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자기를 지켜낸다는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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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쵸가 《동향회》에서 《미군철거결의안》을 《국회》사무처에 상정하였다는 소식을 노불로부터 전화로 보고받은것은 자정도 훨씬 지나서였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무쵸는 대경실색이 되였다. 그렇지 않아도 《미군계속주둔안》을 시급히 《국회》에 상정시킬 준비를 비밀리에 추진하다가 기회를 봐가며 전격적으로 통과시키자고 노불에게 지시하였는데 앞질러 미군철거안이 《국회》에 제기되였다니 무슨 소리인가.
당장에 밟고선 방바닥이 뒤흔들리는것 같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던 일이였다.
일시에 여러가지 의문점들이 떠올랐다. (《동향회》의 발기안이라면 《동향회》는 반미를 제창하는 인물들의 집합체인가, 반미적인 인물들이 어떻게 철저히 우익의 정치마당으로 되여 있는 《국회》에 들어왔는가. 미군을 내쫓아도 그 사람들은 자기의 정치적기득권을 유지할수 있는 사람들인가. 《동향회》의 철거안에 다른 계파들의 공감대는 어느 정도로 확산될수 있는가. 《국회》연단에서 심의가 시작되면 그 파장이 어느 정도이겠는가.) 이렇게 숱한 걱정거리들에 묻혔던 무쵸는 미군철거가 림박해왔다는 절박한 현실앞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군이 철거하면 아무리 해봐야 미국대사관도 들어서기 바쁘게 쫓겨나게 될것이 불보듯 하다.
미국의 대조선정책에 파렬구가 생기리라는것은 그래도 한발뒤의 이야기다.
무쵸자신부터 외교생활말년에 치명적인 비극을 감수하게 될것이다.
하지가 떠나면서 남기고간 말들이 으스스하게 되새겨졌다.
그래도 그 사람은 자기 임기를 다 채우고 떠나갔다.
아니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국회》개원은 이제 하루가 남았다. 하루사이에 전격적으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탐구해야 한다.
무쵸는 침실을 빠져나와 우선 자기 사무실에 틀고앉아 노불부터 불러냈다. 노불도 구체적인 실태를 내놓으라니 길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명백한것은 〈국회〉사무처가 동향회의 결의안을 오늘 점심전에 접수한것입니다.》하고 짧게 대답하였다.
무쵸는 당황해났다. 현지 총독의 체면이나 세우고있을 형편이 못되였다.
그는 자기의 정치적운명을 건 도박을 무대뒤에서 조종하는 인형조종사의 허울을 집어던지고 진두에서 지휘하기 시작하였다.
관계일군들이 련방 호출되여 수습대책안을 긴급히 세웠다. 《국회》의장 신익희도 불리워왔고 여러 행정부의 장, 차관들이 무쵸의 응접실로 겨끔내기로 들어왔다.
그들에게 대사관의 모사군들이 부랴부랴 작성한 대책안에 따라 긴급임무들을 주어 쫓아보냈다. 신익희에게는 회의안건에 무슨 리유를 걸든지 상정시키지 말도록 하고 김성수에게는 《미군철거안》에 대처한 《미군계속주둔안》을 《한민당》의 결의안으로 급히 상정시킬것을 내리먹였다. 《내무장관》 윤치영에게는 《동향회》의 핵심의원 몇을 테로해치우라고 지시하였다. 《법무장관》에게는 《미군철거안》부당성을 시급히 만들어내서 내돌리라고 하였다. 경무대 비서실장 리기붕에게는 대통령이 자기의 권위를 가지고 《동향회》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발기인들의 대렬을 최대한 약화시키라고 전달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런 조치로서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당장 미국무성의 소란스러운 관리들이 서울에서 불티가 또 생겼다고 법썩 끓으며 백악관까지 들썩거리게 할것을 생각하니 도무지 방안에 붙박혀있을수 없었다.
무쵸는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도 잊고있다가 낮 열두시를 알리는 고동소리를 듣고서야 자기가 아침을 건늬였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점심이나 치르고는 지시한 문제들의 집행정형을 점검하면서 리승만을 만나볼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무쵸가 방에서 나서려는데 두려워하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대양건너에서 국무장관 애치슨이 전화로 그의 발목을 잡았던것이다.
