그를 주물러내기에는 별로 힘내기할게 없을것 같았다.

그래 리승만은 시종 2차대전의 세계적명장이라고 개올리면서 세계적인 반공위업의 지도자로 력사에 우뚝 솟아있기 바란다는 취지로 맥아더의 로망기짙은 허영심을 고무풍선처럼 한껏 부풀어오르게 하였다.

리승만은 맥아더부처에게 공식적으로 선물을 안겨주는것도 잊지 않았는데 그것도 맥아더를 흡족하게 하였다.

그가 마련한 선물이란 순금으로 만든 목에 걸수 있는 자그마한 성상이였다.

그런데 맥아더부처를 크게 감복시킨것은 그 가치가 딸라로 환산하여 각각 99딸라라는것이였다.

미국의 법에는 국가의 공직자가 100딸라이상의 공식적인 선물을 받으면 무조건 국가금고에 바쳐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국가의 공직을 가진 공무원에게 주는 선물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대상하는 공식적인 례의의 표시이므로 개인이 치부할수 없다는 해석에서였다.

맥아더부처는 성상값을 듣더니 자기들에 대한 리승만의 자별한 성의에 두번세번 사의를 표하였다.

리승만은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맥아더를 쉽사리 매료시켜놓았다고 자부하였다.

리승만은 이번 회담에서 그동안 제일 골치거리로 되여있던 두가지문제에서 맥아더와 합의를 본것도 매우 흡족하였다.

첫째로는 미군정을 한해동안 더 연장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서 맥아더의 명확한 대답을 받아낸것이였다.

맥아더는 일본에서도 군정을 철페했으므로 남조선에서 연장하는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하였다.

그동안 하지는 이 문제를 놓고 흡진깝진하면서 대답을 피해왔다.

둘째로는 미군주둔문제에서 견해일치를 본것이였다.

맥아더는 필요한 때까지 미군을 계속 주둔시킬것이라고 하였고 리승만은 《국회》를 통하여 미군주둔의 법적명분을 만들어낼것을 확언하였다.

아무모로 보나 도꾜행각은 성공적이였다.

그는 돌아오자 곧 《독촉》중앙위원들을 리화장에 다 불러들이고 비서실을 대폭 늘이고 윤치영을 자기의 비서실장으로 다시 임명한다는것을 공개하였다.

새 《정권》출범을 자기의 주관밑에 준비한다는 로골적인 시사였다.

그날 저녁 리승만은 윤치영과 임영신을 따로 남겨놓고 호기있게 호통을 쳤다.

《이제부터 리화장건립에 공을 세운 특등공신들을 흘린 땀 한방울도 다 계량을 해서 순위별로 쭉 매겨서 가져오게.》

윤치영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위원장님, 좀 때가 이르지 않겠습니까. 이제 그 소식이 새나가면…》

《때가 이르다니?… 그러면 비서실장은 아직도 이 나라가 뉘손탁에 들게 되겠는지 가늠이 안간다는거요?》

《거야…》

윤치영은 리승만이 서울에 들어선 후로 지금까지 내내 곁에서 지내면서 무시로 벼락치듯 하는 리승만의 호령질에 습관되기는 했어도 리승만의 급소를 찌른것이 인차 후회가 됐다.

《윤실장이 떨떨하니 요즈음 〈한민당〉한테 무소속의원들을 절반이나 뺏기지 않았나. 그까짓 천만원이면 쉰놈은 당겨올수 있지 않았나.》

《돈으로 말씀드리면 우리 〈독촉〉이 어찌 부자놈들이 모여든 〈한민당〉에 겨를수 있겠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임녀사는 〈독촉〉의 금고가 선거전에 거덜이 났다고 걱정이 큰줄로 압니다.》

리승만이 두볼이 떡판같이 넓고 허여멀쑥한 임영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임영신은 리승만의 비위에 거슬리는 대답을 하고싶지 않아 창밖으로 짐짓 눈길을 박은채 윤치영의 말에는 개의치 않았다.

《거 자네 제발 우는 소릴 작작하게. 이제 우리가 홰대를 잡으면 나라금고가 다 〈독촉〉의 돈궤나 다를배 무어란 말이여.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끌어당기게. 무슨 대수인가.》

윤치영은 이제 더 말대답을 해야 리승만이 또 버럭 소리를 지를것 같아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허리를 굽신거리였다.

