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좌절이 가져온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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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부터 서울호텔 3층 8호실로 회원들의 활동성과가 속속 들어왔다.

필요한 자금은 최남수가 맡아서 보장하였다.

김승원이 만류하였으나 황철산도 자기의 소유로 등록되여있던 고향의 참대밭과 과수원을 팔았다.

드디여 《국회》개원을 며칠 앞두고 김승원은 법의 《국회》통과를 저지시킬수 있는 95석을 확보하고 열두석을 기권시키게 되였다고 《흥국상회》에 보고하였다.

그런데 김승원은 모나리짜다방에서 정시명을 만나 실무적인 문제를 협의하고 난 뒤 김성수의 긴급호출을 받았다.

《한민당》비상회의가 열린다는것이였다.

회의에 참석한 김승원은 뜻밖의 정황에 부닥치게 되였다.

김성수가 이렇게 선언하였던것이다.

《3일후에 열리는 〈국회〉에서 첫 의안으로 〈독촉계〉에서 발기한 〈국가보안법〉이 가결됩니다. 우리 당 중앙정치분과는 이와 관련하여 무조건 찬성할것을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당소속 〈국회〉의원들은 당규률대로 활동하여야 하겠습니다.》

김성수는 이렇게 무게있게 선포하고는 김승원과 《수의계》에 망라되여있는 젊은 의원들을 특별히 한명한명 깔끔한 눈초리로 더듬었다.

이것은 청천벽력이였다.
《한민당》소속 《수의계》회원 11명은 이미 자기 립장이 서있었다.

김승원은 눈앞이 아뜩해왔다. 김성수가 당규률이라는것에 력점을 찍어놓은것은 당의 결정을 위반하면 제명하겠다는 위협을 미리 해놓은것이다.

지금까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물론 해당 문제에 대한 당의 립장을 사전에 알려주기는 하나 당규률로 못박아놓기는 처음이다.

김승원은 자기는 이번 기회에 차라리 《한민당》에서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넘어가리라고 결심하였다. 《국회》투쟁을 전담하게 된 조건에서 《한민당》선전부장직은 여러모로 활동을 시끄럽게 구속하고있었다. 벌써 오래전부터 멍에를 벗어던지리라고 생각해왔고 정시명도 필요한 기회에 의의가 있게 해제끼라고 지지하여주었다.

그런데 11명의 의원이 문제다. 그들이 당규률대로 반대표를 던지지 않으면 일은 성사될수 없었다.

김승원은 당수의 립장이 어느 정도로 굳어져있는지 맥을 짚어보기로 하였다.

《새로 제정된 법의 내용을 파악한 다음 의원들의 립장정리를 해야 되지 않을가요. 무조건이라는 의미를 어떻게 리해하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접수할수 없는것이라면 당결정리행에서 차질이 빚어질수도 있고요.》

김성수는 자기의 4촌동생을 아니꼬운듯 노려보다가 투박하게 대답하였다.

《차질은 무슨 차질?… 당의 전술적인 문제도 있으니 아직은 밝혀줄수는 없어.

여러분! 다시 밝혀두겠는데 무조건입니다. 립장번의가 있다면 당에 대한 반의로 인정하겠습니다.》

조금도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엄포이다.

김성수는 최근에 이르러 김승원을 밉게 보기 시작하였다. 물덤벙술덤벙하는 초당파 햇내기들과 점잖기로 평판이 널리 알려진 김승원이 묻어다니는것부터 눈에 거슬렸다.

짐작컨대 동생의 신상에 무슨 변화가 있는것 같았다. 그래 어느날은 그를 집으로 불러다가 술 몇잔 권한 다음 《자네 요즈음에 어찌된 일이야? 자네 꼭 닭무리에 끼여든 봉황처럼 처신하는데 자중하라구.》하고 경종을 울려주기까지 하였다.

지금도 김성수는 매운 눈초리로 동생을 쏘아보다가 저력있게 한마디 덧붙였다.

