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인간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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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는 지금 응접실의 창문을 열고 락엽이 지는 뜨락의 과일나무들을 우두커니 내려다보고있었다.

살구나무잎은 벌써 추석을 보내면서 다 떨어졌는데 붙어있는건 은행나무잎사귀이다. 단풍든 잎새들이 노란 열매와 같이 아직도 가을바람에 시달리며 바르르 떠는 모양이 애처롭다. 후련히 떨어져버렸으면 좋으련만 웃초리잎부터 하나 둘 외로이 떨어져 마당우에서 바람새에 불려 이리저리 딩군다. 여름 한철에는 새파란 시절을 뽐내던 잎사귀들이 제 철을 보내고나서 어찌할수 없이 황이 지고 한줄기의 연기로 사라지는것은 어찌할수 없는 자연의 리치인가보다.

김구는 떨어지는 잎사귀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느라니 자기도 모르게 서글퍼졌다. 이제는 모든 욕망과 시름을 다 날려버리고 마음을 텅 비워버리자고 골백번 마음속에 되씹어보지만 그게 헐치 않다.

나라꼴 역겨워지는걸 두고 서울장안을 벗어나 계룡산 절당에 인생을 묻어버리자고 로심초사를 거듭해온것이 돌이켜보면 지난 봄철부터이다.

미국놈들과 리승만이 민족의 지향과는 아랑곳없이 《단독정부》를 세워버리니 갑자기 싸움은 끝나고 자기는 패전장군이 되여버린듯싶었다.

고독과 허무에 쫓기우다가 아들 김신의 권고에 따라 산속에 들어가버리려 했다. 그런데 안지생이 자꾸 옆에서 그건 현실도피요, 정치적자살이요 하고 마구 쑤셔댔다. 정시명의 이름까지 거들며 평양에서 보듬어세운 초지를 버리는 일이라 해서 주저앉았다.

그렇게 해놓고보니 골치아픈 일들이 부지기수로 닥쳐들었다. 리승만과 제휴하여 총리로 입각해서 정사를 주관하자고 꼬드긴다. 한편으로는 미국에 가버린 서재필을 오라 하여 새 정부를 만들어보자고 충동질이다.

그게 다 리승만의 체면을 세워주고 미국의 얼굴봐주는 일이라 귀찮기만 하였다.

하지가 물러가서 시끄러운 족속 사라졌는가 했더니 그를 대신하게 된 무쵸도 그짓거리다.

무쵸는 한번도 제 얼굴을 비치지 않으면서 수하의 노불이나 핸더슨령사를 보내 미국 입국사증도 쥐여주는가 하면 생일축하선물도 보내오면서 은근히 마음을 움직여보려 하고있다. 그러면서 하는 수작도 여전히 정부입각에 응하라는것이다. 어떤 때는 미국놈들이 대통령중심제를 버리겠다는 담보를 하니 총리직을 차지해서 한번 소신을 펼쳐볼가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건 불쑥 튀여오르는 생각일뿐이다. 《단선단정》을 반대하여 왔고 그것때문에 이북사람들과도 굳게 손을 잡은 자신이 《단정》에 참가하는 자체가 모반이다.

《한독당》안에서도 내분이 적지 않다. 부처님처럼 앉아있을바에는 정계퇴진을 선언하고 아예 부처님으로 굳어져버리라는 뒤소리까지 들려온다.

이게 미국놈들의 진짜 흑심인것 같다. 이 백범이 서울장안에 틀고앉아있는게 리승만이 역적행위하는데는 거치장스러울것만은 사실이 아니겠는가.

어떤 때는 평양에서 괜히 나왔다는 후회도 했다.

김일성장군님밑에서 소원대로 자그마한 과수원이나 하나 얻어가지고 과일나무를 여생의 벗삼아 살며 땅을 주무르고 세상이 밝아지는 모습을 즐기며 살아갔으면 그 얼마나 복되랴. 서울에 나와 큰 일이라도 쳐볼듯 의기양양했건만 국운은 쇠하고 정사는 점점 꺼칠해져 간다. 이젠 권력에 대한 욕심도 부질없다고 마음을 비워놓은지라 발 빠르게 움직일 일도 없다.

