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영원한 사랑의 찬가

1

 

권영호가 경찰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알아온것은 례영이였다.

례영이는 서울안의 어느 동에 올케의 친정이 있다고 하던 혜숙의 소리를 생각해내고 끝내 주소를 찾아내여 그 집으로 갔다.

마침 권영호의 장모를 만났는데 권영호의 소식을 묻자 울상이 되여 《그 사람이 새벽에 수면제를 먹고 죽는다고 소동을 피워 지금 시경찰병원에 실려갔다.》고 대답하였다.

그다음에야 처음보는 녀자에게 상당한 실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씨는 어데서 온 누구요?》하고 의심쩍은 소리로 물었다.

례영이는 그의 의심을 풀어주느라고 《국회》사무국에서 일보는데 출석하지 않아서 알아보러 왔다고 루루이 설명하였다.

정시명은 례영의 말을 듣고나서 인차 병원으로 가야겠다고 서둘렀다.

민순임더러는 병문안 갈 차비를 하라고 시장에 내보냈다.

례영이가 안지생에게 알리고저 하니 경찰병원에 가는 일인데 소동을 피우지 말고 조용히 갔다오자고 말렸다.

그리고는 아성에게 알려 자동차만 보내달라고 하였다.

김아성이 따라나섰으나 그도 따라오지 못하게 하였다. 아무튼 경찰병원에 경무대 경찰관이 금줄 두른 둥글모 쓰고 나타나는것이 여러모로 재미없다는것이였다.

정시명부부와 례영이만 자동차를 타고 떠났다.

그런데 그들이 서울대교를 건너 금호동쪽으로 달릴 때였다.

후사경으로 한대의 택시가 뒤따르고있는것이 보였다.

례영이 자꾸만 후사경으로 눈길을 돌리자 정시명도 지켜보다가 한마디 하였다.

《저눔들이 우리 뒤를 따르는가 보다.》

《그래요, 아버님.》

《속도를 늦춰봐라. 어떤 놈들인지 보자꾸나.》

례영이는 속도를 죽이였다. 택시와의 간격이 좁혀지자 운전사옆에 앉아있는 경찰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가만있자. 저놈이 낯이 익군. …례영아, 생각이 안나느냐?》

《예, 생각납니다. 어마나, 리창순! 곰보딱지! 리창순입니다. 저 사람이 경찰복을 입었군요.》

《속도를 높여라. 저눔이 까마귀가 되였군. 그렇게 될줄을 알았다. 저놈두 500만원을 꿀꺽 삼킬 욕심이 발동됐나 보다. 허허, 참…》

정시명은 쓰겁게 웃었다.

《아버지, 제가 내리겠습니다. 저 사람을 달고서야 경찰병원에 갈수 없잖나요.》

《네가 내리면 어떻게 한단 말이냐. 시가지에 도로 깊숙이 끌고가서 따돌려보자꾸나. 내가 몰가?》

《아니, 아버님. 이왕 이렇게 된바에는 저놈과 한번 맞서보는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어째서 따르는지 혹 알겠습니까? 문진국선생같은 사람일지.》

《저 사람은 열번 죽었다 살아나두 사람구실할 사람이 못돼.》

《그러면…》 례영은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였다. 아버지얼굴을 저놈에게 로출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의 목에 500만원의 현상금이 붙어있는걸 례영이는 잘 알고있었다.

문진국이 전하던 이야기가 되살아났다.

《흥국상회》회장 정향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문진국이 보고하니 내무장관 윤치영이 정향이 틀림없이 정시명과 련결되여 있는것 같다고 말했다 한다. 제주도와 려수항쟁의 배후에도 분명 그의 줄이 뻗친것 같은데 은밀히 내사하라고 지시했다고 하니 저놈도 그렇게 움직이는 놈일수도 있다.

《아버지, 제가 내리겠습니다.》 례영이 결심이 된듯 차를 급정거하였다.

례영이가 당돌하게 나서는것이 의젓하기 그지없어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려고 하는데 민순임이 기겁해서 막아나섰다.

