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좌절이 가져온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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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쵸는 발로 뛰는형의 인간이 아니였다. 그는 주변인물들의 뒤에서 끈을 당겼다늦추었다 하면서 마치도 인형극의 조종사처럼 움직이는 인간이였다. 하지처럼 부지런히 현지 정계인물들을 찾아 떠나지도 않았고 일이 터지면 그것때문에 눈알이 터질듯 부라리고 수하사람들을 들볶아대지도 않았다. 조용히 앉아서 보좌인물들의 보고를 청취하고 신문들을 보고 남조선정보보고서를 연구하고 정국의 움직임을 파악하느라고 사색을 기울였다.

을지로 1가에 자리잡은 대사관은 주인의 취향을 존중해서인지 언제나 조용하고 깨끗하였다.

무쵸는 대사관인원들부터 정확히 파악하느라고 왼심을 썼다.

워싱톤에서 데리고온 참사관들과 령사는 다 파악이 있고 믿음직스럽지만 군정청에서 선발하여 눌러놓은 사람들은 아직은 속내를 알수 없다.

하지의 추천에 따라 노불이 1등서기관으로 임명된것을 비롯하여 군정청의 적지 않은 인물들이 이번에 대사관에 임명되였다.

그들은 노불이 중앙정보국의 현지인물들의 통솔자고 현지대표라는데서 대사 다음가는 인물로 대하면서 은근히 무서워하고있었다.

노불은 남조선에 남아 활동하게 될 미중앙정보국의 인원들을 관리하면서 여전히 정계인물들과의 사업을 담당하였다.

노불을 몇번 만나본 무쵸는 조선의 말로부터 지리와 풍속에 이르기까지 막힌게 없는데 대하여 중앙정보국이 적임자를 골라냈다고 감탄하였다.

노불은 일약 무쵸의 첫째가는 상담역으로 되였다.

중앙정보국의 정보진을 장악한 노불은 남조선사회의 구석구석의 비밀도 빠짐없이 장악하고있었다.

노불은 당면한 정책적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기하였다.

《첫째, 리승만정권의 기초를 튼튼히 해주어야 합니다.

남조선군을 미국에 얽어매놓으려면 한해동안 정화작업을 하여도 불가능할 정도이므로 8개 사단의 10만의 륙해공군으로 재편하는 과정을 다그쳐야 합니다.

앞으로 20여만의 호국단을 무어 남조선의 모든 마을들에 리승만정권을 보위하는 우익무장집단이 경찰과는 별개로 존재하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시급히 국토분단상태를 법제화하고 반미국적이고 반정부적인 움직임을 범죄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회와 정부기관에서 친미우익력량의 확대를 도모하고 좌익권을 극소화시킬수 있는 법적기초를 마련하는것으로 될것입니다.》

무쵸는 노불의 제안을 접수하자 곧 그 문건을 리승만비서실에 극비문건으로 보내주되 대통령본인이 개봉할것을 부언하도록 하였다.

리승만은 즉시로 회신을 보내여왔다.

대사의 첫 정책적건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며 접수하고 시행에 착수할것이라는것이였다. 그리고 대사의 고견이 남조선정치계에 조성된 현 위기를 타개할수 있는 매우 건설적이며 책임적인 방략으로 높이 평가한다고 수선을 떨면서 대사의 활동에 커다란 기대를 가지게 된다고 추파를 던지였다.

무쵸는 이 계획이 이미 노불과 리승만사이에 합의를 본 후에 제출되였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리승만은 무쵸의 발기라고 받아들여 그의 환심을 사면서 그 시행에서 나서는 막대한 비용과 무기를 미국으로부터 원조받을것을 꾀하고있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무쵸의 립장을 먼저 타진해보려고 했던것이다.

그걸 만들어낼 때 반대파세력을 억제하는 대통령을 두고 독재요, 민주주의말살을 노린 법이요 하고 대사가 한마디 던지고 그걸 사회여론이 받아물면 야단이다. 그래 사전에 불을 끌수 있는 소방기를 만들어놓고 불질을 시작하자는 수작이였다.

