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피와 눈물의 바다를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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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승만은 전례없이 주말휴가를 보내려 한다는 말을 남기고는 프란체스까와 개인비서와 주치의사 등 단출한 행렬을 무어가지고 진해로 내려갔다.
봄을 맞은 진해별장은 신록이 짙게 서리고 온갖 꽃이 활짝 피여 남해의 일경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풍치가 이채로왔다.
리승만은 절벽에서 길게 낚시줄을 드리우고 가재미를 낚기도 하고 푸릿푸릿한 금잔디우에서 마미와 마주앉아 도미노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어느 시간에 무슨 소일거리를 잡았든지 생각은 미군철수가 박두하고있다는 엄연한 사실로부터 피해설수가 없었다.
요즈음은 그 생각으로 뒤골이 지끈지끈해오고 혈압이 자주 오르내리였다.
그 지겨운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보려고 진해에 내려왔는데 조용한 곳에 와서 호젓이 시간을 보낼려니 오히려 그 두통거리가 게집게발처럼 머리통을 떡 집고 놓아주지 않는다. 잠자리에 들면 미군졸병들이 철갑모를 벗어 휘휘 돌리면서 《우남아, 잘 있거라.》하고 괴성을 지르며 히히닥거리는 그런 악몽에 시달리다가 땀으로 온몸을 매닥질하고서야 후닥닥 일어나군 한다.
이제는 대세를 돌려세울 여력이 없다.
(미국것들을 어떻게 하면 붙잡아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양놈들이 없고서야 이 우남이 어떻게 이 나라를 다스려간단 말이야.)
리승만은 지금 프란체스까와 마주앉아 볕이 좋은 잔디밭우에 깔아놓은 돗자리우에서 도미노놀음을 하면서도 줄곧 이런 생각만 쫓고있었다.
(무쵸가 손탁이 물러. 그래도 하지가 무사다워. 둘째 며느리 맞아보아야 맏며느리 고운줄 안다는 우리 속담이 그른데가 없어.
하지… 좀 무지한데가 있어도 한다면 해내는 놈이였거든. 무쵸가 와서 내가 덕보는게 도대체 뭐란 말인고.)
《각하께서 쪽 쓰실 차례입니다.》
마미가 도미노쪽을 움직이다 말고 멍청해있는 령감을 보며 일깨웠다.
《어 그렇지… 내가 밀렸군… 어, 안되겠어. 실지를 회복하자면 이젠 기회를 놓쳤어, 내가 졌어.》
리승만은 땅찾기놀음과 흡사한 도미노놀이가 흥심이 나지 않아 놀음판에서 물러앉으며 손을 툭툭 털었다.
《옳습니다. 기회를 놓쳤습니다. 각하께서는 서울에서도 기회를 놓치군 하시는데 기회를 만들어내시지요.》
《기회를 만들어낸다?…》
리승만이 눈과 입에 살살 떠오르다가도 쉽게 지워지군 하는 그 녀자의 애교에 뼈가 사르르 녹아내리는듯 귀여운 손녀딸 들여다보듯 하다가 《허허…》하고 헤식은 웃음을 지었다. 어떤 때 보면 제네바에서 처음 만났을 때까지 피아노나 둥기당거리던 이 녀자가 대학을 몇개씩 걸치며 여기저기서 박사학위를 여러개 따놓은 자기보다 더 기특한 정치의 묘기를 발휘하는 때가 적지 않다. 리승만이 마누라와 인사권을 절반씩 나누어가지고있다는것은 정계에 알려진 《비밀》로 되여있지만 정책수립에서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있다는것은 누구도 모르고있다.
《기회를 만드십시오. 기다리시지 말고 만들어내십시오.》
마미의 눈빛에 애교가 지워지더니 진지한 빛을 담는다.