……

접수실에서 서성거리는 윤치영이 눈에 언뜻 밟히자 리승만은 그제서야 그를 만났던 일이 생각났다.

《일하는 꼬락서니가 쯔쯔… 뭘 이름이나 쭉 뽑아내는건데 사흘이나 기다리게 하는거야. 이젠 저 사람도 내곁에서 떠나보낼 때가 된가 보다. 나라정사 주관하기는 저 사람의 이름으로는 벅차구말구.》

리승만은 오만상을 해가지고 이렇게 화가 나서 중얼거리였다.

그는 창가에서 물러나 전화통을 들고 비서실장을 얼른 2층에 보내라고 소리쳤다. 1분도 되지 않아 윤치영이 들어섰다.

리승만은 그가 문턱을 넘어서기 바쁘게 째진소리로 역증부터 냈다.

《이 사람아, 지금은 부지깽이도 뛰여야 할 때야. 나라가 창졸간에 일어설 형국인데 매사를 뚝 부러지게 해내야지.》

윤치영은 곧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앞으로 숙인채 리승만의 역증에 공손하게 몸을 맡기였다.

《말씀하십시오.》

《어째서 한시간이면 끝내줄 일을 사흘이나 끌어가는가. 이래서야 건국을 하겠는가.》

그제서야 윤치영은 리승만이 화난 리유를 알고 머쓱해져서 대꾸하였다.

《아직 위원장님께 올리지 않았습니까. 분부받은 날 저녁에 사모님께 올렸는걸요.》

《마미가?》

마미란 프란체스까의 애명이다. 리승만은 언제나 자기보다 스물다섯 년하인 두번째 마누라를 그 녀자가 기르던 애견의 이름을 달아 부르군 했다.

프란체스까도 결혼초기에는 그 이름에 앵돌아지기는 했지만 자기를 꼭 장난감처럼 데리고노는 령감의 애무에 습관되여 그 이름도 들어주기 탓이라고 너그럽게 자존심과 타협하여버렸다.

《내려가던 길에 내가 기다린다고 전해주게.》

《방금 노불국장의 방문을 받고있습니다.》

《노불이?… 끝내면 올려보내게.》

리승만은 마미가 노불과 배가 맞아 돌아간다는걸 오래전부터 알고있다.

그들의 사이가 남다른 사이라는 추문이 리승만의 측근에서도 비밀아닌 비밀로 되여있다.

하지만 리승만은 양인들과 어울려지내는 마미의 뒤생활을 귀전에 흘려보내군 한다. 서른넷이 되도록 자전거경기선수와 잠시 살다가 갈라진 후 홀몸으로 상류사회의 뒤골목을 휘저어온 서방의 미녀가 일국의 국모가 되리라는 달콤한 유혹에 걸려들어 대륙을 넘어온것만 해도 어여쁜 일인데 그 사회의 류행으로 되여있는 바람기까지 이 나라의 풍속대로 재단해서 서로의 얼굴을 깎이게 할 필요가 없다는게 령감의 생각이다. 더구나 그 녀자가 양인들과 어울릴수록 그들은 어찌할수 없이 그녀의 치마폭에 감겨들어 자기의 후원자로 되여주는데야 손해볼게 없다는 계략적인 타산도 있었다. 하긴 리승만의 침방에도 이 나라의 숙녀라고 자칭하는 녀인들이 자주 드나드니 피장파장인셈이다. 공연히 마미의 뒤생활에 간섭하였다가 고양이상인 그 녀자의 앙탈에 룡상의 꿈은 고사하고 인격자로 둔갑한 이름이 하루아침에 추한 꼴이 될판이다.

그래 그들사이에는 뭇사람들앞에서는 원앙새부부로 지내다가 안방생활에는 눈을 감아주는 일종의 패륜의 《신사협정》이 맺어져있었다.

