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피어린 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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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 사무실은 크고 무게가 있게 꾸려져있었다. 여러대의 화분대에서는 고무나무와 대나무가 싱싱하고 옆면에는 다도해의 아침해돋이를 형상한 대형병풍이 둘러있었다.

요즈음 신익희는 리승만에 대한 앙심이 날을 따라 돌덩이처럼 굳어져갔다.

최능진쿠데타설에 리승만은 개입안했다고 아닌보살이였지만 리승만을 만날 때마다 그 일부터 떠올랐다. 그런데 요즘에는 미국대사관이 입국비자를 주었는데 리승만이 외화출고결재를 해주지 않아 워싱톤방문이 그냥 뒤로 미루어지고있었던것이다.

두어번 직접 경무대까지 찾아갔더니 리승만이 한다는 수작이 《〈국회〉가 곧 개원되겠는데 의장이 공석이면 가뜩이나 헤쳐놓은 개미둥지같은 〈국회〉를 누가 정돈해주겠소.》하며 딴전을 부리군 하였다.

그 소리도 부의장이 《동향회》쪽에 발을 들이민 사람이고 보면 우연치 않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닌것 같다. 내각제개헌에 목소리를 합치기 시작하니 비렬하게 앙갚음을 해오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명색이 일국의 《국회》의장이라는게 몇천딸라에 목이 메여 정상적인 공식방문도 그만둔다는것이 참으로 원통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는 최근에 이르러 리승만의 풍에 계속 춤을 추다가는 무슨 큰일을 치고야 말겠다는 정신적인 압박감을 더 깊이 통감하고있었다.

리승만의 정사에 깊이 관여하여볼수록 치사스러운것이 너무 많다.

《제 정신을 차려야겠다. 이러다간 앞뒤에서 골받이 당하겠어.》

신익희는 넓다란 사무실에 홀로 앉아 이따금 이렇게 신음소리같은것을 내지르기도 하였다.

그는 요즈음에는 정부개각에서 배제되여 리승만을 대포로 들어내겠다고 독을 쓰는 리청천을 자주 만나 자기의 《국민당》세력과 함께 리승만에 반기를 든 새 정당을 무을 밀의까지 벌리였다. 여기에 리범석계까지 끌어들이고 나중에 김성수계를 잡아당기면 리승만의 기를 누르기에는 충분한 세력이 된다.

그런데 김성수계를 포섭하는데는 문제가 있을듯 싶다. 자칫하면 김성수를 당기려다가 땀흘려 큰 집을 마련해 넘겨주는 결과가 빚어질수도 있다.

《동향회》의 젊은 패들과 손을 잡으면 어떻게 될가.

《동향회》의 황철산이며 김승원이며 권영호의 얼굴이 떠오르자 어쩐지 아래다리에 힘이 쭉 뻗치는것 같다. 그 젊은 패가 왁왁거릴 때면 당장에 하늘이라도 부시고 솟을듯 하다.

몇번 마주쳐서 싸운 뒤끝에 찾아드는 생각은 그 젊은 패가 이제 이 나라의 실체로 될 때는 자기들과 같은 정치의 퇴물들은 설 자리가 없을것이라는 걱정이다.

(지금부터라도 그 친구들의 신용을 사두는것도 나쁘지 않아.…)

이런 취지에서 신익희는 전번 유격전구에 대한 조사단 파견문제에서 전적으로 그들 편에서 손들어주었다.

리승만이 그것때문에 화가 돋쳐 전화로 따지고들자 《국회》가 하는 노릇에 너무 끼여들지 말라고 한방 쏴주었다.

조사보고서도 《동향회》의 요구대로 정식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단장으로 갔던 권영호의 《국회》발표모임도 보장하여주었다.

권영호의 조사보고가 유격전구와 빨찌산에 대한 정계의 인식을 부드럽게 해주자 리승만이 의장이 떨떨해서 아이들의 놀음에 껴들어 짝짜궁이를 한다고 그냥 시비질했으나 《대통령도 좀 들어봐야 할 이야기요.》하고 거세게 반응하였다.

사실 해방지역들에서 인민위원회가 복구되고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원칙에 따라 토지개혁이 실시되고 무상치료, 무상교육이 보장되고 가렴잡세가 없어지는 등 착취제도가 페절되였다는 소식은 《국회》는 물론 처처에 신선하고 경이적인 충격을 주었다.

리승만은 권영호일행이 던진 파문이 점점 커가자 일체 신문, 방송에서 철저한 검열로써 소식전파를 차단하도록 하였다.

(음… 백범이 사려깊은 어른이야. 내 어찌 이 구차스러운 자리에서 인생말년토록 로심초사더냐.)

신익희는 지금 시들어가는 인생의 황혼을 내다보며 때없이 늙음에 대한 처량한 비애와 래일에 대한 불안에 젖어들었다.