리승만은 즉시 헌법작성의 공신으로 내세우며 법무장관직을 하사한 권승렬을 비롯한 소수의 법전문가들을 불러들였다.

그중에는 김명호의 영향속에 있는 인물도 있었다.

극비밀리에 《국가보안법》을 만들어내기 위한 준비작업이 리승만의 안방에서 추진되였다.

뒤날에 세대와 세대를 넘으며 남조선력사를 반미통일애국운동가들의 붉은 선혈로 얼룩지게 한 고금동서에 류례가 없는 악법의 초안은 인차 정시명에게도 전해졌다.

정시명은 통일애국운동과 반정부적움직임을 국가반역으로 규정한 이 악법의 독소조항들이 금후 이 나라의 력사에 어떤 무서운 재난을 가져오겠는가 하는것을 대번에 간파하였다.

정시명의 앞에 나타난 김승원도 이 법조항들을 세세히 읽고나서 입귀를 이그러뜨리고 부르짖었다.

《흥, 리승만이 무쏠리니나 히틀러보다 더 위대하여졌군. 저를 반대하는 모든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다니. 이건 파시즘이상입니다. 우리 〈수의계〉가 곧 불을 걸겠습니다.》

김승원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악법의 통과를 저지시키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떠났다.

김승원은 자기가 리용하고있는 서울호텔 3층 8호실에서 《수의계》의 회장인 황철산과 권영호를 만났다.

예상했던대로 황철산의 두눈에 불이 펄펄 일었다.

《마치도 리승만이 우리 〈수의계〉를 겨냥해서 만들어낸것 같구만.》

그는 문건에서 눈을 떼자 종이장을 마구 움켜쥐고 소리쳤다.

《이건 목이 열번 날아나도 저지시켜야 합니다. 천하에 불법무법이요.》

그런데 뜻밖에도 권영호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종이장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이건 좌익을 노리는 법일세. 이 법을 반대하는건 좌익계 인물들이나 할 노릇이요.

미국에서 닉슨법이 론의되고있는걸 모르오?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 법을 반대하는 자체가 이단자로 락인되고있거던. 이놈의 법이 꼭 그렇게 돼먹었구만.》

권영호는 신중한 어조로 설명하며 난색을 표시하였다.

《그러니 권선생은 어쩌자는겁니까?》

황철산이 겁기가 어린 권영호의 얼굴을 마뜩잖은 눈찌로 흘끔 돌아보고는 그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맞갑지 않아 말을 툭 꺾었다.

《좀 생각해봅시다.》

권영호는 여전히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두 사람의 모가 난 눈길을 피하였다.

《뭘 생각해본단 말이요. 이 법이 채택되면 어떻게 되겠소. 사소한 반정부 비판조차 쇠고랑에 묶이우게 된다는걸 그래 권선생이 모르시겠소? 우리 〈국회〉가 정부의 참과 허위를 갈라내고 불의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타격해야 될게 아닌가. 이것이 우리 〈국회〉의원들의 기본사명이기도 한데 이걸 놔버리면 도대체 〈국회〉가 무슨 필요가 있고 〈국회〉의원이 있어서는 뭘 한단 말이요.

국민은 우리 봉급을 차관급으로 책정해놓고 의정활동을 세금으로 보장해주고있소. 그런데 우리가 정부의 둘러리가 되고 리승만의 거수기가 되여도 좋단 말이요?》

《가만… 떠들지 말고 조용히 얘기하오. 이건 신중한 문제요. 덮어놓고 밀어붙여서야 되겠소.》

권영호는 상대방을 조용하라 하면서도 자기도 어느새에 저으기 흥분되여 말꼬리를 우쩍 높였다.

그들의 언쟁을 말없이 지켜보던 김승원이 두사람새에 나섰다.

《그럼 저녁에 계모임을 가지고 가부에 붙여보는게 어떻소?》

그것으로 그들의 협의는 끝났다.