잠시후에 응접실의 방문이 소리없이 열리더니 조선치마저고리를 입은 프란체스까가 서양향내를 물씬 앞세우고 나타났다. 하와이에서 사귄 리기붕의 처 박마리아가 요새 뻗닿게 드나들며 옷매무시를 봐주는데도 진분홍색치마를 깡뚱하게 올려입고 터질듯 한 젖가슴을 뭉그려넣은 초록색저고리에 백고무신을 신은 꼴이 가관이다. 까마귀는 아무리 탐이 나도 백로로는 되지 못하는 법이다.

그 녀자는 문턱을 넘어서자 리승만에게 가볍게 묵례를 해보이고는 리승만이 구새통같은 몸을 처박고 앉은 쏘파앞에 와서 단정하게 섰다.

요즈음 프란체스까는 제딴엔 공과 사를 가리느라고 제법 왕실의 법도를 흉내내는데 왼심을 쓴다. 리승만이 보기에도 그게 눈에 쑤악스러운데가 있지만 웃기는대로 지켜보는수밖에 없다.

내려가면서 윤치영이 선통하였는지 프란체스까는 들고온 문서장을 리승만에게 정중하게 내밀었다.

《한번 마미도 봤는가?》

《예, 제가 조금 순위를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래?…》

리승만은 프란체스까가 눈썰미있게 내미는 돋보기를 코등에 걸더니 윤치영이 초를 잡은 《특등공신》명단을 훑었다. 임영신, 조병옥, 김성수, 신익희, 허정, 리청천, 리범석, 장석윤… 등의 순서로 자리매김을 했다. 자기의 의사에 발라맞추느라고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옆에는 프란체스까가 달려가는듯 한 영문글자로 순서를 뒤바꾸어놓은것이 많다.

리승만은 프란체스까의 속마음을 헤아려보며 눈을 게슴츠레 내리뜨고 그녀자의 필적을 주의깊이 살피였다.

우선 맨 첫자리에 있는 임영신을 다음페지 중간자리에로 끌어내렸다. 그자리에는 윤치영을 써놓았다.

리승만은 입귀를 쭈빗이 벌리고 소리없이 웃었다. 임영신을 둘러싼 윤치영과 프란체스까의 줄당기기가 언뜻 짚이였던것이다.

리승만이 제네바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갔다가 제네바호반의 어느 호텔식당에서 프란체스까를 만나기 전에는 미국에 건너와 대학도 다니고 교포운동에도 관여하였던 임영신이 애첩으로 통하고있었다. 실지 리승만은 그에게 청혼까지 했었다.

그녀자는 리승만을 거의 20년이나 따라다니며 내연의 관계를 유지해오면서 리승만의 고독을 그 풍만한 육체로 달래여온 측근이상의 이성의 벗이였다.

그런데 서방에 대한 환상에 극도로 물젖은 리승만은 프란체스까를 만나자 늙마에 바람이 났다. 리승만은 두어살아래인 그 녀자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침방에서 임영신을 밀어내고 프란체스까를 두번째 마누라로 정식 맞아들였다.

그러나 그후에도 임영신은 리승만을 크게 탓함이 없이 철없는 소녀처럼 여전히 틈나는껏 리승만의 물크러지는 육체를 위로해주느라고 그의 주변에서 가물치처럼 떠나지 않았다.

프란체스까도 령감이 임영신과 가까이 하는것이 질색이였지만 그렇다고 뿌리치게 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서양적인 매력과 젊음을 내놓는다면 임영신이 가지고있는 지적높이와 녀성적인 향기 그리고 뭇사내들의 혼을 쉽사리 흔들어놓는 재기에 대적이 될수 없다는것을 프란체스까도 슬프지만 인정하고있었던것이다.

그때문에 프란체스까는 임영신이 세월과 더불어 더욱 얄미워졌고 리승만에게 미치는 자기의 영향력이 점차 가세해짐에 따라 질투의 감정이 로골적인 배척과 적의로 꿈틀거리고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문서장에 그대로 드러난것이다.

리승만은 그녀자의 질투어린 눈총을 의식하면서 흥미가 없는듯 한마디 했다.

《딴은 그래, 치마두른 아낙을 정치의 지팽이로 두어서는 랑패야.》

그 말을 알아들은 프란체스까가 해쭉 웃으며 쏘파뒤로 와서 리승만의 어깨를 꽁꽁 주물러주기 시작하였다. 기분이 동하면 항용 보이군 하는 그의 엉석이다.