《거 뭐 〈수의계〉에 들어간 의원들도 이 문제를 놓고 민주주의억압이요, 자유구속이요 하고 잡스러운 소리를 늘어놓지는 말아야겠어.》

김승원은 당수의 립장이 요지부동이라는것을 확인하자 즉석에서 맞받아 결별을 선언하고야 말았다.

《난 우리 당중앙이 반민주주의적으로 운영되고 여기 중앙위원들에게까지 그 무슨 비밀의 장벽을 치는데 대하여 참을수 없습니다. 나는 불문곡직하고 〈한민당〉탈당을 선언합니다.》

《뭣이?!》

여러 곳에서 동시에 거친 고함소리가 튀여나왔다. 김승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가에로 걸어갔다.

《가만!… 고현놈! 배은망덕도 분수가 있어야지. 타향에서 무일푼으로 굴러온 저를 가상히 여겨 공장을 안겨주고 당의 고위중책을 맡겨주고 금빼지까지 달아주니 이젠 돌아앉겠다구? 그런 막말을 이 형앞에서 탕탕 해대는것이 부끄럽지 않느냐?》

김성수는 눈을 지릅뜨고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아, 당수, 자중하시오, 선전부장이 흥분한 김에 한마디 한건데 뭘 그리 노엽게 말씀하시오.

선전부장, 그럴만 한 사정이 있어 그러하니 며칠후에는 다 알게 될거요. 당수가 뭐 자기 일신상때문에 전례없는 령을 내리는거야 아니잖소. 탈당선고는 무효화하시오. 우리 당의 실세인물에 속하는 선전부장이 이래서야 되겠소.》

부당수가 김승원의 옷섶을 잡으며 만류하였다.

《아니요. 난 당안에서 제 목소리 내지 못할바에는 물러나겠습니다.》

김승원이 단호히 언명하고는 《수의계》에 몸 담고있는 동료들을 둘러보는데 그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황황히 고개를 돌리는것이였다.

김승원은 얼른 회의실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김승원의 보고를 받은 정시명은 사태가 심각해지고있다는것을 예감하였다.

놈들이 아마 크게 선손을 휘둘러대는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뭔지 아직 길철에게서도 들어온 자료가 없다.

이제는 수습하기에도 힘들게 되였다. 날자가 없는것이다.

그들은 한참 수습책을 모색하다가 대상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다시금 《국가보안법》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량심에 호소하는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였다.

김승원은 권영호에게는 크게 기대할바가 못된다고 생각하고 황철산과 함께 시안의 여러 곳에 기숙하고있는 동료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사업을 하였다.

김성수의 말에 기가 질린 《한민당》계의 동료의원들은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한숨만 내쉬였다.

그런데 한 동료의원이 그들의 진지한 해설을 듣고나서 얼굴에 면구스러운 웃음을 띄우고 이렇게 말하였다.

《사실 난 어제 중앙비상모임에 참가하여 간사님의 결연성있는 행동에 접하면서 충격이 컸습니다. 함께 따라서지 못한것이 참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용렬한 놈입지요.

그런데 나를 이렇게까지 떠밀어준 당을 차마 떠날 용기까지는 없으니 이거 야단이 아닙니까. 그래서 많이 생각해봤는데 뒤날에 당에서는 책임추궁은 받더라도 탈당은 피하면서 〈수의계〉의 일에 합류할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았습니다.》
《어서 말씀하시오. 어서!》
김승원은 한가닥 희망이 생기자 초조한 심정이 되여 다그쳤다.
《이거 참 방법은 졸렬한데 뭐 꿩 잡는데 매를 쓰면 어떻고 덫을 놓으면 어떻다는겁니까. 회의전날에 우리 의원 몇을 술집에 넣고 녹초를 만들어놓읍시다. 그리고 술값 안 낸다고 술집마담더러 야료를 부리게 하고 문을 닫아매시오. 그래 못 참가했다 하면 지지표는 그만큼 줄어들게고 뭐 김성수인들 어쩌겠습니까.》

《뭐요? 하하하…》

좌중에 폭소가 터지는데 또 한 의원이 일어섰다.