때마침 문이 열리더니 서기가 들어와 《동향회》회장과 부회장들이 찾아왔다고 알렸다.

《〈동향회〉사람들이?…》

신익희는 신통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기별없이 뛰여든게 자못 궁금해서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일때문에 왔다는거냐?》

《모르겠습니다. 말씀 드릴게 있다고 합니다.》

《또 미군철거안이냐?》

《글쎄요.》

《들여보내.》

서기가 나가자 세 의원이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몸통이 실팍하고 눈에서 정기가 번쩍거리는 젊은이들이 들어서자 신익희는 정신이 번쩍 들어 반갑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들 지내오?… 뭘 또…〈국회〉문을 열 때가 돼오니 의장을 두드려팰 말거리 가지고왔는 모양이구만.》

신익희는 젊은이들의 례절있고 활기있는 인사에 다소 팽배해지던 속이 늦춰져서 롱조로 인사를 받았다.

《미국회에 대한 방문이 좌절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황철산에게서 이 소리가 나오자 신익희는 괜스레 승이 올라 골을 냈다.

《대통령이 돈을 안내겠다는구만. 그래도 나라의 〈국회〉의장이랍시고 명함장을 가지고있는데 이럴수 있는거요?》

신익희는 치밀어오르는 분기에 밭은 이마가 뻘겋게 달아올라 팩해서 소리질렀다.

《우리 〈동향회〉는 〈국회〉가 열리면 그 문제를 놓고 대통령을 탄핵하려고 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신익희의 눈이 안경속에서 홱 돌아갔다. 너무 어망차한 소리다.

《그렇습니다. 이건 〈국회〉의장에 대한 무시뿐아니라 〈국회〉에 대한 우롱이고 〈국회〉를 무어준 국민전체에 대한 도발입니다.》

《바로 그렇단 말이요. 민주국가에서 있을수 있는 일인가.》

황철산은 남조선을 《민주국가》로 자칭하는 신익희의 랑설에는 코웃음이 나갔지만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의장께서는 〈동향회〉의 결단에 동의하신다는겁니까?》

정색해서 들이대는 소리에 신익희는 신중해졌다.

그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을 잠시 굴리고 나서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젊은 의원님들의 생각이 참말로 가상하기 그지없네. 우리 〈국회〉에 그래도 자네들처럼 담대하고 지각있는 젊은이들이 있는게 다행일세그려. 그렇지만… 좀 더 지켜보세. 대통령탄핵은 작은 일이 아닐세.》

역시 담기가 여린 신익희다. 막상 그러라고 대답을 내리자니 가슴이 콩튀듯 해진것이다. 그는 량해를 구한다는듯 팔을 쩍 벌리고 멋적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좋습니다. 의장님 뜻을 따르기로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문제입니다. 부회장님께서 말씀하시겠습니다.》

황철산이 정중하게 김승원에게 말고삐를 넘겨주고 비켜섰다.

《자, 앉게나. 모두 앉아서 얘기를 하게.》

신익희가 제 먼저 자리에 앉으며 앉으라고 손세를 하였다.

김승원은 이제부터 자신이 앞장에 나서기로 결심하였다.

나라의 중대사가 걸려있는 투쟁에서 신변때문에 뒤전에 물러날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던것이다. 그의 결심은 정시명이 자기의 안전문제를 보류해줄것을 절절히 부탁하는 모습을 보면서 확고해졌다. 모두가 일선싸움에서 피 흘리고 쓰러지고 죽을 각오로 나서는데 선두부대의 지휘관으로 나선 자신의 안위부터 생각하는것이 죄악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처음부터 강하게 신익희를 다불리려고 잡도리하였다.

《전번〈국회〉에서 의장님은 우리 〈동향회〉에 유감스러운 처사를 보여주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해보십시오. 신의장님은 이 땅을 강점했던 왜군에 쫓겨 강을 건너 이국살이를 하신분입니다. 사람들은 왜놈들에게 의연한 자세를 보여준 신의장님을 존경했고 이렇게 큰 자리를 맡기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되신 일입니까? 그래 꼭 미군을 잡아두고 사는게 옳은것입니까?》

김승원이 미군철거문제를 꺼내자 신익희는 당황해하였다.

그는 건기침을 몇번 애햄-애햄-하고 깇고는 손부터 눈앞에 들고 홱홱 내둘렀다.

《이 사람아, 그건 딴 문제야. 성격이 다른 얘기야.》

《어째서 성격이 다른 얘기입니까? 왜군을 끌어들인 사람들은 지금도 을사오적으로 력사의 죄인취급을 당하고있습니다. 그래 미군주둔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뒤날에 력사가 어떤 평가를 내릴것 같습니까?》

《허허 참…》 신익희가 사개가 딱딱 물린 김승원의 공세에 쩔쩔 매다가 담배갑에서 담배대를 뽑아들더니 불을 켜댈 생각은 없이 입만 다시였다.