김승원은 호텔에서 나오면서 권영호의 소심한 태도를 놓고 크게 실망하였다.

법조문을 한번 보기만 해도 리승만의 흉악한 기도가 짚이여 젊은 심장들이 의분으로 확 끓어오를줄 알았는데 권영호가 보여준 반응은 뜻밖이다. 권영호는 오히려 법의 초안이 풍기는 살기에 벌써 겁에 질려있는것이 틀림없다.

그렇게도 섬약한 인간이였단 말인가.

저녁시간에 《수의계》성원들이 다시 서울호텔 3층 8호실에 모여들었다.

김승원의 사업장소로 임대한 이 방은 《수의계》의 사무실격이였다.

방이 넓기는 하지만 40명의 계의 식솔들이 다 모여들면 비좁아서 자기의 친구가 교장으로 있는 성남중학교의 교실을 모임장소로 교섭해놓았다.

그런데 명색이 나라의 최고립법기관의 주인들인 그들을 모시기에는 초라해서 한번도 리용하지는 않았다.

모임이 시작되기전에 황철산은 등사잉크냄새가 물씬 풍기는 문건을 한부씩 주어 다 읽고 연구하도록 하였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속에서 벌써 여기저기서 분개한 목소리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건 뭐요, 도대체. 일본놈때 조선독립운동자 〈취체령〉의 복사판이구만.》

《리승만이 벌써부터 정치하기 고단해졌군. 그리도 힘에 겨우면 일찌감치 물러날 노릇이지.》

《일체 반대세력에 대한 토벌령이구만. 고금동서에 없는 정치패륜이요. 이걸 좌시해서는 안되겠소.》

참가자들은 저마끔 분기가 치밀어 한마디씩 던졌다.

황철산이 아직도 담배연기를 그냥 피워올리는 동료들을 곱지 않게 흘겨보다가 소리질렀다.

《아, 거 줄담배질을 그만들 하구려. 이거야 젠장 화통안에 앉아있는거란 말이요. 거 좀 창문을 활짝 열구려. 모두들 염소들을 닮아가는군.》

《하하하.》

《그럼 회장님, 모임때마다 술 한잔씩 내시지.》

《문을 열어라. 어서! 제길 〈수의계〉가 금연법안부터 내놓아야 할가봐.》

《원, 그런 소리 마오. 그럼 난 당장 36계 줄행랑할줄 아시오. 그거야말로 〈국회〉의원의 자유를 구속하는 악법중의 악법일세.》

《하하하.》

또 한바탕 박장대소가 터지자 황철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들 담배를 끄고 자세들을 바꾸었다.

《여러분.》

황철산은 자기에게로 참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느라고 잠시 동안을 두었다. 소란스럽던 방안은 점차 가라앉아 이내 물뿌린듯 잠잠해졌다.

《처음으로 김간사님께서 〈국가보안법〉의 위험성과 관련하여 첫 발언을 하겠습니다.》

김승원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수더구많은 머리칼을 쓸어올리고는 젊은 동료들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김승원은 대학에서 정치학과를 마친데다가 웅변에도 조예가 있어 이야기를 론리정연하고도 감동깊게 할줄 알았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을 놓고 첫 발언을 하자니 흥분부터 앞섰다. 사리는 분명한데 권영호로부터 씨원한 대답을 듣지 못한것이 불안하게 하였던것이다. 지금도 여러번 빛이 꺼진 권영호의 눈길이 마주쳐왔다가는 급기야 아래로 꺾어지는것이 기분을 잡치게 한다.

《저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다 보시고 평가를 이미 내리였습니다.

이 법은 분명코 인류법사상 전례가 없는 악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지난 시기 무쏠리니는 선거법을 개악하여 파시즘의 법적기초를 마련했고 히틀러는 〈대권부여법〉으로 제놈의 1인1당독재를 법화하였습니다. 일본의 도죠 히데끼가 집권을 하자 〈전시동원법〉으로 공산당과 일체 진보세력을 지하에로 몰아넣었고 지금 미국에서는 스미스가 〈스미스법〉으로 공산당과 반전세력을 탄압하고있습니다.