《이런 방법도 있을수 있지요. 우리 고향에 가서 누구든 전보를 치게 합시다. 〈부친 사망 급래〉하고 말이요. 예로부터 임금도 부모가 돌아가면 3년간은 국사에서 돌아앉는다고 했는데 뭐 〈국회〉뽀이코트구실치고는 먹혀들어가는겝지요. 뒤날에 그까짓 당규률앞에 나서서 여사여사해서 참가 못했으니 죽이든지 쫓든지 하소 하면 다가 아니겠소.》

《하하하-》

그들은 내놓은 궁냥이 너무도 엉뚱하고도 희한해서 바쁜 경황속에서도 허리가 부러지도록 웃었다.

그것도 바쁜 위기를 타개할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것만은 사실이다.

《말씀들이 지당하오. 민족의 비운을 걷어내는 일인데 그 방법이 어떻다고 시비를 가릴 때가 아니지요.》

황철산은 선뜻 지지해나섰으나 김승원은 개탄조로 받았다.

《정말 궁여지책이요, 음…》

이렇게 되여 《한민당》계 동료의원들문제는 그에게 위임하였다.

김승원이 력량타산을 해보니 거의 동수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국가보안법》이 상정된 회의장은 살벌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밖에서는 여늬때없이 철갑모까지 푹 눌러쓴 무장경찰들이 싸다니고 회의장 방청석에서는 《대한청년단》깡패들이 《빨갱이들을 추방하라》는 프랑카드를 펴들고 소란을 피우고있었다.

이윽고 회의시간을 알리는 전기종소리가 났다.

의원들이 너나없이 거드름스럽게 배를 내밀고 들어와 자기 좌석을 찾아 앉았다.

의원 보좌관들이 방청석의 지정한 자리에 들어오다가 이미 자기들의 자리를 차지한 남녀망나니들과 몸싸움을 벌리였다.

소리가 곱지 않게 오가고 주먹이 윙윙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시꺼먼 옷을 입은 경찰들이 경찰방망이를 흔들며 회의장에 쓸어들었다. 그들은 망나니 몇을 방망이로 조겨 피투성이로 만들어놓고는 여럿이 맞들고 회의장을 빙글빙글 돌아 밖으로 나가버렸다. 《국회》의원들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미리 계산된 놀음이였다.

이윽고 신익희가 부의장을 데리고 회의장에 들어섰다.

신익희는 매끈하게 빗어넘긴 백발을 한번 쓸어올리고는 고무로 만든 의장봉을 들어 사뭇 경건하게 앞탁을 세번 두드렸다.

회의장은 숙연한 분위기였다.

신익희가 일어났다.

《국회개원을 선포합니다. 이번 〈국회〉에는 〈국회〉의원 187명중 병결로 다섯명, 외국출장으로 일곱명, 기타 리유로 열한명의 의원이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번 회기 〈국회〉에서는 〈국회〉휴회기간 국무원에서 시달한 법령, 지시들을 검토하며 다음 회계년도 국가예산을 승인하게 됩니다.

먼저 공석으로 남아있는 〈국회〉징계분과 위원장을 선거하려고 합니다.

〈대한국민당〉과 〈한민당〉에서는 공동발기로 권영호의원을 후보로 제기하였습니다.

다른 의견들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권영호라는 소리에 김승원은 의아쩍은 눈으로 그가 앉은쪽을 바라보았다.

권영호는 신익희의 추천이 그닥 내키지 않는듯 높다란 천정에 매달린 촉수높은 전등을 쳐다보고있었다.

김승원은 피끗 여러가지 의문점들이 떠올랐다. 어째서 《독촉》계는 쫓아보낸 사람을 징계분과 위원장으로 내세우는가. 그러면 다시 민주공화당에서 빠져나와 리승만밑으로 옮겨앉았는가. 《수의계》모임장에 얼이 빠진듯 앉아있던 권영호의 어깨처진 모습이 눈에 밟혀왔다.

이 모든게 무엇인가에 의해 조종되며 호상 련결되여있는것이 틀림이 없다.