《어이구 얘야, 너 어벌통이 크게 어쩌자구 그러니. 무슨 봉변당하자구 경찰과 맞서자는거냐. 아서라, 내리지 말아. 어서 떠나자. 저눔 차가 가까이 왔다.》

그러나 례영은 벌써 문을 열고 날렵하게 뛰여내렸다.

《아버지, 떠나세요. 제 걱정은 마시고요. 어머니 안녕!》 례영은 생긋 웃어보이기까지 하며 자신만만하게 길옆으로 비켜섰다.

《얘얘… 저게 일 칠라구… 이보세요. 어쩌실라고 저걸 남겨두고 떠난단 말인가요.》 민순임이 여전히 덴겁을 하며 그 큰 눈을 슴벅거리며 례영이 자리를 뜨는것이 급해져서 밭은 소리를 냈다.

《허허… 례영이를 소학생취급 마오. 제 생각이 어련하지 않을라구. 자, 우린 떠납시다. 무슨 궁냥이 있겠지.》

정시명도 안해의 불안을 달래여주느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례영아, 서선생댁으로 오너라. 오늘부터 그쪽에 다시 옮겨앉으라고 안선생이 지시하더라.》하고는 자동차를 몰아갔다.

《얘, 엇서지 말아.》 민순임이 차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는 정시명에게 《이봐요. 아니 이렇게 우리끼리 훌쩍 떠나면 저 앤 어떻게 해요. 제까짓게 무슨 궁냥이 있겠다구…》하고 불안스러워 안절부절한다.

《허허허…》 정시명이 크게 소리내여 웃기만 하였다.

자동차는 금호동의 언덕길을 살같이 넘어 경찰병원이 자리잡은 수림속으로 접어들었다.

택시는 례영이 오연한 자세로 서있는 길가에 와서 박히듯 멈춰섰다.

문이 열리더니 별 세알을 어깨에 올려놓은 리창순이 내렸다. 어디서 한잔하고 왔는지 마마자국이 벌집처럼 송송 난 얽음뱅이화상이 온통 뻘겋다. 가까이 다가서자 술냄새가 확 끼쳤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경찰이 됐군요. 쏘련대표부에 들락날락하신다기에 공산당줄에서 한자리 하시는가 했더니…》

례영이 고개를 갑삭하고나서 싸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네 례영이 옳구나.…》 리창순은 례영의 인사말에 조롱기가 어렸으나 능글맞게 웃으며 다가섰다.

《그사이 네가 퍽 이뻐졌구나. 그래 어떻게 지내느냐?》

리창순은 뒤쫓아오던 자세와는 달리 팥알이 배길만 한 구멍이 패워있는 개발코를 벌름거리며 다소 오금이 저려 이렇게 물었다. 막상 례영이 만나고보니 감히 거칠게 대할수는 없는 모양이였다.

리창순은 지난해 여름에 쏘련대표부에 드나들다가 경찰에 끌려간 후 전향서를 쓰고 풀려나왔다.

그놈은 처가권속을 다시 거느리고 고향인 강릉에 내려가서 경찰서에 들어갔다가 얼마전에 정시명에 대한 전국적인 수배령이 내리고 그에게 500만원이라는 사상최대의 현상금이 붙었다는 경찰공시문을 보고 서울에 올라왔다.

이 더러운 배신자는 서울경찰청 부청장 최운하를 찾아가 제가 정향을 잘 알고있노라고 하면서 잡아내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심양에서부터 함께 지내온 이야기를 듣고난 최운하는 서울에 양옥 한채를 선불로 줄터이니 아예 가족을 데리고와서 정향만 잡아내라고 하였다.

그게 벌써 두달전 일이다. 그놈은 정향의 향방을 수소문하며 서울시안을 삽살개처럼 싸다녔으나 그를 찾아낼수 없었다. 그러다가 오늘 낮에 도서관앞을 지나다가 어떤 수염쟁이와 그의 마누라인듯 한 녀인과 함께 례영이 자동차에 오르는것을 보았다.

리창순은 곧장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뒤따라 왔다.