리승만은 다 훑고나서 문서장을 앞상우에 내던져버렸다. 그는 부어오른듯 앞으로 두드러져나온 눈두덩이를 내리붙이고 잠시 프란체스까의 애무에 몸을 맡긴채 생각에 잠겼다.

(〈한민당〉위원장 김성수는 서렬에서 빼던지고 경찰청장 장택상이를 앞선에 세워야 할것 같다. 충성도를 말할진대 그 사람이 훨씬 앞서지.)

리승만이 이렇게 생각하는데는 그럴만 한 사연이 있었다.

선거다음날에 김성수가 서울지역의 《한민당》계 당선의원들을 모여놓고 정치방식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했다는 말이 괘씸하기 그지없다.

《리승만이 오래지 않아 팔순되는 령감이다. 령감이 그 나이 되도록 대통령꿈을 꾸며 살아왔으니 대통령 그 정도로 봐주고 밀어주자. 헌데 어떤 대통령을 시키는가 하는것이다. 영국식의 녀왕이나 일본식의 천황같은 상징적인 인물이 되여야지 미국식의 대통령과 같은 실권자리에 앉히면 이 나라 정치도 로망이 든다.

난 내각책임제의 정치방식을 우리 나라에서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라 생각한다. 당신들은 날 총리로 내세우려 하는데 대통령책임제에서 실권없는 총리로는 절대로 나서지 않을것이다.》

이 소리 들은 뒤로 리승만의 안중에 김성수의 얼굴이 싹 지워져버렸다. 서로 딴그릇에 몸을 실었어도 자기를 내세워주던 김성수가 권력의 마지막쟁탈전을 앞두고 반기를 들고 나선것이다. 당장 자기의 기반인 《독촉》과 김성수의 《한민당》의 제휴관계를 끊어놓고싶었으나 하지가 또 무섭게 으르렁거릴것을 생각해서 아직은 눈을 치뜨고 넘겨다볼뿐이다.

그런데 경찰청장으로 있는 장택상이 어떻게 리승만의 불편한 심기를 알아차렸는지 김성수의 일거일동을 조사한 정보를 아침저녁으로 은밀히 가져오기 시작하였다.

며칠전에 와서 하는 말이 김성수의 측근에서 밀정을 하나 얻어냈다는것이였다. 탈세혐의를 걸어 경찰청에 잡아다가 주리를 틀었더니 손을 들더라고 했다.

련이어 선거를 계기로 좌익의 테로가 예견된다는 구실을 걸고 김성수의 집을 지키는 경찰들을 자기의 심복자들로 증강시켰다고 한다. 방문자들의 관계를 렴탐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보고를 며칠째 접하고보니 김성수가 천하 유다같은 놈이다. 매일같이 하지측 인물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리는데 근래에는 그 판에서 광복후에 한자리 딸가 해서 서울에 왔다가 여론의 빈축을 사서 다시 미국에 쫓겨간 서재필추대소리가 흘러나오는가 하면 량 김씨를 정계에 끌어당겨 서재필과 3두권력체계를 뭇자는 공론도 펴고있다 한다. 게다가 요새는 량 김씨의 성문에 뻔질나게 드나든다고 한다.

량 김씨를 정권에 옹립할데 대한 문제는 하지나 노불이 권고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그들을 정권에 내세우면 평양련석회의결정을 그 결정의 찬성자들이 뒤집어엎는것으로 된다는것이다. 북측이 인정하는 인물들이 반북적인 정권에 입각하는것만으로도 앞으로 선포될 정부의 합헌성과 중앙정부로서의 명분을 세우는데 리롭다고 꼬드기였다.

그래서 리승만은 《그들이 동의한다면…》하고 쓰거운대로 말꼬리를 길게 늘어놓았는데 김성수가 그들의 꼭대기에 서재필을 앉혀놓으려고 발 빠르게 뛰고있는줄은 금시초문이였다. 어찌 보면 이건 하지가 《독촉》계에 대한 비틀어진 심보로 김성수를 시켜 옆구리를 슬그머니 찔러보는것일수도 있다.