애치슨은 인사치례도 없이 직방 철거안이야기로 목청을 돋구기 시작하였다.
《대사, 어찌된 일이요? 방금 중앙정보국에서 트루맨대통령에게 남조선 〈국회〉가 미군철거를 토의한다는 긴급정보를 보내왔다고 하오.
당신한테서는 어째 소식이 없소? 도대체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터졌소?》
무쵸는 아연해졌다. 지금 시간으로 보면 워싱톤은 한밤중이다.
모두가 단잠에 들어있을 시간이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트루맨의 호출에 정신을 차리고 전화통에 매달려있는 애치슨의 노한 얼굴을 그려보느라니 우선 화증머리부터 동했다.
노불이 날쌔게 소식을 날린 모양이다. 매양 선손을 써서 자기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정보계통의 소행을 괘씸하게 생각해오는 무쵸이다.
노불에게 대사관의 임무분담에서 정보담당이라는 의무를 지웠는데도 자기 수하의 방대한 계통에서 수집되여온 정보를 자기 직계의 중앙정보국에 날린 다음에야 대사관에 들고온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무쵸가 이 문제를 걸고 《노불, 당신의 록봉은 미국무성의 구좌에서 타내고있소.》하고 롱조로 슬쩍 입침을 박았는데 노불은 천연스럽게 받아넘겼다.
《대사, 나의 명줄을 쥐고있는건 유감스럽지만 씨. 아이. 에이요.》
무쵸는 애치슨의 추궁에 볼부은 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알고있지요. 그런데 그 정보는 오정보입니다.》
《오정보?… 그러면 당신이 알고있는 진짜는 뭐라는거요?》
《〈국회〉에 상정시켜 달라고 제기하여온 정도입니다. 〈동향회〉란 원체 물덤벙술덤벙하는 이마가 새파란 젊은이들이 모여든것이니 거 뭐 장관각하까지 속쓸만 한게 못됩니다.
〈국회〉에서 정식 론의되자면 아직도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그렇게 놀라실건 없습니다.》
《배포가 유한 소리만 하는구만. 젊은이가 아니라 아이들의 소리라도 〈국회〉연단에서 미군을 걷어내라고 소리치는건 문제가 심각하단 말이요.
난 지금 당신을 위해서 워싱톤에서 진땀을 뽑고있소.
〈국회〉의 시비군들뿐인줄 아오? 국무성과 륙군성에서도 나의 도전인물들이 매일같이 입방아질을 하는데 그 녀석들에게 둔장질을 해댈 지지점을 마련해주어서는 안된단 말이요.》
《국무장관각하, 마음을 놓아도 됩니다. 사실은 다 정리한 다음 보고하려고 했는데… 조기에 진화할수 있는 수습조치는 다 취해놓았습니다.》
《두고봅시다. 정치학의 총론도 읽어보지 못한 하지의 군정청이나 대사관이 같고같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주시오.》
애치슨은 신경질적으로 엄포를 놓고는 인사도 없이 덜컥 수화기를 놓아버리였다.
《옘병할…》
무쵸는 전화기를 홱 집어던지며 짤막히 씹어뱉고는 코안경을 벗었다. 그는 애치슨에게서 받은 수치와 모욕으로 하여 상통이 피빛으로 확 달아가지고 주먹코를 실룩거렸다.
그러나 애치슨이 트루맨앞에 가서 곤욕을 치르고 돌아와 전화통에 대고 화내는 리유가 리해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혼자서 씨근덕거리다가 서기더러 노불을 당장 불러오며 사무실에서 점심을 대강 치르도록 빵 한쪼각, 우유 한고뿌를 마련해오라고 하였다.
서기가 얼마후에 지시한대로 빵 하나와 쏘쎄지 몇토막과 우유 한고뿌를 쟁반우에 들고와서 노불에게도 련락하였다고 알렸다.
무쵸는 우유에 빵쪼각을 씹으며 이제 리승만을 만날 생각을 하였다.
대사신임장을 봉정한다는 공식의식때문에 한번 가보고는 아직 한번도 경무대문턱을 넘어선 일이 없다. 현지 총독의 걸음이 가벼워서는 안될 일이지만 리승만을 조종하는데는 앞에서 잡아끄는것보다 뒤에서 끈을 쥐고 몰아가는것이 낫다는 생각때문이였다.