김승원이 성냥을 그어 그에게 내밀고는 말을 이었다.

《웃을게 못됩니다. 우린 전번에 상정시킨 결의안을 철회합니다.》

《그래?… 그거 생각 잘했네. 상정시켜야 패할거야.》

《그대신 이걸 상정시키렵니다. 좀 봐주십시오.》

《뭔데?》

《화평통일안입니다.》

《화평통일안?!》

신익희는 황철산이 정중히 내미는 문건봉투를 받아들더니 세 사람을 잠시 둘러보기만 하였다. 무슨 왕청같은 소리냐 하는 눈길이였다.

그는 돋보기를 걸고 문건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하였다.

다 보고 나자 문건을 쥔 손이 바르르 떨리였다.

《어떻습니까, 결의안의 취지가 마음에 드십니까? 저희들은 의장님의 견해부터 듣고싶습니다.》

이번에는 권영호가 따지는듯 한 기세로 묻자 신익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이야 이 나라 백성치고 이방무리를 몰아내고 나라를 평화적으로 통일하자는 소리에 반대할자 몇일고.》

《그런데 의장님께서 지금까지 철병안을 깔고있는 리유는 무엇입니까?》

《이 사람들아, 그걸 꼭 내 목소리로 뱉아놔야 되겠나. 〈국가보안법〉은 왜 통과시켰나? 그게 도대체 뭘 노리는거냐?》 신익희는 버럭 역증을 냈다.

《〈국가보안법〉과 〈철병안〉이 어떻게 련관이 되여있는지 모르겠군요.》

《뭘 모르겠다는건가?… 이 사람들 봐라. 자네들 눈에 좀이 쓸었기로 그게 리해가 안되다니?… 미군철거는 빨찌산이 들고있는 구호야.》

《빨찌산이요? 우리 조사단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시고도 그런 말씀인가요. 빨찌산이 하는 일 얼마나 장합니까.》 권영호는 그만 자제력을 잃고 울뚝해서 대들었다.

신익희는 권영호앞에서 맞받아 울화를 터뜨렸다.

《이보게 권의원, 내 자네들 조사보고서에 〈국회〉연단을 제공했다가 어떤 곤경에 빠졌는지 알고나 그 소린가. 미군철거는 북조선사람들도 들고나선 구호가 아닌가.》

《의장님, 참으로 답답합니다. 북조선사람들이 들고나선 구호라 해서 우리가 들지 못할 리유가 뭐입니까? 의장님은 북조선사람들이 아침저녁 먹는 밥은 어떻게 자십니까? 그걸 자실 때마다 〈보안법〉생각을 하십니까? 허참.》

권영호가 이렇게 걸고들다가 제스스로 어처구니없어 픽-웃고 말았다.

김승원도 황철산도 소리내여 웃고 말았다.

《이 사람들아, 〈보안법〉의 칼날이 뭘 겨냥하는지 탁 짚어줘야 되겠나. 리승만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을 노린단 말일세. 통일세력을 노린단 말일세.》

《〈보안법〉이 그걸 노린다면 그 법을 깨버려야 할게 아닙니까. 그거야 민족의 재결합을 막아나선 법이지요.》

《차, 이 사람들 점점 셈판없는 소리만 탕탕 하는구만. 그래 권군은 그 법이 당초에 그렇게 돼먹은걸 몰랐단 말인가?》

《알았다면야 깨버렸지요.》

《깨버리게, 깨버려. 난 뭐 반대가 없어. 그런데 왜 자넨 그때는 손을 들고나서다가 지금 와서 내앞에서 눈을 부라리는거야.  이거야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 대고 눈빠는 일 아니야.》

신익희는 화가 버럭버럭 나서 신경질적으로 맞받아 고래고래 소리지르다가 미구하여 입을 다물어버렸다. 지나친 흥분끝에 의장직분에 맞지 않는 소리를 해서 젊은이들에게 언질잡히는 노릇이 될가봐 걱정스러웠던것이다.

신익희는 꺼진 담배불을 붙여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신경질적으로 오락가락하다가 도로 제자리에 가서 담배불을 죽이였다.

《목건사들 잘하라구. 철병안문제가 보름전에도 론의가 있었네. 화평통일안으로 제목이 바뀌였지만 이것도 그 소리가 아닌가. 리승만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바늘귀만 한 틈새도 보이지 않네. 〈보안법〉을 휘둘러 딱딱 립건을 하라는거야. 리승만이 지금 안팎으로 몰리워있는데 마지막명줄인즉은 미군이야. 맥아더가 도꾜에서 리승만을 군력으로 버티여주고있다 그 말이야. 그러니 자네들 철병문제는 이 나라에 대한 미국의 명줄을 끊어놓는격이야. 허니깐 미국사람들도 이 문제에 한해서는 신경을 잔뜩 도사리고 리승만과 맥을 같이 하면서 바스락소리에도 눈알이 샛노래서 달려드는 판이야.》

신익희가 이렇게 연신 마른기침을 캥캥거리며 구차스러운 변명을 늘여놓고있는데 또다시 서기가 들어왔다.

