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인간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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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강변의 한 음식점에서는 이날 손님을 받지 않고 의원들이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김명호의 처가 요즈음 리발관을 넘겨주고 식당을 맡아 운영하고있었다.
이 음식점은 미닫이로 칸칸을 막았는데 그걸 열어놓으면 백명은 수용할수 있어 회합을 하는데는 편리하였다.
이미 음식점에는 푸짐한 점심이 차려져 있었다. 의원들이 흥성거리면서 자리를 정돈해앉자 김승원이 일어났다.
《우리 〈수의계〉는 지금까지 정의와 의리로 뭉쳐진 친목형태의 조직체였습니다.
최근 적지않은 의원님들이 우리도 정식으로 자기의 조직을 등록하고 리념상 일치성을 보장하면서 보다 발전된 형태의 회를 무을것을 제의하고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백범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들에 대한 선배님들과 국민의 기대가 얼마나 지대한가를 더욱 깊이 절감하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황철산회장과 토론하고 우리 〈수의계〉를 해산하고 〈동향회〉라는 이름으로 정식 회를 결성할것을 여러분들에게 제기하는바입니다. 〈동향회〉의 이름에는 모두가 하나의 지향을 가지고 활동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찬성하는 의원들은 박수로써 표시하여주십시오.》
김승원은 일을 일사천리로 숨돌릴새 없이 밀고나갔다.
모든 의원들이 열정적인 박수로 지지해나섰다.
《그러면 〈동향회〉의 강령을 황철산의원께서 제기하겠습니다.》
황철산이 일어나 〈동향회〉의 강령을 내놓았다.
《〈동향회〉는 평화를 사랑하며 나라와 민족의 분렬을 반대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다음과 같은 행동의 목표를 일치시킬것이다.
〈동향회〉는 국토와 민족이 분렬되여 있는 조건에서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민족의 량심을 팔고 외세에 아부하여 독재에 맹종맹동하는 반민족적행동을 배격한다.
〈동향회〉는 외세를 배격하고 남과 북에서 외군의 즉시 철거를 주장하며 인공적인 군사적경계선의 국제성을 제거하고 민주주의적 민족자결의 원칙에서 평화적방법으로 통일된 완전독립국가건설을 위하여 결사투쟁한다.
우리와 행동리념을 같이하는 〈국회〉의원들은 정견과 신앙의 차이, 정당과 소속의 차이를 불문하고 회원이 될수 있다.
〈동향회〉의 행동리념을 접수하지 않을 때에는 언제든지 탈퇴할수 있다.》
황철산이 제기한 강령은 일치가결로서 통과되였다.
황철산이 자리에 앉자 김승원은 한폭의 흰 비단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동료의원들의 눈길을 받으며 꼭대기에 붓으로 《통일완전독립국가건설을 기원하여》라고 쓰고 자기 이름부터 적어넣었다.
모임장 분위기가 숭엄해졌다.
나라와 민족앞에 충실할것을 맹약하는 《국회》의원들은 그 무슨 비장하고도 거창한것을 가슴뿌듯이 느끼면서 결전장에 나서는 용사처럼 자기 이름 한자한자에 심혈을 고여 정성스럽게 새겼다.
마지막으로 황철산이 서명을 마치고났을 때 김승원이 굵은 목청으로 《독립군노래》선창을 뗐다.
백두산하 넓고넓은 만주들판은
건국영웅 우리들의 운동장일세
활발발 나아가는 만세소리에
왜놈군대 정신잃고 막 쓰러진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목청을 합치였다. 그들은 서로 팔을 끼고 광복전이나 광복후에도 사람들속에 널리 퍼져 더운 피를 끓게 하던 독립군노래를 기운차게 불렀다.
한양성에 자유종을 뎅뎅 울리고
삼천리에 독립기를 펄펄 날릴제
자유의 새 정부를 건설하고서
삼천리강산에서 만세 부르자
노래가 끝나자 회장과 부회장선거를 하였다.
모두가 회장과 간사들이 어려운 직책을 맡아서 그동안 수고가 컸다고 하면서 류임시킬것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권영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는 이모저모로 부회장재목이 못되니 부회장자리를 받을수 없다고 사절하였다.
권영호가 이렇게 나오자 그를 어줍잖게 보아오던 여러명의 의원들이 들고일어났다. 권의원은 자격이 없다면서 《국가보안법》상정시에 뜻을 달리하였던 의원들까지 한꺼번에 싸잡아 아예 《동향회》에서 내쫓자고 분격하여 피대를 돋구었다. 경상도출신의 무소속의원은 부회장이 박쥐같다고 쏘아붙이기까지 하였다.