그러나 오늘은 당장 급한 대목을 넘겨야 하겠으니 이미 세워놓은 관계질서를 지킬 형편이 못되여 아무래도 경무대에 가야 할것 같았다. 들어갈바에는 다른 일거리도 가지고 가서 돌아오는 보따리가 커지게 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리승만의 기를 좀 눌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승만은 아직도 하지와 어깨를 돋구고지내던 본새대로 백악관이나 맥아더쪽에 추파를 던지면서 자기의 머리너머로 뒤공작을 펴고있다고 한다. 노불을 통하여 그래서는 안된다는 신호가 가도록 했는데 령감이 그 버릇 떼지 못하고 서울장안에서 무쵸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를 모르고있다.
무쵸가 초졸한 점심을 끝냈는데 노불이 들어섰다.
《노불, 경무대로 갑시다.》
무쵸는 마주일어서며 그를 돌려세웠다.
《어찌된 일인지 백악관부터 몸살을 떨고있소. 서울<국회>때문에 말이요.》
무쵸는 방안을 나서면서 씨가 박힌 어조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노불은 시치미를 떼고 모르쇠를 하였다.
《국회》재개를 앞둔 경무대는 대란리였다. 정문에서 여러대의 자동차들이 들락날락하면서 서로 길을 비키라고 소란스럽게 경적을 울린다. 리승만도 관계인물을 불러대며 복닥소동을 벌리고있는 모양이다.
정문보초들은 미국성조기를 단 대사차가 나타나자 모든 자동차들을 다 비켜서게 하고 무사통과시켰다.
대기실에서는 여러명의 장관들과 비서실사람들이 리승만이 불러줄것을 기다리면서 한담을 하고있었다.
무쵸는 노불과 함께 2층 응접실에서 리승만과 그의 비서 신정섭과 마주앉았다.
정시명의 사업을 도와온 신정섭은 원래 정부조작시에 《내무부》의 기획실장으로 내정되였으나 정시명이 경무대쪽에 그를 대신할 인물이 없어 그냥 눌러앉게 하였다.
리승만은 불러들이는 사람마다 《미군철거안》을 무조건 철회시키라고 들볶아 대다가 무쵸가 온다는 선통도 없이 들이닥치자 다소 긴장된 안색이였다.
그동안 리승만은 노불을 통하여 자기에 대한 무쵸의 불만을 계속 듣고있었는데 이렇게 예고없이 뛰여든것이던지 무쵸의 무거운 표정에 불안해졌던것이다.
무쵸는 간단히 인사말을 주고받자 리승만이 권하는 쏘파에 틀을 차리고 앉아 응접실을 한바퀴 휘둘러보았다.
하지가 있을적이나 전번 신임장봉정때보다 썩 고전적미가 나게 꾸려진것 같았다. 벽 한쪽면에는 소나무와 대나무속에서 여러마리의 학이 날아가는 풍경을 수놓은 병풍이 둘러져 있고 한쪽면에는 다도해의 해돋이를 형상한 유화가 차지하고있다.
무쵸는 잠시 코안경을 벗어들고 방안의 이모저모로부터 눈길을 돌려 리승만의 축 늘어진 눈덕과 로인반점이 거밋거밋 돋은 이마를 유심히 지켜보며 고소를 금치 못하였다.
(령감이 옥좌를 그리도 탐내왔다는데 그 옥좌 지켜내느라 열곱은 기운을 뽑고있군. 한 나라의 정사가 가벼운줄 알았더냐.)
무쵸는 코줌방을 손부리로 살살 만지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대통령각하에게 몇가지 긴급통보할게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첫째로는 빠리유엔총회문제입니다.》
리승만은 무쵸가 《미군철거안》문제때문에 달려온줄 알고 그에 응수할 차비를 하고있었는데 왕청같은 문제를 꺼내놓자 우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대사.》
리승만은 폭신폭신한 쏘파에 몸을 잠그며 그에게 어서 말을 하라고 손짓을 하였다.
《이번 유엔총회에서 〈한국〉에 대한 승인문제가 잘되지 않고있습니다.》하고 무쵸는 리승만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눈길을 보냈다. 그 원인이 어데 있느냐고 따지고드는것이다.