《〈한독당〉위원장님께서 왕림하셨습니다.》

《뭐야. 두령이?… 백범이 여길 어떻게? 하 이걸 어떻게 한다?…》

신익희는 김구가 왔다는 소리에 황황해하면서도 한켠으로는 젊은 의원들의 성화에 벗어나는게 다행스러워 팔을 쩍 벌려보았다. 어서 자리를 파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김승원도 황철산도 벼락이 떨어져도 끔쩍 않고 끝장을 보고야 돌아가겠다는 배심이였다.

《나가서 말씀드리게. 응접실에서 잠시 다리쉼을 해달라구. 잠시면 되겠네.》

서기가 나가서 뭐라고 했는지 김구가 어험-하고 크게 기척을 내며 들어섰다.

그 뒤로 길게 채수염을 드리운 수염쟁이 한사람이 따라들어온다.

신익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로 마중나가며 인사를 하였다.

《그동안 귀체건강하셨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두령께서 여길 다…》

《허허… 신의장, 신색이 좋아지는구려. 〈국회〉의장 공관에 들어섰은즉 이 백범도 공사에 나선지라… 뭐 백범이 문턱 넘어서지 못할 곳이야 아닐테지.… 해공, 그간 무고하셨소?》 해공이란 신익희의 호였다.

김구는 이렇게 사뭇 장쾌하게 인사를 받으며 웃었다. 그는 처음 들어선 의장사무실을 호기심이 나서 둘러보다가 젊은 의원들의 인사를 받자 반색을 하였다. 그리고는 달고온 수염쟁이를 신익희에게 정중하게 소개하였다.

《이보게 모르겠나? 관내에서 우리 〈림정〉을 각근히 돌봐주시던 판사처장 정향선생이시네.》

《해공선생님, 참으로 오래간만입니다. 나라의 중임을 맡고 계시니 저도 기쁩니다.》

《아, 정처장선생, 이거 정말 반갑소이다. 일전에 기업일에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소이다.》 정시명과 신익희가 반갑게 손을 잡고 흔들며 인사를 나누었다.

《어서 말씀을 하십시오. 우리가 때아닌 때 찾아온것 같습니다.》

《아, 아니 일없소이다. 뭐 〈국회〉의장자리야 이러루한 치닥거리 맡아보는 자리지요. 백범선생, 어서 편히 앉으십쇼. 처장선생도 어서…》

신익희는 그들이 자리에 앉자 천천히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김구는 잠시 방안의 분위기를 파악하려고 마주앉은 상대방들의 눈치를 보다가 《어서 말씀들 나누시오. 우리야 소일거리에 묻혀있는 사람들이라 긴한 일 있는건 아니요. 우린 예서 기다릴터이니 어서 얘기들 나누시오.》하고 비위살좋게 늘어붙는다.

신익희는 하는수없이 싫던좋던 다시 〈동향회〉간부들과의 언쟁을 벌려놓는수밖에 없었다.

《그럼 잠간만 기다려주십시오.》

《신의장님, 뭐 길게 대답해주실게 없습니다. 며칠후에 열리는 〈국회〉안건으로 이걸 상정시켜주시겠는가 하는겁니다.》

김승원이 김구를 앞세우고 정시명이 나타나는바람에 눈앞이 아뜩해졌으나 이내 수습을 하고 다시 례사스러운 어조로 그물코를 한코두코 죄이기 시작하였다.

《하 참!…》 신익희는 딱한 표정으로 구원을 바라듯 김구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어째 신의장얼굴이 번열증에 걸린 사람모양이요?… 이보게 젊은이들, 나든 사람 너무 몰아대지 말게.》

김구가 젊은이들쪽으로 눈을 장난스레 끔쩍해보이고는 정색해서 말을 이었다.

《음, 의장의 딱한 사정 내 알듯 싶네. 자네들 철병안을 이번 〈국회〉에 다시 상정시키겠다는거겠다?》

《예, 이번에는 화평통일안을 제기하렵니다. 미군을 철거시키고 평화적으로…》

《화평통일?… 거 듣기 썩 좋다. 나라를 싸움없이 통일하자고 하면 누가 도리질을 할고… 그런데?… 신의장의 딱한 얼굴 보아하니 상정시키는게 어렵다는 그거요?》

신익희가 이제야 손을 내밀 구원자를 만난듯 싶어 죽을상을 해가지고 넌떡 김구의 말을 받았다.