김승원이 여러번 일어나서 권의원이 사실 자기 계렬의 압력속에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두던하면서 그의 처지를 리해하여주자고 하였다.
이 문제로 잘 되여가던 모임이 격렬한 론조를 띠고 솔가운 말들이 많이 오고갔다.
권영호는 자기를 놓고 오고가는 동료들의 짭짤한 비난을 들으며 얼굴이 벌개지다 못해 아예 벽돌빛으로 검붉게 타들었다. 생전 처음으로 박쥐같다는 모욕까지 받았으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여들것 같았다. 사람들앞에서 권영호라는 인간상이 낱낱이 드러나고 해부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종당에는 권영호가 부회장자리를 차지한것으로 일단락지었다.
미군철거안을 시급히 상정시킬데 대한 문제도 권영호나 일부 의원들이 보다 신중성을 기하자며 엉거주춤거렸으나 그것도 일치가결로 합의되였다.
젊은 의원들은 통일조국을 위해 힘차게 달릴 굳은 결의를 다지면서 한쪽 팔들을 끼고 다른 팔로는 축배잔을 높이 들었다.
이날 저녁중으로 김승원은 황철산과 권영호와 함께 《국회》의장 신익희를 찾아갔다.
먼저 황철산이 그에게 최능진쿠데타계획을 통보하고 시급히 대책을 세울것을 요구하였다.
신익희는 통보를 다 듣고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최… 최능진…》
신익희는 입술을 바르르 떨며 겁부터 질려 말을 떠듬거리기까지 하였다.
《그, 그놈들이 〈국회〉에 쳐들어와서 의장목부터 치겠다구?… 주 죽일놈… 리승만이 뒤에서 이따위 간특한 짓을 꾸민다는거지…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소. 내 당장 리범석총리를 찾아가겠소.》
신익희는 도수높은 안경을 벗어들고 팔을 허우적거리며 금시 숨이 넘어갈듯 한 비명을 질렀다.
신익희는 잠시후 숨을 가라앉히고 나서 전화통을 들고 리범석을 찾았다.
신익희는 그에게 최능진쿠데타설과 이에 리승만이 개입된것을 설명하고는 당장 오늘중으로 불을 끄라고 하였다.
그러나 신익희는 김승원이 미군철거제안을 상정시킬데 대한 제안서를 들이밀며 길지 않게 설명을 하자 입부터 크게 벌렸다.
《그건 좀 덮어두게. 지금 이 〈대한민국〉이 엉망진창인데 미군을 철거시킨다구?…》
신익희는 철거안요지를 적은 종이장을 손에 들고 사정을 하듯이 말했다.
《〈대한민국〉이 어쨌다는겁니까?》
신익희가 노는 꼴이 아니꼬와서 권영호가 푸접없이 물었다.
《몰라서 묻나? 제주도의 불을 아직도 끄지 못했지, 빨찌산은 날을 따라 성해만 가는데…》
《그 사람들이 뭘 요구하고있습니까?》
《미군철수야. 그런데 〈국회〉에서까지 거기에 맞장구쳐달라는건가? 북에서도 왜 미군을 몰아내지 않느냐고 매일같이 성토야.
며칠전에 유엔에 간 조병옥특사가 전문을 보내왔는데 미군을 두고서는 우리의 국권을 승인못하겠다고 한다오. 그런데 자네들까지 불집을 덧쑤셔대면 어쩔텐가.》
《그것보십시오. 그러니 미군을 철수시켜야지요. 그러면 빨찌산이나 제주도사람들도 총을 거두고 산에서 내려올게고 북에서도 조용하겠지요. 유엔승인도 되고요.》
황철산이 손가락으로 꼽아가며 신익희를 낭떠러지로 그냥 밀고갔다.
《허, 이 사람들아. 그래도 미군을 여기다가 붙잡아두고있어야 〈대한민국〉이 버티고있는거야. 게다가 몇해째 미국원조로 살아가는데 미군을 뽑아내면 어떻게 될것인가. 자네들은 뭐 뉘덕으로 그 금빼지를 달고다니고있는가. 나라대문에 그럭저럭 빗장이 쳐져있는것도 누구들 덕인가. 미군이 나가면 이 간들거리는 〈대한민국〉이 세상에 있을것 같으냐 말일세.》
신익희가 금시 울상이라도 되여가지고 넉두리를 늘어놓자 그때까지 아무말 없이 뒤전에서 눈치나 보고있던 권영호가 화가나서 대들었다.
《이보십시오. 의장님. 그 말 좀 그만두지 못하겠습니까?》
그는 신익희의 그 넉두리가 그냥 듣고있자니 창피하기 그지없었던것이다.