《배신?!》

그의 뇌리를 강하게 때리는것이 감히 입밖에 내기 두려워지는 그 너절한짓으로 이어지자 김승원은 주먹을 꽉 틀어쥐였다.

권영호에 대한 찬부를 묻자 그리 큰 반대가 없이 가결되였다.

신익희가 그 결과를 알려주고는 다음회순에 넘어갔다.

《이번에는 련명제안으로 상정된 〈국가보안법〉을 심의, 결정하게 됩니다.

권승렬의원께서 〈국가보안법〉초안을 랑독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오른쪽 문이 열리더니 《국회》사무처의 녀성직원들이 《국가보안법》초안을 인쇄한 종이를 의원들에게 한부씩 나누어주었다.

앞좌석에 앉아있던 법무장관 권승렬이 연단에 올라가서 비루먹은 여우처럼 숨을 할싹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제헌의원 여러분,

오늘 우리 사회는 매우 엄중한 도전에 봉착하였습니다. 사회의 요소요소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불온세력들이 공산당의 사주밑에 독립운동의 귀중한 열매인 〈대한민국〉을 전복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여있습니다.

〈대한국민당〉과 〈한국민주당〉은 조성된 정세가 국가위기를 초래할수 있는 위기일발의 상황이라고 인정하면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하여 본법안을 제출하게 됩니다.》

권승렬은 천하악법으로 후손들에게 전해지게 될 그 조항들이 뿌리는 독소에 질식되기라도 하듯 점점 목소리가 죽어들고 가늘어졌다.

권승렬은 길지 않은 법초안을 가까스로 다 읽고는 손수건을 꺼내여 살진 목덜미를 벅벅 닦고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연단에서 내려섰다.

《의장!》

이렇게 얼어붙은듯 한 회의장의 공기를 째듯 힘차게 부르며 일어선것은 황철산이였다.

《말씀하세요.》

황철산은 무쇠로 빚은듯 단단하게 생긴 턱을 쳐들고 마루를 기운차게 밟으며 연단에 올라섰다.

그는 자기에게로 집중되는 수백의 눈길에 도전하듯 불이 이는 눈으로 장내를 한바퀴 둘러보고는 《제헌의원 여러분!》하고 주먹을 불끈 쳐들었다.

《이건 국가를 참칭하여 감히 〈국회〉를 대상하고 국민을 향하여 벌리는 반란입니다. 이 악법을 단연코 통과시켜서는 안됩니다.

인류력사는 자고로 폭정을 일삼아 온 독재자들만이 왕정을 수호한다는 구실밑에 국민을 적으로 하는 이런 류형의 법을 만들어냈다는것을 기록해왔습니다.》

황철산이 팔을 휘둘러대며 분노에 차서 울부짖는데 《독촉》계의 의원 몇이 벌떡벌떡 일어서더니 째진 소리로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빨갱이국회의원은 즉살하라!》

《발언중지! 발언중지!》

두명의 《국회》의원이 무대에 올라가 황철산의 볼에 철썩 따귀를 붙이고 연단에서 밀어냈다. 그러자 황철산이 주먹으로 달려드는 《국회》의원의 면상을 냅다지르고 뒤발로 뒤에서 달려드는 놈의 배허벅을 들이찼다. 신익희가 의장봉을 연신 두드려댔다. 《독촉》계렬의 의원들이 무대로 뛰여오르고 반대파의원들도 뛰여들었다.

방청석에서도 고함소리, 발 구르는 소리, 웃음소리가 어울려 무대우의 《연기자》들을 더욱 흥분시켰다.

란장판은 경찰들이 덮쳐들어서야 겨우 진정되였다.

《가결을 하겠습니다.》

신익희가 소란이 가라앉자 재빨리 다음순서에 넘어갔다.

그때 부의장이 조용히 주의를 주었다.

《의장, 〈국회〉규정에 따라서 3독서를 해야 합니다. 연구하고 판단할 시간을 줍시다.》

3독서규정이란 법제정시에 의원들이 3번 심중히 읽고나서 의사표명을 해야 한다는 형식적인 절차를 말한다.