《백범선생, 좀 말씀해주시오. 젊은 혈기 부럽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런 땐 쥐구멍이라도 기여들 판이지요.》

《뭘 궁색해서 그러는가. 한 나라 〈국회〉의 주인이라는게 소신껏 정치를 펴지 못한다면 도대체 이 나라의 민심을 대표한다는 말 헛말이 아닐가. 그래 신의장은 저 사람들 제안이 어떠하시오?》

《뭐 거야 물으실게 있습니까.》

《나도 좀 보세.》

신익희가 김구에게 문건을 가져다주었다.

김구는 연방 《그렇지!… 그렇구 말구!…》하고 탄사를 거듭하며 읽었다.

김구는 정시명에게 문건을 넘겨주고는 신익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면야 좋은 일일세. 그런데 신의장이 이걸 놓고 두말인가?》

김구는 젊은이들처럼 후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나더니 신익희한테로 갔다.

그리고는 그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서서 나직이 고함을 질렀다.

《이보게, 신의장. 자네 일어나게.》

《예?》 신익희가 무슨 일인지 몰라하면서도 방안을 저력있게 울리는 호령소리에 놀라 추상같은 령감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엉거주춤히 일어났다.

《이보게 회장, 이리 오라구!》 김구는 황철산을 손짓으로 불렀다.

《예?》 황철산도 김구의 뜻밖의 호령에 놀라 영문을 모르면서도 그에게로 다가갔다.

《회장이 이리 앉게.》

황철산이 김구의 엄엄한 호령에 위압되여 신익희의 량수걸이걸상에 앉았다.

정시명은 성이 천둥같이 난 김구의 얼굴과 때없이 방안을 쩌렁 울리는 호령질에 아연해졌다. 둘이 신의장을 찾아와서 차분하게 설복하자고 의논이 됐는데 이건 몇마디안팎에 호령이다. 정시명은 아니아니한 심정이 되여 일을 그르칠가봐 김구의 일거일동을 념려스럽게 지켜보았다. 《림정》시절에 저렇게 뚝심으로 가닥많고 성깔드센 숱한 부하식솔들을 거느렸을것이라고 생각하니 호기심도 났다.

오늘 정시명은 새로운 투쟁의 첫 관문을 열어놓는 이 자리에 홀로 와서 김승원일행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때마침 안지생의 안내로 찾아온 김구가 례영에게서 《국회》쪽에 간다는 소리를 듣고 따라나섰다. 신익희의 사람됨을 자기가 알고 그를 움직이는 비법도 안다는것이였다.

정시명이 막아나서자 오히려 제쪽에서 오늘 일은 저한테 맡겨놓고 눈과 귀가 밝은 그곳에 나서지 말라고 만류하였다.

끝내 둘이 함께 가서 여사여사하게 지원포를 잘 쏴주자고 의논이 되였다.

그런데 김구가 돌발적으로 의장을 감히 걸상에서 들어내고 황철산을 앉혀놓으니 변고였다. 그러나 사람들앞이라 정시명이 나서서 김구를 달래는수도 없어 케를 지켜보는수밖에 없었다.

김구가 연방 뾰족한 지팽이끝으로 대우를 반짝반짝 낸 마루바닥을 짓쪼으며 바람을 일구는통에 신익희는 완전히 우거지상이 되고 말았다.

김구는 의장걸상에 까닭모르고 허리를 쭉 펴고앉은 황철산의 름름한 모습과 그옆에 제 걸상에서 쫓겨나 물에 빠진 생쥐모양으로 어깨를 늘어뜨리고 한풀 죽어 서있는 신익희를 보더니 한바탕 방안이 떠나갈듯 폭소를 터뜨려놓았다. 그리고는 나들문쪽으로 뒤뚱거리며 걸어가 문손잡이를 잡더니 호령기있는 목소리로 또 호통을 쳤다.

《해공, 이놈! 저 모양새 봐라. 보기가 좋지? 세월이 흐르면 떡잎은 지고 새이파리 돋는건 자연의 순리라… 거 그렇게 서고 앉으니 볼 모양새 있어. 자네 저 사람들한테 자릴 내주고 뜨끈한 아래목이나 지키는게 어떤가. 〈5. 10단선〉이 불법무법이기는 하지만 이왕 물건짝이 됐으니 어쩌겠나. 〈국회〉란 하여간 국민의 총의를 모으는 마당이 아니런가. 헌데 일개인의 생명이 그렇게도 아까와 민심에 반의된다면 자네 자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상해에선 그래도 뼈대가 든든한것 같아 내 익히 지기로 두고 지내온 해공이 어이 서울에 와서 이리도 속대가 물러지고 이 눈치, 저 눈치에 쪽을 쓰지 못하고 사오?》

신익희가 김구가 마구 휘둘러대는 매질에 말 한마디 못하다가 그에게로 다가가 문을 막아나섰다. 그리고는 그를 쳐다보며 또 캥캥 기침을 하고 나서 목이 터진 쉰 소리를 냈다.