리승만은 입부리를 메돼지주둥이처럼 내민채 두툼한 눈시울을 지그시 눌러붙이였다. 심사가 꼬일 때면 항용 하는 버릇이다.
무쵸는 이미 인물자료료해를 통하여 리승만의 안면표정변화의 미세한것까지 다 꿰들고 있었다.
무쵸는 리승만의 어기를 이만한 정도로 눌러놓고는 빙그레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원인에 대하여 말씀드린다면…》
《그 원인은 나도 알고있소.》
리승만이 여전히 눈덕을 깔고앉아 침울한 어조로 말을 했다.
그 원인이란 《5. 10단선》이 북조선지역에서 진행되지 않았으며 미군이 남조선에 눌러있는 이상 아직 독립국으로서는 체모가 서지 않았다는것이다. 그리고 정부라는게 들어서자바람으로 그를 반대하는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고있다는것들인데 다 타당성이 있어 리승만은 짜증부터 앞서는 일들이다.
리승만은 무쵸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가슴을 지지고드는 그런 말들을 다시 듣고 싶지 않았다. 인젠 그런 내용의 지탄을 너무도 당하고보니 그 비슷한 이야기만 나와도 혈압이 쭉 뻗쳤다. 그래서 배짱을 세워서 무쵸의 말을 밀막아버린것이다.
《좋습니다. 다음 문제… 우리 〈국회〉하원에서 새해 회계년도 원조금액이 절반으로 책정되리라는 미국무성의 통보를 전해드립니다.》
《절반으로?… 그건 어째서요? 맥아더가 며칠전에 전화로 미국의 원조가 증액되리라는것을 확언하였습니다.
지금 도처에서 미군을 철거시키라는 괴성이 울리는걸 미국회는 듣지 못하고있다는건가요? 신설된 군대를 무장시키자면 미국의 원조액을 증가시켜야 합니다. 미군이 철거되지 않는다면…》
리승만은 미군철거라는 소리가 자기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연방 튀여나오는것을 비로소 인식하고 급히 입을 꾹 닫아붙이였다.
미국의 원조액이 감소되는 주되는 리유도 남조선에서 광복후 계속 울리고있는 반미목소리때문이라는것을 리승만도 무쵸도 잘 알고있다.
미국에 도전하고있는 나라에 미국의 원조를 준다는것이 천만부당하다는것이다.
무쵸는 스스로 원조액이 감소되는 리유에 대하여 밝히는 리승만의 실언을 조롱하듯 여전히 삵의 웃음같은 묘한 빛갈을 보이며 말을 받았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세번째문제는 어제 저녁 우리 대사관 공보처에서 입수한 정보입니다. 이제 개최되는 귀국 〈국회〉에 미군철거안이 정식 상정된다는것입니다.
나는 제기되는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미국무성에 보고하는것을 보류하였습니다.》
그 소리에 리승만은 눈을 번쩍 떴다. 드디여 터질것이 터졌다는 급박한 생각에 마치도 고압전류에 감전된듯 전신이 쩌렁해왔다.
리승만이 옆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만 있는 노불에게로 시선을 돌리니 노불은 시치미를 떼고 고개를 들어 천정을 본다.
리승만도 아직 극비에 붙이기로 했던 걱정거리가 끝내 무쵸의 귀에 들어간것이 어이없어 입만 두어번 쓰겁게 다시고는 퉁명스럽게 대응하였다.
《그런 일은 없을겁니다. 대통령으로서 담보할수 있습니다.》
리승만도 이마에 내돋은 식은땀을 훔치며 무쵸의 고압적인 말투에 결이 나서 하지의 모상보다는 썩 유하고 리해력이 있어보이는 무쵸를 슬그머니 건드려보았다.
《난 대사각하의 성의있는 지원을 기대합니다. 미군철수에는 이 나라에서 지난 세해동안 귀국이 이룩한 성과들을 일소하는 비극도 초래하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귀국의 사활적리해관계에도 치명적타격을 주게 되리라는것을 확언하는바입니다.》
리승만의 푸념은 그가 의도했던대로 즉시에 무쵸를 반응하게 하였다.