《됐어요. 그만한 시간이면 충분해요. 찬성하는 의원들은 표시해주세요.》

신익희가 또 지체하다가는 무슨 란리판이 일어나겠는지 걱정스러워 고집을 쓰자 여기저기에서 의원신분증을 든 손들이 올랐다.

잠시후 회의서기석에서 한명이 신익희에게 지지표를 기록한 종이를 내밀었다.

그걸 받아든 신익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습니다. 내리시오. 찬성을 표시한 의원수는 94명으로서 법통과에 필요한 과반수의 지지를 받았으므로 반대나 기권여부를 묻지 않겠습니다.

〈국가보안법〉은 통과되였습니다.》

신익희가 휴정을 선포하려고 다시 의장봉을 잡으려고 할 때 회의장 사처에서 《사회!》하는 거센 고함소리가 포성처럼 울리고 여럿이 일제히 주먹을 쳐들고 용수철에서 튕겨나듯 힘차게 솟아올랐다. 《수의계》에 소속되여있는 젊은 의원들이 많았다.

평소에 적극적으로 나오던 의원들이였다.

황철산이 그들을 대표해서 말을 시작하였다.

《사회! 표검사를 다시 할것을 주장합니다. 왜 반대표는 묻지 않습니까? 아흔넷이라는 수는 분명 계산착오입니다.》

황철산은 이 순간 너무도 분통하여 말이 자꾸 떠듬거려졌다. 그는 뿌지직 타오르는 분을 억지로 새기며 도끼로 장작을 패듯 돌처럼 굳어진 주먹으로 허공을 신경질적으로 내리찍으며 들이댔다. 아무리 계산해봐야 그에게는 94라는 수자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난 반대표를 반드시 확인해줄것을 요구합니다. 난 다시 항의합니다.》

그러나 《독촉》계의 의원들이 또 몇놈 일어섰다.

신익희가 두손을 앞으로 찌르듯 내밀어 앉으라고 손세를 썼다.

《좋습니다. 황철산의원의 제의를 접수합니다. 먼저 기권하는 의원들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지지와 반대라는 량극에서 오락가락하는 기권자들은 립장표시를 하다가 신문기자들의 사진렌즈에 걸려들가봐 걱정스러운듯 주밋주밋거리다가 앞탁우에 반쪽정도 올리밀었다.

사실 선거자들은 저들의 선거구에서 《국회》에 나간 의원이 주대없이 이편저편으로 오락가락하는것을 수치로 여기고있었다.

서기석에서 또 집계한 종이를 신익희에게 내밀었다.

《좋습니다. 내리십시오. 기권한 의원들은 스물여섯입니다.》

김승원은 놀랐다. 그렇게 될수 없었다. 며칠전에 장악된 기권자수는 당초에 예상했던것보다 다섯석이 증가된 열두석이였다.
어찌된 일인가?…

《자, 그럼 반대하는 의원님들은 황의원의 제기를 고려하여 기립표명을 부탁합니다. 기립하여 주세요.》

신익희는 지지표에 대한 확신이 생겼으므로 초조감을 버리고 매우 여유작작하게 회의를 끌고나갔다.

기다린듯 《수의계》의 성원들과 그들이 포섭한 의원들이 분노로, 피빛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쳐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료의원들을 둘러보던 김승원은 가슴에 철장같은것이 매달렸다가 훌떡 떨어지는것처럼 서늘해왔다. 눈에서 별찌가 날고 귀에서 윙윙 소리가 났다.

이미 확보했던 87석은 고사하고 눈어림짐작으로 마흔이 조금 웃돌만 한 사람들만이 의원석 곳곳에 듬성듬성 서있는것이 아닌가.

이럴수 있는가. 엄청난 배신감이 욱하고 배창 한밑에서 창자를 훑어올랐다.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멍청해진 눈으로 좌석을 빙 돌아보는데 권영호가 이쪽으로 눈을 보내다가 툭 꺾어질듯 고개를 떨군다.

(비렬한 놈! 네놈이 개인줄 내 이제야 똑똑히 안다.)