그런데 리승만이 꾸며내고있는 이 법은 어떤가? 이것은 공산당은 물론 모든 반정부활동을 범죄로 락인하고 그 활동가들을 이단시하고있습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우선 우리 〈수의계〉부터 직탄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 이럴수가 있습니까.

〈국회〉까지 과녁으로 삼는 이 법을 놔둬서는 안됩니다. 〈국회〉활동의 주요기능이 정부를 일상적으로 감시, 통제, 비판해서 국민이 바라는 길로 선도하는것이 아닙니까. 정부가 무소불능이 되여서는 안되지요.

리승만도 례외가 되여서는 안됩니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리승만의 박수부대입니까? 우리는 리승만이 내놓는 모든 정책에 대해 지지할 의무만 지닌 거수기가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 〈국회〉의원들은 응당히 대통령과 행정부가 국민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일하는가 감독하고 심판하는 국민의 전권대표입니다.

이 법이 채택되면 정당들은 물론 언론의 비판활동도 국민의 반정부운동도 이 법이 쳐놓은 쇠사슬에 얽매이게 됩니다.

이 악법의 〈국회〉통과를 막아야 합니다.

저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승원이 이렇게 첫 발언을 마치자 방안의 여기저기서 일제히 화답해나섰다.

《옳소! 옳소!》

《제껴버려야 하오!》

《이걸 놔둬서는 안되오!》

《싸웁시다. 또 한바탕 싸웁시다. 몽양은 정치가는 싸우는 맛에 산다고 했소.》

젊은 심장들이 의분으로 설설 끓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한바탕 기세를 올리며 의사표명을 하였다.

그러나 김승원은 여전히 권영호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다는것을 다시 확인하였다. 권영호뿐아니라 그옆에 앉아있는 《독촉》계렬의 일부 인물들도 정의감과 시대적책임감을 안고 격정을 터치고있는 동료의원들의 열기에 합류하지 못한채 죄의식과 불안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군.》 김승원은 짚이는바가 있었다.

사실 며칠전 권영호는 《국회》의장 신익희한테 불리워갔다.

《독촉》계렬에서 핵심력량인 《대한국민당》당수인 신익희는 리승만의 동료급 심복으로 알려져있는 인물이였다. 원래는 이번에 부대통령으로 된 리시영과 함께 김구의 측근으로 통했는데 서울에 들어온 후부터 미국이 리승만을 가까이 한다는데로부터 리화장에 자주 드나들었다. 이것이 김구의 눈에 걸려들어 돌림을 받고 아예 그쪽으로 옮겨앉고 말았다.

신익희는 의장의 넓다란 방에 단정하게 벗어넘긴 백발의 머리를 떠이고 숱한 문서장을 책상에 가득히 쌓아놓고 앉아있었다.

그는 몸집에 비하면 퍼그나도 작아보이는 얼굴에 반색을 띄우고 그를 맞았다.

권영호가 앞걸상에 앉자 신익희는 대바람에 첫말을 이렇게 꺼내놓았다.

《이보게 권의원, 자네 〈독촉〉에서 어째 쫓겨났는지 이제는 리해가 되는가?》

그 소리가 자극적이여서 권영호는 신익희의 반들반들한 대머리를 흘끔 쏘아보고는 심술궂게 대답했다.

《쫓겨나다니요. 난 자유를 구속하는 〈독촉〉이 싫어서 제멋에 쫓긴거지요.》

《이렇든저렇든… 그래 민주공화당쪽은 자네멋에 어울리는가?》

《뭐 거기도…》

《〈수의계〉일은 잘되나?》

《그럭저럭…》

권영호는 신익희의 고압적인 자세가 어줍잖아 건성건성 짤막히 대꾸하며 일어설 기회만 노리였다.

《다시 오게. 내 자네에게 20만을 주겠네.》

돌아서면 20만원을 챙겨주겠다는 소리였다.