그래서 리승만은 《엄동설한이 되여야 솔 푸른줄 안다. 믿을것은 그래도 자네야.》하고 그 자료들을 꿍져가지고 온 장택상에게 마미더러 술을 치라고 제일 큰 표창을 내려 떠나보내였다.

장택상이 마미의 술잔을 받을만 한게 이것뿐이 아니다.

심복자로 믿었던 《독촉》의 정치부장 장덕수와 중앙위원 김준연이라는자가 돌아가며 리승만이 안하무인이라도 너무한다는 여론을 돌린다는것도 장택상이 렴탐해온 자료이다. 미덥지 않아 다른줄을 놓았는데 확실하였다. 숱한 사람들이 그들의 주위에 모여든다는 소리까지 덧붙어왔다.

그래 리승만은 성이 꼭뒤까지 치받쳐 하지를 꼬드겨 장덕수는 아예 죽여버리고 김준연이는 멀리 쫓아버렸다. 김준연이 지금 김성수의 사타구니에 들어박혀 이를 갈고있다는 소리도 들려왔으나 그쯤은 한강에 눈빨기라고 무시해버리였다.

장택상의 공로중에서 큰 공로라고 할것 같으면 당대 이 나라의 으뜸가는 거부인 박홍식을 깔고앉아 400만원의 거금을 뽑아내온것이다.

400만원이면 작은돈이 아니다. 식도원에 서너명이 몰려가 하루밤 느긋하게 놀양이면 450원이면 족하고 청주 한병에 15전이요 기생환대가 한사람앞에 1원 50전이니 10원짜리 지페 여라문장 가져도 내 세상 같다는데 400만원의 묵돈을 수염을 뻑 씻고 가져왔으니 공신치고 이런 공신이 또 있는가.

리승만은 문서장을 당겨다가 김성수의 이름을 뻑 그어버리고 그옆에 큼직하게 장택상이라고 써놓았다.

《윤치영이라…》

윤치영과는 10년 가까이 상종해온다. 윤치영은 미국에 가서 대학을 마친뒤 《림정》의 지부장으로 있은 관계로 알게 되였다. 지내고보니 인맥이 넓고 박식도 해서 곁에 두면 주변의 무게를 실리게 해줄듯 싶어 여러해 곁에 두어온다.

그런데 요즈음 새 《정부》의 조각이 일정에 오르자 이 사람이 낌새가 다르게 움직이고있다. 저 문서장을 보아도 상전의 취향을 고려한 흔적은 있다손치더라도 윤치영이 자주 어울리는 인물들이 태반이다. 자기와 윤치영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임영신이도 둘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면 윤치영의 품에 안길것이다. 김성수나 리범석이도 윤치영의 지기들이다. 윤치영이 그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가 자기의 주머니에서 꺼낸돈으로 자기의 이름을 걸고 마련되는 자리들이기는 하지만 윤치영의 터밭을 넓히는데 리용됐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확실이 윤치영이 한지붕밑에서 동상이몽하고있다는 륙감적인 느낌이 든다.

《음, 내가 범새끼를 기르고 있는게 아닐가. 윤치영, 너도 이젠 물러날 때가 된가 보다.…》

리승만은 이렇게 입속말로 웅얼웅얼거리며 윤치영의 이름을 뻑 그어버릴가 하다가 마미가 그 보근보근한 손부리로 어깨를 주무르며 넘보고있다는 생각에 문서장을 다시 앞상에 던졌다. 마미는 윤치영의 깨끗한 용모에 흠뻑 반해있다.

그는 눈을 다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지금까지 주변을 가꾸어온 공은 그런대로 정하게 사두어야 할것 같다.

(어느 자리를 줄가? 총리자리는 미국사람들이 밀어안줄거구… 외무장관?… 그 사람의 다문박식한 지성과 점잖은 인격에 어울리는 자리기는 하지만 너무 미끈한 자리야. 내무장관직이 어떨고?… 그래 그 자리가 주는사람 미안할게 없고 받는사람 눈 빨것 없는 자리야. 마미도 그쯤이면 좋아할거구. 허허 그 사람 내 주변에서 내보내기에는 그 자리가 적재적소다.)

리승만의 타산에는 의뭉스러운것이 있었다.