《두령, 너무 날 몰아대지 마오. 매라는 놈 꿩을 잡아주고싶어 잡는가요, 좀 공인의 처지를 두루 살펴주소.》

《뭐라구? 이왕 지사 말 꺼낸김에 한마디 더하세. 전일에 신문에 난 〈국회〉개회사를 보니 신의장이 리승만의 한생이 독립운동과 나라 세우기로 일관되였다고 개올리던데 그래 그것도 고양이앞에서 뒤걸음질치는거라는거요? 리승만이 어떻게 항일운동선각자요? 리승만이 한일협약이 맺어질 때 거리에 떨쳐나선 수백만 애국지사들을 비웃고 장인환렬사가 쌘프란시스꼬에서 왜놈들과 내통한 미국고문 스티븐스를 제껴버렸을 때 변호통역마저 거절했다는걸 그리고 가는 곳마다에 분렬이요 집안싸움이요 몰고다닌걸 그래 신의장은 모른단 말이요? 난 단언하오. 리승만의 〈독립운동〉과 〈건국운동〉은 권력을 위한 놀음이였다구 말이요. 그건 그거구 해공, 똑똑히 밝혀두오. 이 결의안을 보니 내 소견에도 애국의 발기요, 국민의 요청이 분명한즉 그를 막아나서면 이 백범은 단연코 용서치 않을테요. 수능재주 능복조란 말 자네도 알겠지?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질러놓기도 한다는걸 알아야 해. 리승만의 턱밑에서 알랑거리며 민심을 우습게 알았다가 인생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구. 비켜서게. 난 가겠네.》

김구는 노성을 터뜨려놓고는 막아나선 신익희를 밀치고 개화장을 휘두르며 나가버렸다.

《아, 두령!》

신익희가 쫓아나가다가 나들문이 닫기자 그앞에서 굳어진듯 발을 세웠고 정시명도 잠자코 있다가 신익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방을 나서려고 걸음을 옮겼다. 자기도 신익희에게 여러가지로 타이를 심산이였는데 김구가 하고싶은 말 다 던져놓으니 더 얘기할것도 없었다.

《정향처장, 이거 면목이 없소. 모처럼 오셨는데 내라는 사람 이런 망신꼴을 보였으니…》

신익희는 정말 모처럼 찾아온 정시명앞에서 졸경을 치른게 어색하기도 하고 몸처신이 거북해서 말끝을 얼버무렸다.

정시명은 그 모양이 자못 처량한데가 있어 문고리를 쥐다 말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신익희의 싸늘한 손을 잡았다.

《해공, 망신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라정사를 주관하는 자리에 있으니 바른 충언을 한마디 접한것으로 생각하십시오.》

《고맙소, 정처장. 그래 정처장도 이 일때문에 오셨소?》

신익희는 정시명에게서라도 그 어떤 따뜻한 말을 듣고싶은듯 그의 손을 마주잡고 놓아주지 않으며 말을 걸었다.

정시명은 저으기 처져내린 신익희의 어깨를 측은하게 보다가 대답했다.

《예, 나도 해공이 지금 어떤 복잡한 처지에 있는가 가히 리해는 됩니다. 그렇지만 만가지를 젖혀놓고 독립일념으로 달음질해온 평생을 어지럽히는 일만은 피해야 될줄로 압니다. 우리네의 한생이란 기껏해야 륙칠십이지만 이 나라의 력사는 영원합니다.

난 해공이 후손들에게 리승만의 친구로 전해질가봐 걱정스럽습니다. 리승만으로 말할진대 옛적얘기는 말고라도 만고역적으로 되였다는걸 난 분명하게 말해주고싶습니다.》

정시명의 이야기는 담담했으나 근엄하게 방안을 흔들었다. 정시명은 뒤에 서있는 젊은 의원들에게로 돌아서서 신뢰와 기대가 어린 눈길을 말없이 보내고는 방을 나섰다.

《국회》청사정문에서는 사복을 차려입은 김아성이 례영과 함께 자동차에서 긴장한 모습으로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은 안지생에게서 단단히 주의를 받은지라 사실 오늘 걸음을 힘들게 하여왔다. 그런데 별일없이 정시명과 김구가 나타나자 숨을 내쉬며 발동부터 걸었다.