권영호는 이마살을 찌프리였으나 거기에는 반응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씀 다 하시였습니까?》

《그렇게 벌떡거리지 말고 앉게. 어서… 젊은 사람이 례의가 부족하군. 금빼지(〈국회〉의원 휘장)를 같이 달고있으면 촌수도 같다던가. 요새 젊은이들이 충과 효를 모르고 사는게 큰 탈이야.

그건 그거구… 이번에 리승만대통령이 직접 기안한 법 하나 마련하려구 해요.》

《어떤겁니까?》

《〈보안법〉이라구… 지금 정부가 섰는데 봐주는이는 없구 저마끔 두드려만 대니 이 나라가 어떻게 허리펴며 모처럼 선언한 나라독립은 어떻게 지켜간단 말이요.》

《그건 우리 〈수의계〉 활동을 념두에 두시는 말씀이십니까?

의장님의 그 말씀이 전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활동은 이 나라의 기강을 바로세우기 위한것이였지 정부의 활동을 억제하거나 혼란을 주자는게 아닙니다. 대통령이 나라의 국부답게 처신해줄걸 바랄뿐입니다.》

《가만가만… 자네도 다혈질이야. 그렇게 말 떨어지기 바쁘게 끓어올라서야 피차에 호흡이 되나.

좋네. 대통령의 독판치기를 후려갈기는건 마음대로 해보게. 그러나 지금 신임정부가 겪고있는 위기는 사실상 비상사태야. 그래서 〈보안법〉이 기안된걸세. 이건 미국대사쪽에서 시작된 일이야. 한마디로 〈대한민국〉을 지켜내자는걸세. 그러니 이 법을 반대하는것부터 반국가적이란 말이거든. 자네 이걸 한번 읽어보게.》

신익희는 상대방의 속안을 서늘하게 휘저어놓고는 그의 앞으로 타자를 친 문건을 밀어던지였다.

권영호는 《국가보안법》조항들을 깐깐히 읽었다. 그의 속눈섭이 파들파들 떠는것이 헨둥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문건에서 눈길을 뗀 권영호는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보내다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래 저한테 뭘 말씀하자는겁니까?》

《이것봐요, 권의원. 권의원은 이러나저러나 미국사람들의 손에서 금빼지까지 따낸 사람이지. 자넨 장차 이 나라의 중추에 올라서야 할 전도유망한 대권후보생이야. 〈국회〉징계위원장자리가 공석인데 자네가 그 자리에 물망이 올랐어.

그런즉 〈수의계〉 뒤치닥거리도 형편을 살피며 잘 처신하게. 이번에 이 〈보안법〉을 통과시킬 때 장차 이 법의 칼날에 목대가 부러질 일을 만들지 않도록 하게.

그날 〈국회〉에는 리승만이 나오겠다고 하는데 결국은 대통령의 명을 걸고 이 법을 통과시키겠다는거란 말이요.

자네 젊은 패들이 쑥닥거린다고 해서 그 령감 제 갈길 머뭇거릴것 같은가.

난 자네가 〈독촉〉에서 나가기는 했지만 자네 인물됨이 귀해서 불러들인거야. 알아듣겠나?

깊이 생각하고 날 다시 찾아오게. 20만의 보상을 뭐 금전유혹이라 생각할게 없네. 명예훼손에 대한 이를테면 보상이라고 하세.》

《……》

권영호는 한풀 죽어서 신익희의 방에서 물러났다. 그는 《수의계》에 망라된 《독촉》계의 다른 성원들도 그날 다 신익희한테 불리워갔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권영호는 집에 돌아가서도 그 무슨 얼뜨기한테 혼맹이를 뽑아 전당 잡히고온듯 싶은 으스스한감을 덜수 없었는데 지금 모임에 와서도 신익희가 쳐놓은 속박에서 좀체로 벗어날수가 없었다.

분명 신익희의 수작은 협박이자 회유인것이다.

(내가 그 여우귀신같은 령감태기에게 홀려 제 소리 잃을수 있을가.)