《그래, 그럴듯 해. 암, 기회를 만들어내야지. 허허, 경국지색이라 했더니 마미가 정말 신통해.》
리승만은 껄껄 웃다가 프란체스까의 귀띔에 그 어떤 착상이라도 손에 잡힌듯 잔디밭에서 일어났다.
마미는 령감이 실없이 내던지는 고담의 뜻풀이를 이미 들어두었던지라 고양이같은 두눈을 올롱히 해가지고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리승만은 양벗이 다랑다랑 열린 별장마당으로 걸음을 옮긴다.
(기회를 만들어내야 한다, 기회라…)
리승만은 다시 생각을 고루어갔다.
그가 여전히 종작없는 생각에 궁싯거리고있는데 마미가 또 한마디 튕겨주었다.
《지난해 맥아더총사령관이 서울에 오셨을 때 뭐라고 합디까. 아무래도 이북과 전쟁을 치러 남북을 다 미국의 동맹권으로 만들어야겠다고 하셨지요. 전쟁을 벌려놓으면 미군이 물러날수 없잖습니까.》
리승만은 다시 애교있게 종알거리는 프란체스까의 앙증스러운 얼굴을 입을 하-벌리고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전쟁을 꼭 애들 군사놀이처럼 쉽사리 입에 올리는게 천진스럽기까지 하다. 아직도 애교가 남실거리는 고양이같은 입에서 전쟁이라는 말이 그리도 재담처럼 재미나게 흘러나올가. 지금껏 《북벌》이라는 말을 자주 외워 경을 치기도 하였지만 그건 궁할 때면 필요에 따라 해보는 소리다. 정말로 《북벌》할 힘이 있거나 《북벌》할 뚜렷한 주장이 있어서 입밖에 던진것은 아니다.
리승만은 드디여 엄청난 결심을 내리였다.
《미군만 있으면야… 그래 〈북벌〉로 미군을 비끄러매야지… 좋아요. 비서를 찾아 곧 상경한다고 해요.》
리승만은 프란체스까를 비서에게 보내고나서 금시 떠오른 그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생각을 굴려보며 결심을 굳히였다.
리승만은 방금 프란체스까가 종알거린 그 무서운 재난을 담은 귀띔이 그 녀자의 계교가 아니라 맥아더계통의 째인 술수에서 나왔다는것은 모르고있었다.
그 녀자는 노불을 통하여 미중앙정보국과 련결되여있으면서 맥아더사령부 정보국의 지령도 받고있었다.
얼마전에 프란체스까는 맥아더의 줄을 통하여 리승만이 미군철수와 국내의 정치적불안정이라는 안팎의 협격에 부닥칠 때 전쟁이라는 탈출구에로 유인하라는 비밀지령을 접수하였었다.…
경무대에 들어선 리승만은 도꾜의 맥아더를 전화로 찾았다. 리승만은 미군이 물러가기 전에 불꽃을 튕겨놓을 생각이니 뒤일을 부탁한다고 간청하였다.
맥아더는 기다리고있은듯 즉시에 의기양양한 어조로 대답해왔다.
《리박사, 좋은 일이요. 소리를 내시오. 맥아더가 달려들게요.》
이날 저녁 기고만장해진 리승만은 리범석과 군부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1사단장 김석원을 불러들였다.
리범석과 김석원은 《북벌》주창자들이다. 노불까지 청해들였다.
《우리의 4자회담은 극비요.》
리승만은 이렇게 다짐을 두듯 말해놓고는 최대한 빠른 시일안으로 《북벌》을 강행하겠노라고 선언하였다.
리승만의 폭탄선언에 이제껏 《북벌》쌍피리를 불어온 김석원과 리범석은 물론 노불도 아연해졌다. 로망든 소리인가?… 두상이 전쟁이라는 말을 너무도 천연하게 던졌기때문이였다. 더구나 다 찌그러진 인생말년에 이른 늙다리가 전쟁을 치르겠다니 이게 로망으로밖에 달리 생각할수 있느냐.