《그래 너의 양부는 어디 계시냐?》

《글쎄요.》

《글쎄라니?》

《갈라졌지요.》

《갈라지다니?… 그건 어째서?》

《나라구 뭐 아버님께 일생 얹혀살겠어요. 지난해 시집을 갔지요.》

《오라, 그러고보니 머리모양새가 달라졌구나. 이자 함께 타고온 수염쟁이는 누구냐?》

《우리 시부모들이죠.》

《시부모들이라구?… 시댁은 어디에 있지?》

《왜 시끄럽게 굴어요? 아저씨가 정향아버님 찾는 리유는 뭐예요?》

《네가 알 필요가 없다. 어디 거처하느냐? 양아버지 어디 사는지 모른다는게 말이 되느냐? 넌 나와 함께 경찰서로 가야겠다.》

얽음뱅이상통이 가까이 대들자 례영은 뒤로 물러났다. 그는 길가에서 벗어나 몇걸음 옮기다가 쏘아붙였다.

《흥! 별꼴 다 보는군요. 난 아버지가 어디 계신지 모르지만 알아도 당신같은 사람에게 대주지 않겠어요. 뭐 듣자니 경찰에서 500만원까지 걸어놓고 아버질 찾는다지요? 아버님은 서울 와서 〈흥국상사〉를 꾸리고 천장사밖에 한게 없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네가 뭘 안다구 그래. 정향이 제주도와 려수폭동을 뒤에서 지휘했다는거야. 경찰이 그 사람 몸값 500만으로 매겨놓은게 괜한 일인줄 알아.》

《흥, 그러니 숨어다니지요. 아저씨도 그 500만원 챙길 생각을 했나요?》

《하여튼 경찰에 가자. 거기 가서 말해보자.》

《시끄럽게 구네. 죄없는 사람 잡아가는게 경찰인가요. 난 안가요.》

《안가?… 그렇게는 안될걸.》

《안간다면 안가는거지. 안간다면 어쩔테야요.》

《끌고갈터이다.》

어리어리해보이던 얽음뱅이눈이 괭이눈처럼 매서워졌다.

《흥, 아버님이 직업까지 마련해주고 가족들이 살도록 집까지 구해주셨는데 당신은 은혜를 악으로 갚는군요.》

《나도 살아야겠으니 별수 없다. 네가 정 버티면 수갑을 채우고 말테다.》

리창순은 이렇게 너털거리며 수갑을 례영의 눈앞에서 절커덕거리였다.

《너절한 놈!》

《이년이!》

리창순은 드디여 경찰본색을 드러냈다. 그놈은 괴춤에서 권총까지 뽑아들었다. 얽음뱅이는 마마자국마다 정이 차있다는데 이놈은 구멍마다 야심과 살기가 옹쳐서 번뜩거리였다.

례영은 그 얼굴에서 풍기는 술냄새까지 맡자니 역기가 톺아올랐다.

이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수 없다는것을 판단하자 《좋아요, 경찰서로 가자요.》하고 앞에 서서 택시에 다가갔다.

그제야 리창순은 마음이 놓이는지 권총을 괴춤에 집어넣고는 《어이, 운전사, 서울경찰본부로!》하고 호기있게 명령했다.

운전사는 애젊은 미인을 나꾸어가지고 가는 곰보딱지경찰을 흘끔 쏘아보고는 리창순의 눈이 다시 번뜩거리자 하는수없이 발동을 걸었다.

례영은 절대로 경찰서에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경찰서에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곤경에 빠질것은 뻔하다. 그곳에서 무난하게 풀려나오리라는 담보는 하나도 없다.

자동차는 금호동으로 향한 굽인돌이에서 돌아서려고 정차했다.

례영은 결심이 서자 《운전사아저씨, 차를 곧바로 몰아줘요.》하고 부탁했다.

그 소리에 리창순이 고함을 질렀다.

《안돼! 차를 돌려! 경찰본부로!》

《시집에 가서 경찰에 잡혀간다고 말해야겠어요.》

《그건 내가 알려주지. 시집이 정말 있다면…》

리창순이 흉물스럽게 느물거리였다.

례영은 이제는 더는 피해설 길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놈과 대결하는수밖에 없다.