《마음을 놓으시우. 신익희 저 사람이 약삭바른 사람이니 저쯤 둔장질해놓으면 뭐 생각하는게 있을거웨다.》

자동차가 떠나자 김구가 자신있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백범선생님.》

《고맙긴 원,… 이게 어찌 정선생 한분 소관할 일이요. 백범의 호령 산하를 움직였노라 대포질하는놈도 많았는데 산하는 몰라도 저 친구는 돌려세울거요. 마음을 놓으시우. 그래도 고집이면 한번 불러다놓고 주리라도 틀어야지.》

그러면서 김구는 허허- 하고 턱을 쳐들고 즐겁게 웃었다.

《내가 저 사람 놓고 크게 잘못한게 하나 있소. 그게 뭔고 하니 지난해 봄에 저 사람도 달구가서 평양구경 시켜야 되는건데…  난 사실 저 사람이 〈반공련맹〉회장이라 평양사람들이 문열어주겠는가 걱정했는데 내가 공연한 걱정에 발목잡혀 저 사람 저 꼴로 되게 하였지요.》

김구가 정색을 하고 자못 랑패스러워 하였다.

《예, 저도 그 생각입니다.》

《김장군님을 뵙고 나면 앞이 훤히 틔여서 저 사람이 이런 때 자리지킴을 잘해주련만…》

《예, 그러니 선생님께서 수하분들 잘 신칙해주십시오.

어쩌겠습니까. 나라를 통일하고 완전독립 성취하는게 일조일석에 이루어질것도 아니고 식은죽먹기로 땀들이지 않고 매듭질 일도 아닌것 같습니다.

해공도 잘 도와 나라에 공을 세우도록 합시다.

각자가 다 나름으로의 성의를 모아가도록 도와가느라면 좀 더디더라도 통일국가를 세우게 될것입니다.》

《옳은 말씀일세.》

김구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는 정시명의 말의 의미를 곱씹다가 《그래, 그렇구말구…》하고 입소리로 중얼거리였다. 만날수록 눈물겹게 아름답게만 비껴드는 이네들의 애국의 세계에 자기의 여생을 다 맡겨가리라는 생각이 더욱 사무쳐들었다.

김구가 된서리를 뿌려놓고 나간 신익희의 사무실은 한동안 썰렁한 기운이 돌았다.

김승원이 김구가 나간 나들문을 아직도 얼빠진 사람처럼 멍청해서 바라보고있는 신익희의 앞으로 다가갔다.

《어서 자리에 가십시오. 백성의 목소리로 생각하고 아량을 가지고 받아주십시오.》

김승원은 이렇게 잔뜩 얼어든 그의 마음을 각근히 풀어주느라고 위로하였다.

신익희는 그냥 한자리에 못박힌듯 굳어져서 김승원의 말을 듣는둥마는둥하였다.

황철산과 권영호도 그의 앞으로 다가와 팔을 잡아끌었다.

《어서 가서 자기 자리를 지키십시오. 국민의 바람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저희들도 크게 깨닫는바가 있습니다.》

《어서 가십시오. 선배들이 없는 후배가 어디 있겠습니까. 항일독립운동선배들은 우리의 자랑이고 모범입니다. 잘 이끌어주십시오. 그리고 저희들은 선배님들이 끝까지 독립운동가의 기개를 변치 않을것을 바랍니다.》

젊은 의원들의 고무에 신익희는 그제야 그들에게로 고개를 돌려 한명한명 정을 담아 지켜보다가 자기 자리에로 힘들게 걸어갔다. 그는 자기 걸상에 맥이 진한듯 힘없이 주저앉았다. 잠시 무표정한 눈으로 천정의 한점을 올려다보다가 그것도 귀찮은듯 눈을 스르르 감아버리였다. 좁은 이마에 서늘한 땀발이 내돋는것이 느껴졌다. 그는 혼자있고 싶었다. 젊은 사람들앞에서 망신을 당하였고 한마디의 항변도 못하였다는 수치감으로 그냥 속이 울떡거리였다.

그러나 김구가 던지고간 그 채찍소리같은 욕설이 다시 고막을 찡찡 울리며 요새 그러지 않아도 종잡기 힘들어지는 속을 마구 들쑤셔놓았다.

김구의 말은 그 어느 마디도 물고늘어질게 없이 바르고 정직하고 사심이 없다.

광복후 서울에 와서 권력쟁탈전에 뛰여든 이래 미군정이라는 새로운 외세에 추파를 던지면서 리승만쪽으로 서서히 기울어져온 지난 네해의 정치행적이 돌이켜졌다. 어쩐지 자기도 딱히 이름지을수 없는 그 어떤 실체가 명백치 않은 마술력에 끌려들어 살아온것만 같다. 《대한국민당》을 부랴부랴 조직하고 이어 《반공련맹》이라는 각설이떼들의 모임에 참여하여 하지와 리승만의 권고로 그 회장노릇을 맡게 되였는데 애당초 북을 반대해야 할 그 무슨 옥맺힌 한이 있는것은 아니요, 그들의 리론이 구태여 자기 한생의 뜻과 부딪친 그리고 타파되여야 할 장애물로 될것도 아니다. 미국놈들과 손을 잡아야 광복된 조국에 와서 대권을 바라볼수 있으며 미국의 힘을 빌리려면 어차피 리승만과 제휴하고 반공이라는 패쪽을 들어야겠다는 정치적리해관계때문이였다.