히틀러는 50살난 1939년 어느날 《전쟁을 하려면 이 나이에 해야지 쉰다섯이나 륙십이 되면 짐이 너무 무겁다》고 하였다. 그런데 두상이 80객을 바라보는 산송장이 되여가지고 무슨 타산이 있어 그리도 쉽게 전쟁소리를 꺼내는가. 전쟁을 일으킬수 있는 초보적인 물질적준비는 돼있는가.
노불은 어느 책에서 봐두었던 토막일화가 떠올랐다.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 나섰을 때 영국수상 처칠이 런던주재 일본대사를 만났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처칠은 일본의 강철생산량이 년산 7백만t수준인데 미국이 7천 5백만t, 영국이 1천 2백 50만t을 생산하고있으므로 일본이 어느 한 전투에서는 이길수 있으나 전쟁에서는 패한다고 점잖게 경고하였다.
력사는 처칠의 경고가 옳았다는것을 증명하였다.
그런데 총 한자루, 수류탄 한알 변변히 깎아내지 못하는 주제에 전쟁이야기를 꺼내다니… 노불마저 사색이 되여 수긍이 되지 않은 태도를 보이자 리승만은 벌컥 신경질을 부렸다.
《전쟁으로 미군병사들을 비끄러매자는거요. 이 땅에 남북간의 포성이 울려도 미국이 강건너 불보듯 할수 있겠는가.
맥아더는 오늘 낮에 나에게 약속했소. 소리를 내라. 맥아더가 달려들거다. 어떻소. 허허…》
그제야 노불도 령감의 엉큼한 속내가 리해되였다.
《해봅세다. 그러지 않아도 10년만에 다시 만난 최현과 맞붙어 겨루고싶었는데. 그까짓거.》
주먹을 내두르는것은 김석원이였다.
《이북이 허리펴기 전에 사등이를 꺾어버립시다. 집안 하나에 호주가 둘 있어가지고서는 안됩니다. 생각없는 미물무리들도 길잡이가 하나가 되여 그자리 갖자면 한쪽이 물러날 때까지 피투성이가 돼서 대갈질 하는데 하물며… 싸움은 해야 되는겁니다.》
노불이 리승만의 전쟁소리에 떨떨해있다가 김석원까지 덩달아 입에 거품을 물고 나서자 자신을 수습하고 지금까지 비밀에 붙였던 흉계를 토설하였다.
《대통령각하, 아직은 미군존재와 관련한 〈국회〉의 소란을 비관적으로 속단할것은 없습니다. 우린 우리대로 〈국회〉안의 소요를 진정시킬수 있는 하나의 충격료법을 준비하고있습니다. 한두달 기다려주지 않겠습니까? 아직은 사태를 너무 극단으로 몰고나갈 필요가 없을것 같습니다.》
《어떤것이요? 그 망나니패들을 길들여보자고 난 무진 애를 썼소. 생각같아서는 두어명 오라를 지워 저 멀리 독도에 내던져 정배살이 시키고픈데 무슨 수를 내놓는 위인이 있소?
좋습니다. 노불씨의 계획에 기대를 걸어봅시다. 헌데 당신네 륙군장관이 인차 오게 되겠는데 그전에 마련이 있어야 할텐데… 로이얄이 뭐 유럽쪽에 기울어져있는 사람이 확실하오?》
《유감스럽게도 그런가 봅니다. 그렇지만 그도 조선반도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있다 합니다.》
노불은 로이얄이 유럽에 기울어져있는게 제불찰이기라도 한듯 송구스러운 표정을 보이였다. 아버지때로부터 리승만과 친교를 맺어온 노불은 리승만을 일상적으로 어려워하였다. 하지만 그는 호랑이를 다루는 조련사처럼 때없이 으르렁대고 뒤발질도 해대는 리승만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미국의 리해관계라는 울타리에 50년가까이 가두어두고 솜씨있게 다루어오고있었다.