《내 얼굴 뜨겁기는 하지만 이 금빼지도 미국이 달아준게 사실이고 나로 말하면 미국의 덕본게 많은 사람이지요. 하지만 어떻게 그냥 미국의 덕으로 살아가겠습니까? 그래 이 금빼지도 미군이 없으면 당장 떼우고 미군만 없으면 〈국회〉도 없고 정부도 없고 〈대한민국〉도 사라진다는겁니까? 그런 치사스러운 일이 어데 있습니까? 미군이 뭐 우리 할애비나 됩니까?》
《하, 이 사람 봐라. 말이면 다 번지는줄 아는가. 자넨 〈국민당〉이 아니고 로동당에 몸을 담고있는가? 우리 당론이 미군장기주둔이라는걸 자네 모르는가?》
《뭐라구요?! 미군장기주둔이 〈국민당〉당론이라구요? 그러면 십년이고 백년이고 미군을 모셔갈 생각이라는겁니까? 그게 리승만의 소리입니까, 의장님 소리입니까?》
《아니, 이거 정말 생먹을 소리로군. 자네 리승만의 소리라는걸 정말 몰라서인가?》
두 사람의 언성이 점점 커졌다.
밸머리가 동하니 권영호의 허여멀끔한 얼굴이 무섭게 이글거리였다. 그는 신익희에게 바투 다가서서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참아왔던 울화를 마구 들부어댔다.
《그럼 이 〈대한민국〉은 언제 독립한다는거요? 제 나라 군대를 두고도 남의 나라 군대더러 〈국회〉도 정부도 국민도 지켜달라고 해서야 그게 독립인가요? 기발 띄우고 국가나 부른다고 자결인가요? 세상에 웃기는 일이로군. 두말말고 이걸 받아두시오. 그리고 다음주부터 우리 〈동향회〉 43명과 〈한독당〉계 10명의원의 발기안으로 정식 제출하겠으니 이 설명서를 봐주십시오.》
권영호는 당장 커다란 몸통에 비해 가늘고 살이 빠진 신익희의 목줄을 움켜잡을듯 그앞에 불끈 틀어쥔 주먹을 휘두르며 위협조로 들이댔다.
《어디 두고보자! 분과위원장자리까지 줬는데도 아직도 소장파야?》
신익희는 벌떡 걸상에서 일어나더니 그들을 제 방에 남겨놓고 도망치듯 달아빼고 말았다.
문밖으로 달아빼는 《국회》의장의 뒤모습을 바라보는 세 사람은 꼬락서니가 너무도 어이없어 입만 쓰겁게 다시였다.
《배라먹을 두상태기, 저렇게 뼈대무른게 이런데 틀고있으니…》
권영호가 부아가 잔뜩 돋아서 문밖에 대고 버럭 소리지르고는 기가 찬듯 혀를 찼다.
그들은 미군철거제안서를 신익희의 책상우에 올려놓고 방을 나섰다.
김승원으로부터 이날에 있은 사업정형을 청취한 정시명은 크게 기뻐하였다.
《동향회》를 계획대로 무어낸것도 미군철거안을 드디여 상정시키기로 한것도 크게 떠들만 한 성과이다. 정시명은 그가 들고온 비단천을 쓰다듬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구가 잘해주고 김승원과 황철산이 솜씨있게 일을 해제꼈다.
권영호에 대한 김승원의 평가가 후해진것도 기뻤다.
《그 친구 오전에는 기분을 잡치게 했는데 신익희를 몰아세우는걸 보니 간단치 않습니다. 혜숙이처럼 선이 굵고 내밀손있고… 참 생각밖입니다.》
김승원이 이렇게 말하며 벙긋벙긋거리였다.
《잘 도와줍시다. 김명호선생이 보고하여왔는데 혜숙이 리점분빨찌산에 가있다오.
김구선생도 동래에 련락을 띄웠다고, 혜숙의 부친은 제가 맡겠노라 했소. 이젠 두루두루 한숨 돌리게 됐소. 권영호도 그렇고 〈동향회〉 모든 사람들을 투사로, 겨레의 사랑을 받는 애국지사들로 이끌어줍시다.
혜숙이도 다시 서울에 데려다가 살림을 시킵시다. 김선생의 수고가 참말로 컸소.》
정시명은 다시금 《동향회》원들이 맹약을 남긴 비단필을 쓰다듬으며 거기에 새겨진 이름들에 비낀 젊은 의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보았다.
반동이라는 치욕의 락인을 벗어던지고 탈바꿈을 한 그들, 애국의 젊은 심장들의 박동소리가 그 비단천에서 쿵쿵 울려나오는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