내무장관자리란 아무 나라에서나 나라의 중견으로 치부되는 인간들이 나서는 자리다. 그런데 흔히 그 자리에는 통수권자들에게 가깝고도 멀어져야 할자들이 오르기가 일수다. 내무장관직이 외견상 내무, 치안을 다 걷어안고 지방행정까지 맡아보는 권력의 노란 자리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한시도 바람잦을새 없는 고된 자리다. 경찰과 정보와 온갖 권력의 핵심자리를 다 그러쥐고있는 내무장관은 고삐와 채찍을 가지고 국민이라는 황소를 다루는 만인지상의 인간이지만 일단 그것을 놓게 되면 화를 참아왔던 황소의 뿔에 들이받기여 일조에 산산쪼각이 나고 만다. 뿐더러 내무장관은 행정조직이라는 풍금건반을 두드리는 사람이다. 복잡한 행정기관을 조정하여 대통령이 원하는 곡조로 선률이 흘러나오도록 풍금건반을 누르는것이 내무장관이다. 연주가 잘못되였을때 작곡가인 대통령이 아니라 풍금연주가인 내무장관이 먼저 청중의 비난을 받게 되는것이다.

한마디로 내무장관이란 정치의 제단에 오르는 제물이요, 실권자를 대신해서 어느 때든지 죽어야 하는 자리이다. 국내의 정치상황으로 하여 대통령으로 향하는 국민의 눈초리가 사나워질 때면 흔히 내무장관의 목을 치는 방법으로 그에게 책임을 들씌여 자기에게로 향하던 눈초리를 너누룩하게 해주는것이다.

사실상 리승만이 12년이라는 집권기관에 열여덟이나 내무장관의 목을 뗐다는것으로 윤치영을 그 자리에 옮겨놓으려는 리승만의 내흉스러운 생각을 료량할수 있다.

《마미.》 리승만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다시 문서장을 잡으며 입을 뗐다.

《윤실장에게 총리직은 골치아픈 자리야. 미국사람들도 윤실장을 총리직에 내세우면 이 리승만이 너무 제욕심만 챙긴다구 눈을 흘길것이고…》

리승만은 그 녀자와 타협을 하듯 이렇게 변명을 하였다.

《그러면요?》 리승만이 예견했던대로 마미의 눈이 먹이감을 노리는 매눈처럼 표독스럽게 되였다. 종전까지 아양을 떨던 자그마한 얼굴에 독기가 서리니 흡사 성난 고양이상이다. 그 녀자는 모처럼 굴려온 자기의 생각이 썩뚝 짤리우는것 같아서 당장 달라붙어 행악질을 해댈 자세로 리승만의 상통을 노려보았다.

《허허 마미.》

리승만은 이제는 마미의 그 변덕과 심술에도 신경이 무디여진듯 헤식은 웃음을 보이고 얼른 말을 이었다.

《마미, 앞으로 윤실장을 내무장관으로 발탁하면 어떨고?》

《내무장관?… 아유, 그 자리가 좋습니다. 잘해낼겁니다. 정말입니다.》

마미가 금시에 눈가에 교태를 담으며 좋아하였다.

《그래, 마미가 좋다면 그대로 하는거야.》

리승만은 웃음이 남실거리는 마미의 고양이상을 흉물스럽게 지켜보다가 제풀에 소리내여 껄껄 웃고말았다.

《그런데 령감님께서 급한건 이런게 아닙니다. 진짜로 걱정거리는 따로 있는것 같습니다.》

프란체스까가 자못 신중한 기색으로 딴 소리를 꺼냈다.

《그게 뭔데?》

리승만은 이따금 생각을 굴려볼만 한 신통한 소리를 한마디씩 섬겨대군하는 프란체스까의 앙증한 얼굴을 귀엽게 봐주며 물었다. 그 녀자는 길다란 속눈섭의 오리오리마다 리승만이 노리는 룡상에 대한 걱정을 매달아놓은듯 자못 념려스럽게 대답을 하였다.