일은 야심대로 곡절없이, 거침없이 돼왔다. 김구, 김규식이 련북으로 기울어져 우익권에 큰 자리가 비자 신익희의 지위는 뛰여오르고 립법권의 최고권력자인 《국회》의장자리도 무난하게 호박처럼 굴러들었다. 그런데 막상 나라정사를 한해가까이 주관하여보니 섶을 지고 불속에 뛰여든 기분을 덜수 없다. 권세를 위해 보다 큰 힘에 의지한다는것이 참말로 자기 인생을 늙마에 와서 어지럽히는 부질없고 너절한 짓이라는 후회가 나날이 짙어갔다.

미국이 하는 짓을 보면 이 나라를 위한 성의라곤 꼬물만치도 없고 리승만을 쳐다봐야 민족의 전도에 대한 책임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때는 해종일 내키지 않는 직무에 시달리다가도 너렁청한 의장실에 홀로 앉아 《내가 지금 뭘 위해 이 짓거리하노?》하고 처량한 생각이 들면 자신에 대한 환멸과 수치감으로 얼굴이 뜨끈뜨끈해오고 겁이 난다. 그래 그들로부터 벌써부터 발을 뽑고 서서히 그들과의 간격을 넓히려고 왼심을 써오지만 미국놈들과 리승만은 나날이 자기의 숨통을 꽉 그러쥐고 더 바싹 죄이고있다.

정말 백범말대로 리승만을 따라 민심을 우습게 알았다가 항일운동에 나섰던 과거는 고사하고 인생을 그르치게 될것이 아닐가.

아니, 이 해공은 그렇게 되지는 않을거다.… 신익희의 이러한 번민과 우유부단, 동요는 이때로부터 6년후 리승만의 적수가 되여 《대통령》후보로 나섰다가 리승만일파의 음모에 걸려 《선거유세》중도에 렬차안에서 급사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래, 이 해공이 우남 (리승만의 호)의 시녀가 될수 있느냐.)

신익희는 드디여 결단을 내린듯 눈을 번쩍 뜨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인내오.》

황철산이 얼른 그에게 문건을 내밀었다.

신익희는 돋보기를 바꿔 끼고 한눈으로 쭉 훑더니 다소 꺼져든 어조로 물었다.

《그래 몇이나 되오?》

문건발기자가 몇이나 되는가 하는 소리였다.

《일흔세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뭣이, 일흔세명?!… 아니 서른이나 늘어났단 말이요.》

신익희는 눈이 우멍해졌다.

《네, 뭐 좋은 일이라고 따라서는 의원님들이 많습니다.》

《그래 그럴테지. 나라를 화평통일하려는게 실상 뜻이야 얼마나 좋은가. 후-참…》 신익희는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그 한숨에 권력자의 입김에 눌리워 량심의 지평을 선뜻 따르지 못하는 고뇌와 울분이 서려있다. 그는 다시 문건에 고개를 박고 문구들을 더듬었다.

《〈국회〉의 3분의 1을 넘은 수자구만. 그렇다면 해보라구. 결의안을 정리해서 발기인들의 수표를 받아오오.》

《의장님도 우리의 뜻에 시종일관해주시기 바랍니다.》

《거야… 아무튼 빨리 보내오오. 그런데 조용히 일을 서두르시오. 그쪽에서 꾸미는 일들이 너무 빨리 새여나오는것 같거든. 집안단속 잘하라구.》

《고맙습니다, 의장님!》 김승원이 그에게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두손을 움켜잡았다.

그들은 저마끔 신익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가슴을 쭉 펴고 의장실을 나섰다.

정시명과 김구가 때를 맞춰 달려와 신익희를 움직여준것이 다행이였다.

권영호, 황철산이 그 소릴 하면서 참 요긴한 때 요긴한 도움을 받았다고 좋아하였다.

그러나 김승원은 그 소리가 가슴에 얼얼하게 파고드는듯 싶었다. 자기가 제 구실 못하여 정선생이 온통 그러안고 뛰게 하지 않는가. 더구나 반동의 소굴인 《국회》청사에 그가 나타나게 했다고 생각하니 여러 전우들앞에서 죄를 짓는것만 같았다.

《흥국상회》모임에서 안지생이 불안해서 들려주던 이야기들이 가슴을 토막치듯 다시 들려왔다.

《에잇, 내라는 사람 언제면 제 구실을 바로 해낼가.》

그는 전우들앞에 나선 심정으로 자기를 질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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