례영은 바르르 떨리는 입술을 박씨같은 앞이로 잘근잘근 깨물다가 이제껏 소중히 건사해왔던 권총을 꺼내들었다.

《이년이?!… 그렇댔구나!》 리창순은 자기 이마를 겨누는 장난감같이 앙증하게 생긴 쇠붙이를 보자 눈이 뒤집혀졌다.

《그 총 내리지 못해!》 그놈은 겁에 질려 소리쳤다. 리창순은 설마하고 생각했던지 한손으로는 권총잡은 례영의 손목을 치고 다른 손은 권총을 꼬나들려고 했다.

그 순간 《땅!》하고 야무진 총소리가 나더니 화약내가 자동차안을 채웠다.

례영이 난생 처음 울리는 총성이였다. 쓰러진 아버지뒤를 이어 정시명의 손길에 이끌려 애국의 길에 나선 이 나라의 순진무구한 녀인이 혁명과 조국을 지켜 서울에서 울린 첫 총성이였다.

리창순은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하며 고개를 꺾어질듯 푹 떨구었다.

벌어진 일앞에서 떨떨해있던 운전사는 다시 시동을 걸고 례영이 시키는대로 금호동쪽을 향해 앞으로 휭하니 몰아갔다.

그러면서 례영이 권총을 쳐들고 그앞에서 우쭐대던 경찰관이 매본 까투리처럼 상통을 틀어박고있는것이 통쾌하고 희한스러워 차안의 거울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벙글거리였다.

례영은 금호동언덕의 수림속으로 자동차를 꺾어들게 하였다.

자동차는 밑둥이 굵고 밋밋한 로송들이 빼곡이 들어찬 등성이에서 멎었다.

《내려요!》

례영이는 다기찬 어조로 명령했다. 하냥꽃 같은 미소가 남실거리던 아름다운 두눈이 야멸차게 반짝거리였다.

하지만 가슴이 콩새처럼 달달 떨리고 권총손잡이를 잡은 손에 너무 힘을 주어 총구가 아래우로 흔들렸다.

리창순은 여전히 자기의 옆구리에서 위태롭게 떨고있는 총부리를 두눈이 휑해서 지켜보다가 엉거주춤이 자리에서 일어나 넋이 나가서 자동차에서 내려섰다.

《어쩔테야?》 얽음뱅이는 벌써 열받은 엿가락처럼 노근노근해져가지고 겁에 질려 물었다.

《총을 내놓아요!》

리창순이 얼른 괴춤에서 권총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운전사가 례영이 맵짜게 다불리고 그앞에서 리창순이 꼼짝 못하고 쩔쩔매는게 가관이여서 벙글거리였다.

《똑똑히 들어요. 이 길로 서울에서 사라져요. 우리 아버님이 아저씨에게 해주신 일들중에서 해되는게 뭐예요? 하나도 없지요?》

《예, 예, 없구말구. 내 죽을 죄를 지었다.》

리창순은 종전의 표독스럽던 성깔은 언제였던가 싶게 허리를 연신 굽석거리였다. 우선 총구앞에서 피해서야 했던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잡아바칠라구 몸살이예요? 이제 또 따라다니면 그땐 용서하지 않겠어요.》

《어, 어… 고맙다. 고맙다. 강릉 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련다.》

《좋아요.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래요.》

례영은 리창순의 총을 들고 자동차에 올랐다.

《아니 례영아, 그 총은…》 리창순이 애걸하다가 분노가 어린 례영의 눈초리에 어기가 질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동차는 리창순을 남겨두고 송림을 떠났다.

《아가씨, 왜 그까짓 까마귀를 살려줍니까. 말 앞세우는놈 실속있는놈 못봤어요. 저런 치사스런놈은 미리감치 명줄을 콱 끊어버려야 해요. 뱀이란놈은 설쳐놓으면 더 독을 품고 덤벼든답니다. 저놈 관상을 보니 거짓부리에 능수라눙기.》

운전사는 이렇게 제사 아쉬워해 하였다.