노불은 언제나 아버지를 모시듯 리승만을 조심히 그리고 정중히 대해주면서도 리승만이 함부로 자기 말을 거역해나서지 않도록 먹이감을 적당히 던져주고 채찍도 자리나지 않게 휘두르기도 하면서 측근인물들을 두세해갈이로 교체해버리는 괴벽스러운 리승만의 주변에서 용케 자기를 지켜가고있었다.
《노불씨, 그걸 당겨주지 못할가.》
《각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고맙소이다. 리범석장군, 몇군데 쑤셔주오.》
리승만은 이따금 리범석을 사석에서 부를 때면 살이라도 떼줄듯 장군이라 곰상스럽게 불러주며 친밀감을 표시하군 했다.
지금도 리승만은 불쾌한 일들은 당분간 젖혀놓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 보조를 같이할것을 바라는 심정에서 한껏 물음말에 정을 담는다.
리범석은 그때까지 오가는 대화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광복후 리범석은 《족청》을 뭇고 이 나라의 군권을 틀어쥐려고 바재이면서 북에도 숱한 공작을 들이댔다. 반공은 그에게도 필생의 과제다. 그런데 첩자들이 가져오는 정보마다 북은 안팎으로 다져진다는 소리뿐이였다. 발길질이 통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요새 와서는 화평통일론에 고개를 끄덕여왔다. 김구를 조용히 찾아가서 남북련석회의과정도 들어보았다. 망하는 집안을 끌어안고 넝마같은 인생말년을 보내지 말고 화평회담을 해서 통일된 나라에서 한자리 얻어가지고 사는게 나을상 싶다.
그랬는데 지금 리승만이 왕청같이 하늘이 무너질 소리를 한다.
이북까지 타고앉으면 여북 좋겠는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다리질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되면 좋구 안되면… 리범석은 자꾸만 자기에게로 돌아서는 리승만의 눈초리를 외면하며 그냥 지꿎게 입을 다물고있었다.
드디여 리범석은 내키지 않은 소리를 꺼내놓고야 말았다.
《좀 생각해보겠습니다. 38도선에서 가까운 몇군데에 불을 일쿼보도록 하겠습니다.》
《흠, 좋습니다. 노불씨의 제안을 첫째 안으로 하고 그게 먹어들지 않으면 두 장군이 나서주시오. 될수록 준비들을 다그쳐 빨리 소리를 냅시다. 좋기는 로이얄이 이곳에 오기 전에 불질을 해대면 그럴듯 한데… 요새는 펜타곤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불길하기만 하거든. 뭐 미합동참모본부의장 아이젠하워는 며칠전에 자기는 원동을 잃을지언정 유럽은 내놓을수 없다고 했다더구만. 아이젠하워야 유럽에서 련합군을 이끌고 너무 고역을 치른 사람이라 그런 망설을 함부로 한다치고 태평양함대 사령관이라는 놈까지 쏘련이 일본국을 점령한다 해도 미국이 큰 위험은 되지 않노라고 하니 그게 허파에 바람든 소리가 아니요? 얼마전에는 원동중시를 주장하던 토터이퍼도륙군차관의 목이 또 떨어졌다고 하는데 미국사람들이 도대체 태평양을 저네들의 호수로 만들겠다고 하던 윌슨대통령의 말은 잠꼬대로 들었던겐가. 이제 중국의 동북지역도 다 무너져내리고 불원간 모택동의 붉은 왕조가 베이징에 입성하게 되겠는데 미국사람들이 어째 이리도 근시안들인가, 아니면 근시안이 된척 하는건가?》
리승만은 말김에 스스로 격앙이 되여 손바닥으로 실팍한 허벅다리를 쫙- 쫙-치며 눈이 온통 새빨개져서 고아댔다.
노불이 달래이듯 조심스럽게 말꼬리를 붙잡았다.