그러니 하는 일 없이 어정거려서야 사는 재미 없을진대 절당에 가서 보내온 인생의 굽이굽이를 세상에 전해 후손들이 거기서 새겨볼 말거리 한마디라도 찾아본다면 이제 더 바랄게 있느냐. 70여평생을 거친 바다에 떠다니는 조난당한 배처럼 억만의 파도에 시달려왔거늘 말년에 이 백범 잠시잠간 숨을 돌리다가 곱게 저승길에 오른다고 누가 탓할소냐.

김구는 지금껏 자신을 위로하여온 이러루한 체념을 다시 헤집어보며 창가에서 떠날줄을 몰랐다.

《아버님!》

언제 들어섰는지 맏며느리가 조용히 부른다.

김구는 돌아서서 그 녀자의 온화한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맏며느리의 얼굴에는 시아버지의 신상을 다심하게 보살피는 사심이 없는 정이 함뿍 어려있다.

《저… 정선생님댁에서 례영아씨가 오셨어요.》

《례영?… 례영이라?…》

김구가 그 이름이 인차 생각되지 않아 중얼거리자 그 녀자는 《그전에 아버님께서 평양가시기 전에 닭곰을 해가지고오셨던 아씨입니다.》하고 지난 봄에 있었던 일을 되살려주었다.

《아, 그렇지!… 내 그애한테 빚만 졌지. 그 아씨가 랑군을 멀리보냈다 했더라?》 《예, 통일될 때까지 아버지를 모신다고 합니다.》

《음, 이 백범이 나라앞에 다진 언약 지켜내지 못했은즉 아녀자에게도 거짓말쟁이가 됐구나.》

《아버님, 너무 상심마세요. 그게 어찌 아버님탓이겠습니까.》

《어서 들여보내라.》

《예.》

김구는 얼른 웃옷을 걸치고 쏘파에 단정히 앉아 례영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아래는 가랭이가 좁은 바지에 우에는 수박색 쟈케트를 간편하게 차려입은 례영이가 들어왔다.

례영은 김구가 일어나 반가이 맞아주자 앉음절을 곱게 하였다.

《백범선생님께 문안드리옵니다.》

《오냐, 따님이 오셨구나. 어 이게 몇달만인가. 아버님께서 무고하시냐?》

《예.》

《어머님께서도?》

《예, 다들 무고히 지내십니다. 선생님 걱정이 큽니다.》

《원, 나야 뭐 하는일 있다구… 너희 부모님들 보고싶구나. 아버님은 내 평생의 지인이시다.》

《아버님께서도 자주 선생님말씀을 하십니다. 아버님께서 선생님을 뵈웠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왔습니다.》

《그래?!… 아무때나 오시라구 해라. 아니 안되겠다. 래일 낮시간에 내 여기서 기다리겠다. 래일 오후에는 가야할데가 있다.》

《선생님, 그런게 아니고 오늘중으로 시간을 내셨으면 합니다.》

《그래?… 그럼 대문안에 와계시는가?》

《아버님은 지금은 여기오실 형편이 못됩니다. 그래서 제가 모시러 왔습니다. 아버님은 대단히 미안하다고 곱씹어 말씀하셨습니다.》

《음, 딴은 그래… 리승만이 〈보안법〉이라는 물건짝까지 갖추어놓았으니 너의 아버님은 각별히 몸조심해야 하느니라. 그래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저놈들이 이 백범에게까지는 감히 손대지 못하겠으니 내가 따라서겠다.》

《고맙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래?… 네가 참 안팎으로 예쁘구나. 어서 이 길로 떠나자꾸나.》

김구는 례영의 사려깊은 이야기와 침착한 거동에 저으기 감심이 되여 옷을 갈아입으려고 침실로 들어갔다.

그들을 태운 승용차는 인차 대문을 빠져나와 시안의 번화가에 들어섰다.