《미국특사가 제주도까지 돌아보고갔다고 합니다. 비서실에서 수군거리는 말이 특사가 미군을 뽑아갈 최종결재권을 가지고왔는데 제주도를 돌아보고나서 야단이였다는겁니다. 미군을 붙잡아둘 리유가 하나도 없다나요. 미군을 정말 다 끌어가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프란체스까의 생각에도 미군만 없다면 룡상이고 뭐고 하루아침에 무너질판이다. 그러니 그 녀자의 걱정도 괜한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리승만은 그 소리에 《하하》하고 궁글은 소리로 제잡담 한바탕 웃고나서 호언장담을 늘어놓았다.

《미국은 군대를 뽑아가지 못해. 그러면 저들이 다 쫓겨갈 판국인데두… 세해동안 이 나라에 발톱을 박으려고 무진 애를 써왔는데 그 사람들이 제나라 군대를 걷어내가?… 걱정할게 없어. 그리고 리유라는게 도대체 뭔가? 리유라는거야 만들어내면 되는거지. 내 무쵸에게도 맥아더에게도 그말 한마디만은 자신있게 밝혀두었지. 국회도 서고 이제 대통령도 나서게 되니 우리가 리유를 만들어내겠다구…》

《그럼 제주도는 어찌하실랍니까?》

《제주도가 골치거리야. 하지만 그것도 마미가 걱정할게 없어. 띤장군이 직접 미군을 거느리고 쳐들어가겠다 했으니 불은 꺼질거야. 그까짓 제주도 30만 도민을 다 바다물에 처넣으라고 했어. …… 에에… 이젠 됐어. 그런 으스스한 얘기는 안방에서 나누는게 아니야.》 마미가 리승만이 대수롭지 않다는듯 배짱있게 던지는 말에 저으기 걱정이 풀리는지 배시시 웃었다.

《총리자리에는 어느 녀석을 앉혀놓는다?…》

리승만은 마미가 꺼내놓은 그 문제거리에서 벗어나고싶은듯 다시금 문서장에 눈길을 박고 주런이 써놓은 《특등공신》들을 훑었다. 종이장우에는 이름들이 아니라 윤치영이 천거한 여러 인물들이 고개를 쳐들고 입을 쩍 벌리고있는것 같다. 그들모두 저마다 먹을알이 있는 자리를 달라고 눈들이 우멍해가지고 자기를 쳐다보는것 같다.

(흠흠… 너무 쉽게 던져줄 일은 아니야. 서로 이마받기를 시켜야 하는거야.저마끔 리화장의 첫번째 충복이노라고 나서게끔 충성경쟁을 시켜야 해. 에 장택상이같은게 자꾸 나와야 되는건데… 장택상이는 어떤 자리를 준다?…)

리승만은 무성하게 가지를 쳐가는 권력분배놀음에 흥이 나서 시간을 보내다가 솔곳이 잠이 들었다.

프란체스까는 령감이 코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그를 쏘파에 편안히 눕혀놓고 살그머니 물러나려고 발소리를 죽여가며 나들문으로 걸어갔다. 윤치영에게 어서 빨리 소식을 전하여야 했다.

그런데 리승만의 잠꼬대에 그 녀자는 다시 눈이 올롱해서 발을 세웠다.

《미군을 끌어간다구? 그건 안됩네다. 절대로 안됩네다.》

리승만이 또 뭐라고 웅얼거리고는 푸-푸 금시 숨이 꺼질듯 코소리를 낸다.

잠에 들어서도 꿈자리가 마뜩지 않은지 살진 볼을 연신 실룩거린다. 프란체스까는 방금전에 자기가 괜한 말을 꺼내여 령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고 후회하였다. 령감이 자기 앞에서는 무슨 대수냐 하고 선소리를 던지기는 했지만 기실 미군철병문제가 제일 큰 두통거리임이 분명하였다.

프란체스까는 생각을 고쳐하고 얼른 나들문을 안으로 잠그고는 비서실에다 30분동안 누구도 응접실에 올려보내지 말라고 일렀다. 그리고는 그 무슨 불길한 꿈자리를 밟고있는듯 오만상을 찌프리고있는 리승만의 머리맡에 앉아서 두상의 송장과 같은 모습을 서글프게 내려다보았다.

요즈음 리화장의 하루는 이렇게 나라 돼가는 꼴은 뒤전에 밀리운채 미국놈들이 선사한 권력분배를 어떤 품값으로 하겠는가 하는 시시펑덩한 놀음으로 시작되고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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