《각하, 그것이 미국의 전체를 대표하는것이 아닙니다. 입벌려지는대로 혀바닥을 놀리고 하고픈 소리 다 하는데가 미국이라는걸 각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미국은 절대로 이 반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건 미국의 정책입니다. 국방장관 프레스탐이나 맥아더도 우리를 지지하지 않습니까. 중앙정보국도 언제나 각하의 후견인으로 남으리라는걸 난 자신있게 확언합니다.
원동에 대한 립장, 더구나 반도문제에서는 트루맨과 맥아더의 견해는 대동소이합니다.》
네 망둥이패당들은 《동향회》를 해체시켜 화평통일론을 무산시키거나 개성에서 북에 대한 대규모의 도발을 준비하며 해주와 강원도일대에서 크게 교란전을 벌려 전쟁의 불을 전역으로 확대시킨다음 미군을 개입시킬데 대한 흉모를 짜고 헤여졌다.
노불의 제의에 따라 이러한 거사들은 극비밀리에 준비를 착실히 하였다가 CIA의 모종의 작전이 있은 후의 정세변화를 보아 단행할데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노불은 마지막으로 로이얄의 방문시에 리범석이 동행하여주며 미군철거론자들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해줄것을 당부하였다.
노불은 자기가 계획한 거사는 로이얄의 서울도착전야에 벌릴것이라 하면서도 거사의 륜곽에 대해서는 끝내 내놓지 않았다.
리승만은 리범석과 김석원을 정문에 나가 바래워주고는 노불과 다시 조용히 마주앉았다.
프란체스까가 그들의 자리에 로씨야제 워드까 한병을 들고 와서 좌석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해주었다.
리승만의 대인외교에서는 프란체스까의 치마바람이 한몫을 한다. 더구나 양인들은 저들의 비위에 알맞는 봉사를 눈썰미있게 해주며 때에 따라서는 서슴없이 안방자리에까지 끌고가는 프란체스까의 화사한 접대를 받을 때면 그대로 일국의 국모라는 자못 신비할 정도의 경건한 감정과 양인이라는 혈통의 뉴대감을 갖고 따라주는 술잔과 환대를 몇배의 의미를 담아 받아들군 한다.
프란체스까는 노불을 위해서는 특별히 그가 좋아하는 로씨야 본산워드까를 항상 따로 건사해두군 했다.
그는 노불의 잔에 워드까를 따르고는 《각하께서도 한잔…》하며 두상에게는 우유빛갈의 막걸리를 부어주었다.
《말씀 드릴게 있습니다. 김구에 대한 단속을 잘해야겠습니다. 이번 로이얄의 방문일정에 야권의 대표인물로서 김구와의 회견이 들어있습니다.》
《김구?》
대뜸 두드러진 붕어눈이 앞으로 쏟아져나올듯 솟았다. 김구라는 말만 들어도 피가 뚝 굳어지는듯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리승만이였다.
《난 정말 모를 일이요. 미국은 어째서 아직도 김구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있는지.… 얼마전에 무쵸대사가 김구를 또 만났다면서요?… 김구가 정권에 참가하는건 미군철거후에 보자고 했다는데 이런자하고도 대사라는 공직자가 어울려도 된다는거요?》
《각하, 그건… 정치의 뒤면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모르겠소. 무쵸의 속궁리 시커먼지, 시뻘건지. 전일에 나더러 철거요구가 이남에 그냥 잦아들지 않는 리유가 행정권의 독선독주에 기인된다고 은근히 사퇴를 종용하고있는데 이것도 그 뒤면이라는거요? 〈국민당〉과 〈민국당〉을 하나로 합쳤더니 요즈음은 김규식을 당수로 하던지 아예 〈한독당〉까지 끌어들여 김구를 당수로 내세우라는거요. 그러니 정사를 김구에게 맡기자는게 아닌가.
그런데 김구라는 작자가 놀아대는 꼴 보시오. 〈국회〉안의 빨갱이들을 다같이 청해다가 술잔을 내밀며 평양과 협력하고 미군을 몰아내자는 소리뿐이요.