앞에는 례영이 앉고 뒤좌석에 김구와 비서가 앉았다.

례영이 시키는대로 운전사는 한강다리를 넘어섰다가 남산을 에돌아 다시 한강다리를 되돌아섰다.

어느 한 뻐스정류소에서 차를 세운 례영이 몸을 돌리며 누구에게라없이 말했다.

《우리 자동차를 따릅니다.》

《그래?… 음 윤치영이더러 그런짓 하다간 코 다친다고 일렀는데 아직도 냄새맡으러 따라다니는구나.》

《선생님, 이제부터는 제가 홀로 선생님을 모시렵니다.》

례영이 이렇게 말하자 운전사가 눈이 퀭해졌다.

《아가씨가요?… 차는 누가 몰고…》

《자, 어서 내려주세요. 저기 새파란 차가 보이지요? 멈춰섰군요.》

후사경에 미행차가 보이였다.

《멀리 떠나지는 말고 여기서 열두시고동이 날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례영의 살뜰한 말에는 거역할수 없는 다기찬것도 느껴져 운전사는 조향륜에서 손을 떼고 비서를 돌아보았다.

《마음을 놓고 어서 내리게. 어련히 알아서 하지 않으리.》

김구가 분부해서야 비서와 운전사는 보리싹처럼 연해보이는 녀인에게 김구를 맡기는것이 안심치 않아 머리를 기웃거리면서도 차에서 내렸다.

자동차는 인차 움직였다. 김아성이한테서 짬짬이 자동차운전련습을 받아온 례영은 침착하게 차를 몰아갔다.

그는 서울장안의 여러 골목들을 요리조리 빠져다니다가 끝내 미행차를 따돌려놓자 한강변도로를 따라 질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서울장안을 벗어나서 금호동의 뒤산길에 접어들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우에 자그마한 정각이 보였다.

자동차는 정각으로 오르는 돌계단밑에서 멈춰섰다.

《다 왔습니다. 자동차가 너무 들춰서 피곤하시지요?》

례영이 먼저 내려서 뒤문을 열어주며 방그레 웃었다.

김구는 자기의 운전사가 내린 때로부터 은근히 긴장되여있었던지라 크게 숨을 내쉬며 감탄해마지 않았다.

《원, 따님이 보통이 아니구나… 참…》

그는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정각의 돌걸상에는 중절모를 쓰고 흰 두루마기를 걸친 채수염을 정하게 다듬은 《로인》이 홀로 앉아 신문을 보고있었다. 정시명이였다.

인기척에 고개를 든 정시명이 서두름없이 신문을 차곡차곡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몇걸음 마주 걸어왔다.

《선생님, 먼길을 수고로이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동안 건강하셨습니까?》

김구는 자기를 막아선 《로인》이 정시명이라는것을 비로소 알아보고 자못 놀라마지 않았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시오? 원, 이렇게 늙은이행장을 했으니 어디 알아보겠소.》

김구는 정시명의 두손을 반갑게 잡았다.

《허허, 어찌겠습니까. 리범석이 저의 목에 500만원의 현상금을 걸어놨답니다.》

《저런!… 내 그놈의 자식 상해에서 목을 치지 않은게 한이요. 정향선생 해칠려구 타향에서도 못나게 굴더니 제 나라에 와서도 〈림정〉의 귀인을 몰라보는군.》

《뭐 나뿐이겠습니까? 요즘은 〈보안법〉까지 만들어냈으니 나라앞에 량심을 고이려는 사람들에게 다 체포령이 내린 셈입니다.》

《내 그 생각이요. 그놈의 법은 리승만만이 만들어낼수 있는 파시즘이요.》

례영이 그들사이에 음료를 꺼내 한잔씩 따라주고 정각을 내려섰다.