권영호는 이렇게 강심을 먹어보기도 하지만 그건 울뚝거리는 자존심의 공연한 객기에 불과하고 다시금 신익희가 펴놓은 보이지 않는 그물이 그의 심신에 칭칭 감겨들어가지고 그냥 서서히 옥죄여드는것만 같다.

황철산이 정신이 번쩍 드는 우렁찬 소리로 방안을 쩌릿이 울렸다.

《또 한바탕 해보잡니까?》

《합시다!》 좌중이 일제히 호응하였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지금 42명중에서 38명 출석하였습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이 각각 1명씩 지지자를 포섭하시오. 그러면 일흔여섯이라… 과반수 의석수가 모자랍니다. 두명의 지지자를 얻어낼 의원님들, 손들어 주세요.》

그러자 여러명이 번쩍 자신있게 주먹을 올렸다.

《고맙습니다. 저와 우리 간사님들도 한명씩 더 맡겠습니다. 그러면 다섯석 … 다섯석이 빕니다. … 다섯석…》

황철산이 모임장의 이곳저곳을 그냥 안타깝게 눈더듬질을 하였다. 그러는데 또 여러명이 회장의 불안을 덜어주려는듯 주먹을 들었다.

《좋습니다. 이제 한자리만 더 있으면 되겠습니다.》

황철산이 수첩에 적어넣으면서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는데 김승원이 《가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잊고있었군.… 제가 여러 의원님들께 기쁜 소식 하나 전해드릴게 있습니다.

뭔가 하니 〈국회〉김부의장이 우리 〈수의계〉에 등록해달라는 제기를 저한테 정식으로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김승원이 먼저 손벽을 치자 방안이 떠나갈듯 요란한 박수가 터졌다. 《국회》부의장이 자기들의 회합에 참가한다는것은 그들모두에게 커다란 고무로 되고 힘이 되였다.

부의장은 중국에 있을 때부터 김승원과 친교가 있었다.

김구를 좋지 않게 보던 그 사람은 서울에 나와서 초기에는 리승만의 독립촉성회 중앙위원으로 있다가 리승만에게 반기를 들고 《한민당》에 넘어갔다.

그러나 《한민당》이 친일분자들을 많이 입당시키면서 당세를 확대해나가자 김성수와 대판싸움을 벌리고서는 일체 당파에 외면해왔다.

《국회》개원식때 그는 《국회》안에서 제일 많은 의석을 확보한 무소속의원들의 대부격으로 추천을 받아 부의장자리를 따냈다. 그다음에는 자기를 따라서는 무소속의 일부 의원들을 핵심으로 얼마전에 민주공화당을 만들어가지고 그 당수로 되였다.

김승원은 《수의계》를 무은 후로 그를 끌어들이기 위하여 여러모로 애를 써왔다.

부의장은 처음에는 고집스럽게 도리질을 했으나 《수의계》가 《국회》에서 권위있는 집단으로 공인을 받고 사회적공감대를 크게 확산시켜나가자 점차 김승원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며칠전에 정식 《수의계》에 등록해 달라고 하면서 당분간은 크게 떠들지는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날의 회합에 오려고 했는데 리승만이 갑자기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경무대로 불러 참가하지 못하였다.

결국 《보안법》의 《국회》통과를 저지시키게 될 마지막의석으로 되여 그의 가입이 더욱 동료의원들을 감동시키였다.

황철산이 기쁨에 넘쳐 싱긋벙긋하며 회의를 결속하였다.

《필요한 자금은 저나 간사님들께 제기하면 가능한대로 풀어드리겠습니다.

리승만이 이번에 내놓으려는 〈보안법〉은 우리모두의 손발을 철쇄에 얽어매여 국민의 입에 자갈을 물리고 1인1당독재체계를 완비하려는 악법임을 잊지 맙시다. 끝까지 내밉시다.》

모임참가자들은 온몸에 뻗치는 젊은 힘과 정력을 뿌듯이 안고 헤여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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