무쵸는 은근히 자신의 립장이 아니라 신임대사의 무게를 떠보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이라느니, 귀국의 사활적리해관계라느니 하는따위의 말들은 리승만이 언제 배워둔 말들인가. 리승만이 그래 마주선 사람이 자기의 손우의 동료이며 하지보다도 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라는것을 모른다는 말인가.
무쵸는 이 기회에 벼르고온것처럼 맥아더보다 더 무섭고 힘있는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는 사람과 마주서고있다는 인식을 주어야 되겠다고 결심하였다.
리승만이 팔섶을 물고 늘어지게 해야 한다. 설설 기면서 대사관의 문턱을 넘어서게 해야 한다. 다시는 경무대의 문턱을 내가 오늘처럼 먼저 넘나드는 일은 없을것이다.
무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버릇처럼 엄지손가락으로 주먹코를 살살 쓰다듬다가 눈가에 얇은 미소를 지우지 않고 리승만의 주장을 뜨직뜨직한 실무적인 어조로 반박하였다.
《대통령각하, 미군철수문제를 놓고 미국의 실익에 대하여 론한다는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지난 3년간 남조선에 주둔한 미군의 유지비가 미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고있다는것을 고려할 때 미군주둔의 실익에 대하여 이 나라의 통치권에서 론의된다면 미국은 이제 당장이라도 미군을 철수시킬것입니다.》
무쵸는 마디마디에 강약을 적절히 가하면서 리승만을 죄여놓기 시작하였다.
《아, 대사각하…》
리승만이 이제까지 가까스로 유지해왔던 도고한 자세를 급기야 허물고 애원조로 부르짖었다. 늘어붙는수밖에 없다.
《난 미국의 벗이 되고저 맹약한 늙은이올시다. 미국의 벗들이 우리가 이 나라를 미국의 철저한 동맹국으로 되게 하기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고있다는것을 리해하여주기 바랍니다.》
이것은 리승만이 흔히 미국의 관료들과의 상면에서 궁지에 몰릴 때면 궁여 지책으로 내드는 마지막 패쪽이다. 철저한 주구라는것을 생각하여 달라는 대인외교가 방법으로는 치졸하기 그지없는것이지만 허장성세하기 좋아하는 양인들을 주물러내기에는 매우 효률적인 고단수인지도 모른다.
무쵸는 리승만의 변덕을 어리광으로 받아들이며 안색을 풀고 가볍게 소리내여 웃었다.
미군철거와 관련한 리승만의 립장은 철통이다. 다소 마음이 놓이였다.
이쯤되고 보면 애치슨에게 헛말을 하지 않아도 될것 같다.
이 문제에서 리승만이 다소간의 동요를 보인다면 야밤삼경에 트루맨이 애치슨을 잠자리에서 불러내고 애치슨이 성이 돋쳐 주절거릴만 하다.
무쵸는 리승만의 허리가 굽혀들자 내친김에 발바닥에 이마를 붙여놓고야 경무대를 나서리라고 작정하고 올가미를 죄이기 시작하였다.
《각하, 당신께서 미국의 벗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나 또한 당신의 벗이라는데 대하여 기쁜 마음으로 확언하고싶습니다.》
《고맙소. 대사, 그래서 난 당신에 대한 기대가 실로 큽니다.》
리승만은 눈과 입이 딴 말을 하는 이 엉큼하게 생겨먹은 양놈이 왜 새삼스러운 소리를 꺼내는지 인차 가늠이 되지 않은듯 어정쩡해 하였다.
《그렇다면 각하에게 좀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미군철수문제는 어디까지나 시한부적입니다. 어떻습니까, 나의 말이 리해됩니까?》
《어, 거야…》 리승만이 여전히 수상쩍어 하며 뜨아해서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러니 우린 어떻게 하든지 가급적으로 최대한 빠른 시일안으로 〈한국〉 의 불안정요소를 제거하고 행정부를 재정리해야 합니다.》
리승만의 입이 또 또아리를 걸어놓을만큼 삐쭉해졌다.
(그러니 또 내각제개헌인가? 죽을판에 와서 그따위소릴 꺼내놓는게 심보가 고약하군.)
리승만은 그동안 노불을 통하여 무쵸가 내각제개헌문제를 집요하게 추구하고있다는 소리를 종종 듣군 하였다. 어찌 보면 노불이 자기의 립장을 무쵸라는 이름을 걸고 슬그머니 들이먹이는지도 모를 일이라 그때마다 리승만은 댓바람으로 성을 내군 하였다.