《아, 따님이 보통 여무지지 않았소. 미행을 따돌리고 서울을 빠져나오는걸 보니 정선생님이 정말 따님건사 잘했구나 부러워지더구만.》

《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우리 례영이 돌아가서 칭찬 한마디 해줘야겠군요.》

《아, 한마디로는 부족하오. 내 따님을 옆에서 보면서 소시적에 쪽발이들 몇놈씩 요정내고 숨어다니던 일 생각했다오. 그땐 참말로 무서운것 없구 세상이 눈아래로 보이더니…》 하며 김구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정시명도 한결 젊어진듯 한 김구의 얼굴을 보며 즐겁게 웃었다.

《어찌 소시적때뿐이였겠습니까. 백범선생님이야 일생을 그렇게 크게 살아오셨지요.》

《에, 말도 마시오. 이젠 얼도 기개도 다 사그라지고… 세월의 류수란 참 허망하오.》

김구가 이렇게 허거프게 웃었다.

《내 정선생이 날 찾은 리유를 알만 하오. 봄철에도 내 선생의 전갈을 깊이 새겨들었는데 더는 참아낼수 없구려. 이 백범을 리해해주오.》

《그래, 장차 어찌 하실렵니까?》

정시명은 김구가 먼저 말을 꺼내놓자 기본화제에 이내 들어선것이 다행스러웠다.

《래일 오전에 〈한독당〉중앙위원회를 열고 정계퇴진을 선포하고 조용히 절당에나 들어가려오. 종종 이 늙은일 잊지 말고 찾아봐주오.》

《절당에요?… 어째서 하필이면 그곳에 가신다는겁니까?》

정시명이 넌지시 묻자 김구는 대답대신 한숨만 내쉬였다. 그러나 이내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하였다.

《이 서울장안에 백범이 백범답게 죽을 자리가 없다는거요. 허허…》

《저는 선생님의 입산을 찬성 못하겠습니다. 독립과 애국으로 일관되여온 70평생을 그래 그예 절당에 묻고만다는게 어디 경우가 당한 일입니까?》

정시명은 우선 자기의 반대립장부터 명백히 밝혀놓았다.

《이보게 정선생, 날 좀 알아달라구. 난 이제 해묵은 고목등걸과도 같은 처지요. 서울장안에 더이상 틀고앉아야 이쪽저쪽 다 불편해 하는 기색들이니… 록음방초 우거진 숲도 철 지나면 볕보기를 그만 두는거요. 이제 날 다시 돌려세울 생각은 마오. 이 백범 조용히 속세를 하직하게 눈감아주시오.》

《어째 선생님은 자신에 대하여 그렇게 비하하십니까. 지금도 미국놈들이 그냥 선생님의 주변에서 맴돌고있다는것 자체가 선생님이 여전히 남조선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다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게 난 고달프오. 지금 내 처지가 꼭 광풍치는 절벽우에 서있는 가지많은 로송 한가지요. 바스락거리는 바람결까지 다 스며들어 가지를 흔들고 뿌리를 뽑아내고저 기승을 부린단 말이요. 오래 살면 욕이 많이 따르는 법이라 했거늘 더이상 살아남아야 차례지는건 앞뒤에서 쏘아대는 험담만 늘어나게 됐거든. 미국놈의 비위에 맞추자면 리승만의 둘러리가 돼야 하는데 그건 이 백범을 죄인으로 만드는 일이라… 그렇기로 하는일 없이 버티고있는것도 평양회담정신을 모독하는 욕된 일이요.

그러니 입산은 제나름으로 선택한 이 백범의 마지막항거의 분출이요, 몸부림이요. 죽을지언정 외세에 아부하지 않으며 독재자의 팔다리가 돼주지 않는다는 백범의 마지막선언이라 그거요. 그리고 이 백범이 백성들앞에서 련북합작의 력사적인 방향전환을 끝까지 지켜냈다는 과시로 될것이 아니겠소. 겨레앞에 내가 할수 있는 마지막봉사인줄 알고 정선생 받아주오.》

김구는 이렇게 결연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그 마디마디가 어찌도 절절하고 진정에 겨워있는지 정시명은 코마루가 시큰해오고 눈뿌리가 마냥 찌르르해왔다.