김승원은 그를 노려보느라니 전신이 와들와들 떨리고 두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리승만계렬이 방금전에 분과위원장으로 내세운 케속도 다 드러난 셈이다.

《앉으시오!》

신익희의 목소리가 들리자 일어섰던 의원들이 맥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김승원만은 앉지 않고 권영호를 그냥 쏘아보다가 다시금 회의장에 앉아있는 의원들과 방청석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여러 갈래의 빛갈이 어린 방청객들의 얼굴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의원들!》하고 오른손을 번쩍 머리우에 창검처럼 비껴들고 우뢰같은 목소리로 불렀다. 그것은 부름말이라기보다 피에 젖은 처절한 절규고 몸부림이였다. 그것은 패전한 장수가 단신으로 기치창검을 뽑아들고 말을 몰아 적진으로 육박하며 하늘땅을 진동시키는 비장하고 눈물겨운 노호였다.

김승원은 터져나오는 심장을 내리누르듯 가슴을 움켜잡고 청동의 조각상처럼 우뚝 서있었다. 비분에 잠시 혀가 굳어지고 목이 막혀 울대뼈만 실룩거리였다.

당장 배라도 가를듯 한 그 비장한 형상에 전률을 느낀듯 의원들과 방청객들의 눈길들이 그의 몸에 매달려 얼어붙고 회의장은 숭엄해졌는데 기자들만 분주히 샤타를 누르며 덤비고있었다.

《여러분!》 목구멍이 트이자 쇠물같은 열변이 쏟아져나왔다.

《우리모두는 력사앞에 이 땅의 민주와 자유를 질식시킨 죄인으로 남게 되였소. 우리모두는 새 생활, 새 제도, 새 정치를 원하는 국민의 적이 되였소.

분통합니다. 국민대표 여러분!

그래 당신들이 이 법이 리승만의 1인1당체계기초로 되리라는걸 모른단 말이요?

벌써부터 분렬을 운운하고 민족의 영구분렬을 노리며 겨레의 사활권을 미국사람들에게 넘겨버린 리승만에게 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맡길수 있는가?

그래 리승만이 곧 〈대한민국〉이라는 등식이 어떻게 밝은 세상에서 통한단 말이요. 이 나라 사람들의 구미에 맞지 않을 때는 리승만도 천백번 타도되여야 하며 그 투쟁은 법으로 보호되여야 하오.

당신들모두는 민족의 적이 되였소. 오늘 이 신성한 의사당에 모인 우리모두는 광복력사의 죄인이 되였소!》

김승원은 너무도 절통하여 가슴을 텅텅 두드리며 성난 사자처럼 무섭게 부르짖었다. 두볼을 타고 피방울같은 비분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맥이 진하여 그 자리에 폭삭 주저앉았다.

신익희는 김승원의 그 처량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무겁게 일어나 연탁을 향해 어정어정 걸어갔다.

《30분간 휴식하겠습니다.》

이렇게 간단히 알리는 그의 목소리도 커다란 충격에 떨리는듯 싶었다.

사람들이 거친 숨을 내쉬며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황철산이 뛰여왔다.

《김선생님! 원통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황철산의 눈에도 패배자의 쓰라린 수치와 절망과 분노가 침통하게 어려있었다.

그는 김승원의 팔을 잡았다.

《밖에 나가서 좀 바람을 쐬입시다.》

《나가보우. 난 좀 앉아있겠소.》

《그러지 마시구…》 황철산이 권했으나 김승원은 아예 녹아붙은듯 의자에서 일어날념을 하지 않았다.

하는수 없이 황철산은 휑뎅그렁해진 회의장의 중간길을 따라 어깨를 떨구고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회의장에서는 김승원이말고 또 한사람이 뒤통수를 의자등받이에 붙인채 멀거니 천정을 올려다보며 앉아있었다.

권영호였다.

권영호는 이 며칠새 련속 이어지는 자책과 정신적시달림에 지쳐 얼굴이 꺼칠해지고 언제나 자신감에 넘치던 두눈이 생기를 잃고있었다. 더구나 회의장에서 불의에 도전해나선 김승원과 《수의계》동료들의 모습들이 그의 가슴에 갈퀴처럼 들어박혀 사정없이 살점을 허비고있었다.