사실 무쵸는 지금 남조선경제가 혼란에 빠져있고 정치의 주도권을 통치권이 틀어잡지 못한 리유가 리승만의 독선, 독주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우익계의 수다한 실력자들을 정치적의견상이로 다 배제하고 주변에 아첨밖에 할줄 모르는 정치의 문외한들로 울타리를 쌓고있으니 정치가 제대로 될리가 만무하다는것이 무쵸가 서울에 와서 보고들은 뒤의 결론이다. 항간에서 사내낚는 재간밖에 없다고 조롱하는 임영신까지 총리로 내세울 생각을 했다니 리승만이라는게 어떻게 한 나라를 움직일수 있겠는가.
미국에서 오래 살면서 미국의 정치방식을 배웠다는 위인이 어째서 독재적인 정치체제를 선호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1인독재란 언제나 정치적으로 미숙한자의 손쉬운 통치방식이다. 일인통치를 기본으로 하는 정치방식은 권력자에게 매우 편리할것 같고 실제로 통치하기가 땅짚고 헤염치기처럼 쉽지만 종당에 차례지는것은 부정부패와 혼란과 파멸이다. 지금 력사가들이 무쏠리니와 히틀러가 수하에 참말로 제 목소리낼줄 아는 사람을 한명이라도 남겨놓았더라면 력사가 다르게 흘렀을것이라 평하는것이 우연이 아니다. 측근에 정치적무게가 있고 배심이 있는 인물이 앉아있으면 여러모로 거치장스러울것 같지만 그것이 1인독주의 허물을 앞질러 솎음질하여 정치의 방향을 순탄하게 만들고 권력의 허실을 막아내는 방파제로 된다는것을 리승만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의 불만도 압축하여 놓고보면 이것이다.
지금도 리승만의 정치형태는 마찬가지이다. 아니, 권력을 틀어쥐니 유아독존적인 정치체질이 더 굳어지고있다. 그러니 정치의 사기군들이 아첨이라는 유혹적인 수단을 가지고 그의 주위에 모여들고 반대로 정치적적수들이 나날이 늘어만 간다. 도전세력의 진출이 커져서 권력의 기초가 흐물흐물거리고있다.
이걸 제때에 바로 잡지 않으면 리승만도 미국도 이 땅에서 다 거덜이 날판이다.
이런 생각으로 무쵸는 지금껏 단단히 별러온다.
(리승만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내리라. 실력있는 인물에게 정치의 노대를 안겨주리라. 방법은 단 한가지다. 내각제개헌이다.
내각제개헌만이 리승만을 상징적인 존재로 통치기관우에 세워놓고 참말로 북조선당국과 대적이 되는 인물본위의 행정권을 만들어낼수 있다.
내각제개헌이 되면 북조선이 인정하고있는 김구나 김규식과 같은 여러 도전세력의 대표자들을 대거 참여시켜 통치권의 영상부터 개선하고 국내의 민심도 사서 치안문제도 해결할수 있다.
남조선의 통치권을 수습하는 방책도 이것이다.)
무쵸는 이렇게 남조선의 정치적전망을 설계해놓고있었다.
미군철거문제로 리승만이 눅신눅신해진 이 기회가 남조선의 통치권의 움직임에 대한 관조적인 은둔을 끝내고 적극적인 공세로 넘어갈 절호의 기회이다.
그래서 무쵸는 벌써 불편해하는 리승만의 심기를 포착하고 그게 나에게 무슨 대수냐고 무시해버리며 천천히 자기의 주장을 펴나갔다.
《행정부를 재정비하는데서 중요사항은 폭넓게 여러 계파의 인물들을 등용하여 반대파세력들을 극소화하는것입니다.》
《그러니…대사는 나에게 정부개각을 제기하는것인가요? 그 문제라면 난 지금 생각중이요. 려수변란의 책임을 행정부가 마땅히 져야지요.》
리승만은 퉁명스럽게 대사의 말을 받았다.