나라와 겨레앞에서 지조를 지키는것이 마지막봉사라고, 꺼져가는 생의 마지막빛까지 겨레에게 바치고저 하는 우국지사의 비장한 결의앞에서 정시명은 다소 마음이 헝클어져서 김구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한채 잠시 앞산만 내다보았다.

그러면 끝내 김구를 돌려세우지 못하고 마는가.

김구의 선택이 십분 리해되고 보니 더 만류할 여력이 깡그리 잦아들고 말았다.

그는 잠시 김구의 정신적방황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였는가 생각해보았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새로운 정세의 변화에 미처 따라서지 못하는데 있는것 같다.

김구는 제때에 시대를 파악하지 못한 탓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자기가 서야 할 위치를 찾아내지 못하고있다. 그러니 한 시대를 주름잡아온 력사의 거인으로서 자기의 존재가치에 어울릴수 있는 그런 보람을 찾고저 눈물겨운 고뇌를 썩여가는것이다. 《5. 10단선》이 정권조작에로 이어졌으니 이제는 삶의 목표점을 잃고 깊은 좌절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있다.

그에게 어떻게 보람을 찾아주어야겠는가. 무엇으로써 여전히 시대의 복판에 우뚝 솟아 인생의 빛을 아름답게 물들여갈수 있게 해주겠는가.

정시명은 김구를 남겨두고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정각을 오락가락하면서 김구가 서울장안에 그냥 버티고있어야 할 리유를 찾아 생각을 가다듬었다.

서울을 떠야 할 김구의 절박한 리유를 무겁게 지워버릴수 있는 명분을 찾아주어야 한다.

백범의 정신적위력은 항거정신이다. 외세에 대한 항거, 불의에 대한 항거, 매국에 대한 항거, 반역에 대한 항거… 이 정신이야말로 김구를 백범으로 추켜세운 정신적기둥이다.

그런데 김구는 지금 그 항거정신을 보여줄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하고있다. 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더 높이 추켜들 그런 무대를 제공해야 한다.

문득 그는 최능진의 쿠데타생각이 났다. 그 이야기만 들어도 싸늘한 재가루가 날리는 김구의 가슴에 필경 불이 다시 달릴것이다.

그리고 미군철거를 위한 투쟁도 있다. 그 투쟁의 선두에서 기발을 들도록 해야 한다.

이건 이미 그가 마련해온 일거리이다. 반미애국통일운동에로 우익계의 인물들을 떠밀어주고 정신적으로 보호해주는 대부로서 여전히 활약하게 한다면 김구의 쇠잔해진 항거정신도 다시금 그의 인생을 밝게 해줄것이다. 그가 그러한 역을 맡아준다면 애국운동에도 커다란 활력으로 될것이다.

우선 《수의계》의 성원들부터 그에게 보내여 련공합작에로 돌아선 백범의 넋을 따르게 하자. 백범이 자기의 애국애족의 신념으로 그들을 부추겨주며 그속에서 한생의 마무리를 보람있게 장식해가게 하자.… …

정시명은 이렇게 김구와의 사업을 끌고나갈 잡도리를 하고나서 다시 김구와 마주앉았다.

정시명은 먼저 최능진의 쿠데타자료부터 보여주었다.

《이건 뭐라는거요? 난 이제는 이러루한것은 관여치 않기로 하였소. 한주일전부터는 일체 신문, 잡지도 내 집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게 하고있소.》

《그 자료에 백범선생이 어째서 서울장안에 그냥 버티고 계셔야 하는것이 적혀있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보신 다음 더 이야기를 합시다.》

《아니, 그런 이야기라면 이젠 물 건너간 이야기요. 우린 다른 얘기 좀 합세다.》

김구는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 정시명은 어쩌는수가 없었다.

백범은 자료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제잡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 평양 갔다온 이야기나 좀 할가요? 어데 가서 또 이런 얘기 털어놓겠소.

그리워지는구만. 주변이 어지러워지니 평양의 깨끗함이 더욱 사무쳐드오. 정말 모두가 그립소. 모든것이 그립소. 꿈에도 언뜻언뜻 나타나서는 나더러 예서 구차스럽게 지내지 말고 어서 평양성에 들어오라고 손을 내밀어주군 하오. 벌써 락향길에 올라 나서자란 신천에 묻혀야 되는건데… 고향이 그리워… 참말로 고향이 그립소.》 김구의 목소리가 향수에 젖어오른다.