그는 너무도 커다란 좌절감에 휘말려 자신을 잃고있는듯싶은 김승원에게 선뜻 다가서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배신자의 얼굴로 밖에 나가 동료들과 마주설수도 없었다.

그는 아까 자기를 쏘아보던 김승원의 눈에서 마치도 철천의 원쑤를 노려보는듯 한 적의가 번뜩거리고있는것을 알아보았다.

더구나 김승원의 절통한 웨침은 그의 심장을 울리고 온 육체를 갈가리 찢어놓는듯 하였다.

확실히 《수의계》사람들은 정의에 눈을 뜬 량심인들이였다.

그런데 그들을 배신하다니… 그 정의의 대오, 량심의 대오에서 천길나락에 굴러떨어진듯 싶었다. 그들과 사귀고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해온 나날은 길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겨레와 나라의 전도를 책임진다는 그 고상한 사명으로 하여 보람있고 잊을수 없는 나날이였다.

그런데 그 생활을 버리다니… 그 귀중한 보람을 외면하다니…

(이게 정치인들의 생리가 아닐가?)

그는 이렇게도 자신을 위로하다간 그래도 어쩔수 없는 량심의 충동에 떠밀려 무거운 몸을 일쿼세우고 뚜걱뚜걱 발소리를 내며 김승원에게로 다가갔다.

한마디라도 인간다운데가 있는 소리라도 하고 이 자리를 피해 달아나 얼른 어느 술집에 가서 녹초가 되게 취하고 딩굴고 싶었다.

《김선생님! 죄송합니다.》

그 소리에 김승원이 푹 떨구고있던 고개를 반사적으로 쳐들었다.

두눈에 아직도 비분의 불이 일고있다.

김승원이 벌떡 일어나더니 그의 멱살이라도 움켜잡을듯 한 손을 눈앞으로 쑥 내밀었다가 팽개치듯 힘껏 내린다.

《무엇이?… 죄송하다구?… 당신도 사람이요?… 에잇 쓸개빠진 자식! 그래도 〈국회의원〉이라구… 흥 징계분과 위원장?!… 그러니 량심을 팔아 관직을 샀는가?》

《김선생, 뒤날에 이야기하겠습니다. 괴롭습니다.》

《뒤날에 이야기한다구?… 그러니 〈수의계〉를 배신한건 무슨 뒤손이 있었다는거요?… 제 소신은 아니였다는거요? 그것도 〈국회〉의원의 소리요?

금빼지 달았다 해서 〈국회〉의원인가. 〈국회〉의원구실해야 〈국회〉의원이지.

당신에게 투표한 국민이 이렇게 당신이 〈국회〉에 와서 제 량심을 팔아먹고있는걸 알면 뭐라고 하겠는가. 당신이 손을 쳐든 법이 리승만 한명을 봐주는 법인줄 그래 당신은 가늠이 안간단 말이요? 항차 당신이야 〈수의계〉의 부회장격이 아니요. 당신의 행동에 무슨 뜻이 있고 리상이 있고 정의가 있고 애국이 있는가. 이제 이 법이 리승만을 지켜 숱한 백성들과 뜻 가진 지사들을 묶어갈 때 그 사람들이 오늘의 권영호의원을 두고 뭐라고 하겠는가.

당신이 오늘 누구를 배신했는가를 그래 이제는 알겠는가?》

김승원은 치밀어오르는 울분을 격렬한 열변에 담아 팍팍 끼쳐주고는 그에게서 돌아서버렸다. 김승원은 네가 혜숙이, 그 사랑스러운 누이동생을 배신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여오르는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나들문을 향해 비척비척거리며 걸어가는 김승원의 장대한 체구가 처량해보였다.

권영호는 그의 뒤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다가 도로 자리에 돌아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는 두손으로 머리통을 싸쥐고 얼없이 탄식하였다.

《아하… 이거 참 〈국회〉의원노릇하기도 헐치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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