무쵸는 그의 마음속을 이미 다 읽고있었다. 쉽게 내뱉는 소리에는 리승만의 엉큼한 속궁리가 가리워져 있었다. 리승만은 이번 기회에 자기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고있는 리범석을 들어낼 심산이다. 그런데 리범석의 후견인은 나, 무쵸라고 생각하고있다. 내가 천거한 인물이니 그를 파직시키자면 나와의 사전협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것이다. 이 자리에서 내가 스쳐지나면 그로서 리승만은 미국과의 사전협의가 있었다는 언질로 목대가 굵은 리범석을 쳐던질수 있는것이다.
무쵸는 두상의 엉큼한 계교를 간파하고 그 문제에 대한 명백한 견해표명을 해두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두해정도는 놔두어야 합니다. 인물교체는 권력의 부재를 낳을수 있다는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난 현 정부의 개각이 아니라 근본적인 정치구조의 변혁을 념두에 둡니다.》
《그래요?》
《우리 대사관에서 료해한데 의하면 각계의 실력가들이 행정부의 참여를 싫어하는 리유는 행정부가 소신있게 정사를 틀어잡을수 없게 되여 있는 정치구조의 허약성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대통령중심제를 내각중심제로 고친다는겁니까?》
리승만은 직통으로 수다스럽게 가녁을 빙빙 에돌아 서서히 보짱을 울리기 시작하는 무쵸의 약삭바른 이야기를 가로챘다.
무쵸는 리승만의 우직한 반응에 약간 당황했으나 인차 눈가에 야릇한 미소를 짓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시기상조이지만… 좀 생각을 해봅시다.》
리승만은 당장은 미군철거안문제가 목구멍에 가시처럼 박혀든지라 귀치않은 손님을 빨리 쫓아보내고싶어 한걸음 늦춰주는수밖에 없었다.
《훌륭한 결단입니다. 미군철거가 당신들의 〈국회〉무대에서까지 론의된다면 미국은 더는 이 나라에 대한 후견인노릇을 하지 않으려고 할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방금전에 명백히 립장표명을 했다는것을 통보하는바입니다.》
《아니, 대사…대사각하!…우릴 믿어주시오.》
리승만은 무쵸가 여전히 눈가에 실웃음을 띄고 례사스러운 어조로 폭탄같은 선언을 해버리자 엉덩이를 들썩거리기까지 하며 비명같은 외마디소리를 련발하였다.
《난 당신의 벗으로서 미정계에서 알고있는 미군철거설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리라는것을 확언하지만 당신들의 〈국회〉를 진정시킬 재간은 유감스럽게도 없습니다. 그건 당신이 주관하는 당신네의 내정입니다.
난 당신이 이미 여러차례 강조한것처럼 미국의 리권을 대표하는 외교관이지 이 나라의 총독은 아닙니다.》
무쵸는 이로써 리승만에게 하고싶은 소리를 다 꺼내놓은셈이였다. 령감이 이 무쵸를 대통령우에 군림하는 총독으로 섬겨야지 일개 대사로 무시해서는 모든것을 잃게 된다는 로골적인 경고였다.
무쵸는 이 말을 던지고는 눈길을 돌려 창밖으로 마주보이는 북악산의 다박솔을 내다보았다.
《무쵸대사!》
무쵸의 예상대로 이렇게 떨리는 소리로 부르는 리승만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리승만은 허둥거리는 눈으로 가시 박힌 조롱을 던지고 능청을 떠는 무쵸의 눈길을 붙잡느라고 쩔쩔맸다.
《당신은 미국입니다. 미국은 우리 〈대한민국〉의 우산이구요. 당신의 지원과 편달이 없이야 내가 무슨 일을 할수 있겠소.》
무쵸는 여전히 눈가에 싸늘한 웃음을 담고 몸둘바를 몰라 하는 리승만의 모습을 일별하고나서 부드러운 어조로 다시한번 서늘하게 오금을 박았다.
《나는 이제 돌아가서 즉시에 대통령께 보고를 하겠습니다. 이 나라 〈국회〉는 미군철거가 아니라 미군주둔문제를 심의결정할것이라고 대통령이 친히 명백한 립장을 표명하였다고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대사.》
무쵸는 황송해마지 않는 리승만의 대답을 들으며 정중히 머리를 숙여보이고는 꼿꼿이 허리를 펴고 나들문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나갔다.