그는 정시명의 어깨너머로 멀리 북쪽의 하늘을 보며 깊은 감구지희에 말려들었다.

정시명은 툭 다치면 눈물이라도 쏟아놓을것 같은 김구의 애절한 모습을 가슴아프게 지켜보다가 저도 어쩔새없이 격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백범선생님, 그러니 우린 더구나 그분네들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될게 아닙니까. 우리 장군님께서 봄철에 로당익장의 걸음으로 떠난 백범이 이렇게도 의기소침해서 겨레가 바라는 싸움터를 버리고 여생의 안위를 찾아 현실을 도피하였다는것을 아시면 얼마나 상심해 하시겠습니까.》

《무엇이?!… 김장군께서!…》

《그렇습니다. 참말로 가슴 아픈 일이올시다. 난 지금도 백범선생을 생각할때면 김일성장군님께서 절 만나주실 때 백범선생님을 그렇게도 깊은 정애를 가지고 아껴주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그때 나는 사실 백범선생님이 지난날 혁명가들과 좋지 않은 관계에 있었다는 생각때문에 손잡고 나갈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있었지요. 헌데 장군님께서 저의 협애한 속마음을 헤아리시고 참말 눈물겨운 사랑을 베풀어주십디다.

그분을 아끼라고, 그분의 독립한생을 지켜주라고 곡진하게 말씀하십디다. 나는 그때 장군님의 손목을 꼭 잡고 울었지요. 백범을 사랑하는 이 나라 백성의 한마음으로 그 바다같은 도량과 해와 같은 자애로움에 목이 메였습니다.》

《에… 김장군말씀 그만 거두어주시우. 내 가슴 터지는게 있다면 그쪽이요.

그분께서 참말로 이 백범이 겁기에 몰려 절당에 달아뺀걸 아시면 뭐라고 하실고… 어 참말로 그분앞에 죄많은 백범이요. 그러니 이 일을 어쩐단 말이요?》

김구는 절통하게 부르짖으며 고개를 꺾고 지절지절한 눈굽을 손수건으로 꾹꾹 찍어냈다.

《내가 그분 생각느라면 너무 뼈가 저려 애 써 그 모습 지우려 하지만 그럴수록 자꾸만 그분 모습 삼삼하니 어찌한단 말이요. 구천에 간들 내 어찌 잊을가. 내 절당에 가는 길이 사실은 저승길에 오르는것인즉 일후에 김장군님 뵈오면 이 백범이 죽어 저승문턱 넘을 때까지 그분 생각만 하더라고 전해주오.》

김구의 눈에서 끝내 동이 터지듯 물기가 핑하니 고이더니 윤택을 잃은 두볼로 더운 눈물이 이랑을 지었다.

《백범선생, 왜 이러십니까? 고정하십시오. 백범선생!》

정시명이 당황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김구의 허리를 부여안았다.

《죄송합니다. 백범선생님,… 저와 함께 그분 휘하에 마음을 두고 함께 살아갑시다.》

《끝난 이야기요.》

《어째서 자꾸 그렇게만 말씀하십니까? 제가 무심했습니다. 백범선생이 당하고있는 경난을 보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런 말씀 마시오. 정선생 돌봐야 할 일 어디 한두가지겠소.》

《백범선생님, 제가 실상은 오늘 선생님께 부탁할것 몇가지 안고왔습니다. 정히 입산하시겠다면 저로서는 더는 막아서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절 좀 도와주고 떠나주십시오.》