《아저씨 말이 옳은지 몰라요.》 례영은 그냥 할딱거리는 가슴을 두손으로 살풋이 끌어안고 이마에 홍건히 내밴 땀을 훔치였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모질지 못한게 탈이예요. 저런 놈들을 살려두면 그때뿐이지 신세갚음 하는 놈들입니까. 우리 형님도 46년도에 대구에서 저 까마귀들에게 맞아죽었다오.》

운전사는 그놈을 요정내지 않은것이 명치에 내려가지 않아 그냥 중얼거리였다.

《그렇군요. 그렇지만 어떻게 저런놈에게 총을 쏜단 말이예요. 저 사람도 아주머니가 있고 자식 넷씩이나 달려있는데…》

《에…에… 뭐 우리 형님은 처가 없구 자식이 없어 죽었나요. 저놈들은 사람이 아니요. 짐승들이지요.》

운전사는 여전히 례영의 말에 불만이 커서 화까지 냈다.

(이 사람이 아마도 옳은말 하는것 같다. 우리 선생님들은 마음이 모질지 못하다. 아버님만 봐도 그렇다. 눈물이 많다. 너무 많은분이다. 속은 또 얼마나 고운가. 권영호가 그리도 못나게 놀아도 이렇게 사처에서 덫을 놓고있는데도 병원까지 문병을 가신다.

길철선생도 혜숙이도 다 그렇게 속이 곱다.

아마도 우리의 싸움에는 그런 사람들만이 나서게 돼있는가부다.

마동열이만 해도 그렇게 용해빠진 사람이 세상에 또 있으랴.

아, 마동열…지금은 어떻게 지내실가?… 언제면 만나게 될가?… 통일은 참말로 언제면 될가?…)

례영의 눈굽에 눈물이 가랑가랑했다.

《어디로 모실가요?》 운전사가 례영의 눈굽에 차든 눈물을 보고 근심스럽게 물었다.

《서울역전으로요. 난 부산으로 내려가겠어요. 사실은 시댁이 거기 있답니다.》

《예, 그렇군요. 하마트면 크게 경칠번 했습니다.》

례영이는 승용차의 등받이에 기대였다. 그제야 온몸이 게나른해졌다. 돌이켜보니 리창순에게서 당한 일이 먼 옛적의 어지러운 추억처럼 그려졌다. 혹은 어떤 책에서 읽어두었던 모험담처럼 떠올랐다. 자기가 치른 일이라고는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무슨 담으로 총부리를 그의 이마전에 들이대고 총성을 울렸는지 모르겠다.

(아버님에게는 어떻게 말씀드릴가?)

생각해 보니 총을 내든것이 잘한것 같지 않다.

(리창순에게 나를 드러낸것이 아니냐. 그렇지만… 그렇게밖에는 달리 행동할수가 없지 않았어.…)

례영은 역전에 이를 때까지 여러가지 불안과 초조에 말려들어 자신의 행동을 질책하기도 하고 변명해보기도 하였다.

《역전입니다.》

운전사가 차를 세워놓고 이렇게 말해서야 례영은 자기 생각에서 깨여났다.

《수고했어요. 이 총을 기념으로 받아요.》

《원, …고맙습니다, 아가씨. 난 명주철이라고 해요. 택시사업소에 전화하면 전라도 개똥쇠를 찾아요. 앞으로도 서울에 오시면 제 차를 부르십시오. 제가 모시고 다닙지요. 이 총을 잘 간수했다가 좋은 일에만 쓰렵니다.》

운전사는 총을 받아들고 기뻐 어쩔줄 몰라 하며 운전사자리밑에 감춘다.

례영은 그를 떠나보내고 나서 뻐스정류소로 향하다가 차집에 들어가 홍차 한잔을 받아놓았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아래다리가 매시시해서 걸음 옮기기가 힘들고 자꾸 속에서 역기가 올라왔던것이다.

그는 차 한잔을 쉬염쉬염 다 비우고 나서야 온몸이 식은땀으로 화락하게 젖어들었다는것을 느꼈다.

그는 창밖을 내다보며 한동안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다가 서병남의 집을 향해 뻐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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