그의 벌거우리한 상판에 엉큼한 미소가 떠돌았다.
경무대의 문턱을 넘어선 보람이 있는것이다. 우선 미군철거문제를 놓고 리승만을 얼이 빠지도록 죄여놓았다. 이제 리승만은 미군철거안을 철회시키기 위하여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시킬것이다.
대통령이 저런 정도이면 애치슨에게 점심무렵에 호언장담한것이 빈말이 될것 같지 않다.
그 다음에는 리승만에게 미국대사관이 어떤 곳이고 미국대사가 어떤 직권을 가진 인물인가에 대하여도 적당한 기회에 적절히 가르쳐준것이다.
(이 무쵸를 하지처럼 생각하다가는 일조에 경을 치르게 된다는것을 알아야지.)
그만 하면 빈손으로 경무대에 들어왔다가 무겁게 보따리를 챙겨메고 나가는 셈이다.
리승만은 어느결에 눈썰미있게 따라나선 프란체스까와 함께 정문까지 따라나와 무쵸를 례절있게 바래워주었다. 무쵸가 탄 자동차가 숲에 가리우자 리승만은 아니꼬움을 참지 못하고 혼자소리로 투덜거렸다.
《거참… 이 우남 (리승만의 호)이 사람복이 없어.》
귀 밝은 프란체스까가 그 소리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하고 각근히 물었다.
《이리를 피해서니 늑대가 나타났군.》
《늑대라구요?!》
프란체스까는 파릿해보이는 눈알을 대룩거리며 처진 볼을 실룩거리는 령감의 심술기 어린 상판을 빤히 쳐다보았다. 령감의 신색이 완전히 기가 죽은 호박상이다.
프란체스까는 령감의 의뭉스러운 말뜻을 알아차리자 짐짓 현숙한 부인의 자태를 허물고 령감의 기분을 바꾸어주고싶은듯 간드러지게 웃었다.
《이리도 늑대도 각하앞에서는 이발빠진 흉물들이라구 생각하세요. 미국은 각하를 물어메치지는 못할것입니다.》
리승만은 영문 모르고 깔깔거리는 마미의 웃음에 이내 말려들어 《허허-》하고 프란체스까를 어여쁜 손녀보듯 지켜보다가 새삼스럽게 한마디 했다.
《경국지색이라 하더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어둡던 먹장구름을 던지고 갑자기 푸른빛을 드러내는 변덕많은 여름하늘처럼 갑자기 무거워졌다가 밝아진 령감의 상판을 지꿎게 지켜보던 프란체스까는 가벼운 야유가 슴배인 어조에 눈이 올롱해졌다.
《옛날 북방에 천하를 다스리는 녀인이 있었지. 천하에 짝이 없는 미녀라 한번 보면 정을 기울이고 두번 보면 나라를 기울일만 했다나.…》
《호호…》 프란체스까가 령감의 팔에 감겨들며 간드러지게 웃었다.
그러나 지금 리승만은 언제까지 프란체스까의 아양을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무쵸가 경무대에 들어와서 이소리저소리 많이 늘어놓았지만 거기서 알맹이는 미군철거론의가 《국회》에서 벌어지면 미군철거가 막바지벼랑턱에서 벗어날수 없고 미군이 철거되면 너의 집권도 끝난다는 소리다.
이것은 사실상 최후통첩과도 같은것이였다.
리승만은 비서실장을 찾아 관계자들을 30분안으로 불러들이라고 하였다.
그는 신익희와 여러 인물들이 들어서자 또다시 일장 훈시를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방금 무쵸대사가 왔다갔소. 〈동향회〉 젊은 놈들이 쑤셔놓은 벌둥지때문에 백악관이 소란해지고 미국무장관이 야단이라고 하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은 시국이 비상사태에 직면했다는걸 명심하고 맡겨진 소임을 다해줘야겠소.
미군이 철거하면 당장에 〈대한민국〉은 허물어질판이요.
내가 사느냐 네가 죽느냐 운을 걸고 뛰여야겠소. 나도 이제부터 만사 전페하고 〈동향회〉원들을 만나 마음을 비우도록 해볼테요. 맡겨진 소임을 해내지 못하면 사표를 제출할 각오를 해야 하오.》
리승만은 비장한 어조로 곱씹어 뇌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