《그래요?… 정선생이 모처럼 부탁하신건데 힘 닿는껏 하리다. 말씀하시오.》

《지금 〈국회〉의원들속에서 그래도 뼈대굵은 량반들도 있어 리승만과 미국놈들에게 정면도전하고있습니다.》

《나도 신문에서 봤어요. 장한 일이요. 헌데 이번에 〈국가보안법〉이 그냥 넘어가고 말던데…》

《예, 그래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저 합니다. 그 사람들이 속대는 바른것도 있는데 믿는데가 없습니다. 믿어 의지할만 한 기둥이 서있지 않아 정작 몸을 내대는 싸움에 나서니 주춤거리고 꽁무니를 빼기도 합니다.》

《과시 옳은 말씀이요. 헌데 옳은 일에 몸을 적시는 사람들이 왜 믿을데가 없단 말이요. 우리에게야 김장군이 굳건히 서계시지 않는가. 그리구 38선너머에 북녘동포들이 있구 거기에 삼천만이 바라는 새 세상이 열려져 있는데… 나라 잘되기를 바라는 이남민심은 의지가 안된다는건가?》

김구는 모를 소리라는듯 장중하게 기염을 토했다.

《옳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게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일선에 나서기를 주저하신다면 2선에서 그들에게 바른 심지를 심어주시고 밀어주십시오.》

《뭐 그런 부탁이라면 내 해내리다. 헌데 그네들이 날 찾아줄가?… 덕 볼게 없으면 등을 돌리는게 정치인들의 행태요.》

김구가 미타한 생각이 든듯 이렇게 처량한 어조로 중얼거리며 개탄하였다.

정시명은 그 말도 일리가 있을듯 싶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하였다.

《내가 찾아가도록 밀어보겠습니다. 우선은 선생님께 부탁드리자 했는데 이 자료로써 불러냅시다.》

《이것말이요?… 이게 뭔데?》

그제야 김구는 괴춤에서 돋보기를 꺼내 끼였다.

그는 자료를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하였다. 글줄을 더듬어가는 그의 볼편이 씨룩거리고 눈이 사납게 번쩍이였다.

《이놈들! 이놈들!》

김구는 자료를 막 구겨쥐고 나직하니 독살스럽게 부르짖었다.

《리승만이 이 백범을 어째보겠다구? 최능진이! 어쩐지 께름직했어. 기름가마에 튀겨낼 놈! 날 찾아와 리승만을 죽일 놈이라 선소리하더니 이렇게 속안에 황구렝이 꿈틀거리고있을줄이야… 그놈이 한때 상해에서 내 호위를 해준답시고 발바닥이라도 핥아줄듯 설쳤다오. 그런데 나를 걸고 모함해?》

김구는 벌컥 동해오른 밸머리를 어데다 휘뿌려댈 곳이 없어 이렇게 욕설을 퍼부으며 이발을 으드득거렸다.

《그까짓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속셈 달리하는 놈 어찌 그놈뿐이겠습니까. 문제는 시간을 놓쳐서는 안되겠습니다. 리승만의 이 쿠데타는 백범선생님뿐아니라 저희 말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국회〉반대파세력과 행정부를 노리고있습니다. 그러니 래일이라도 공개회견을 조직하여 이를 공개합시다. 그 모임장소에 〈국회〉반대파의원들을 초청하십시오.》

《옳수다. 그렇게 하리다. 리승만과 노불의 면상도 치고 젊은 의원들도 만나봅시다. 내가 준비를 잘해가지고 한번 그 사람들을 움직여 보리다.》 김구가 쾌히 접수하였다.

《두번째로 부탁이 있습니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동래에 권병수라는분이 있는데 〈한독당〉의 부산후원회 책임자라고 합니다. 백범선생님을 무척 따르는 사람이라는데 한번 만나주십시오.》

《어째서?》

《그분의 따님이 저의 밑에서 참 일을 잘합니다. 헌데 그 량반이 딸이 통일운동에 나섰다고 집에 받자를 아니하고 저의 동지인 그의 서방되는 사람도 문전축객을 해놓았습니다.》

《저런 놈 봤나… 이 백범을 따른다는 놈 통일운동에 나선 사람들은 왜 박대하는거요. 〈한독당〉이 평양회담에 앞장서간줄 그 사람은 몰랐다던가? 백범이 뒤전에 눌러앉아 있으니 백범의 혼도 구정물에 구박힌줄 아는 모양이군.》

김구가 끓는게 당장 일을 낼듯싶어 정시명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뭐 저에게는 가까운 사람으로 돼야 할분이니 너무 막 굴지는 말아주십시오.》하고 당부하였다.