륙군장관 만나 무슨 소릴 할지 뻔해. 그런데 아직도 미국의 현지책임자가 미국에 살을 날리려 궁발을 쳐든 인간과 잔을 찧는다는거요. 도대체 무쵸는 미국무장관까지 해먹었던 작자가 요새 붉은 마녀로 락인이 찍혀진걸 모르는가.
난 정말 김구에 대한 무쵸의 관심이 정치의 뒤면이라면 이번에 로이얄의 단독회견이나 지켜보다가 선소리 했다면 제껴버리고 말거요.》
《각하, 기다리는자 이기는자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리승만이 막걸리잔을 내놓고 그냥 피대를 돋구자 노불은 길다란 상통에 비죽이 미소를 지었다.
《각하, 고정하세요. 우리에게는 노불씨가 있고 노불씨뒤에는 미중앙정보국이 있지 않습니까. 무쵸씨가 미국을 상징하지 않는다는걸 노불씨가 방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프란체스까가 울화기 한껏 돋힌 상통을 쓰다듬어주듯 조약돌우로 굴러가는 시내물처럼 맑고도 랑랑하게 위로를 했다.
노불이 프란체스까의 눈가에 찰랑거리는 실웃음에 간장이 노그라지듯 연방 고개를 꺼덕거려보였다.
프란체스까는 40대를 보내고있는 녀인이다. 서양녀인으로서는 한창 성욕이 무르녹는 시절이다. 게다가 리승만이 하루세끼 떨구지 않는 산삼, 록용까지 적당히 나누어 장복하여오는지라 언제나 그의 눈은 사랑을 갈구하는 애욕으로 새물거리고있었다.
리승만은 한바탕 버거운 신경질에 기력을 뽑고나서 기진맥진해진듯 쏘파에 허리를 척 붙이더니 이어 코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령감의 이러루한 변덕에 습관되여온 노불은 기다린듯 얼른 일어나 아직도 살집이 좋아 무게가 나는 리승만을 안아들고 그의 침방으로 들어가 눕혔다.
프란체스까가 따라 들어와서 리승만의 겉옷을 벗기고 양단이불을 덮어주었다.
잠시 그들은 잠자리에 든 령감을 우두커니 내려다보았다. 어둑시그레한 밤전등빛아래서 푸-푸- 듣기 치사한 코소리를 내며 입을 메기입처럼 쩍 벌리고 늘어져있는 꼴이 꼭 송장을 보는것처럼 스산하기 그지없다.
프란체스까는 자기도 모르게 노불의 등뒤로 다가가 그의 팔을 살그머니 끌어안았다.
노불이 애욕이 재글재글 끓고있는 그 녀자의 새파란 눈을 들여다보다가 말없이 그의 풍만한 가슴을 끌어안았다. 이제까지 애써 지탱해오던 《국모》의 정숙과 도고함이 일순간 녹아내렸다.
그들은 서로 무언의 불륜의 약속을 나누고 너렁청한 응접실로 다정한 련인처럼 서로 몸을 붙이고 들어섰다. 이른바 《대한민국》의 국사가 토의되고있는 이곳은 미국의 공식외교관이 《대한민국》의 《국모》를 종종 만나 밀회의 꿀맛을 주고받는 안방이기도 하다.
먼 후날에 어느 력사가는 이러한 사실을 놓고 력사의 반동들이 이른바 《리승만 바로보기운동》이라는것을 벌려놓았을 때 민족적수치와 울분을 이렇게 터뜨렸다.
《조선사람들이 리승만을 만고역적이라 칭하는 리유가 그 가지수를 꼽자면 이루 헤아릴수 없다.
리승만은 육체도 혼도 그리고 자기의 사랑마저도 미국에 전당잡히는 민족적수치를 남겼다는 그 하나의 리유만 가지고서도 배달민족의 족보에서 추방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