《알았소이다. 내 그녀석 당장 서울에 올려다가 닥달을 할랍니다. 원, 정선생수하 사람들이라면 지인용이 다 갖춰진 사람들일텐데 어찌 그들을 따라나선 딸을 자랑하지는 못할진대 문전축객이라니… 그게 어디 백범을 따라선 놈이 할짓인가. 변괴로다.…》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제가 풀기 어려웠던 난제들을 한자리에서 다 풀어주십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원, 고맙기는… 그리고 이 최가놈 어떻게 할가요? 당장 끌어내다가 물고를 내야될것 같아.》

김구는 여직 왼손에 움켜쥐고있는 최능진의 쿠데타자료를 흔들었다.

《그러지는 마십시오. 법원이라는게 생겼으니 어떻게 처리하는가 지켜봅시다. 미국놈들과 리승만일파를 한번 휘저어놓고 〈국회〉나 리범석의 쪽에서 들고일어나게 하는것이 좋지 않을가요?》

《그래, 그게 좋겠구만. 내가 우선 공개성명정도는 해야 되겠소.》

《그렇게 하십시오. 의원그루빠를 데리고가는 사람이 저의 사람이니 잘 의논해서 하십시오. 그럼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자주 와주오. 늙마에 말동무해줄 벗님들은 다 떠나구…》

김구는 평양에 4월남북련석회의후에 떨어진 지기들을 그리며 말끝을 흐리였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둡기만 하던 김구의 안색이 말끔히 벗겨지고 주름발도 한결 펴진것 같다.

그는 사뭇 가벼운 걸음으로 돌층계를 앞장서서 내렸다.

《참, 정선생, 저기 말이요. 려수가 터진것 같네. 저 사람들을 저대로 둘 생각이요?》

김구가 문득 발을 세우고 걱정스레 물었다.

《그대로 둬서야 안되지요. 좀 지원을 하느라구는 하는데…》

《그럴테지… 려수쪽이 자라목이라 길목을 막으면 오도가도 못할것 같소. 저들도 구원하고 저들의 뜻도 내세워야 하는데…》

그들은 불붙기 시작한 려수의 항쟁소식을 생각하며 저으기 불안해 하였다.

계단아래에서는 또 한대의 찦차가 김구의 자동차옆에 와 있었다.

찦차문이 열리더니 금줄을 두른 둥근 모를 쓰고 고급모직천으로 만든 경찰옷을 입은 김아성이 나타났다.

《백범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김구가 건성 인사를 받고는 례영이를 돌아보았다.

《저랑 같이 일보는분입니다. 두분께서 따로 가셔야겠습니다. 비서와 운전사 있는데까지 제가 선생님을 모시겠습니다.》

례영이가 김구의 의심을 풀어주려고 설명하였다.

《음, 빈틈이 없구만.… 아버님을 잘 모셔야겠다. 자네들도 이젠 알고있겠지만 서울경찰들을 허술하게 여기지 말라구. 눈에다 쌍심지를 달고다녀야 하네.》

김구가 아성이와 례영을 나란히 세워놓고 심중하게 타일렀다.

《예.》

둘은 허리를 굽히며 대답을 했다.

그들은 인차 자동차에 올라서 발동을 걸었다.

정시명은 례영이 오른차에 김구를 먼저 오르도록 부축여주고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한독당〉중앙위원회는 어찌하겠습니까?》

《엉?…》

《정계를 퇴진하고 입산을 선포하신다고…》

《에잇, 정처장도… 뭐 이일 저일 다한 다음에 봅세다. 허허허…》

김구는 장쾌한 소리로 크게 웃었다.

정시명도 김구의 그 밝아진 모습을 보는게 즐거워 한시름이 가셔진 밝은 얼굴로 마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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